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의 인기를 바라보는 상반된 입장

 

공감일까 아니면 또 하나의 노이즈 마케팅 성공사례일까. 갑자기 등장한 브로의 그런 남자라는 곡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이다. 실로 소속사도 없는 무명의 신인가수가 각종 음원차트 1위를 석권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 인기의 뒤안길에 비상식적인 일들로 논란의 중심이 되곤 하는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건 우려 섞인 시선들을 만들어낸다.

 

'사진출처:다날엔터테인먼트'

먼저 콘텐츠만 보면 그런 남자라는 곡은 기존 가요계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몇 가지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첫 번째는 발라드라는 장르와 반전을 이루는 다소 강한 비판조의 가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지 않아도 네 맘 알아주고 달래주는 그런 남자. 너무 힘이 들어서 지칠 때 항상 네 편이 되어주는 그런 남자처럼 평범한 발라드 가사로 시작하지만 갑자기 그런 남자가 미쳤다고 너를 만나냐하며 반전을 만든다.

 

하지만 이 반전의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건 순화시킨 표현(?)으로 이뤄지는 디스다. ‘미쳤다고 너를 만나냐는 표현은 약을 먹었니’, 총을 맞았니같은 표현으로 점점 강도를 높인다. ‘우스갯소리를 해도같은 가사는 사실상 앞부분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내고 있어 개소리를 해도로 들린다. 절묘한 욕설에 가깝다. 결국 이 노래의 가사는 필터링되지 않기 위해 순화해 쓰는 인터넷 댓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언어와 그 언어에 깔린 정서를 가사로 끌어왔다는 것은 두 번째로 지목되는 참신한 아이디어다. 이 정서란 사실상 억눌린 감정이나, 실제 대면하는 연애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인터넷 같은 매개를 통한 관계에서는 거침없고 때로는 지나친 면마저 갖고 있는 젊은 세대의 마음을 대변하는 면이 있다. 물론 여성비하라는 측면이 들어있어 듣는 여성들에 따라서는 불쾌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그런 남자에 이어 나온 그런 여자를 들어본 이들이라면 그 비슷한 정서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 번째는 그런 남자의 디스에 그런 여자같은 맞대응곡이 나올 정도로 노래의 가사가 충분한 이슈와 화제성을 끌어낸다는 점이다. 마치 남녀 간의 대결 양상처럼 보이는 이 디스전은 그 자체로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낸다. 만일 이것이 마케팅적으로 계산된 것이라면 그런 남자는 저 힙합 디스전의 효과를 발라드를 통해서도 입증해보인 셈이 된다. 물론 여기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그런 남자에 비해 그런 여자는 너무 급조한 티가 나고 음악적으로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그런 남자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부분은 뮤직비디오다. 어찌 보면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을 것 같은 이 뮤직비디오는 메신저 화면에 올라가는 가사내용의 전달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메신저 글귀들이 가사로서 채워지고 거기에 일종의 댓글처럼 상대방의 메시지가 올라오는 형식은 이 노래가 인터넷의 소통방식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니 인터넷을 생활 기반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형식이 주는 공감대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꽤 괜찮은 완성도와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로 가득한 그런 남자라는 곡이 하필 일베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고 대중들에게 보여지게 됐다는 사실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은 괜찮은 콘텐츠가 바로 이런 외부적인 요인들에 의해 전혀 다른 느낌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베와의 관련을 모른 채 그런 남자를 먼저 들은 사람이 이 노래에 매료되었다가 곧 스스로 일베임을 밝힌 브로의 몇몇 진술을 알게 되고는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뀌는 일은 가능하고 또 어쩌면 당연하다.

 

제 아무리 성향이 자유라지만 일베가 그간 해왔던 비상식적인 일들을 떠올려보면 그런 남자라는 곡의 가사가 어쩌면 일베 사이트에서 자주 사용되던 타인에 대한 비방과 비난을 가사화했다는 느낌마저 줄 수 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이 버젓이 올려지고 심지어 거기에 대해 쿡쿡거리며 웃음을 보내는 일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따라서 브로의 일베 인증은 향후 이 재능 있는 신인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오죽했으면 일베 같은 사이트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겠는가 하는 가요계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된다. 엄청난 경쟁 속에서 제 아무리 콘텐츠가 우수해도 일단 주목받지 못하면 사장되어 버리는 것이 현 가요계의 현실 아닌가. 물론 돈 있는 기획사라면 통상적인 마케팅으로 승부를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영세한 기획사나 아예 브로처럼 소속사 자체가 없는 신인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콘텐츠를 알리는 것이 우선이라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걸 그룹들이 생계를 위해 경쟁적인 노출을 하듯이.

 

그런 남자의 인기에는 그래서 인터넷 정서에 민감하게 공감한 한 신인가수의 재능과 함께, 경쟁적인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세상에 자신을 알려야 하는 절박함과 그 안타까움이 동시에 묻어난다. 공감은 가지만 과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 과한 면은 어쩌면 그 절박함에서 비롯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런 가수가 일베의 언저리를 배회한다는 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일 11시 예능, 시청률의 늪이 된 까닭

 

평일 11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밤 11시에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을 보면 실로 놀라울 정도로 그 수치가 낮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때는 15%에서 20%까지 육박하던 평일 밤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이었지만 최근의 상황을 보면 지상파 3사 시청률을 다 합쳐도 15%가 겨우 될까 말까한 수치들이다. 시청자들의 생활 패턴이 달라진 걸까. 11시만 되면 TV를 꺼버리는 걸까.

 

'우리동네 예체능(사진출처:KBS)'

월요일 밤 11시에 방영되는 SBS<힐링캠프>는 한때 힐링 트렌드를 주도하며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현재는 시청률이 7%대에서 어떤 경우에는 5%대까지 떨어지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 MBC는 아예 <놀러와> 폐지 후 이 시간대의 예능을 포기했고 그나마 일반인 예능으로 월요 예능의 자존심을 지켜주던 KBS <안녕하세요>도 현재 7%대까지 시청률이 하락했다.

 

그나마 7%대 시청률은 나은 편이다. 화요일의 경우 지난 25MBC <PD수첩>6.5%의 시청률을 낸 데 반해 KBS <우리동네 예체능>4.9%, SBS <심장이 뛴다>4.2%를 기록했다. 예능 프로그램이 시사 프로그램에도 못 미치는 시청률을 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전체적인 11시대 시청률의 하락으로 봐야 한다. 1위와 2위 차이가 고작 2%도 안되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수요일도 목요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지난 수요일 26MBC <라디오스타>6.3%까지 시청률이 떨어졌고 SBS <오마이베이비>5% 시청률을 기록했다. 신규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던 KBS <밀리언셀러>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고작 2.8%의 시청률을 냈다. 또한 목요일 KBS <해피투게더>7%, SBS <백년손님 자기야>역시 6%대의 시청률에 머물러 있고 MBC<글로벌 홈스테이 집으로>는 아마존 가족과의 교류라는 야심찬 기획에도 불구하고 3%에서 5%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시청률표로만 보면 11시대에 시청자들은 TV를 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시청률표를 100% 신뢰한다는 전제 하에만 가능한 얘길 것이다. 현재처럼 젊은 시청세대의 의견이 절반 정도밖에 수렴되지 않는 시청률표라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50세 이상 노년층에게 있어 11시대 이후의 TV 시청은 그 자체로 쉽지 않고 또한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기 마련인 예능 프로그램 시청 역시 외면 받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시청률표의 왜곡과 50세 이상 노년층의 시청패턴이 맞물리는 상황에서 시청률 수치는 전체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보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당지 시청률표의 왜곡에만 전적으로 그 원인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힐링캠프>처럼 이미 트렌드가 지나버린 연예인 중심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무한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나, <라디오스타><해피투게더>처럼 몇몇 파워 MC들의 힘에 기대 변화를 보기 어려운 상황, 또 새로운 시도라고는 하지만 만듦새에 있어서 그다지 세련되게 보이지 않는 <글로벌 홈스테이 집으로> 같은 프로그램이나, 화제도 있고 의미도 있지만 시간대 편성이 평일 11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우리동네 예체능>이나 <심장이 뛴다> 같은 프로그램들의 엇박자도 그 원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특히 예능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젊은 세대들의 시청패턴이 달라지면서 본방보다는 선택적 시청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편이나 케이블의 예능이 약진하는 이유는 바로 이 선택적 시청을 하는 젊은 세대들을 겨냥한 조금은 마니아적인 프로그램들이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 속에서 보편적 시청층을 상정할 수밖에 없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3% 4%의 시청률이라는 것은 이미 보편적 시청층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말해주기도 한다.

 

시청률 추산의 왜곡과 현재의 TV 시청 패턴의 변화를 모두 고려해보면 평일 11시대 예능 프로그램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생각보다 꽤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청률 추산에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게 조정을 해주지 않는다면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보편적 시청자를 겨냥해야 할지 아니면 마니아적인 집단을 겨냥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프로그램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시청률을 거론하며 콘텐츠 경쟁력을 어디서나 얘기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콘텐츠 경쟁력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과연 평일 11시대의 프로그램들을 이대로 모두 고사시킬 작정인가.

방통위는 왜 시청률조사의 문제점을 숨겼을까

 

아마도 TV를 보는 젊은 시청자들은 왜 자신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낮은 것에 대해 의아함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최근 방영되고 있는 SBS 드라마 <쓰리데이즈><신의 선물 14> 혹은 MBC 주말 예능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이 10% 정도의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는 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 모였다 하면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들이 아닌가. 2030 세대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됐다면 적어도 5%에서 10% 이상은 더 나올 시청률이 아니었을까.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처럼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시청률은 현재의 시청률표만 들여다봐도 쉽게 발견된다. AGB닐슨의 25일자 시청률 상위 10위를 보면, 1KBS 일일연속극 <사랑은 노래를 타고(29.8%>, 2<기황후(26%)>, 3<KBS 9시뉴스(22.8%)>, 4KBS일일극 <천상여자(18.3%)>, 5MBC 아침드라마 <내 손을 잡아(15.8%)>, 6SBS일일극 <잘 키운 딸 하나(13.7%)>, 7KBS TV소설 <순금의 땅(11.9%)>, 8KBS <인간극장(11.7%)>, 9KBS <러브 인 아시아(11.6%)>, 동시 9<KBS 뉴스7(11.6%)> 순이다.

 

아마도 젊은 시청자들은 그런 프로그램이 있기는 있었나 하는 의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드라마나 아침 프로그램 그리고 저녁 시간대에 배치된 일일극 등이 상위 10위를 거의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30의 직장인들은 아예 배제된 시청률이다. 한 눈에 띄는 것은 시청률 톱 10위에 KBS의 비율이 단연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25일자만 봐도 <기황후>, <잘 키운 딸 하나>를 빼고는 모두가 KBS 프로그램이다. 이 표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KBS만 틀어놓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한 언론매체에 의해 입수되어 보도된 방통위 시청점유율 조사 검증 연구에는 왜 이런 납득하기 어려운 시청률이 나오고 있는가에 대한 이유가 밝혀져 있다. 2012년과 13년 두 해 동안의 시청률 조사의 문제점을 분석한 이 연구자료를 보면 시청률 조사에 있어서 2030 세대의 의견 반영 비율이 50세 이상의 의견 반영 비율에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자료가 분석한 시청률 조사 연령별 비율을 보면 AGB닐슨은 203021%인데 반해 50세 이상은 41%였고, TNms 역시 203020%, 50세 이상이 39%였다.

 

100% 유선전화를 통해서 이뤄지는 기초조사 역시 국내 10가구 중 3가구가 유선전화가 없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전화를 받더라도 낮 시간대에 집에 머무르는 노년층이 주된 응답자가 된다는 점이다. 또 소득별로도 월 4백만 원 이상 고소득자가 기준보다 많고 2백만 원 미만 서민층이 적어 서민 의견 반영 역시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으며, 조사에 참여하는 패널 중 무효패널 비율도 조사회사가 발표한 5%의 두 배 이상인 것으로 보고됐다. 무효패널 비율은 닐슨이 10.4%였고 TNms는 무려 30.5%에 달했다. 이 정도면 신빙성 있는 시청률 조사라고 하기 어렵다.

 

시청률 조사는 단지 순위 매기기가 아니다. 시청률은 광고와 직접적인 영향이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방송 콘텐츠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이처럼 세대 반영 비율이 엉터리인데다, 조사 방식의 허점도 너무 많은 시청률이 여전히 그 프로그램에 대한 잣대로 활용된다는 것은 실로 큰 문제다. 이른바 창조경제를 주창하는 시대에 그 평가지의 역할을 하는 시청률 같은 중대한 수치가 이렇게 제멋대로 만들어져 자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방통위와 조사기관이 이런 사실을 영업비밀 혹은 대외비라며 공개하지 않고 숨기려 했다는 점이다. 방통위는 조사기관이 민간회사라는 점을 들어 정부가 민간회사 조사방식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며 발을 빼고 있고, 조사회사들은 영업비밀이라며 집계방식을 숨기고 있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공무원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민간회사에 업무를 위탁하는 방식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어찌 시청률 추산 같은 방송의 중차대한 일을 민간회사라는 이유로 방통위가 뒷짐 지고 있는 걸까.

 

이것은 마치 2030세대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것을 의도적으로 묵인하고 있는 듯한 인상까지 준다. 누구나 알다시피 방송은 저널리즘으로서의 기능도 갖고 있다. 지난 대선의 표가 203050대 이상으로 명확하게 갈라졌던 점을 생각해보라.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시청률에 반영된 프로그램(뉴스, 시사 프로그램을 포함해 드라마, 예능 전 분야에 걸쳐)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시청률이 정치적으로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판단은 성급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드러난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 방관하는 것은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행위다. 실제로 시청자들은 점점 시청률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이것은 광고주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이 연구의 검증팀이 방송사와 광고대행사 등 78개 기관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54개 기관의 무려 94%시청률이 납득이 안돼 조사기관에 문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시청률 조사를 왜 하는 걸까.

<밀회>, 유아인과 김희애의 멜로가 절절한 까닭

 

퀵 배달 하다 보니 매일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거든요... 근데 선생님께서는 제 연주를 더 듣겠다고 하셨고... 어떻게 사는지도 물어보시고, 저와 함께 연주도 해주셨어요. 그래서 전 그 날 다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예요. 제 영혼이 거듭난 거죠.” <밀회>에서 선재(유아인)라는 가난한 청춘의 이 한 마디에는 자신을 알아봐준 혜원(김희애)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영혼운운하는 것에 대해 혜원이 과하다. 말하고 나니까 너도 오글거리지?”하고 묻자 선재는 정색하며 아닌데요. 진심인데요.”라고 말한다.

 

'밀회(사진출처:JTBC)'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운명적으로혜원이 선생님으로 정해졌다는 선재의 말은 이 불쌍한 청춘이 얼마나 타인의 관심에 목말랐던가를 말해준다. 그는 황송하게도 가난한 자신의 거처까지 찾아와 준 혜원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쥐를 잡기 위에 놓았던 끈끈이가 혜원의 발에 붙어버리자 콩기름으로 직접 닦아주려 하고, 그녀의 신발을 가지런히 해 입구쪽으로 돌려놓는다. 거기에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고마움과 가녀리고 순수한 청춘의 떨림이 느껴진다.

 

인터넷 메신저로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막귀형과 나천재로 대화하는 혜원과 선재는 서로에 대한 끌림과 설렘을 몇 줄의 글귀로 드러낸다. 선재는 혜원에 대해 심지어 발도 예쁘다고 말한다. 그러자 혜원은 괜스레 자신의 발을 확인한다. ‘뻑이 간 거지?’하고 막귀의 목소리로 선재의 속내를 묻는 혜원에게 선재는 몸과 마음, 영혼을 사로잡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슈베르트 환타지아를 쳤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절정 그 자체. 나 아직 동정이라 그 딴 거 모르지만. 실제로 한다 해도 그 이상일 수 없을 거야.”

 

하지만 타인의 관심에 목마른 선재와 그런 선재의 관심에 괜스레 자신의 발톱에 페티큐어를 바르고는 지워버리는 혜원의 마음과는 달리, 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건 선재를 이용해 이미지를 격상시키려는 아트센터의 검은 속내다. 재능 있고 스토리 좋은(?) 선재는 돈을 받고 상류층 자제를 입학시키는 학교의 비리를 덮어버리고 대신 인재를 발굴한다는 명목으로 내세워진다. 이들의 표현대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시험 당일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선재는 절망한다. 선재를 입학시키지 못한 재단측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선재의 절망을 목도한 혜원은 차마 그의 앞에 나서지도 못한다. 피아노를 칠 때는 흑심, 잡심, 사심을 버리라고 했지만 자신 또한 바로 그 흑심, 잡심, 사심을 갖고 선재에게 접근했던 인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혜원은 그렇게 사심과 진심 사이, 현실과 꿈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에게 선재는 잊고 있던 진심과 꿈을 떠올리게 한다.

 

모든 걸 포기하고 일에만 빠져 사는 선재에게 혜원이 보낸 리흐테르의 전기는 실로 엄청난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어디를 가든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피아노 밑에서 잤다.’ 혜원이 밑줄을 쳐 놓은 불우했던 리흐테르의 삶의 이야기는 선재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책을 읽으며 하염없이 흘리는 선재의 눈물은 그래서 재능은 있지만 현실이 받쳐주지 못해 날개도 펼쳐보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는 이 땅의 청춘들을 떠올리게 한다.

 

돈 주고 사는 애인이 뭐가 그리 좋다고.” 혜원이 그녀의 친구이자 상사인 영우(김혜은)가 호스트바를 전전하는 삶에 대해 질책하자 영우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좋지 않아. 근데 위로는 돼.” 혜원도 영우도 이미 현실 속에서 허우적대며 예전의 꿈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자포자기 하고 있는 영우와 달리 혜원은 이 지친 현실 속에서도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원한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가까스로 집에 돌아온 그녀의 귀에 선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책을 읽고 한 걸음에 달려온 그에게 혜원이 묻는다. “책은 읽어봤니?” 그러자 선재는 흔들리더라구요. 끊었었는데.”라고 말한다. 재주가 아까워 보냈다는 혜원에게 선재는 짐짓 자신은 너무 잘 지내니 그런 거 보내지 말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걸 알아차린 혜원이 거짓말 하면 못쓰지라고 질책하자, 선재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요. 거짓말예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어차피 다 지옥이니까.”

 

선재의 절망과 혜원의 공감. 두 사람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그 장면 속에는 그래서 그저 남녀 간의 사랑 그 이상의 사회적 의미가 담겨진다.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개인적 설렘과 동시에 사회적 공감을 드러냈던 것처럼. 이들의 허락되지 않는 멜로가 더 절절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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