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믿고 보게 만드는 김준호의 활약

 

김준호가 <12>이라는 제 물을 만났다. 야외에서도 실내에서도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나 행동 하나 하나가 말 그대로 빵빵 터진다. 2주 전 금연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이 콘셉트는 상당히 불안하게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남자의 자격>에서 한 번 시도했던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도전은 <12>보다는 <무한도전>에 더 어울리는 아이템처럼 보였다.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신의 한 수는 증도라는 금연 섬을 여행공간으로 찾아냈다는 점이다. ‘담배를 팔지 않는 금연 섬으로 증도는 <12>과 금연이라는 아이템을 제대로 엮어주었던 것. 실제로 <12>이 금단증상을 이겨내기 위해 벌인 자전거 느리게 타기라는 게임이 공교롭게도 <무한도전> 지구를 지켜라 편에서 지구특공대와의 첫 번째 대결 게임과 같았지만 <12>은 금연과 슬로우 시티 증도라는 공간을 통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12> 금연여행에서 수훈 갑은 단연 김준호. 그는 몰래카메라에 속아 몰래 핀 담배로 바닷물 입수를 하기도 했고, 실내에서는 김주혁이 몰래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제보에 의해 벌어진 법정공방에서 사이코패스를 빗댄 니코틴 패스라는 말을 만들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또 저녁 복불복으로 치러진 발바닥 씨름에서도 김준호는 김종민과 경기와 상관없는 진흙탕 대결을 벌임으로써 큰 웃음을 주었다.

 

사실 김준호에게 <12>이 첫 번째 버라이어티는 아니다. 그는 이미 <남자의 자격>을 통해 <개그콘서트>의 콩트 코미디와는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의 세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에서 그의 활약은 두드러지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은 이경규라는 대선배와 함께 한다는 부담감도 작용했을 게다. 즉석 상황극에 능한 그지만 이경규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상황극 설정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2>에서 김준호는 말 그대로 펄펄 날고 있다. 어떤 상황이라도 일단 끼어들면 살려내는 게 그의 역할이다. 김주혁, 김종민과 함께 쓰리쥐(?)라는 캐릭터군을 형성해 어수룩하게 당하는 모습은 <12> 시즌3가 갖고 있는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열심히는 하지만 잘 안 되는 모습이 웃음을 주면서도 아날로그적이고 친근함이 느껴지는 캐릭터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김준호의 이런 활약은 <개그콘서트>가 그 자양분이라고 할 수 있다. 10여 년 간을 <개그콘서트>에 몸 담아오면서 무수한 코너들의 감초이자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그가 아닌가. ‘갑을컴퍼니비상대책위원회그리고 최근의 뿜 엔터테인먼트까지 그는 잠깐 등장해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를 선보이곤 했다. 서수민 PD는 김준호의 이런 장점을 코너를 살려내는 힘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12>처럼 여행을 통해 벌어지는 해프닝을 포착해내는 버라이어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간순간을 살려내는 김준호 같은 인물의 활약이다. 시즌31등공신은 물론 김주혁처럼 의외의 인물에게 돌아가지만 그 웃음의 바탕을 깔아주고 상황을 살려주는 김준호 같은 역할이 중요하다. ‘니코틴 패스에서 김주혁이 양심선언을 함으로써 큰 웃음을 주기까지에는 그래서 김준호의 살살 꼬드기는 멘트가 주효할 수밖에 없다.

 

작년 KBS 연예대상을 받았을 때 김준호는 진정으로 얼떨떨해 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거기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2> 시즌3를 보다 보면 그의 연예대상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는 콩트 코미디에서도 버라이어티에서도 또 후배들을 밀어주고 챙겨주는 매니지먼트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김준호가 있어 <12>은 점점 믿고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되어가고 있다.

<세결여>, 김수현 작가의 한계와 저력

 

왜 김수현 작가는 채린(손여은)과 임실댁(허진)을 선택했을까.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은수(이지아)와 현수(엄지원). 이것은 드라마 제목에도 들어가 있고(세 번 결혼할 여자가 바로 은수니까), 드라마의 등장인물 소개란에 맨 앞자리에 이들이 소개되고 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채린과 임실댁은? 등장인물 소개란에서도 맨 끄트머리에 들어있을 정도로 이 작품에서 애초부터 비중이 있는 인물들은 아니었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사진출처:SBS)'

하지만 지금 현재 <세결여>를 보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마치 바뀐 듯한 느낌마저 든다. 물론 은수와 현수의 이야기가 여전히 주제이기는 하지만,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동력은 이들이 아니라 채린과 임실댁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채린이라는 계모가 슬기(김지영)가 친엄마를 만난다는 것에 격분하고 아이를 다그치며 심지어 녹음기를 부수고 아이를 때리기까지 하는 아동학대를 저지르면서부터 드라마는 조금씩 시청률에 탄력을 받았다.

 

채린은 이제 비뚤어진 계모의 수준을 넘어 거의 미저리가 되어가고 있다. 격분해 시어머니나 시누이에게조차 반말로 대드는 장면은 비정상적인 이 캐릭터의 면면을 제대로 보여준다. 채린과 슬기가 함께 서 있으면 마치 공포영화 같은 긴장감이 만들어지는 건 이 캐릭터의 막장 행보가 이미 시청자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는 증거다.

 

채린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마다 슬기를 보호해주고 때로는 채린에게 잔소리를 해대기도 하는 임실댁이 주목을 받는다. 임실댁은 어찌 보면 이 마녀들의 공간 같은 최여사(김용림)네 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임실댁과 최여사의 딸 정태희(김정난)는 슬기를 지켜준다는 측면에서 드라마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들이다.

 

주인공들과 조연들의 존재감이 뒤집어지게 된 것은 초반 부진을 금치 못했던 이 작품의 시청률과 무관하지 않다. <세결여>는 김수현 작가의 작품답지 않은 몇 가지 선택들을 보여주었다. 그 첫 번째는 세 번 결혼한다는 새로운 결혼세태를 제목에까지 집어넣고도 처음부터 확실한 파격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은수가 딸을 버리고 재혼을 한 설정은 파격으로 다가오지 못했고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졌다.

 

이런 행보는 과거 <내 남자의 여자> 같은 작품에서 첫 회부터 불륜을 드러내는 파격을 보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선택이다. 김수현 작가 정도라면 불륜 같은 소재도 끝까지 밀어붙여 그 안에서 어떤 삶의 메시지를 포착해내는 일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김수현 작가는 <세 번 결혼하는 여자>를 다루면서 이런 과감한 모습을 처음부터 보여주지 못했을까. 어딘지 어정쩡한 선택은 <세결여>가 초반에 힘을 발휘하지 못한 가장 큰 패착의 원인이 되었다.

 

두 번째는 세 번 결혼하는 역할로 이지아라는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지아의 상황은 이번 역할과 어울리는 면이 있었을 것이다. 서태지와의 숨겨진 결혼이라는 사실이 그녀의 족쇄처럼 작용하고 있으니 드라마를 통해 결혼과 이혼에 당당해지고 초연해지는 모습은 이지아라는 배우의 성장 그 자체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지아가 초반에 어쩐 일인지 얼굴이 잔뜩 부어 표정 연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최근에는 그 붓기가 빠져서 훨씬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고 있지만 초반의 이 무표정은 드라마의 힘을 상당 부분 뺀 것이 사실이다. 캐스팅에 있어서도 연기자들의 연기에 있어서도 철두철미하기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의 선택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은수 역할의 이지아는 주인공인데다 그나마 드라마의 핵심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전히 비중이 높지만, 현수 역할의 엄지원은 거의 감초 역할처럼 비중이 줄어들었고, 은수의 전남편인 태원(송창의) 역시 답답할 정도로 수동적인 느낌을 주는 들러리에 머물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준구(하석진)라는 인물이나 박주하(서영희) 그리고 한때 한참 극성을 끌어올리던 또 다른 막장 캐릭터 다미(장희진)는 드라마에서 거의 비중이 사라져버렸다. 이런 균형 잡히지 않은 캐릭터 운용 또한 김수현 작가의 작품 치고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소한 것일지 모르지만, 손보살(강부자)이 등장할 때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방안을 돌아다니는 로봇청소기의 노골적인 PPL 또한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다. 손보살이 방에 들어와 로봇청소기의 버튼을 누르는 장면은 너무 의도적이라 실소가 나올 정도다. 보통은 소음 때문에 사람들이 없을 때 눌러 놓기 마련인 로봇청소기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PPL이라니.

 

놀라운 일은 이런 수많은 엇나간 선택들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중심에 세워놓은 채린과 임실댁이라는 선택으로 상당한 화제와 시청률을 끌어 모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마도 김수현 작가가 가진 저력을 말해주는 일일 게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하면 시청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장의 작가가 많은 희생들이 필요하기 마련인 이러한 시청률을 위한 선택을 했다는 것도 의외의 일로 느껴진다.

 

물론 드라마의 극성을 끌어올리는데 능수능란한 다른 작가가 이런 일련의 선택들을 했다면 그러려니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작가도 아니고 김수현 작가가 아닌가. 국내 드라마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녀의 작품이나 행보는 후배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세결여>의 많은 선택들은 김수현 작가의 한계와 저력을 동시에 보게 된다는 점에서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아마도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그다지 많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쪼록 김수현 작가다운 의미 있는 작품들을 그 남은 시간 동안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대작가 앞에 많은 이들이 존경을 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 남은 시간들 동안 김수현이라는 작가의 유종의 미를 느낄 수 있기를.

<백년손님> 어쩌다 이미지 세탁 방송처럼 보이게 됐나

 

우려하던 상황이 결국 벌어졌다. <백년손님-자기야(이하 백년손님)>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로 논란을 겪은 함익병의 방송분량을 편집 없이 내보냈다. 이런 징조는 이미 이날 오전 지난 회 재방송분에서도 함익병 분량이 그대로 나가면서 어느 정도는 예측된 일이었다. 물론 많은 이들은 예고편에 함익병이 등장하지 않아 본방에서는 빠지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했던 게 사실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백년손님 자기야(사진출처:SBS)'

사실 제작진 입장에서는 방송 그 자체가 문제될 게 없다고 여길 수도 있을 터다. 방송에서 생긴 불미스런 사건도 아니고 함익병 개인이 한 매체와 인터뷰를 하면서 내놓은 말 몇 마디가 만들어낸 논란이니 말이다. 그러니 <백년손님>측은 인터뷰는 인터뷰이고 방송은 방송일 뿐이라는 입장을 가질 수도 있을 게다. 또한 발언이 비상식적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이야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개인적인 생각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얘기하는 것은 자유지만, 매체와의 공공연한 인터뷰를 통해 밝히는 건 다른 문제다. 게다가 그는 이미 방송인이나 마찬가지다. 방송인이라면 혼자 몸이 아니다. 자신의 발언은 방송에도 영향을 미치고 또한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미 들끓는 논란으로 인해 <백년손님>의 게시판은 이미 논쟁의 장이 되어 버렸다.

 

잘 먹고 살 수 있다면 독재도 나쁘지 않다는 식의 발언이나 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은 권리의 4분의 3만 행사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파격을 넘어 파괴적이다. 왜 잘 나가던 함익병이 이런 발언을 매체를 통해 내놨는가에 대한 추측들도 쏟아져 나온다. 다분히 그의 파괴적인 발언들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래서일까. 항간에는 함익병이 정치에 뜻을 두고 있는 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만일 함익병이 방송으로 얻은 이미지를 통해 정치에 뜻을 두고 있다면 의도치 않게 방송은 그에게 이용당한 꼴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조금은 과장된 예측일 것이다.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이 대중들의 마음에 공분을 터트리는 발언을 굳이 해야 했을까. 그것도 국민사위라고 불릴 정도로 긍정적인 방송의 모습을 통해 그를 지지해왔던 여성들을 무참히 배반하는 이야기를?

 

제 아무리 방송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백년손님>이 함익병의 방송분량을 편집 없이 그대로 내보내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것은 <백년손님>을 일종의 이미지 세탁방송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편집 없이 방영된 <백년손님>에서 함익병은 장모와 함께 댄스타임을 갖기도 했고 고장 난 옷장을 손보기도 했다. 이 장면만 본 사람이라면 그가 어떻게 여성의 권리 운운하는 발언을 했던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함익병 논란을 정면 돌파 하려는 <백년손님>의 용감함은 자칫 프로그램 전체를 이미지 세탁 방송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이미 다른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방송이 내보내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굳이 방송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 발언을 통해 확인된 이미지가 이처럼 다른 인물을 고집하는 것은 방송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이것은 프로그램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함익병 논란은 그 사안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향후 리얼리티 프로그램 트렌드에서 계속 생겨날 수 있는 일의 전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제 아무리 일반인이라고 해도 방송에 노출되어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순간부터 방송인이라는 책임이 지워질 수밖에 없다. 고정적인 프로그램에 나온다면 그의 일상에서의 행동이나 말 한 마디가 그대로 해당 방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몬스터>, 동화와 스릴러의 흥미진진한 대결

 

독특하다. 아마도 <몬스터>라는 영화가 주는 인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물론 아직 거칠지만 그 파격적인 면모는 마치 박찬욱 감독을 떠올리게 하고 단단한 장르 해석 능력은 봉준호 감독을 생각나게 한다. 확실히 <시실리 2km>, <도마뱀>의 시나리오를 쓰고 <오싹한 연애>로 메가폰을 잡았던 황인호 감독은 분명한 자기만의 색깔을 이번 작품 <몬스터>에서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장르물에 대한 이해가 있는 관객이라면 이 놀라운 이종장르물의 경험에 환호할 것이다.

 

'몬스터(사진출처:상상필름)'

어떻게 피가 철철 흐르는 스릴러 속에서 동화 같은 이야기가 가능할까. 어떻게 연쇄살인범이 다가오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에서 폭소가 터지는 게 가능할까. 긴장과 이완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두 축이 분명하지만 이를 동시에 병치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유치한 B급 장르에서 종종 시도되곤 하지만 흔히 평가되듯 B급 정서를 가진 황인호 감독의 작품이 그렇다고 B급은 아니다.

 

그래서 <몬스터>는 장르 파괴물이면서 결코 B급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장르의 재창조물 같은 느낌을 준다. ‘살인마 vs 미친 여자라고 적힌 포스터 문구는 이 두 이질적인 장르와 감성의 대결을 보여주는 <몬스터>를 가장 잘 표현하는 면이 있다. 사람 죽이는 일을 마치 손톱에 낀 때 빼듯이 저지르는 살인마 태수(이민기).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물려주신 노점상 자리를 제 것이라 여기며 동생 하나만을 바라보는 조금 모자란 미친 여자 복순(김고은). 살인마 태수가 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복순은 동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마치 스릴러와 동화가 병치된 독특한 느낌을 전한다. 앞부분에 일찌감치 복순의 할머니 회상 장면에서 보여준 마치 텔레토비 동산의 햇님을 보는 듯한 할머니의 모습은 복순이 살아가는 동화적 세계를 압축한다. 반면 산 속에 위치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에 나올 듯한 외딴 가마터에서 살해한 이들을 구워 도자기를 빚어내는 공간은 태수가 살아가는 스릴러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 날 이 이질적인 두 세계는 한 꼬마의 틈입으로 이어진다.

 

스릴러와 동화의 연결고리는 실로 절묘하다. 꼬마를 산으로 데려간 살인마가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마녀 같은 느낌을 주고, 그 살인마로부터 도망친 꼬마가 복순과 함께 싸우는 이야기 역시 동화 같은 뉘앙스가 묻어난다. 꼬마와 복순이 살인마의 집을 찾아 산으로 오르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모험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난 동화 속 아이들의 모습처럼 연출된다.

 

하지만 이러한 복순과 꼬마가 만들어내는 동화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종일관 스릴러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복순이 아이의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 대결구도가 마치 살인마로 대변되는 어른들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의 대결처럼 여겨지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동화 속에 머물고 싶어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느슨한 듯 풀어지다가도 순식간에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그 다이내믹한 힘은 아마도 여러 장르를 섭렵하면서 갖게 된 황인호 감독의 이력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시실리 2km>에서도 코미디와 스릴러를 엮어냈고, <도마뱀>에서는 UFO라는 소재에 멜로를 엮어냈으며, <오싹한 연애>에서는 공포와 멜로를 공존시켰다. 이질적인 장르의 결합을 꽤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그 능력은 관객들로 하여금 색다른 장르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김고은이라는 배우의 재발견이다. 영화 <은교>로 널리 알려진 김고은은 배우의 첫 단추로는 꽤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준 인물이다. 본인 스스로도 말했듯이 이목구비가 흐리멍덩한건 어쩌면 배우로서는 오히려 장점이다. 마치 빈 도화지 같은 인상이랄까. 그래서 그녀는 별다른 선입견 없이 새로운 배역에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다.

 

복순이라는 이름에서 얼핏 느껴지는 것처럼(이건 마치 복수와 순이를 붙인 것 같다) 이 인물은 때로는 미친 여자 같은 광기를 뿜어내면서도 때로는 아이 같은 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한 면만을 보고 있는 아이의 또 다른 속성일 수 있다. 아이란 순수함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사회에 있어서는 미성숙을 의미하기도 하지 않는가.

 

실로 이 이중적인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 있어 김고은 만한 배우도 없었을 것이다. 바보 연기에서 살인마와 대적하는 광기를 끄집어내는 모습은 앞으로 이 배우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 뚜렷한 한 가지의 이미지가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는 걸 그녀는 확실하게 <몬스터>를 통해 각인시켜주었다.

 

늘 로맨틱한 분위기의 역할에서 살인마로 변신한 이민기나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는 김뢰하, 김부선의 연기 또한 압권이다. 특히 마치 <넘버3>의 송강호를 보는 듯한 짧지만 굵게 자기 존재감을 드러낸 배성우, 남경읍 같은 배우들을 보는 것 역시 <몬스터>를 즐겁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다. 스릴러와 동화를 병치시킨 <몬스터>라는 괴물은 그래서 그 둘을 한 몸으로 소화해낸 김고은 같은 괴물배우와 이 장르를 재창조시킨 황인호라는 괴물감독을 탄생시켰다. 조그은 낯설 수 있는 이 영화 여행이 실로 즐거울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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