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 쇼'를 기대하는 이유

'달인' 김병만

김병만만큼 독보적인 개그맨이 있을까. 그는 강호동도 아니고 유재석도 아니며 이경규도 아닌 자신만의 영역을 가진 몇 안 되는 개그맨이다. 강호동이 잠정은퇴를 선언하고 난 후, 혹자들은 '포스트 강호동'으로서 그를 지목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병만이 구축하고 있는 독특한 자신만의 영역을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포스트'로 지목되는 것조차 무례로 여겨질 정도다.

김병만의 개그가 특별한 것은 그것이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 심지어는 무대 개그 같은 작금의 예능 트렌드 그 어느 것에도 야합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의 개그는 말에 치중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몸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무대개그처럼 어떤 짜여진 틀 속에서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몸을 통해 말하는 것이고, 짜여진 틀 속에서 변주하는 것이다.

'달인'의 가치는 그 진화과정에 있다. 처음 '달인'은 콩트에 가까웠다. 즉 진짜 달인이 아니지만 달인이라고 우기는 그 상황이 웃음을 주었던 것. 하지만 '달인'은 어느 순간부터 리얼 상황 그대로가 되었다. 김병만은 실제로 줄을 탔고, 저글링을 했으며, 고난도의 덤블링을 해냈다. 이것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것이지만 리얼 버라이어티가 아니라 리얼리티쇼에 가까웠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가상상황을 뛰어넘은 것이고, 무대 개그의 무대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렇게 달인이라고 우기던 자가 진짜 달인으로 돌아오자 대중들은 그 놀라운 장면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지금은 이 '가짜와 진짜' 달인을 오가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최근 예능에서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개그의 영역이다.

굳이 김병만이 하고 있는 개그의 원류를 찾아가자면 분명 거기에는 수많은 선대 광대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찰리 채플린식의 슬랙스틱 코미디는 김병만의 기본기다. 그가 '키스 앤 크라이'에서 채플린을 완벽히 소화해낸 것은 그의 개그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 채플린이 다름 아닌 피겨스케이팅이라는 고난도의 기술 위에서 펼쳐진 것이란 점은 김병만 개그의 원류를 좀 더 전통적인 연희에서 찾게 만든다.

서커스에서 묘기를 보이면서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광대들이나, 기예를 바탕으로 한 바탕 볼거리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순간적인 해학을 만들어내는 우리네 남사당패들이 그들이다. 팽팽한 줄 위에서 아슬아슬한 기예를 선보이며 동시에 줄 아래 있는 매호씨와 우스갯소리를 통해 웃음을 주는 줄광대는 김병만 개그의 원류에 가깝다. 실제상황이고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이 있으며, 그 위험한 상황을 웃음을 전화시키는 개그가 있다. 김병만은 이제는 맥이 끊겨버린(적어도 대중매체에서는) 이 전통적이면서 원형적인 연희 속 광대를 우리네 예능 속에 되살린 전무후무한 개그맨이다.

따라서 김병만을 기존 예능 프로그램의 틀에 끼워 맞춰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무모하고 무익한 일이다. 김병만이 누군가의 포스트로 지목되는 것도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차라리 김병만은 자신만의 쇼를 해야 되는 위치에 서 있다. 그래야 제 가치가 나올 수 있는 인물다. 지금껏 무대개그나 몇몇 사라진 콩트 프로그램이 그의 가치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것은 그 틀이 김병만에게는 너무나 작았기 때문이다(달인은 이미 무대개그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키스 앤 크라이' 또한 김병만의 가능성을 더 많이 보여줬지만 이 또한 작은 틀이기는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그의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줄 그만의 틀이 필요하다.

김병만은 이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신만의 개그를 개척해낸 인물이다. 그것은 강호동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유재석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김병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이 독보적인 재능을 받쳐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만일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끄집어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그것은 어쩌면 이제는 볼 수 없는 과거의 연희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네 예능사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어떤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김병만 쇼'를 기대하는 이유다.


자우림의 '가시나무', 그들의 자기 존재 증명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이렇게 시작하는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의 첫 구절이 자우림의 목소리로 불려지는 순간 이 노래는 그네들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자우림. 그 속엔 정말 많은 자우림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이 노래를 통해 보여주었다. 김윤아가 밝힌 대로 자우림은 '나는 가수다'에서 "그동안 낮을 많이 가렸던 게" 사실이다. 즉 '자우림 답다'는 수식의 감옥에 갇혀있었던 것. 하지만 자우림의 기타리스트 이선규의 말대로 "한 곡 안에서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자우림 다운" 것이었다. 자우림의 '가시나무'는 그런 곡이다.

가사만으로도 그 깊은 여운을 느끼게 만드는 '가시나무'라는 곡을 자우림은 좀 더 입체적이고 다이내믹한 풍경으로 그려냈다. 시작은 원곡이 가진 그 '경건함과 자기통찰적'인 읊조림이었다. '당신의 쉴 곳 없는' 심지어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는' 운명을 타고난 '가시나무'의 존재감이 잔잔함과 슬픔, 날카로움으로 전해지는 이 첫 도입부분에서 자우림은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감정을 드러냈다. 쿨한 창법이 대명사처럼 여겨진 자우림에게 마치 흐느끼는 듯한 김윤아의 목소리는 자못 도전적으로까지 여겨졌다. 그녀가 밝혔듯이 자우림은 "마음을 연 것"이다.

하지만 조용히 존재의 슬픔을 읊조리던 첫 구절이 지나고 나면 자우림의 진짜 색깔이 드러나는 강력한 록 사운드의 또 다른 자우림이 기다리고 있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이 구절에 이르면 이제 자우림은 거센 바람 앞에 선 가시나무처럼 '메마른 가지를 서로 부대끼며 울어댄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한 이 절절함은 초반의 경건함과 대비되면서 가시 안으로 삼키고 삼켰던 눈물을 밖으로 마구 쏟아낸다. 이 때부터 김윤아가 메고 치는 기타는 그 퍼포먼스 자체로도 강렬한 아픔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한다.

이 때부터 김윤아의 창법은 때론 내레이션하듯 속삭이고 때론 폭풍처럼 몰아치다가 때론 가성과 진성을 오가며 미친 듯이 감정이 섞여 흐느끼는 식으로 계속 변화한다. '같은 가사를 가지고 아주 싸늘하게도 부르고 절규하면서도 부르고 다양한 감정표현이 가능한' 자우림만의 색채가 극에 달하는 순간이다. "원곡이 기억이 안날 정도로 노래에 휘둘려 다녔다고 생각해요. 제가 음악을 끌고 가는 게 아니고 음악이 저를 데리고 갈 때가 있거든요." 김윤아의 이 말은 허언이 아니다. 고요하게 서 있다가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을 견뎌내는 가시나무처럼, 그녀는 곡에 완전히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라는 가사의 반복은 자우림의 자기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하는 가사가 되었다.

수미쌍관을 이루듯 첫 소절의 경건함으로 노래가 마지막을 정리할 때, 그 노래를 들은 관객의 마음 한 구석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그 경건함 속에 이제는 깊은 슬픔과 절절한 아픔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우림의 그 변화무쌍한 노래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우림 다운' 무대가 있을까. '가시나무'라는 곡으로 '자주색 가시나무숲을 만든' 자우림은 이 무대를 통해 그 스스로 존재 증명을 해낸 셈이다. 노래가 끝난 후 차분하게 객석을 바라보며 지어보이는 김윤아의 미소는 그 많은 자우림을 스스로 인정하고 보여준 자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마치 폭풍우를 겪고 난 '가시나무'처럼.
(자우림의 '가시나무')

강호동 떠난 자리, '런닝맨'이 차지하나

'런닝맨'(사진출처:SBS)

주말 저녁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격돌하는 시간이지만 이 시간대의 예능프로그램들이 모두 웃음을 주는 건 아니다. '남자의 자격'은 웃음보다는 감동을 택했고, '나는 가수다'는 노래의 즐거움을 택했다. 이제 예능 프로그램은 웃음만이 아닌 다양한 스토리를 전해준다는 것을 주말 예능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온전히 웃음을 추구하는 '런닝맨'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런닝맨'은 전형적인 게임 버라이어티쇼다. 출연자들이 어느 장소에 집결해서 미션을 두고 한바탕 게임을 벌이면서 해프닝이 벌어진다. 이미 캐릭터가 확고히 잡혀있는 출연진들은 그 상황 속에서 일종의 캐릭터라이즈드쇼를 통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특별한 감동 포인트가 있을 리 없다. 그저 게임을 통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이것으로 시청자들을 웃게 만드는 것이 '런닝맨'의 목적이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가장 순수한(?) 목적을 가진 셈이다.

물론 '1박2일'은 웃음과 감동을 모두 포괄하는 여행 버라이어티쇼로서 자리하고 있지만 강호동이 잠정은퇴를 선언한 마당에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 지 알 수 없다. 또한 몇 개월 후면 종영이 예고되어 있는 시한부 예능이기도 하다. 또 '나는 가수다'는 주말 예능의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확실한 존재감을 만들었지만 현재 어떤 패턴의 반복에 묶여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남자의 자격'은 청춘합창단의 감동에 치중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웃음을 찾기 어렵다는 단점도 갖고 있다. 주말 저녁을 온전히 웃으며 보내고 싶은 시청자들이 '런닝맨'을 찾게 되는 이유다.

'런닝맨'이 최근 들어 점점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프로그램이 꾸준히 진화를 계속한 결과다. '런닝맨'의 게임 패턴은 초기에는 특정 랜드마크에서 정해진 게임을 하는 단순한 구조였지만 방울을 달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의 긴박감을 부여하기도 했고, 차츰 제작진과 출연진 사이의 심리전을 넣음으로써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게임으로 진화했다. 게다가 공간적으로도 어느 한 폐쇄된 장소에서 하던 게임은 실제 거리로 나서기도 했고,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파타야나 북경 같은 해외를 배경으로 하기도 했다.

공간의 확장, 캐릭터의 구축, 제작진과 출연자 사이의 대결구도 등은 게임을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즉 북경으로 공간을 바꾸면 중국어로 음식 이름을 들려준 후 그 음식을 시장에서 찾는 게임이 시도되고, 만리장성 위를 마치 장기판의 말처럼 옮겨 다니며 미션을 수행하기도 하는 게임을 하기도 한다. 능력자 김종국과 유르스윌리스 유재석이 대결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나, 스파이 미션을 꿈꾸는 개리를 통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몰래카메라를 만드는 것은 캐릭터의 활용과 심리게임이 덧붙여져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런닝맨'의 진화는 현재 웃음보다는 다른 포인트들을 추구하고 있는 주말 예능들과 확실한 차별화를 가져왔다. 역시 이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유재석이다. 초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한 방향으로 달려온 그 성실함과 끝없는 도전의 결과가 이제 나타나고 있는 것. 주말 저녁, 강호동의 빈 자리를 유재석이 이끌고 있는 '런닝맨'이 차지할 것이라는 예감은 어쩌면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

'하이킥3', 이 희비극의 마법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사진출처:MBC)

김병욱 감독의 하이킥 시리즈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시트콤 역시 김병욱 감독 특유의 희비극이 녹아있다. '짧은 다리'는 비극적인 요소지만, 그것을 하이킥으로 날려버리는 유쾌한 역습이 희극적으로 다뤄진다. 즉 상황은 비극 그 자체지만 이것을 과장하거나 비트는 것으로 비극은 희극이 된다. 말 그대로 '역습'인 셈이다.

하루아침에 부도로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안내상의 가족. '동행' 같은 다큐멘터리에서나 나올 법한, 안내상 가족의 봉고차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소재적으로 보면 절망적인 사건이다. 또 취업이 되지 않아 고시원을 전전하며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백진희도 전형적인 청년실업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비극은 '하이킥3'의 시점으로 비틀어 보면 유쾌한 풍자를 담아낸 희극이 된다.

길바닥에서 조촐하게 치러지는 안내상의 아내 윤유선의 생일 풍경은 전형적인 홈리스들의 비극을 담고 있지만, 그 장면은 갑자기 터져버린 폭죽이 안내상의 엉덩이를 때리고 마치 ET의 한 장면처럼 하늘을 날아가는 과장된 장면으로 희극이 된다. 당숙에게 도움을 받으러 갔지만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 안내상이 자살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이를 막기 위해 가족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도 진지하게 바라보면 비극 그 자체다. 하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어 배꼽티를 입은 안내상의 모습에 가족이 웃음을 터트리는 장면은 비극 속의 희극을 포착해낸다.

이런 현재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이 시트콤의 첫 회에서 잠깐 미래의 이적이 회고담 형식으로 2011년을 얘기하면서 스케치된 적이 있다. "2011년은 유별난 해는 아니었다." 이렇게 내레이션은 시작되지만 그 장면에는 대조적으로 대지진, 천재지변, 아프리카의 민주화열풍으로 죽고 싸우는 사람들이 흘러나왔다. 그 중 우리나라는 "고물가, 트위터, 현빈, TV오디션 프로그램, 안철수, 그리고 여전히 돈 돈의 해였다"로 묘사되었다. 결국 2011년의 풍경을 담아낼 이 시트콤이 뒤틀어 보여줄 현실들을 나열한 셈이다.

도대체 이 결코 녹록치 않은 힘겨운 2011년의 풍경들은 어떻게 웃음의 소재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이 시트콤이 미래의 한 시점에서 이제 할아버지가 된 이적이 과거를 회고하는 관점으로 2011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닥친 현실은 비극이지만 지나고 나면 하나의 희극 같은 추억이 될 수 있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이것은 저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회자되었던 채플린의 명언,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구절과 상통하는 얘기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은 여타의 하이킥 시리즈가 그래 왔던 것처럼 현실의 비극적인 한 단면을 가져와 그것을 한바탕 웃음으로 바꿔놓는다. 겨우 20분 남짓의 짧은 한 방이지만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이 짧은 한 방의 하이킥이 던지는 통쾌함이 어찌 적다 할 것인가. '하이킥3'의 매력은 바로 이 절망조차 웃음으로 돌려놓는 희비극의 마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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