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갑’, 소지섭·손예진의 아련한 동화 같은 판타지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어린 아이에게 읽어주는 ‘구름나라’ 동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죽은 엄마가 장마가 시작되자 돌아와 아이를 만난다는 동화. 우진(소지섭)의 어린 아들 지호(김지환)는 세상을 떠난 엄마 수아(손예진) 역시 장마가 시작되면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 그런 아들이 못내 안타깝지만 어느 장마가 막 시작하던 날 우진과 지호 앞에 진짜 수아가 나타난다. 

설정부터가 동화 같은 판타지지만, 관객들은 의외로 이 이야기에 몰입한다. 돌아온 수아는 모든 기억이 사라져버렸고, 우진으로부터 그들이 어떻게 만나 사랑하고 함께 살게 되었는가를 하나하나 듣게 된다. 판타지 설정으로 시작한 이야기지만, 관객들은 그런 판타지는 어느 순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건 우진과 지호가 얼마나 절절하게 수아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었는가가 충분히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어느새 이들의 바람에 몰입하게 된 관객은 죽은 이가 돌아온다는 설정을 믿고 싶어진다.

하지만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담으려는 건 단지 죽은 인물이 돌아와서 다시 이어지는 사랑이야기 정도가 아니다. 기억을 잃은 수아가 우진으로부터 다시 듣게 되는 그들의 첫 만남부터 이별과 재회 그리고 결혼까지 해 아이를 갖게 되는 그 과정의 이야기들은 새삼 우리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한다. 이미 결혼해 가정을 꾸린 이들이라면 그렇게 살다보니 마치 기억을 잃은 것처럼 지워버린 젊은 날의 설렘과 절절했던 사랑이 이 영화를 통해 새록새록 떠오를 수 있다. 

과거와는 기억이 단절되어 살아가던 수아는 우진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그 사랑을 다시금 느끼기 시작한다. 잊고 있던 사랑을 재확인하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것. 그건 이제는 무뎌진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남다른 감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단지 추억을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옆에 그 사람이 있었다는 걸 수아와 우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첫 사랑의 이야기는 아련한 동화 같은 판타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바로 그 이야기가 가진 동화 같은 마력적인 힘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시작과 함께 읽어주는 ‘구름나라’ 동화가 가진 힘이 그렇고, 후반부에 이르러 수아가 써내려간 일기의 이야기들이 그렇다. 그 이야기들은 현실이 맞나 싶은 아련함으로 다가와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힘겨운 삶을 지금껏 지탱해주고 있는 숨은 힘들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이야기를 마치 진짜인 것처럼 시침 뚝 떼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하나의 상징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며 서로에게 아름다운 영향을 주었던 그것들이 있어 결국은 누구나 이별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굳건히 살아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Be with you’다. 지금 옆에 없어도 항상 당신 옆에 있다는 것. 그건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기억이자 이야기가 가진 마력 같은 힘을 말하는 것일 게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한 겨울 같은 차가운 현실 앞에서 몸도 마음도 식어버린 삶이라면, 그들에게도 찬란했던 한 여름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고 때론 촉촉하게 쏟아져 내리던 장마 같은 감정들이 폭발했던 때가 있었다는 걸 끄집어내주는 영화다.(사진:영화'지금 만나러 갑니다')

‘무한도전’과 김태호 PD에게 휴식기가 갖는 의미는 뭘까

거의 하루가 멀다 하고 MBC 예능 <무한도전>의 향배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김태호 PD의 하차선언과 함께 3월 말을 기점으로 프로그램이 종영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MBC가 출연자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출연자들 역시 전원 하차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마치 <무한도전>이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뉘앙스처럼 보도되었지만, 또 다른 매체는 이를 뒤집었다. 김태호 PD “<무한도전>은 계속 됩니다”라는 말로 이런 의혹들을 불식시켰다. 

이처럼 혼란이 가중되는 이유는 13년을 이어온 이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마치 프로그램이 사라질 것처럼 얘기되는 건 그 아쉬움과 불안감이 작용한 탓이다. 하지만 MBC도 공식적으로 밝혔고, 김태호 PD도 밝힌 바대로 <무한도전>은 일정 기간 휴식기를 거쳐(가을 정도에) 다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혼선이 남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김태호 PD가 돌아와 만드는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인지 아니면 새로운 프로그램인지 아직 확실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팬들 입장에서는 <무한도전>이 돌아오는 걸 기대하겠지만, 김태호 PD 입장에서 보면 지금 형태 그대로의 <무한도전>으로 돌아오는 건 휴식기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일일 수 있다. 그래서 충분히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식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물러나 이 상황을 생각해보면 김태호 PD가 그 어떤 프로그램을 새롭게 가져오고, 또 심지어 거기에 새로운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해도 시청자들로서는 큰 의미에서 그것 역시 <무한도전>의 또 다른 행보라고 충분히 인지할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한 건 지금껏 <무한도전>이 걸어왔던 길들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사실 매회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다름없는 아이템들을 시도했던 독특한 형식이 바로 <무한도전>이었다. 그건 <무한도전>이라는 브랜드로 묶여있을 뿐, 사실 독립적인 하나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보면 그렇게도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심지어 몇몇 아이템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발화되어 다른 독립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화한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김태호 PD가 시도할 새로운 프로그램 역시 크게 보면 그 <무한도전>의 연장선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무한도전>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해주는 건 그간 13년 간을 함께 해온 출연자들이다. 하지만 그간 많은 출연자들이 나가고 들어왔고, 어떤 아이템의 경우에는 무수한 외부출연자들이 출연해 함께 프로그램을 빛내기도 했다. 이를테면 소지섭 같은 배우나 유병재, 이적, 유희열, 김제동 같은 인물들은 고정 출연자는 아니지만 시청자들에게는 큰 의미에서 <무한도전> 패밀리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니 사실 누가 들어온다고 해도 김태호 PD가 시도할 새로운 도전들 속에서 그건 또 다른 <무한도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게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은 어느새 김태호 PD 역시 그저 제작자가 아니라 <무한도전>을 구성하는 멤버로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 그가 없는 <무한도전>은 의미가 없다고 시청자들도 또 출연자들도 말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이건 거꾸로 보면 그가 만들고 존재하는 프로그램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무한도전>의 또 다른 행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지금 현재 <무한도전>의 핵심적인 변화란 ‘휴식기’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건 이미 이전부터 김태호 PD가 그토록 요구해왔던 ‘시즌제’를 본격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즌제는 기존의 <무한도전>의 틀에서 훨씬 확장된 기획들을 가능하게 한다. 어떨 경우에는 지금의 출연자들이 함께 하는 기획이 가능하지만, 어떨 경우에는 그들 없이 새로운 인물들을 세운 김태호 PD의 시도가 가능하다. 

보다 큰 틀로 이해하면 김태호 PD의 선택은 보다 더 오래 <무한도전>을 이어가기 위한 행보라고 말할 수 있다. 여러모로 리얼리티 시대에 접어든 현재, 캐릭터쇼로 시작됐던 <무한도전>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맞이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즌제가 갖는 완성도와 변용들이 요구되는 시점이니 <무한도전>이 지금껏 해왔던 행보를 그대로 답습한다는 건 스스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길이다. 김태호 PD는 이미 큰 그림 안에서 새로운 <무한도전>을 준비 중이다.(사진:MBC)

법은 누구의 편인가, ‘리턴’ 박진희 복수가 던지는 질문

“내가 왜 19년 동안 그 네 명을 직접 죽이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냐?” SBS 수목드라마 <리턴>에서 최자혜(박진희)가 변호인 금나라(정은채)에게 던지는 이 질문은 그의 복수가 단지 가해자에 대한 단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는 19년 간을 말 그대로 와신상담해왔다. 딸이 처참하게 죽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보호대상’이 되어 풀려난 가해자들이 버젓이 살아가는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내기 위해.

당시 ‘촉법소년’이라는 명분을 법적으로 이용해 이른바 ‘악벤져스’들이 빠져나간 건 그들이 가진 재력과 권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돈과 권력을 이용해 법망을 빠져나갔고 대신 죄 없는 태민영(조달환)이 가난하고 힘없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 결국 법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 되었던 것.

그러니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 ‘악벤져스’들의 범죄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최자혜의 어린 딸을 죽게 만든 후에도 김정수(오대환)의 여동생을 성폭행했고 그럼에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빠져나갔다. 오태석(신성록)이 말하듯 그들은 법이 처벌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법을 주무를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최자혜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만을 단죄한다는 것은 진정한 복수가 될 수 없었다. 그가 왜 직접 그들을 죽이지 않고 이렇게 복잡하게 사건을 이끌어왔는가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는 염미정(한은정)의 사체를 그들의 차에 넣어 과거의 사건을 다시금 현재로 가져오게 했다. 당시에는 촉법소년으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존재로서 그런 끔찍한 선택을 했다고 법이 판단했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어 이제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과거에 했던 그대로 똑같이 염미정의 사체를 유기하려 한다. 게다가 그 사실을 알고 협박을 해온 자동차 딜러 김병기(김형묵)를 총으로 쏴 잔인하게 살해한다. 죄를 지어도 벌 받지 않았던 그들은 자신들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마저 둔감해져 버렸다. 물론 이들 악벤져스에 의해 죽을 위기에까지 몰렸던 서준희(윤종훈)는 어디서부터 그들이 엇나가기 시작했는가를 깨닫고 그 잘못을 뉘우치려 노력하지만 번번이 그 노력은 실패로 돌아간다.

번듯한 가정을 꾸려 과거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려 한 강인호(박기웅)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죄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걸 묻어두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강인호는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그 사건을 덮으려는 유혹에 흔들린다. 

법은 도대체 누구의 편인가. <리턴>이 최자혜의 남다른 복수를 통해 던지고 있는 질문은 이것이다. 그는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그 법의 부당함을 만방에 드러내려 한다. 과연 그건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그것 또한 범죄라고 볼 수 있지만, 시청자들은 적어도 그가 하려는 그 일들 속에 담겨진 피해자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가해자는 버젓이 잘 살아가고 피해자는 그 상처 속에서 평생을 죽음처럼 버텨내고 있는 현실을.(사진:SBS)

‘우리는 썰매를 탄다’, 그들이 웃을 때 눈물이 났던 까닭

아이스하키를 하지만 이들은 썰매를 탄다. 스케이트 대신 양날이 달린 썰매를. 연습장에서 썰매를 지치고 퍽을 날리고 넘어지고 부딪치면서도 달리고 또 달린다. 그 연습장면을 보는 어린아이들은 그들을 보며 신기한 듯 말한다. “다리가 하나밖에 없어.” 

다큐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는 파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이 어떻게 피나는 연습을 해왔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 쉽지 않은 삶 속에서도 함께 모여 경기를 하며 웃고 울었는가를 담담히 담아내고 있다. 

시작부터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건 이들의 낡은 썰매에 새겨진 무수한 스크래치들이다.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빙판 위를 달리고 넘어지고 했으면 그런 스크래치들이 생겨났을까. 그런데 그 스크래치는 그들의 낡은 썰매에만 새겨진 것 같지 않다. 그건 그들이 어느 날 사고를 당하고 불쑥 찾아온 장애 앞에 모든 게 무너졌던 그 순간들을 이겨내며 갖게 된 상처들처럼 보인다. 

정승환 선수는 어릴 적 다리를 다쳐 결국 절단하게 됐지만, 부모님은 그 다리가 나무처럼 자라날 거라 말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걸 믿고 살았다고 한다. 결국 학교에 들어갈 때 자신은 남처럼 달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 힘들 수 있는 이야기를 아무런 구김살 없이 밝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은 그래서 더 뭉클하게 다가온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아픔들이 이들을 오히려 웃게 만들었을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파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대부분이 그런 웃는 표정들이다. 누군가는 아직도 피가 나고 고름이 차 경기 후 스스로 주사기를 꽂아 그걸 뽑아내며 버티고 있지만 그래도 웃는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딸의 운동회에서 함께 달려주지 못해 씁쓸해하면서도 애써 아이에게 웃음을 지어 보인다. 누군가는 나이 들어가는 노모와 살아가며 자신을 걱정하는 노모에게 “오래 사시라”며 자신은 걱정할 것 없다 말하며 웃는다.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새벽에 빙상장을 겨우 빌려 연습을 하기도 하고, 묵을 여관비가 없어 라커룸에서 함께 잠을 자며 경기에 나가기도 했으며, 해외 원정 경기 때는 국가대표가 비행기표를 지원받지 못해 각각 개인비용을 치르고 나가 경기를 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그래도 웃는 얼굴이었다. 그 웃음이 그저 웃음일 뿐일까 싶지만, 그들은 어찌 보면 경기를 한다는 그 자체가 커다란 행복처럼 보였다. 

그런 그들이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은메달을 땄다. 세계 언론이 한국대표팀에 대해 “기적을 써나가고 있다”고 대서특필했지만, 우리들은 그런 일에 대해 관심을 거의 주지 않았다. 해외에서 열린 그 경기에서 상대팀을 응원하는 이들이 가득 채워진 반면, 우리 측 응원단석에는 쓸쓸한 플래카드 하나만 걸려 있을 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은메달을 따고 귀국한 그들을 공항에서 맞아주는 이들도 가족들뿐이었다. 

하지만 정승환 선수는 이 운동을 하면서 이제 정상인으로 돌아가는 걸 꿈꾸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이 운동과 함께 하는 이들과의 시간이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우리는 썰매를 탄다>라는 제목이 주는 뭉클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것은 메달을 따온다고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 썰매를 탈거라는 스스로의 ‘다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이들은 일본에 이어 체코를 누르고 2연승을 하며 또 하나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사진:영화'우리는 썰매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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