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 대결을 버리자 살아난 인물들

‘하얀거탑’이 여타의 드라마와 다른 점. 전형적 캐릭터가 거의 없고, 대신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서로 이합집산을 거듭한. 어쩌면 ‘정치드라마’가 갖는 대결구도로서 당연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단 2주), 이렇게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본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 중심에는 장준혁 역의 김명민, 외과과장 이주완 역의 이정길, 그리고 부원장 우용길 역의 김창완이 있다.

선악 대결이 아닌 권력 다툼
먼저 전제해야할 것. 이 드라마는 캐릭터의 선악 대결이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만일 선악으로 나누어지는 캐릭터들이 등장했다면 그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뻔한 진행에 지금 같은 긴장감은 떨어졌을 터. 대신 드라마는 권력을 두고 치열하게 벌어지는 정치적인 대결, 갈등을 핵심에 두고 선악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이들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건 전쟁이기에 무조건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한다.

그리고 결국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이전투구의 권력다툼 속으로 뛰어든다. 이렇게 되자 도대체 누가 이 게임에서 승리할 것인지 종을 잡을 수 없게 된다. 주인공인 장준혁조차 살아남기 위해 음모를 꾸밀 정도의 캐릭터이기에 우리는 이 권력다툼 속에서 장준혁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대결구도, 그것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긴장감을 주는 이 드라마의 핵심요소이다.

장준혁 vs 이주완-우용길 → 장준혁-우용길 vs 이주완
드라마가 막 시작했을 때, 우리는 외과과장 이주완과 그가 키운 장준혁의 관계에서 어떤 미세한 틈을 발견한다. 그것은 청출어람 잘 나가는 장준혁에 대해,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이주완의 질시와 굴욕감에서부터 비롯된다. 이 미세한 틈은 조금씩 벌어지면서 갈등을 만들고 여기에 부원장 우용길이 등장하면서 드라마는 복잡한 구도변화를 겪게된다. 핵심적인 인물, 부원장 우용길이 어느 쪽에 붙느냐가 이 첫 번째 대결구도의 관건이 된 것이다.

장준혁에 대한 감정으로 이주완과 손을 잡았던 우용길은 장인인 민충식(정한용 분)이 끌어들인 의사회 회장 유필상(이희도 분)에 의해 마음을 돌린다. 그만큼 우용길-이주완 콤비의 연결고리가 아주 약했다는 것. 단지 감정의 공감 정도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공조체계는 실질적인 이득이 끼어 들자 쉽게 무너진다. 장준혁-우용길 라인이 형성되면서 이주완은 두 번째 싸움에서 지게된다. 그러나 이런 구도가 얼마나 진행될 지는 미지수. 이주완이 데려온 노민국(차인표 분)과 투표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오경환(변희봉 분) 같은 인물들이 차차 이 대결구도에 어떻게 라인을 형성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입체적인 캐릭터가 주는 매력
이처럼 짧은 시간 동안 욕망을 향해 숨가쁘게 변해 가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즐겁게 한다. 그것은 그동안 보았던 착한 캐릭터는 계속 착하고, 악한 캐릭터는 계속 악한 전형적 구도의 틀을 깨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입체적인 캐릭터가 주는 힘은 바로 그 리얼함에 있다. 실제의 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드라마에서 접하듯 한 가지 단면만을 갖고 있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실로 사악하다고 할 정도로 악한 면모를 보이다가도 또 어떤 면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천사 같은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다. 때론 비굴해지고 때론 한없이 용감해진다. 기존 트렌디 드라마들이 갖고 있는 말 그대로 트렌디한 캐릭터는 이제 전혀 리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얀거탑’은 말해주는 것 같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이 입체적인 캐릭터를 세 배우, 김명민, 이정길, 김창완의 발군의 연기력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 먼저 김명민과 이정길은 캐스팅 자체부터 적절하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이 두 배우가 갖고 있는 연기의 선이 이 야누스적인 캐릭터에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나라를 위하는 충심의 이순신에 개인적인 야망 등을 잘 버무린 김명민은 이미지로도 연기력으로도 이미 검증된 바가 있다. 물론 따뜻한 아버지 역할(프라하의 연인에서 대통령 역할 같은)에서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을지문덕(연개소문에서) 역할까지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이정길이라는 배우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김창완이라는 조커는 드라마의 맛을 몇 배 높여놓았다. 김창완이 지금껏 맡아왔던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 역할에서 180도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이 가진 느물느물한 연기가 역할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드라마는 선악 대결구도 같은 단순한 구조로는 시청자들에게 리얼함을 선사하기가 어려워졌다. 작년 내내 트렌디한 멜로드라마가 각광받지 못한 이유는 멜로드라마 자체의 매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 인물과 구도의 리얼함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악역 없이도 드라마적 긴장감을 결코 놓치지 않았던 ‘연애시대’가 리얼함을 주었던 이유 역시 그 입체적인 인물들 때문이었다. ‘하얀거탑’의 매력적인 야누스 캐릭터들을 기화로 앞으로는 드라마 속 캐릭터의 변화가 예상된다.

이찬에 이은 황수정 논란이 말해주는 것

SBS 금요드라마, ‘소금인형’의 첫 회가 끝난 시각. 게시판의 풍경은 여타의 드라마 게시판과는 판이한 양상을 보였다. 내용이나 연기력과 같은 드라마 내적인 이야기는 온데간데없고 황수정의 드라마 복귀에 대한 반대 여론만 가득 찬 것이다.

마약복용 혐의로 구속되었던 연예인들은 황수정 이외에도 많다. 그럼에도 황수정의 복귀에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청소년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공인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아무런 공식적인 반성 없이 드라마에 복귀했다는 것. 이로써 범죄를 가벼이 보게 하는 시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또한 그 과거의 잘못된 이미지가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있어 지금 복귀는 시기상조라는 점이다.

네티즌들의 도마 위에 오른 도덕성
그런데 정작 더 궁금한 것은 왜 이렇게 반대하는 캐스팅을 방송사가 굳이 강행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 확실한 내부사정은 알 수 없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논란보다는 시청률이 우선인 요즘, 그만큼 둔감해진 도덕성 때문이 아닐까.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의 시청자 게시판은 이러한 둔감한 도덕성에 대한 어떤 단초를 제공해준다. 게시판을 들여다보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비판의 글들이 눈에 띈다. 그 비판은 드라마의 비판을 넘어서서 점차 방송사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비약하고 있다.

그것은 최근 들어 SBS 드라마에 생긴 잇따른 악재에서 비롯된다. 지난 9일 종영된 월화 드라마, ‘눈꽃’은 갑작스런 이찬-이민영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단지 그들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SBS측이 여기에 대해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은데다 이찬의 문제는 SBS PD인 그의 아버지까지 거론되면서 이들 부자에 대해서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점을 들어 방송사의 도덕성이 네티즌들의 도마 위에 올랐던 것이다.

실체를 드러내는 폭력성
여기서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은 ‘폭력’에 대한 네티즌들의 혐오이다. sdi1004g의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은 ‘긴급출동 SOS24’에 빗댄 비판에서 “정작 사회의 폭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사에서 이 폭력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것을 보며 많은 실망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시청자 게시판에는 유난히 드라마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soonie0301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종영한 ‘연인’에 대해서 “칼로 찌르고 폭력을 쓰는” 장면들이 “15세 이상이 보기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또한 keh2258님은 이 드라마의 일부 낯뜨거운 장면들이 “방학중 아이들에게 부적절하다” 는 의견을 남겼다.

이러한 자극적인 내용은 ‘소금인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1회의 그럭저럭 가족적인 분위기는 2회에 이르자 빚쟁이들이 회사를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고함을 지르는 장면으로 돌변하더니 급기야 집까지 들어와 난동을 피우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놀라운 것은 그 폭력의 현장에 아이가 있었다는 점. 긴박감과 절실함을 보여줘 차소영(황수정 분)이 동침을 선택하는 근거를 제공하겠다는 의도가 보이지만 너무 자극적으로 흐른 건 아닌가 하는 혐의가 짙다.

황수정의 불리한 선택
황수정의 입장에서 보면 이 드라마를 통해 변화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만이 앞으로 연기자의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드라마 상의 캐릭터가 과거의 이미지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 첫 번째 요건은 안타깝게도 1,2회 방송을 통해서는 만족되지 못한 것 같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사업에 망하고 몸까지 다쳐 누운 남편의 수술비를 위해 자신을 짝사랑했던 남자와의 동침을 한다는 이 불륜의 코드에서 과거 황수정의 어두운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 같다.

두 번째 조건은 바로 연기력. 혹자들은 황수정이 과거 드라마 상의 청순 이미지를 벗을 것이라 예견했지만 그다지 과거의 이미지와 달라진 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도대체 황수정은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걷기로 작정한 것일까. 드라마 전개상 초반부라 그럴 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이 선택은 황수정에게는 불리하게만 보인다.

선의의 피해를 보는 연기자들
그런데 이렇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연기자들보다 더 피해를 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함께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기자들이다. 이찬-이민영 사건이 불거져 나왔을 때, 시청자들은 이찬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화면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또한 ‘눈꽃’ 자체의 이미지가 하락하면서 그 피해는 함께 출연하는 김희애와 고아라 같은 연기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돌아갔다.

이것은 단 2회만 끝난 상황인 ‘소금인형’에서 벌써부터 불거져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함께 출연하는 연기자인 김영호(박영우 역), 김유석(강지석 역)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의견들이 게시판에 오르고 있다. 채널을 돌리자니 그 연기자들이 눈에 밟힌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최근 시청률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논란드라마’의 길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여타의 논란드라마와 강도 자체가 다른 것은 내용뿐만 아니라, 출연자에 대한 논란까지 가중되고 있다는 것. ‘안티팬도 팬’이라는 말이 있지만 또한 ‘안보기 운동’을 하자는 네티즌도 결국은 봤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온다는 게 사실이지만, 이들 논란드라마가 가져올 수 있는 것은(그것이 가능하다면) 앙상한 시청률뿐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방송사의 이미지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두고보면 이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분명 마이너스로 작용하게 될 것이 뻔하다. 황수정 캐스팅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판은 최근 들어 시청률지상주의 하에 수위를 넘고 있는 방송사의 도덕불감증을 꼬집는 측면이 강하다.

최국이 별을 쏘고싶었던 이유

단 두 차례 방영됐을 뿐인데 이토록 관심을 받는 개그 코너가 있을까. 바로 ‘개그야’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는 ‘최국의 별을 쏘다’이다. 이 코너로 이른바 가장 뜬 개그맨은 조원석. 그가 맡은 죄민수라는 역할 때문이다. 2003년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시작해 ‘웃찾사’를 거쳤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다가 이 코너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왜 뜬 건 죄민수 역할의 조원석인데, 코너 제목은 ‘최국의 별을 쏘다’냐고 이들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아무 이유 없어!”할 것이다. 그래도 굳이 이유를 따져보자면 이 코너가 버라이어티 쇼를 패러디하고 있기 때문에 그 쇼의 제목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최국이라는 개그맨의 범상치 않은 이력을 보자면 그 제목이 더 심상찮게 느껴진다.

최국은 2001년 SBS 6기 공채 개그맨으로 시작했으니 벌써 방송에 몸담은 지 햇수로 7년째이지만 개그맨으로도 방송인으로도 스포트라이트를 별로 받아보지 못했다. 그는 ‘MBC 스포츠 매거진’, ‘MBC 찾아라 맛있는 TV’ 등에서 리포터로 활동했고, 개그로 돌아온 것은 2003년도 ‘KBS 개그콘서트’의 ‘미션 임파서블’이란 코너를 통해서다. SBS 공채개그맨으로 시작했지만 ‘KBS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으로 처음 활동했고, 드디어 ‘MBC 개그야’에서 주목받은 셈이니 7년 연예계 세월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왜 별을 쏘고 싶지 않았겠는가.

이 코너는 최민수라는 과거 카리스마의 아이콘을 죄민수라는 우스운 캐릭터가 패러디하고 있지만 좀 넓게 보면 그 꼬집는 대상은 연예계라고 볼 수 있다. 얼굴로는 마빡이에 버금가는 죄민수라는 캐릭터가 등장해 다짜고짜 매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인 양 행동한다. 죄민수의 생김새와 행동거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예의 없고 거만한 행동들은 물론 실제 연예인과는 다른, 과장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차이에서 비롯되는 웃음은, 연예인이라는 이 시대의 새로운 권력을 꼬집을 때 나오는 유쾌함에서 비롯된다.

죄민수는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아무 이유 없어!”, “이거 이거 손짓 하나에 다 넘어가는구만.”, “스타가 되고 싶나? 그럼 나처럼 생기던가!”, “어머니 감사합니다. 남들보다 쉽게 먹고살아요.” 이 대사들은 기존의 연예인에 대한 관념을 모두 뒤집는 것으로 여기에 죄민수의 특출난(?) 외모와 과장된 연기가 곁들여지면 폭소가 유발된다.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 이유가 없고’, 손짓 하나에 다 넘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그들의 생각과 말이 우습게만 보인다. 게다가 실력은 뒷전에 외모 하나로 뜨기도 하는 연예계 세태를 꼬집는 데선 가히 넘어간다. 심지어 가끔씩 최국이 질문을 할 때 죄민수가 답변은 안 하고, “MC계의 쓰레기!”라는 엉뚱한 말을 할 때는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연예계의 스타들에게 권력을 부여한 것은 바로 그들을 추종하는 팬들. 이것이 양희성이라는 과거의 카리스마를 좇는 여성 캐릭터의 존재 이유다. 코너 속에서는 헤어진 연인이지만, 이 팬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은 죄민수에게 “역시 여자를 갖고 놀 줄 알아.”, “여자의 마음을 얼렸다 녹였다 하는 이 삼한사온 같은 자식!”하면서 과장되게 추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거만하게 행동하는 죄민수를 보다 못해 “이 거지같은 놈.” 하고 무언가 결별할 것 같은 분위기를 띄우다가, “내가 더러워서 갖는다.”하는 식으로 다시 죄민수로 돌아간다. 이것은 팬과 스타간의 애증적 관계를 패러디한 것은 아닐까.

죄민수, 조원석이 일약 스타덤에 오른 현재도, 최국은 여전히 그 옆자리에서 묵묵히 ‘별을 쏘고’ 있다. 아마도 연예계에서 최국 같은 인물들은 이미 뜬 스타들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기꺼이 그림자 역할을 해주는 최국 같은 이들이 있어 스타들을 빛나게 한다. 변방이 있기에 중심도 있는 것이다. 저 영화 ‘라디오 스타’가 말하듯 별은 저 혼자 빛나지 않는다.

하얀거탑’, 드라마 진화 완성시킬까

‘하얀거탑’에 대한 칭찬일색은 그 동안 우리 드라마들이 얼마나 부족했던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구태의연한 뻔한 스토리를 가진‘트렌디 드라마’, 짜여진 스토리와 영상으로 승부하지 않고 편법에만 기대는 ‘시청률 성공, 드라마 실패인 사극’, 어떤 외피를 입어도 늘 멜로에만 집착하는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가 그 대표 삼인방이다. 물론 아예 시청률을 의식해 욕먹기로 작정한 ‘논란 드라마’는 얘기할 가치도 없다. 이런 드라마들에 식상한 시청자들은 비로소 ‘하얀거탑’이라는 제대로 된(well made) 드라마를 보면서 탄성을 질렀다. 오죽 제대로 된 드라마가 없었으면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하얀거탑’이란 웰 메이드 드라마는 그냥 우연히 탄생한 것이 아니다. 사실 시청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식상한 드라마를 넘어서 그 징후를 보였던 드라마들이 있었다.

‘연애시대’, 트렌디 드라마와 이혼하다
‘연애시대’가 기존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을 깰 수 있었던 것은 그걸 만든 이들이 영화인들이었다는 데 있다. 사전제작을 시도한 첫 번째 드라마였지만 100% 사전 제작이 어려웠던 이 드라마는 영화와는 다른 호흡으로 영화인들을 당혹스럽게 했지만 그들은 노련했다. ‘이혼 후에 시작된 연애’라는 도발적 소재에도 불구하고 진지함을 잃지 않았으며, 탄탄한 캐릭터를 가진 주연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힘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매몰되지 않았다. ‘연애시대’만큼 출연한 거의 대부분의 조연들이 드라마 말미까지 사랑스러운 드라마는 많지 않다. 스토리면 스토리, 연출력이면 연출력, 영상이면 영상, 연기면 연기까지 도무지 딸리는 것이 없는 이 드라마를 두고 우리는 드디어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이 호칭이 과장이 아닌 것은 기존 트렌디 드라마들이 해왔던 관행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재벌가 남자와 신데렐라형 여자 캐릭터가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는 기존 트렌디 드라마에서 도발적 소재는 있을지 몰라도 진지함은 찾기 어려웠고, 조연은 물론이고 주연조차 식상하기는 마찬가지였으며, 공식으로 만들어지는 스토리와 연출 속에서 영상미는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니 ‘연애시대’는 식상한 기존 드라마들과 이혼한 시청자들이, 그 후에 새롭게 연애를 시작하게 만든 드라마로 기억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웰 메이드 드라마’에 대한 가능성을 알게 된 드라마 폐인들이 제대로 된 드라마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황진이’, 사극을 갖고 한바탕 놀다
‘황진이’에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호칭을 부여하게 만드는 것은 그만큼 기존 사극이 기본을 지키고 있지 않았던 탓이 크다. 퓨전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출현은 사극과 역사 사이의 간극을 더 넓혀놓았다. 그 사이를 차지하고 들어간 것은 상상력. 정통사극이다 퓨전사극이다 하며 서로들 주장을 해대지만 사실 고구려 사극들은 모두 정통사극으로 보기가 어렵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 뿐. 역사에 그래도 조금 가까운 것이 ‘대조영’이며 그 다음이 ‘연개소문’, 그리고 역사에 가장 멀어 오히려 환타지나 무협에 가까운 것이 ‘주몽’이다. 이들 사극들이 치열한 경쟁에 들어가면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억지 설정이 남발되었고, 사극의 기본이랄 수 있는 전투 장면의 부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20%에서 45%에 이르는 높은 시청률을 이들 사극들은 갖게 되었지만 완성도는 현저히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 칼바람이 쌩쌩 부는 시기에 가녀린 한복을 입고 나타난 ‘황진이’는 칼 대신 거문고를 메고, 전장 대신 연무장에 올라 그 화려한 몸짓을 선보였다. 사극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미(자연, 의복, 고건물)를 느끼게 된 것은 여타의 사극과 달리 ‘황진이’가 거둔 최고의 성과가 아닐까. 미학이라고 해봐야 고작 중국식 무협동작의 아름다움 정도였던 우리네 사극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이다. 상대적으로 짧은 횟수로 인해 역시 많은 아쉬움이 있는 사극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충분한 캐릭터와 그것을 소화해낸 아낌없는 연기, 그리고 이야기성에 연출력까지 돋보인 사극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이 저 고구려사극들과 한바탕 걸판진 승부를 벌인 ‘황진이’에 ‘웰 메이드 사극’이란 호칭을 붙이는 이유다.

‘하얀거탑’, ‘무늬만 전문직’ 도려낼까
작년부터 슬슬 불기 시작한 것이 제대로 된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요구. 외국의 시즌제 드라마들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많아지고 우리네 멜로 드라마들이 식상해지면서 생겨난 수요이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전문직 드라마’는 포장만 그럴 듯했을 뿐, 막상 뜯어보면 멜로 드라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형사나 의사, 변호사가 등장해도 그들의 직업적인 특성이 드라마의 갈등 요인을 작용하는 것이 아닌, 여전히 트렌디 드라마의 삼각, 사각관계만이 드라마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 결국에는 다 그럴 것이라는 예상을 깬 것이 ‘하얀거탑’이다.

이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일단 대부분이 기혼자들이다. 그러니 삼각 구도 같은 건 애초에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만드는 요인은 따로 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의사라는 집단이 가진 막강한 권력과 그 이면을 움직이는 욕망들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권력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고 그 대결구도 속에서 신분상승 욕구를 기도하는 보편적인 인간 욕망의 정서를 의사라는 캐릭터 속에 제대로 녹여놓은 것이 그 성공 요인이다. 요컨대 의사는 사람을 살려야 하는 가장 인간적인 직업이면서도 동시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이 이 드라마 캐릭터들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이다. 김명민을 비롯한 이정길, 김창완의 야누스를 방불케 하는 연기와 수술대를 중심으로 긴박한 상황을 잡아내는 연출력이 잘 맞물려, 멜로 없이도 성공 가능한 ‘웰 메이드 전문직 드라마’를 예고하고 있다.

드라마들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그 진화에는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 실험이다. 트렌디 드라마와 사극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난 마당에, 이제 남은 전문직 드라마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우리네 드라마 지평은 더 넓어질 것이 틀림없다. 관건은‘리얼리티’다. 얼마나 달라진 시청자들의 감성을 따라잡고, 얼마나 치열하게 드라마의 정밀도를 높여 실감나게 만드느냐가 그 성공의 척도가 될 것이다. 트렌디 드라마는 좀더 트렌드를 정확히 읽어야 하고, 사극은 사료에 충실해야 하며, 전문직 드라마는 그 전문분야에 정통해야 할 것이다. ‘하얀거탑’을 끝으로 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드라마들이 '제대로 만들어지는' 그 날, 더 이상 ‘웰 메이드 드라마’란 호칭은 불필요해질 것이다. 이것이 ‘하얀거탑’의 성공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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