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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블로거의 시선

내조하는 남편이 본 내조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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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의 여왕'은 백수 남편 온달수(오지호)를 퀸즈그룹에 입사시키기 위해 나선 천지애(김남주)의 좌충우돌기를 그린 코미디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퀸카였으나 지금은 백수남편 덕(?)에 남편 취직을 위해 발벗고 나서게된 천지애는,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던 폭탄이었으나 이제는 잘나가는 남편 덕에 귀족생활을 하고 있는 양봉순(이혜영)과 정반대의 상황에서 만나게 됩니다.

고교시절 당했던 굴욕을 되갚아주려는 양봉순의 계략에 휘말려 천지애는 고등학교 동창들 앞에서 양봉순을 시중드는 모욕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꾹꾹 참습니다. 이유는? 오로지 남편을 취직시키겠다는 일념 때문이죠. 이 드라마에는 결혼 덕에 뒤바뀐 삶 즉 서민적인 삶과 부유한 삶이 부딪치는 지점에서 극적 긴장감이 생겨납니다. 천지애는 자신을 하녀취급하는 양봉순 앞에서 치사한 부유층의 얄팍한 세계와 대결구도를 벌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부유한 세계 속으로 편입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코미디를 장르로 선택한 것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가장 잘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만일 어줍짢게 진지한 사회극을 선택했다면 이 드라마는 상당히 많은 문제점들에 봉착했을 테니 말입니다. 먼저 천지애는 왜 남편의 성공을 통해서만 자신의 삶을 바꾸려고 하는가 하는 점이 의문입니다. 천지애가 하는 일련의 전략적인 행동들을 보면 그것을 그대로 자신에게 적용해도 스스로를 성공하는 삶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에 주역들로 등장하는 여성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행동이 남편들을 내조하기 위한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정작 남자 캐릭터들는 저 뒷편에 물러나 있다는 점입니다. 온달수는 전형적인 백수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한준혁(최철호)은  전형적인 성공한 남자(하지만 사랑은 포기한)의 모습을, 그리고 퀸즈그룹 사장인 허태준(윤상현) 역시 전형적인 사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조의 여왕'이 내조하는 아내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궁극적으로 남편(의 성공)을 지향하고 있다면 그 남편이 어떤 삶을 원하는 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천지애 자신의 욕망이 있을뿐, 남편 온달수가 무엇을 바라는 지는 삭제되어 있습니다. 바보같은 일이지만 남편 역시 그것을 모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천지애의 내조란 궁극적으로 보면 내조가 아닙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내조란 이름 하에 남편을 앞으로 내세운 것 뿐이지요.

물론 이 드라마의 '내조의 여왕'이라는 거창하고 과장된 제목은 세태 풍자의 한 면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것입니다. 남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직장내 조직생활 속에서 쓴맛 단맛을 다 보고 있을 때, 내조라는 이름으로 저들끼리 남편의 직책에 따라 서열을 만들고 권력놀이를 하는 그 세태 말이죠. 따라서 이 드라마가 가진 많은 문제들은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서 풍자로 전화될 가능성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이 드라마를 세태 풍자의 코미디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처세술의 하나로 받아들일 때 발생하게 될 결과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모두 사회적 삶에 종사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에 내조란 본래 성별에 상관없이 부부가 서로를 돕는 의미를 획득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 내조의 의미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배우자가 가진 삶의 목표를 옆에서 지원해주는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내조하는 남편의 한 사람으로서, '내조의 여왕'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그 좋은 내조의 뜻이 곡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