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나를, 나만 혹은 나도

결혼하면 사랑은 어떻게 변할까. 혹은 결혼은 사랑을 구속할 뿐인가.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이 도발적인 제목의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결혼과 사랑의 이중주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말은 ‘결혼한 아내가 또 결혼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이 된다. 그런데 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네 관습적, 윤리적, 법적 기준에 의한 것이다. 이것을 넘어선다면 그것은 문장으로서 말이 된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바로 그 관습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판단하는 그것을 눈앞에 보여주면서 이것도 말이 된다고 주장하는 영화다.

아내 주인아(손예진)는 그 이름에서부터 역전되어 있는 남녀간의 관계를 보여준다. 남편 노덕훈(김주혁)은 그녀를 “주인아씨”라고 부르게 된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주인아는 자유를 구가하는 여인인 반면, 노덕훈은 그 자유로운 여인에 전전긍긍하는 전형적인 소심남이다. 노덕훈은 그녀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유하길 바라지만, 무심코 뱉은 “내 거”라는 말에 그녀는 “나 자길 사랑하지만 자기 건 아냐”하고 되받는다. “나를 사랑한다”고 여기게 된 여인을 “나만을 사랑하게” 하고픈 욕구 때문에 노덕훈은 그녀에게 결혼을 하자고 조른다. 하지만 결혼으로 ‘내 거’ 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그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순간부터 그는 그녀가 ‘나도’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나를’에서 ‘나만’으로 그리고 ‘나도’로 바뀌는 이 3단계의 사랑을 영화는 축구경기를 빗대서 보여준다.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사랑하던 ‘나를’의 단계에서 보여지는 축구경기는 각자의 공간에서 보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로셀로나 FC의 경기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밤새 본 이 경기를 공동화제로 서로에게 다가간다. ‘나를’에서 ‘나만’으로 가는 두 번째 단계, 즉 결혼을 하게 되는 그 지점에 등장하는 건 2002 월드컵 스페인전이다. 홍명보가 골을 넣는 그 집단적인 황홀감에 젖어 있는 순간, 주인아는 노덕훈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만’에서 ‘나도’로 가는 세 번째 단계에서 보여주는 경기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유럽에서 아내와 두 남편과 그리고 딸 이렇게 넷이 함께 보는 축구경기다.

영화가 굳이 축구를 빗대 우리네 결혼의 속살을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단지 축구경기가 남녀 간의 사랑 행위를 상징적으로 닮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네 정서 속에 담겨 있는 결혼이라는 틀 이면의 얼굴이 담겨져 있다. 즉 2002 월드컵의 집단적인 분위기에서 주인아가 허락하는 결혼은, 결혼이라는 것이 단지 사랑의 종착지가 아니라 그렇게 사회의 집단적인 분위기에서 강요되는 어떤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특히 아내가 결혼한 후, 두 집 살림을 하는 주인아가 아이를 갖게되자 “우리 아이야?”하고 묻는 대목에서는 우리네 핏줄 의식에 대한 집착이 들어 있다. 주인아는 ‘우리’아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저 노덕훈이 말하는 ‘우리’와 의미가 다르다. 첫 남편과 둘째 남편 그리고 아기까지 아우르는 ‘우리’를 뜻하는 것이다.

“한국 축구의 문제점이 뭐냐”고 묻는 대목에서 그것은 “골 결정력 부족”이 아니라 “즐기지 못하는 것”이라는 대사는 사랑 그 자체보다 오히려 어떤 목표로써 자리하고 있는 결혼이라는 강박을 에둘러 말해준다. 주인아가 축구에 빗대 말하는 이 투톱 시스템(?)에 “현재 스코어는 불륜이야”하고 소리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렇지만 가끔은 이 여자를 이해하고 싶어진다”고 말하는 노덕훈은 어쩌면 이 농담 같고 게임 같은 상황 속에서 결혼이라는 구속의 틀을 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말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이기도할 것이다.

고정이냐 게스트냐, 예능 멤버를 바라보는 두 시선

김종국은 결국 ‘패밀리가 떴다’의 손님으로 남게 됐다. 장혁재 PD는 현재의 멤버들 간의 팀웍이 좋고 다양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팀 구성이라며 김종국의 패밀리 영입설을 일축했다. 지난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한 김종국을 두고 벌어진 고정이냐 게스트냐는 양 갈래의 시선 중 ‘패밀리가 떴다’는 결국 전자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물론 김종국 스스로도 먼저 “당장은 가수활동에 더 충실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니 김종국의 ‘패밀리가 떴다’ 출연은 애초부터 게스트에 더 힘이 실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종국을 두고 벌어진 이 고정과 게스트에 대한 반응은 예능 멤버를 바라보는 두 시선을 드러내준다.

재미와 식상, 강화된 캐릭터, 팀웍의 이중성
집단 MC체제의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대부분 고정 MC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면서 얻은 것은 강화된 캐릭터다. 물론 매번 다른 상황에서의 반응이 주를 이루는 프로그램 성격상 캐릭터는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즉 과거의 1인, 2인 MC에 매번 바뀌는 게스트들을 가진 쇼에서는 매번 다른 얼굴들이 새로운 재미를 주었지만, 이제는 같은 얼굴들이 매번 다른 상황에서 즉각적인 반응으로 재미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그것은 고정 MC들의 캐릭터가 굳어지고 팀의 결속이 강화되는 과정에서는 최고의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것이 완성된 후 반복되는 과정에서는 동시에 식상함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쇼에서는 늘 새로운 멤버를 염두에 두게 된다.

‘무한도전’은 새로운 멤버에 대해 극도로 폐쇄적이었다. 하하가 군입대로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없게 되자, 새로운 멤버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5인 체제로 한 동안 프로그램이 강행되었다. 때때로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로 게스트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역시 공백은 분명했다. 이러한 공백은 객원의 위치로 멤버에 안착한 전진에 의해 채워지게 되었다. 초기 새로운 멤버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보면 ‘무한도전’에 어떤 생기를 부여한 전진의 투여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고정이냐, 게스트냐 이것이 문제로다
한편 ‘1박2일’은 초창기 프로그램이 정착하기 이전에는 멤버들이 유동적이었다(이것은 초기 ‘무한도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상렬, 김종민 등이 활약했지만 현재의 멤버들로 차츰 바뀌면서 지금은 어떤 프로그램보다 고정 멤버들 간의 결속이 강화되었다. 새로운 멤버에 대한 여지를 찾기가 어려운 현재 ‘1박2일’은 그만큼 고정 멤버들 속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혹은 변신)하는 것이 절실해진 시점이다. MC몽이 몽장금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허당 이승기가 울컥하는 모습을 자주 드러내는 건 이런 노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종국이 새로 투여된 ‘패밀리가 떴다’에서 김종국을 고정으로 해야한다, 아니다를 두고 벌어졌던 논란에는 시청자들의 멤버 영입에 대한 이중적 시각을 알 수 있다. ‘패밀리가 떴다’는 사실 리얼 버라이어티의 후발주자로 들어오면서 이러한 고정 캐릭터가 갖는 딜레마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장치로서 게스트를 적극 활용한 프로그램이다. 매번 새로운 게스트를 초대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은 쉬 식상해질 수 있는 캐릭터를 보완해주는 힘이 있다.

게스트 시스템을 계속 활용하고 있던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독 김종국에 대한 고정 찬반 논란이 일어났던 것은 그가 예능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전적이 있는 데다가, 이 프로그램에서의 캐릭터들에게도 점점 이미지가 고정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아무리 게스트 시스템 같은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패밀리가 떴다’ 역시 팀웍이 강화되면서 캐릭터가 굳어지고 그 이미지 소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방신기와 김종국이 연거푸 출연하면서 ‘패밀리가 떴다’는 신선함을 계속 유지하려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김종국에 대한 게스트냐 고정이냐를 두고 벌어진 논란은, 기존 ‘패밀리가 떴다’의 멤버들에 대한 애착과 동시에, 식상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에 새로운 얼굴을 기대하는 욕구 또한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틱’에 이은 ‘매거진T’의 휴간, TV비평은 어디로?

TV가 가진 엄청난 힘에도 불구하고 TV비평은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국내 유일의 드라마 전문 비평 오프라인 잡지였던 ‘드라마틱’이 2008년 2월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을 결정한 데 있어, 온라인 TV비평웹진인 ‘매거진T’ 역시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잠정적인 휴간을 결정해 많은 애독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편집장, 백은하씨가 27일 남긴 글에 의하면 ‘매거진T’가 재정적자에 이른 이유로, ‘충분한 재화로 보상받기에 턱없이 부족한 웹 기사의 가치’그리고 수금체계 자체가 없는 ‘공짜정보’로서의 웹진이 가진 한계를 들었다. 백은하 편집장은 “지난 2년 5개월은 단 한 걸음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며 그 힘겨움을 토로했다.

‘매거진T’가 가진 TV비평지로서의 가치는 단순히 하나의 웹진 그 이상이다. ‘매거진T’는 진지한 비평에서부터 가십성의 글, 그리고 매니아적인 정보까지 두루 갖춘 웹진으로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즉 전문적이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가벼운 TV 프로그램에 관한 글들 속에서 늘 진지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TV를 단순히 오락기 혹은 바보상자로 취급하며, 저 스스로를 평가절하 해온 TV비평은 사실 지금 같은 매체의 시대가 응당 그 가치를 복원해야할 어떤 것이다. 쌍방향 시대의 뉴미디어로 진화되고 있는 TV는 이제 이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지대한 위치를 차지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매거진T’가 가진 TV프로그램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바로 그 TV비평의 가치를 이 시대에 복원시킨 공이 있다. 또한 지나친 엄숙주의로 비평의 이론에만 갇힌 학계의 비평과 결을 달리해 즐겁게 대중들의 눈높이를 찾아간 것도 ‘매거진T’만이 가졌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매거진T’는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연예기사들의 바다 속에서 어느 정도의 격과 재미를 갖추고, 이리저리 휩쓸리던 대중들에게 어떤 등대 역할을 해준 점도 가치거니와, 우후죽순 등장하는 예비 비평가들에게 그 상징적인 가치도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매거진T’의 가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얼른 돌아오라”며 “자발적 구독료 운동을 하자”는 댓글을 달고 있는 네티즌들을 통해 충분히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모쪼록 안타까운 일이 없기를 바라며 빠른 시일 내에 상황이 정상화되어 복귀하기를 기원한다.

‘베바’, ‘바화’ 그리고 ‘그사세’, 그 삼박자 드라마들의 세상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는 초기 기획단계에서는 기대작이 아니었다. ‘태왕사신기’의 끼워팔기용 땜빵드라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 물론 이재규 감독은 이 기사가 오보라고 밝혔지만 그만큼 타 작품에 비한 기대감은 적었다는 말이다. 반면 ‘베토벤 바이러스’와 경쟁하고 있는 ‘바람의 나라’는 기획단계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작품이다. 고구려 사극의 원조격인 김 진 원작의 동명의 이 드라마는 해외로케와 스펙터클한 영상으로 초반부터 시선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역시 답은 작품에 있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클래식이라는 마니아적인 소재를 갖고도 훌륭한 캐릭터와 탄탄한 대본, 그리고 환상적인 연출로 대중들의 지지를 얻었다. 마니아성과 대중성을 모두 얻은 데는 홍진아 홍자람 자매라는 작가의 역량과 ‘다모’를 연출했던 이재규 감독의 재기 넘치는 연출력, 그리고 무엇보다 김명민이라는 배우의 연기력이 삼박자를 이룬 데서 비롯된다.

한편 뒤늦게 시작해 시청률은 아직 낮지만 특유의 완성도 높은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바람의 화원’은 조금씩 그 세찬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신윤복 신드롬이 일어날 정도의 화제를 가져온 이정명 원작의 힘이 그 바탕에 있고, 그 작품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연출해내는 장태유 감독의 장인정신이 뼈대를 세웠으며, 그 위에 문근영을 위시한 연기자들의 신들린 연기가 살을 만들었다.

월화 드라마로 새롭게 시작하는 ‘그들이 사는 세상’ 역시 이 삼박자 드라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두 말할 필요가 없는 노희경 작가의 대본과 표민수 PD의 연출, 그리고 그 위에 한바탕 신명나는 연기를 펼칠 송혜교와 현빈이라는 연기자가 그 주역이다. 무엇보다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이 작품을 노희경 작가는 작품성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확보할 역작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작년 ‘인순이는 예쁘다’로 시청률은 낮았지만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보여주었던 표민수 PD의 촘촘하고 섬세한 연출력은 기대감을 더 갖게 만든다.

언제부턴가 우리네 드라마 판은 자본력과 스케일, 화제성 같은 것이 작품성 그 하나보다 더 중요해진 세상이 되었다. 압축적으로 영상미학을 보여주는 드라마보다는 50부, 100부작이라는 대작의 간판이 더 앞에 걸려지고, 해외 로케이션이나 사회적인 논란거리를 담은 소재 같은 것들이 작품 그 자체보다 우선되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결국 대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라는 이 삼박자 위에서 춤추지 않으면 거추장스러운 화제성의 옷만 걸쳐 입은 추한 춤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 삼박자 드라마가 부디 ‘그들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세상’이 되기를 기원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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