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상한 변호사들 때문에 기대감 급상승한 ‘스토브리그2’

스토브리그

“백씨가 한 둘이에요? 백종원. 백지영. 백윤식... 백승수.”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에서 법무법인 백을 찾은 천지훈(남궁민)이 그 법인명이 하필 ‘백’이라는 걸 들어 백마리(김지은) 변호사가 그 곳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백마리는 백씨가 한 둘이냐며 그렇게 대꾸한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등장한 ‘백승수’라는 이름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스토브리그>의 주인공 백승수 단장(남궁민)을 말하는 것. 남궁민이 연기한 인물이지만 그는 모르는 척 능청을 부리며 말한다. “아 백승수가 있었구나? <스토브리그> 봤어요? 아 그거 되게 재밌었는데 왜 시즌2 안 나오나 몰라.”

 

아마도 <스토브리그>를 봤던 팬이라면, 그래서 그 드라마 때문에 남궁민과 박은빈의 팬이 됐던 분들이라면 이 드라마가 슬쩍 유머를 넣어 던지는 이 대사에 반색했을 게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드디어 배우로서의 가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박은빈에, <오늘의 웹툰>으로 주춤했던 SBS 금토드라마를 등판과 함께 반등시켜버린 <천원짜리 변호사>의 남궁민이 함께 했던 드라마. 이쯤 되면 시즌2를 안하는 게 이상해져버린 <스토브리그2>가 아닌가. 

 

공교롭게도 박은빈과 남궁민 모두 최근작 배역이 변호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그 변호사가 어딘가 ‘이상한 변호사’라는 것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약자인 서민들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인물들이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진짜 공통점은 이 두 배우가 그려가고 있는 연기 스펙트럼의 무한 확장이다. 

 

남궁민은 <김과장>의 김과장 같은 코믹한 캐릭터는 물론이고,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 <낮과 밤>의 도정우, <검은 태양>의 한지혁 같은 누아르에 가까운 무게감이 느껴지는 캐릭터, <스토브리그> 같은 이지적인 캐릭터까지 그 연기의 영역을 한껏 넓혀온 배우다. 마찬가지로 박은빈도 최근 <청춘시대>의 송지원 같은 보이시한 청춘은 물론이고, <스토브리그>의 이세영 같은 당찬 오피스우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채송아 같은 내성적이고 감성적인 청춘, <연모>의 이휘 같은 사극 속 남장여자를 거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자폐스펙트럼 연기까지 소화했다. 이러니 이들의 연기 성장은 K드라마의 성장과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스토브리그> 시즌2는 시즌1이 워낙 다양한 소재들을 다뤄 쉽지는 않다고 여겨진다. 이신화 작가의 입봉작이지만 이 작가는 이 작품을 꽤 오래도록 준비했던 걸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야구 마니아인지라 깊숙이 그 세계를 취재하고 이야기가 될 만한 것들을 시즌1에 충분히 채워넣은 것. 그러니 시즌2는 기대감이 높아지는 만큼 부담감도 커지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팬들도 그렇고 작가 스스로도 시즌2의 가능성을 얘기한 바 있어 <스토브리그2>는 여전히 기대할만한 여지가 남아있다.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배우들이다. 대부분 시즌2가 어려워지는 건 시즌1의 배우들이 스케줄이나 출연료 문제로 계속 시즌2로 작품을 이어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궁민이 <천원짜리 변호사>의 천지훈의 목소리를 빌어 <스토브리그2>에 대한 기대감을 얘기한 부분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주인공 역할의 남궁민은 이 작품에 호의적인 마음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은빈도 마찬가지다. 최근 연예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은빈은 물론 “아직 불확실한 게 많다”고 전제하면서도 <스토브리그2>를 기다린다는 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것이 거기 출연했던 배우들 대부분의 염원이라고도 밝혔다. 일단 적어도 시즌2 제작에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배우들의 의향은 어느 정도 확인된 셈이다. 

 

최근 들어 시즌제가 점점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해져가고, 그래서 시즌2의 성공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으로 박은빈이 미국비평가협회가 선정한 라이징스타상을 받는 등 K콘텐츠의 성공이 글로벌로 바로 이어지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니 이러한 시기에 박은빈과 남궁민이 다시 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스토브리그2>의 시도는 충분히 의미 있는 도전이 되지 않을까. 최근 이 두 사람이 연기한 이상한 변호사들 때문에 기대감이 급상승한 <스토브리그2>. 이쯤 되면 안하는 게 이제 이상한 상황이 됐다. (사진:SBS)

빙고게임으로 사건 해결? ‘천원짜리 변호사’가 풍자하는 것

천원짜리 변호사

엉뚱하고 다소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속이 시원하다.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가 가진 이상한 관전 포인트다. 단 돈 천 원에 변호를 맡아주는 이상한 변호사가 등장하고 뭔가 대단한 법 조항을 들어 반전의 승소를 이끌어내는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싶지만 이 변호사가 풀어내는 의뢰인 변호는 엉뚱하기 이를 데 없다. 

 

천영배(김형묵)의 갑질사건이 결국은 천지훈(남궁민)이 제안한 빙고게임으로 해결된다는 에피소드는 단적인 사례다. 아파트 경비아저씨는 물론이고 개인 운전기사, 회사 내 직원들에게 툭하면 폭행, 폭언 같은 갑질을 해온 천영배. 천지훈은 경비아저씨가 차에 스크래치를 냈다고 생떼를 쓰는 천영배의 차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손수레로 밀어버리고, 소송을 걸겠다는 천영배의 으름장에 백마리(김지은)를 자신의 변호인으로 내세운다. 천지훈 밑에서 시보를 하려는 백마리에게 일종의 숙제를 준 것. 

 

하지만 사건을 오히려 키워버린 천지훈의 행동에 백마리는 법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돈을 들여 차를 고쳐주거나 돈이 없으면 구치소에 들어가거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결론이었던 것. 여기에 백마리가 무료법률상담을 해줬던 김태곤(손인용) 역시 바로 그 천영배의 상습적인 폭행, 폭언으로 갑질을 당했던 운전기사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백마리는 심지어 천영배와의 학연까지 이용해 어떻게든 의뢰인들에게 도움을 줘볼까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천지훈이 원하는 해결책이 아니었고, 백마리 역시 끝내 천영배에게 “선배님-”이라는 말을 내뱉지 못한다. 

 

“마리씨. 일을 해결하는 방식에는 말이죠.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사과를 해서 일을 무마시키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어떤 사람은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사람도 있겠죠. 헌데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이 법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온 게 아니잖아요. 도움이 필요해서 온 거지. 변호사니까 무조건 법으로 해결해야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본인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한 번 생각해 봐요.”

 

고민하는 백마리에게 천지훈이 건네는 이 말은 <천원짜리 변호사>가 그리는 법정물이 여타의 그것들과 어떻게 다른가가 잘 드러나 있다. 법이든 법이 아니든 천지훈이 꿈꾸고 있는 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돕겠다는 것이다. 물론 법적 지식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꼭 법정 안에서의 해결만을 생각하지는 않겠다는 것. 

 

결국 백마리는 언론에 천영배가 자신의 차량을 파손한 경비원에게 수리비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거짓 미담을 터트리고, 대외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천영배의 심리를 이용해 차량 분쟁을 해소하면서도 경비원이 일자리를 잃지 않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갑질을 일삼는 천영배에 대한 처절한 응징은 천지훈의 몫으로 남겨졌다. 천지훈은 천영배가 모시는 모회장의 변호를 맡아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해준 후, 그를 등에 업고 천영배에게 거꾸로 갑이 됐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갑질에는 갑질로 대응해준 것. 

 

또 천지훈은 모회장이 구치소에 갇혀 자리를 비운 사이 천영배에게 갑질을 당해온 직원들의 집단 소송 대리인이 되어 그 사실들을 폭로하고, 기상천외하게도 모회장에게 빙고게임을 제안하며 자신이 지면 고소를 취하할 것이고 자신이 이기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약속 그리고 천영배를 사직시켜달라고 한다. 그간 구치소에 모회장을 면회하며 빙고게임을 계속 이겨온 천지훈이 그 승부욕을 건드려 게임에 응하게 한 것이다. 

 

결국 빙고게임은 숫자를 불러줄 파트너로 백마리가 지목되면서 사실상 승부는 끝나버렸다. 둘 만이 아는 법 조항들을 암호처럼 주고 받으며 천지훈이 원하는 숫자를 백마리가 추리해 불러주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됐던 것. 물론 법정에서 벌어지는 법의 대결이 아니라, 빙고게임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건 황당하고 어찌 보면 유치하게까지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통쾌하게 느껴지는 면 또한 있다. 그건 어찌 보면 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혹은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안들이 우리네 서민들의 현실이라는 점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천지훈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마치 이러한 부조리한 법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법을 잘 아는 이들이 오히려 가진 자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법망을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법을 활용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고 있는 그런 인물. 그래서 이러한 돈키호테 같은 판타지 캐릭터는 비현실적이지만 그 자체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 끈다. 

 

그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코믹함과 진지함을 오가며 실제로 존재했으면 싶은 인물로 형상화해내는 것에 있어 남궁민이라는 믿고 보는 배우의 역할과 아우라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든든한 연기력이 있어 <천원짜리 변호사>의 유치함이 가벼움으로 치부되지 않고 세태를 꼬집는 속 시원한 판타지로 그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진:SBS)

‘작은 아씨들’, 김고은의 판타지, 남지현의 진실, 박지후의 탈출

작은아씨들

쉴 틈 없는 폭풍전개다.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스토리 전개는 머뭇거림이 없다. 곧바로 사건을 전개시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이 이어지며 그것을 한꺼번에 뒤집는 반전도 벌어진다. 싱가폴에 오인주(김고은)의 명의로 있는 비자금 7백억을 둘러싼 진실이 밝혀지는 8회는 이러한 <작은 아씨들>의 폭풍전개가 짜릿할 정도로 긴박한 속도감을 낸 대표적인 사례처럼 보였다. 

 

처음부터 시청자들은 자신의 집에서 목매달린 채 죽은 진화영(추자현)이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진 바 있다. 워낙 미스테리한 행적을 보인 인물인지라 그가 성형을 하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자살을 위장하고 싱가폴로 도주해 그 곳에서 오인주의 이름으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 것이다. 

 

8회 초중반까지만 해도 실제로 진화영이 살아있는 것처럼 오인되었다. 최도일(위하준)과 함께 희귀 난초 경매를 빙자해 비자금을 빼돌리려 싱가폴로 가게 된 오인주를 본 현지 주민들이 아는 체를 하고, 그래서 그 곳에 자신의 얼굴로 성형한 진화영이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원상아(엄지원)가 꾸민 연극판이었다. 진화영이 살아있는 척 현지인들을 연기하게 만들고 오인주로 하여금 그 사실을 믿게 해 결국 최도일을 버리고 비자금 7백억을 빼돌려 자신에게 가져오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돈을 모두 빼돌리고 오인주에게 푸른 난초액을 먹인 후 고층 건물에서 떨어뜨려 자살인 척 꾸미려 했던 원상아의 계획은 그러나 최도일이 오인주에게 건넨 권총으로 인해 반전을 맞이하게 됐다. 그것이 모두 원상아의 연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인주가 마지막으로 트렁크에 든 7백억이 보고 싶다고 했고, 그걸 열어본 원상아는 돈 대신 벽돌이 들어있는 것에 경악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오인주를 마주하게 됐다. 

 

이 흐름은 7백억을 두고 벌이는 한 편의 스릴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뒤집고 뒤집히는 사건 전개가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게다가 여기에는 오인주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부에 대한 욕망이 판타지로 담긴다. 싱가폴에 간 오인주는 호텔에서부터 극진하게 MIP(Most Important Person)으로 대접받고 화려한 드레스에 난초 경매계의 여왕처럼 대접받는 판타지 속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이 원상아가 꾸민 연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판타지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스릴러로 바뀌었다. 원상아는 자신이 만들었던 ‘닫힌 방’의 미니어처 그대로 진화영을 살해한 인물이다. 그러니 그가 꾸미는 다음 살인 연극의 주인공은 오인주가 되는 셈이었다. 물론 이러한 원상아의 계획은 오인주가 최도일에게 어쩌다 권총을 받게 되면서 반전을 맞게 된 것이지만.

 

<작은 아씨들>의 이야기가 눈 돌릴 틈 없이 펼쳐지는 폭풍 전개 양상을 보이는 이유는 오인주만이 아닌 오인경(남지현), 오인혜(박지후)의 각각의 서사가 교차되고 연결되면서 그려지기 때문이다. 오인주의 서사가 7백억을 두고 벌어지는 판타지와 스릴러의 묘미를 안긴다면, 오인경의 서사는 박재상(엄기준)의 비리를 캐기위해 푸른 난초로 연결된 피해자들을 추적하는 진실 추적의 묘미를 안긴다. 오인경은 푸른 난초가 원상아의 아버지 원기선 장군과 함께 했던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비밀작전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오인경의 진실 추적기가 흥미로운 건 그것이 베트남 참전과 연관된 당대의 현대사를 뒤집는 사건일 수 있어서다. 현재까지 이어져온 박재상으로 대변되는 자본의 축적과 그 시스템이 과거 어떤 뿌리로 연결되어 있는가는 이 작품이 스릴러의 차원을 넘어서 현대사와 자본시스템에 대한 비판의식을 던지는 사회극으로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또한 사실상 박재상의 저택에 그의 딸인 박효린(전채은)과 함께 감금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오인혜가 그 집안에서 어떤 단서들을 찾아내고 괴물 같은 부모들 때문에 아파하는 친구를 돕는 이야기 역시 또 다른 이 드라마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서사의 묘미다. 박효린을 도와 오인혜가 그 저택의 비밀을 찾아내고 그 곳으로부터 탈출하는 그 과정을 시청자들은 숨죽이며 바라보게 된다. 

 

오인주의 판타지 스릴러와 오인경의 진실추적기 그리고 오인혜의 탈출기. 이렇게 <작은 아씨들>은 세 자매가 가진 각각의 서사들을 저마다의 묘미를 갖는 스토리로 엮어 교차 편집해낸다. 그것은 각각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세 자매가 그 관계로 묶여 있는 것처럼 사건들도 결국 하나로 뭉쳐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마치 세 개의 서로 다른 몰입감을 주는 스토리가 하나로 묶여 돌아가는 형국이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폭풍 전개는 바로 이런 이야기 구조에서 비롯된다. 

 

구조적으로 보면 오인주가 원상아의 연극판에 갇힌 존재였다면, 오인혜 역시 박재상의 저택에 갇힌 존재이고, 오인경은 이 사건들을 파고 들어가다 더 깊숙이 그 늪에 발을 딛게 된 인물이다. 결국 세 자매가 무언가에 갇히거나 빠져 있는 상황이고, 이들이 그곳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궁극적인 작품의 엔딩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곳은 다름 아닌 원상아와 박재상으로 대변되는 저 유혹적이면서 끔찍한 자본화된 세상의 아가리다. 

 

한편 생각해봐야할 또 하나는 이 폭풍전개의 드라마가 16부작도 아닌 12부작이라는 점이다. 그저 관성적으로 미니시리즈라고 하면 16부작으로 편성해놓고 그만한 서사의 분량도 아닌데 이런 저런 불필요한 요소들을 넣어 고무줄처럼 늘여 놓는 그런 드라마들과 너무나 다른 행보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질질 끌기보다는 군더더기 없이 풀어나가는 <작은 아씨들>의 이런 선택을 이제 다른 드라마들도 무겁게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사진:tvN)

‘작은 아씨들’, 역대급 캐릭터 만난 엄지원, 자본이 캐릭터화한 듯

작은 아씨들

역대급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엄지원이 연기하는 원상아라는 인물 이야기다. 물론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캐릭터들이 파격적이고, 선명하며, 그 자체로 은유적인 깊이를 갖고 있다. 등장과 함께 사망한 진화영(추자현)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것 없이 태어나 무언가를 갖기 위해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또 다른 부캐로 살아가다 결국 불나방처럼 타버리는 강렬한 인상과 여운을 남긴 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첫 회에 사망했지만 그의 잔상과 아우라는 그 후 몇 회 동안 계속 드라마 속 공기에 떠다니는 여운으로 남았다. 

 

역시 등장한 후 한 회도 지나지 않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신현민 이사(오정세)라는 캐릭터도 그렇다. 신발에 남다른 페티시즘을 갖고 있는 이 인물은 죽은 진화영의 발에 신겨진 빨간 하이힐의 잔상으로 남아있다. 오인주(김고은)의 동생이자 사회부 기자인 오인경(남지현)을 자신이 이끄는 부동산 회사의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 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세 자매의 고모할머니 오혜석(김미숙)이란 인물도 마찬가지다. 그는 죽었지만 정난회의 일원이었다는 그의 비밀은 앞으로도 여전히 이 인물을 드라마가 소환해낼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이처럼 모든 인물들이 허투루 그려지거나 소비되지 않는 <작은 아씨들>에서 특히 역대급 아우라로 그려진 인물이 바로 원상아다. 아름답지만 위험해보이고, 환하게 웃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섬뜩한 속내를 숨기기 위한 위장처럼 보이는 인물. 하지만 모든 게 우아하고 화려해 보여 유혹적인 향기를 내뿜고 그래서 그 향기에 취한 이들이 결국은 수족처럼 그의 말을 따르게 하는 힘을 가진 인물. 그게 원상아다. 

 

그런데 원상아의 이런 이미지는 이 드라마 속에 미스테리로 세워져 있는 ‘푸른 난초’를 닮았다. 사망한 진화영의 발목에 새겨진 문신 속에는 이 푸른 난초와 더불어 어머니가 사망한 기일이 새겨져 있었고, 갑작스런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신현민 이사의 차 안에도 푸른 난초가 있었다. 또 원상아가 건네준 푸른 난초에 취해 정신을 잃은 오인주는 어떻게 된 일인지 사망한 오혜석을 마주하게 된다. 푸른 난초가 모든 죽음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렇다면 푸른 난초는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걸까. “푸른 유령이라는 난초예요. 자기 전에 뚜껑을 열고 침대 옆에 놔둬요. 오늘 밤에는 꽃이 필거예요. 이 난초에는 힘이 있어요. 밤새 향기를 들이마시면 진짜 자기가 원하는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환각, 환영을 일으키는 난초. 그런데 그 난초를 통해 원상아는 자기가 원하는 걸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싱가폴에서 열리는 국제난초협회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한다. 그 일은 마치 예술품으로 정재계 로비를 위해 하는 것처럼 희귀 난초를 통해 비자금을 만드는 일이다. 그 돈의 10%+알파를 원상아는 인주에게 주겠다고 한다. 

 

원상아가 인주에게 속삭이듯 전하는 이 말들은 자본이라는 괴물이 건네는 유혹적인 속삭임처럼 연출되어 있다. 남편이 서울 시장이 되면 그 이권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 푸른 난초와 ‘아버지 나무’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를 한다. “인주씨가 싱가폴에서 잘 해주면 나는 이 나무를 아버지 나무에 걸 거예요. 이 난초는 아버지 나무를 떠나면 오래 살 수 없어요. 난초에 필요한 미생물, 곰팡이들을 아버지 나무에서만 얻을 수 있거든. 그건 인주씨 꿈의 난초를 우리가 보살핀다는 뜻이고. 인주씨도 우리와 함께 한다는 얘기예요.”

 

아마도 이런 속삭임은 인주가 처음은 아니었을 게다. 그는 죽은 진화영에게도 이런 유혹과 푸른 난초를 건넸을 것이고, 이미 인주의 동생 인혜(박지후)를 그 저택 지하에 숨겨진 아버지 나무로 데려가 푸른 난초 하나를 건네주며 “네 것”이라고 한 바 있다. 흥미로운 서사지만 원상아가 푸른 난초를 건넨 이들은 마치 아버지 나무와 그 난초의 관계처럼 엮어진다. 그 곳을 오래 떠나면 살 수 없는 그런 관계. 인혜는 원상아의 집으로 아예 들어가 살게 되고, 오인주 역시 원상아의 비밀스러운 난초협회 정난회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그 깊숙이 들어간 이들은 쓸모가 다해졌다 여겨졌을 때 사망한다. 아버지 나무로부터 버려져 말라비틀어진 푸른 난초와 함께. 

 

아직 모든 사건의 전말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 나무와 푸른 난초의 관계는 마치 자본주의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생물, 곰팡이 같은 시스템을 움직이는 자본의 힘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고 벗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지만, 겉보기에 아름답고 화려한 자태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독하디 독한 향을 품고 있는 그런 삶. 원상아는 베트남 참전 용사인 아버지 원기선 장군이 자신에게 남겨준 건 재산이 아니라 바로 그 난초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건 일종의 그 아버지 나무와 푸른 난초처럼 관계가 엮어진 네트워크, 시스템을 준 것이라고 해석된다. 아마도 박재상(엄기준) 역시 그 푸른 난초 중 하나라 짐작되는. 

 

원상아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자본이라는 괴물이 가진 유혹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면면을 동시에 품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웃고 있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섬뜩하다. 진심이 없기 때문이다. 흔히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이 인물의 미소는 ‘새파란’ 거짓말이어서 더 섬뜩하다. 어찌 보면 텅 비어 허망해 보이지만 어찌 보면 그래서 모든 이들을 빨아들이는 힘을 가진 인물.

 

알맹이는 없지만 그 기능으로 존재하는 삶. 그가 과거 연기자였고 발연기를 그 길을 떠났지만 이제 실제 삶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는 심지어 실제로는 폭력적인 남편이지만 겉으로는 사회사업가처럼 연기하며 살아가는 박재상과 자신이 연기를 하고 있고 그것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연기하는 삶’이 그의 실체인지라 그걸 떠나면 존재 자체가 지워지기 때문이다. 

 

원상아는 푸른 난초를 닮았다. 아니 그 푸른 난초들을 묶어두고 조종하는 아버지 나무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이든 이 인물이 그려내는 자본의 유혹과 폭력이라는 섬뜩한 현실이 있어 <작은 아씨들>의 세 자매의 목숨을 건 사투가 더 팽팽해지고 의미를 갖는다. 그러고 보면 세 자매가 나란히 위쪽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포스터에 반을 사선으로 가리고 있는 푸른 색이 다시금 보인다. 푸른 난초 같은 자본 시스템의 삶이 부여하는 위기 속으로 이 세 사람은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고, 어찌 보면 그 위에 얹어져 있는 것처럼도 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푸른 난초를 닮은 원상아의 ‘새파란’ 유혹 앞에서 세 자매는 어떤 선택들을 할 것인가.(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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