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이상 전문직 장르 드라마, ‘개늑시’

이제 막 새롭게 등장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오랜 전통과 노하우를 가진 미드 수준의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기대한 것은 그저 장르에 충실한 드라마였을 뿐이다. 그것은 적어도 소재가 획일화된 우리네 드라마 풍토에서 장르 드라마가 가진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얀거탑’,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가능성을 보인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그러나 ‘히트’와 ‘에어시티’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물론 형사라는 직업과 공항이라는 공간만 가지고도 이들 드라마는 가치가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장르에 충실하지 못한 단점이 있었다.

액션이든 미스테리든 휴먼드라마든 장르는 그것을 선택 혹은 표방하는 순간, 거기에 충실할 것이 요구된다. 연쇄살인범을 좇는 형사물에서 갑작스런 멜로가 섞이고, 공항이라는 긴박한 공간 속에서 국정원 요원이 뛰어다니는 상황에 멜로와 휴먼드라마가 틈입하는 건 용납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히트’와 ‘에어시티’가 훌륭한 캐릭터와 좋은 소재를 갖고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한 이유다.

이런 면에서 보면 MBC 수목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은 기대 이상의 전문직 장르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먼저 기본적으로 이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액션과 스릴러라는 장르가 갖춰야 하는 요건들을 제대로 구비하고 있다. 먼저 이수현(이준기)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상처와 그로 인한 갈증이 살해당한 부모에 대한 복수심으로부터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단순할 수 있는 이 설정은 그러나 이수현 눈앞에서 벌어진 어머니의 살해장면이 등장하면서 강력하게 자리를 잡는다.

이 복수심을 속에 품고 태국과 한국을 넘나드는 액션극이 장르적으로 성취를 이루고 있는 것은 적절한 타이밍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때문이다. 태국의 어린 시절에서 지우(남상미)와 추억을 만들 즈음, 갑자기 등장하는 어머니의 살해장면은 상황을 급박하게 만들어버린다. 한국에 들어와 강중호(이기영)에 의해 자라나 국정원 요원이 되는 것까지 아픔을 잊고 평탄한 삶을 살아갈 것 같은 장면들이 연출될 즈음, 갑자기 이수현은 어머니를 살해한 마오(최재성)를 보고 다시금 복수의 불길에 휩싸인다. 이후에도 이수현의 감정은 적절한 간격으로 완급조절되면서 시청자를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즐거움에 빠뜨린다.

이렇듯 이 드라마가 가진 강점은 액션, 서스펜스가 가진 장르적 호흡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중심이 되는 것은 마오라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적과 거기에 도달하기엔 아직도 약하기만 한 이수현의 성장이다. 이 대척 구도는 사실상 거리가 멀면 멀수록 시청자들에게 더 흥분되는 재미를 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이 드라마가 활용한 멜로는 기존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이 활용한 멜로의 방식보다 효과적이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이수현이 죽이려는 마오는 그가 사랑하는 지우의 아버지이기에, 그들의 멜로가 강해질수록 이수현은 더 깊은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기억에 대한 것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바로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이수현이 처한 정체성을 상징한다. 복수의 일념으로 마오의 심복을 하게 된 이수현이 기억상실로 그 복수심을 잊어버리는 상황은 이 드라마가 가진 최대의 극적 장치가 아닐 수 없다. 기억 하나를 중심으로 원수와 심복의 갈림길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이수현이 서 있는 지점에서 마오에 대한 복수를 하게되는 곳까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가 주는 재미의 핵심이다.

그렇게 장르에 충실하면서 얻어낸 재미는 이수현이 가진 기억이라는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의미까지 확보한다. 복수심이나 충성심 같은 감정이라는 것은 기억이 만들어내는 정체성에서 비롯된다는 것. 인간은 그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겪을 수 있을 만큼 이성적인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드라마는 얘기해준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무엇보다도 양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마오와 이수현을 연기하는 최재성과 이준기의 광적인 연기는 이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장르적인 충실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가정법의 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이웃사촌’이란 말이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리게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완벽한 이웃을 꿈꾸는 것은 어쩌면 퍽이나 쓸쓸한 일이 될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섬에서 외롭게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될 테니까. 그런 면에서 SBS 수목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도시 생활에 외롭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환타지다.

유사부부, 유사연인, 유사이웃
그들이 이웃사촌으로 지내고 있는 곳에는 교수지만 본색은 제비인 백수찬(김승우)이 살고 있고, 촌사람이라 살림해줄 처자 하나 얻지 못했지만 정작 살림은 제 차지인 양 이웃주부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양덕길(손현주)이 제비교수와 유사부부 관계를 형성한다.

이웃에 사는 정윤희(배두나)는 대기업 회장 아들 유준석(박시후)의 비서라지만 비서로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수시로 넘나들고, 그 누구도 못 들어오게 철통같은 방어 벽을 쳐놓은 유준석 실장은 이 대책 없는 비서의 침범에 유사연인 관계를 형성한다.

이웃들은 모두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웃사촌이란 말에 걸맞게 서로 유사가족 관계를 형성하고, 심지어 이방인으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강역개(김뢰하)마저 유사이웃 관계로 끌어들일 정도다.

현실에선 좀체 보기 힘든 흐뭇한 그들
재미있는 것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우리가 현실사회에서 직업이나 출신 등을 통해 선입견으로 판단했던 그런 유형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백수찬은 분명 유부녀를 꼬드기는 제비지만, 악랄하고 비열한 현실의 제비가 아니다. 오히려 오갈 데 없는 양덕길을 받아주고, 연애에 젬병인 이웃들을 돕는 착한(?) 제비이기도 하다.

정윤희는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자격미달의 비서이며, 유준석은 현실이라면 자질 운운하며 자격미달의 비서를 자를 것이 분명한 그런 실장이 아니다. 도회지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양덕길 역시 우리가 현실에서 생각하는 그런 촌사람이 아니며, 심지어 정윤희를 비서로 발탁한 회장조차 우리가 현실에서 생각하는 권위적인 모습의 회장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완벽한 이웃’들은 현실이라면 문을 꼭꼭 닫아걸고 무관심한 그런 이웃이 아니다. 그들은 전임강사가 된 백수찬이나 만년 과장으로 묵힐 줄 알았던 변희섭(이원재)이 부장이 됐을 때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는 이웃들이다.

즉 이 드라마에는 제비 같지 않은 제비, 촌사람 같지 않은 촌사람, 비서 같지 않은 비서, 실장 같지 않은 실장, 형사 같지 않은 형사, 회장 같지 않은 회장,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엮어내는 (현실의 각박한) 이웃 같지 않은 이웃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이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무차별로 엮어가는, 그다지 극적인 사건 전개도 두드러지지 않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흐뭇해지는 것은.

직설법이 아닌 가정법의 드라마
그것은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구사하는 화법이 직설법이 아닌 가정법에서 기인하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는 현실을 직접 묘사하기 보다 현실과 드라마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넓혀 시청자들을 꿈꾸게 한다. 비록 제비지만 저처럼 여자의 마음을 쏙쏙 알아채는 남자가 있다면, 촌사람이지만 저렇게 정이 가고 재주 많은 사람이 있다면,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비서 같진 않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진심으로 돌보는 비서가 있다면, 그리고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모여 가족 같은 이웃으로 살아가는 곳이 있다면.

이 드라마는 그런 곳에서 나도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가정법의 드라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가정법이란 사실 현실에선 가정일 뿐이지만, 마음 속에서는 늘 꿈꾸는 것이기에 가능한 거라는 걸. 늘 굳은 얼굴로 좀체 웃을 줄 모르는 현대인의 외양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준석이, 도무지 넘어올 수 없게 그어놓은 선을 대책 없이 넘어오는 정윤희의 엉뚱함에 ‘특이해’라고 읊조리며 미소지을 때 시청자도 같이 미소짓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니 살면서 알게 모르게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두터운 벽을 만들며 살게된 시청자분들이라면 마음이 흐뭇해지는 드라마다. 잠깐동안의 드라마 속에서라도 완벽한 이웃을 만나고 싶다면, 그렇다면 말이다.

‘라따뚜이’의 음식평론가와 ‘디워’의 평가

‘라따뚜이’를 보면서 ‘디워’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가(혹은 창작자)에 대해 비평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가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똑같이 출신(혹은 태생)의 문제가 등장하고 편견이 있으며 그 편견을 넘어서는 예술가가 있고, 무엇보다 혹독한 비평가가 등장한다.

‘라따뚜이’에서 절대미각으로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레미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방과는 상극 중에 상극인 생쥐다. 태생부터 요리사는 불가능하게 태어난 레미는 그러나 편견을 버린 견습생 랭귀니를 만나 함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 그들이 일하게 되는 곳은 한때 별 다섯 개 짜리 최고급 레스토랑이었으나 혹독한 비평가, 안톤 이고의 혹평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 구스토 레스토랑.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 레스토랑의 창시자인 구스토가 모토로 했던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요리철학이다. 그 말에 코웃음을 쳤던 음식비평가 안톤 이고는 ‘요리는 절대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고, 구스토가 죽고 레스토랑을 인계 받은 스키너 역시 그 편견을 갖고 있었다.

랭귀니 대신 레미가 만든 음식은 구스토식의 요리법이 아닌 전혀 다른 레미만의 방식이다. 요리사들은 모두들 그 방식이 먹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 그 독창적인 맛은 프랑스 전체를 뒤흔들고 결국 음식비평가마저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디즈니 스타일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울림은 성인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만큼 깊고 크다.

최근 인터넷은 연일 ‘디워’에 대한 기사와 그 기사에 대한 댓글들로 뜨겁다. 처음에는 ‘디워’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더니 그 논의들은 점점 커져서 심형래 감독에 대한 편견으로 넓어지고 그것은 충무로와 기자, 평론가들이 합세해 ‘심형래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음모론으로까지 발전했다. 이제 ‘디워’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저만치 소외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억울한 심형래 감독만큼,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매도되는 억울한 기자들도 있을 법하다.

이것은 ‘디워’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기존 영화인으로 대변되는 충무로 그리고 그들과 한 통속으로 취급되는 기자들이나 평론가들과, 심형래로 대변되는 비주류 그리고 충무로 영화들에 신물이 난 관객들의 공방이 되고 있다. 그 공방은 마치 저 ‘라따뚜이’의 구스토와 안톤 이고의 논쟁이 된 ‘요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처럼 들린다. 영화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훈련받은 자들만 할 수 있는가. 또 만들어진 영화는 영화적인 문법 속에서 평가받아야 되는가, 아니면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재미있으면 되는 것인가.

‘디워’에 대한 기사들의 내용을 보면, 물론 몇몇 선정적인 표현들로 심하게 작품 자체를 몰아붙인 것들도 있었지만, 여타의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비판할 것은 하고 칭찬할 것은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영화인들이 만든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영화인인 기자나 비평가들의 비판이 ‘저들만의 리그’로 여겨졌다면, 심형래 감독이라는 충무로 밖의 인물과 그 작품에 쏟아지는 비판은 관객들이 ‘자신들의 리그’에 투하된 충무로라는 기득권의 융단폭격으로 비쳤을 수 있다. ‘디워’는 작품 자체에 대한 논의를 떠나서 대중들이 평단을 보는 시각이 어떠한가를 보여준 작품이 되었다.

세상은 권력의 평준화를 향해 굴러간다. 한때 전문가 집단이 휘두르는 칼날에 대중들이 좌지우지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누구든 평이라는 칼을 들 수 있는 시대다. 즉 이제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요리가 맛이 있든 없든 그것은 전적으로 맛보는 자의 몫이다. 따라서 비평의 패러다임도 달라지고 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누군가를 가르치듯이 하는 비평은 더 이상 대중들의 마음에 다가가지 않는다. 대중들의 옆에 서서 충실한 가이드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비평이 해야할 일이 되었다.

‘라따뚜이’의 혹독했던 음식비평가 안톤 이고가 라따뚜이란 음식을 먹고 쓴 참회 섞인 비평의 글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레스토랑을 평점 할 때 누구나 그렇게 하듯이 혹평을 하는 게 쉬웠고 그것은 또한 잘 먹혔다’로 시작하는 참회의 글은 그만큼 장점을 찾아낸다는 것이 단점을 찾는 것보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끄집어내 작품을, 작품 그 이상으로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냈던 문학비평가 고 김 현 선생의 비평이 떠오르는 시점이다. 비평가는 더 이상 점수를 매기는 평가자가 아니다. 아니 평가자가 돼서는 안 된다.

윤은혜의 남장여자 연기 살린 ‘커프’의 공유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만나기 전까지 공유가 거쳐온 역들은 그가 가진 개성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물론 특별 출연한 것이지만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감사용(이범수)과 나란히 달리기 경주를 하는 박철순(공유) 역에서도 그의 개성은 숨겨져 있었다.

최근에 했던 드라마, ‘어느 멋진 날’에서의 서건 역은 지나친 무게의 옷을 입혀 공유의 연기 운신을 너무 어렵게 만들었다. 공유 특유의 투정이나 어리광을 부리고 장난기가 가득한 소년 같은 이미지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결을 만나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 드라마는 무엇보다 그 중심에 윤은혜가 해야하는 고은찬이란 남장여자 연기가 서게 된다. 그것이 어색하게 틀어지게 되면 드라마는 긴장감을 잃고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더 어려운 것은 그녀가 남장여자란 사실을 시청자는 물론 극중 배역들까지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해 한결 만은 끝끝내 몰라야 한다는 점이다.

윤은혜라는 연기자가 이 남장여자의 연기를 자기 속에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잘 버무려 연기해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이것은 어찌 보면 시청자와 드라마 사이의 어떤 약속과도 같다. 그녀는 여자인데 남자행세를 하게 되는 것이고 그걸 한결은 모른다는 암묵적 동의다.

이 부분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한결이란 캐릭터다. 한결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고은찬은 영원히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여자로서 함께 사랑에도 빠지게 될 수 있는 것. 고은찬이 남장여자가 되는 것은 사실 그녀가 남자처럼 행동하고 건들댈 때가 아니라, 공유가 그녀에게 다가가 ‘한번만 안아보자’고 말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연기자의 이미지가 너무 진지하다면 상황 자체가 너무 무거워지고, 그렇다고 너무 가벼웠다가는 캐릭터의 매력이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시청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즉 고은찬이 여자라는 사실을 오로지 그만 모르면서 가슴 설레고 힘겨워하는 연기를 한다는 것은 자칫 과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유는 자신이 가진 소년 같은 이미지를 제대로 활용한다. ‘이 감정 도대체 뭐야’ 하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거나, 감촉을 잊지 못해 난감해하는 그의 얼굴이 보일 때, 시청자들이 쿡쿡 웃으면서 청춘의 설렘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건 바로 그 소년의 이미지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웃음을 동반한 풋풋함에서부터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감정 속으로 빠져들면서 남자라도 상관없다는 투로 “끝까지 가보자”고 말하는 그에게서 어느 누가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극중 배역인 한결은 소년 같으면서도 상처를 갖고 있고, 능력도 있는데다가 때론 세심한 배려(특히 가족에 대한)도 보여주는 여성들의 환타지를 자극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공유가 이렇게 제 몸에 맞는 한결이란 옷을 입게 된 것이 우연이었을까. 이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연기자에게서 끌어낸 이미지의 결과 드라마의 캐릭터를 제대로 엮어낸 이윤정 PD의 연출력이다. 미니시리즈 첫 여성 연출자라는 꼬리표에서 드러나듯 그녀가 가진 여성적인 섬세함과 꼼꼼함이 만들어내는 드라마의 파괴력은 대단하다.

이것은 딱히 공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윤은혜는 ‘궁’이 성공했지만 늘 가수출신 연기자라는 연기논란을 일으켰고, 이선균은 ‘하얀거탑’에서 김명민이 연기한 장준혁이란 캐릭터 속에서 억울하게도 힘 한번 써보지 못하는 최도영이란 캐릭터의 연기를 해야했던 경험이 있다. 게다가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더 많은 채정안은 ‘해신’ 등에 등장했지만 그다지 주목받는 역할은 맡지 못했던 연기자다.

하지만 이들이 중심이 되어 엮어 가는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의 캐릭터들은 과거의 어떤 연기보다 이들의 몸에 딱 맞아 보인다. 본래 최한성(이선균)이 한유주(채정안)에게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되어 있던 대본을, 이선균이 피아노를 잘 못 친다고 하자 보다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차라리 전화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바꾼 에피소드는 이윤정 PD가 어떻게 연기자에게 맞는 캐릭터 옷을 입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게 이윤정 PD라는 연출자에 의해 조탁된 한결을 연기한 공유의 이미지는 과거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늘씬한 키에 조각 같은 몸매를 과시하듯 늘 초반부에 웃통을 벗어 젖히고 나오는 이미지로 굳어있던 공유는 이제 섬세한 결을 가진 소년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남자라고 해도 날 사랑해준다는 남자,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결이 선물한 공유의 이미지는 한동안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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