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상업적인 선택 다른 선택은 할 수 없나

드라마 시대는 가고 예능 시대가 오나. 한 때 드라마는 방송사의 얼굴이었다. 어떤 드라마가 방영되고 얼마만큼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느냐는 그 자체로 방송사에 수익을 올려주면서 동시에 방송사의 이미지를 제고시켜주었다. 하지만 경제상황 악화로 광고시장이 위축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으로 드라마는 상업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떨어져 가는 수익성은 방송사에 이득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드라마는 더 이상 수익도 이미지도 올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가 빠진 자리에 채워질 것이 예능 프로그램이란다. MBC는 주말 특별 기획 드라마를 폐지하는 대신 그 자리에 ‘명랑히어로’를 전진 배치하고, ‘무한도전’은 5분을 더 연장시킨다고 한다. 금요드라마가 사라진 SBS는 대신 그 자리에 오락 프로그램을 편성할 예정이다. 드라마 시대는 가고 예능 시대가 도래하는 느낌이다. 이렇게 예능이 대안이 된 것은 상대적으로 제작비를 줄일 수 있고, 안 돼도 기본 시청률은 하는 그 속성 때문이다. 하지만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 대안이 굳이 예능이었어야 하며, 또 예능 역시 지금 드라마와 같은 경쟁으로 천정부지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방송사가 외치는 건, 결국 돈돈돈일 뿐이다
드라마가 지나치게 많고 경쟁 또한 지나쳤던 것은 사실이다.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말  속에 비아냥의 뉘앙스가 숨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제 사라질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늘 있어왔던 드라마 시간대 이외에 추가로 배치되었던 드라마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BS 금요드라마는 그간 없었던 금요일 시간대의 드라마였고, MBC의 주말 특별 기획 드라마도 예능의 자리를 차고앉았던 것이었으며, 또 상업성을 노리고 KBS2에 신설되었던 일일드라마도 과거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이 드라마들의 폐지는 드라마 세상에 낀 거품을 제거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수익성 약화와 함께 방송사가 일제히 들고 나온 건 결국 상업성이다. 드라마가 상업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이니 수지가 맞는 예능으로 눈을 돌린 것뿐이라는 것이다. 평균 잡아 회당 6천만 원, 적게는 3천만 원 정도만을 갖고도 최소 10%에서 20%까지의 시청률을 올릴 수 있으니 예능은 여러모로 드라마보다는 확실히 되는 장사다. 드라마에 낀 거품이 가져온 수익성의 약화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방송국의 상업성을 정당화해주지는 못한다. 그 빈자리에 참신한 교양이나 다큐 같은 것을 배치하는 것은 이제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일인가.

덩치 커지는 예능,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덩치가 커져 가는 예능의 버라이어티화는 드라마의 부실만큼 큰 뇌관을 안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SBS의 ‘일요일이 좋다’는 회당 제작비로 1억3천만원이 투여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 역시 회당 제작비가 1억2천3백만원. ‘해피선데이’가 방송3사 주말 예능 중 가장 적은 제작비를 기록했으나 그것도 미술비와 협찬을 제외한 비용으로 9천2백만원을 기록했다.

물론 모든 예능들이 이처럼 많은 제작비를 투여하는 것은 아니다. ‘무한도전’은 상대적으로 적은 6천5백만원, ‘스친소’는 6천3백만원, ‘개그야’5천8백만원, ‘스타킹’5천7백50만원, ‘야심만만-예능선수촌’5천6백80만원이 회당 제작비로 들어간다. 하지만 점차 버라이어티쇼에 입맛을 들이게 만드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상업적인 선택을 좋다고만 볼 수 있나
제작비를 좌우하는 연예인의 출연료와 야외촬영은 바로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를 좌우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즉 누가 출연해 어딜 가느냐가 관건이 된 예능 시장은 점차 이 부분에 대한 제작비 투여를 어떤 식으로든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캐릭터 중심에 이야기가 매회 구성되는 버라이어티쇼는 점차 드라마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것은 어쩌면 또 다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항간에는 벌써부터 웰 메이드 드라마보다는 광고주 입맛에 맞는 드라마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무리 잘 만든 프리미엄 드라마보다 욕은 먹어도 시청률은 나오는 투자대비 효율이 높은 그런 드라마들이 판을 칠 거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상한 그림이 그려진다. 앞으로 TV에서 좋은 드라마는 점점 사라지고, 반면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는 더 많아지며, 그 중간을 상업적으로 무장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장악한다? 상상만 해도 TV가 풍길 돈 냄새가 물씬 퍼지는 느낌이다.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해 방송사가 어떤 식으로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TV가 온통 상업적인 색채를 띄게 되는 것 역시 좋다고 볼 수 있을까. 프로그램 몇 개 없애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드라마보다 상대적으로 수지가 맞는 예능을 채운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까. 진짜 문제는 드라마든 예능이든 그 자체가 갖고 있는 거품들, 예를 들면 과도한 출연료나 작품보다는 외형에 치중하다 결국에는 실패하게 되는 그런 왜곡된 시장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아닐까. 이 위기의 상황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사극, 왜 경합에 빠질까

‘바람의 화원’에는 그림 경합이 매번 등장한다. 신윤복(문근영)이 화원 승급을 두고 ‘단오풍정’을 그릴 때도 경합이 등장하고, 청국에 보낼 그림을 두고 ‘군선도’를 그릴 때도 김홍도(박신양)와 장벽수(김응수)의 경합코드가 등장한다. 또 동제각화의 명을 받고 김홍도와 신윤복이 주막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며 이것은 어진화사 경합을 통해서도 이어진다.

어진화사 경합의 풍경을 보면 하나의 스포츠가 연상된다. 화제를 내린 왕이 있고, 그 시험을 진행하는 예조판서가 있으며, 감독관으로 홍국영이 있다. 그리고 선수들로 김홍도-신윤복팀과 이명기(임호)-장효원(박진우)팀이 있다. 예조판서가 등장해 “이번 경합은-”하고 말하는 장면은 마치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스포츠의 그것과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대회의 관객들은 경합장은 물론이고, 김조년(류승용)을 위시한 장사치들의 도박내기가 있으며, 소박하지만 서민들의 내기판이 있다. 물론 경기 결과에 따라 입지가 달라지는 선수(?) 주변 사람들까지 거기에는 존재한다.

이 완벽한 스포츠의 구성요소들은 이미 예전 ‘대장금’에서도 등장했었다. 장금(이영애)과 금영(홍리나)이 선수로 등장하는 이 요리 스포츠에는 스승들(한상궁과 최상궁)이 존재하고, 그 판관으로서 중종(임호)의 말 한 마디가 경기를 결정한다. 이것은 ‘이산’으로 이어지면서 이병훈 PD 사극의 색깔을 구축한다. ‘이산’에서는 특이하게도 그 선수가 정조 이산(이서진)이었을 뿐, 거기에는 판관으로서의 영조(이순재)가 있었고 상대편 선수로 노론 벽파세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닮아가는 사극과 스포츠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스포츠가 말 그대로 ‘각본 없는 드라마’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반면, 사극은 대체로 결과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바람의 화원’에서도 늘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실어주는 인물은 바로 정조(배수빈)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뛰어난 예술가였던 정조가 그림을 놓고 하는 감동(평가)은 마치 촌철살인의 해설자가 풀어낸 경기 해설을 듣는 것만큼 묘미가 있다. 이 해설자이자 판관이 어느 한 팀을 전적으로 밀어주는 형국이 대체로 사극이 가진 스포츠와 다른 점이다.

‘바람의 화원’에서 정조는 김홍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대장금’에서 중종은 결국에는 장금의 손을 들어주며, ‘이산’에서 영조는 정조를 알게 모르게 밀어준다. 주인공은 늘 이 경쟁상황 속에 들어가서 어려움에 직면하지만 결국에는 이기게 된다. 이렇게 뻔한 결론을 대중들을 다 알면서 왜 이 경합에 빠져들까. 이것은 아마도 이 살벌한 경쟁사회 속에서 대중들이 갖게되는 환타지를 자극하기 때문이 아닐까.

점점 어려워지기만 하는 경제 상황, 그 속에서 더욱 더 경쟁 속에 뛰어들어야 하는 대중들에게 환타지 속에서나마 이 안전한(?) 게임에 빠져들고픈 욕구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사극이 점점 스포츠를 닮아 가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이 살벌한 경쟁사회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스포츠와 다른 점, 즉 예측되는 경합 결과에 대한 기대는 역시 그 경쟁하는 사회를 그대로 드라마 속에서조차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는 반영일 것이다.

사랑한다, 나를, 나만 혹은 나도

결혼하면 사랑은 어떻게 변할까. 혹은 결혼은 사랑을 구속할 뿐인가.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이 도발적인 제목의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결혼과 사랑의 이중주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말은 ‘결혼한 아내가 또 결혼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이 된다. 그런데 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네 관습적, 윤리적, 법적 기준에 의한 것이다. 이것을 넘어선다면 그것은 문장으로서 말이 된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바로 그 관습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판단하는 그것을 눈앞에 보여주면서 이것도 말이 된다고 주장하는 영화다.

아내 주인아(손예진)는 그 이름에서부터 역전되어 있는 남녀간의 관계를 보여준다. 남편 노덕훈(김주혁)은 그녀를 “주인아씨”라고 부르게 된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주인아는 자유를 구가하는 여인인 반면, 노덕훈은 그 자유로운 여인에 전전긍긍하는 전형적인 소심남이다. 노덕훈은 그녀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유하길 바라지만, 무심코 뱉은 “내 거”라는 말에 그녀는 “나 자길 사랑하지만 자기 건 아냐”하고 되받는다. “나를 사랑한다”고 여기게 된 여인을 “나만을 사랑하게” 하고픈 욕구 때문에 노덕훈은 그녀에게 결혼을 하자고 조른다. 하지만 결혼으로 ‘내 거’ 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그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순간부터 그는 그녀가 ‘나도’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나를’에서 ‘나만’으로 그리고 ‘나도’로 바뀌는 이 3단계의 사랑을 영화는 축구경기를 빗대서 보여준다.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사랑하던 ‘나를’의 단계에서 보여지는 축구경기는 각자의 공간에서 보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로셀로나 FC의 경기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밤새 본 이 경기를 공동화제로 서로에게 다가간다. ‘나를’에서 ‘나만’으로 가는 두 번째 단계, 즉 결혼을 하게 되는 그 지점에 등장하는 건 2002 월드컵 스페인전이다. 홍명보가 골을 넣는 그 집단적인 황홀감에 젖어 있는 순간, 주인아는 노덕훈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만’에서 ‘나도’로 가는 세 번째 단계에서 보여주는 경기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유럽에서 아내와 두 남편과 그리고 딸 이렇게 넷이 함께 보는 축구경기다.

영화가 굳이 축구를 빗대 우리네 결혼의 속살을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단지 축구경기가 남녀 간의 사랑 행위를 상징적으로 닮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네 정서 속에 담겨 있는 결혼이라는 틀 이면의 얼굴이 담겨져 있다. 즉 2002 월드컵의 집단적인 분위기에서 주인아가 허락하는 결혼은, 결혼이라는 것이 단지 사랑의 종착지가 아니라 그렇게 사회의 집단적인 분위기에서 강요되는 어떤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특히 아내가 결혼한 후, 두 집 살림을 하는 주인아가 아이를 갖게되자 “우리 아이야?”하고 묻는 대목에서는 우리네 핏줄 의식에 대한 집착이 들어 있다. 주인아는 ‘우리’아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저 노덕훈이 말하는 ‘우리’와 의미가 다르다. 첫 남편과 둘째 남편 그리고 아기까지 아우르는 ‘우리’를 뜻하는 것이다.

“한국 축구의 문제점이 뭐냐”고 묻는 대목에서 그것은 “골 결정력 부족”이 아니라 “즐기지 못하는 것”이라는 대사는 사랑 그 자체보다 오히려 어떤 목표로써 자리하고 있는 결혼이라는 강박을 에둘러 말해준다. 주인아가 축구에 빗대 말하는 이 투톱 시스템(?)에 “현재 스코어는 불륜이야”하고 소리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렇지만 가끔은 이 여자를 이해하고 싶어진다”고 말하는 노덕훈은 어쩌면 이 농담 같고 게임 같은 상황 속에서 결혼이라는 구속의 틀을 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말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이기도할 것이다.

고정이냐 게스트냐, 예능 멤버를 바라보는 두 시선

김종국은 결국 ‘패밀리가 떴다’의 손님으로 남게 됐다. 장혁재 PD는 현재의 멤버들 간의 팀웍이 좋고 다양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팀 구성이라며 김종국의 패밀리 영입설을 일축했다. 지난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한 김종국을 두고 벌어진 고정이냐 게스트냐는 양 갈래의 시선 중 ‘패밀리가 떴다’는 결국 전자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물론 김종국 스스로도 먼저 “당장은 가수활동에 더 충실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니 김종국의 ‘패밀리가 떴다’ 출연은 애초부터 게스트에 더 힘이 실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종국을 두고 벌어진 이 고정과 게스트에 대한 반응은 예능 멤버를 바라보는 두 시선을 드러내준다.

재미와 식상, 강화된 캐릭터, 팀웍의 이중성
집단 MC체제의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대부분 고정 MC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면서 얻은 것은 강화된 캐릭터다. 물론 매번 다른 상황에서의 반응이 주를 이루는 프로그램 성격상 캐릭터는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즉 과거의 1인, 2인 MC에 매번 바뀌는 게스트들을 가진 쇼에서는 매번 다른 얼굴들이 새로운 재미를 주었지만, 이제는 같은 얼굴들이 매번 다른 상황에서 즉각적인 반응으로 재미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그것은 고정 MC들의 캐릭터가 굳어지고 팀의 결속이 강화되는 과정에서는 최고의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것이 완성된 후 반복되는 과정에서는 동시에 식상함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쇼에서는 늘 새로운 멤버를 염두에 두게 된다.

‘무한도전’은 새로운 멤버에 대해 극도로 폐쇄적이었다. 하하가 군입대로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없게 되자, 새로운 멤버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5인 체제로 한 동안 프로그램이 강행되었다. 때때로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로 게스트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역시 공백은 분명했다. 이러한 공백은 객원의 위치로 멤버에 안착한 전진에 의해 채워지게 되었다. 초기 새로운 멤버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보면 ‘무한도전’에 어떤 생기를 부여한 전진의 투여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고정이냐, 게스트냐 이것이 문제로다
한편 ‘1박2일’은 초창기 프로그램이 정착하기 이전에는 멤버들이 유동적이었다(이것은 초기 ‘무한도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상렬, 김종민 등이 활약했지만 현재의 멤버들로 차츰 바뀌면서 지금은 어떤 프로그램보다 고정 멤버들 간의 결속이 강화되었다. 새로운 멤버에 대한 여지를 찾기가 어려운 현재 ‘1박2일’은 그만큼 고정 멤버들 속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혹은 변신)하는 것이 절실해진 시점이다. MC몽이 몽장금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허당 이승기가 울컥하는 모습을 자주 드러내는 건 이런 노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종국이 새로 투여된 ‘패밀리가 떴다’에서 김종국을 고정으로 해야한다, 아니다를 두고 벌어졌던 논란에는 시청자들의 멤버 영입에 대한 이중적 시각을 알 수 있다. ‘패밀리가 떴다’는 사실 리얼 버라이어티의 후발주자로 들어오면서 이러한 고정 캐릭터가 갖는 딜레마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장치로서 게스트를 적극 활용한 프로그램이다. 매번 새로운 게스트를 초대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은 쉬 식상해질 수 있는 캐릭터를 보완해주는 힘이 있다.

게스트 시스템을 계속 활용하고 있던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독 김종국에 대한 고정 찬반 논란이 일어났던 것은 그가 예능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전적이 있는 데다가, 이 프로그램에서의 캐릭터들에게도 점점 이미지가 고정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아무리 게스트 시스템 같은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패밀리가 떴다’ 역시 팀웍이 강화되면서 캐릭터가 굳어지고 그 이미지 소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방신기와 김종국이 연거푸 출연하면서 ‘패밀리가 떴다’는 신선함을 계속 유지하려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김종국에 대한 게스트냐 고정이냐를 두고 벌어진 논란은, 기존 ‘패밀리가 떴다’의 멤버들에 대한 애착과 동시에, 식상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에 새로운 얼굴을 기대하는 욕구 또한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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