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부터 ‘도봉순’까지 드라마에 깔린 사이다 정서

드라마 제작자들은 드라마의 성패는 그 누구도 모른다고 말하곤 한다. 사실이다. 애초의 기획한대로 대중들이 받아들여주는 드라마도 있지만, 기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어 난항을 거듭하는 드라마도 있다. 예를 들어 이제 종영한 <미씽나인> 같은 드라마는 결국 용두사미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이전에 방영되었다면 더 주목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 <미씽나인> 같은 현실의 정서를 반영하기 어려운 장르물을 시청자들로서는 왜 봐야하는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김과장(사진출처:KBS)'

이런 상황은 KBS에서 새로 시작해 방영되고 있는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도 마찬가지다. 믿었던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고 의외의 미스터리한 사건 속으로 빠져들면서 그간 잊고 살았던 자기 자신을 다시금 자각해나가는 아줌마의 이야기.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지금의 시국에 이 이야기를 놓고 보면, 역시 봐야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미드적인 미스터리를 깔고 있지만 결국은 그 많던 아줌마의 성장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 같은 드라마는 이런 드라마들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지금의 시국을 만나 탄력을 받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박정우(지성)가 처한 상황, 즉 무고한 그가 감옥에 갇혀 고통을 당하고 어떻게든 그 감옥을 빠져나와 진실을 밝히며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들에게 반격하는 그 모습을 시청자들은 마치 탄핵 정국의 결과를 기다리듯 간절히 바라게 된다. 답답한 현실이 이 드라마의 고구마 전개를 그대로 담고 있고, 그래서 그걸 풀어줄 수 있는 반전을 끝없이 갈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MBC 월화드라마 <역적>은 그러고 보면 작품과 현실이 완벽하게 조우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 홍길동을 재해석한 이 사극은 그 틀거리 구조만 보면 연산 같은 권력자와 대적하는 길동과 그 일당들의 이야기다.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살아온 그 민초들이 힘을 모아 자신들을 핍박해온 충원군(김정태)과 나아가 그 위의 연산군(김지석)에게 일격을 가하는 이야기. 어찌 지금의 대중들의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른바 아예 사이다 드라마라고 지칭되는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과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은 갑질하며 때로는 폭력을 일삼는 세상 앞에 나선 서민 히어로로서 김과장(남궁민)과 도봉순(박보영)이라는 캐릭터를 세운다는 점에서 이미 현실적 공감대를 가져가는 드라마다. 요즘 같은 시국에 이러한 서민편에 선 한국형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이 열렬히 원하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며 심지어 박수를 친다는 시청자들이 있을 정도니 그 현실의 팍팍함과 드라마의 시원함이 얼마나 교차되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드라마의 성패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말은 드라마가 주는 느낌이 그걸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의 정서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뜻이다. 최근의 드라마들의 성패를 들여다보면 지금의 대중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가 명쾌하게 드러난다. 답답한 시국과 현실 속에서 속 시원한 그 무엇이 있는가 하는 점은 그래서 최근 드라마들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사이다를 갈망하는 대중들은 드라마 판도까지 바꿔놓았다.

‘김과장’, 남궁민의 사이다 복수 시원하긴 한데 남는 찜찜함

흑자이면서도 엉뚱한 곳으로 돈을 빼돌리는 바람에 직원들과 알바생들에게 지급해야할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뻔뻔함.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이 그려내고 있는 TQ리테일 에피소드들은 사실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씁쓸하게도 리얼함이 있다. 대기업들은 심지어 비자금을 챙기기 위해 혹은 경영자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흑자 나는 곳도 적자로 돌리고, 임금체불까지 하는 경우가 때론 실제로 벌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과장(사진출처:KBS)'

그래서 우리의 김과장(남궁민)이 나서서 임금체불에 대한 소송을 걸고 있는 점장들을 설득하지만 이에 맞서는 사측 대표인 서율(준호) 이사의 대응이 만만찮다. 그는 점장들을 협박해 결국은 사측이 제안하는 방안들을 수용하게 만든다. 제 아무리 김과장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결국은 힘 있는 서율 이사의 승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걸 김과장 역시 그냥 순순히 넘어갈 그런 위인이 아니다. 그래서 서율이 TQ리테일에 대한 이사회에 참석하는 걸 막기 위해 일종의 사기극을 벌인다. 엄금심(황영희)과 짜고 전문적인 꾼(?)을 투입해 서율을 성추행범으로 몬 것. 엄금심이 일부러 서율과 부딪치며 그의 손에 페인트 자국을 묻히고 마침 연기하기로 한 여자의 엉덩이에 손자국을 내 마치 서율이 성추행을 한 것처럼 몰아세운 것. 

결국 이 일로 서율은 경찰서까지 끌려가고 겨우 겨우 풀려나 이내 택시를 잡지만 역시 뒤에서 접촉사고를 낸 운전자가 그냥 보내면 자신이 뺑소니범이 된다고 발목을 잡는 바람에 이사회에 늦게 된다. 중요한 사안의 결정이 내려질 수 있었던 이사회에 서율이 참석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그의 계획이 틀어지게 된 것. 김과장은 유유히 이사회장소에서 코를 골고 자다 서율이 들어오자 일어나 자신의 승리임을 알렸다. 

서율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 김과장의 사기극은 시청자들이 속 시원한 사이다의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목소리들이 있었다. 그것은 굳이 서율과 대결하면서 이렇게 사기극까지 벌여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김과장은 이미 서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도청까지도 했고, 이 사기극을 위해 전문적인 사기꾼을 끌어들였다. 악과 대적하는 것이지만 똑같이 악으로써 부딪치는 방식이 시청자들에게는 불편함을 남긴다는 것.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김과장의 사이다 복수가 너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즉 그가 갖고 있는 경리, 회계의 능력이 서율 이사와의 대결에서는 전혀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누가 봐도 이런 식의 복수가 실제로 이뤄질 수 있다고 시청자들은 생각하기 어렵다. 

블랙 코미디이기 때문에 다소의 과장과 황당한 설정은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김과장>이 그리고 있는 갑질 현실이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네 사회의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황당한 사이다 복수는 당장은 시원할지 몰라도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허탈감을 남길 수 있다. 결국 현실은 바뀌지 않고 드라마 같은 판타지를 통해서나마 잠시 잊는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가 현실을 바꾼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또 너무 과한 요구일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납득될만한 비전이나 현실을 타개해가는 방법 같은 것들은 현실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김과장>의 사이다 복수를 보면서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 남는 찜찜함은 바로 이 부분에서 생겨나고 있다.

홍길동 별명을 발판이로 설정한 '역적' 작가 노림수

“저들이 대감을 하루도 빠짐없이 손가락질하고 대감의 살을 씹어 먹겠다 독설을 뱉었사온대 대감께서는 어찌 저들이 다치는 것을 겁내십니까?” 사관 김일손의 사초에서 조의제문을 찾아낸 길현(심희섭)은 이제 조정에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는 노사신(안석환)에게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노사신은 길현에게 이렇게 말한다. “몰라 묻는가? 그래 그간 나랏일은 살피지 못하고 그저 전하와 힘겨루기만 하려했던 저들이 어리석고 우매했지. 허나 저들을 단속하여 지혜로운 길로 이끄는 편이 옳았어. 만약 저 어리석은 자들이나마 없어져 이 나라의 언로가 막힌다면 그 땐 이 나라 조선은 어디로 가겠는가.”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이 다루고 있는 건 실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무오사화다. 사관 김일손이 남긴 사초에서 발견된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황후에게 죽은 초나라 왕 의제를 기리는 글)이 사실은 세조의 왕위찬탈을 에둘러 비난한 글이라 해석되며 생긴 피바람에 얽힌 연산 시절의 역사. <역적>은 이 역사적 사실을 가져와 홍길동이라는 인물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연결시켰다. 즉 조의제문으로 인해 연산(김지석)의 역린이 할아버지 세조인 것을 알게 된 홍길동(윤균상)이 소문을 역이용해 충원군(김정태)을 역적의 무리로 엮어낸 것. 

흥미로운 건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덧댄 이야기 속에 이 사극이 전하는 ‘언론’에 대한 생각이다. 결국 그 발단은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조정대신들과 그 이야기들을 더 이상은 듣지 않기로 마음먹는 연산의 ‘불통 정치’에서 비롯된 일이다. 흉흉한 소문들을 ‘불충’이라고 단정하고, 그 소문을 담은 기록을 찾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권력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게 됐던 것. 

<역적>은 이 역사적 사실을 일종의 정보전의 형태로 재해석해낸다. 그러고 보면 길현이 타인의 족보를 얻어 과거에 응시해 합격하고 사관이 된 것이나, 길동이 기방 활빈정을 만들어 양반들의 술판에서 벌어지는 소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이야기 역시 바로 이 조의제문을 통해 생겨난 무오사화를 정보전으로 해석해내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보인다. 밑에서는 길동이 이 무오사화에 충원군을 엮고, 위에서는 사관이 된 길현이 그 충원군의 이름을 듣자마자 연산에게 국문을 해야 한다고 주청함으로써 복수극의 서막이 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고충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독주하는 폭군 연산의 이야기는 ‘불통’이 만들어내는 국가적 재앙을 환기시킨다. 결국 제대로 된 언로가 막힌 채 떠도는 소문들에 귀 기울이고 그걸 자의적으로 해석해 권력을 휘두르는 행태는 훗날 연산을 폭군으로 기억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일 게다. 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 잘 살아가고 있다가도 권력자의 말 한 마디에 진실이 왜곡된 채 모든 걸 빼앗기게 되는 사회. 길현이 울분을 터트리고 연산을 돕는 엇나간 행동을 하게 된 것 역시 그 ‘불통’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역적>은 이 불통의 시대에 그저 희생자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거꾸로 이용해 한바탕 세상을 뒤집는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결국 소문을 거꾸로 이용해 충원군을 엮어버리고 그의 무고를 입증할 증인으로서 길동이 서게 되는 설정이 그렇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길동은 충원군의 ‘발판이(말을 탈 때 발판이 되주어 생긴 별명)’가 기꺼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그 발판이 이제 자신을 밟고 오르던 충원군을 무너뜨릴 역전의 장치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발판으로 표징되는 민초들의 역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역적>에서 민초들은 심지어 ‘역창’이라고 불린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민초들을 사회를 좀먹는 ‘전염병’ 취급하는 것. 그래서 참봉 부인 박씨(서이숙)는 감옥에서 피흘리는 아모개(김상중)에게 그 역창들을 모두 몰아내어 나라를 구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역창으로까지 치부되는 민초들이 거꾸로 하나하나 모여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길동이 어떤 흐름으로 만들어 잘못된 세상에 일격을 가하는 <역적>은 그래서 그만큼 시원한 반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청자들이 발판이 길동의 반격에 열광하는 이유다.

‘역적’, 이토록 흥미로운 홍길동의 재해석이라니

난세는 영웅을 원하는 걸까. 1998년에 방영됐던 SBS 드라마 <홍길동>은 당시 IMF 외환위기라는 시국과 맞물리며 대중들의 열광을 이끌어냈던 바 있다. 그렇다면 2017년 현재 홍길동을 재해석한 MBC 월화드라마 <역적>은 이 시국의 어떤 지점들을 겨냥하고 있을까. 

'역적(사진출처:MBC)'

<역적>은 홍길동이라는 인물을 다루면서도 그 이름을 제목에 넣지 않았다. 대신 ‘역적’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달게 된 건 이 드라마가 홍길동을 소재로 가져왔지만 그 이야기는 우리가 알던 ‘홍길동전’과는 다를 거라는 걸 말해준다. 

실제로 <역적>은 홍길동(윤균상)을 서자 출신의 적서차별을 겪는 인물로 그리지 않고 아모개(김상중)라는 순수 노비 혈통의 아들로 탄생시켰다. 게다가 도술을 부리는 홍길동이 아닌 애기장수 설화를 가져와 홍길동을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로 그려냈다. 

길동이 시대의 역적이 되어가는 그 과정은 신분사회의 구조 안에서 물건 취급받으며 살아가는 노비들의 처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어머니가 죽음을 당하자 주인을 죽이고 익화리에서 새 삶을 살아가던 길동이네 집안과 이웃들은 복수의 칼날을 갈던 참봉부인 박씨와 그녀를 돕는 충원군(김정태)에 의해 갈갈이 찢어진다. 

아모개는 옥사에서 모진 곤욕을 치른 후 가까스로 목숨만 살려냈고, 길동의 형과 여동생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길동이 다시 아버지와 그를 형제처럼 따르던 무리들을 모아 충원군에게 복수를 해가는 과정은 그래서 개인적인 복수이면서 동시에 신분사회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혁명적 행동이 된다. 

즉 1998년에 다뤄진 <홍길동>이 백성을 핍박하는 양반들과 싸우는 서민 영웅의 양상을 보여줬다면, <역적>은 제목과 이야기 설정에서부터 보이듯 훨씬 더 국가 체제 자체와 싸워나가는 영웅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양반들 곳간을 털어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것 정도로는 비뚤어진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이 드라마가 정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적>은 사건 전개만이 아니라 홍길동과 그 가족, 이웃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연산군(김지석)을 위시해 그 수직적인 권력 구조 속에서 백성들을 핍박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대비시킨다. 홍길동과 함께 하는 가족 같은 익화리 사람들의 차별 없는 삶은 그들이 밥을 지어먹는 장면에서부터 여실히 나타난다. 남자고 여자고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다 함께 밥을 짓고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은 그들이 강조한 ‘형제로서의 삶’을 잘 보여준다. 

<역적>이 세상의 오랜 적폐와 대결하는 방식은 그래서 훨씬 더 세련되어졌다. 즉 복수나 치기어린 협객 흉내가 아니라 자신들이 꿈꾸는 ‘형제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꿈꾸고 실행하는 것으로 세상과 대결하고 있다는 것. 마치 그래픽 노블을 보는 듯 어찌 보면 만화 같은 이야기를 사뭇 진지하게 풀어내는 <역적>의 방식은 그래서 지금의 시국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권력을 사유한 자들의 농단 앞에 촛불을 들고 있는 국민들이 그간의 적폐를 깨고 새로운 세상을 요구하고 있는 현재, <역적>의 울림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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