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생존만큼 중요한 공존의 가치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정글의 법칙' 악어섬이 보여준 건 '생존'이었다. 그 극한의 낯선 상황에서 가장 빛난 건 단연 김병만과 리키 김이다. 이 두 사람은 끊임없이 집을 짓고 먹이를 구하면서 정글에서의 생존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반면 그 생존 앞에 힘겨운 얼굴을 보인 두 사람이 류담과 광희다. 하지만 악어섬을 탈출(?)해 힘바족 마을로 온 그들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낯선 힘바족 마을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통해 류담과 광희의 새로운 가치가 드러났다. 바로 '공존'의 가치다.

낯가림이 심한 김병만보다 류담이 돋보인 건 열린 마음이다. 아무에게나 다가가 말을 걸고(물론 힘바족 말도 잘 모르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면 웃어주고, 때론 과장된 몸짓으로 웃음을 주자, 힘바족들도 조금씩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힘바족 여인들에게 김병만은 그저 '키 작은 친구'였지만, 류담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었고 '사위삼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유는 하나다.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생존만큼 중요한 공존의 가치가 드러난다. 제 아무리 살아남는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함께 살아갈 수 없다면 그건 사는 게 아니다. 결국은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정당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류담과 광희가 열어놓은 공존의 물꼬에 김병만도 차츰 적응하기 시작했고, 마을 한 가운데 그늘집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시냇물가에 작은 간이 목욕탕을 만들어 아이들이 들어가게 하고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 김병만에게도 공존이 가진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아이들은 왜 이런 조그만 목욕탕이 필요한 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사과를 나눠주고 함께 먹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류담과 광희는 마치 힘바족의 가족이 된 것처럼 그들과 동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차츰 적응을 하게된 김병만 역시 나무를 타고 오르는 힘바족 청년들을 그대로 따라함으로써 한층 그들에게 다가갔다. 도무지 못 오를 것이라 생각한 그 나무 타기를 선보인 김병만에게 힘바족 청년은 "용기가 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서 공존을 위한 여러 가지 법칙들이 선보여졌다는 것이다. 힘바족이 쓰는 언어를 하나하나 적어서 간단한 것이나마 말을 건네는 행위, 함께 먹을 것을 건네고 먹는 행위, 마을 사람들에게 선의를 보여줘 마음을 얻으려는 행위, 또 그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하는 행위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 건 류담의 반전이 보여준 '웃음'의 힘이었다. 한번 웃겨주는 것으로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

사실 이것은 '웃음의 기원'을 추론할 때도 등장하는 얘기다. 뭔가 낯선 존재에 대한 극한 두려움이 '사실은 난 너의 적이 아니야'라는 긴장의 이완을 보여주면서 생겨난 게 치아를 드러내 보이는 행위, 즉 웃음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웃음이 가진 힘은 사람들을 '공존'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어쩌면 생존보다 더 강한 욕구가 공존의 욕구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저 로빈슨 크루소의 생존을 넘어선 후의 극도로 외로운 삶을 떠올려보거나,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바닷물에 떠내려가는 윌슨씨(사실은 배구공인)를 보며 오열하던 톰 행크스를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글의 법칙'이 전편에서 생존을 보여주고, 이어 공존의 가치를 드러내준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김병만보다 더 빛난 류담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공존'의 가치를.


투박한 진심의 드라마, '영광의 재인'

'영광의 재인'(사진출처:KBS)

강은경 작가의 작품은 사필귀정, 권선징악의 드라마다. 그래서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한 편의 동화나 만화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제빵왕 김탁구'와 '영광의 재인'은 이란성쌍둥이 같은 작품이다. 어린 시절 주인공은 한 절대악에 의해 운명의 머나먼 여정으로 내쳐지고, 그 주인공은 마치 연어가 회귀하듯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 과정에는 일련의 미션이 놓여져 있다. 선과 악은 미션을 두고 대결을 벌이고, 먼 여정을 끝낸 주인공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 정의는 결국 승리하게 된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정형화되어있고 전통적이라고 할 정도로 이야기 구조는 눈에 보인다. 하지만 왜일까. 이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도 마음이 꿈틀대고, 측은지심이 생겨나고 주인공을 결국은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떤 면으로는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 눈에 띌 정도로 전면에 드러나지만 그래도 그 과장된 설정이 우리의 마음을 쿵쾅대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제빵왕 김탁구'가 시대를 과거로 돌려 빵이라는 온기를 통해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대결 이야기로 풀어냈다면, '영광의 재인'은 현재 당면한 청춘들의 현실 문제를 끌어들인다. 그것은 태생적으로 모든 스펙이 결정되고 성장의 사다리가 막혀버린 세상에 던져진 청춘들이 어떻게 세상과 맞서느냐는 문제다. 김영광(천정명) 선수의 아버지가 운전기사였다는 사실과, 어릴 적 버려진 윤재인(박민영)이 간호조무사로 등장한다는 점은 이들의 낮은 태생(?)을 에둘러 말해준다. 그래서 그들은 이 드라마의 절대악으로 등장하는 서재명(손창민)으로부터 "겨우 운전기사 아들 주제에"라는 말이나, "간호조무사 주제에'라는 막말을 듣는 존재들이 된다.

바로 이 현실을 자극하는 설정이 먼저 시청자들의 눈을 붙잡는다. 하지만 판타지는 바로 그 현실 위에 세워진다. 지극히 가난하고 평범한 이 두 사람은 성실과 끈기 그리고 무엇보다 그 선한 마음이라는 덕목으로 차츰 이 고된 사다리를 척척 올라간다. 거대그룹에 들어가기 위한 입사시험은 문제를 풀어야 고개 하나를 넘을 수 있는 사실상 동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온다. 어쩌면 이미 결정된 게임이지만(이 드라마는 사필귀정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래도 그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특히 저 서재명 같은 절대악이 김영광 선수를 무시하고 권력으로 밟아대면 댈수록 그가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드라마의 극적 장치들이 온통 동원된다. 사실은 아니지만 남매라고 알고 있어 사랑할 수 없는 운명을 아파하고 있는 두 사람, 남편의 숨겨둔 딸로 오인해 한없이 미워했지만 알고 보니 그 남편이 버렸다는 걸 알게 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내, 한없이 까칠하게 굴지만 사실은 깊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아들, 그리고 그를 유일하게 마음 편안하게 해주는 여자,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을 갖고 병원에서 수십 년만에 깨어난 여자 등등. 이런 장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평이한 장면 속에도 그 내면에 흐르는 감정의 기류를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물론 '영광의 재인'의 이러한 수많은 극적 장치들은 자칫 인위적이고 식상한 드라마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광의 재인'에 눈을 빼앗기게 되는 건, 이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그 선의 때문이다. 가진 것 없고, 심지어 가족도 없이 방황하다 김영광의 집에 들어와 유사가족의 기쁨을 만끽하는 재인의 행복을 우리는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고, 뭐 하나 없어도 정정당당함과 패기만으로 당당히 성공하는 김영광의 고군분투를 응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작금의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자그마한 위안이 느껴진다. 세상의 수많은 김영광 선수들에게 보내는 진심. 힘내요. 김영광 선수들.


최효종과 '나꼼수'가 보여주는 대중정서

'승승장구'(사진출처:KBS)

최효종은 '승승장구'에 나와 자신의 풍자 개그에 대해 명쾌한 한 마디를 남겼다. "풍자가 기분 나쁘면 진짜로 그런 사람이란 뜻"이란 거다. 즉 '사마귀유치원'에서 국회의원을 풍자한 자신의 개그에 고소로 맞선다는 것이 결국은 본인이 그런 국회의원이란 걸 자인하는 셈이란 얘기다. 이것은 풍자가 가진 힘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다. 풍자는 말해지는 순간, 진영을 나누는 힘이 있다. 웃는 사람과 웃지 못하는 사람. 게다가 이것은 웃음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웃지 못하는 사람마저 웃고 싶은 욕망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최효종의 풍자 개그와 그것에 대해 한 국회의원이 제기한 고소에 대해 개그맨들은 일제히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얘기했다. 대중들 역시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빈다.', '개그를 다큐로 받아친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최효종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그가 현재 하고 있는 것은 분명 정치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 이것을 '정치적인 의도'로까지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사실 모든 이들의 사회활동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맥락을 갖게 마련이니까. 최효종은 개그맨이고 또 풍자에 관심이 있다. 그러니 현실의 문제들을 웃음의 소재로 끌어올 수밖에 없다. 웃는 사람이 있으면 웃지 못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 구분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잘못된 건 하나도 없다.

우리가 흔히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고 하는 말에는 은연 중에 개그(확장에서 보면 대중문화)와 정치가 분리된 어떤 것이라고 여기는(혹은 여기게 만드는) 심리적 기제가 들어 있다. 개그가 정치에 억압받던 시절의 트라우마다. 정치가 개그를 저질 판정 내리면서 스스로는 고급한 어떤 것(실제로 고급했는지는 모르겠지만)으로 구분지으려 했을 때의 이야기다. 고 이주일씨가 정계를 떠나며 "코미디 한 수 잘 배우고 갑니다"라고 말한 일화처럼, 사실 정치나 개그나 질적인 차이는 별로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러니 정치를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여길 필요는 없다. 개그도 정치를 함의할 수 있다.

김어준의 '나는 꼼수다'가 대중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은 것은 이 풍자가 가진 진영 나누기의 효과로 볼 수도 있다. 즉 지금껏 정치라고 하면 진보니 보수니 하는 해묵은 논쟁과, 법안 통과를 위해 국회에서 드잡이를 하는 풍경을 신물 나도록 봐온 대중들에게 김어준이 들이댄 것은 이런 소위 '정치적인 행위'라고 붙여지는 것과 정반대되는 일련의 행위들이다. 그간 비정치적인 것으로 여겨져 온 '사적인 이야기', '근거 없는 농담', '상황극', '조롱' 같은 행위들은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진지한 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뭔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기성 정치 앞에서 이런 지극히 가볍고 맥락도 없고 어디로 튈 지 전혀 알 수 없는 한 편의 개그 같은 이야기들은 확실히 진영을 구분해 버렸다. 정치인 양 얘기하면서 사실은 권력을 탐미하는 기성 정치의 비정치성. 전혀 정치 같지 않은 '잡놈'들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대중들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해 그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나는 꼼수다'의 정치성. 아니 이것은 어쩌면 대중들이 원하고 생각하는 새로운 정치인 지도 모른다. 대중은 어딘지 현실과 멀리 떨어진 저 기성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 보다는 좀 더 가까이 있는 우리 일상에 정치가 깃들길 원한다.

과거와는 달리 대중문화가 이제 정치의 중심부로 들어오고 있다. 그것은 대중정서가 가진 힘이 실제로 정치적인 힘이 되는 미디어 환경에 우리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효종은 사실 '애정남'에서부터 이런 대중문화가 가진 정치적인 힘을 부지불식 간에 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일상의 '애매한 것을 정해준다'는 그 행위는 대중들과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지키지 않는다고 쇠고랑차지는' 않지만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약속'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법의 범주와 일상의 범주는 자연스럽게 대결하게 되고, 거기서 그 공감대를 공유하는 '우리'라는 연대가 생겨난다. 그 공감대가 대중문화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서울 시장 선거를 통해 급부상한 세대가 2040이다. 이 세대들의 특징은 어쩌면 이러한 대중문화와 대중정서와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 태생적으로 사회의 길이 결정되고 그 흐름이 동맥경화가 되어버린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 세대들은 문화를 통해 그 답답한 속내를 풀어내고, 같은 처지를 가진 그들끼리의 네트워크를 갖게 됐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정치와 대중문화가 동떨어진 어떤 것이라 여기지 말자. 그리고 최효종이 말한 것처럼 '풍자가 기분 나쁘다'는 것은 어딘지 대중정서와 멀어지고 있는 자신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제 '웃지 못하면 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의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녕', 자극적인 토크쇼들에게 묻다

'안녕하세요'(사진출처:KBS)

커밍아웃이 갖는 힘은 자신의 고민을 드러낸다는 그 행위에 있다. 이 행위 속에는 그 자체로 타인과의 공감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혼자 끙끙 앓던 고민이 드러나고 공감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고민이 아닌 것이 된다. 특별한 경우에는 그 고민은 그 사람만의 개성으로 장점으로 전화되기도 한다. 고 이주일씨가 첫 등장에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 추남의 고민이 그만의 고유한 캐릭터가 되어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되었듯이.

'안녕하세요'는 커밍아웃을 전면에 내세운 토크쇼다. '전국노래자랑'을 패러디해 만든 '전국고민자랑'은 매회 전국의 갖가지 희귀한(?) 고민들의 발언대 역할을 한다. 키가 너무 크고, 털이 너무 많고, 발이 너무 큰, 그런 신체적인 고민은 물론이고 특이한 이름 때문에(예를 들면 람보나 고자 같은) 고민인 사람도 있고, 발명에 미친 남편 때문에 또 너무 부려 먹는 아내 때문에 고민인 남편도 있다. 이 프로를 보다보면 느끼게 된다. 세상은 넓고 참 고민도 많다는 것을.

'전국고민자랑'이라는 코너명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커밍아웃 토크쇼는 그러나 고민을 서로 자랑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게 고민이에요? 내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녜요." 이런 뉘앙스가 이 토크쇼에서는 묻어난다. 그래서 고민에 대한 평소와는 다른 태도를 경험하게 된다. 자기가 가진 고민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강변하게 되는 것. 그래서 1등이 된다면 상금도 받게 된다. 물론 떨어진다면 그건 자기 고민은 고민도 아니라는 걸 인정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에서 고민을 자랑(?)한 이들은 모두가 즐거울 밖에.

고민을 말하는 일반인들이 주인공인 토크쇼지만, 그것을 들어주는 MC들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하다. 애초에 '컬투쇼'의 TV버전을 생각했다는 이예지PD의 말처럼, 컬투 정찬우와 김태균은 관객들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즉석에서 뽑아내는 재주가 있는 MC들이다. 신동엽 역시 특유의 깐족 토크로 일반인들과의 밀당 토크가 주특기인 MC이고, 서슴없이 무너지고 망가질 줄 아는 이영자는 이 신동엽과 가장 잘 어울리는 MC다. 그러니 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는 귀로 존재하는 MC 군단들은 넉넉하게 출연자들의 고민을 때론 공감해주고 때론 시청자들과 함께 갖고 논다.

물론 일반인들을 주인공으로 모신다는 점은 그만큼 주목도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타의 일반인 출연자 토크쇼가 그러하듯이 일반인들의 자극적인 면만을 끄집어내서 증폭시키는 그런 의도적인 연출은 하지 않는다. 즉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반인들을 소재로만 놓고 보면 그런 자극적인 연출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일반인들을 배려하고 진심으로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진정성이 느껴지는 부분은, 이 고민하는 이들이 가족과 함께 스튜디오에 출연하는 장면들에서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며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인 그들의 고민은 나와는 다른 별종들의 고민이 아닌 바로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처럼 전화된다.

물론 이런 일반인 소재에 진정성을 가진 연출로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진심이 묻어나는 토크쇼가 가진 즐거움과 그 즐거운 공감을 통한 치유의 힘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끔 '안녕하세요'라는 제목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물론 전국에 있는 모든 이들(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에게 전하는 안부이면서, 동시에 작금의 어딘지 자극적으로 치닫는 토크쇼들에게 묻는 질문처럼 여겨진다. 과연 지금의 토크쇼들은 얼마나 안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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