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백, 서민적 삶이 가진 가치를 긍정하다

도대체 '그바보'의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이토록 잡아끌었을까. 평범한 우체국 직원과 스타의 만남. 이 낯익은 이야기 구조는 누구라도 쉽게, 멀게는 '로마의 휴일'에서, 가깝게는 '노팅힐', 또 최근에는 드라마화된 '스타의 연인'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과연 '그바보'가 그린 세계가 이 통상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주에 머물렀을까. 만일 그랬다면 우리는 일찌감치 그 관심을 끊었을지도 모른다.

'그바보'의 이야기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데서 그 묘미를 찾을 수 있다. 톱스타인 한지수(김아중)와 우체국 직원인 구동백(황정민)이 만들어가는 러브스토리는 물론 그 신데렐라(남성이 신데렐라인)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모든 관계는 역전되어 있다. 이 드라마는 한지수가 구동백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구동백이 한지수를 구원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한지수는 왜 구원받아야 할까. 그녀가 사는 세계가 그녀에게 부과한 삶이 그녀를 불행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불행은 한 마디로 '상품화된 인간'으로서의 삶이 갖게 되는 불행이다. 한지수가 가진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자본에 둘러싸여 상품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그대로 표상함으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세계 속에서는 김강모(주상욱) 같은 자본을 쥔 자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른다. 그가 한지수에게 그러한 것처럼 그 대상은 인간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그러한 관계를 내면화하면서 살아온 한지수로서는 자신의 불행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왜 점점 슬플 때 울지 못하고 웃길 때 마음껏 웃지 못하는 표정 없는 인간이 되어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바보'는 바로 그 한지수의 세계 속에 구동백이라는 전혀 다른 별에서 온 듯한 바보 같은 남자를 집어넣는다. 그는 인간 간의 관계가 거래로 취급되는 이 세계의 법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본다.

위장결혼을 하는 조건으로 그 대가를 물어보지만, 구동백은 엉뚱하게도 동화 속에서나 나올 세 가지 소원을 제시하는 인물이다. 거래와 관계, 대가와 소원만큼의 거리는 한지수와 구동백 사이에 놓여진 거리만큼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차츰 한지수는 구동백을 통해 자신의 거짓된 삶에서 조금씩 벗어나 진실된 삶(즉 구동백의 삶을 향해서)으로 다가간다. 물론 이것은 일방적인 변화가 아니다. 구동백 역시 스스로 평가절하해온 삶의 진정한 가치를 한지수를 통해 찾고 있기 때문이다.

 “난 진짜가 아니잖아...난 가짜잖아”라고 오열했던 구동백에게 “내 옆에 있어줄래요?”라고 한지수가 수줍게 말하는 그 순간은 이 두 사람의 변화가 서로 교차하는 순간이다. 구동백은 가짜가 아닌 진짜임이 드러나는 것이고, 한지수는 비로소 자신의 진실된 삶을 찾게 되는 것. 구동백과 한지수가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따라서 멜로의 과정으로 그려지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맥락을 갖게 된다. 이 이야기가 진심은 내팽개쳐지고 대신 돈이 오고가고, 갖은 모략과 술수가 판치는 예의 없는 세상에 대한 구동백의 선전포고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여기서 구동백이 예의 없는 세상과 대결하기 위해 꺼내드는 일련의 카드들이 흥미롭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정으로 불행을 겪어본 자들만이 아는 ‘바닥의 정서’에서부터 길어 올려진 것들이다. 실의에 빠진 한지수에게 구동백이 처방한 “진짜 슬픈 인생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는 대사나, 행복하고 싶다면 “웃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대사는 그 바닥의 정서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구동백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절망 끝의 희망을 얘기한다.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그렇게 마음먹으면 그 곳이 절벽 끝이 아니라 다이빙대 일수도 있구요. 그리고 그 아래는 시원한 바다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떨어져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는, 때론 온통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어 늘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진 자들의 불안을 오히려 치유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소유하는 사랑만 해온 자들에게는 그 사랑을 손에서 놓는 것이 참으로 불안하고 힘겨운 것이지만, '그저 바라보는 사랑'을 해온 자들에게 그것은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된다.

‘그바보’는 제목처럼 너무 높은 곳에 있는 것만 같아 ‘그저 바라보다가’, 그 높은 곳이 힘겨워 뛰어내리고 싶어도 뛰어내리지 못하는 그녀를 알게 되고는 함께 그 위에서 낮은 곳으로 뛰어내려주는 구동백이라는 착한 서민의 자화상을 그려낸 드라마다. 이로써 우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삶의 실체에 더 가까운 서민들의 삶을 구동백을 통해 긍정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토록 우리의 마음을 잡아끌었던 '그바보'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한지수는 구동백을 통해 이제 '네모난 하늘' 아래 두 사람으로서 족한 행복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제목이 구동백을 바보로 지칭하는 것처럼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판타지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구동백의 승리를 통해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정치드라마이면서 멜로드라마가 되는 '시티홀'의 세계

'시티홀'은 그저 편안하게 멜로드라마를 보듯 볼 수 있는 드라마다. 실제로 시청자들의 주 관심사는 조국과 신미래 사이에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멜로에 집중되어있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드라마는 멜로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무늬만 정치'가 아닌 제법 심각한 정치드라마의 면모들이 드러낸다. 도대체 '시티홀은 어떻게 정치와 멜로를 이렇게 공존시켰을까.

"요즘 내가 안하던 짓을 해요." 타고난 정치꾼, 조국(차승원)이 처음 인주시청의 부시장으로 들어왔을 때만 해도 그는 하던 짓(?)만 하던 사내였다. 여기서 하던 짓이란 흔히들 정치꾼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하는 짓거리, 즉 협잡, 모함, 이용 같은 것들을 말한다. 그런 그가 한다는 안하던 짓은 그럼 무얼까. 그건 순진할 정도로 순수한 신미래(김선아)가 해나가는 '진심이 담긴 정치'를 옆에서 돕는 것이다.

그 진심이니 신념이니 하는 것은 본래 그에게는 그저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유치한 짓들이었다. "못사는 사람 잘 살게, 잘 사는 사람 좀 베풀게" 하는 것이 정치라고 말하는 신미래와, "정치는 돈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조국 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멀다. 그런 그가 안하던 짓을 한다? 그건 그의 신미래에 대한 마음의 표현인 동시에, 정치판의 복마전에서 잔뼈가 굵어온 자가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유치한 짓이라 여기던 그 진심이니 신념이니 하는 것에 이끌리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처음 봤을 때 너는 아주 쉬운 여자였는데, 그냥 이용하고 버리면 되는 여자였는데, 어떡하다 이렇게 됐는지 정말 돌겠다구." 그렇다. 조국은 정치를 하기 위해 BB(최일화)의 명으로 인주시에 허수아비를 세우려 왔는데, 어쩌다 그 허수아비를 사랑하게 됐고 그러자 모든 정치적 관계들은 뒤틀어져 버렸다. BB의 명을 어기게 된 것이고, BB의 돈줄이자 조국의 약혼녀인 고해(윤세아)를 배신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시티홀'이 그리는 세계는 정치와 멜로가 씨줄과 날줄로 엮어져 있다. 신미래와 조국의 멜로는 그들의 정치적인 행보와 늘 반대로 작용한다. 둘의 사랑은 정치적인 위기를 불러올 것이고, 정치적인 행보는 둘의 사랑의 끝장을 불러올 것이다. '시티홀'이 구성해놓은 정반대의 위치에 세워진 정치와 멜로는 이처럼 절묘하다. 멜로가 어떤 진심을 끄집어낼 때, 정치는 그 진심을 배반한다.

이것은 또한 관계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시티홀'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정치가 얼마나 관계를 파괴하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미래와의 진심어린 사랑을 선택한 조국은 아버지인 BB와도, 또 약혼녀인 고해와도 서로 적이 되어 싸워야 한다. 민주화(추상미)와 이정도(이형철)는 부부지만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로 인해 부부관계의 진심마저도 흔들리게 된다. '시티홀'이 그리는 정치란 이처럼 부모자식 간에도, 애인 간에도, 심지어 부부 사이에도 금을 긋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괴물이다.

'시티홀'은 이처럼 정치와 멜로의 이중주를 들려주면서 그 접점을 모색하는 드라마다. 정치로서의 조국과 멜로로서의 신미래는 차츰 그 중간지대를 향해 나아가고, 점점 사랑에 빠져드는 조국과, 이제는 더 이상 정치를 외면할 수 없는 신미래로 발전해 나간다. 독특한 이름들이 가진 말장난처럼, '조국의 신미래' 혹은 '신미래의 조국'은 멜로와 정치의 중의적 표현인 셈이다. 따라서 '시티홀'은 멜로드라마이면서 정치드라마가 된다. 멜로드라마로서 정치는 거짓의 다른 이름으로 해석되고, 정치드라마로서 멜로는 진심의 다른 이름으로 해석된다. 정치와 멜로는 이렇게 '시티홀' 속에서 공존하게 되었다.

미션사극의 정점을 보여주는 ‘선덕여왕’

“생(生)을 고르면 살고 사(死)를 고르면 모두 죽는다.” 금지시킨 차 교역을 한 죄로 끌려온 덕만(남지현)은, 자신과 일행들의 목숨을 건 제후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이미 어느 돌이든 모두 사(死)임을 알고 있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 수수께끼가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위기의 순간, 덕만이 자신이 선택한 돌을 꿀꺽 삼켜버리고 제후의 나머지 돌을 보여 달라고 하는 것으로 미션을 해결한다. 그러자 긴장이 풀리면서 어떤 문제를 풀었을 때 갖게 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이로써 덕만의 레벨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이것은 기본적인 '선덕여왕'의 '미션제시-해결'의 이야기 구조. 이 미션사극을 움직이는 강력한 주동력이다.

이중으로 겹쳐져 있는 위기의 미션
일종의 미션을 제시하는 것이 '선덕여왕'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의 미션 속에 제시되는 주인공의 위기는 여타의 사극보다 이중 삼중으로 겹쳐지는 특징을 가진다. 사막까지 쫓아온 자객을 피해 달아나는 미션에서도, 또 우여곡절 끝에 만난 덕만과 천명(신세경)이 설지(정호근)와 그 무리들에게 붙잡혀 팔려갈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미션에서도, 또 겨우 도망쳐 나와 절벽에서 천명의 손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다가 살아나오는 미션에서도 이러한 위기는 또 다른 위기와 겹쳐진다.

발을 잘못 디뎌 유사(모래수렁)에 빠져버린 양어머니 소화(서영희)를 잃을 위기에 처한 덕만은 마침 나타난 자객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비를 내려야만 살아나갈 수 있는 설지의 마을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게 될 즈음, 미실이 파견한 토벌군에게 쫓기게 된다. 절벽에서 덕만과 천명이 서로의 생명줄을 잡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도 토벌군의 추격은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늘 해법은 제시된다. 때 아닌 모래폭풍이 덮치고, 안오던 비가 내리고, 늘 도움만 받아왔던 천명이 오히려 덕만을 구해낸다.

해결책은 의외로 싱겁지만, 그것은 하늘의 기운을 타고난 이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위기가 이중삼중으로 겹쳐 있다는 것, 그것이 사극의 힘을 만드는 진짜 힘이 된다. 이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미션사극의 핵심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 사극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 결말이 뻔한 사극에 빠져드느냐고?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닌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그 결과에 이르는가, 그것이 미션사극이 제시하는 가장 큰 재미요소라고 볼 수 있다.

미션사극이 성공하기 위해 가져야할 기본 전제
'선덕여왕'의 초반부를 끌어가는 힘을 미실(고현정)이라는 강력하고도 매력적인 악역에 둔 것 역시 이 사극의 다분히 의도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션사극은 도달해야할 지점이 현재 주인공이 있는 지점에서 멀면 멀수록 더 힘을 발하기 마련이다. 도달해야할 지점인 권력의 정점에 미실을 세워두고 신라도 아닌 중국 이역 땅에 덕만을 배치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 먼 곳에서부터 점점 중심으로 다가가는 덕만이 해나가는 미션들은 그 거리만큼 더 폭발력을 갖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덕만이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미션들이 가진 단순함이다. 미션사극은 우리식 사극에 저 미드가 가진 스토리 전개를 접목한 것. 하지만 50부작에 이르는 우리네 사극이 저 미드만큼 꽉 짜여진 미션들을 갖고 있다면 이처럼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선덕여왕'의 미션들은 물론 뒤따르는 미션과의 연결고리를 갖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만큼 얼개를 느슨하게 가져감으로써 시청자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 '돌 뽑기 미션'이나 '사막 추격 탈출 미션'은 연결점 없이 각각의 것으로 존재하지만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 미션들을 해결함으로써 어떤 성장의 과정을 그려내는 덕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따라서 좀 더 편안하게 각각의 미션을 즐기는 것으로 사극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것은 '대장금'에서도 익숙하게 보아왔던 김영현 작가표 사극의 파괴력이다.

‘선덕여왕’, 미션사극의 새로운 정점
미션사극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이병훈 PD의 필모그래피에서 미션사극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조망해볼 수 있다. 99년도에 방영되었던 ‘허준’과 2001년도 방영된 ‘상도’는 미션사극이 가진 가능성을 촉발시켰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최완규 작가일 것이다. 최완규 작가가 이병훈 PD와 함께 ‘허준’, ‘상도’를 통해 우리식 사극에 미드 식 전개를 붙여 미션사극의 바탕을 만들었다면, ‘대장금’에 이르러 그 바톤을 이어받은 후배 작가 김영현은 여기에 여성적인 색채를 가미하면서 사극의 시청층 자체를 넓혀놓았다.

‘선덕여왕’은 김영현 작가에게는 가장 익숙하고 능수능란한 여성이 주인공인 미션사극이다. 따라서 현재 미션사극의 정점으로서 ‘선덕여왕’이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 사극의 성공에 작가의 공만이 있을까. 미션 사극에 있어서는 그것을 연기해내는 연기자들의 몫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양 극점에 선 인물들이다. 미션을 제시하는 자와 그 미션을 수행하는 자가 균형 잡힌 대립각을 이룰 때, 미션사극의 힘은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연기하는 고현정과 덕만을 연기해온 남지현의 호연은 바로 그 대본이 가진 힘을 배가시켰다.

올해 사극이 새롭게 꺼낸 ‘여걸’이라는 카드에도 불구하고, ‘천추태후’나 ‘자명고’가 거둔 성과가 미미한 반면, ‘선덕여왕’이 단 몇 회만에 폭발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미션사극이라는 흥미로운 대본의 공이 크다. 이제 막 초반을 달리고 있는 ‘선덕여왕’은 아직도 그 파괴력의 끝을 알기가 어렵다. ‘주몽’은 한때 월화의 밤을 장악한 이래, 한동안 동시간대 타방송사의 드라마들이 맥을 추지 못하게 했다. 탄력을 받은 사극을 현대극으로 맞받아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이산’이 등장했을 때 SBS는 ‘왕과 나’로 맞불을 놓았었다. 하지만 ‘자명고’가 사극으로서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선덕여왕’의 독주는 막을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선덕여왕’의 폭발력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뜨는 드라마에는 꼭 있다, 판타지남

구준표(이민호)는 엄청난 대부호의 아들로 뭐든 못할 게 없는 인물. 그런 남자가 한 여자, 잔디(구혜선)만을 사랑한다. 이것이 '꽃보다 남자'의 단순하지만 강력한 판타지의 핵심이다. '내조의 여왕'의 태봉씨(윤상현) 역시 퀸즈푸드라는 대기업의 사장으로 재력과 능력을 겸비한 남자. 그런 그가 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천지애(김남주)를 좋아한다. '시티홀'의 조국(차승원)은 젊은 나이에 성공한 능력 있는 정치인. 하지만 그는 시골의 10급 공무원 신미래(김선아)에게 빠져 '안하던 짓', 사랑을 하게 된다. '찬란한 유산'의 박준세(배수빈)는 능력에 성품까지 겸비한 남자. 그는 어느 날 만나게 된 집도 절도 없는 고은성(한효주)을 사랑하게 된다.

구준표에서 태봉씨, 조국, 박준세까지,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모두 잘 생겼고, 둘째 재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셋째 보잘 것 없는 여자 주인공을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넷째는 현실적으로는 발견하기 힘든 판타지 속의 완벽한 남자들이다. 무엇보다 큰 공통점은 이들이 등장한 드라마가 모두 성공작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러한 판타지남들이 있어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남자가 어디 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 속에서 이들이 하는 역할은 지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먼저 자신들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여성 주인공을 만남으로 해서 신데렐라 혹은 캔디적인 판타지의 바탕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판타지는 과거처럼 왕자님이 그녀와 결혼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현대적인 신데렐라 혹은 캔디의 이야기는 그 왕자님이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는 그녀가 자신들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남모르게 돕는 것이다. 즉 외모나 성품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노력이 전제되는 판타지로 그 이야기는 바뀌고 있다.

태봉씨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천지애 모르게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며 그녀가 처한 위기를 돌봐주고, 조국은 이제 막 정치의 세계 속에 들어와 고군분투하는 신미래를 걱정하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해법을 들려준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고은성을 위해서 박준세는 헌신적이라 할 만큼 그녀를 도와준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헌신에 대한 대가조차 바라지 않는다. 티 나지 않는 도움이기에, 그녀들은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면에서 이 남자들은 키다리 아저씨를 닮았다.

이 이른바 뜨는 드라마 속에 꼭 존재하는 판타지남들의 공통점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대 여성들의 로맨스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만큼 커진 성공 욕구일 것이다. 이제 현대 여성들이 꿈꾸는 남자는 그저 잘생기기만 해서도 안되고, 그저 부자이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남자들이 그 모든 걸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그녀들을 뒤에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성공의 길로 이끄는 판타지남들이 완성되게 된다.

이들 판타지남들에 대한 신드롬에 가까운 열광은 이것이 판타지라는 점에서 정반대되는 현실을 말해준다. 불황의 여파로 사회는 더 각박해졌고, 기득권이라고 하는 남성들조차 버텨내기 힘든 경쟁시대로 돌입했다. 그러니 여성들은 오죽할까. 점점 완벽해져가는 판타지남들과 그들에게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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