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드라마는 리메이크 아니면 표절(?)

작년 완성도 높은 ‘웰 메이드 드라마’를 꼽으라면 누구나 ‘연애시대’를 얘기하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올 들어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하얀거탑’은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웰 메이드 드라마’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모두 그 원작을 일본에서 들여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연애시대’는 노자와 히사시의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하얀거탑’역시 야마자키 도 요코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일본에서 ‘하얀거탑(원제 白い巨塔)’은 이 소설로 1978년에 드라마화 되었고 2003년 다시 리메이크되었다. 게다가 다시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되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30여 년에 걸쳐 3번이나 드라마화된 셈이다. 원작의 힘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반증이며, 동시에 ‘좋은 원작은 시공을 뛰어넘어 사랑 받는다’는 보편적인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시장은 점점 글로벌화되고 리메이크는 하나의 세계적 조류가 된 상황에서 원작이 갖는 부가가치는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마 재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한류’는 어디에나 있었고 뭐든 한국인이 만들면 세계가 좋아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모든 걸 낙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드라마의 수출은 뚝 끊긴지 오래고 국내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성공을 일궈낸 영화들은 거의 모두 해외에서 고배를 마셨다. 여기에 최근 국내 드라마들의 경향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어둡게만 보인다.

작금의 사극 붐은 그 자체의 재미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지만, 또한 사극 이외의 현대물들이 전혀 새로운 재미를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반사이익도 크다. 퓨전사극이라는 새로운 재미가 시도되는 동안, 현대물들은 여전히 과거 멜로와 스타를 적절히 버무리는 ‘한류의 공식’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치열한 창작의 소산물이라기보다는 기획물에 가까웠다. 당연히 문화소비자들은 외면했다. 최근의 일본 원작들이 대거 국내에서 리메이크 붐을 타고 있는 것은 이제 적당한 기획물로는 어렵다는 자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리메이크는 물론 베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창작이다. 제대로 된 해석과 토착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리메이크는 성공할 수 없다. 일본 원작을 영화화했으나 실패한  ‘사랑따윈 필요없어’와 성공한 ‘미녀는 괴로워’는 그 적절한 사례가 될 것이다. 리메이크는 이제 세계적인 조류이다. 좋은 리메이크는 오히려 그 원작을 수입해온 나라로 역수출도 가능해진다. 다만 그것이 탐탁잖게 보이는 것은 어려운 원작 생산보다 성공이 쉬워 보이는 리메이크에 올인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로또식으로 너도나도 뛰어들어 만들어내는 리메이크는 자칫 문화계의 지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여기에 국내 순수 창작물로 만들어진 작품들에 대해 계속되는 표절 시비는 상황을 더 어둡게 보게 만든다. ‘외과의사 봉달희’의 ‘그레이 아나토미’에 대한 표절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달자의 봄’ 역시 일본 드라마 ‘아네고’에 대한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인물 설정은 물론이고 드라마 소재까지 따왔다는 것. 이 정도 되면 뭔가 새롭고 재밌는 드라마는 ‘리메이크 아니면 표절’이란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리메이크 붐과 일련의 표절시비는 드라마 제작자들이 앞선 문화소비자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문화소비자들은 인터넷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 이제 일본드라마, 미국시즌드라마를 이미 섭렵하고 있다. 그러니 과거처럼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은 통하지 않는다. 또한 이런 상황이니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에 익숙해진 그들이 어딘가 엉성해 보이는 우리네 드라마가 시시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리메이크된 작품을 놓고 원작과 비교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건 그만큼 외국드라마의 저변이 넓다는 말도 된다.

이제 ‘국경 없는 컨텐츠 제작’이 하나의 조류로 자리 잡아가는 시대다. 일련의 합작영화들이 나오는 상황에 합작 드라마 역시 하나의 가능성으로 자리한다. 하지만 여기서 명심해야할 것은 ‘국경이 없다’는 말이 단지 ‘자유로운 제작 풍토’같은 장밋빛 뉘앙스의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신 그것은 그만큼 ‘전장의 구분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 저기 얽히고 설키면서 앞으로는 더더욱 그 국경이 희미해질 상황이기에 원작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상품의 기반이 되어줄 소설이나 연극, 만화 같은 기초분야에 대한 발굴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작년 우리 원작의 가능성을 보여준 연극 ‘이(爾)’ 원작의 ‘왕의 남자’, 허영만 만화 원작 ‘타짜’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말드라마를 보면 연기자가 보인다

최근 홀연히 나타나 주말 드라마의 판도를 바꿔놓은 연기자가 있다. 바로 사극의 제왕, 유동근. 그는 갖은 비판과 혹 허우적대던 ‘연개소문’을 단박에 기대감으로 채웠다. 그의 출연과 함께 ‘연개소문’이란 사극은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심지어는 지금까지의 ‘연개소문’이 걸어온 길은 그저 사족에 지나지 않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렇게도 어려웠던 시청률 25%를 손쉽게 넘기면서 수위를 지켜오던 경쟁사극 ‘대조영’을 제쳐버렸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단지 유동근이라는 대배우만의 힘이었을까. 여기에는 물고 물리면서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하는 연기자들의 부침이 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불리한 시간대를 지킨 ‘대조영’의 연기자들
주말드라마 삼파전에서 가장 불리한 시간대를 갖고 있는 것이 ‘대조영’이다. 9시부터 시작하는 ‘연개소문’과 10시부터 시작하는 MBC 주말극 사이인 9시30분대에 끼어있어, 양 드라마의 공격을 받는 형국이 되기 때문. 만일 ‘연개소문’의 청년시절이 좀더 존재감 있게 흘러왔다면 ‘대조영’은 맥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시절의 ‘연개소문’은 존재감이 없었다. 그나마 그 드라마의 힘을 이어준 것은 김갑수라는 괴물 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특유의 광기 어린 연기로 수양제역을 소화함으로써 연개소문의 공백을 채워 넣었다.

‘연개소문’과 함께 한창 ‘환상의 커플’이 상종가를 치며 앞뒤로 압박해왔을 때 ‘대조영’을 지켜낸 인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조영’의 연개소문 역을 한 김진태였다. 호랑이 같은 눈빛을 부라리며 안면근육을 떨며 호통을 치는 모습에 빨려들지 않을 시청자가 없었다. 때론 자상한 아버지처럼, 때론 광기 어린 제왕처럼 변신의 변신을 보여주는 김진태 앞에 양만춘 역할의 임동진이 가세하자 그 힘은 하늘을 찔렀다. 심지어 연개소문이 죽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이 두 카리스마의 충돌이 빚어내는 숨막히는 연기대결이 펼쳐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드라마는 제목이 ‘연개소문’이나 ‘양만춘’이 아닌 ‘대조영’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인공 대조영이 차츰 앞으로 나오고 그들은 역사 속에 사라져야할 인물들이었다. 연개소문이 죽으면서 김진태가 사라진 자리를 양만춘 역의 임동진이 채워 넣었으나 그마저 사부구(정호근 분)가 제거해버리자 ‘대조영’의 드라마적인 힘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 빈 자리를 온전히 대조영 역할의 최수종이 채워놓기도 전에 유동근이 출연한 것이다.

진짜 ‘연개소문’을 만드는 연기자들
결과적으로 ‘대조영’에서 만들어놓은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기대감은 새로운 ‘연개소문’을 도와준 격이 되었다. ‘연개소문’이 새롭게 주말드라마의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유동근 이외에도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선 굵은 카리스마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개소문의 책사 역할로 돌아온 우리의 영원한 시라소니 조상구, ‘야인시대’의 나미코 역할은 물론이고 ‘대장금’에서 장금과 열띤 경쟁을 벌였던 이세은, ‘태조 왕건’에서 견훤 역할을 했던 서인석 등이 가세하자 유동근의 절대 카리스마와 조화를 이루면서 기대감을 만들었던 것. 여기에 ‘대조영’에서 익숙해진 ‘검모잠(안승훈 분)’같은 인물의 출연은 재미를 더해주었다.

따라서 이것은 지금까지의 ‘연개소문’과는 다른 카리스마 넘치는 드라마가 연출될 공산이 크다. 적어도 연기자들만큼은 확실한 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걱정되는 것은 마치 역사를 가르치는 듯한, 설명조의 지지부진한 전개로 비판을 받아온 이환경 작가가 얼마나 속도감 있게 이들 연기자들의 맥을 살리면서 긴박한 드라마를 엮어나갈 것인가이다. 아무리 훌륭한 연기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캐릭터의 설정이나 스토리 진행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지금 ‘연개소문’은 그 연기자만으로 충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얀거탑’의 노련한 연기자들
이 경쟁에 가세하는 것이 바로 ‘하얀거탑’의 노련한 연기자들이다. 상황으로 보면 ‘대조영’을 진퇴양난의 입장에 빠뜨린 것은 바로 이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존재감이 팍팍 느껴지는 외과과장 이주완 역할의 이정길.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상황에 따라 굴욕적인 면모 역시 거침없이 보여주는 호연에 힘입어 네티즌들에게 ‘인쇄정길’, ‘굴욕정길’로 불릴 정도다. 의국실로 프린트되는 외과과장후보 이력서를 가로채기 위해 달리는 모습과 노민국의 호텔방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으로 이런 호칭이 붙여졌다.

이정길과 손을 잡았다가 또 뒤통수를 때리는 부원장 우용길 역할의 김창완은 특유의 능구렁이 연기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의 연기는 뒤통수를 치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 그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그 놀라운 연기변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물론 주인공 장준혁 역할의 김명민은 특유의 야누스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악마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정이 느껴지는 쉽지 않은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저 영화 ‘괴물’에서 주목받은 변희봉(오경환 역), ‘영웅시대’에서 천태산의 차남 역할로 나왔던 정한용(민충식 역), ‘제5공화국’에서 허문도 역할로 열연했으며 각종 사극에서 감초 역할을 확실히 해준 이희도(유필상 역) 역시 이 드라마의 힘을 만들어주는 연기자들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이들 얼굴
요즘 주말드라마는 유독 클로즈샷이 많다. 그것도 극단적인 클로즈샷이다. 미세하게 떨리는 근육까지 보일 정도로 화면의 거의 2/3를 채우는 이들 연기자들의 얼굴. 이러한 장면들은 드라마의 성패에 얼마나 연기자들의 존재감이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드라마 속에 확실한 존재감을 주는 연기자가 있다면 그 드라마는 그 힘을 기반으로 어떻게든 흘러간다. 중요한 것은 이들 존재감을 주는 연기자가 주연이 아닐 경우, 이들 연기자들 사이에서 그 힘에 눌린다면 드라마의 중심 축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동근이라는 확실한 중심축이 선 ‘연개소문’은 일단 기선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얀거탑’ 역시 차츰 주인공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미 고정층을 확보한 ‘연개소문’의 아성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조영’. 사실 지금의 주말드라마 판도를 가장 도와준 격이 되었지만, 가장 곤란한 시간대에 자리잡아 양측에 공격을 받는데다 아직까지 대조영으로서의 최수종이 확실히 자리매김을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힘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분명한 것은 그 힘을 만들어 드라마를 성공으로 웃게도 하고 실패로 울게도 만드는 이들이 연기자들이라는 것이다.

이찬에 이은 황수정 논란이 말해주는 것

SBS 금요드라마, ‘소금인형’의 첫 회가 끝난 시각. 게시판의 풍경은 여타의 드라마 게시판과는 판이한 양상을 보였다. 내용이나 연기력과 같은 드라마 내적인 이야기는 온데간데없고 황수정의 드라마 복귀에 대한 반대 여론만 가득 찬 것이다.

마약복용 혐의로 구속되었던 연예인들은 황수정 이외에도 많다. 그럼에도 황수정의 복귀에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청소년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공인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아무런 공식적인 반성 없이 드라마에 복귀했다는 것. 이로써 범죄를 가벼이 보게 하는 시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또한 그 과거의 잘못된 이미지가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있어 지금 복귀는 시기상조라는 점이다.

네티즌들의 도마 위에 오른 도덕성
그런데 정작 더 궁금한 것은 왜 이렇게 반대하는 캐스팅을 방송사가 굳이 강행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 확실한 내부사정은 알 수 없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논란보다는 시청률이 우선인 요즘, 그만큼 둔감해진 도덕성 때문이 아닐까.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의 시청자 게시판은 이러한 둔감한 도덕성에 대한 어떤 단초를 제공해준다. 게시판을 들여다보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비판의 글들이 눈에 띈다. 그 비판은 드라마의 비판을 넘어서서 점차 방송사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비약하고 있다.

그것은 최근 들어 SBS 드라마에 생긴 잇따른 악재에서 비롯된다. 지난 9일 종영된 월화 드라마, ‘눈꽃’은 갑작스런 이찬-이민영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단지 그들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SBS측이 여기에 대해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은데다 이찬의 문제는 SBS PD인 그의 아버지까지 거론되면서 이들 부자에 대해서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점을 들어 방송사의 도덕성이 네티즌들의 도마 위에 올랐던 것이다.

실체를 드러내는 폭력성
여기서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은 ‘폭력’에 대한 네티즌들의 혐오이다. sdi1004g의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은 ‘긴급출동 SOS24’에 빗댄 비판에서 “정작 사회의 폭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사에서 이 폭력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것을 보며 많은 실망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시청자 게시판에는 유난히 드라마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soonie0301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종영한 ‘연인’에 대해서 “칼로 찌르고 폭력을 쓰는” 장면들이 “15세 이상이 보기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또한 keh2258님은 이 드라마의 일부 낯뜨거운 장면들이 “방학중 아이들에게 부적절하다” 는 의견을 남겼다.

이러한 자극적인 내용은 ‘소금인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1회의 그럭저럭 가족적인 분위기는 2회에 이르자 빚쟁이들이 회사를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고함을 지르는 장면으로 돌변하더니 급기야 집까지 들어와 난동을 피우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놀라운 것은 그 폭력의 현장에 아이가 있었다는 점. 긴박감과 절실함을 보여줘 차소영(황수정 분)이 동침을 선택하는 근거를 제공하겠다는 의도가 보이지만 너무 자극적으로 흐른 건 아닌가 하는 혐의가 짙다.

황수정의 불리한 선택
황수정의 입장에서 보면 이 드라마를 통해 변화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만이 앞으로 연기자의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드라마 상의 캐릭터가 과거의 이미지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 첫 번째 요건은 안타깝게도 1,2회 방송을 통해서는 만족되지 못한 것 같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사업에 망하고 몸까지 다쳐 누운 남편의 수술비를 위해 자신을 짝사랑했던 남자와의 동침을 한다는 이 불륜의 코드에서 과거 황수정의 어두운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 같다.

두 번째 조건은 바로 연기력. 혹자들은 황수정이 과거 드라마 상의 청순 이미지를 벗을 것이라 예견했지만 그다지 과거의 이미지와 달라진 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도대체 황수정은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걷기로 작정한 것일까. 드라마 전개상 초반부라 그럴 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이 선택은 황수정에게는 불리하게만 보인다.

선의의 피해를 보는 연기자들
그런데 이렇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연기자들보다 더 피해를 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함께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기자들이다. 이찬-이민영 사건이 불거져 나왔을 때, 시청자들은 이찬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화면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또한 ‘눈꽃’ 자체의 이미지가 하락하면서 그 피해는 함께 출연하는 김희애와 고아라 같은 연기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돌아갔다.

이것은 단 2회만 끝난 상황인 ‘소금인형’에서 벌써부터 불거져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함께 출연하는 연기자인 김영호(박영우 역), 김유석(강지석 역)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의견들이 게시판에 오르고 있다. 채널을 돌리자니 그 연기자들이 눈에 밟힌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최근 시청률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논란드라마’의 길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여타의 논란드라마와 강도 자체가 다른 것은 내용뿐만 아니라, 출연자에 대한 논란까지 가중되고 있다는 것. ‘안티팬도 팬’이라는 말이 있지만 또한 ‘안보기 운동’을 하자는 네티즌도 결국은 봤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온다는 게 사실이지만, 이들 논란드라마가 가져올 수 있는 것은(그것이 가능하다면) 앙상한 시청률뿐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방송사의 이미지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두고보면 이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분명 마이너스로 작용하게 될 것이 뻔하다. 황수정 캐스팅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판은 최근 들어 시청률지상주의 하에 수위를 넘고 있는 방송사의 도덕불감증을 꼬집는 측면이 강하다.

하얀거탑’, 드라마 진화 완성시킬까

‘하얀거탑’에 대한 칭찬일색은 그 동안 우리 드라마들이 얼마나 부족했던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구태의연한 뻔한 스토리를 가진‘트렌디 드라마’, 짜여진 스토리와 영상으로 승부하지 않고 편법에만 기대는 ‘시청률 성공, 드라마 실패인 사극’, 어떤 외피를 입어도 늘 멜로에만 집착하는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가 그 대표 삼인방이다. 물론 아예 시청률을 의식해 욕먹기로 작정한 ‘논란 드라마’는 얘기할 가치도 없다. 이런 드라마들에 식상한 시청자들은 비로소 ‘하얀거탑’이라는 제대로 된(well made) 드라마를 보면서 탄성을 질렀다. 오죽 제대로 된 드라마가 없었으면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하얀거탑’이란 웰 메이드 드라마는 그냥 우연히 탄생한 것이 아니다. 사실 시청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식상한 드라마를 넘어서 그 징후를 보였던 드라마들이 있었다.

‘연애시대’, 트렌디 드라마와 이혼하다
‘연애시대’가 기존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을 깰 수 있었던 것은 그걸 만든 이들이 영화인들이었다는 데 있다. 사전제작을 시도한 첫 번째 드라마였지만 100% 사전 제작이 어려웠던 이 드라마는 영화와는 다른 호흡으로 영화인들을 당혹스럽게 했지만 그들은 노련했다. ‘이혼 후에 시작된 연애’라는 도발적 소재에도 불구하고 진지함을 잃지 않았으며, 탄탄한 캐릭터를 가진 주연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힘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매몰되지 않았다. ‘연애시대’만큼 출연한 거의 대부분의 조연들이 드라마 말미까지 사랑스러운 드라마는 많지 않다. 스토리면 스토리, 연출력이면 연출력, 영상이면 영상, 연기면 연기까지 도무지 딸리는 것이 없는 이 드라마를 두고 우리는 드디어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이 호칭이 과장이 아닌 것은 기존 트렌디 드라마들이 해왔던 관행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재벌가 남자와 신데렐라형 여자 캐릭터가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는 기존 트렌디 드라마에서 도발적 소재는 있을지 몰라도 진지함은 찾기 어려웠고, 조연은 물론이고 주연조차 식상하기는 마찬가지였으며, 공식으로 만들어지는 스토리와 연출 속에서 영상미는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니 ‘연애시대’는 식상한 기존 드라마들과 이혼한 시청자들이, 그 후에 새롭게 연애를 시작하게 만든 드라마로 기억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웰 메이드 드라마’에 대한 가능성을 알게 된 드라마 폐인들이 제대로 된 드라마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황진이’, 사극을 갖고 한바탕 놀다
‘황진이’에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호칭을 부여하게 만드는 것은 그만큼 기존 사극이 기본을 지키고 있지 않았던 탓이 크다. 퓨전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출현은 사극과 역사 사이의 간극을 더 넓혀놓았다. 그 사이를 차지하고 들어간 것은 상상력. 정통사극이다 퓨전사극이다 하며 서로들 주장을 해대지만 사실 고구려 사극들은 모두 정통사극으로 보기가 어렵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 뿐. 역사에 그래도 조금 가까운 것이 ‘대조영’이며 그 다음이 ‘연개소문’, 그리고 역사에 가장 멀어 오히려 환타지나 무협에 가까운 것이 ‘주몽’이다. 이들 사극들이 치열한 경쟁에 들어가면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억지 설정이 남발되었고, 사극의 기본이랄 수 있는 전투 장면의 부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20%에서 45%에 이르는 높은 시청률을 이들 사극들은 갖게 되었지만 완성도는 현저히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 칼바람이 쌩쌩 부는 시기에 가녀린 한복을 입고 나타난 ‘황진이’는 칼 대신 거문고를 메고, 전장 대신 연무장에 올라 그 화려한 몸짓을 선보였다. 사극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미(자연, 의복, 고건물)를 느끼게 된 것은 여타의 사극과 달리 ‘황진이’가 거둔 최고의 성과가 아닐까. 미학이라고 해봐야 고작 중국식 무협동작의 아름다움 정도였던 우리네 사극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이다. 상대적으로 짧은 횟수로 인해 역시 많은 아쉬움이 있는 사극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충분한 캐릭터와 그것을 소화해낸 아낌없는 연기, 그리고 이야기성에 연출력까지 돋보인 사극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이 저 고구려사극들과 한바탕 걸판진 승부를 벌인 ‘황진이’에 ‘웰 메이드 사극’이란 호칭을 붙이는 이유다.

‘하얀거탑’, ‘무늬만 전문직’ 도려낼까
작년부터 슬슬 불기 시작한 것이 제대로 된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요구. 외국의 시즌제 드라마들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많아지고 우리네 멜로 드라마들이 식상해지면서 생겨난 수요이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전문직 드라마’는 포장만 그럴 듯했을 뿐, 막상 뜯어보면 멜로 드라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형사나 의사, 변호사가 등장해도 그들의 직업적인 특성이 드라마의 갈등 요인을 작용하는 것이 아닌, 여전히 트렌디 드라마의 삼각, 사각관계만이 드라마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 결국에는 다 그럴 것이라는 예상을 깬 것이 ‘하얀거탑’이다.

이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일단 대부분이 기혼자들이다. 그러니 삼각 구도 같은 건 애초에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만드는 요인은 따로 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의사라는 집단이 가진 막강한 권력과 그 이면을 움직이는 욕망들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권력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고 그 대결구도 속에서 신분상승 욕구를 기도하는 보편적인 인간 욕망의 정서를 의사라는 캐릭터 속에 제대로 녹여놓은 것이 그 성공 요인이다. 요컨대 의사는 사람을 살려야 하는 가장 인간적인 직업이면서도 동시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이 이 드라마 캐릭터들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이다. 김명민을 비롯한 이정길, 김창완의 야누스를 방불케 하는 연기와 수술대를 중심으로 긴박한 상황을 잡아내는 연출력이 잘 맞물려, 멜로 없이도 성공 가능한 ‘웰 메이드 전문직 드라마’를 예고하고 있다.

드라마들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그 진화에는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 실험이다. 트렌디 드라마와 사극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난 마당에, 이제 남은 전문직 드라마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우리네 드라마 지평은 더 넓어질 것이 틀림없다. 관건은‘리얼리티’다. 얼마나 달라진 시청자들의 감성을 따라잡고, 얼마나 치열하게 드라마의 정밀도를 높여 실감나게 만드느냐가 그 성공의 척도가 될 것이다. 트렌디 드라마는 좀더 트렌드를 정확히 읽어야 하고, 사극은 사료에 충실해야 하며, 전문직 드라마는 그 전문분야에 정통해야 할 것이다. ‘하얀거탑’을 끝으로 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드라마들이 '제대로 만들어지는' 그 날, 더 이상 ‘웰 메이드 드라마’란 호칭은 불필요해질 것이다. 이것이 ‘하얀거탑’의 성공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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