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화된 예능의 게스트 전략, 그 한계

‘무릎팍 도사’에는 초창기에는 보이지 않던 패턴이 이제는 하나의 형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게스트가 문을 열고 “여기가 혹시...”하고 묻고 거기에 맞춰 무릎팍 도사와 건방진 도사 그리고 올밴이 춤을 춘다. 강호동이 게스트를 안아서 자리에 앉혀주고 먼저 하는 것은 탁자를 꽝 내리치며 기선을 제압하는 일이다. 소리를 빽빽 지르는 그 기세는 보는 시청자의 마음까지 건드릴 정도, 그러니 그 앞에 앉은 게스트의 마음은 오죽할까.

이것은 본격적인 토크가 시작되기 전, 분위기 선점을 위한 포석이자, ‘무릎팍 도사’라는 세계로 들어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 패턴은 따라서 ‘무릎팍 도사’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한 달라져서도 안될 형식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토크의 세계로 들어와서는 말이 달라진다. 토크쇼의 묘미가(작금의 리얼 토크쇼 경향에는 더 그러하지만) 돌발적인 어떤 발언이 주는 의외성에 있다면, 이야기 속에서도 늘 존재하는 어떤 패턴은 토크쇼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무릎팍 도사’에서는 강호동과 건방진 도사 유세윤의 도발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심지어 언짢게 만드는 질문들과 깐죽거리는 말들이 게스트를 자극하고, 본격적인 낚시질이 시작된다. 이제 이 토크쇼에서 한 형식으로 잡혀있던 게스트의 ‘고민’은 그저 요식행위로 변한 지 오래다. 그것은 실제 고민이 아니라 때로는 자랑이기 십상이고, 말미에 가서 제시되는 해결방안도 마찬가지다.

낚시질이 어느 정도 무르익는 시점에서는 이제 게스트에게서 감동 포인트를 끄집어낼 순서다. 인생 역정에 어려운 시절이 없는 이들이 있을까. 그것을 슬쩍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토크쇼의 분위기는 숙연해질 정도로 역전된다. 그리고 분위기를 다시 띄우는 이야기가 오고간 후, ‘고민해결’로 토크는 끝이 난다. 이 ‘무릎팍 도사’의 패턴들은 형식적으로도 꽤 창조적이고 게스트의 진면목을 끄집어내는데 있어서도 꽤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미 정착되고 반복되면서 드러나게 되는 패턴은 자칫 토크쇼의 의외성을 제거할 위험성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의 패턴화 문제는 이제 어느 정도 정착단계에 들어선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들에도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패밀리가 떴다’는 그 패턴화가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밥 먹고 게임하고 밥 먹고 게임한다’는 비아냥섞인 비판들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비슷한 여행 버라이어티를 추구하지만 ‘1박2일’이 대민 접촉과 장소의 다양화를 통해 패턴의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면, ‘패밀리가 떴다’는 그 폐쇄적인 프로그램의 성격으로 인해 더 패턴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게스트에 집중하고 있고, 그것이 어느 정도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무릎팍 도사’ 역시 패턴화의 한계를 게스트를 통해 넘어서려 하고 있다. 프로골퍼 신지애의 출연은 한동안 계속 되었던 연예인 출연의 홍보적 성향을 어느 정도는 일소해 줄만큼 참신한 면이 있었지만, 고정화된 패턴의 틀 안에서 머무는 한계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무릎팍 도사’나 ‘패밀리가 떴다’가 구사하는 게스트 전략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자칫 게스트에만 집중해 프로그램의 색깔이 무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이치지만 문제는 문제가 발생한 곳에서 해결을 봐야 한다. 패턴의 문제는 패턴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

영웅보다 인간을 선택한 ‘돌아온 일지매’

‘홍길동전’이나 ‘전우치전’ 같은 우리네 고전들의 영웅들을 보면 그 대결의 대상이 왕이거나, 체제 자체가 되는 과감성이 엿보인다. 탐관오리들을 징벌하고, 적서차별에 대항하고, 왕마저 탄복시키는 그 영웅들은 심지어 자신만의 나라를 세우기까지 한다. 당대 서민들의 억압된 정서를 속 시원히 풀어주는 그 이야기들이 얼마나 힘이 되었을 지 짐작해보는 건 어렵지 않다. 이준기가 분했던 ‘일지매’는 바로 이 계보를 잇고 있다.

하지만 ‘돌아온 일지매’에서 일지매는 이런 영웅들과는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물론 탐관오리로서 김자점(박근형)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그의 재물을 빼앗아 민초들에게 나눠주고, 그가 내통하는 청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은밀히 화포를 제작하기까지 하지만 그것은 왕과 대항하기보다는 왕의 밀서를 받고 은밀히 일을 진행중인 최명길(정동환)을 돕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일지매는 그것이 왕을 위해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결국 민초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하는 일(전쟁이 나면 가장 고통받는 건 그들이라며)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지매가 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과거 고전들의 영웅들이 보여주었던 체제 전복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돌아온 일지매’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적서차별이 국가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그 시스템 자체와 대항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김자점을 해하려는 일지매에게 그것이 결국에는 나라에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며 제지하는 열공스님(오영수)의 대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돌아온 일지매’의 이런 ‘체제 내에서의 싸움’이 캐릭터로 잘 드러나 있는 인물은 구자명(김민종)이다. 그는 관원으로서 자신이 해야할 책무와 나라가 민초들에게 가하는 고통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일지매란 존재는 그에게는 딜레마다. 일지매는 탈법적인 일을 하지만 그것이 결국 민초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은 구자명이란 캐릭터를 비극적인 인물로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똑같이 일지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를 시스템 안에서 해결하려는 그의 노력은 “민초들에게 행복을 주기보다는 고통이라도 덜어주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지매의 이런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돌아온 일지매’가 영웅담류의 소재를 갖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우울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이 이야기가 이처럼 무거운 현실을 벗어나 호쾌한 세계를 그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사극에서 일지매는 공적인 문제보다는 사적인 문제에 더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출생과 함께 버려진 일지매는 꽤 오랜 시간을 어머니의 그림자를 찾으며 방황하며 보냈고, 그 그림자 속에서 달이와 월희(윤진서)를 만나고 사랑해왔으며 지금도 그것은 진행형이다. 구자명이 가진 딜레마는 그가 평생을 사랑해온 일지매의 모친인 백매(정혜영)와의 사적인 이야기로 환원된다. 가끔씩 영웅담을 표명하는 이 사극이 멜로 드라마의 연장선으로 비춰지는 것은 일지매가 취하고 있는 이 자세에서 비롯된다.

결론적으로 보면 ‘돌아온 일지매’는 영웅을 그렸다기보다는 한 인간을 더 조명한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늘 깨지고 다치는 일지매의 모습은 그가 초인적인 영웅이 아니라 그 또한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을 자꾸 상기시킨다. 이것은 어쩌면 고우영 화백이 원작만화를 그렸던 당대 현실의 억압적인 검열 탓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만화 같은 영웅보다는 좀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영웅을 그리려 했던 의도 탓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들이 ‘돌아온 일지매’가 촘촘한 스토리에 실험적인 연출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대중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드라마를 만든 것은 아닐까. ‘돌아온 일지매’는 분명 인간미 넘치는 인물들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이 어려운 시국에 대중들은 어쩌면 황당하더라도 좀더 초인적인 판타지를 제공하는 영웅을 기대했을 지도 모른다.

‘남자의 자격’, 도전 버라이어티의 새 진화 보여줄까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해버린 이른바 버라이어티쇼들의 키워드를 나열해보면, 도전, 여행, 결혼(혹은 연애 감정) 정도가 되지 않을까. ‘무한도전’은 도전과 여행의 아이템을 리얼 버라이어티란 형식으로 처음 시도했던 프로그램이고, ‘1박2일’은 이것을 계승해 독자적인 여행 특화 버라이어티로 자리잡았다. ‘우리 결혼했어요’와 ‘골드미스가 간다’가 결혼이라는 아이템을 바탕에 깐 프로그램들이라면, ‘패밀리가 떴다’는 여행에 결혼은 아니지만 연애 감정을 접목했다.

새롭게 시작한 ‘남자의 자격’이 주목되는 것은 이 모든 아이템들이 적절하게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남자들의 도전(매 번 달라지는 과제)이 있고, 함께 외지에서 보내는 하룻밤이 있으며, 결혼생활과 관련된(부부와 관련된 것들)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도전 과제는 소설가 이외수가 지정해주며, 촬영도 그의 사택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이루어지는데, 첫 번째 도전은 ‘두 번 결혼하기(같은 부인과 다시 하는 결혼식)’였고 두 번째 도전은 ‘금연’이었다.

‘1박2일’의 여행이 날 것 그대로의 야생 체험인 무전여행을 닮았고 ‘패밀리가 떴다’가 가족 단합에 집중하는 MT를 닮았다면, ‘남자의 자격’은 수련회를 닮았다. 남자들은 이 합숙소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죽기 전에 해야할 101가지’ 도전을 통해 새로운 남자(?)로 거듭나야 한다. 거듭난다는 것은 어딘지 부실함이 있다는 의미. 출연자들은 저마다의 개성적인 약점(?)들을 갖고 있다. 작년부터 이빨 빠진 호랑이 취급을 받아온 이경규, 이혼의 경험이 아킬레스건인 김국진, 꽤 오랫동안 침묵하다 최근 예능으로 주목받는 김태원, 부실한 몸의 대명사 이윤석 등등이 그들이다.

하지만 이 도전에 있어서도 그 결은 ‘무한도전’의 그것과는 다르다. ‘무한도전’은 말 그대로 도전을 아이템화 한 것이기 때문에 그 도전 상황도 여러 가지로 나뉘어 있다. 출연진들의 특정직업에 대한 도전(예를 들면 런웨이 도전 같은)이 하나가 될 것이고, 말 그대로 실험 자체(대체에너지 같은)가 도전이 되기도 하며, 또 한 편으로는 PD의 형식실험 자체도 하나의 도전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남자의 자격’의 도전은 ‘죽기 전에 해야할 101가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인생의 도전’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삶의 멘토 같은 이외수가 도전과제를 제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결혼이라는 아이템은 남자들끼리의 체험이라는 조금은 딱딱한 부분을 허무는 역할로 끼여든다. 첫 회에서 김태원 부부가 다시 하는 결혼식을 보여준 것은, 이 프로그램이 ‘남자의 자격’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자격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서 여성(아내)을 상정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금연’도전에는 언뜻 보였지만 이윤석의 아내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남자의 자격’이 이 모든 아이템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한 마디로 이 프로그램이 ‘중년의 도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 결혼하기’는 중년에 부부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고, ‘금연’은 중년에 즈음해 건강을 다시 생각하는 작업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출연진들이 그 나이에 의미 있는 도전을 해나가는 버라이어티가 이제 가능해진 것은 그만큼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중년 시청층의 지지가 점점 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남자의 자격’이 비슷한 아이템을 가지고도 ‘무한도전’과도 ‘1박2일’과도 또 ‘패밀리가 떴다’와도 차별화 되는 건 바로 이 다른 연령대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년의 도전에는 한참을 웃다가도 무언가 뒤통수를 잡아채며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특별함이 있다.

도전과 체험까지 개고생으로 만드는 상술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이런 자막과 멘트가 흘러나왔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해봤을 것이다. ‘개고생’이라는 말이 주는 특유의 어감 때문이다(물론 이 단어는 표준어다. 하지만 어감은 여전히 비하하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 불쾌한 단어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욕이라도 들은 것 같은 감정을 갖게 한다. 티저광고로서 아무런 설명이 없기 때문에, 이 단어는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맥락 속에 들어가면 엉뚱하게도 마치 모든 샐러리맨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순간 샐러리맨들은 개고생하러 집 나가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바탕에 깔리는 ‘아내의 유혹’의 한 장면. 은재(장서희)의 치밀한 복수로 거리로 내몰린 정교빈(변우민)이 쓰레기통에 숨어 있다가 나와 거지꼴로 국밥집을 흘끔거리고, 노숙한 씻지도 못한 얼굴을 보여주는 그 영상은 그래도 애교가 있다. 변우민의 막장 표정을 보는 순간에는 웃음도 터진다. 아마도 막장드라마라 지칭되는 이 드라마에 대한 모종의 희화화도 한몫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엄홍길 편에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산악인으로서 산에 대한 도전을 하는 그 행위가 이 광고를 통해 개고생으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하나의 가치가 개고생이라는 한 단어로 전락하는 그 장면에는 극단적인 냉소주의가 숨겨져 있다. 일반인 편에는 개미떼처럼 사람들이 몰린 피서지를 찾은 가족들과 무전여행을 하는 한 사내의 개밥그릇을 넘보는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그 행위들을 역시 개고생으로 의미 지운다. 이 정도까지 오면 목적(자신들의 메시지만 전달하면 된다는)을 위해 가치 따위는 개고생으로 치부해도 된다는 막장의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이 광고가 개고생으로 치부하는 행위들은 각각 별개의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현실(매개된 삶이 아닌 진짜 체험의 삶이란 의미로서의)과의 직접적인 대면이라는 점이다. TV나 기타의 매체를 통해 보면 편안한 것이고 괜스레 직접 하는 체험이나 경험은 개고생이다. 그러니 이 광고의 논리적인 메시지는 광고 마지막에 늘 등장하는 집 모양의 아이콘 위에 떠 있는 ‘ㅋㅋ’가 말해주는 것처럼 ‘집 밖에서의 개고생’보다는 ‘집 안에서의 ㅋㅋ’를 즐기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ㅋㅋ’란 이 광고의 실체인 KT의 새로운 유선통합브랜드인 쿡(QOOK)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광고가 불편한 진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이 광고의 메시지는 편안하게 집안에서 쿡(QOOK) 서비스를 즐기라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 실체는 쿡(QOOK)을 통한 매개된 삶(잔짜의 삶은 개고생이니까)의 가치가 더 높다는 말이다. 이것은 상업적 목적을 위한 가치의 전도다. 이 땅 위의 그 무엇이든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자본의 속성은 이제 체험이나 도전 같은 가치까지도 뒤집어 상품으로 포장한다. 이렇게 보면 개고생이란 단어의 즉각적인 불쾌감은 이 메시지가 주는 불쾌감에 비하면 오히려 적은 편이다. 물론 어쩌면 이 광고는 논란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논란의 끝에 남는 것은 논란의 이유보다는 논란의 강도만큼 높아진 브랜드 인지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황당한 일이지만 어쩌면 이 글조차 이 광고의 한 부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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