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이 시대의 며느리,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1972년도 시청자들을 눈물바다에 빠뜨렸던 드라마, ‘여로’의 시어머니(박주아)는 며느리(태현실)를 박해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각인됐다. 바보 아들인 영구(장욱제)를 극진히 돌보는 천사표 며느리를 구박하면서, 심지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고 모함하는 시어머니는 전국의 며느리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드라마 속 고부관계는 달라지고 있다. 심지어 시집살이에 대응한 ‘며느리살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 말은 직장 생활하는 젊은 며느리의 뒷바라지를 시어머니가 해야하는 상황에서 생긴 신조어이다. 이것은 저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잘 나가는 며느리 박해미에게 구박받는 시어머니 나문희를 통해 충분히 봐왔던 상황이다. 이런 변화를 본격적으로 포착한 드라마가 KBS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다.

시집살이 끝나는가 했더니 며느리살이?
이 드라마는 장충동 원조 뚱땡이 할머니집 맏며느리로 거의 소처럼 취급받아온 서미순(윤여정)이 신세대 며느리, 미진(이수경)을 맞으면서 생기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고부 갈등이라는 케케묵은 소재가 주는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초점이 톡톡 튀는 발랄한 신세대 며느리 미진에 맞춰지면서 드라마는 경쾌함을 얻는다. 그간 시집살이를 톡톡히 겪어온 세대라면 이 당찬 며느리의 당돌한 행동에 묘한 쾌감마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중간에 끼어있는 서미순의 상황은(물론 드라마에서는 충분히 코믹으로 명랑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이 시대의 예비 시어머니들에게는 좀 심각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서미순은 여전히 며느리로서 시어머니 오향심 여사(김을동)에게 박해받는 순교자지만, 또한 새롭게 들어오는 신세대 며느리 앞에서 어쩌면 ‘며느리살이’를 해야될지도 모르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 평생을 시집살이로 살아온 그녀가 나머지 삶을 며느리살이로 산다는 건 어찌 보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집살이가 끝나자 며느리살이가 시작되었다는 이 상황은 지금의 시어머니들이 실제 겪고 있는 일. 시집살이와 며느리살이가 이 족발집이란 공간에서 동시대적으로 발생한다는 것, 그것이 제대로 현실을 포착하고 있는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시댁에서 벌어지는 이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이 불을 보듯 뻔한 현실에서 그 둘이 한 지붕 아래 사는 건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 최근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신 고부갈등편’에서 한 설문조사에서는 며느리의 60%가 “시어머니가 원치 않아서” 같이 살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며느리 대신 해야할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이 양측이 바라는 건 이렇다. 친정엄마 같은 시어머니 그리고 친딸 같은 며느리.

시어머니보다 더 어려운 공주엄마 모시기
그런데 드라마가 포착하는 친정엄마와 딸의 관계는 나을까. 이들 엄마들의 모습은 툭하면 시집간 딸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거나, 딸의 비뚤어진 행동을 만들어내는 인물들이다. ‘황금신부’에 등장하는 지영 모(김청)는 이미 결혼한 옥지영(최여진)의 눈앞에 나타나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킨다. 지영의 입장에서 보면 시어머니보다 더 어려운 존재가 친정엄마인 셈이다.‘칼잡이 오수정’의 수정 모(유지인) 역시 궁할 때면 찾아와 수정을 괴롭히는 존재이며, ‘내 남자의 여자’의 화영 모(김영애) 역시 딸 앞에서 결혼을 두고 ‘한 몫을 챙기려는’ 비정한 친정엄마로 등장한다.

물론 이것은 극화된 것이고 과장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캐릭터들이 말해주는 현실은 또한 분명 존재한다. 요즘 심심찮게 나오는 말이 “공주엄마 모시는 것이 시어머니 모시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다. 결혼하면 육아문제로 이제는 친정어머니를 찾게될 딸에게 아이를 돌봐주는 것은 고사하고, 심지어 “네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아야겠으니 결혼하지 말라”는 공주엄마들은 더 이상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시어머니가 됐든 친정어머니가 됐든 시집살이, 며느리살이, 혹은 딸이 찾아와 겪는 이른바 친정살이(?)를 피하는 것은 그만큼 그간 가사활동으로 억눌려온 이 시대 어머니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보상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집살이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걸 환호할만한 처지가 못된다. 며느리, 시어머니, 친정어머니들이 얽히고 설킨 관계는 풀리기 어려운 실타래 마냥 더 꼬인 상황이니까.

하지만 ‘며느리 전성시대’의 서미순은 어쩌면 이 복잡한 실타래를 풀 수 있을 지도 모를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한 인간이 아닌 관계가 만들어내는 입장 차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그 관계를 벗어나거나 그 모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며느리,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이렇게 제각각의 인물인 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은 그 모든 위치가 한 여성에게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서미순은 보여준다. 그것이 며느리이자 시어머니이자 친정어머니인 그녀가 못내 안됐으면서 거기서 어떤 가능성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가족드라마의 진화, 주말드라마의 퇴화

도대체 등장인물이 몇 명이나 되는 걸까. 주말드라마들 홈페이지의 등장인물 코너를 보면 SBS의 ‘황금신부’와 KBS의 ‘며느리 전성시대’는 모두 18명이, MBC에서 새로 시작하는 ‘깍두기’는 무려 19명의 주요인물이 등장한다. 이러다가는 심지어 한 회에 등장하지 못하는 캐릭터가 나올 지경. 주말드라마들은 왜 일제히 인해전술(?)을 쓰기 시작한 걸까.

그 해답은 바로 가족드라마에 있다. 주말드라마는 그 특성상 어떤 식으로든 가족드라마를 표방하기 마련. SBS의 ‘하늘이시여’나 MBC의 ‘누나’, ‘문희’는 물론 ‘진짜 진짜 좋아해’, ‘결혼합시다’ 등도 트렌디와 멜로를 넘나들지만 여전히 그 틀은 가족드라마 안에 있었다. 물론 KBS의 주말드라마는 그 공영성으로 인해 본래부터 가족드라마를 표방해 온 이력이 있다.

하지만 최근 등장하는 주말의 가족드라마는 과거의 그것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족드라마라는 테두리 안에서 몇몇 주인공들이 엮어나가는 극적인 스토리를 보이던 과거의 주말드라마는 이제 여러 인물들이 등장해 각각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일일드라마의 확장판 같은 느낌을 같게 된 것이다.

KBS의 ‘며느리 전성시대’는 이 전형적인 KBS 일일드라마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SBS는 거의 가족드라마와는 거리가 먼 드라마들을 만들어왔지만 ‘황금신부’를 통해 그걸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새로 시작하는 MBC의 ‘깍두기’는 가족 군상의 규모를 더 넓혀 더 다양한 인물들을 그 틀에 잡아 두고 있다.

이렇게 가족드라마의 구성원들이 양적인 팽창을 이룬 것은 그만큼 다원화된 사회를 반영하는 점도 있지만, 실상은 좀더 안전하게 드라마를 유지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한두 명의 주인공에 집중되어 흘러가는 가족드라마는 그만큼 위험성도 큰 법이다. 따라서 인해전술에 가까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이들 가족드라마 속에는 다양한 안전판들이 심어진다. 고전적인 가족드라마의 신파 구조는 물론이고, 청춘물이 갖는 멜로드라마에 심지어는 성인드라마의 불륜까지.

그런 안전판들은 시청률과 조율해가면서 언제든 드라마의 중심으로 부각될 준비를 하고 있다. 가족드라마를 애초에 표방했던 ‘행복한 여자’가 갑자기 복잡한 논란드라마의 형태로 변모하면서 전혀 행복하지 않은 여자의 이야기로 간 것은 시청률과 관련하여 드라마가 타협한 결과이다. 애초에 준비된 안전판은 이렇게 활용되고, 그것은 드라마의 애초 의도를 흐려놓지만 최소한 시청률에 있어서의 안전을 보장해준다.

이런 식으로 보면 현재의 가족드라마는 드라마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형태로 자칫 색깔 없는 드라마라는 섣부른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종합선물 세트가 갖는 힘은 대단하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엮어내는 복잡한 가족관계는 사실 압축적이고 긴박한 구조의 드라마 전개에 있어서는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일일드라마에 익숙한 고정 시청층(주로 중장년층)이라면 다르다. 관계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그들에게 더 복잡해진 가족관계는 가족드라마의 진화로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이들 가족드라마들이 잡아내는 메시지는 일일드라마의 그것보다 좀더 구체적이다. 라이따이한이 등장하는 ‘황금신부’는 SBS 특유의 사회적인 시각이 접목된 가족드라마라 볼 수 있으며, ‘며느리 전성시대’는 현재 달라지고 있는 고부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깍두기’는 현재 급증하면서 새로운 가족관계의 양상을 예고하는 이혼 남녀들의 멜로가 섞인다. 가족드라마라고 해도 제각각 하나씩의 현실과 맞닿는 지점들을 굳건히 갖고 있는 셈이다.

이들 새로운 주말 가족드라마는 일일 가족드라마의 진화된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주말드라마가 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 가족이 주말 그 저녁 시간대의 드라마를 기다리던 시대는 지났다. 주5일 근무제로 인해 달라진 주말 생활패턴으로 떨어져버린 드라마 시청의 연속성은, 일일드라마처럼 한두 번 걸러도 그 가족이 가진 특성을 알고 있는 한 이해가 가능한 가족드라마 형태를 요구하게 되었다. 주말드라마가 벌이는 인해전술에는 휴일에 빼앗겨버린 시청자들을 잡아내기 위한 방송사의 안간힘이 숨겨져 있다.

드라마의 성공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와의 공감대가 아닐까. “정말 리얼하다”거나 “대사가 마음에 팍팍 꽂힌다”거나 혹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것은 모두 공감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드라마들은 제각각의 방식을 추구한다. 최근 들어 보여지는 그 경향은 ‘리얼하거나 만화 같거나 혹은 그 둘 다이거나’한 것이다.

리얼한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vs ‘에어시티’
불륜이라는 소재만 놓고 보면 ‘내 남자의 여자’는 자칫 천편일률적인 드라마 공식에 빠질 위험성이 있었다. 그랬다면 공감은커녕 비난만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가슴에 팍팍 꽂히는 김수현식의 대사의 맛에, 인물의 심리를 파고드는 집요함으로 공감을 끌어냈다. 폼잡지도 않고 또 과장하지도 않는 드라마 전개는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정말 리얼하다’는 반응을 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이 불륜드라마는 시청률에서의 성공과 함께 불륜이란 소재를 한 차원 더 넓혔다는 가치평가까지 동시에 얻었다.

반면 리얼함으로 따지면 억울할 정도로 탄탄한 현장의 기록들을 해나간 ‘에어시티’의 경우엔 어떨까. 일단 실제 인천공항에서 촬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드라마의 리얼함을 설명해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제작 전부터 국정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정도로 전문직 장르 드라마라면 반드시 필요한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드라마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기현상을 보인 것이다. 이유는 이 좋은 소재들이 제대로 된 스토리를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자 그 무게를 감당 못한 ‘에어시티’라는 비행기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드라마에서 리얼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라리 만화 같은 이야기라도 시청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라는 걸 이 드라마는 잘 보여주고 있다.

만화 같은 드라마, ‘쩐의 전쟁’ vs ‘메리 대구 공방전’
반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수목드라마들은 모두 만화의 속성을 갖고 있다. 만일 이들 드라마들을 만화적 장르의 틀로 구분한다면 ‘쩐의 전쟁’은 사실극화가 될 것이고, ‘메리 대구 공방전’이나 ‘경성스캔들’은 순정만화가 될 것이다. 이들 드라마 속의 대사들이나 액션은 현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만화적인 프레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 현실적이지 않은 과장된 장면들을 오히려 재미로 전환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게임과 같아서 일단 그 드라마가 취하는 룰을 인정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 룰에 따라서 과장은 오히려 리얼한 재미로 둔갑하게 된다.

그렇다면 똑같이 만화의 속성을 취하고 있는 이들 드라마들은 왜 성패가 갈리게 된 걸까. 특히 ‘쩐의 전쟁’과 ‘메리 대구 공방전’은 그 이야기 소재에 있어서 돈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유는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메리 대구 공방전’은 멜로 드라마의 퇴조가 가져온 여파에 억울할 것 같다.

이 톡톡 튀는 새로운 형식을 가진 드라마는 그 기본구도를 멜로 드라마로 가져가면서, 만화적인 참신한 시도가 자칫 네 명의 청춘남녀가 벌이는 가벼운 드라마로 오인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메리 대구 공방전’이 그렇게 만화처럼 키득대는 것으로 끝나는 가벼운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반면 ‘쩐의 전쟁’은 만화적인 연출을 가져가면서도 그 태도는 늘 진지함에 머물러 있다. 그것이 ‘쩐의 전쟁’에 더 무게를 두게 하는 요인이다.

리얼함과 만화 같음, 그 얇아진 경계
재미있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상충될 것 같은 ‘리얼함’과 ‘만화 같음’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져 간다는 점이다. 과거라면 ‘만화 같은 스토리’라는 문구 속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섞여 있었지만 요즘은 정반대가 되었다. 만화 같은 스토리는 이제 ‘재미있다’는 의미로 더 많이 읽힌다. ‘풀하우스’나 ‘궁’의 성공이 그걸 말해주고, 만화는 아니지만 만화적 감수성으로 성공한 ‘환상의 커플’은 만화적 재미가 이제 드라마 자체로도 생산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된 것은 만화가 그만큼 하위장르에서 상위장르로 승격되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제 드라마의 리얼함이라는 것이 늘 검증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 것도 한 몫을 차지한다. 인터넷에 몇 마디 키워드만 넣으면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는 현장의 목소리 앞에서 드라마의 리얼함이란 알몸은 그대로 시청자들 앞에 노출된다. 그러니 만화적 감수성을 담은 연출은 여러모로 장점을 갖게 된다. 리얼함의 시험대에 오르지 않아도 되면서, 그 만화라는 장르적 특징 속에서 재미있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점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쩐의 전쟁’이다. 만화적인 연출이 의도적으로 사용되지만 그 상황이 늘 긴박한 이유는 바로 이런 장점들을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드라마의 공감대를 말할 때 우리는 장르나 소재 같은 겉으로 드러난 드라마의 모습 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보여지는 건 만화적이지만 보면 볼수록 리얼한 드라마가 있는 반면, 보여지는 건 리얼하지만 그 안에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 리얼하지 못한 드라마가 있는 것이다. 결국 드라마에서 중요해진 건 탄탄한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태도로서의 진정성이다. 그것이 담보될 때, 드라마는 리얼하거나 만화 같거나 상관없이 공감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즌 브레이크’, 미식축구 같은 재미

도대체 ‘석호필’이 뭐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고 한번 ‘프리즌 브레이크(SBS TV 토 밤 12시 2회 연속 방영)’라는 미로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당신은 섬뜩하면서 뒤통수를 내리치는 스코필드(석호필)의 전신 문신에 빠져들게 된다. 형을 구하러 감옥으로 자청해 들어간 스코필드에게  “네가 지도를 봤구나”하고 형이 말할 때 “그 보다 더 나은 거야. 몸에 새겨 넣었지.”하며 보여지는 문신지도. 그것은 이 탈출 드라마가 왜 그렇게 미드족들의 밤을 지새게 만들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미국인들이라면 더 이해하기 쉬울 미식축구경기의 패턴을 닮아있다. 한 단계씩 공격(탈출시도)을 해나가고 거기에 대해 간수들이나 재소자들이 태클을 건다. 도저히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상황에, 스코필드는 기상천외한 작전을 펼쳐 보인다. 이를테면 그의 온몸에 새겨진 문신지도는 이 경기의 작전지도인 셈이다. 때론 그 숨겨 들어간 지도를 간파해내는 재소자도 등장하고, 심지어 지도가 훼손(?)되기도 하지만 스코필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시간제한이 있는 경기
스코필드의 문신 위에 그려진 미로 같은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이 미식축구경기 같은 드라마는 세 가지 장치로 그 긴박감을 이어간다. 그 첫 번째는 경기(?)의 시간제한. 그러니까 스코필드는 처음부터 이 한참 뒤진 경기에 투여된 것이 아니고, 끝날 즈음 마지막 승부사로 투입된 쿼터백인 셈이다. 몇 주 후면 사형될 형을 구하기 위해 스코필드는 발가락이 잘리고, 등에 화상을 입어가며 탈옥을 위한 단계들을 밟아나간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은 사형될 형 자신은 물론이고 그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스코필드,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든다.

이것은 스코필드와 함께 탈출을 준비하는 동료자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당장 밀고자를 알아내지 못하면 가족이 위기에 처하게 되거나, 당장 사랑하는 애인을 빼앗기게 될 상황에 놓이게 되거나, 유일한 혈육인 딸이 곧 불치병으로 죽게되는 상황은 모두 스코필드가 가진 시간제한과 똑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즉 감옥 밖의 상황이 감옥 안의 재소자들의 시간을 틀어쥐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 시간제한은 무고하게 죽게될 상황에 처한 링컨 버로우즈(스코필드의 형)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옛 애인 베로니카가 파고 들어가는 거대한 음모와 변주를 하면서 힘을 얻는다. 이러한 음모이론은 또한 스코필드의 탈옥계획의 심리적 근거를 만들어준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이 같은 시간제한은 미드에서 즐겨 사용하는 장치 중 하나.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24’나 ‘히어로즈’에도 어김없이 시한폭탄처럼 장착되어 있다. 리얼타임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는 ‘24’는 말 그대로 실시간을 따라가는 드라마로 순간순간 갈등상황에 접하게 되는 잭 바우어(키퍼 서덜랜드)의 상황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히어로즈’에서는 뉴욕시가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폭발 장면을 능력자들(히로나 아이작 같은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 보게되고 그걸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얘기다. 이 같은 시간제한은 공포와 불안으로 다가오는 ‘결정적 순간’으로 인해 매순간 드라마의 극적 긴장을 유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문신지도와 사전준비 혹은 사전제작
두 번째 장치는 경기에 투입되기 전, 스코필드가 라커룸에서 경기를 분석하며 했던 철저한 준비이다. ‘자신이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 형을 탈출시킨다’는 미션은 감옥이란 활동이 제한된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 철저한 준비를 요구한다. 문신지도를 포함한 그 준비장면은 드라마 첫 회, 감옥에 들어가기 전 방 벽을 가득 채운 포스트잇으로 대변된다. 시청자들은 스코필드가 머릿속에 또 문신 속에 하나하나 기록해둔 이 준비된 시나리오를 첫 회부터 신뢰하게 된다. 이를테면 이 스코필드의 작전시나리오는 앞으로 남은 짧은 시간에 해야할 불가능한 미션을 가능하게 해줄 유일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미리 준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가능하려면 드라마 자체도 처음부터 완벽한 시나리오를 갖고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사전제작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장점들을 제대로 활용한다. 초반부에 나왔던 한 정신병을 가진 제소자가 후반부에 가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사전제작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의 조합은 오히려 재미로 돌변한다. 22부의 드라마를 하나의 피스로 보고 그 피스를 하나씩 맞춰나가는 퍼즐 맞추기의 묘미를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어찌 보면 제작자가 스스로 스코필드(혹은 극중 인물들)가 되어 경기를 치르는 형식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제작자의 사전준비는 스코필드의 사전준비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것이 ‘프리즌 브레이크’가 전체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의 편편이 하나의 독립된 에피소드가 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이유이자, 한 편을 보고 나면 그 재미에 전편을 봐야하는 중독성을 지닌 이유가 된다.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드는 경기의 의외성
세 번째 장치는 짧은 시간에 탈출을 해야한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위해 철저히 사전준비한 스코필드의 작전(?)을 번번이 어렵게 만드는 ‘경기의 의외성’이다. 이런 의외성을 만드는 요소들은 부지기수다. 기껏 탈출구를 다 파놓은 상태에서 정작 탈출시켜야할 형이 독방에 갇힌다거나, 갑자기 탈출해야할 통로인 환풍구가 교체된다거나 하는 것들은 오히려 쉬운 변수들이다. 더 어려운 것은 이 미션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던 재소자들이 만들어내는 의외성이다. 경기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스코필드는 목적을 위해 이들의 감정을 건드려야 하고, 딜레마를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원하지 않는 악당하고도 손을 잡아야 한다. 이 도저히 조합될 것 같지 않은 팀원들을 끌고 나가는 스코필드의 머릿속에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일에 움직일 거라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결속이 아니다. 그가 진정으로 결속될 수 있는 인물은 오로지 형뿐이다. 이 얇은 고리는 미션을 더 어렵게 만들고 그걸 천재적인 두뇌로 헤쳐나가는 스코필드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스코필드의 천재성에 ‘도대체 저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하는 질문이 나올 즈음, 드라마는 영리하게도 그의 지병인 ‘잠재 억제 부족증상’을 끄집어낸다. 천재성을 하나의 성향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마지막 쿼터에 몰려 출전한 쿼터백, 스코필드가 통솔하기 어려운(불가능해 보이는) 팀원들을 이끌고 마지막 터치다운(탈옥)을 향해 한 걸음씩 달려가는 미식축구 같은 드라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의 온몸에 새겨진 문신지도이다. 이것이 스코필드가 준비했던, 아니 이 드라마의 제작자들이 준비했던 그 미로 같은 문신 속에 한번 빠져들면, 스코필드를 따라서 터치다운 지역까지 달려가기 전에는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문신지도로 대변되는 완성도는 ‘프리즌 브레이크’를 통해 우리네 드라마 제작자들이 한번쯤 숙고해야될 것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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