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유혹'과 '전설의 고향', 그 유사점과 차이

'천사의 유혹'에는 억울한 영혼들이 등장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은 주아란(이소연)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무런 보상조차 받지 못한 그녀는 어린 동생과 함께 거리로 내몰려,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삶을 살아내고 결국 어린 동생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이 과거의 억울한 사정을 가진 영혼은 당시 그녀를 구렁텅이에 빠뜨린 신우섭(한진희) 가족에게 접근한다. 복수를 위해 그의 아들인 신현우(한상진)와 그녀는 결혼까지 하게 되고 그 후로 신우섭의 집은 그들이 알 수 없는 우환에 빠지게 된다.

신현우는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버리고, 결국 그가 치료받던 별장에 불이 나면서 죽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신현우의 어머니, 조경희(차화연)는 자기 자식을 죽인 사람이 되어버리고, 신현우의 동생은 갑작스런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술로 인생을 보낸다. 신우섭은 밤마다 괴문자를 받는데, 그 내용은 과거 주아란의 아버지 죽음에 대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 괴문자를 보낸 이는 어이없게도 조경희로 밝혀지면서 가족은 파탄지경에 이른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주아란이 주도면밀하게 꾸민 일들이다. 주아란이 하나하나 행하는 복수의 장면들은 공포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 앞에서 생글생글 웃던 그녀가 갑자기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악마의 모습으로 돌변하고, 그렇게 악마 같던 모습으로 남편을 사지로 몰아넣고는 신우섭의 가족 앞에서는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처럼 오열을 해대는 그 끔찍한 변신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살아 돌아온 억울한 영혼과 그 영혼이 가족 속으로 들어와 그 가족을 파탄내는 복수의 이야기는 우리가 '전설의 고향'에서 흔히 보아왔던 것들이다. '전설의 고향'이 이런 이야기 구조를 갖고 대중들을 사로잡은 것은 그 시대가 갖는 억압을 공포물이라는 장르를 통해 풀어냈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가족제도의 틀 속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원혼이 그 가족을 파탄내는 내용은, 공포물이 가진 금기를 넘어서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천사의 유혹'이 가진 복수극의 틀도 이 '전설의 고향'의 틀과 다르지 않다. 다만 원혼의 이야기가 현대식으로 재해석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주는 재미의 차원 역시 '전설의 고향'의 그것과 유사하다. 즉 가족이라는 금기를 넘어서는 파격적인 내용이 그것이다. 갑자기 등장한 악녀 주아란을 통해 가족은 해체된다. 그리고 그것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 죽은 줄만 알았던 신현우가 얼굴을 싹 고치고 안재성(배수빈)이 되어 다시 돌아와 복수를 하는 것. 신우섭에게 밤마다 날아오는 괴문자가 '전설의 고향'의 원혼이 보내는 신호 같이 느껴지는 것처럼, 신현우가 안재성이 되는 이 현대의 의학기술은 '전설의 고향'으로 치자면 원혼의 변신술 정도로 보인다.

'천사의 유혹'이 '전설의 고향'이 가진 이야기틀을 갖고 있지만 물론 여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전설의 고향'이 공포물이라는 안전한 장르 속에서 가족의 해체를 꾀하는 반면, '천사의 유혹'은 복수극이라는 다소 불안정한 틀 속에서 가족의 해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공포물 속에서의 가족의 해체는 그것 자체가 리얼리티일 수가 없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우화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복수극 속에서의 가족의 해체는 어느 정도의 리얼리티를 담보함으로써(이를테면 과학기술이나 사건전개의 논리성을 통해) 오히려 현실적인 느낌을 주게 된다. 이것이 똑같은 가족 해체의 금기를 넘어서는 재미를 갖고 있지만 '전설의 고향'이 안전한 반면, '천사의 유혹'이 위험한 이유다. 이런 점에서 '천사의 유혹'이 갖고 있는 얼개의 느슨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이러한 위험성을 상당부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연성이 떨어지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는 마치 이 모든 상황을 게임처럼 만들어버리는 속성이 있다. 극적 장면에서 실소가 터지기도 하는 것은 바로 그 몰입을 방해하는 전개 때문이다.

'천사의 유혹'은 이런 면에서 보면 그저 막장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이 작품만의 특유한 재미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진지함을 버리고 게임처럼 구사되는 가족 해체극 정도랄까. '전설의 고향'이 그 공포극이라는 틀을 가져와 가족해체라는 금기를 넘어섰던 것처럼, '천사의 유혹'은 게임이라는 틀을 가져와 같은 묘미를 추구하려는 것은 아닐까. '천사의 유혹'이 현대판 '전설의 고향'으로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들이 주는 웃음에 깊은 여운이 느껴지는 이유

그것이 어찌 즐겁기만 한 일일까. '남자의 자격'의 미션, '남자, 하늘을 날다Ⅱ'. 제목은 멋지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제목만큼 낭만적이기만 한 일은 아니다. 시속 1200km에 육박하는 속도의 전투기에 몸을 싣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일까. 가속에 의한 중력을 체험하는 훈련에서 이 남자들은 저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중력의 무거움이 주는 고통을 이겨냈다. 심지어 이윤석은 순간 의식을 잃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들이 한 명씩 들어가 얼굴이 무너지는 고통을 견뎌낼 때, 바깥에서 그 광경을 보던 윤형빈이 "이거 웃으면 안되는데"하고 말한다. 아마도 이 광경을 본 시청자들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힘겨움을 생각하면 이렇게 웃으면 안되는데 왜 웃음이 터질까. 이것은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문득 문득 드는 생각이다. '참 힘겹겠구나'하면서도 웃음이 터지는 묘한 기분.

이 평균 연령 39.4세의 아저씨들이 해병대 병영 체험에서 헬기 레펠을 할 때도 그랬고, 숨쉬는 것도 힘들다던 김태원이 몸 만들기 한답시고 뛰고 또 뛸 때도 그랬으며, 이경규가 웨이크 보드를 타고 물 위에 서려고 끝없이 물을 먹으며 보트 뒤에 달려갈 때도 그랬다. 아지트를 지으라고 데려간 폐가를 묵묵히 이 나이든 아저씨들이 망치질을 해댈 때도 그랬고 '남자의 눈물'을 보여주기 위해 속내를 털어놓을 때는 그 진정에 마음마저 먹먹해졌다.

이 과도한 듯 싶은 아저씨들의 도전에 만약 김성민 같은 에너자이저가 없었다면 이 버라이어티쇼는 쇼가 아니라 그 처절함에 눈물범벅이 되는 코너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늘 "나 그거 꼭 하고 싶었는데" 하며 오히려 미션에 설레는 그의 모습은 이 도전을 비로소 버라이어티쇼로 만들어내는 힘이 되었다. 패러글라이딩 비행에도 힘겨워 하는 팀원들에도 불구하고 굳이 다시 그 곳을 찾아가 단독비행을 성공시키고, 보통 전투기 가속 훈련에 한다는 6G에도 팀원들이 벌벌 떨 때, 자청해 9G를 하겠다고 하고 결국 버텨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가 있어 프로그램은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남자의 자격'에서 김성민이 유독 돋보이는 이유는 그가 다른 이들과는 정반대로 미션을 즐기려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비로소 웃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남자의 자격'이 이 아저씨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부담이 큰 것들이다. 안되는 춤동작으로 2PM의 노래를 UCC로 만들라는 것은 이경규나 김태원 같은 나이의 아저씨가 도전하는 것 자체가 쉽지만은 않은 것들이다.

'남자의 자격'에 모인 멤버들이 작금의 예능의 대세로 자리 잡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인물들이라는 점은, 이들의 도전이 가진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일까. 이들이 하는 도전 하나하나에서, 젊은 친구들이라면 몇 번 하면 될 수도 있는 일을 더 비장한 각오로 어색해도 해내는 그 모습에서,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매일 매일을 버텨내고 있는 우리네 아저씨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느새 아저씨가 되어버린 그 나이에서 확 달라져버린 세상 속에 그래도 버텨내고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말이다.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김성민이 그 두려움도 없이 당당히 전투기에 오르고 멋지게 비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그 모습에서 어떤 짠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그 모습 속에 숨겨진 우리네 아저씨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격'이 주는 웃음이 결코 가볍지 않고 어떤 삶의 깊이나 페이소스까지를 느끼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리얼 예능에서 설정이 가진 힘과 한계

때 아닌 참돔 하나가 '패밀리가 떴다'를 논란에 빠뜨렸다. 김종국이 아침식사를 위해 낚시를 하다가 잡은 20만 원 상당의 참돔이 조작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시청자들의 단순한 의문부호에서 시작됐다. 초보자가 이처럼 거대한(?) 참돔을 잡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의견이었지만 이 이야기는 차츰 조작이 아니냐는 방향으로 커졌고, 여기에 대해 '패떴'측은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고 "잠수부가 미리 잡은 참돔을 끼워줬다"는 한 블로거가 쓴 우도 여행기로 인해 상황은 일파만파로 커져버렸다.

'패떴'측은 그런 일은 절대 없었고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이 블로거의 글이 '패떴' 우도편이 방영되기 4일 전인 21일에 발행되었다는 점, 참돔은 본래 잘 잡히지 않고, 김종국이 잡은 참돔에 낚싯바늘이 바깥에서 안쪽으로 끼워졌다는 점을 들어 방송조작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편 모 매체에서는 "그 날 바다 속에 들어간 사람이 없다"는 우도 현지에 있는 다이빙 업체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기사화했다. 이것으로 상황은 마무리될 것처럼 보였지만 이번에는 참돔의 등지느러미가 또 논란이 되었다. 화면에 포착된 김종국이 잡은 참돔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참돔 한 마리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 지느러미까지 비교하게 되는 정도까지 커져가는 것에는 좀 과도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사건의 진위가 어떻든 김종국이 20만 원 상당의 참돔을 잡은 것이 이 프로그램에 얼마나 이득이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우연히 잡은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패떴' 우도편을 살릴 만큼 커다란 사건이라고 보기 어렵다. 참돔이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들과 그다지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그 정도의 무리수까지 띄워가며 조작을 하기에는 결과가 너무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참돔 논란은 방송 내용으로 보자면 지엽적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패떴'의 열혈 시청자가 아니라면 때 아닌 참돔 논란은 우스개처럼 여겨질 정도로 과도한 인상을 받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참돔 논란의 진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논란이 이렇게 일파만파의 상황으로 커져가게 된 사정에 있다. 즉 '패떴'이 지금껏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준 일련의 모습들이 참돔 논란을 키운 원인이라는 점이다.

'패떴'은 지금껏 그것이 리얼이냐 아니냐가 늘 도마 위에 올려지곤 했다. 대본의 존재는 물론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대부분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패떴'의 주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설정을 통한 상황극이 가진 한계다. 상황극 예능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도 흔히 보는 것이고, 또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의 과도함은 의도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상쇄시키기도 한다. 처음부터 야생의 리얼을 주창하기보다, '패떴'은 인물들과 관계가 주는 웃음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설정을 통한 상황극이 주는 웃음은 반복을 거듭하면서 그 힘이 약화되었다. 즉 상황극이 자꾸 의도적인 느낌을 주게 된 것이다.

'패떴'에 갑자기 불어 닥친 참돔 논란은 그 자체보다도 이 프로그램이 지금껏 보여준 상황극 예능의 양상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여진다. 최근 들어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은 무언가 웃음을 주기 위해 강박적으로 상황을 만들기보다는 그저 내버려두고 바라보는 것으로 되도록 자연스러운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자의 자격'이나 '천하무적 야구단', 또 '청춘불패'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큰 웃음에 집착하기보다는 소소한 리얼함으로 호평을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최근 들어 관계가 주는 상황만큼 새벽일을 두고 벌이는 게임에 더 주력하는 것은 '패떴' 역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패떴'의 참돔 논란은 과도하다. 하지만 그 과도함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 담담하게 포착한 '청춘불패'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만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청춘불패'에는 온갖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기묘한 풍경이 연출된다. 세련된 도시의 스타일을 표상하는 걸 그룹 아이돌들과 그들이 생활하게 되는 강원도 촌마을 유치리가 그렇고, 이 청춘의 아이돌들과 그들이 웃음을 주려 노력하는 시골 마을의 백세 장수 어르신이 그렇다.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 것 같은 하얀 손들이 삽과 망치를 들고 있는 장면이 그렇고, 엣지 있는 스타일의 그녀들이 몸빼를 차려입고 시골 일에 나서는 장면이 그렇다.

소녀 아이돌들이 시골에 간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걸 그룹과 시골이라는 공간 사이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청춘불패'는 소녀시대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공포영화제작소' 같은 코너에서 보여주었던 의도성을 최대한 배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연출의 의도를 벗어버리고 이 프로그램이 하는 것은 그저 이 소녀 아이돌들의 시골생활을 담담히 보여주는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적응이 덜 되었다고 스스로 밝히는 남희석이 "이거 예능인데 너무 일만 하는 거 아냐"하고 말할 때, 이 프로그램은 드디어 '걸 그룹의 예능'이라는 틀에 박힌 선입견을 벗어버린다.

처음 걸 그룹의 아이돌들이 예능으로 모인다는 '청춘불패'의 예고를 들었을 때, 우리가 갖게 된 인상은 '1박2일'의 걸 그룹 버전일 거라는 호기심이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나르샤, 소녀시대의 유리와 써니, 포미닛의 현아, 카라의 구하라, 티아라의 효민, 시크릿의 한선화 등, 걸 그룹 열풍 속에서 쟁쟁한 이들의 출연만으로도 '청춘불패'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걸 그룹들이 지금껏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청춘불패'는 또 하나의 걸 그룹의 풋풋한 이미지를 활용한 예능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춘불패'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이러한 의구심을 깨버렸다.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강박관념을 벗어버린 것. 덕분에 이 쟁쟁한 아이돌들의 시골생존기는 자연스러움을 얻었다. 닭똥을 치우고, 은행을 따고, 집 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화장실과 닭장을 만들고, 고추를 따는 것이 그들이 프로그램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이다. 심지어 어르신들 앞에서 장기를 선보이는 자리에서도 그들은 굳이 장기를 보여줘 예쁜 이미지를 남기려는 모습보다는 그저 어르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담히 보여준다.

이렇게 되자 '청춘불패'는 아이돌 예능이 갖는 통상적인 틀을 벗어나 그네들이 일찍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생생한 얼굴들을 드러낸다. 어르신들에게 어색하게 절을 올리고, 그네들과 함께 묵묵히 일을 하는 장면은 큰 웃음이 없어도 훈훈해지고, 낯선 시골 생활에서 어색한 그들의 행동은 청춘의 풋풋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집안 어른들과 오랜만에 나누는 전화 통화에서 그간 숨겨왔던 마음이 더 절절해지는 건 그들이 이제 무대라는 화려한 가상공간을 벗어나 이 진정성이 살아있는 공간 속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청춘불패'는 이처럼 걸 그룹 아이돌들을 출연시키지만, 그네들의 겉이 아닌 속을 들여다본다. 외형을 벗어던지고 알맹이에 접근하자, 그녀들은 오로지 청춘이라는 이름 하나로 이 이질적인 공간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루 동안 건강한 육체노동을 하고, 밥을 지어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진지하고 훈훈한 웃음이 피어나는 건 이 프로그램이 가진 담담함이 가져온 진정성의 힘이다. 그리고 이것은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발길을 향하는 자들이 가지게 마련인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간과 다르지 않다. '청춘불패'가 아이돌 예능 그 이상을 보여주는 건 그 살아있는 진정성이 아이돌을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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