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투'부터 '개콘'까지, 장수 예능들이 겪는 딜레마

 

SBS 예능 <정글의 법칙>이 휴지기를 갖는다는 발표가 나오자, 항간에는 '종영'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물론 <정글의 법칙>의 휴지기는 말 그대로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해외 촬영이 사실상 어렵게 됐기 때문에 잠시 휴지기를 갖게 된 것.

 

하지만 종영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건, 최근 일련의 장수 프로그램들이 '휴지기'를 선언했지만 사실상 폐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롯된 것이다. KBS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 대상에 올랐다. <해피투게더>가 먼저 지난 4월 시즌 종영했고, <개그콘서트> 역시 휴지기를 선언했다. <해피투게더>도 <개그콘서트> 폐지가 아닌 재정비를 위한 휴지기를 선언함으로써 여지를 남긴 건 꽤 오래도록 장수해온 이 프로그램들을 폐지한다는 건 그만큼 부담이 크기 때문이었다.

 

장수프로그램들은 물론 장수의 비결이 있다. 그만큼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프로그램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해피투게더>는 2001년에 시작해 최근 시즌4까지 이어지며 장수했고, 최고로 잘 나갈 때는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 <개그콘서트>도 1999년 시작해 20년을 훌쩍 넘긴 장수프로그램으로 35%를 넘기는 최고시청률을 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장수했다는 건 지나간 트렌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해피투게더>나 <개그콘서트> 모두 달라진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끝없는 변화를 시도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이 두 프로그램이 모두 휴지기를 선언한 건,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해당하는 형식 틀 자체가 지금의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여전히 괜찮은 시청률과 적당한 화제성을 가져가는 장수 프로그램들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1박2일>이나 <정글의 법칙>, <런닝맨>,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같은 프로그램들이 그렇다. 이들 장수 프로그램들은 색다른 스토리텔링이나 재미요소를 가져오기보다는 본래 프로그램이 갖고 있던 자산들을 반복 재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1박2일>은 여행과 복불복 게임의 반복이고, <정글의 법칙>은 정글 서바이벌의 연속이며, <런닝맨>은 게임과 캐릭터 예능을 게스트만 바꿔가며 해오고 있다. 물론 음악 예능은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불후의 명곡>이나 <복면가왕> 역시 색다른 걸 기대하기보다는 그저 있어서 틀어놓는 프로그램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채널이 다양화되고 예능의 트렌드도 급속히 변화해가고 있어 장수 프로그램들에 어떤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괜찮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1박2일>이나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같은 프로그램은 그 형태 그대로 좀 더 나가기를 원하지만, <해피투게더>나 <개그콘서트>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건 쌓아올린 탑이 한 순간에 무너져 초라해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사실이다.

 

방송사의 입장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장수 프로그램이 식상하다고 폐지하고 새 프로그램을 얹는 건 이중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한 기회비용을 치러야 하는데다, 새로 만든 프로그램이 잘 될 거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점점 기울어가는 장수 프로그램을 마지막까지 소진시키는 건 방송사를 위해서도 해당 프로그램과 그 프로그램에 한 때 열광했던 시청자들을 위해서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MBC <무한도전>이 박수칠 때 과감히 시즌 종영을 선언하고 휴지기를 거쳐 <놀면 뭐하니?>로 색다른 시도를 한 건 모험적이었지만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휴지기라는 선택은 그래서 꽤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힘이 빠져 있는 상태에서 무작정 애써 달리기보다는 잠시 멈춰서 지금의 트렌드도 들여다보고 거기에 맞는 버전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건 더 오래 갈 수 있는 길이 되기도 할 테니 말이다. 물론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온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휴지기를 통해 고민해볼 수도 있을 게다. 오래된 프로그램은 그만한 힘이 있다는 뜻이지만, 그만큼 트렌드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뜻도 된다. 장수 프로그램들이 겪는 이러한 딜레마를 슬기롭게 넘는 방법을 고민할 시점이다.(사진:MBC)

'악인전', 연예인 관찰카메라를 특별하게 해주는 음악

 

이것이 바로 KBS 예능 <악인전>의 진가가 아닐까 싶다. 뮤지션들이 꼽는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음악 천재 헨리의 만남이 그것이다. 사실 이 조합은 그 특이한 만남만으로도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나이 차도 많이 나고, 외국인인 헨리와 문화적 차이도 느낄 수 있는 함춘호다. 게다가 기타 치는 함춘호와 바이올린을 켜는 헨리의 조합이라니.

 

그 많은 음악 프로그램들이 주로 보여준 것들은 '노래들'이다. 하지만 이번 <악인전>에서 함춘호와 헨리가 슬쩍 보여준 건 '연주'라는 점에서 더 주목하게 만든다. 과연 함춘호의 기타 선율은 어떻게 헨리의 바이올린과 어우러질까. 클래식한 함춘호의 스타일은 어떻게 일렉트릭하고 모던한 헨리의 스타일과 만나 음악적 교감을 이뤄낼까.

 

그들이 처음 만나는 공간이 낙원상가라는 점도 특별했다. 음악인들의 성지와 같은 곳이 아닌가. 함춘호가 누군지를 몰라 악기점 사장님들에게 탐문(?)을 하고 다니는 헨리의 엉뚱한 모습은 음악도 음악이지만 관찰카메라에도 그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를 보여준다.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익숙해진 관찰카메라가 아닌가.

 

헨리 특유의 찧고 까부는 스타일은 함춘호를 만나면서 묘한 긴장감을 만든다. 함춘호의 표현대로 언제 어디로 도망갈지 알 수 없는 자유로운 강아지 같은 헨리는 대뜸 함춘호 앞에서 자기도 기타를 잘 친다며 도발하고, 연주를 듣고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에 빠져든다. 그러더니 갑자기 바이올린을 빌려와 함춘호와 잼을 제안한다.

 

마치 대결하듯이 이뤄진 잼이지만 오래도록 함께 연주를 해왔던 사람들처럼 주고받으며 음악으로 밀당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악인전>이라는 이 프로그램이 드디어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아낸 것 같은 풍경을 그려냈다. 스팅의 'Shape of my heart' 기타 연주에 즉흥적으로 선율을 얹는 헨리의 바이올린은 시청자들에게 이 악기 연주가 가진 음악의 묘미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함춘호와 헨리의 이야기는 다시 헨리의 작업실로 이어졌다. 피아노는 물론이고 바이올린 등등 다양한 악기들로 채워져 있는 작업실에서 함춘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이런 저런 악기 연주를 들려주는 헨리의 모습이 담겨졌고, 처음에는 냉랭하다가 차츰 그 연주에 빠져드는 함춘호의 모습은 이 두 사람의 교감이 조금씩 이뤄져 가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사실 <악인전>은 지금껏 관찰카메라가 포착해온 연예인들 중 그다지 그 카메라 앞에는 잘 등장하지 않던 레전드 음악인들을 세운 것만으로도 기대를 만들어낸 바 있다. 송창식 같은 기인의 등장이 그렇다. 즉 <악인전>이 제대로 잡아낸 포인트는 관찰카메라에 음악을 덧붙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함춘호와 헨리의 등장은 <악인전>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가를 드러낸 면이 있다. 그저 연예인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만들고 즐기는 이들의 특별한 일상이어야 한다는 것. 꼭 노래가 아니더라도 연주 같은 상대적으로 많이 보여지지 않은 음악의 다양한 영역들을 관찰한다면 더 흥미로워질 수 있다는 것. 거기에 <악인전>의 진가가 있지 않을까.(사진:KBS)

'놀면 뭐하니' 박명수·정준하보다 이효리·비가 더 기대되는 이유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 갑자기 <무한도전>의 풍경이 펼쳐졌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100마리 치킨을 무료로 나누는(이 미션을 성공하면 1000마리 치킨을 기부하는 콘셉트였다) 이른바 '토토닭'에 '치킨의 명수' 박명수와 일일 인턴 정준하가 출연하고 이벤트 현장을 찾아온 하하가 합류하면서 생겨난 풍경이다.

 

사실 시청자들은 여전히 <무한도전>의 시즌 종영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더해진 <무한도전>의 풍경은 어딘지 조화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줬다. 그것은 <무한도전> 시절의 흔했던 상황극이나 소동극이 <놀면 뭐하니?>에서 재연되는 것이 새로운 재미를 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뻔한 재미의 코드가 박명수의 버럭 개그다. 소리를 지르며 "어떡하냐"를 연발하는 그 정신없는 멘트들은 <무한도전> 시절 박명수의 전매특허 같은 모습이지만,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가 버럭 댈 때 그를 적당히 눌러주는 다른 멤버들이 있어 그것이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던 <무한도전> 시절의 풍경과 <놀면 뭐하니?>의 그것은 사뭇 달랐다.

 

일일 인턴으로 참여한 김연경 선수에게 버럭 대는 박명수의 모습은 그래서 다소 불편한 감을 주었고, 정준하의 참여로 만들어진 하&수 케미도 예전 같은 재미보다는 너무 정신없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차를 대고 기다리는 손님들에게도 버럭 소리를 지르는 그 모습은 최근의 방송 트렌드가 상황극보다는 자연스러움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나마 김연경이 박명수의 그런 버럭을 받아주지 않고 맞서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그 불편함이 상쇄되긴 했지만, 여러모로 박명수의 한계가 느껴지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토토닭'은 다소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고 나아가 불필요한 장면들도 들어가 있어 본래 취지가 흐려지는 면들도 있었다. 대놓고 PPL로 들어온 교촌치킨이 그렇고, 하하가 이벤트장에 찾아와 일을 함께 하게 되는 그 상황도 너무 정해진 수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이벤트장으로 가는 도중 갑자기 박명수가 아내와 딸이 탄 차를 발견하고 딸이 요즘 무용을 한다는 걸 굳이 인서트를 집어넣은 장면도 그랬다.

 

<무한도전>이 그립긴 하지만, <놀면 뭐하니?>는 역시 유재석이 홀로 이끌어가며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낼 때 더 흥미로워진다는 걸 이번 '토토닭' 프로젝트는 보여줬다. 사실 지난 번 비가 출연해 이효리와 비가 함께하는 혼성 댄스 그룹 도전의 이야기를 기다렸던 시청자들이 많았을 게다. 그들의 이야기가 이처럼 기다려지게 되는 건 그 조합이 새롭고 그래서 기대감도 크기 때문이다.

 

박명수의 버럭과 정준하와 맞춰 만들어내는 티격태격 '하&수' 케미, 그리고 하하 특유의 과장된 '호객행위(?)' 같은 장면들은 <무한도전>이라는 틀 안에서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다소 불편한 대립 같은 게 등장해도 그걸 상쇄해주는 서로 간의 물고 물리는 관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 같은 새로운 틀에 자꾸만 <무한도전>의 그 색깔을 끼워 넣으려고 하는 시도는 조금씩 진화해가고 성장해가던 <놀면 뭐하니?>가 뒷걸음질을 치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다양한 세계를 확장시키고 결합시키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무한도전>처럼 강한 세계가 아직 확실히 성장하지 않은 <놀면 뭐하니?>와 붙었을 때 자칫 이 새로운 세계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는 걸 유의할 필요가 있다.(사진:MBC)

'팬텀싱어3', 역시 천상계 존노, 만드는 무대마다 역대급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가수가 나왔을까.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3>에서 듀엣미션에 나온 존노는 카운터테너 최성훈과 함께 아비치의 EDM 'Addicted to you'로 또 다시 역대급 무대를 만들었다. <팬텀싱어> 전 시즌을 통틀어 최초로 시도되는 EDM의 크로스오버. 사실 EDM을 성악을 하는 이들이 크로스오버 한다는 건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존노와 최성훈은 마치 자신들의 노래를 부르는 듯 자유롭게 노래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최성훈이 카운터테너 특유의 목소리로 마치 새가 노래하듯 고조시키면 존노는 마치 그 노래에 추진력을 넣는 듯한 그런 하모니를 선보였다. 특히 고음을 너무나 편안하게 소화하는 존노는 후반부에 리듬이 더해지자 마치 노래를 갖고 노는 듯한 자유로움을 보여줬다. 음악 자체가 되어버린 듯한 존노의 그 자유로움은 다른 가수들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그만의 색깔이었다.

 

프로듀서들의 극찬이 쏟아졌다. 김이나는 "천상계 무대"라며 "선물" 같았다고 했고, 윤상은 이 조합이 "반칙"이라며 "결승을 미리 보는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옥주현은 자신의 심장을 맡긴 듯 쥐락펴락한다고 했고, 확실히 "우린 다르다"는 걸 보여준 무대라고 했다.

 

이날 특별게스트로 참여한 <팬텀싱어> 초대 우승팀인 포르테 디 콰트로와 2대 우승팀 포레스텔라도 그 무대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조민규는 "내가 지금 뭘 보고 뭘 들은 거지? 정말 짜릿한 느낌의 무대"였다고 했고, 강형호는 "너무 충격적"이었다며 "벌써 2:2 듀엣에서 이 정도 무대면 3중창, 4중창은 도대체 어떤 게 나올 건지 기대가 된다"고 했다. 이벼리는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며 "집에 가서 잠을 못 이룰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존노는 <팬텀싱어3>에서의 무대 하나하나가 레전드로 평가되고 있다.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안드레아 보첼리와 셀린 디온이 부른 'The Prayer'는 그 듀엣 곡 구성 자체가 그러하듯이, 두 사람이 한 팝적인 발성과 성악적인 발성을 넘나들며 이 가수가 어째서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단을 뽑는 이 오디션에 나왔는가를 증명한 무대였다. 팝적인 발성은 편안함을 줬고 성악 발성은 부드러움과 안정감 그리고 시원함까지 안겨줬다.

 

두 번째 1:1 미션에서 국악을 하는 고영열과 함께 부른 쿠바 노래 'Tú eres la música que tengo que cantar' 역시 역대급 무대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고영열이 국악 특유의 한의 정조를 담아 노래하고, 그 위에서 존노는 그 한을 흥으로 넘기는 듯한 그루브를 선보였다. 쿠바가 가진 쓸쓸함과 유쾌함이 음악이라는 하나로 엮어지는 예술적 순간을 보여준 존노와 고영열의 무대는 먹먹한 감동까지 선사했다.

 

팝과 성악이 어우러지는 팝페라는 물론이고, 국악의 한의 정서와 더해져 쿠바 곡을 소화해내며, 이젠 카운터테너와 함께 EDM을 독특하게 해석해낸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렇게 다양한 영역과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도, 무리한 느낌이 전혀 없고 오히려 그 음악 안에서 자유로움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팬텀싱어>라는 크로스오버를 지향하는 오디션에 이만큼 어울리는 가수가 있을까. 향후 3중창, 4중창으로 이어질 그의 또 다른 역대급 무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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