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을 위한 멘토링

'위대한 탄생'(사진출처:MBC)

“위대한 탄생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를 사랑하는 분들이 유독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음악을 통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은미가 백청강을 심사한 후 한 발언이다. 짧은 발언이지만 이 속에는 이은미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잘 담겨져 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은미는 이 발언을 통해 '위대한 탄생'이 드라마가 아니라 음악을 평가하는 오디션임을 강조했다.

사실 '위대한 탄생'이 그저 기획사 같은 곳에서 가수지망생들을 뽑는 오디션이라면 이 말은 틀린 게 없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그런 오디션이 아니라, 이 과정이 TV로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둘은 확연히 다르다. 즉 일반적인 오디션에서 후보자를 뽑는 당사자는 심사위원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형식상 후보자를 뽑는 당사자가 심사위원이 아닌 투표에 참여하는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은미의 이 발언은 (드라마를 사랑하는) 일반인들의 선택을 꼬집은 것이고, 자신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하고 있는 '음악을 통한 오디션' 심사가 정당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소신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은미의 생각과 그 소신 있는 발언이 대중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 속에서 그녀의 심사와 평가가 대중들의 투표에 영향을 주기 어렵고, 때론 정반대의 결과로만 흘러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은 말 그대로 심사하는 사람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라는 존재는 대중들의 인식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은 평가자이면서도 대중들의 가이드 역할을 하며 나아가서는 대중들의 감정이입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즉 심사위원의 독설은 대중들의 반감을 갖게 만들기도 하지만 공감 가는 독설은 대중들을 속 시원하게 한다. 이때 심사위원은 대리충족을 시켜주는 대변자 역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 역할이 늘 대중들과의 관계 속에 놓이기 때문에, 여기서 심사위원은 사실상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흘러가는 방향(어쩌면 스토리)을 읽어야 한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간파해야 한다. 이것은 대중들의 생각에 휘둘린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의 생각을 알아야 거기에 맞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것으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비교점으로 생각해야할 인물이 '슈퍼스타K'에서 독설가였지만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심사위원 이승철이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은미와는 사뭇 다른 결과를 만든 걸까. 이승철은 우선 '슈퍼스타K'의 흐름 전체와 거기서 심사위원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즉 초반 경쟁자들의 수가 많을 때는 이를 걸러내기 위해 거침없는 독설을 내뿜었다. 지적도 발성문제에서부터 음정문제까지 구체적이었다. 때론 지나치다 싶은 독설 때문에 그걸 바라보는 대중들과의 대립적인 관계가 형성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10여 명으로 경쟁자들이 좁혀졌을 때 이승철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구체적인 지적은 피했고(사실 이 단계에 올라온 경쟁자들에게 이런 지적은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토록 까칠하던 그가 칭찬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무대에 선 경쟁자들에게 권위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변화 지점에서 대중들은 심지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얻기도 했다. 이것은 단순히 대중들을 의식한 인기발언이 아니다. 이승철은 이 지점부터 심사위원의 역할은 심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거기 무대 위에 선 경쟁자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보통 기획사에서 치러지는 오디션과 TV로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른 점 중에 또 한 가지는 그 심사위원 역시 재평가된다는 점이다. 즉 이승철은 '슈퍼스타K'를 통해 가수로서의 자신의 권위를 다시 세웠고 대중들은 이를 수긍했다. 하지만 이은미의 경우는 어떤가. 사실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으로 서기 전까지 이은미는 우리들에게 '맨발의 디바'였다. 가창력 하면 떠오르는 인물. 오로지 노래 그 자체로 대중들을 쥐고 흔드는 카리스마. 그런 것이 이은미의 아우라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대한 탄생'을 거치면서 그녀는 어딘지 대중들과는 동떨어져 혼자 달려가는 독선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이은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이은미는 지금 그 악역이 되어가고 있다. '위대한 탄생'이라는 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치고는 가혹한 일이다.


 

'UV신드롬비긴즈'(사진출처:Mnet)

한국전 당시 전쟁에 지친 병사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군중들이 불렀던 노래 '지펜투텐탁(훗날 '집행유애'라는 곡으로 불린)'을 부른 장본인, 또 1985년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마이클 잭슨을 위시한  50명의 가수들이 'We are the world'를 부를 때 코러스를 했던 인물, 또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파이널을 장식했던 세계 모든 가수들의 우상이자 엘비스 프레슬리와 합동공연을 했던 신화적인 존재. 바로 UV라는 인물에 붙는 스토리들이다.

이 스토리를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는 'UV 신드롬 비긴즈'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위에 나열된 모든 사건들의 연대가 UV라는 두 인물에 의해 행해졌을 가능성은 없다. 즉 이 다큐는 페이크다. 그래서 'UV 신드롬 비긴즈'는 첫 회에 스스로 한국전에 참전해 UV를 목격했다는 제임스 베이커라는 인물을 인터뷰를 담으면서 '이 프로그램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오'라는 자막을 '아주 짧게' 삽입해 넣는다. 진지한 내레이션이 잠깐 끊기고 다시 이어질 때 제임스 베이커가 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어딘지 이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가짜임을 스스로 밝히면서도 이 프로그램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해댄다. 여기에 UV 당사자들인 유세윤과 뮤지의 기상천외하고 뻔뻔한 행각(?)들이 계속 공개된다. 빅뱅을 앞에 놓고 "그걸 노래라고 하느냐"고 버럭 대고, 박진영이 사실은 외국인이며 UV 밑에서 청소를 하다가 발탁됐다고 하는 식이다. UV 당사자들은 모든 행동과 진술이 진지하지만, 누가 봐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는 이들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일종의 가상의 놀이지만, 그렇다고 그 결과가 가상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즉 UV는 이 페이크 다큐를 하면서 만든 노래, '집행유애'나 '쿨하지 못해 미안해', 또 이번에 들고 나온 '이태원 프리덤'을 모두 음원차트에 올렸다. 유세윤은 정식가수도 아니고 또 트레이닝을 받지도 않았지만 이 페이크 다큐에서 전설적인 가수라고 주장된다. 즉 누구나 거짓말을 알고 있지만 진짜 결과가 나온 이유는 뭘까.

이것이 재미있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그 놀이 속에서는 어떤 스토리도 허용된다. 그리고 그 놀이가 정말 재미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가짜라도 대중들은 주머니를 연다. 'UV 신드롬 비긴즈'는 스토리 시대에 접어든 작금의 상황을 너무나 잘 간파한 프로그램이다. 스토리가 재미있으면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물론 누군가에게 해를 준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심지어 그것은 돈을 벌어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시대가 가진 이러한 스토리 경향이 실제 상황에서 벌어진다면 어떨까. 우리는 일찍이 타블로 사태에서 그 결과를 목도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으로 여겨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던 타블로는 나중에는 그 가상의 스토리가 엄청나게 커져 도무지 대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사실(팩트)들을 뒤늦게 내놓았지만 이 스토리는 이 사실들마저 소재로 삼아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괴물이 되었다.

그 타블로 사태에서 목도한 것들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서태지-이지아 얘기다. '서태지와 이지아 사이에 두 딸이 있다'는 얘기에서 '심은경이 서태지의 딸'이라는 스토리로 이어졌고, '서태지의 여자관계 때문에 이지아와 헤어졌다'는 스토리가 나오자 '그 여자가 구혜선'이라는 스토리가 나왔다. 그러자 또 '구혜선이 아니라 한예슬이다'로 이어졌다. 항간에는 '이지아가 서태지와의 관계를 소설로 써서 연재해 왔다'는 스토리까지 나왔다. 이 정도 되면 'UV 신드롬 비긴즈'를 뺨치는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스토리는 'UV 신드롬 비긴즈' 같은 놀이가 아니다. 그걸 만들고 유포하는 이들에게는 놀이처럼 여겨지겠지만 당사자들(괜스레 이름이 올려진 이들에겐 더더욱)에게는 곤혹스러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타블로 사태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이렇게 끊임없이 스토리가 커져서 나중에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의 괴물이 되게 되는 것은 그 자체를 별거 아니라고 방치하는 순간부터다. 상황은 터졌지만, 당사자인 서태지는 묵묵부답이다. 물론 이처럼 사생활을 밝히지 않는 것은 자신의 선택일 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 대해 공인의 잣대를 섣불리 들이대는 것은 난센스다. 그 누구도 자신이 밝히길 원치 않는 사생활을 드러내야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말의 도의적인 책임은 남을 수 있다. 자신의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UV 신드롬 비긴즈'와 서태지 루머를 나란히 놓고 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발견된다. 거기에는 한없이 감추어지던 신비주의 시대에서, 끊임없이 신비가 파헤쳐지고 그것이 스토리로 양산되는 시대로의 변화가 있다. UV는 계속해서 자신들이 신비적인 존재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바로 그럼으로써 그들이 보통의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UV 신드롬 비긴즈'는 키치적인 방식으로 끊임없이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오히려 진위와 상관없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 아이러니한 지점에서 우리는 이 페이크 다큐의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즉 'UV 신드롬 비긴즈'는 지금 이 스토리의 시대를 한껏 즐기고 있는 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태지-이지아 스캔들과 함께 당사자들이 침묵함으로써 오히려 양산되는 거짓 스토리들을 우리는 즐길 수 없다.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이 스토리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과잉 정보 시대에 맥락이 잡히지 않아 부재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질서를 잡아주는 힘으로 스토리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때론 아예 부재한 것을 진짜처럼 왜곡시키는 것도 스토리의 파괴력이다. 즉 모든 것이(심지어는 없는 것까지) 스토리로 덧씌워지는 것은 어쩌면 서태지나 이지아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피할 수 없다면 정면돌파 하거나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물론 UV처럼 누군가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 방식(피해는커녕 유쾌함을 주지 않는가)으로 말이다.

우리시대 아나운서란 어떤 존재인가

'전현무'(사진출처:KBS)

10년 전만 해도 아나운서는 어딘지 늘 조신한 존재였다. 허리를 똑바로 펴고 앉거나 서서 손에 마이크 하나를 들고 오로지 입으로만 드러나는 존재. 심지어 뉴스 도중 누군가 난입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소리를 치더라도 짐짓 당황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보도를 하는 그런 존재. 물론 지금도 아나운서에 대한 이런 덕목이 달라진 건 아니다. 또 엄밀히 따져서 한참 과거로 올라가도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는 있었다. '명랑운동회'의 변웅전 아나운서가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 때 예능 프로그램의 한 복판에서도 늘 단정하게 서서 말 그대로 진행만 했던 변웅전 아나운서와, 이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한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나운서는 확실히 다르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아나운서는 과연 어떤 존재들일까.

한 때 아나운서지만 특유의 끼를 보여주었던 김성주 아나운서나 강수정 아나운서 같은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들이 속속 등장했지만 이제 이 말조차 식상해져버렸다. 지금은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을 쇼 프로그램화 하는 시대이고, 그 쇼 무대 위에서 개그맨 뺨치는 만담으로 빵빵 터트린 지원자가 주목받는 시대다. '신입사원'에서 아나운서계의 방시혁으로 불리는 방현주 아나운서는 특유의 독설을 날려 주목받고, 아나운서계의 유재석으로 불리는 전현무 아나운서는 특유의 깝으로 개그맨들마저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뉴스 보도, 사회, 실황 중계의 방송을 맡아 하는 사람. 또는 그런 직책'을 지칭하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의 정의는 이제 변해야 될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해피투게더'에 출연해 이른바 7단 고음을 선보이며 '개그맨 웃기는 아나운서'로 등극한 전현무 아나운서. 신입시절부터 특유의 끼를 주체할 수 없어 벌어진 해프닝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아 듣는 이들을 빵 터뜨린 그는 골반을 흔들어대며 샤이니 댄스를 추고 어딘지 성역처럼 보이는 KBS 아나운서실의 뒷얘기를 마구 풀어놓는다. 한 때 아나운서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던 전현무는 대중들의 호감을 얻기 시작하면서 KBS의 보배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약 5개 정도의 고정 프로그램을 하고 있고 게스트로도 섭외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것.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전현무를 모시기 위해서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진행도 깔끔하게 하면서 특유의 예능감과 끼가 넘치니 예능의 블루칩이 될 만하다.

그런데 이 전현무로 인해 생겨난 아나운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전현무를 넘어서 타 동료 아나운서들에게까지 전이되고 있다. '해피투게더'에 전현무와 함께 출연한 박은영 아나운서는 평소 모습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웃음을 주려 노력하며 마치 '여자 전현무' 같은 인상을 주었다. 자신이 박명수와 닮았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 하고 마치 전현무가 툭하면 동료 아나운서들을 폭로(?)하는 것처럼 오정연 아나운서가 짝짝이 하이힐을 신고 제주도까지 왔던 사연을 폭로하기도 했다. 심지어 코를 후비다가 들킨 사연을 들려주기도 하고, 콧구멍이 크다며 50원짜리 동전을 넣어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전현무가 일찍이 깔아놓은 멍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아나운서라도 예능에 나와서는 웃음을 주기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낮추는 자세로 호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현무를 통해 이미 알게 된 것이다.

이른바 '전현무 효과'를 통해 보여지듯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재정의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방송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방향적 소통 시대에 방송사가 가진 입은 권위 그 자체였다. 그러니 방송사의 얼굴은 단연 아나운서였다.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세상의 의심할 여지없는 정보들이었고,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매체 시대로 접어들고, 쌍방향 미디어들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나르는 시대에 방송의 권위는 무너져 내렸다. 대중들 스스로가 미디어라 믿어지는 시대에 방송의 정보들은 때론 대중들과 시각차를 보이고 부딪치기도 하고, 때론 오보에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일단 뉴스나 시사 같은 중요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매체가 방송 말고도 너무나 많아졌다. 심지어 이제는 대중들이 포착한 뉴스를 받아서 방송하는 시대가 아닌가. 방송의 가장 큰 힘인 권위가 해체되면서 방송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연성화의 길이다. 이것은 다만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보다 대중의 눈높이로 낮춰진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담겨있다.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들은 시사교양 프로그램 전반에 깔리게 되고, 이제는 주말 MBC 뉴스데스크를 이끄는 최일구 앵커로 대변되는 것처럼 뉴스에도 스며들기 마련이다.

아나운서가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또박또박 언어를 구사하며 심지어 대외적인 활동까지 반듯해야 했던 것은 그 말의 힘이 권위로 작용하던 시대의 방송의 잔재다. 여전히 아나운서들은 이 틀을 고수하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바뀌었다. 정형돈과 게임을 하며 종이를 놓고 얼굴을 맞대는 민망한 장면을 문지애 아나운서가 연출하고, 그 장면은 '신입사원'의 오디션 후보가 패러디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물론 그 후에 문지애 아나운서가 뉴스나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브리핑을 하는 것에 대해 대중들은 그다지 이물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대중들이 뉴스나 시사 정보 프로그램과 연예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그다지 다르게 여기지 않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바로 '생생정보통'이다. 이 정보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프로그램에는 저녁 시간대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전국 먹거리 이야기에서부터 연예 정보, 때론 미니 다큐가 들어가고 심지어 생뚱맞아 보일 수 있는 뉴스가 배치되지만 그것에 어떤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의 얼굴로서 전현무 아나운서가 서 있다는 것은 현 달라져있는 아나운서라는 존재를 가늠하게 한다.

이렇게 달라진 시대에 아나운서들이 방송국을 뛰쳐나와 프리선언을 하는 상황은 당연할 것이다. 즉 과거 아나운서들이 방송의 얼굴이었을 때는 방송사들이 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제 아나운서들은 방송 전부를 대표하는 얼굴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인이 되어 있고 또 그래야 살아남는다. '신입사원'의 방현주와 '생생정보통'과 각종 예능을 휩쓸고 있는 전현무는 이 달라져 가는 아나운서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그것은 지원자뿐만 아니라 심사자도 스타로 만드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아나운서 방현주가 앉아있고, 전현무라는 대체 불가능한 깝의 아나운서가 각광받을 수 있는 정보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시대라는 이야기도 되기 때문이다. 아나운서계의 방시혁과 유재석은 어쩌면 앞으로 아나운서들의 새로운 정체성이 될 지도 모른다.

전현무 효과, 타 방송사에까지 미치다
이른바 '전현무 효과'는 타 방송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MBC에서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신입사원'의 지망생들 중에는 전현무 아나운서를 롤 모델로 삼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자 MBC 최재혁 국장이 "전현무 같은 스타일은 뽑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의식이 된다는 얘기. 하지만 이 '신입사원'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전현무 같은 친근한 이미지의 아나운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즉 아나운서 지망생이 만담을 해서 웃음을 주는데 그것을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자질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나운서들은 여전히 '방송사의 자존심'이라 불리지만 그 자존심은 대중들의 공감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달라진 시대에 달라진 자질을 요구받고 있다.
(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된 글입니다)


'신입사원'이 보여준 존중과 배려의 가치

'신입사원'(사진출처:MBC)

시그널에 맞춰 즉석에서 진행을 하는 미션을 부여받은 '신입사원' 팀 대결에서 1조의 장성규씨는 흘러나오는 '인생극장'의 시그널 앞에 얼어붙었다. 처음 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담꾼에 버금가는 재담에 진지함까지 갖춘, 누가 봐도 에이스인 장성규씨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배틀에서 7:0 완패를 당했다. 에이스의 패배 탓이었는지 이후 1조는 경쟁조인 4조에게 패하고 말았다.

늘 밝고 재치 있는 모습만을 보여왔던 장성규씨의 그 당혹스런 얼굴 그 표정에, 담임이었던 문지애 아나운서가 눈물을 보였다. 공동담임이었던 김정근 아나운서는 "성규씨에게 너무 큰 짐을 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떨어져 받게 된 재심사는 '신입사원'이라는 프로그램의 진심을 드러내주는 계기가 되었다. 경쟁을 넘어선 진심어린 출연자들의 따뜻한 마음이 한 편의 '인생극장'을 보는 듯한 극적인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팀의 패배가 자신의 패배에서 비롯되었다 자책하는 장성규씨는 "만약에 탈락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자신을 선택하시겠습니까?"하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그렇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계속 나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마음 한 켠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저를 보면서 제가 좀 밉더라구요. 분명히 제가 저를 선택해서 떨어뜨렸을 때 후회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제 스스로 벌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솔직한 대답에 같이 서 있는 동료들까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다시 "자신의 인생극장을 써보라"는 심사위원의 지시에 그는 특유의 재치를 발휘했다. "아 우리 조가 나 때문에 떨어진 것 같은데 내가 패자부활전에서 붙고 싶다고 말씀드려야 하나? 아냐 내가 잘 못했어 나 때문이야. 나는 절대 붙어선 안 되는 놈이야. 어떡하지 그래도 되고 싶은데? 그래 결심했어! 우리 친구들한테 양보하는 거야!" 막 울 것 같던 동료들도 심각한 얼굴의 심사위원들까지 모두 그의 너스레에 웃음을 터뜨렸다.

함께 선 이윤하씨는 그런 장성규씨를 "다른 의미에서의 공기, 가벼운 면이 있지만 정말 꼭 필요한" 공기라고 표현했고, "가장 자신을 긴장시키는 무서운 동료는 누구냐"는 질문에 "저는 정다희씨를 보면서 1박2일 동안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정말 아나운서를 원하는 사람이고 정말 방송이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정말 저렇게 마음가짐을 가지고 앞으로 계획을 설계해야겠구나. 제가 생각이 너무 미시적이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정다희씨에게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제가 이런 말 들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심사위원은 장성규씨의 장점을 들면서 "진중함 속에서도 방향을 틀어서 상황을 유쾌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금 복잡한 심정의 정다희씨를 위해서 분위기 반전을 시도"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러자 장성규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춤과 랩과 음성변조를 곁들여가며 정다희씨는 물론이고 심사위원들까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신입사원'이 각본 없이 연출해낸 이 눈물과 웃음의 변주곡은 이 프로그램의 진심을 잘 보여주었다. 모두가 합격자로 남고 싶은 그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서로를 낮추며 보여준 동료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프로그램만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이 프로그램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그토록 강조했던 것, 아무리 경쟁하는 관계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갖춰야하는 덕목, 바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였다. 장성규씨는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거듭 거기 함께 경쟁자로 서 있는 동료들을 '우리 친구'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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