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호우시절'이라는 기분좋은 감성 시간여행 '호우시절', 멜로를 넘어 삶을 관조하다 "그땐 참 좋았었지"하고 말하는 자의 눈빛은 쓸쓸하다. 시간은 그 좋았던 시절이 늘 좋은 시절이 되게 놔두질 않는다. 흘러가고 흘러가면서 시간은 심지어 그 좋았던 시절의 기억마저 마모시킨다. 그러니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그 무차별로 흘러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허진호 감독의 다섯 번째 멜로, '호우시절'은 바로 이 시간을 응시하면서 과거의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좋았던 시절을 현재진행형으로 돌려놓는 영화다. 영화는 출장을 가게 된 박동하(정우성)가 이제 막 중국 청두에 내린 비행기 안에서 시차에 맞게 시계를 돌려놓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시간여행(?)에 대한 짧은 암시다. 그 여행은 대나무 숲길을 걸어가는 휴식 같.. 더보기
'내 사랑 내 곁에'의 열연, 김명민만이 아니다 '내 사랑 내 곁에'의 진정성을 만든 배우들 20kg이라는 살인적인 감량.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 심지어는 미이라 같다는 말까지 들은 김명민의 바짝 마른 몸에서는 눈물 한 방울 나오는 것조차 신기할 따름이었다. 루게릭병 환자 백종우 역을 하면서 그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중력을 견뎌내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들어올리기가 어렵고, 얼굴에 달라붙은 모기 한 마리 쫓아내지 못하는 이 잔인한 병은 고단하고 힘겨운 육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김명민이 왜 그런 몸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는 이 영화의 다른 중력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니까. 자칫 눈물의 신파로 번져나갈 수 있는 어수룩한 루게릭병 흉내로는 이 병이 갖는 눈물의 진정성을 보일 수 없었을 테니까. 이처럼 이 영화에서 김명민에.. 더보기
이들이 하면 신파도 작품이 된다 '애자'의 최강희, '내 사랑 내 곁에'의 김명민 말기 암 판정을 받았지만 그 남은 짧은 시간마저 병치레로 자식이 고생할까 수술조차 받지 않으려는 엄마. 그 엄마 앞에서 늘 투덜거리기만 했던 딸이 억누르고 억눌렀던 눈물을 터뜨린다. 영화 '애자'의 한 장면. 전형적인 신파의 한 장면 같지만, 실상 영화를 보면서 이것이 신파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예쁘게 눈물 흘리기보다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잔뜩 일그러져 심지어 못생겨 보이는 최강희의 얼굴을 보면 거기서 분명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의식과 감각은 그대로인 채 근육만 마비되어 가는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는 종우(김명민). 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나 끝가지 그 곁의 사랑이 되어준 지수(하지원).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의 구도는 역시 병원.. 더보기
영화는 시작도 안했는데 감동을 주는 배우, 김명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배우, 김명민 김명민의 연기투혼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불멸의 이순신'에서 신화 속의 이순신을 인간 이순신으로 살려놓고,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을 통해 우리 시대의 욕망을 들춰내고는,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로 변신해 오합지졸 갈 곳 몰라 하는 서민들에게 벼락같은 호통과 당당함을 가르친 우리 시대의 진짜 배우, 김명민. 그는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이제 온 몸의 근육이 점점 마비되어가는 루게릭병 환자 종우로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MBC스페셜'이 조명한 배우 김명민은, 이미 종우처럼 걷고 종우처럼 생각하고 종우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자동차 앞에서 넘어지는 장면을 찍기 위해 김명민은 계속 "한번만 더"를 요구했다. 정작 그것을 요구해야 할 감독 스스로도 숙연해질.. 더보기
'차우'와 '해운대', 웃음의 롤러코스터를 타다 감정의 롤러코스터, '차우'와 '해운대' 무덤을 파서 사체의 머리를 먹어치우고, 어디선가 나타나 사람을 훅 채어 게걸스럽게 뜯어먹으며, 심지어는 인가에까지 내려와 무차별로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는 식인 멧돼지는 말 그대로 괴물이다. 그 괴물을 잡으러 숲 속 산장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비장해질 수밖에 없다. 긴박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 듯, 캠코더로 찍힌 듯한 영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는데 순간, 캠코더를 든 사람이 말한다. "감정이 안 살잖아요. 다시 갈게요." 그러자 그 비장했던 사람들이 과장되게 연기를 한다.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온다. 공포에서 순식간에 풀려진 긴장이 만들어내는 웃음이다. 괴수영화를 표방한 '차우'에서 이런 웃음은 흔하다. 살인사건이라 판단되어 시골로 수사를 온 신형사(박혁권)는 엉뚱..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