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헛똑똑이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그바보'

불황이어서인지 세상은 더 무례해졌다. 그 세상을 담는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 어떤 마음을 담기보다는 당장의 자극을 담아 시청률이라는 수치 올리기에 바쁘기 일쑤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저 바라보다가(이하 그바보)'는 요즘 세상에 어울리지 않게 예의를 아는 드라마다. 그저 키득대며 보다보면 어느 순간, 이 바보 같이 웃고만 있는 드라마가 전하는 뭉클한 메시지에 마음까지 먹먹해지는 때가 있다. 구동백(황정민)이라는 이름의 그 바보는 좀 안다는 헛똑똑이들의 무례에도 오히려 그들을 가슴으로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 헛똑똑이들은 어쩌면 우리들의 또 다른 얼굴인지도 모른다.

구동백은 가진 것 없고 여자 친구도 없으며 영업실적도 제로인 평범한 우체국 영업과 말단직원. 그런 그가 톱스타 한지수(김아중)와 시장후보 아들 김강모(주상욱)보다 돋보이는 건 왜일까. 우연한 사건으로 터진 연애스캔들이자 정치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 김강모 대신 연인 역할을 하게 된 구동백에게 한지수는 사례금을 챙겨주려 한다. 하지만 평소 한지수의 팬이었던 구동백은 도와주고픈 순수한 마음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이라며 한사코 그 돈을 받지 않는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단순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구동백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행동이자 그가 그들보다 돋보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지수와 김강모가 사는 세계는 거래의 세계다. 모든 것이 돈과 권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그 곳에서는 심지어 연인 관계까지 돈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니 거래를 거부하고 관계를 희망하는 구동백은 이들에게는 당혹스런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한지수가 억지로라도 사례를 해 관계를 거래로 바꾸려 구동백에게 차를 선물하려 했을 때, 구동백이 대신 요구한 것은 회사 단합대회에 와달라는 것이었다. 한지수와 그녀의 매니저 차연경(전미선)은 그렇게 돈을 건네려는 자신의 손이 점차 부끄러워진다. 한지수가 점점 구동백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그 당혹감의 표현이다.

마치 돈만을 가진 자와 마음만을 가진 자의 대결구도처럼 한지수와 구동백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그저 연애담 이상을 전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것은 돈과 명예를 통해 모든 것을 다 가진 줄 아는 헛똑똑이들에게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 누구도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바보가 전하는 경고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저 '스타의 연인' 같은 남성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구동백이라는 바보의 순수한 세계가, 한 때는 자신도 그런 세계에 있었으나 어느새 그 세계를 떠나버린 한지수를 일깨워주는 이야기가 그 진짜다.

구동백과 한지수의 결혼발표(일은 점점 커져 결국 위장결혼까지 하게 된다)로 귀국한 한지수의 동생, 상철(백성현)은 그녀가 떠나버린 세계에 아직까지 발을 디디고 있는 인물로 구동백과 결을 같이 한다. 그는 한지수가 자신 때문에 외국에 보내졌다는 자책감에 부쳐준 돈보다는, 어린 시절 자전거를 사주기 위해 몇 달을 걸어 다녔던 누나를 더 그리는 인물이다. 그 돈으로 구동백이 수십 대의 자전거를 구입해 아이들에게 자선행사를 하는 장면은 돈이 때로는 거래가 아닌 마음으로 전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지수의 눈물은 거래의 세계 속에서 잊었던 그 마음을 되찾게 해준데 대한 고마움의 발로이다.

'그바보'는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이 무례한 세상에 예의를 전하는 드라마다. 그리고 이것은 작금의 불황을 맞아 자극적으로만 치닫는 드라마 세상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불황에 시청률 같은 수치적 집착은 더욱 심해졌고, 드라마들은 그 와중에 감정 또한 거래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여기는 것만 같다. 이야기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공분을 일으켰다가 또 어느 순간 적당히 풀어내는 것을 반복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려는 드라마들이 그렇다. 하지만 어디 시청자의 마음이 그리 호락호락할까. 한지수 같은 자본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어도 구동백 같은 변치 않는 순수한 마음은 언제나 남아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그바보'의 구동백을 보면서 느껴지는 감동과 부끄러움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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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녀들을 희생하게 만들었나

‘내조의 여왕’이 그리고 있는 세계는 퀸즈푸드라고 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공간이다. 어디에서나 정치적인 선택이 이루어지는 그 곳은 온전히 실력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곳이며, 막후협상과 로비와 줄서기가 횡행하는 곳이다. 남편이 이사면 그 아내도 이사고, 남편이 부장이면 그 아내도 부장이며, 남편이 인턴사원이면 아내도 인턴사원인 곳이 그 곳이다. 부부는 하나의 짝패를 이루어 안팎으로 뛰어야 하는 상황. ‘내조의 여왕’이 그려내는 내조의 세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마련인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내조’를 뛰어넘는다.

이제 막 이 세계에 들어간 온달수(오지호)의 아내 천지애(김남주)는 퀸즈푸드 사모님들(?)의 내조 정치의 세계로 뛰어든다. 그녀는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오로지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한다. 한편 젊은 시절 그녀를 졸졸 따라다녔던 양봉순(이혜영)은 일찌감치 이 진흙탕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것은 이미 천지애와 사귀던 한준혁(최철호)을 중간에서 가로채 남편으로 만들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양봉순의 삶이 오로지 남편을 내조하는 삶이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양봉순은 그런 남편이 여전히 잊지 못하는 천지애와 이 처절한 정치의 세계 속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다.

똑같은 내조라고 보이지만, 천지애와 양봉순의 내조는 사뭇 다르다. 천지애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녀의 내조는 사랑이지만, 양봉순의 내조는 안간힘이다. 즉 천지애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또 남편이 전폭적으로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그 처절한 진흙탕 속에서 뒹굴지만, 양봉순은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 남편 한준혁을 향한 사랑의 갈증이 거의 비서 같은 그녀의 삶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코미디이기 때문에 모든 상황들은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이들의 내조는 비정상적이다. 우리가 흔히 ‘치맛바람’이라 부르는 바로 이 비정상적인 내조는 거꾸로 사회의 비정상적인 구조를 풍자하기 위함이지만.

따라서 양봉순의 내조가 사실은 내조라기보다는 거의 집착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걸, 천지애의 출연으로 알게된 것처럼, 천지애의 내조 역시 남편 온달수가 사장 부인인 은소현(선우선)에게 흔들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본질을 드러내게 된다. 물론 온달수의 흔들림은 의도한 것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을 뒤로 접어두고 남편만을 내조하는 천지애의 삶이 가진 허망함을 깨닫게 하기엔 충분했던 것. 어찌 보면 천지애와 양봉순은 근본적으로 같은 위치에 처해있는 인물들로 볼 수 있다.

남편이 결국 토사구팽 당할 위기에 처하자 심한 스트레스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양봉순을 병원에 데려다 주고 그녀의 남편을 불러 화해를 시켜주며 나오는 천지애의 눈에 미소와 눈물이 섞이는 것은 그녀가 양봉순과 이제는 어떤 공감의 틀을 갖게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바로 이런 내조의 진면목을 깨닫는 존재로서 양봉순과 천지애는 겉으로 으르렁대면서도 경쟁자가 아닌 동지의식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그들이 적으로 상정해야 할 인물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그런 상황 속에 빠뜨린 시스템을 쥐고 있는 인물, 즉 이사부인인 오영숙(나영희)이다.

천지애가 취업전선의 벼랑 끝에서 남편을 위한 내조를 위해 발 벗고 나섰듯이, 또 남편의 퇴출 위기 속에서 양봉순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편을 내조하려 했듯이, 진짜 내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위기상황에서만 등장하기 마련이다. 위기가 지나고 어떤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 내조는 얼굴을 바꿔 치맛바람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내조 또한 자신의 행복한 삶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희생을 통해 가족과 배우자를 행복하게 해주려는 것이기에 허망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따라서 ‘내조의 여왕’을 그리고 있지만 그 여왕의 진정한 행복이 스스로를 내조한다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천지애와 허태준(윤상현), 그리고 온달수와 은소현의 관계가 여전히 아슬아슬한 불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구조가 가진 신데렐라(혹은 남데렐라) 설정의 힘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륜적인 관계가 가장 극적으로 그 자신만의 삶을 표현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불륜이든 아니든 더 중요한 것은 이 코미디가 풍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내조라는 이름으로 줄서기와 로비에 우리네 주부들까지 뛰어들게 만드는 퀸즈푸드라는 이름의 뒤틀린 우리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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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약국집’vs‘찬란한 유산’vs‘2009 외인구단’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 문영남 작가의 ‘조강지처클럽’ 이후 잠시 주춤했던 주말드라마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주 KBS ‘솔약국집 남자들’은 24.9%(AGB닐슨)로 주말 TV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이제 막 시작한 SBS ‘찬란한 유산’은 단 2회만에 19.6%를 기록하며 주말드라마의 새 강자 자리를 예약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부활한 MBC 주말 자정드라마로 이현세 원작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극화한 ‘2009 외인구단’이 시작된다. 그 3사3색의 드라마가 가진 특징들은 무엇일까.

먼저 첫 스타트를 끊은 ‘솔약국집 남자들’은 전형적인 가족드라마 형식에서도 늘 대중성을 인정받아온 딸 부잣집 이야기를 아들 부잣집 이야기로 뒤집었다. 약사, 의사, 기자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지만 결혼에 있어서만큼은 어딘지 하자가 있어 보이는 솔약국집 아들들의 좌충우돌 결혼 성공기. 자극적인 드라마들의 홍수 속에서 너무나 건전해 보이는 이 드라마는 바로 그 무자극성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자극을 뺀 대신, 아옹다옹하는 시트콤적인 코믹함이 부각되었다. 오래간만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볼 수 있는 진짜 가족드라마.

‘찬란한 유산’은 고전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는 유산, 상속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고전적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 보아도 늘 흥미로운 소재라는 의미에서다. 아버지의 죽음(실제로는 살아있지만)으로 인해 가진 것 하나 없이(장애가 있는 동생까지 데리고) 길바닥에 나앉은 은성(한효주)이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보험금을 가로챈 비정한 계모의 삶과 대비되면서 극적 재미를 만들어낸다. 이승기의 드라마 외도도 흥미롭고,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한효주의 연기도 반갑다.

‘바람의 화원’을 빛낸 두 얼굴, 문채원과 배수빈의 현대극 속 변신도 관전 포인트다. 진정한 유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라는 통상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걸 다루는 과정은 꽤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MBC가 자정 시간대에 해왔던 주말드라마는 지금껏 대부분 그 소구대상을 중년 여성 시청층에 맞춰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 다시 시작하는 주말 자정드라마는 그런 색채를 버리고 좀더 넓은 시청층을 겨냥하고 있다. ‘2009 외인구단’은 까치 엄지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현세의 만화로 특유의 남성적인 굵직한 면모를 기대하게 만든다. 야구라는 이색적인 소재 자체가 시선을 끌고, 거기에 비주류와 주류가 부딪치는 사회극적인 요소가 공감을 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지고지순한 일편단심 오혜성의 사랑이 지금 시대에 얼마만큼 어필할 수 있을 지 의문이지만, 바로 그 점이 어쩌면 오히려 포인트가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방송3사가 내놓은 주말 드라마들에 집중되는 관심은 그것들이 모두 과거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공식에서 한 걸음 정도씩은 앞서 있기 때문이다. ‘솔약국집 아들들’은 전형적인 가족드라마 틀에 아들 부잣집 이야기라는 새로움을 더했고, ‘찬란한 유산’은 고전적인 스토리에 보다 극적인 구성으로 흥미진진함을 더했다. ‘2009 외인구단’은 이미 성공한 만화원작이 갖는 안정적인 힘 위에 드라마로서는 새로운 야구라는 소재를 사회극, 멜로, 휴먼드라마의 형태로 엮은 실험작이라 할 수 있다.

주말이 가진 편성적 특성을 감안하고 볼 때, 이 안정적인 면과 새로운 시도가 공존하는 주말드라마의 선택은 확실히 과거와는 다른 주말극의 양상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그 어느 것을 선택하든 일정 수준 이상의 즐거움을 확실히 챙겨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방송3사의 주말드라마. 시청자들의 주말 밤은 이로써 한층 더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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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경계 위에 선 영화, ‘박쥐’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밟고 있는 지점은 실로 애매모호하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 엉뚱하게도 송강호의 성기노출이 논란이 되면서 영화는 마치 에로틱한 어떤 것으로 비춰졌다. 그것은 마치 이안 감독의 ‘색계’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거장이 만들었으니 작품성이 뛰어날 것이고, 그러면서도 무언가 파격적인 성 노출이 스펙타클로 보여지는 그런 영화. 이런 분위기는 실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적인 호기심과 함께 자극적인 호기심까지.

‘박쥐’는 물론 대단히 에로틱한 면모를 가지고 있으나 에로틱한 그 무엇으로만 정의되기는 어렵다. 뱀파이어물이 갖는 에로틱함과 공포스러움을 동시에 껴안고 있으니까. 살갗을 물어  뜯거나 칼날로 그어 피를 내는 장면은 하드고어를 연상시킬 정도로 끔찍하지만, 그 피나는 살을 쭉쭉 소리를 내며 빨아대는 장면은 그 어떤 정사장면 만큼이나 에로틱하다. 영화는 이 두 지점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양극단을 공존시켜 나타나는 기묘한 느낌이 주는 쾌감을 선사한다.

‘박쥐’가 주는 이런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의 공존은, 어쩌면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그 자체일 지도 모른다. 비상하는 새와 어둠 속을 기어다는 쥐의 상반된 이미지를 한 몸에 가진 박쥐, 그 박쥐에서 뽑혀져 나온 인간과 괴물의 이미지를 한 몸에 가진 뱀파이어. 영화 속 주인공 상현(송강호)은 이 중간지대에 선 인물이다. 그는 신부라는 인간적인 존재와 종교적인 존재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이며, 누군가를 구원의 길로 이끄는 신부이면서 동시에 파멸로 끌고 들어가는 흡혈귀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상현이 그려내는 고뇌하는 흡혈귀라는 캐릭터다. 하드고어적인 잔혹함이 넘치면서도 순간 유머가 번뜩이는 것은 바로 이 상현의 인간적인 면모 덕분이다. 상현은 신부처럼 삶과 구원에 대해 고민하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 뇌사상태에 빠진 자의 피를 마치 빨대로 뽑아내듯 빼먹으면서 사실 그 사람은 본래부터 누군가에게 뭔가를 나눠주는 걸 즐거워했다고 변명을 해대고, 자살을 하려는 사람의 피를 빨아주면서(?) 그것이 그 사람을 편히 가게 해준다고 말하는 장면은 우습지만 인간의 실존을 담아낸다.

이 영화는 밤과 낮 사이에서, 그 타락과 구원 사이에서, 살육과 생존 사이에서, 물과 햇볕 사이에서, 육욕과 사랑 사이에서 그 수많은 경계의 지점에서 딜레마에 빠져버린 인물들을 그린다. 자살은 상현이 신부로서 말했던 것처럼 가장 극악한 죄이지만, 이 딜레마에 빠져버린 인물들에게는 유일한 구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단의 딜레마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건 단지 영화 속 흡혈귀의 실존만은 아닐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수많은 상반된 이미지를 한 프레임 안에 녹여내는 그 매력적인 연출은, 송강호, 김옥빈의 빛나는 연기로 형상화된다. 송강호는 가장 세속적인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구원을 향한 진지한 몸부림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을 특유의 허무와 유머가 뒤섞인 얼굴로 연기해낸다. 상현이란 인물은 송강호를 만나 ‘넘버3’같은 비속함에서부터 ‘밀양’의 진중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엉뚱함을 모두 표현해낸다. 김옥빈은 에로틱함의 극단에서 섬뜩함을 뽑아내는 그녀 영화 인생 최고의 연기를 해낸다.

이 영화에 쏟아지는 양극단의 평가는 바로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어느 한 지점에 머물지 않고 끝없이 경계 위에 서려는 그 안간힘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에로틱한 그 무엇을 기대하고 간 관객이라면 그 하드고어적 영상이 충격적일 것이고, 뭔가 진지한 성찰을 꿈꾸고 간 관객이라면 순간순간 보여지는 위악적인 이미지들(성찰을 거부하는 듯한)에 당혹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렇게 장르와 인물과 이미지를 내파시켜 하나로 혼융하는 면모에서 박찬욱만의 힘이 느껴진다. 그것은 기대의 배반이라기보다는 기대 그 이상의 것을 늘 보여주는 그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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