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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블로거의 시선

미키 루크의 늙은 몸이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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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에서 이제는 나이든 프로레슬러인 랜디(미키 루크)는 링 위에서 미리 준비한 면도날로 이마에 작은 상처를 냅니다. 좀더 극적인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피를 흘리는 거죠. 이것은 프로레슬러라는 직업이 얼마나 배우라는 직업과 일맥상통하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링 위의 레슬러는 카메라 앞에 선 배우들처럼 어느 정도 짜여진 상황을 좀더 리얼하게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더 레슬러'는 바로 이 '보여지는 몸'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에 대한 영화입니다. 랜디는 링 위에 오르기 위해서 꼬박꼬박 운동을 챙겨서 하고(그것이 싸우기 위한 힘을 기르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보여지는 몸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 크죠.), 근육을 만들기 위해 약물도 복용합니다. 그뿐이 아니죠. 머리 염색을 위해 꽤 공을 들이고, 심지어 적당히 탄 몸을 보여주기 위해 인공선탠기에 몸을 눕히기도 합니다. 이것은 영화를 앞둔 배우들과 다를 바 없는 준비과정이죠.

문제는 이 '보여지는 몸'이 점점 나이들어간다는 점입니다. 배는 나오고 근육은 쳐지고 얼굴에는 주름이 생깁니다. 매력적으로 섹스어필하던 그 얼굴과 몸매는 점점 노인의 그것처럼 볼품없어지죠. 마음은 여전히 링 위(혹은 카메라 앞)에 오를 준비가 되어있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습니다. '보여지는 몸'을 직업으로 가진 이들에게 이 상황은 절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랜디의 상황은 스트립 댄서인 캐시디(마리사 토메이)와도 겹칩니다. 캐시디 역시 (좀더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몸'을 직업으로 하고 있죠. 그녀는 점점 나이들어 이제 그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더 젊은 댄서들에게 밀리는 자신을 느끼죠. 그녀를 찾아주는 건 이제 같은 처지에 놓인 랜디 정도입니다. 쿨한 직업적 관계는 이 동병상련의 직업적 상황에 의해 서로 이해됩니다.

랜디는 사적인 자리에서 그녀를 위해 춤을 춥니다. 랜디의 육중하고 볼품없는 몸이 그녀가 해주던 춤을 따라출 때, '보여지는 몸'은 사라집니다. 그들은 직업의 세계를 넘어서는 것이죠. 그 관계에서는 직업(사무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지금껏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왔던 일이라는 뜻에서의 직업)보다는 인간적인 동정과 연민의 시선이 그들의 존재를 새롭게 규정합니다.

레슬러라는 존재를 포기하고, 대신 이제는 나이들어 죽어가고 있는 한 인간으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되는 것은 이제 그 '보여지는 몸'이 가진 효용가치가 사라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일까요. 영화는 늙기 전의 몸을 추억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 늙은 몸을 인정하고 그 몸이 젊은 몸이 아니라도 여전히 효용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랜디를 다시 링 위에 세웁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나는 끝났고 패배자이며, 더이상 못할거라 하지만 알고 있나요? 나에게 '끝' 이라고 말해 줄 사람은 여러분들입니다. 왜냐면 당신들은 내 가족이니까요."

링 위에 오른 랜디의 이 선언은 '보여지는 몸'으로서의 한 극중 레슬러이자, 배우 당사자인 미키 루크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미 80년대 '나인 하프 위크'와 '와일드 오키드'로 섹스 심벌의 자리에 올랐던 배우이자, '자니 핸섬'으로 핸섬한 얼굴 자체가 영화로서 활용되기도 했던 배우가, 이제는 늙은 몸을 이끌고 '더 레슬러'라는 영화에 뛰어들 때부터 예정된 결말입니다.

미키 루크의 망가진 늙은 몸이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는 배우로서 과거의 영광 속으로 가리고 싶은 늙은 몸조차, 랜디가 링 위에서 했던 말처럼 "끝이라고 말해줄 유일한 여러분" 들 앞에 '보여지는 몸'으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바로, 이 한 배우의 늙은 몸 자체가 연기를 넘어서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