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같은 신도시에 거주하는 나 같은 프리랜서라면 점심 챙겨먹기가 얼마나 고역인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신도시는 아침이면 한바탕 대이동이 시작된다. 물론 여성 직장인들도 많지만 특히 남자들은 거의 아침에 신도시를 떠나 서울로 일을 하러 간다. 그러면 남아있는 여성들의 세상이 펼쳐진다. 극장에 가도 거의 90%가 여성이고,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도 남자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도서관은 나은 편이지만 거기엔 주로 은퇴한 어르신들이 더 많다. 그러니 이건 길거리를 다녀도 남자가 눈에 띌 판이다.

이런 상황이니 점심시간이 고역일 수밖에 없다. 혼자 식당을 찾는 것도 어색한데, 온통 여성들이 가득한 곳에 남자 혼자 앉아있다고 생각해보라. 그래서 아예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 30분 정도 일찍 식당에 가거나 아예 지나서 가기도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사람이 너무 북적대면 들어가기가 꺼려져서 사람 없는 한적한 음식점을 찾아 뱅뱅 돌기도 하고, 아예 푸드 코트처럼 대충 한 끼 때우는(?) 곳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나야 저녁이면 다시 가족들과 함께 밥상머리에 둘러앉지만 솔로들은 과연 매번 끼니를 어떻게 때울까.

하지만 이제 40줄을 넘어선 솔로 친구를 만나서 물어보면 뭐가 걱정이냐는 얼굴이다. 요즘은 싱글족들을 위해 혼자 먹을 수 있는 음식점도 많아졌고, 먹고 싶으면 혼자 가서 고기도 구워먹는다는 그 친구는 '혼자 먹는 고기 맛'도 제법이라고 한다. 뜨악한 표정으로 그 친구를 쳐다보면 그 친구는 거꾸로 내게 묻는다. "넌 그럼 매번 누구랑 같이 먹는 게 좋으냐?" 역공이다. 그래서 찬찬히 생각해본다. 대부분은 즐기는 것 같다. 하지만 늘 즐기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혼자 마음껏 내가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다면 어떨까.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흡사 전쟁터(?) 같았던 밥상머리. 아이들이 크기 시작하니 먹성도 좋아져서 요즘은 우리 식탁도 비슷해졌다. 애들 챙겨주다 보면 의도치 않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애들 입에 음식 넘어가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은 소리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꼬르륵대는 배를 잡고 애들 입에 음식 넣어주는 건 그래도 고역이다.

언젠가 '결혼 못하는 남자'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어딘지 혼자의 세계에 빠져있어 바로 그 점 때문에 결혼을 '못하는' 남자를 그리는 드라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차츰 보다보니 이 남자는 그 혼자 생활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 어렵다는 고깃집에 혼자 가는 것을 즐기고, 저녁을 위해 스테이크를 굽고 와인을 곁들인 자신만의 정찬을 즐겁게 준비한다. 그는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남자'였다. 모든 관계의 피곤이 사라진 세계에서 이 남자는 혼자만의 식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보니 한편으로는 이 남자의 식탁이 부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같이 있으면 혼자 있고 싶어지고 혼자 있다 보면 같이 있고 싶어지는 게 인간이라 먹는 문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점심시간만 되면 한없이 가족들이 그리워지다가, 막상 저녁시간이 되면 그 고적한 점심시간이 그리워지는 이 대책 없는 간사함은 도대체 뭘까. 1인 가구가 늘고 있는 요즘, 그들의 밥상의 소회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따로 또 같이.


'불후2'의 알리, 비주얼 가수란 이런 것

'불후의 명곡2'(사진출처:KBS)

그녀는 왜 가면을 썼을까. 그리고 왜 가면을 집어던졌을까. '불후의 명곡2'의 알리가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극적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가면의 등장에 객석은 긴장했고, 그녀의 낮은 읊조림에 관객들은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치 숨겨왔던 열정을 보여주겠다는 듯 가면을 집어던지고 웅크렸던 몸을 쫙 폈을 때, 관객들은 기대하기 시작했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그 첫 소절은 그대로 알리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간 얼굴 없는 가수처럼 목소리로만 익숙했던 그녀의 이야기.

탱고에는 삶의 무게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일까. 비장미 가득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탱고 선율의 편곡에도 기막히게 어울린다. 하지만 비장미 속에도 훨씬 발랄하면서도 고혹적인 느낌은 바로 탱고가 가진 새로운 힘을 알리에게 부여했다. 그래서 탱고로 편곡된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아직은 젊은 나이지만 어딘지 삶의 신산함을 겪어온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정조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청춘의 느낌이다.

'365일'을 통해 잘 드러난 것처럼 알리는 낮은 읊조림에서부터 고음의 폭발력까지를 두루 갖춘 가수다. 특히 한 마디 한 마디의 가사를 음미하게 만드는 전달력은 절정에서 전율과 감동으로 이어지기 마련. 알리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이 목소리에 탱고 무희들 특유의 퍼포먼스를 추가함으로써 비주얼적인 부분을 가미했다. 알리의 비주얼이 파격적이며 심지어 전율을 느끼게 해준 것은 그 겉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가진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알리는 본래 '타이순(타이슨에서 따온 이름이다)'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 리쌍의 개리가 "여자니까 알리로 하향조정해주자"고 해서 알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 그만큼 외모는 그녀의 장벽이었다. '불후의 명곡2'에서 1등을 하고 가진 그녀의 울먹이는 인터뷰는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을 찡하게 만든다. "저는 예쁘지도 않고,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잖아요.” 그녀는 도대체 이 외모를 요구하는 가요판에서 얼마나 가창력이란 칼을 갈았던 걸까.

그래서 알리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저 '나는 가수다'의 김범수가 '님과 함께'를 부르며 보여준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연상케 한다. 물론 잘 빠진 몸이 만들어내는 보기에 좋은 아름다움은 아닐지라도 그 열정이 보여주는 진정성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것도 대체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던가. 이것은 어쩌면 비주얼만 넘쳐나고 정작 가수는 잘 보이지 않는 시대에 진정한 '비주얼 가수'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비주얼은 눈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워져야 하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가진 기승전결이 있는 양인자의 가사는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듯한 때론 부드럽고 때론 강렬한 알리의 목소리와, 몰입만으로도 충분히 그 진지함이 묻어나는 퍼포먼스로 하나의 뮤지컬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김범수에 이어 알리라는 노래 잘하는 진정한 의미의 '비주얼 가수'의 탄생이다. '외로워도 모든 것을 거는' 듯한 그녀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음악에 있어 달라진 이 시대가 간절히 원하는 또 한 명의 가수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랜드마크에서 하던 '런닝맨', 랜드마크를 만들다

'런닝맨'(사진출처:SBS)

'런닝맨'의 초기 버전은 랜드마크가 중심이었다. 대형쇼핑몰, 월드컵경기장, 과학관, 세종문화회관, 서울타워... '런닝맨'은 게임버라이어티답게 이 랜드마크 속으로 들어가 그 공간에 어울릴만한 게임들을 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물론 흥미로웠지만, 회가 거듭할수록 어딘지 다람쥐 챗바퀴 돌듯 이야기가 반복되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그것도 그 공간과 어울리는 게임을 억지 춘향식으로 맞추다 보니 '틀에 박혀' 버린 것이다.

그래서 '런닝맨'은 이 틀을 과감하게 버렸다. 즉 랜드마크에 집착하지 않고 좀 더 게임에 집중했던 것. 이렇게 되자 게임은 좀 더 흥미진진해졌다. 런닝맨들은 이제 그 날의 목적지가 어딘지도 또 거기서 어떤 미션으로 게임을 할 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런닝맨'의 시작과 함께 부여된 미션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며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는 식이다.

'런닝맨'이 랜드마크를 버리면서 게임 공간이 확장되자, 랜드마크에 집착했다면 할 수 없었던 '횡단 레이스' 같은 게임이 가능해졌고, 밀폐된 공간을 벗어나자 홍대거리처럼 열린 공간에서의 게임이 시도될 수 있었다. 그만큼 게임이 다양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랜드마크와 억지로 꿰어 맞춘 게임이 가진 예측 가능성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본래 게임이란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수록 더 흥미로운 법, '런닝맨'의 게임은 멤버들이 그 날의 게임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이것은 제작진과 런닝맨들 사이에 묘한 심리전을 만드는데, 런닝맨들이 무언가를 의심하고 또 확신하게 되는 상황이 생길 때, 제작진은 그것을 거꾸로 역이용해 게임을 만드는 기민함을 보인다. 스파이는 '런닝맨'의 이런 심리전을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장치다. '트루개리쇼'는 스파이가 되고 싶어하는 개리를 먼저 세워두고 다른 런닝맨들이 개리를 속이는 몰래카메라를 게임으로 내세웠지만, 마지막에 가서 사실은 개리가 이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는 또 한 번의 반전을 만들었다. '런닝맨'이 보여준 일련의 진화과정을 되짚어보면 이런 심리전이 가능하게 된 것도 결국은 그 랜드마크에 대한 집착을 버린 데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반전이 생긴다. 즉 '런닝맨'이 랜드마크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이제 거꾸로 그들이 가서 한바탕 게임을 벌이는 공간이 그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런닝맨 힙합 특집'에서 그들이 갔던 홍대 놀이터나 대학로는 이제 본래 그 공간이 가진 이미지에 '런닝맨'의 힙합맨들이 게임을 했던 장소의 이미지가 덧붙여진다. 제주도에서 신세경과 함께 벌인 로드 레이스는 그들이 지나간 시장, 해수욕장, 식당 등에 '런닝맨'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심지어 그들이 간 파타야나 북경은 그 게임과 장소가 그대로 하나의 여행상품화 되기도 했다.

'런닝맨'이 애초에 하려던 게임은 기존 랜드마크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지만, 이제 '런닝맨'은 어떤 공간이든 그 공간에서 한 판 신나는 게임을 함으로써 그 공간을 랜드마크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이제 관광지나 여행지 같은 공간의 의미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즉 과거에는 그 곳의 유적이나 특별한 자연경관이 관광지로서의 의미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이 그 역할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런닝맨'의 랜드마크에 대한 태도 변화는 실로 시의적절 했다고 여겨진다. 랜드마크를 찾아다니던 '런닝맨', 이제 그들이 가는 곳이 랜드마크가 되었다.

 


'1박2일'이 강호동의 공백을 느껴야 하는 이유

'1박2일'(사진출처:KBS)

그는 떠났어도 우리는 그를 보내지 않았다? '1박2일'이 강호동을 보낸 마음이 그렇다. 강호동 없이 5인 체제로 꾸려지는 '1박2일'로서는 그 커다란 공백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이상, 뒤만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남은 5인들이 어떻게 '1박2일'을 꾸려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어쩌면 이 위기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르니까.

위기를 기회로 볼 수 있는 이유는 강호동이라는 큰 산이 '1박2일'에 미친 영향만큼 그 산의 그림자에 가려서 못한 것들도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즉 강호동이 있기 때문에 제작진과 멤버들 사이에 팽팽한 대결구도가 만들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 대결구도는 물론 '1박2일'을 재밌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스텝들과 멤버들이 야외취침이나 전원 입수를 놓고 경기를 벌이는 장관은 이 대결에서 나온 것이니까.

하지만 이야기가 제작진과 멤버들 간의 대결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이것은 여전히 매력적인 구도지만 반복되다 보면 이것도 언젠가는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강호동이 없는 상황은 이 흐름을 자연스럽게 바꿔줄 수 있다. 즉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고 제작진이 멤버들을 압박할 수도 있다. 나영석 PD는 이미 '1박2일'의 한 멤버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새로운 권력의 이동(?)은 의외의 재미로 만들어질 수 있다.

사실 더 기대되는 부분은 강호동 없는 팀에 누가 리더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나이 순으로 보면 엄태웅이 가장 연장자지만, 어디 사회생활(?)의 위아래가 나이 순으로 정해질까. 군대도 짬밥(?) 순이라지 않은가. '1박2일'의 야전경험이 많은 은지원이나 이수근, 이승기 그 누구도 이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 이는 없다. 따라서 강호동이 빠지고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1박2일'에서 멤버들 간의 미묘한 헤게모니 싸움은 그 자체로 예능의 웃음 코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서열 싸움만큼 예능에서 재미있는 건 없다.

어쩌면 서로 리더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리더 자리의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모습이 나올 수도 있다. 그 리더라는 것이 제 맘대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가야하는 부담 있는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피하려는 모습이나 서로 가지려는 모습 그 어느 것이든 강호동의 공백으로 자칫 가라앉을 수 있는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모든 것은 의도되고 기획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1박2일'은 억지로 캐릭터를 만들어내서 이야기를 만드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이다(이수근이 제 캐릭터를 찾기까지 1년이 걸렸던 사실을 상기해보라). 그저 자연스럽게 흐름에 맡기다 보면 당연히 이런 그림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어쩌면 강호동이 작별인사조차 없이 떠나가며 '1박2일'에 남겨놓은 선물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빈자리마저 또 하나의 재미로 전화될 수 있게 한 그 묵직했던 존재감 말이다.

또 이것은 '1박2일'이 강호동을 떠나보내고도 강호동과 함께 하는 법이기도 하다. 빈 자리를 놓고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거나 혹은 그 자리의 무게감을 책임으로 느끼는 모습들을 통해 우리는 강호동을 계속 추억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는 떠났어도 우리는 그를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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