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과 덕만, 그녀들이 사람을 얻는 법

"사람을 얻는 자가 세상을 얻는다고 하셨습니까? 보십시오. 전부 제 사람들입니다." 진흥왕(이순재)이 죽자 미실(고현정)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것은 '선덕여왕'이 말하는 정치의 세계다. 따라서 이 사극의 궁극적인 미션은 정치적인 색채를 띄게 된다. 주어진 미션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승리, 즉 세상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을 얻어야 한다. 양극점에 서있는 미실과 덕만(이요원)은 자신들만의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끌어 모아야 한다.

'선덕여왕'의 두 인물이 보여주는 카리스마가 주목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덕만이 백제와의 전쟁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모성에 가깝다. 그녀는 자신 역시 두려움에 떨면서도 공포에 질려 있는 동료를 포기하지 않는다. 두려움 때문에 적에게 자신을 노출시킨 죄로 참수를 당하게 된 시열(문지윤)을 덕만은 끝까지 지켜낸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부상병을 죽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알천랑(이승효) 앞에 그녀는 '공포'가 아닌 '희망'을 달라고 말한다.

이것은 덕만이 가진 카리스마의 단면이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계 속에서 약자를 포기하는 카리스마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그녀는 대신 약자들도 하나로 뭉치면 강자를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카리스마의 결과는 현실로 드러난다. 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 속에서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하려는 알천랑 앞에 그녀는 '원진'을 외치고 가까스로 살아남고, 미션 수행 과정에서 동료가 동료를 죽이는 선택을 막아내고는 결국 함께 살아남는다. 이 과정 속에서 약자들은 물론이고 강자들마저(알천랑이나 김유신(엄태웅)같은) 그녀를 따르게 된다.

한편 미실이 추구하는 카리스마는 더욱 정치적이다. 그녀는 적과 아군의 구분을 넘어서 이기는 자, 천운을 가진 자를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이는 카리스마를 보인다. 사지로 내몰렸던 김서현(정성모)이 살아 돌아오고 점점 입지를 다져나가자 그녀는 그마저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 게다가 지금껏 충성해왔던 설원랑(전노민) 앞에서 공공연히 이를 밝힘으로써 '충성경쟁'에 불을 붙인다. 그녀의 진정한 힘은 설원랑이 말한 것처럼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을 취하는 정치적 카리스마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미실과 덕만, 이 두 여성이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현재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져온 리더십의 변화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제 물리적인 힘으로 제 발밑에 사람들을 무릎 꿇리는 남성적 카리스마의 시대는 저물었다. 미실이 보여주는 정치적 카리스마는 그 목적이 어떻든 포용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한때 적이었던 자까지 모두 자신의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쉬운 것이 아니다. 한편 약자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이끌어주는 덕만이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모성적인 색채를 띈다.

이 두 카리스마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그녀들에게 이끌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실에 끌리는 이들의 마음 속에는 욕망(권력에의)이 자리하는 반면, 덕만에 이끌리는 이들의 마음 속에는 희망이 자리한다. 근본적으로 욕망이란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인 반면, 희망은 삶의 기쁨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점에서 이 두 카리스마는 차이를 보인다. 미실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반면, 덕만에게서 삶의 냄새가 강한 것은 그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이 두 여성을 통해 여성적 카리스마라고 불릴 수 있는 새로운 시대적 리더십에 대해 말하는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혹한기의 알몸, 혹서기의 잠바, 김C가 만드는 계절감

'1박2일'에서 계절은 실로 중요하다. 계절이 주는 자연적인 도전 자체가 '1박2일'의 미션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한겨울의 차가운 날씨는 야외냐 실내냐를 정하는 잠자리 복불복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갑작스런 기상악화는 목적지 자체를 바꾸게도 만들고, 예상했던 일정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한여름에 바다에 빠지거나, 한겨울에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입수하는 것 역시 모두 계절이 주는 묘미와 한계를 이용한 것이다.

혹한기 대비 캠프와 혹서기 대비 캠프는 이러한 계절을 활용한 '1박2일'만의 아이템. 그런데 이 아이템에 유독 어울리는 존재가 있으니 그가 바로 김C다. 그는 종종 '고통의 달인'으로 불린다. 복불복이 제공하는 고통스러움을 꽤 잘 버텨내기 때문이다. 매운 소스가 들어있는 음식도 별 표정 없이 잘 삼키고, 모두가 꺼려하는 번지점프도 별 감흥 없이(?) 뛰어내린다. 어찌 보면 표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잘 드러나지 않는 얼굴이다. 평상시의 모습 자체가 고통을 버티고 있는 듯한 고행자의 그것이니까.

이것은 김C를 종종 그 자체가 '다큐'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늘 진지한 얼굴은 예능이라는 프로그램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음식을 놓고 하는 복불복게임에서 조금은 과장되거나 놀라는 리액션이 필요한 시점에서도 그는 반응을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웃음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캐릭터가 '1박2일'이라는 야생 버라이어티에 위치하는 존재감이 꽤 크다는 것은 말이다.

지난 혹한기 대비 캠프에서 김C는 박스 하나에 의지한 채 알몸으로 방송을 했다. '1박2일'이 계절 자체를 중요한 아이템으로 삼는 혹한기 대비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추운 기온을 시청자들에게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C의 희생(?)은 프로그램에 어떤 기본적인 바탕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혹서기 대비 캠프에서 그가 뜨거운 날씨에 두꺼운 잠바를 입고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수박을 따거나, 잠자리에 드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다른 캐릭터가 그것을 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효과를 거두었을 테지만 공교롭게도 김C가 걸린 것은 '1박2일'로서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1박2일'에서 김C만이 가진 독특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코끼리 열 바퀴'를 돌고도 별 어지러움 없이 달려 나갈 수 있는 고통과 한계에 둔감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다. 음식을 먹고 리액션을 보이지 않는 것은 보통은 예능을 썰렁하게 만들지만, 그는 자신의 캐릭터로 그것을 끌어들임으로써 오히려 웃음을 유발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C의 이런 과장 없는 모습으로 인해 '1박2일'의 리얼리티가 한층 빛을 발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이 "다큐를 예능화 했다"고까지 말하는 데는 김C가 역할한 부분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한기에는 알몸으로, 혹서기에는 두꺼운 잠바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김C의 존재감은 이처럼 크다. 그 다큐적인 얼굴과 다큐적인 리액션이 그 자체로 리얼리티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본업인 '뜨거운 감자'의 꾸미지 않은 듯 담담하기 그지없는 노래 속에서도, 또 이제는 하나의 부업으로 자리한 각종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이렇게 보면 김C는 리얼리티 시대가 낳은 최적의 캐릭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찬란한 유산’의 백성희, ‘선덕여왕’의 미실, ‘시티홀’의 고고해

‘아내의 유혹’에서 악녀 신애리(김서형)의 트레이드마크는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눈을 치켜뜨는 것이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드라마는 거친 목소리만 들어도 뭔가 사건이 벌어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바로 이 연기로 시청자들을 바들바들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등장한 악녀들은 신애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차분해졌고, 감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논리적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눈을 치켜뜨기는커녕 잔잔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녀들이 더 살벌한 것은.

‘찬란한 유산’에서 백성희(김미숙)는 미소 짓는 악녀의 절정을 보여준다. 남편의 사고소식을 듣고는 보험금을 혼자 챙기려 배다른 딸인 은성(한효주)과 그 동생 은우(연준석)를 길거리로 내쫓고, 그것도 모자라 정신지체아인 은우를 멀리 내다버리기까지 한다. 살아온 남편을 반기기는커녕 갖은 거짓말로 은성을 만나려는 그를 절망에 빠뜨리고, 모든 것이 탄로 나자 거꾸로 은성을 거둬 유산까지 주려하는 장숙자(반효정) 여사를 찾아가 거짓말로 은성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운다.

그녀는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자신이 하는 행동에 감정을 최대한 숨긴다.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거짓말은 이 차분하게 숨겨진 감정 뒤에서 좀체 진면목을 드러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앞에서 답답할 정도로 착하기만 한 고은성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뭐라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그저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이 미소 짓는 악녀에게 완벽한 패배를 시인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미소 짓는 섬뜩함은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늘 방긋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살벌한 칼날이 느껴진다. 덕만을 놓친 병사의 목을 치면서 그 피가 얼굴에 튄 채로 살짝 웃는 모습은 귀기스럽기까지 하다. 앞에서는 공손한 척 예를 다하다가 갑자기 귓속말로 천명공주(신세경)에게 “도망쳐라!”하고 명령할 때, 그 숨겨진 칼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시티홀’의 고고해(윤세아) 역시 같은 부류다. 이름처럼 앞에서도 고고한 척 우아함을 떨지만 사실은 뒤에서 한 사람을 파멸로 몰아붙이는 그 모습은 똑같은 미소짓는 악녀의 자질을 가졌다. 자신이 갖고 싶은 조국(차승원)을 취하기 위해 그녀는 신미래(김선아)를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녀의 목적은 그러나 조국이라기보다는 그를 통해 획득하려는 권력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우아한 악행은 때론 자본이 행하는 그것과 닮은 구석이 많다.

악녀들이 이처럼 감정을 숨긴 모습으로 진화하는 것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악역이 아니고 악녀냐는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점점 여성 편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한 바가 크다. 여성과 남성의 대결구도보다는 여성과 여성의 대결구도가 그만큼 볼만해졌다는 얘기다.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와 대결하는 것은 바로 구은재(장서희)라는 여성이고, 이것은 ‘찬란한 유산’의 백성희-고은성, ‘선덕여왕’의 미실-덕만, ‘시티홀’의 고고해-신미래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러한 여성과 여성의 대결구도에 우리네 드라마가 가진 갈등 구조 속에 빠질 수 없는 멜로라인이 결부되면 그 대결구도는 더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 악녀들은 이제 자신들이 가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것은 바로 감정 자체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해진 섬세함을 무기로 삼는 것이다. 요즘 드라마들에 유독 악녀들이 많고 그녀들이 살벌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메시지를 뉘앙스로 전하는 방식이 가진 힘

'무한도전-여드름 브레이크'라는 추격전의 시작은 박명수의 등에 그려진 7개의 그림에서부터 시작된다. 거기에는 남대문-산삼-시계-민들레-아령-파리-트럭이 차례로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이 뜻하는 것은 그 첫 글자를 따서 '남산시민아파트'로 가라는 것. 이 첫 장면은 '무한도전-여드름 브레이크'를 읽는 하나의 독법을 제시한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연결시키면 의미를 형성하는 단어들처럼, 앞으로 벌어질 일련의 사건들이 주는 키워드가 하나의 의미망을 형성할 거라는 것이다.

'무한도전-여드름 브레이크'의 배경이 된 시민아파트, 연예인아파트, 오쇠동 철거지는 모두 철거 혹은 재개발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서울의 공간들이 낯설게도 허름하고 낡은 아파트들이라는 점, 그리고 비행기가 내릴 때 찍혀진 오쇠동의 철거 전 사진은 건물들이 사라진 현재와 오버랩되면서 이 키워드를 공고하게 한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김태호 PD는 자막을 통해 키워드를 박아 넣는다. '몸싸움'이니 '철거'니 하는 단어들이 그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이제는 자막이 보여주는 단어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을 보는 독법은 처음에 제시되었고, 그 다음에는 차례로 그 배경을 제시했으며, 그 위에 구체적인 단어들을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이 이들이 찾기 위해 달리고 달리는 그 3백만 원이 오쇠동 세입자들의 이주보상비 액수였다는 것을 찾아내고, 또 2부에 등장한 소래 생태공원과 만석부두에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의 의미를 읽어내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왜 하필이면 마지막에 탈주범들이 타고 도주한 배의 이름이 '황천길호'였을까. 길로 대변되는 빡빡이들은 이 철거 혹은 재개발이라는 의미 속에서 어떤 존재들을 패러디한 것일까. 마지막에 결국 이들이 도망쳤을 때 나온 '해경에게 맡긴다'는 자막은 또 어떤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의미 부여에 대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청자들은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이 그 의미 찾기에 골몰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한도전-여드름 브레이크'는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철거와 재개발 문제를 거론한 것이 없다. 이것은 '프리즌 브레이크'의 패러디로서 쫒는 자와 쫒기는 자를 세워 리얼 타임 액션이 주는 재미를 리얼 버라이어티 속에 녹여냈을 뿐이다. 실제로 '무한도전-여드름 브레이크'를 통해 우리가 갖는 재미의 본질은 그 흥미진진한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상황전개에 있다. 즉 재미와 의미의 요소들은 하나로 엮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따로 떨어져 있었던 셈이다.

이것은 '무한도전'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김태호 PD만의 독특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의 본질은 그 첫째가 웃음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웃음 속에 어떤 사회적 메시지가 요구될 때, 때론 그것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무한도전'이 취하는 방식은 의미를 숨겨놓는 것이다. 그것은 숨겨져 있기에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발견되었을 때, 그 의미는 직접적인 전달보다 더 무게감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숨겨진 의미는 늘 열혈 시청자들의 눈에 의해 발견되고 조명된다. 즉 이 방식은 일방적인 제시가 아니라 쌍방적인 소통에 의해 메시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메시지를 뉘앙스로 전하는 '무한도전'의 방식이 가지는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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