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예능, 뉴스의 문제점과 해법

SBS의 최근 시청률 성적표(11월5일-11일 AGB 닐슨 집계)를 보면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전체 시청률 상위 20위권에 들어있는 SBS 프로그램은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18.7%)’가 11위에 랭크된 것을 빼고는 전부 드라마 일색이라는 점이다. ‘황금신부(23.5%, 5위)’, ‘왕과 나(20.2%, 8위)’, ‘조강지처클럽(14.1%, 14위)’, ‘아침연속극 미워도 좋아(13.6%, 18위)’가 그 드라마들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드라마가 대부분 상위 랭킹에 들어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각 방송사별로 몇몇 예능프로그램이 자리하고 있는 점을 보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MBC는 ‘무한도전(21.9%, 7위)’, ‘황금어장(15.3%, 12위)’의 예능과 ‘태왕사신기(29.5%, 3위)’, ‘이산(22.5%, 6위)’같은 드라마가 고루 포진해있고, KBS는 미니시리즈가 어렵다고는 하나 일일연속극의 절대 강자 ‘미우나 고우나(32.5%, 1위), 대하드라마 ‘대조영(32.2%, 2위), 그리고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26.9% 4위)’가 굳건하고, 전통적으로 강한 ‘KBS 9시 뉴스( 19.1% 10위)’가 있으며 여기에 다채로운 예능프로그램들(비타민, 해피투게더, 우리말 겨루기, 퀴즈대한민국, 개그콘서트)이 20위 권에 들어있다.

하지만 기대주였던 ‘로비스트’와 ‘왕과 나’의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현재 드라마마저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 SBS는 인정하기 어려운 뼈아픈 일이지만 총체적인 난국을 겪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개국부터 새로운 도전정신과 시도로 독특한 컨셉의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는 저력을 보였던 SBS. 능력은 있으되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SBS의 상황은 저 ‘왕과 나’의 김처선이 갖고 태어났다는 삼능삼무(三能三無)의 운명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 SBS를 삼능삼무의 상황으로 몰고 왔을까.

일능일무(一能一無) - 기획은 창대하되 완성도가 떨어지는 드라마
SBS의 드라마 기획은 방송3사를 통틀어 가장 도전적이고 도발적이다. 그것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기만 해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라이따이한을 등장시켜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제대로 포착한 ‘황금신부’, 왕조중심의 사극에서 탈피해 내시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취지의 ‘왕과 나’, 대작드라마로서 로비스트라는 독특한 직업세계를 시각적으로 그려낸 ‘로비스트’ 등은 그 기획만 가지고 본다면 대단히 야심찬 시도라 할만하다.

이러한 독특한 기획의 성공은 사실상 SBS 드라마들의 최대 장점이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와 우리네 멜로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봉합시킨 ‘외과의사 봉달희’는 물론이고, 대부업(쩐의 전쟁)이나 교육문제(강남엄마 따라잡기) 같은 주로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들을 소재로 끌어들이면서 사회적 관심까지 유도하려 했던 사회극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기획의 장점은 실제 기획대로 드라마가 구현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단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왕과 나’가 가진 기획 포인트인 내시의 시각은 사극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로비스트’는 과도한 볼거리에 스토리가 매몰 당한 형국이 됐다. 그나마 ‘황금신부’가 선전하고 있지만 이것은 애초 기획의도와는 상관없이 전통적인 드라마들의 코드들(출생의 비밀 같은)을 잘 엮어낸 결과이다. 역대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연애시대’가 SBS의 드라마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 SBS 드라마는 최근의 시청률 하락을 통해 이제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기획의 창대함보다는 내실 있는 완성도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능이무(二能二無) - 시작은 했으나 조기에 문닫는 예능 프로그램
한 때 SBS는 예능 프로그램의 강자로 군림했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들이 ‘야심만만’, ‘진실게임’, ‘X맨’등이다. 하지만 현재를 보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최강자로 군림했던 ‘X맨’이 종영하고 나서 그 멤버들은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 속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예능프로그램의 최강자로 자리잡은 MBC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무릎팍도사’와 KBS‘1박2일’에서 활약하고 있는 강호동은 모두 ‘X맨’이 배출한 스타들이었다. 리얼리티쇼가 대세가 되고 있는 현재의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캐릭터의 형성에 ‘X맨’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현재의 SBS 예능프로그램의 난항은 그 후속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한 자책의 결과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 자책감의 결과일까. 최근 S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두 방향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이다. 최근 들어 ‘SBS의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파일럿’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프로그램들이 몇 달(심지어는 몇 회)을 넘기지 못하고 폐지되고 있다. ‘X맨’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안간힘은 저 ‘슈퍼바이킹’ 같은 컨셉트 부재의 프로그램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최근 ‘하자고’, ‘작렬 정신통일’, ‘옛날 TV’, ‘대결 8대1’, ‘스타킹’등등의 예능 프로그램의 조기종영(?)은 이 조급증이 극에 달했다는 걸 보여준다.

반면 또 하나의 압박은 ‘야심만만’, ‘진실게임’같은 장기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이 좀체 현재에 맞는 옷을 입지 못하고 과거의 틀에 매여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들의 홍보 프로그램논란이 나왔을 때부터 ‘야심만만’의 문제는 지적되었다 보아야 한다. 하지만 ‘야심만만’은 과거나 지금이나 연예인들이 등장해 신변잡기를 논하고, 홍보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진실게임’의 경우는 그 구태의연한 포맷에 더해서 심각한 소재부족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같은 제목이라도 계속해서 발빠르게 새로운 포맷을 시도하는 타 방송사(‘지피지기’같은)와는 너무 다른 행보라 할 수 있다.

SBS의 예능프로그램들은 지금 예능의 지존이 된 ‘무한도전’이 걸어온 길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무한도전’은 초반 시청률 4%에서 시작해 현재 2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자리잡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결과가 ‘무한도전’이라는 점이다. 또한 중요한 건 그 시간 내내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은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 같은 다양한 포맷실험을 통해 현재 위치에 서게 되었다. 쏟아져 나오는 예능프로그램 속에서 필수적인 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이지만, 또한 그것이 정착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변화가 필요할 때 변화를 만들어주는 끝없는 노력이 없는 한 예능 프로그램의 성공은 점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삼능삼무(三能三無) - 도전적 뉴스 시간대, 참신함이 없는 뉴스
200여명에서 많게는 300명에 이르는 보도국이 만들어내는 뉴스의 시청률이 10% 이하에 머물고 있다는 점은 지금 방송사들의 최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뉴스를 이대로 존속시켜야 하는가 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뉴스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자체적으로 소화하느냐 아니면 외주로 만드느냐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운 방송사는 KBS 뿐이다. 공영방송이라는 이미지 탓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대에 뉴스를 관성적으로 틀어놓는 시청자들의 패턴 속에서 KBS는 확실히 타 방송의 뉴스보다 우위를 갖는 장점이 있다.

뉴스의 존폐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 생각되지만, 관심을 끌지 못하는 뉴스가 더 이상 뉴스의 기능을 하고 있는가 하는 고민은 해야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녁 8시라는 도전적인 뉴스 시간대로 시작한 SBS가 왜 현재는 최하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여러모로 9시라는 뉴스 시간대보다 1시간 빠르다는 점은 엄청난 이점을 갖는다. 선 보도라는 장점 이외에도 8시라는 다른 시간대는 뉴스의 좀더 자유로운 포맷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8시 뉴스는 기존 9시 뉴스의 틀을 반복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오히려 ‘MBC뉴스데스크’는, 좀더 시각적인 뉴스 포맷이나 주말 뉴스판의 여성 앵커 기용 등의 도전을 하고 있는 형국. 현재 고작 20여명이 만드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SBS 8시 뉴스’ 시청률이 7, 8%에 머물고 있는 점을 잘 새겨볼 필요가 있다. SBS에 의해 초기 도전적으로 시도되었던 VJ(비디오 저널리스트)시스템은 ‘순간포착’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뉴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8시 뉴스는 그 시간대가 말해주는 초심으로 돌아가 거기에 맞는 도전적인 참신함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가장 늦게 공중파에 합류한 SBS는 도전적인 자세로 가장 안정적인 삼각경쟁구도를 만들어낸 방송사다. 따라서 충분히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쓰여지지 않으면 자칫 삼능삼무의 무위에 그칠 수도 있다. 위기는 기회라는 점에서 지금의 위기를 제대로 직시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발판이 될 것이다. 부디 삼능삼무(三能三無)가 삼능삼능(三能三能)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방송위의 중간광고 범위 확대 결정,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방송위원회는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의 중간광고 범위를 확대키로 결정했다. 이게 시행되면 이제 드라마를 보다가 중간에 갑자기 툭 끊기고는 흘러나오는 광고를 참고 봐야 된다. 방송위가 이를 결정한 명분은 이렇다. ‘다매체시대 신규매체 성장으로 인한 방송환경의 변화,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전환 및 공적 서비스 구현을 위한 안정적 재원 확보, 방송시장 개방에 따른 방송산업 경쟁력 강화’가 그것이다. 그럴 듯해 보이지만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이 결정은 그저 돈을 더 벌겠다는 뜻이 아니고 다 시청자들에게 양질의 방송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란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걸 위해 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지만.

그런데 이 중간광고 범위 확대가 가져올 파장을 생각해보면 방송위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간다. 광고 송출의 방식은 고스란히 컨텐츠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시청률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미드(미국드라마)의 경우, 중간광고가 가져온 파장은 컨텐츠에도 그대로 영향을 주었다. 중간 중간 끊기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에 더 속도감 있는 진행을 가능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컨텐츠의 경쟁력을 높였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광고에 대한 컨텐츠의 종속이 강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이것이 우리가 보는 TV 프로그램의 실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우리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프로그램들 사이에 끼워진 광고를 보고 있다는 말이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이지만 상업적으로 치닫고 있는 프로그램들의 실체는 분명 이 광고에 의한(겉으로는 시청률로 말해지는) 영향력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위가 필요한 것이다. 즉 방송위의 존재이유는 바로 이렇게 상업화되어 가는 방송에 공익적인 방향성을 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방송위가 존재하는 것은 TV를 공공재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방송위의 이 결정은 과연 그런 인식 기반 위에서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이 결정은 방송위 자체의 존재이유 기반을 흔들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광고도 하나의 컨텐츠라고 하지만 더 많은 광고를 보길 원하는 시청자들은 없다. 그것도 프로그램 중간에 끼어 드는 광고는 그 새로운 형태로 인해 프로그램 자체의 상업적인 입지만 더 공고히 해줄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외주제작이 일반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시청률 경쟁의 불꽃은 고스란히 바깥으로도 튈 것이 분명하다. 광고수주를 결정짓는 시청률에 의한 과당경쟁은 컨텐츠의 질을 높여주기는커녕 폐해만을 만들  뿐이다.

공중파 방송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그 원인이 단순히 재원부족에서 비롯되었다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방만한 경영에 더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KBS의 시청료 인상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각과도 일치할 것이다. 도대체 시청자들을 위해 더 많은 광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늘 어려운 시기마다 시청자들에게 손을 벌리는(사실상 손을 벌리기보다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는 표현이 맞다) 이런 결정은 TV가 공공재라는 이제 겨우 남은 작은 옷마저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방송사들의 인식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소녀그룹, 아역스타의 인기, 그 이면

상큼하고 깜찍한 어린 소녀들이 언발란스하게 디스코 춤을 추면서 “텔 미~”를 연발한다. 이름하여 원더걸스. 누가 봐도 영락없는 아이들(idol)스타들이지만 좋아하는 팬층은 10대에 머물지 않는다. 20대 젊은이들부터 40대 아저씨들까지 다양하다는데 한 편에서는 이런 어른들의 소녀 취향(?)을 가지고 ‘로리타 콤플렉스’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특별한(?) 성적 취향을 가진 소수라면 모를까, 다수의 아저씨들이 원더걸스를 좋아하는 이유를 로리타 콤플렉스로 설명하려 드는 건 과장된 해석이라 생각된다.

헬로 키티와 원더걸스는 닮았다
이 소녀그룹에 대한 아저씨들의 열광은 오히려 캐릭터 비즈니스의 연장선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연예 엔터테인먼트를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할 때, 연예인들은 하나의 캐릭터 비즈니스의 일환으로서 소비된다. 드라마가 됐건, 영화가 됐건 컨텐츠에 등장하는 스타들은 배역에 맞는 이미지를 새롭게 갈아입고 대중들에게 제시된다. 기존에 대중들에게 강력한 이미지로 각인된 스타는 새로운 컨텐츠에 대한 시장진입 리스크를 줄여준다. 대중문화 속 아이들(Idol)이란 마치 팬시한 상품을 대중들이 좋아하듯이 그 자체가 캐릭터 상품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최근의 소녀그룹은 하나의 새로운 캐릭터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그 캐릭터는 ‘청순→발랄→섹시→도전’을 거쳐 이제 ‘상큼 발랄’의 이미지로 변모했다. 소녀그룹의 연령대가 20대에서 10대로 내려온 것은 소비되는 이미지의 이런 변화로 설명된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 어린 아이돌스타라는 컨셉트의 상품이미지에서 언뜻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키덜트(kidadult, kid와 adult의 합성어로 20, 30대이지만 여전히 어린 감성을 가진 어른) 문화상품의 이미지다. 어른들에게도 여전히 소비되는 미키 마우스나 헬로 키티 같은 문화상품.

이렇게 캐릭터 지향적인 소비가 반대로 보여주는 것은 음반시장의 퇴행이다. 과거의 가수라 함은 노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는데 이제는 가수가 하나의 캐릭터 이미지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원더걸스의 ‘텔 미’는 특별한 가사의 내용이 없다. 그저 “네가 날 사랑할 줄은 몰랐다. 그게 너무 좋다. 그러니 자꾸만 말해 달라.” 그런 내용의 반복이다. 가사에 걸맞게 음률도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이것은 디스코 같은 복고를 지향한 뮤비 컨셉트와 캐릭터 컨셉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다분히 기획된 것이다. 구닥다리의 느낌에 쉽고 친숙한 노래는 오히려 캐릭터 컨셉트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준다.

솔직한 미숙함이 가진 리얼리티라는 파괴력
캐릭터 컨셉트를 키덜트 문화상품으로 포장한 것은 ‘원더걸스’라는 이름과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조금은 어색한) 원더우먼 캐릭터에서도 드러난다. 복고적이며 다분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캐릭터 이미지를 차용하자 원더걸스는 이제 단순히 10대 아이들 스타가 아니라 30, 40대에게도 소비될 수 있는 캐릭터가 된다. 이처럼 젊은 연령대와 나이든 연령대의 양자를 소비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키덜트 문화상품 마케팅의 장점이다. 이것은 여러 세대가 동시에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어떤 소통의 창구로서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한편에서는 지나친 상품화의 결과로 보기도 한다.

이밖에도 원더걸스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컨셉트는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한 리얼리티’라는 점이다. 음반기획사에서 ‘만들어진’ 아이들 스타들의 문제는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데 있다. 이 말은 너무 상품화된 캐릭터로 보여지기 때문에 구매에 있어서 때론 거부감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원더걸스는 좀더 날것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솔직함으로 제시되고, 현재의 모든 대중문화상품의 기본 컨셉트가 되는 리얼리티를 담보한다. 이렇게 되면 캐릭터에 대한 매력이 있는 한, 노래가 어설프든, 춤이 어설프든 그것은 또 다른 매력으로 전환된다. 호감가는 솔직한 미숙함은 때론 앞으로의 성장가능성까지 기대하게 만든다.

키덜트 문화가 양산하는 어덜키드
키덜트 문화가 장난감이나 완구시장 같은 전통적인 캐릭터 시장에서 이제는 대중문화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또 한편으로는 어덜키드(애 어른)의 양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대중문화 속의 캐릭터는 바로 사람이기 때문에 키덜트 문화가 요구하는 것은 어린 나이의 소녀나 소년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사극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아역스타들을 보면 어덜키드 문화의 탄생을 예감케 된다.

어린 제왕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유승호, 비련의 여주인공 윤소화를 연기한 박보영, 성인 못잖은 멜로 연기를 펼친 어린 김처선 역의 주민수, 여기에 성인 악역 못잖은 섬뜩함을 연기한 어린 정한수 역의 백승도, 놀라운 감정연기를 보여준 이산 역의 박지빈 등등의 아역스타들에게 대중들이 놀라는 것은 그 ‘성인 못잖은’ 연기력이다. 이 사극들의 어린 연기자들만 모아놓고 보면 성인 사극의 아이 버전을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키덜트 문화의 대중문화 침투는 이제 소년, 소녀들이 문화상품의 첨병으로 소비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국민여동생이란 미명 하에 어린 캐릭터 이미지로 소비되었던 문근영이 ‘댄서의 순정’이라는 복고적인 느낌의 영화 속에 등장했을 때 이미 예기되었던 것들이다. 문화상품이란 유행을 타는 것이기에 그걸 가지고 뭐라 하긴 그렇지만, 우려되는 것은 자칫 키덜트 문화가 가져올 수많은 어덜키드가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하나의 바람직한 전범으로 제시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아이는 그래도 아이다워야 하지 않을까.

리얼리티의 늪에 빠진 TV

늦은 시각까지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사무실. 한 워킹맘이 아픈 아이의 화상전화를 받는다. 아이는 물수건을 이마에 대고 누운 채, “엄마 언제 와”하고 애처롭게 묻는다. 아이의 모습에 눈물을 글썽이는 엄마가 “금방 갈 게”하고 말한다. 제 일처럼 걱정해주는 동료들에게 “많이 아픈가봐요”하며 회의실을 나선 워킹맘. 갑자기 표정이 180도 달라진다. 아이가 영상통화를 통해 말한다. “엄마 나 잘했지?” 아이와 엄마가 만세를 부르고 이어 “쇼를 하면 엄마의 퇴근이 빨라진다”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케이티에프 ‘대한민국 보고서 - 육아문제 편’의 장면이다.

최근 새로운 영상시대를 예고하는 듯한 이 캠페인성 광고는 현재의 TV 프로그램들이 일제히 주창하기 시작한 ‘리얼리티’의 실상을 보여준다. 화상전화처럼 영상이 생활이 된 세상에서 살게되면서, TV는 아이의 실제 같은 연기처럼 리얼리티를 주장해야 먹히게 됐다. 하지만 그 리얼한 화면으로 목적을 달성한 연후에 남는 개운치 않은 기분은 왜일까. 그것은 이 광고가 스스로 주장하듯, ‘쇼’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저 진짜가 아닌 쇼였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쇼를 하라!”고 권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 리얼리티도 허용되는 세상에 살게 된 것일까.

요즘 TV의 화두는 ‘리얼리티’다. UCC처럼 대중화된 영상시대 속에서 연출된 화면에 대한 식상함과 TV보다 더 리얼한 사건사고들이 가득한 사회가 요구한 결과다. 그것은 쇼 프로그램에서부터, 개그 프로그램, 예능 프로그램, 심지어는 광고에까지 광범위하게 침투해있다. 리얼리티쇼의 전조를 보였던 ‘몰래카메라’는 늘 터져 나오는 진실공방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표방하고 나선 ‘무한도전’의 성공으로 TV 쇼 프로그램들은 저마다 리얼리티를 외치고 있다. 현장의 리얼리티를 강조하며 등장한 무대개그프로그램들은 이제 정해진 대본조차 최소화시키며 애드립을 강조한 실시간 개그(애드리브라더스 같은)를 선보이고 있다. 케이블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건 가짜로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가짜 다큐 프로그램들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이 주장하는 리얼리티는 진실일까. ‘무한도전’이 얘기하는 리얼리티는 거기 등장하는 개그맨들의 실제 맨 얼굴과는 거리가 있다. 그것은 이미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 속에서 캐릭터화된 개그맨들이 그 설정 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애드립을 구사하는 것일 뿐이다. 애드립을 강조한 ‘애드리브라더스’ 역시 완전한 실시간 개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어느 정도의 포맷 안에서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케이블의 가짜 다큐들은 다큐가 가진 리얼리티의 현장성을 자극적인 장면들을 끌어내기 위한 연출의 방식으로 쓴다는 점에서 위험수위에 도달해있다.

TV 프로그램들이 일제히 리얼리티를 표방한 쇼를 하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실제 리얼리티를 담보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나 뉴스보도는 외면 받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것은 현장의 이야기가 무한정 쏟아져 나오는 UCC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터넷뉴스의 영향이 크지만, 또한 리얼리티를 쇼의 차원으로 끌어들이면서 TV 스스로 신뢰성을 훼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짜 리얼한 영상들이 매일같이 튀어나오는 인터넷(최근에는 여기에도 거짓영상들이 나오고 있지만)과 경쟁하면서 TV가 리얼리티쇼(진짜 리얼리티가 아닌)는 재미는 가져왔지만 방송 최대의 무기일 수 있는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리얼리티의 늪에 빠진 TV, 쇼하는 TV에서 이제 불거져 나오는 것은 진위 공방이다. 과거라면 그저 지나쳤을 연예인의 재미를 위한 거짓말 한 마디는 진실의 도마 위에 오르고 논란을 일으킨다. 이미 포맷이 다 드러난 ‘몰래카메라’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실제로 속은 것인지 아니면 속은 척 한 것인지에 대한 공방이 이어진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벌어진 무인도 설정은 그것이 진짜 무인도였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다. 가짜 다큐 속 성 추행범의 가짜 검거 사실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쇼하는 TV가 조심해야 할 것은 저 케이티에프 ‘대한민국 보고서 - 육아문제 편’의 장면이 워킹맘의 상황을 희화화하고 왜곡했다는 논란을 일으킨 것처럼 자칫 거짓말 조장하는 TV로 전락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TV를 켜면서 시청자들은 그 영상이 갑자기 잠을 자다 벌떡 일어나 휴대폰에 입김을 불어넣어 뽀샤처리(포토삽 효과 처리)를 하고 최대한 얼굴을 멀리 둔 채 전화를 받는 에스케이텔레콤의 ‘영상통화 완전정복 - 화면조정 편’처럼 조작된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도 계속 울려 퍼지는 “쇼를 하라!”라는 명령어가 끔찍하게 느껴지는 건,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라!”는 얘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사진자료 : KTF Show ‘대한민국 보고서 - 육아문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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