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3일', 'MBC스페셜'이 담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아주 행복합니다." 그 3일이 어쩌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행복하시냐고 묻는 PD의 질문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저 없이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5월 방영된 '다큐멘터리 3일 - 대통령의 귀향 봉하마을 3일간의 기록'에서 그는 여전히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약 1년이 지난 지금, 그 행복한 웃음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고 있다.

영상물이 역사가 되는 시대, 기록으로서의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가 평소 꿈꾸었던 평범한 촌부가 되어 살겠다던 한 대통령의 3일을 기록한 ‘다큐 3일’. 이 평범한 일상이 청와대에서 집무를 보던 시절보다 더 진짜 역사처럼 느껴지는 것은 늘 서민들의 눈높이에서 털털하게 웃고 있던 그 모습 때문일 것이다.

"손 흔들면 같이 손 흔들어주고 그러시더라구요." 마을로 가는 버스기사의 한 마디나, “산책하시다가 오셔서 장사 잘 돼요? 라고 불쑥 물어 깜짝 놀랐다”는 가게 아주머니, 동네 주민들과 형 동생 하며 지내는 그 모습은 ‘다큐 3일’이 잡아낸 그의 진정성이었다. 얼굴 한 번 보려고 손 한 번 잡으려고, 한 번 안아보려고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 앞에 왜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나와 인사를 하냐고 묻자, 그는 “손님이잖아요. 손님이 왔는데 안 내다 본다는 게... 백수잖아요. 그거라도 해야지”하고 말했다.

이 말은 ‘MBC스페셜’에서 2부작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말을 조명했던 ‘대한민국 대통령’편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서 그는 청와대 나가면 맨 먼저 하고 싶은 것이 여행이라며, “시장이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가고 싶다”고 했다. 사람이 많은 데 못가는 것이 못내 답답했던 것. “5년 내내 격리돼서 살았는데. 나가서도 여전히 격리될 것 같은 불안감 이런 게 있죠. 여러 사람이 구경하고 악수 청하고 그러면 그게 격리죠. 사람들 속의 격리.” 이렇게 말했던 그는 ‘다큐 3일’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MBC스페셜’과 ‘다큐 3일’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그 두 영상 속에 담겨진 이질적인 세계와 그 다른 세계 속에서도 늘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 때문이다. ‘MBC스페셜’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모습은 ‘다큐 3일’의 촌부의 모습과, 화려한 청와대는 작고 아담한 봉하마을과, 끝없이 관리되던 음식들은 김치 한 조각에 마시는 막걸리 한 잔과, 펑크가 나도 시속 백 킬로로 달린다던 전용차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자전거와 끝없이 대비되며 어떤 울림을 만든다.

대비되는 건 그런 외적인 배경뿐만이 아니다. 한 때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했으나 봉하마을로 내려와 동네 주민이 다 되어버린 비서관, 양복을 벗어던지고 구두대신 등산화를 챙겨 신은 게 오히려 편하다던 자칭 머슴 전직 청와대 행정관, 문구 하나를 고치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던 그 손에 이제는 삽을 들고 있는 전직 홍보 수석실 대변인. 그들은 두 다큐멘터리 속에서 전혀 다른 세계 속에 자신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일관된 그 모습들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민을 향한 마음이 정책으로서나 생활로서나 다 한 가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MBC스페셜’에서 대통령 집무실 한 벽을 장식하고 있는 희망돼지 저금통은 청와대와 봉하마을 만큼의 거리를 이어주는 힘이었다.

다큐로 남은 대통령. 그는 여전히 그 특유의 서민적인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좀체 세월이 가도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았다.

모성을 통해 가족애, 인간애를 담다

세상에 모성만큼 사랑을 그 자체로 표현해주는 것이 있을까. 올해 가족의 달을 맞아 다시 돌아온 '휴먼다큐 사랑'은 다섯 엄마의 다르지만 같은 모성을 통해 작게는 가족애를, 크게는 보편적인 인간의 사랑을 그려냈다. 이 다섯 엄마들의 사랑은 저마다 평범하지 않은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피어올랐고 그 사랑을 통해 희망을 얘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입양되었다가 버림받기를 거듭한 12살 소녀 지원이를 입양해 노력해가며 사랑을 만들어가는 네 번째 엄마 송옥숙씨.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저는데다, 아빠 없이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싱글맘, 게다가 위암 말기라는 극한 상황에 내몰리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풀빵엄마 최정미씨.

두 다리와 오른손 손가락이 없는 세진이의 엄마가 되어 로봇다리보다 더 튼튼한 다리가 되어준 양정숙씨. 뇌종양 시한부 선고를 받은 딸 앞에서 얼마 남아있을 지 모르는 날들 앞에서도 하루하루를 희망과 사랑으로 채워 넣었던 재희 엄마 정자경씨. 그리고 도저히 아기를 낳을 수 없다고 했지만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 윤선아씨. 이 다섯 엄마가 그 극한의 상황 속에서 보여준 모성애는 우리에게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주었다.

송옥숙씨의 사연을 통해서는 사랑은 서로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고, 풀빵엄마를 통해서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세워줄 수 있는 사랑의 위대함을 알려주었으며, 세진이 엄마를 통해서는 늘 든든한 다리가 되어주는 가족의 소중함을 보여주었다. 또 재희 엄마를 통해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었고, 엄마가 된 엄지공주를 통해서는 모성의 위대함을 목도할 수 있었다.

'휴먼다큐 사랑'이 이 다섯 모성을 절절히 담아내 그 진정성을 시청자들과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제작진과 다섯 가족들 간의 끈끈한 유대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풀빵엄마'와 '엄지공주'를 영상으로 담아낸 유해진 PD는 "제작이 끝나도 유대관계는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방인처럼 만나지만 어느새 가족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 '세진이'를 찍은 김진만 PD는 심지어 자신이 아빠라도 된 듯한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런 깊은 유대감은 영상으로 드러나기 마련. 우리가 '휴먼다큐 사랑'을 통해 받았던 감동은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제작진들이 현장에서 받은 그 감동이 그대로 영상에 담겨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것은 이 다큐의 내레이션이 가진 1인칭 화자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1인칭 화자를 쓰는 것은 그만큼 그 가족들의 내면과 깊게 접촉하지 못했다면 어설픈 일이 됐을 것이다. 그만큼 충분히 소통하고 충분히 교감을 하면서 '바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었기에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어쩌면 카메라가 조명하기 전까지 그들은 외롭게 혼자 세상과 싸워나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느 날 낯설게 다가와 차츰 익숙해지고 서로 동화되면서 때로는 형처럼, 때로는 아빠처럼, 때로는 언니처럼 그들을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게 만든 이 카메라가 어떤 모성애를 닮아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다섯 가족을 보듬어주고, 우리네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 '휴먼다큐 사랑'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엄마가 아닐까.

한지수의 무표정은 우리의 얼굴이다

'그저 바라보다가(그바보)'에서 톱스타인 한지수(김아중)의 표정은 늘 굳어있다. 미소를 지어도 연기하는 듯 하고, 대중들이나 기자들 앞에서 설 때면 그녀는 실제로 연기를 한다. 아무리 슬픈 일이나 힘겨운 일이 있어도 그 얼굴에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이 드러나는 그 순간, 그것은 자신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늘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그녀의 삶은 따라서 어느 정도는 늘 연기하는 삶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지수가 처한 불행의 실체이기도 하다. 스타라는 존재는 수많은 대중들에 의해 올려다 보여지지만, 바로 그 수많은 눈들에게 보여진다는 점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없게 만든다. 그녀는 그래서 자신이 스타가 되기 전의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봐주었던 김강모(주상욱)를 사랑한다. 그런데 연기하는 삶은 연기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인이나 기업가 역시 연기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버지에 의해 정치에 입문하는 김강모의 삶은 한지수의 삶과 다르지 않다.

연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두 사람의 사랑이 연기가 되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그들의 사랑이 뒤틀어지는 건 그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연기하는 자아가 스스로에게 만들어낸 가짜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 앞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순수한 바보 같은 남자, 구동백(황정민)이 등장한다. 그리고 구동백 앞에서 한지수는 그 굳어진 얼굴이 차츰 얼음 녹듯 풀어져가는 것을 느낀다.

바로 이 한지수의 '잃어버렸던 자기 표정 찾기'는 '그바보'가 말하려는 전부이기도 하다. 초반부 김아중의 연기력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한지수의 마네킹처럼 굳어있는 얼굴이, 이제 와서 조금씩 진정한 웃음과 눈물을 통해 표정을 찾아가는 과정은 따라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설정된 것들이다. 톱스타로서의 한지수가 가진 상품화된 얼굴이 구동백이라는 순수의 인물을 만나 차츰 인간으로서의 얼굴로 변화해가는 과정은 배우 김아중이 이 드라마를 통해 희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CF퀸으로서의 늘 똑같은 얼굴이 아니라, 연기자로서의 여러 솔직한 얼굴들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이 김아중의 바람이다.

그리고 이 바람은 이 드라마를 보는 우리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치고 어느 정도 연기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조직생활을 통해서 우리는 울고 싶을 때도 웃어야 하고, 웃고 싶어도 심각해야 하며, 때론 화가 나도 침묵해야 하는 그런 얼굴을 차츰 갖게 되었다. 언젠가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기 낯선 자신이 서 있는 그 느낌만큼 슬픈 일이 있을까. 순수했던 그 때의 얼굴을 찾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바보'는 웃음 없는 세상에 미소를 가르쳐주는 드라마다. 한지수의 잃어버린 얼굴이 표상하는 것은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어버린 우리들의 무표정한 얼굴이다. 거래의 세계 속에서, 그 연기해야 살아갈 수 있는 세계 속에서 우리들의 바보, 구동백은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실로 이 땅을 미소 짓게 하는 이들은 바보인 경우가 많다.

연기 변신에 성공한 배우들, 작품도 살린다

배우의 변신은 무죄? 아니 이제는 필수다. CF퀸의 이미지 속에 갇혀 지냈던 김남주에게 약간은 푼수에 무식을 양념으로 얹은 '내조의 여왕'의 천지애라는 캐릭터는 구원이었다. 아낌없이 무너지는 천지애를 통해 김남주는 이제 제2의 연기 인생에 접어들게 되었다. 순수의 아이콘으로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던 고현정은 수차례에 걸친 연기 변신을 통해서야 비로소 땅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영화로는 '해변의 여인'으로 드라마로는 '여우야 뭐하니'로 일상적인 맨 얼굴을 대중들 앞에 내밀었고, '히트'를 통해 가녀린 이미지에 강인함을 덧붙였으며,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이제 깨는 모습으로 개그맨을 웃기기까지 했다. 그녀가 '선덕여왕'의 악녀 미실을 연기한다는 사실은 그녀의 스타로부터 배우로의 연착륙이 이제 모두 안전하게 끝났다는 걸 말해준다.

'내조의 여왕'의 남자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변신에도 어떤 단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가 뭐래도 남자 배우들 중 가장 주목받은 캐릭터는 태봉(윤상현)이고 그 다음이 준혁(최철호)이며, 마지막이 달수(오지호)다. 윤상현은 '겨울새'로 먼저 얼굴을 알렸고, '크크섬의 비밀'에서 어떤 이미지를 형성했지만, 사실상 그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심어준 것은 '내조의 여왕'의 태봉이다. 하지만 윤상현의 인기는 태봉이라는 캐릭터가 부여하는 점이 많다. 따라서 이 갑작스레 부각된 스타는 이제 다음 작품부터 배우로서의 시험대에 올라갈 수밖에 없다. 비슷한 캐릭터를 선택하면 인기는 유지되겠지만 배우로서의 길은 더 멀어질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연기 변신만이 배우로서의 생명을 오래 보장받는 길이 된다.

한편 준혁 역할을 해낸 최철호는 이번 연기를 통해 변신에 성공함으로써 또 하나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야인시대', '장길산', '불멸의 이순신', 그리고 '대조영'까지 시대극에서 주로 얼굴을 들이밀었지만 그가 주목을 받은 것은 '천추태후'의 초반부에 잠깐 등장한 경종 역할이었다. 여기서 그는 광기어린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처럼 강렬한 인상은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준혁이라는 코믹한 역할은 최철호에게서 그간 없었던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어주었다. 이제는 광기어린 얼굴 뒤에 코믹한 이미지를 안전장치처럼 달고 있으니 이런 연기변신을 가능케 해준 '내조의 여왕'은 최철호에게 연기자로서의 날개를 달아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익숙한 캐릭터를 반복한 달수 역할의 오지호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것과 상반된 결과다. 연기 변신이 필요한 시기에 변신을 하지 못하면 그것은 연기자 개인에게도 부담이지만 그 드라마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남자이야기'의 박용하가 그렇고 '자명고'의 정려원이 그렇다. 박용하는 거친 남자로의 이미지 변신을 꿈꾸었지만 부드러운 남자로서의 이미지를 넘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사극이라는 옷이 부담스러운 정려원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물론 모든 연기자가 변신을 요구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시티홀'의 김선아와 차승원은 새로운 옷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의 연기를 통해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런 경우는 아직까지 그들이 가진 자신의 고정 이미지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변신이 어렵다면 이처럼 자신의 옷에 가장 잘 맞는 작품 선정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늘 같은 모습으로는 식상한 연기로 추락하게 된다. 박중훈이 똑같은 이미지를 고수해도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변주해온 것은 그 오랜 인기의 비결이기도 하다. 비슷해도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의 작은 변신은 늘 필요한 법이다.

타인의 삶을 연기하는 것이 직업인 이상, 늘 같은 모습만 보여준다면 어찌 그 직업을 배우라고 할 수 있을까. 배우의 변신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그리고 그 변신을 위한 각고의 노력은 결국 작품을 통해 드러나고, 대중들에 의해 보상받기 마련이다. 이른바 '되는 드라마'의 대부분에서 이 배우들의 연기변신을 목도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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