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창제의 의미 되살린, '뿌리'의 가치

'뿌리깊은나무'(사진출처:SBS)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한석규)는 내금위장인 무휼(조진웅)에게 묻는다. "무술로 따진다면 내 언변은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느냐?" 그러자 무휼은 "조선 제일... 아니 천하 제일검이십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유는 칼보다 강하고 파괴적일 수 있는 글이 가진 힘을 잘 보여준다. 세종은 자신의 논리라는 검으로 글자를 만드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린다.

물론 '뿌리 깊은 나무'에 무(武)의 대결이 주는 흥미로움이 없는 건 아니다. 출상술을 쓰는 이방지(우현)와 무휼이 조선제일검의 자리를 놓고 부딪치는 대결이 그렇고, 강채윤(장혁)과 윤평(이수혁)의 쫓고 쫓기는 대결이 그렇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건 문(文)의 대결이다. 한글을 만들고 반포하려는 세종과, 그 후폭풍을 감지하고 이를 결사적으로 막으려는 밀본 정기준(윤제문)의 대결.

집현전을 폐지하고서라도 한글을 반포하려는 세종은 한글이 가진 힘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글자를 알면 밥이 나오냐, 양반이 되는 것이냐"고 묻는 강채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글자를 알면 백성도 힘이 생긴다. 밥이 나오지는 않지만 밥을 더 많이 만드는 법을 알게 될 것이고 양반이 되지는 않지만 양반들에게 그렇게 힘없이 당하지만은 않는다." 이것은 지식이 권력이던 시대에 글을 독점하던 양반들에게 한글 반포가 공포 그 자체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원급제를 한 반촌 노비 서용에 분개한 어린 유생 박세명이 그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한다. 글이라는 것이 사람 목숨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다. 가리온으로 위장한 정기준은 강채윤에게 이렇게 말한다. "글자만이 오로지 힘인 분들이니 저에게는 검안이고 겸사복 나리께서는 칼이 아니겠습니까요. 가리온이 가리온인 이유는 검안을 잘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요. 저에겐 그것밖에 없습죠. 저 양반네들은 더 하지 않겠습니까요."

글자를 독점한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권력을 의미한다. 서양의 종교개혁에서 중요한 것이 라틴어가 아닌 자국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과 쿠텐베르크의 인쇄술이다. 이로써 특정인들만이 독점할 수 있었던 종교적 지식이 일반인들에게도 전파되면서 개혁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그만큼 글의 힘은 칼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기도 한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태종 이방원(백윤식)이 칼로서 권력을 휘어잡으려고 했다면, 세종 이도는 글로써 독점된 권력을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너만의 조선이란 무엇이냐"는 태종의 질문에 세종은 결국 답변을 준 셈이다.

지금껏 많은 사극들이 있었지만, 이처럼 문(文)의 힘과 문(文)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다루는 사극은 없었다. 물론 전쟁과 정치, 혹은 인물의 성장, 장르화된 사극 속에서도 말이 갖는 힘은 그 어떤 액션이나 스펙터클보다 강하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뿌리 깊은 나무'처럼 철학적인 깊이를 가지면서도, 그것을 단지 사변이 아닌 팽팽한 대결구도로 그려내는 사극은 일찍이 없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는 이 한글이 가진 가치를 발견하는 일은 이 사극의 또 다른 재미이자 의미다. 무(武)보다 센 것이 문(文)이라는 그 말이 실감나는 사극, 바로 '뿌리 깊은 나무'다.


이런 방식으로는 유재석이라도 어쩔 수 없다

'놀러와'(사진출처:MBC)

'놀러와'에 더 이상 놀러가고 싶지 않다? 이 정체된 토크쇼의 추락이 예사롭지 않다. 연예인 게스트 토크쇼라는 이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 게스트 토크쇼인 '안녕하세요'에 밀리고 있는 상황. 게다가 MC가 유재석이 아닌가. 시청률이 급락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화제성에서도 그다지 주목되지 못하고 있다. 제 아무리 좋은 형식도 변화 없는 반복에는 장사가 없는 법. 그것을 맡고 있는 MC가 유재석이라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놀러와'는 유재석이라는 MC의 성향을 극대화한 토크쇼다. 즉 편안하게 친구 같은 게스트들을 모셔놓고 유재석 특유의 '햇볕 토크'로 게스트들의 꼭꼭 싸매놓았던 외투를 벗겨내는(?) 토크쇼. 그 편안한 분위기에 던져지면 게스트들은 저도 모르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마련이었다. 이것을 더 극대화한 것이 '골방 토크'다. 신발을 벗고 편안히 골방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 형식은 그 골방이라는 공간이 갖는 편안함 속에서 게스트들을 무장해제시키곤 했다.

이런 토크쇼의 분위기는 유재석이 MC로 있는 '해피투게더'도 마찬가지다. 이 토크쇼 역시 유재석의 성향을 극대화해 목욕탕이라는 편안한(?) 공간으로 게스트를 초대해 멍석을 깔아준다. 유재석이 받아주고, 박명수와 박미선, 신봉선이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한없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줌으로써 게스트들을 놀게 해주는 토크쇼. '놀러와'나 '해피투게더'는 이란성 쌍둥이 같은 유재석 토크쇼의 가능성을 열어보여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프로그램이 정체되고 늘 같은 방식이 반복되면서 '놀러와'와 '해피투게더'는 모두 추락의 길을 걷고 있다. '놀러와'는 중간에 '세시봉' 친구들을 통해 음악과 감성을 충전하면서 순간 상승했지만 최근 들어 이런 기운은 다 빠져버렸다. '해피투게더'의 목욕탕이라는 공간은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어딘지 이 공간에 묶여 있는 듯한 답답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물론 이 두 토크쇼가 변화를 모색하지 않은 건 아니다. '놀러와'는 '해결의 책'이라는 코너를 만들었고, '해피투게더'는, 물론 파일럿 프로그램에 머물렀지만, 공간을 바꿔 연예인과 그 친구들을 대거 초대해 꾸리는 토크쇼로서의 변모를 모색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해결의 책'은 코너의 잔재미를 주기는 하지만 프로그램 전체의 정체된 분위기를 일소할 만큼의 반향을 가져오지는 못하고 있다. '해피투게더'는 시즌을 거듭하면서 계속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변화를 해오던 그 도전정신이 실종된 느낌이다. 목욕탕에서 매번 벌어지는 토크는 여전히 재미있지만, 반복되다 보니 누가 나와도 비슷비슷한 느낌으로 흘러가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유재석이 제 아무리 노력하고 날고 긴다 해도 프로그램 형식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그 노력이 성과로 돌아오기는 힘든 일이다. 사실 '유재석 토크쇼'로 인지되어 있는 '놀러와'나 '해피투게더'의 이런 변화 없는 형식이 갖는 식상함은 유재석 본인으로서는 대단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도대체 제작진들은 왜 이런 추락을 보고만 있는 것일까. 유재석이라는 발군의 MC를 세워두고도 왜 반복된 형식으로 무너지고 있는 프로그램을 좌시하고 있는 것일까. 혹 여전히 유재석이라는 MC 한 명만 세우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변화해야 한다. 그 형식이 무엇이든 지금은 현재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모험이 필요한 시기다. 그것이 유재석 본인에게도 좋고, 프로그램 제작자에게도 좋은 일이며 또 시청자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확고히 정체된 이미지를 벗어던질 수 있는 과감한 변화가 없는 한, 이들 토크쇼의 추락은 멈추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구라, '라디오스타'를 살리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사실 말이 쉬워 '빵빵 터진다'고 표현하지 실제로 빵빵 터지는 토크쇼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달라진 '라디오스타'는 '빵빵 터진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의 5초에 한 번씩 웃음 폭탄을 날리는 토크쇼. 무엇이 '라디오스타'의 이런 속도감 넘치는 웃음(?)을 가능하게 한 걸까.

'황금어장'에서 '라디오스타'는 늘 자투리 방송이었다. '무릎팍도사'에 의해 분량이 좌지우지되는. 그래서 이 토크쇼는 길어봐야 20분을 넘긴 적이 없고, 심지어 단 몇 분이 방영됐던 적도 있다. 그만큼 시청자들은 아쉬워했지만, 바로 이 '짧다'는 것은 '라디오스타'만의 확실한 토크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 핵심은 속도다.

'라디오스타'는 말 그대로 정신없이 쏟아지는 토크의 롤러코스터가 되었다. 짧은 시간에 그것도 네 명의 MC를 앉혀두었다는 것은 그 방송분량을 위한 각축전(?)이 얼마나 치열했을까를 짐작케 한다.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무릎팍도사'가 혼자 MC를 하며 북치고 장구치던 모습을 보다가 '라디오스타'를 접하면 그 속도감이 배가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짧은 시간에 효과적인 노출이 필요하기 때문에 MC들은 장황한 이야기보다는 툭툭 치는 짧은 토크를 활용한다. 권투로 치면 끊임없이 잽을 날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잽이 한 군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네 사람이 서로 다투듯이 던지기 때문에 토크는 더 빠를 수밖에 없고, 그 와중에 방송분량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끼어들기 때문에 촌철살인의 토크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환경에 적응하기는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몇 년 간을 이 환경 속에 적응하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그 속도감 있는 토크 전개가 더 자연스러워졌다. 그런 '라디오스타'가 '황금어장'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되자 갑자기 늘어난 방송시간에 어리둥절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곧바로 '라디오스타'는 초심을 다잡았다.

김구라는 이 '라디오스타'만의 토크 스타일을 1시간이 넘는 방송분량에서도 그대로 유지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아예 게스트를 정면으로 보지 않고 옆으로 삐딱하게 앉아(어떨 때는 등을 보인 채) 툭툭 던지는 그의 직설어법은 게스트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오랜 만에 나온 혜은이의 지나치게 편안한 복장에 "너무 편안하게 나오셨다"고 직언을 하고, 여전히 혼자 지내는 송은이에게는 "기구하구만"하고 이야기를 던짐으로써 그녀의 '남자 없는 삶'을 유머로 풀어놓게 한다. 김영호와는 적당한 긴장감을 만들어 스스로 꼬리를 내리는 모습도 연출하고, 김혜선에게도 연하남과의 러브신 얘기를 하며 "얼굴들이 아주 좋으십니다"하는 말로 은근한 웃음을 만들었다.

김구라가 전방에서 치고 나가고 윤종신이 떨어진 토크(?)를 다시 곱씹으며, 김국진과 규현이 의외의 토크를 툭툭 던지면서 '라디오스타'는 예전 20분 시절의 속도감을 그대로 찾아왔고, 여기에 전 후반을 나눠 '고품격 노래방' 코너를 연결하자 음악 토크라는 감성적인 부분까지 덧붙이게 되었다.

'라디오스타'가 이제는 '무릎팍도사' 없이 온전히 1시간을 과거의 속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오랜 시간 그 짧은 시간의 토크쇼를 통해 단련된 MC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김구라는 단연 빛난다. 그의 때론 물고 때론 스스로 무너지고 때론 엉뚱하면서도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토크는 '라디오스타'의 동력이 되고 있다.


'나가수', 노래자랑이 아닌 쇼인 이유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에서 막춤을 추면 1등이다? 그 첫 번째 물꼬를 연 가수는 김범수였다. '얼굴 없는 가수'였던 그는 남진의 '님과 함께'를 부르면서 박명수와 함께 춤을 추었다. 어딘지 막춤에 가까운 듯, 한편으로는 코믹하게 보이는 김범수의 춤은 관객을 열광시켰다. 청중평가단은 그에게 1위의 영광을 안겼다. 바비킴은 초반 부진한 성적을 내다가 신촌블루스의 '골목길'을 부르면서 1위를 차지했다. 이때 바비킴 역시 춤을 췄다. 그 후로 바비킴의 어딘지 술 한 잔 걸치고 덩실덩실 추는 듯한 그 막춤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춤의 바톤은 김경호가 물려받았다. 김경호는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부르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추는 예상치 못한 춤으로 관객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긴 머리를 찰랑찰랑 흔들고, 어딘지 수줍은 듯한 몸 동작은 폭발적인 가창력과 반전을 이루면서 그를 단박에 '국민언니(?)'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윤민수다. 조금은 과도한 감정이입의 창법으로 일관해오던 그는 ADD 4의 '빗속의 여인'을 부르며 마치 비장의 카드를 꺼내듯 춤을 꺼내들었다. 그의 개다리춤은 청중들을 열광케 만들었고 그는 꿈에도 그리던 1위를 처음으로 차지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멋있다기보다는 웃음을 주는 이들의 막춤에 도대체 어떤 힘이 숨겨져 있어 추기만 하면 1등을 거머쥐게 만드는 걸까. 이것은 '나는 가수다'의 무대가 이제 어느 정도 대중들에게 익숙해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처음 이소라가 무대에 올라 '바람이 분다'를 조용히 불렀을 때,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관객들은 진심이 담긴 노래가 가진 힘을 '나는 가수다'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나는 가수다' 무대에 이제 청중들은 적응이 된 상태다. 그들은 노래를 잘한다. 그 사실은 처음엔 놀라웠지만 지금은 당연한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노래만 잘 하는 줄 알았던 가수가 춤을 추면 어떨까. 물론 '얼굴 없는 가수'라고까지 불리던 그들이 추는 춤이니 거기서 프로페셔널한 멋진 춤을 기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지 어색하고 어눌하지만 춤을 통해 뭔가 다른 걸 보여준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청중들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민수가 '빗속의 여인'의 첫 소절을 막 끝냈을 때 인순이가 한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드디어 쇼를 점점 알아가기 시작하는군요."

'나는 가수다'는 때론 성대대결이라고 부를 정도로 질러대는 고음과 소름끼치는 가창력의 대결 양상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인순이가 말하는 것처럼 '쇼'를 보여주려는 가수들이 있었다. '가창력 자랑(?)'에 지친 청중들에게 쇼는 흥겹고 즐거우면서도 그 자체가 가수들의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청중들에 대한 헌사라는 기분 좋은 인상을 만들었다. 물론 막춤과 순위가 어떤 하나의 법칙처럼 상관관계를 갖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는 무대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 온전히 그 무대가 청중들을 위한 것이라는 '쇼'가 가진 인상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할 순 없을 것 같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지칭하듯, 가수의 또 다른 정체성은 못하거나 어울리지 않아도 청중을 위해 기꺼이 쇼를 할 수 있는 그 마음가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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