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소재 '여인의 향기'의 깊은 여운, 그 이유

'여인의 향기'(사진출처:SBS)

'여인의 향기'에서 암 선고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연재(김선아)는 아직 죽지 않았다. 물론 언젠간 죽을 것이다. 그것은 빨리 올 수도 있고 아주 천천히 올 수도 있다. 누구나 다 그런 것처럼. 하지만 연재의 삶은 달랐다. 암 선고를 받은 후 시한부로 삶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녀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새삼 주변 사람들을 다시 돌아본다.

그러자 거기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자신의 삶이 달리 보인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득바득 버티는 삶을 살았던가. 그 흔한 여행 한 번 못가보고 좋은 옷 한 벌 사 입어보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하고 쥐꼬리만 한 월급에 목매며 살아온 자신이 한스럽다. 죽음 앞에서 발견한 자신의 삶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절망감 앞에서 우연히 만난 탱고의 선율은 그녀를 다시 춤추게 만든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마음이 전하는 대로 탱고를 추며 한 발 한 발 움직이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라는 것을 예감한다. 자신이 자신의 운명을 알고 스스로의 삶에 애착을 갖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연재는 자신의 삶이 바뀌는 것을 보게 된다.

'여인의 향기'에는 너무나 많은 고전들의 향기가 버무려져 있는 게 사실이다. 거기에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도 있고, 진부한 시한부 인생이라는 소재가 덧붙여져 있다. 영화 '여인의 향기'나 '버킷리스트'는 이 드라마의 영감 그 자체이며, 탱고라는 춤이 가진 경쾌함과 비의까지 모두 그대로 이어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가져왔어도 이 작품이 깊은 여운을 남긴 것은 그 진지함 덕분이다.

신데렐라가 있지만 신데렐라를 뒤집고, 시한부 인생이 있지만 그래서 바뀌는 삶을 그린다. 영화 '여인의 향기'나 '버킷리스트'는 우리네 상황에 맞는 정서로 바뀌었고, 탱고는 '자신이 아닌 또 다른 나'를 만나는 마법처럼 그려진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의 차원을 넘어서 마치 삶의 통로가 막혀버린 한 청춘이 죽음을 마주하고 변해가는 성장담처럼 읽힌다.

그리고 그 성장담은 연재의 성장에서 점점 주변사람들로 확산되어 간다. 연재의 삶에 의해 삶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지욱(이동욱)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타인의 삶을 바라보지 못했던 은석은 연재를 통해 그것을 경험한다. 연재의 어머니인 김순정(김혜옥)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찾게 되고, 심지어 재벌가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난 세경(서효림)마저 자신의 결핍을 찾아낸다. 그 결핍의 발견은 변화의 시작이다.

어쩌면 뻔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여인의 향기'는 그 진지함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잠시 그들의 시점으로 돌려놓았다. 연재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저 지나치기 안타까울 정도로 아름다웠고, 지욱의 시선은 틀 바깥에 놓여진 또 다른 세상을 보게 해주었다. 죽음을 앞에 세워두자 비로소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발견하게 했고, 그것은 어쩌면 이 태생이 정해진 대로 굴러가는 세상을 변하게 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바라보게 했다. 물론 하나의 드라마이고 판타지일 뿐이겠지만, 바로 그런 시선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삶 또한 하나의 드라마이고 판타지가 아니겠는가. '여인의 향기'는 바로 그 삶의 향기를 다시 느끼게 해주는 드라마다.


속사포 '슈스케3'냐, 편안한 '위탄2'냐

'위대한 탄생2'(사진출처:MBC)

'슈퍼스타K3(이하 슈스케3)'. 이건 거의 미친 속도감이다. 한 참가자가 반 소절도 부르기 전에 화면은 다른 참가자로 넘어가고 또 짧은 한 소절을 부르는 참가자의 모습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간간히 따라붙는 인터뷰도 절대 늘어지는 법이 없다. 물론 긴장감을 만들기 위해 뜸을 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화면이 고정되거나 반복되는 법은 별로 없다. 대신 '슈스케3'는 역순으로 편집된 영상을 보여주거나 차라리 다른 참가자의 오디션 영상을 끼워 넣는다. 이건 거의 편집이 롤러코스터 수준이다.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은 심지어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과도하게 빠르게 진행되는 영상 속에 엄청나게 많은 참가자들의 면면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거기서 심사평과 당락 결정까지 순식간에 이뤄진다. 잘 따라잡기 힘든 이야기를 자막으로 읽어내려면 굉장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어찌 보면 피곤해 보이지만 막상 이 롤러코스터에 적응하면 또 거기에 걸맞는 속도감이 쾌감으로 제공된다.

비교점이 있다는 것은 프로그램의 특징을 더 잘 보이게 만든다. 미친 속도감을 느끼게 하는 '슈스케3'를 더 특징적으로 보게 만드는 건 이제 막 시작한 '위대한 탄생2(이하 위탄2)'다. 이미 먼저 출발선을 지나 이제 본격적인 속도를 내고 있는 '슈스케3'에 적응한 시청자라면 '위탄2'는 조금 심심하게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첫 방송인데다 새 멘토의 소개에 프로그램의 초반 20여분을 할애했다. '슈스케3'에 비하면 느긋한 행보다.

영국에서 치러진 1차 예선이 스케치 되었지만 그 오디션 장면은 모두 편집되었다. 대신 여기서 뽑힌 참가자들의 2차 예선 장면이 방영되었다. 영상은 많은 인원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몇몇 주목되는 참가자의 면면에 집중했다. 영국인으로써 2NE1의 노래를 거의 완벽하게 부른 티타, 허스키 보이스가 매력적인 샘 같은 참가자들에 대한 멘토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서울 2차 예선으로 넘어와 이효리의 '치티치티뱅뱅'을 새롭게 해석한 김태극, 절대음감으로 극찬받은 신예림, 가수가 되기 위해 80킬로그램을 감량했다는 고필준 같은 인물들을 포착했다.

'위탄2'의 영상들은 '슈스케3'에 비해 훨씬 집중된 느낌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편집이지만, 어딘지 빈약한 느낌 역시 지울 수 없다. 이것은 어쩌면 196만여 명이 참가한 '슈스케3'가 가진 압도적인 자원(?) 덕분인 지도 모른다. '슈스케3'는 너무 많은 경쟁자들이 들어와 있어 그들을 어느 정도 잡아내려면 그만한 미친 속도감이 필요했을 것이다. 속도감이 피로하기는 하지만 경쟁자들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도 '슈스케3'만의 장점이다.

반면 '위탄2'는 짧게라도 들어오는 참가자들의 영상이 별로 없고, 편집되지 않고 살아남은 경쟁자들은 확실히 카메라가 잡아주기 때문에 집중도가 높고 피로감도 덜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쟁의 느낌이 별로 없어 밋밋한 인상을 지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슈스케3'와 '위탄2'의 속도감의 차이는 그것이 케이블과 지상파를 가르는 특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악마의 편집'으로 불리는 '슈스케3'의 현란한 편집은 케이블에 걸맞게 마니아적이고, '위탄2'의 편안하다 못해 밋밋한 느낌은 보편성을 추구하는 지상파에 걸 맞는다.

어찌 보면 이 케이블과 지상파가 맞닥뜨리게 된 두 오디션 프로그램의 대결은 바로 이 속도감의 대결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두 프로그램이 내세우고 있는 관전 포인트는 약간 차이가 있다. '슈스케3'는 바로 그 야생적인 생존경쟁의 모습을 가감 없이 포착하는 묘미가 있고, '위탄2'는 멘토링이라는 성장과정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이 바탕에 깔린 편집이라는 요소는 시청자들을 부지불식간에 적응시키는 요소로 어쩌면 내용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어느 속도에 적응하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른 속도가 너무 어지럽거나 너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을 테니까. 속사포 '슈스케3'와 편안한 '위탄2'. 당신은 어느 속도에 적응하고 있는가.


멜로 그 이상 세상의 아픔을 담아낸 '통증'

'통증'

세상이 앓는 통증을 당신은 느끼고 있는가. '통증'은 멜로드라마 구조를 갖고 있지만 그저 멜로로만은 볼 수 없는 영화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이 갖고 있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 사회적으로 함의하는 바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이 남자를 세상은 두드려 패고, 그 맞는 대가로 이 남자는 돈을 받아 생계를 이어간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설정인가. 통증을 느끼지 못해 맞으면서도, 심지어 죽어가면서도 "나 하나도 안 안파"라고 말하는 남순(권상우)의 몸에 난 멍 자국을 보면서 눈물 흘리게 만드는 영화, '통증'은 지독하게도 사회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자, 동현(정려원)은 바로 이 남순이라는 아픈 세상을 겪고 있는 인물을 바라본다. 정작 자신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녀의 눈에 비친 남순은 너무나 아프다. 이것은 그녀의 캐릭터가 작은 상처조차 치명적인 결과에 이를 수 있는 혈우병 환자라는 사실에서 더욱 그렇다. 그녀는 통증에 그만큼 민감하다. 타인의 상처마저 내 상처로 고스란히 느낄 정도로.

이 통증을 두고 상반된 캐릭터의 만남은 절절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동현이 그렇게 한없이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남순은 처음으로 통증을 느낀다. 자신의 통증은 못 느끼던 그가, 그녀가 우는 모습에는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린다. 이 화학작용을 통해 인물을 바라보는 시점이 생겨난다. 우리는 남순의 시점으로 동현을 바라보고, 동현의 시점으로 남순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그 두 사람이 겪고 있는 깊은 상처와 그 상처를 서로 핥아주는 간절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남순의 정돈되지 않은 집은 상처의 원형이다. 그 속에서 상처를 지워내지 않고 과거에 묶여 살아가는 남순의 집에 들어와 그 집을 치우고 닦고 하는 건 '통증'이 전하는 사랑의 해석이다. 누군가의 공간 속에 들어가 그것이 아픈 것이라 해도 보듬어주고 안아주는 것. 남순과 동현의 입맞춤은 그래서 이 공간을 상처만 남은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가족을 꿈꾸게 하는 미래의 공간으로 바꾼다. 물론 냉혹한 바깥 세계는 이들을 가만 놔두지 않지만.

흥미로운 건 이 멜로 구도 안에서 영화가 자꾸만 그 구도 바깥을 생각하고 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즉 통증이 있다면 그 통증을 만들어낸 주체가 있게 마련이다. 남순을 피 흘리게 만드는 것은 저 자본주의의 탐욕스런 욕망이다. 재개발 현장을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폭력과 사건들은 우리가 현실에서 뉴스 속의 원경으로 봐왔던 실제 사건들을 근경으로 당겨놓는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의 통증으로 여겨졌지만, 가까이 다가가 남순이라는 캐릭터를 그 안에 두고 바라보니 그 통증이 내 것처럼 절절해진다.

우리는 흔히 '불감증에 걸린 사회'를 말한다. 아픔과 상처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기에 쉽게 그 상처를 바라보지 못하고 남의 것처럼 고개 돌려버리는 사회를 얘기한다. '통증'은 바로 그런 우리들 앞에 그 아픔을 던져놓고 직시하라고 하는 영화다. 그래서 남순처럼 아픔을 느끼지 못했던 우리가 누군가의 눈물을 보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게 되는 그런 영화이고, 맞으며 희생하는 대가로 이제 맞는 것조차 아프지 않다고 말하며 살아가는 세상의 약자들을 동현의 시선으로 끌어안게 되는 영화다. 돌아누운 남순의 허리에 남겨진 멍자국에 눈물이 난 것은 그의 몸으로 환기되는 세상의 잔혹함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보스', 속이라도 시원하게 풀어보자

'보스를 지켜라'(사진출처:SBS)

이것은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C그룹 회장 아들 지헌(지성)이 취업을 못해 전전긍긍하다 간신히 비서로 들어온 노은설(최강희)을 졸졸 쫓아다니는 일. 그러면서 "난 네가 좋다"는 간지러운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짓. 그런데 노은설을 좋아하는 건 지헌만이 아니다. 지헌의 사촌인 C그룹 실세 본부장인 무원(김재중)도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노은설은 거꾸로 어느 쪽을 선택했을 때 다른 한쪽이 상처 입을 것을 걱정한다. 이 신데렐라가 거꾸로 왕자를 거느리는 이야기에 비하면 진짜 신데렐라 이야기는 판타지 축에도 못 끼는 셈이다.

결혼에 대한 양가의 반응 역시 보통의 드라마들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여준다. 즉 재벌가 자제와의 결혼이라면 응당 그쪽에서 집안이니 학력이니 등을 내세워 반대하기 일쑤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노은설의 아버지 노봉만(정규수)이 지헌의 아버지인 차회장(박영규)을 찾아와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노봉만은 자칭 무림고수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사회부적응자에 가깝다. 그런 그가 차회장에게 으름장을 놓는 장면은 어딘지 속 시원한 구석이 있다. 이른바 스펙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차회장이 처음 아들인 지헌과 노은설의 교제를 허락하지 않는 장면도 기존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와는 다르다. 차회장은 노은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그러니 좀 잘 나지 그랬어!"하고 말한다. 이 말 속에는 마음으로는 반대하지 않지만 기업 후계자의 배우자로서 맞닥뜨릴 수 있는 주주들의 반발에 안타까워하는 속내가 들어있다. 즉 교제 반대를 얘기하는 이 장면 속에서마저 은근한 스펙사회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는 셈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 늘 등장하기 마련인 경쟁자로서 서나윤(왕지혜)의 모습도 기존 드라마들과는 다르다. 그저 안하무인격의 재벌가 딸내미가 아니라 심지어 귀엽기까지 한 모습은 그녀가 과연 사랑의 라이벌이 맞나 싶을 정도다. 가출한 그녀가 노은설의 집에 얹혀사는 설정 역시 전혀 현실성은 없지만 보는 이들을 즐겁게 만든다.

이것은 기존 신분상승의 판타지를 그리던 신데렐라 이야기를 완벽하게 뒤집어놓은 것이다. 노은설이 말하는 것처럼, 이 땅에는 두 개의 세계(빈부로 나눠지는 계층)가 있는데 기존 드라마들이 재벌집 왕자님들에 의해 신데렐라가 구원(?)받는 판타지를 그렸다면, 이 드라마는 거꾸로 아무 것도 없지만 마음이 건강한 신데렐라에 의해 재벌가 사람들(왕자님은 물론이고 그 아버지,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이 구원받는 이야기다. 노은설이 그쪽 세계가 부담된다며 이곳에 남겠다고 하자, 지헌은 "내가 그쪽으로 갈께"하고 말하고, 무원은 "이쪽을 당신이 올 수 있게 바꿔놓겠다"고 말한다.

물론 어디 현실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현실은 노은설이 늘 떠들고 다니던 것처럼 '정직원, 파격승진, 월급인상'이 샐러리맨들의 로망일 것이다. 하지만 '보스를 지켜라'는 마음껏 상상해보기로 작정한 듯하다. 세상을 한껏 뒤집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돈과 권세로 위세 떨며 군림하던 이들을 '서민의 힘'으로 쥐락펴락하고픈 것이다. 스펙 사회로 태어날 때부터 낙인찍혀 살아가는 답답한 세상에 속이라도 시원하게 풀어보자는 것이다.

"아주 볼수록 물건이네 이거." 가끔씩 차회장은 노은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 표정에는 '정말 대견하다'는 애정이 듬뿍 들어있다. 차회장의 그런 모습은 이상적인 기업인의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대외적으로는 조폭회장으로 불리지만 속내는 한없이 정이 많고 특히 자식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보통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부정을 드러내는 인물. 그리고 무엇보다 스펙이 아니라 그저 사람 됨됨이를 통해 '물건'을 알아보는 인물. 그런 판타지는 현실이 되지 못하는 걸까. 이 드라마가 '볼수록 물건'처럼 보이는 이유는 적어도 이런 세상 사람들의 답답한 소회를 제대로 꿰뚫어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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