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프린스, 광수의 매력에 대한 짧은 탐구

 

“베트남에서는 어떻게 이걸 받아들이고 리액션 해야 하는 지 몰랐어요. 너무 감사한데 말로는 제가 베트남어를 모르니 표현도 안 되고... 또 <런닝맨>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미션 수행도 해야 해서 너무 얼떨떨했죠.” - 아시아 프린스(?)로 돌아온 이광수

 

도대체 이 갑작스런 환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몰려드는 인파에 빠져나가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런닝맨들의 풍경. 최근 <런닝맨> 아시아 레이스에서 마카오에 이어 베트남에서받은 열광적인 환대는 오히려 당사자들까지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런닝맨> 출연자 모두가 그 주인공들이었지만, 특히 플랜카드를 들고 연실 이광수를 연호하는 현지 팬들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는데. 이 놀라운 이광수의 매력은 어디서 생긴 걸까. 우리에게 멱PD로 더 잘 알려진 김주형 PD는 그 이유를 캐릭터에서 찾았다.

 

“먼저 게임이라는 세계 공통분모가 있어서 해외 팬들도 <런닝맨>을 쉽게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또 인터넷을 통한 한류가 이미 있으니까 예능도 그 길을 따라간다고 보입니다. 특히 이광수를 좋아하는 건 그 캐릭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약간 측은한 캐릭터인데 그러다 발끈하는 반전을 보여줌으로써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왠지 감싸주고 싶은 캐릭터잖아요. 근데 늘 당하는 건 아닌.”

 

'런닝맨'(사진출처:SBS)

이광수가 확실히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캐릭터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그가 가끔은 김종국 같은 강한 캐릭터와 맞붙는 이변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린이란 별명은 그걸 잘 말해준다. 키가 190센티에 달하는 거구지만 어딘지 약해보이고, 그래도 그 장신이 가진 힘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캐릭터. 덩치는 큰 데 약한 모습이 주는 코믹함과 페이소스가 있다. 임형택 PD는 이광수 캐릭터가 가진 엇박자적인 요소가 그 인기의 요인이라고 꼽았다.

 

“코드가 한국적인 코드라기보다는 외국적인 것 같습니다. 마치 ‘덤 앤 더머’처럼 줄곧 바보스러운 캐릭터로만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모델 출신이라는 것도 엇박자죠(웃음). 언발란스한 면들이 함께 뒤섞여 있는 그런 캐릭터. 그래서 다방면으로 재미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정말 <런닝맨> 캐릭터에 있어서 이광수만큼 여러 결을 보여주는 캐릭터도 드물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이번 아시아에서 본 팬덤이 아직도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무실에서도 기자분들이 전화 와서 그 이유를 묻곤 한다는데 사무실 직원들도 제대로 답을 잘 못하겠던가봐요. 저한테 와서 “너도 모르겠지?” 하고 물으면 “저도 모르겠어요”라고밖에 답할 수가 없더라구요.”

 

왼쪽부터 임형택PD, 필자, 조효진PD, 이광수, 김주형PD

사실 이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싸이가 어느 날 갑자기 국제가수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은 수많은 기존 한류의 흐름들이 만들어놓은 길에서 어느 날 갑자기 피어난 꽃과 같다. 이광수에 대한 해외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이미 예능 한류는 <X맨>과 <무한도전>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재석에 대한 팬덤은 아마도 가장 클 것이다. 이른바 유재석 사단은 <X맨>에서 <패밀리가 떴다>로 이어져 지금의 <런닝맨>까지의 해외 팬덤의 계보를 만들고 있다. 이 꾸준히 만들어낸 예능 한류의 길이 있었기 때문에 이광수라는 캐릭터가 갑자기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 조효진 PD는 실제로 이광수가 더 열광적인 팬이 많았지만 출연자들에 대한 고른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유재석은 말할 것도 없고 김종국, 하하, 개리, 송지효, 지석진까지 플랜카드는 다 비슷비슷한 숫자로 들어 있었어요. 다만 이광수를 연호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죠. 즉 이광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죠. 김주형 PD는 그게 놀라워 자막에 이렇게 달았더라구요. ‘이광수라는 이름이 베트남어로 다른 뜻이 있는 거 아닌가’ 하고요(웃음). 같이 갔던 같은 소속사의 이동욱은 이광수 인기에 깜짝 놀랐더라구요. 결국 이광수 에스코트까지 자청해서 했죠.”

 

이광수는 처음 CF 모델로 데뷔했고 그러다 <지붕 뚫고 하이킥> 시트콤에 발탁됐고 <동이>에 출연할 때 <런닝맨>을 시작했다. 이광수는 당시 <런닝맨>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그런 기회에 해보지 않으면 평생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조효진 PD는 당시 이광수와의 첫 만남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유재석, 김종국, 하하는 늘 같이 했던 식구지만 새로운 얼굴이 필요해 여러 명을 인터뷰했었죠. 이런 저런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왔어요. 이광수랑 송중기도 그 때 본 거죠. 처음에 딱 들어서는데 호피무늬 옷을 입고 왔더라구요. 그게 그냥 재밌었죠. 말을 하는데도 사람을 궁금하게 하는 면이 있었어요. 긴장을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긴장을 안 한 건데 저렇게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요즘 나오는 모습이 그 때 그 모습이었죠. 당황하면서 한 마디 할 때 빵 터지는 그런 모습. 피디나 작가가 죽 서 있는 데 그게 쉽지는 않은 일이죠.”

 

조효진 PD는 이광수의 장점으로 습득력이 빠른 것을 꼽았다. 사실상 <런닝맨>이 예능을 처음 경험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빨리 적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런 습득력 또한 이광수는 좋은 멤버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캐릭터는 그렇게 <런닝맨> 멤버들과의 케미(관계)가 일조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광수는 무엇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 제일 자주 만나고 전화통화 자주 하는 건 종국이형이지만 그래도 두루두루 만나고 물어보는 편이에요. 이런 일 있을 때는 재석이형, 이런 일 있을 때는 종국이형, 이런 식으로요. 주로 개인적인 일들 때문에 전화하곤 하는데요,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하지 않죠. 또 제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혼을 내주는 선배도 많지 않아요. 그게 다 저한테는 엄청 도움이 되는 일이죠.”

 

<런닝맨>에서 이광수는 특히 김종국과 기린과 사자 캐릭터로 대립구도를 만들어 큰 웃음을 주고 있다. 두 캐릭터가 만났을 때의 상승효과는 분명하다. 즉 김종국의 강한 캐릭터를 때론 배신하고 눌러주는 이광수가 중화시켜준다는 점이다. 그래도 그 김종국 같은 능력자를 때로는 어떻게 이기는지 그 비결이 궁금했다.

 

“사실 종국이형이 저를 뜯으려고 작정했다 느껴지면 포기하게 되요. 그건 마치 그냥 교통 사고 난 느낌, 그런 거죠. 피할 수가 없어요. 방심도 거의 하지 않죠. 다만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할 때가 가끔 있어요. 물론 제가 뭐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촬영에 몰입하다보면 거의 본능적인 욕구가 생기죠. 정말 이기고 싶은(웃음).”

 

<런닝맨>에서 유재석은 거의 독보적이다. 이광수가 그만큼 편하게 예능을 할 수 있는 바탕에는 그가 있었다고 한다. 이광수가 생각하는 유재석이 궁금했다.

 

“사실 방송보다는 방송 아닐 때 시청자분들이 그 평소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정말 의지 많이 하고 개인적인 고민도 많이 들어주시고. 저한테는 카메라 안에서도 큰 힘이 되지만 카메라 밖에서도 큰 도움이 되는 그런 분이죠.”

 

함께 초창기에 <런닝맨>에서 뛰었던 송중기는 작년 대세가 되었지만 이광수와는 절친이다. 그래서 이광수는 같이 <착한 남자>를 찍으며 훨씬 더 몰입이 잘 되었다고 한다.

 

“평소 친해서 드라마 같이 찍을 때 편하기도 했고 몰입도 잘됐죠. 송중기는 되게 솔직해요. 남자답기도 하고 섬세한 면도 있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런닝맨>에 공효진씨가 나왔을 때 <착한 남자>에서 송중기씨는 되게 바쁜데 저는 한가하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작가 조카분들이 그걸 보고 작가님에게 전화를 해서 많이 써달라고 했나봐요. 작가님이 미안하다고 하더라구요(웃음).”

 

이번 아시아 레이스를 통해 아시아 프린스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정작 이광수는 그 모든 것이 다른 멤버들 덕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해외에서의 인기란 국내에서와는 달리 좀 더 객관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출연진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게 마련이지만 해외에서라면 그저 프로그램에서 얼마나 역할을 하느냐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예능을 하고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멤버들과의 관계를 얘기하며 주저하는 이광수에게 느껴지는 건 <런닝맨>에 대한 무한 애정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런닝맨>으로 시작해서 형들이랑 같이 이렇게 하고 있는데 다른 데서 다른 사람과 시작하라면 솔직히 자신은 없죠. 촬영하면서 굉장히 편한 게 아무렇게나 막 던져도 형들이 다 챙겨주니까 정말 편하고 자유로워요. <런닝맨> 안에서 그런 모습이 좋다고 말씀해주시는데 다른 데서 하는 것에 그만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저 혼자 만든 캐릭터가 아니잖아요.”

 

사실 이광수는 연기자다. 따라서 <런닝맨>이라는 예능으로 먼저 주목받은 것은 부담이 될 수도 한다. 하지만 작년 <착한남자>로 정극연기를 통해 이광수는 연기자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코믹한 이미지와 진지한 이미지를 모두 갖추는 것만큼 연기자에게 좋은 건 없다. 그래서 이광수를 보다보면 마치 영화 <인생의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 같은 배우의 이미지가 기대된다. 코믹하지만 계속 쳐다보면 코끝이 찡한 그런 배우. 이광수라는 배우의 매력은 아시아 프린스라는 별명을 얻고도 여전히 수줍고 선한 미소에 있는 것은 아닌지.(사진 : 전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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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의 남몰래 흘리는 눈물과 <그 겨울>

 

조인성의 연기에 대한 대중들의 기억은 오래도록 <발리에서 생긴 일>에 멈춰져 있었다. 그것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이 흉내 내곤 했던 입에 주먹을 넣을 듯 눈물을 삼키며 전화를 거는 장면으로. 이렇게 된 것은 그 역할이 조인성이 가진 이미지와 가장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찌질하다고 표현될 만큼 자기 욕망에 충실한 그가 전화를 통해 말로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상대방 몰래 솟구치는 눈물을 흘리는 연기에는 연약함과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고통스럽게 참아내야 하는 마음이 절절히 묻어났던 것이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사진출처:SBS)

바로 그 겉으론 강한 척(심지어 나쁜 척) 하면서도 사실은 그 연약하리만치 섬세한 감정이 터져 나올 때 조인성이라는 연기자는 자신의 매력을 드러낸다. 한 마디로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이랄까. 드라마적으로 이런 장면이 효과적으로 표현되려면 조인성과 상대역 사이에 어떤 차단막이 필요하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전화기가 그 소통과 차단막의 역할을 해주었듯이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는 오영(송혜교)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설정이 그 차단막 역할을 해주고 있다.

 

보이지 않는 상대인 오영과 오수(조인성)가 엮어가는 멜로가 가슴 아픈 것은 그들 간의 소통이 거의 말로 이뤄질 수 있지만 시청자들의 눈에는 그들이 하는 말 이면에 놓여진 숨겨진 얼굴이 보이기 때문이다. 오영 앞에서도 심지어 오수는 짐짓 나쁜 척, 쿨한 척 하지만 자꾸만 솟아나는 먹먹해지는 마음을 애써 숨기려 한다. 그녀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장면이 주는 소통의 일시적인 단절은 시청자들을 애타게 만들 수밖에 없다.

 

물론 시각장애인이라는 설정 이외에도 이 드라마는 꽤 많은 차단막들을 설치해두었다. 예를 들어 돈 때문에 접근한 오수라는 겉면과 점점 돈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는 오수의 속내도 조인성이라는 연기자의 애써 다문 입술과 힘준 눈빛을 통해 드러나고, 잠자는 오영의 입술에 닿을 듯 멈춰서 있는 그의 입술은 연인 감정을 느끼지만 결국 오빠라고 속일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의 차단막에 의해 머뭇거린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과 속내 사이에 놓여진 이러한 차단막은 오수와 오영이 가진 삶에 대한 태도 속에도 들어가 있다. 사랑 따윈 필요 없고 살고 싶지 않다는 오영과 삶의 의미 따윈 필요 없고 그저 살아 있으니 살아봐야겠다는 오수는, 서로 만나 감정을 나누면서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왜 날 이렇게 자꾸 약하게 만들어 넌. 왜 날 자꾸 살고 싶게 만들어 넌.” 겉으론 화를 내고 있지만 오영은 오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드러낸다.

 

오영에게 “살고 싶다”는 얘기를 들으려는 오수와, 오수에게 자꾸만 오빠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되는 오영. 결국 이 오영과 오수의 사랑을 더 절절하게 만드는 순간은 이들의 단단한 겉껍질이 벗겨져나가고 서로의 진짜 알맹이가 드러날 때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으나 그 앞에서 애써 쿨한 가면을 써오던 두 사람이, 바로 그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결국 마음을 열고 더 아프게 서로를 껴안는 것. 이것은 어쩌면 우리네 삶과 사랑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아닐까.

 

조인성이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특히 그만의 매력을 폭발시키는 이유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차단막(시각장애, 오빠동생 설정, 돈과 사랑 같은)이 워낙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조인성이라는 연기자가 가장 자신의 매력을 끌어낼 수 있는 영역이니까. 그가 미간을 찡그리고 시선을 살짝 피하며 입술을 앙다물면서 속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르려 할 때 그 아픈 감정은 시청자들의 마음에 바람을 불게 만든다. 마치 차가울수록 자그마한 따뜻함에도 눈물 흘리는 겨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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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는 왜 조승우와 이요원의 운명을 바꿨을까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마의>에 남은 문제는 다시 원래대로 바뀐 운명으로 인해 관노가 된 강지녕(이요원)이 과연 면천해 백광현(조승우)과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일 게다. 그간 이병훈 PD의 사극 스타일을 떠올려보면 그 결과를 예측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해피엔딩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단지 그 과정이 궁금할 따름이다.

 

'마의'(사진출처:MBC)

그런데 이 즈음에서 <마의>가 왜 굳이 출생의 비밀을 활용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자극적인 설정을 위해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하고 있는 시점에 이런 의구심은 쓸 데 없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마의>가 가져온 출생의 비밀은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조금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출생의 비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다르다. 여타의 드라마들이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할 때 복수 같은 부정적인 상황을 전제하지만 <마의>는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백광현과 강지녕의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은 강지녕의 친부인 백석구(박혁권)가 백광현의 친부인 강도준(전노민)의 은혜를 갚기 위해 했던 일이었다. 사내아이로 태어나 바로 죽게 될 운명에 처한 백광현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것. 이것은 아이를 바꾸게 되는 출생의 비밀 코드조차 선한 의지로 그려내는 <마의>만의 특별한 선택인 셈이다.

 

또한 출생의 비밀이 왜 필요했는가 하는 점도 <마의>는 남다른 이유를 갖고 있다. 이 드라마는 마의 출신의 백광현이 어의가 되는 성장과정을 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선사회라는 신분사회가 갖는 관습과 편견이 그 장애물로 등장한다. 즉 백광현이 장차 배워야할 의학은 사람의 살을 째고 고름을 빼내는 외과술인데, 이것은 반가의 자제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백광현이 강지녕과 운명이 바뀌는 것은 어찌 보면 백광현에게 가장 낮은 위치로 내려 보내 이 외과술을 하나씩 배워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이것은 출생의 비밀을 역설적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오히려 마의 같은 천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백광현이라는 외과술의 대가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 즉 신분사회의 편견을 넘어서 성장하기 위해 출생의 비밀이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후반부에 이르러 이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고 백광현이 반가의 자제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그가 좀 더 높은 위치, 즉 어의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즉 백광현의 운명을 들여다보면 출생의 비밀이 그의 성장의 단계적인 발판이 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마의>가 출생의 비밀 코드가 갖는 자극적인 효과를 노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헤어졌다 만나고, 몰랐다가 알게 되는 이 출생의 비밀 코드가 갖는 힘은 백광현과 강지녕의 헤어짐과 만남, 또 서로의 진짜 신분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도 충분히 활용되었다. 다만 그 출생의 비밀을 설정한 이유가 조선사회라는 틀 안에서 백광현 같은 외과술의 대가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꽤 설득력 있게 사용되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렇게 잘 활용된 출생의 비밀 코드에도 폐해는 있다. 그것은 백광현의 성장과정을 잘 다루기 위해 활용된 출생의 비밀이 그 다른 쪽 캐릭터, 즉 강지녕이라는 인물에게는 그다지 좋은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강지녕은 그저 바뀌어진 운명 속에서 백광현의 그림자 같은 역할을 할 따름이었다. 이요원의 존재감이 미미하게 여겨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법이다.

 

백광현은 신분을 되찾고 어의가 되기 위한 한 걸음을 남기고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강지녕은 관노가 되어 백광현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 사극이 얼마나 주인공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가 하는 점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의>의 출생의 비밀은 조선사회라는 신분구조 속에서 외과술의 대가로 성장해가는 백광현이라는 인물을 그려내는데 있어 대단히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드라마에서 마구 활용되고 있는 출생의 비밀 코드란 이렇게 내적인 근거가 확실하게 갖춰져야 시청자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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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왕>, 수애는 왜 그저 악녀로 전락했을까

 

<야왕>의 주다해(수애)는 왜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이나 <하얀거탑>의 장준혁이 되지 못했을까. 이들 캐릭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든 성공하려는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욕망은 비뚤어진 것이어서 이들은 모두 악역을 자처하지만 그렇다고 그 악역이 모두 비난받는 건 아니다. 미실은 악역이면서도 자신만의 현실적인 통치 철학을 보여줌으로써, 또 장준혁은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그 역시 사회라는 경쟁 시스템 속에서의 희생자라는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그 죽음에 이르러 시청자들을 고개 끄덕이게 한 인물들이다.

 

'야왕'(사진출처:SBS)

하지만 <야왕>의 주다해는 다르다. 그녀에게는 일말의 동정적인 시선이 사라져버린 전형적인 악녀에 머물러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첫 등장에서 죽은 어머니 사체 옆에 넋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던 모습은 이 가정폭력과 가난에 시달리는 여인이 앞으로 달려갈 욕망의 질주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 후 주다해의 모습은 줄곧 시청자들의 이해를 받기보다는 안쓰러울 정도로 성공에 집착하는 악녀로 일관되었다.

 

의붓아버지를 죽이고는 하류(권상우)를 공범으로 만들어버리고, 그렇게 그녀에게 헌신하는 사실상의 남편이었던 그를 배신하고 심지어 감방에 들어가게 한데다 딸까지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재벌그룹 아들 백도훈(정윤호)의 약점(사실은 그가 누나 백도경(김성령)의 딸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그와 결혼하고, 하류(대신 쌍둥이형인 차재웅이 죽게 되지만)의 살인을 사주한다. 이것도 모자라 백도훈마저 사경을 헤매게 만드는 전형적인 악녀, 그녀가 바로 주다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스토리에 세계관이나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즉 한 사람이 악녀가 되어가는 과정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바라보지 않고 그저 개인적인 차원으로 되돌리는 간편한 선택을 하기 때문에 주다해는 아무런 이해도 받지 못하는 인물로 전락했다. 결국 이것은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잘못은 주다해가 나쁘기 때문으로 귀결되어 버린다. 어린아이 같은 순진하고도 단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남녀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때문이다. 즉 <야왕>이라는 작품에는 전형적인 남성 중심적 시각이 들어가 있다. 물론 선악구도로 나누어 놓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여성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그 자체로 무언가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시각이 존재한다. 남성은 당연히 성공을 꿈꾸어야 하지만 여성은 그러면 안 되는 듯한 관점. 이것은 주다해의 성공 욕구에 대한 근거를 제대로 제시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편한 시선이다.

 

이렇게 주다해라는 악녀가 시스템이 탄생시킨 괴물이 아니라 그 나쁜 심성 때문에 생긴 인물이 됨으로써 <야왕>은 그저 온전한 복수의 게임으로 전락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때로는 마치 성공하기 위해 발악하는 여성과 그것이 무조건 잘못 됐다는 성차별적인 전제 하에 그녀를 막으려는 남성의 대결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만일 주다해를 좀 더 이해될 수 있는 악녀로 그렸다면 이 드라마는 훨씬 풍부한 관점을 가지면서 논쟁적인 이야기를 다룰 수 있지 않았을까.

 

그나마 주다해를 수애라는 어딘지 도도하고 믿음이 가며 그 자체로 동정심마저 유발하는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일 수애가 아닌 다른 연기자가 주다해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생각해보라. 어쩌면 <야왕>은 그저 극악스럽기만 한 막장으로 굴러 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 엉성한 얼개의 스토리는 막장에 가깝지만 그래도 연기자들이 그것을 연기로서 커버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연기자들이 갖고 있는 힘은 세계관이 부재한 허술한 <야왕>의 대본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보게 만드는 힘이다. 권상우의 연기가 그렇고 김성령의 연기가 그렇다. 물론 정윤호는 연기력 부족에다가 그저 바보가 되어버린 백도훈이라는 캐릭터의 한계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긴 하지만.

 

<야왕>은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는 게임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시각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발견하지 않고 그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태도가 그렇고,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여성 차별적 시선도 그렇다. <야왕>의 이 문제를 집약적으로 갖고 있는 인물이 바로 주다해다. 그 어떤 사회의 문제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태생적인 악녀가 되어버린 인물. 볼수록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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