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버라이어티 전성시대, 그 의미는?

이른바 ‘시골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되었나. ‘무한도전’은 일찍이 2006년 농촌체험을 소재로 그 시골이라는 공간이 주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2007년에는 ‘비(?) 특집’을 통해 비 내리는 논에서의 한바탕 몸 개그를 선보이며 농촌을 버라이어티쇼의 장으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2009년 ‘무한도전’의 벼농사 특집은 1년이라는 긴 기간으로 기획되어 실제로 농사를 짓는 그 과정을 보여주었다.

‘6시 내고향’의 예능 버전이라고 불리는 ‘1박2일’은 전국 각지의 농촌과 어촌을 찾아다니며 벌어지는 하룻밤의 해프닝을 리얼로 다룬다. 이 프로그램을 ‘6시 내고향’과 비교하는 것은 그 방영 시간대가 주중에 하는 ‘6시 내고향’과 같은 6시대이면서, 동시에 프로그램 속에 담기는 것들도 그 시골의 특산품이나 명물, 명소들이기 때문이다.

시골에 대한 주목은 이후 등장한 ‘패밀리가 떴다’의 본격적인 시골 버라이어티쇼로 이어진다. ‘패밀리가 떴다’는 시골이라는 공간을 쇼의 공간으로 바꾸면서 다양한 게임들을 마당에서 펼쳐 보여주었다. 스튜디오를 벗어난 공간으로서의 시골은 현장의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새로운 게임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시골에서 리얼로 벌어지는 1박2일 간의 해프닝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들 ‘시골 버라이어티쇼’는 주로 남성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에서 여성 멤버를 투입하면서 독특한 심리관계가 주는 재미를 선보이자, 이제는 더 이상 ‘시골 버라이어티’에 성별은 중요한 것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들의 아낌없이 무너지는 그 모습은 ‘시골 버라이어티’ 특유의 시골스런 모습과 대비되면서 주목되었다. 이효리가 몸빼바지를 입고 눈곱 낀 생얼을 카메라에 가감 없이 보여주고, 박예진이 그 가녀린(?) 손으로 거침없이 닭을 잡는 모습은 시청자를 열광케 했다.

그러니 신비로운 소녀 이미지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걸 그룹들이 시골에 가지 말란 법이 있을까. 새로이 시작된 ‘청춘불패’는 소녀시대의 유리, 써니, 카라의 구하라, 포미닛의 현아,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나르샤, 티아라의 효민, 시크릿의 선화가 시골의 집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일종의 생존(?) 버라이어티쇼라고 볼 수 있다. 화장실조차 없어 스스로 화장실을 만들던 이들이 구덩이의 간격을 맞춰보기 위해 자세를 잡는(?) 장면은 ‘청춘불패’가 보여주는 시골 버라이어티의 지점을 정확히 그려낸다.

이처럼 버라이어티쇼가 시골로 가게 된 것에는 먼저 연예인 리얼리티쇼가 대세가 된 지점과 시골이라는 공간이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연예인들이 몸빼 바지를 입고 시골에서 노동을 하는 모습은 그들의 불편한 모습 자체로 날 것의 웃음을 준다. 이른바 세련됨과 인공적인 치장을 걷어낸 뒤, 신비주의가 무너지는 그 지점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시골이라는 야외공간이 갖는 장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리얼리티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다수의 카메라의 동원을 통한 리얼한 순간의 포착은 이처럼 넓은 야외공간 속에서 빛을 발한다. 스튜디오가 갖는 좁은 공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이다. ‘1박2일’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시골의 야생 속으로 뛰어드는 강한 리얼리티를 선보인다. 즉 계곡이나 바닷물로 입수하거나 갯벌 속에서 진창에 뒹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골이라는 공간은 의미를 창출하는데 있어서 유리하다. 버라이어티쇼는 점점 어떤 스토리성이 강조되는 시기에 도달해있고, 그 스토리는 이제 웃음의 차원을 넘어서 어떤 의미까지를 요구하고 있다. 시골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의 체험을 통한 조명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게다가 시골의 때 묻지 않은 환경(자연환경은 물론이고 그 곳을 사는 분들의 순박함까지)이 때 묻은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물론 시골이라는 공간이 너무 쇼의 공간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소지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이들 버라이어티쇼들은 쇼가 갖는 재미의 측면과 함께 늘 이 시골이라는 공간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모습을 연출한다. 그것이 이 공간에 빚져 인기를 얻고 있는 버라이어티쇼가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버라이어티쇼가 주목하는 시골에 대한 가능성을 관계부처들은 얼마나 인식하고 있으며, 또 실제로 어떤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시골 버라이어티쇼가 물론 그 프로그램의 성격상 시골의 사정들을 모두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대중들에게 시골이라는 공간이 주는 날것의 순박함이 넘치는 자연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어쩌면 시골 버라이어티쇼는 그 쇼적인 기능 이상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안정된 가족드라마로의 회귀, 주말드라마 전성시대를 만들다

지난주 주간 시청률표를 들여다보면, 20위권에 포진된 주중드라마는 이른바 대작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월화의 ‘선덕여왕’과 수목의 ‘아이리스’와 일일드라마인 ‘다함께 차차차’, ‘밥줘’, 이렇게 네 편이다. 고정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어 전통적으로 주중에 강세를 갖고 있는 일일드라마를 빼놓고 보면 주중 심야드라마의 대작 쏠림현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반면 주말드라마를 보면 20위권에 들어있는 드라마들은 ‘수상한 삼형제’, ‘천만번 사랑해’, ‘그대 웃어요’, ‘보석비빔밥’, 이렇게 네 편이나 된다. 주말드라마 경쟁에 뛰어들어 있는 작품들은 이들 네 편과 함께 ‘열혈 장사꾼’과 ‘인연만들기’까지 합하면 무려 여섯 편이나 된다. 이렇게 된 것은 저녁 시간대와 심야시간대에 한 편씩 방송3사가 경쟁을 벌이게 되면서부터이다. 물론 과거에도 주말드라마는 비슷한 패턴으로 방송3사가 경쟁을 벌였지만 작금의 상황은 그 경쟁이 더 치열해진 양상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상황을 가져온 것일까.

그 이유는 대작드라마 이외에 시청률을 담보하는 형식으로서 가족드라마가 어떤 대안처럼 제시되어 있고, 그것이 주말 시간대와 잘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주말드라마 시장은 전통적으로 가족드라마 시장이었다. 따라서 현재 주간시청률 20위권에 들어있는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거의 모두 가족드라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니시리즈 성격이 강한 ‘열혈 장사꾼’이나, 가족드라마 속의 멜로보다는 멜로드라마 속의 가족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인연만들기’가 순위에 들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그 원인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드라마가 하나의 대안처럼 된 것은 그 경제성 차원으로도 볼 수 있다. 대작드라마가 갖는 스펙터클은 그만큼 제작비의 투여를 요구하지만, 가족드라마는 스펙터클보다는 인물들의 갈등 같은 관계로 끌어가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시청률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이 가능성을 극대화해 보여준 사례가 ‘찬란한 유산’이다. 이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는 주말드라마 시장에서 가족드라마의 저비용 고효율을 실증해 보여주었다.

‘찬란한 유산’의 성공으로 주말 가족드라마의 틀도 약간은 변형되었다. 물론 과거처럼 전통적인 방식의 가족드라마들, 가족들의 좌충우돌 결혼 성공기를 다루는 ‘솔약국집 아들들’ 같은 드라마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 가족드라마의 편안한 가족이야기 속에 미니시리즈가 갖는 극적 상황을 집어넣는 것이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지고 있다. ‘수상한 삼형제’가 가끔씩 보여주는 불륜의 상황 같은 극적인 연출장면들과, ‘천만번 사랑해’의 대리모라는 자극적 상황이 그것이다.

‘그대 웃어요’는 상대적으로 이 자극적 상황을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진 자들이 갖는 허위의식이 불편할 정도로 제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권선징악적인 도덕적 틀 속에서 긍정적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점은 극을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로 유지시켜준다. 이것은 정확히 ‘찬란한 유산’이 갖고 있던 틀과 일치한다. 불편한 관계들이 등장하지만, 그 관계의 해결에 있어서 도덕적 틀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애초에 막장드라마라고 낙인찍혀 시작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건강한 면이 보여지는 의외의 임성한표 드라마, ‘보석비빔밥’도 마찬가지다. 막장의 어른들과, 그들을 내쫓는 자식들이 등장하지만 그 자식들의 건실함과 밝은 모습은 드라마를 막장의 어둠에 빠뜨리지 않는다. 즉 ‘찬란한 유산’이 보여주었던 자극적 설정과 도덕적 틀의 유지를 이들 드라마들이 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주말드라마 전성시대는 거꾸로 말해 가족드라마 전성시대의 다른 말이다. 여기에는 현 드라마계에도 드리워진 불황의 그늘을 거꾸로 되짚어볼 수 있는 단초가 있다. 어떤 실험을 하기보다는 좀 더 안정된 구조를 요구하는 불황의 여파로 인해, 가족드라마라는 전통적인 틀이 대안처럼 제시되고 있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우리네 드라마는 현재 대작으로 승부하거나, 가족드라마라는 전통적으로 안정된 틀로 회귀하고 있다. 드라마 생태계의 고른 발전을 위해서는 중간 규모의 덩치에 보편적인 장르면서도 나름의 신선한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 누가 김제동과 김구라를 호명했나

연예인의 프로그램 하차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장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개편의 목적이기도 한 프로그램의 쇄신을 위해 출연자를 교체했으리라는 것이다. 김제동이 '스타골든벨'에서 하차하게 된 것에 대해 방송사측에서 내세우는 명분은 이 정상적인 이유이지만 실상을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스타골든벨'은 10% 이하의 시청률에 머물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그다지 좋은 성적표는 아니다. 이 프로그램이 이 정도의 시청률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형식이 이제는 조금 낡은 과거의 것으로 여겨진다는데 있다. 즉 프로그램의 쇄신이 필요했다면 형식 자체를 고쳤어야 옳다. 김제동을 지석진으로 교체한다고 해서 프로그램이 쇄신되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절차상의 문제도 석연치 않다. 사전에 충분히 이야기하고 미리 알려줬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단 며칠 전에 통보하는 식은 절차상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혹자들은 이것이 실제로 방송가에 공공연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절차라도 정상적이었다면 구태여 이런 잡음 따위는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여러 가지 석연찮은 교체의 이유 때문에 김제동의 하차는 정치적인 목적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김제동이 가진 대중적인 인지도에 정치적인 목적이라는 시선이 부가되자 이 상황은 정치권의 공방으로 이어졌다. 연예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이슈로 옮아간 것이다.

사실 연예인이 어떤 정치적인 발언을 하던 간에 그것은 한 국민의 소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정치 속에서 연예인이란 일종의 얼굴마담처럼 정치권이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아무런 정치적 의도가 없고 그저 인간적인 마음에서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늘 정치권에서 아전인수되는 경향이 짙다.

연예인과 정치권이 연루되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연예인이 얼굴마담으로 내세워져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은 바로 정치권이 연예인을 보는 시각을 잘 말해준다. 따라서 연예인의 정치참여는 대부분의 유경험자들이 말하듯이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다. 연예인이 자기의 일을 접어두고 아예 정치인이 되겠다고 나서기 전에는 말이다.

김제동의 '스타골든벨' 하차와 손석희의 '100분 토론' 하차를 두고 야권에서 들고 나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국정감사에서 여권이 내민 카드는 이른바 '막장, 막말 방송'에 대한 비판이다. 막장드라마와 막말 예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극으로 치닫는 현 방송 문화에 있어서 어찌 보면 이러한 지적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사안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이것 역시 연예인을 앞세운 정치 공방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진성호 의원이 구체적으로 김구라를 지칭하며 퇴출하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좁은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막장, 막말 방송'의 문제는 그 방송을 내보내는 방송사와 제작하는 제작자가 가져야 될 윤리적인 문제이지, 김구라라는 한 연예인이 책임지고 퇴출되어야 할 그런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역시 이 사안에서도 연예인들은 어떤 본보기나 얼굴마담으로 내세워진 느낌이 있다. 김제동의 경우를 보든, 김구라의 경우를 보든 어떤 정치적인 사안으로 비화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심한 소외를 겪는 양상을 보여준다. 연예인이 정치에 참여해 피해를 보았다거나, 정치가 잘못된 방송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특정 연예인을 거론하고 나서는 상황을 보면서 그 사안이 옳던 그르던 어딘지 잘못되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비판을 하는 이들이 정치인들이라는 점은 그 비판에 대해 공감할 수 없게 만든다. 막말과 막장이라고 하면 우리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들은 과연 모르고 있다는 얘기인가. 적어도 연예인들은 즐거움이라도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 아닌가. 연예인들이 정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 여권이나 야권이나 어느 한 쪽이 옳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연예인의 이름이 정치적 목적으로 여기저기서 호명되는 것이 불편할 따름이다.

집단 버라이어티 토크쇼의 시대, '세바퀴'가 보여주는 것

토크쇼에서의 고정 게스트의 집단화는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 시도되었던 김용만의 '브레인 서바이버'는 집단적으로 게스트가 출연해 퀴즈를 풀며 토크도 하는 형식으로, 퀴즈쇼와 토크쇼가 적절히 접목된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었다. 당대 이 코너의 인기는 '코미디 하우스'에서 정준하가 자신을 두 번 죽이며(?)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던 '노브레인 서바이버'로 이어졌다.

현재 토요일 예능의 최강자로 '무한도전'의 아성마저 위협하는 '세바퀴'는 이 '브레인 서바이버'가 보여준 퀴즈쇼와 토크쇼의 결합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세바퀴'는 이 형식에 아줌마의 수다를 결합하고, 퀴즈에 있어서 설문을 통한 공감 포인트를 부가했으며, 토크만이 아니라 몸 개그적 요소까지 마련함으로써 명실공히 토크쇼와 퀴즈쇼, 개그쇼까지 두루 겸비한 버라이어티쇼로 자리매김했다.

실로 버라이어티쇼가 대세인 요즘, '세바퀴'를 그 중 하나의 버라이어티쇼로 치부하기는 쉽다. 하지만 '세바퀴'에는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공기가 있다. 그 공기 속에는 무엇이든 들어가면 뒤섞이고 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그 무언가가 도출되어 나오는 기이한 힘이 있다. 공연을 앞두고 있는 가수의 넋두리 같은 이야기가 신변잡기처럼 나오다가, 갑자기 즉석에서 그 가수를 무대로 끌어내 노래하게 만들고, 그 노래에 맞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줌마들과 아이돌이 함께 춤을 추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만드는 그 공기.

'세바퀴'에는 다양한 장르와 세대와 성별과 소재 같은 구분되어지는 어떤 것들이 한 공간에 모여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르며 하나로 융화되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퀴즈쇼 형식은 여기서 실로 중요하다. 퀴즈가 단순히 의외의 답을 통한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출연자로 대변되는 전 세대와 성별의 공감대를 모색하기 위한 문제제기로서 제시되기 때문이다. '연상녀를 사귈 때 가장 좋은 것은?' 하는 설문의 가장 많은 답으로 '푸근하고 이해심이 많다'가 제시되면 곧바로 MC는 젊은 아이돌에게 연상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묻는다.

아이돌이 자기의 얘기를 하는 순간(사적인 이야기), 그것은 또한 설문과 맞닿으면서 공적인 이야기로서의 울림을 갖는다. 여기에 다양한 연령대의 게스트들이 질문과 답변을 종횡으로 집어넣으면 이야기는 더 큰 울림을 갖게 된다. 공감의 폭이 그만큼 커진다는 이야기다. '세바퀴'가 갖는 퀴즈 토크쇼의 매력은 '야심만만'이 초창기에 시도했던 설문 토크쇼와 닮은 구석이 많다. 다른 점은 그 설문 내용에 대응하는 게스트들이 집단화됨으로써 더 다양한 사적이야기가 폭넓은 공감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집단 토크 시스템이 갖는 경쟁적인 구도, 아줌마들의 거침없는 입담, 아저씨들의 능수능란한 대응, 세대를 넘나드는 이야기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까지 소화하는 쇼의 장 등등. '세바퀴'의 성공요인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요인들 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전 세대를 공기처럼 아우르는 공감대가 이 퀴즈토크쇼에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세바퀴'의 성공을 그저 집단 버라이어티 토크쇼가 대세라는 식으로 간단하게 말하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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