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블록버스터, ‘황후화’의 아쉬움

장예모라는 이름에서 아직까지도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귀주이야기’ 등을 떠올리는 분들이라면 그의 최신작 ‘황후화’는 좀 당혹스러운 영화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리라는 배우가 똑같이 등장하지만 그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먼저 제작비 450억 원이란 수치가 그렇다. 아무리 ‘영웅’, ‘연인’의 전작을 통해 이 거장의 행보가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는 해도, 이 정도까지 블록버스터의 면모를 과시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화려한 장식이 깃든 복식들과 궁궐의 모습에서부터 단박에 시선을 잡아끈 영상의 색채와 스케일은, 천 여명에 이르는 대대적인 엑스트라들이 동원되어 마치 사람의 물결이 넘실대는 듯한 전투신에 이르러 절정에 도달한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중국식 인해전술’이란 생각이 퍼뜩 드는 그 지점부터 장예모 같은 거장이 왜 이런 전술을 쓰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영화는 무언가를 알리는 다급한 ‘딱딱이(?)’ 소리와 함께 일어나 도열해 옷을 차려입는 수백 명의 궁녀들에서부터 시작한다. 화면의 색채는 붉은 빛이 감도는 노란 황금빛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 틈입하는 인서어트에서 일단의 군대가 말을 타고 달려가는 장면이 끼어든다. 그 화면의 색채는 푸른 빛이 돌면서 저 황금빛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다시 화면이 바뀌면 황금장식을 하는 황후(공리 분)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이 황금빛 장면은 다시 푸른 빛의 군대 장면과 교차된다. 이 집약된 장면들은 장차 황제(주윤발 분)의 군대와 황후의 군대 사이에서 벌어질 색채의 전쟁을 예감케 한다. 그리고 미로처럼 폐쇄된 궁궐을, 굳은 얼굴로 다급하게 걸어가는 황후의 장면이 이어지면서 캐릭터의 내적 갈등과 공간이 묘한 조화를 만들어낸다. 장예모가 아니면 쉽지 않았을 이 작다면 작은 가족의 치정사가 궁궐이라는 거대한 몸체와 합체되는 순간이다.

영화의 내용은 복잡해도 그것은 한 가족의 틀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 거대한 이야기의 메인 스토리를 엮어가는 인물이 황제, 황후, 세 왕자, 황실 주치의와 그 아내 이렇게 총 일곱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관계가 복잡해 보이는 건 세 왕자 중 첫째가 배가 다른 소생이며 이 왕자가 황후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야기는 황제와 황후 사이의 대립에서 비롯되어 불게되는 궁궐 내의 피 바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거대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들 몇몇 인물의 권력투쟁이 수천 명의 피를 부르는 구조에 있다. “그저 화려했던 과거 중국 봉건문화가 얼마나 허위적인지를 알리고 싶었다”는 장예모 감독의 말을 빌린다면 이 거대한 치정극이 보여주는 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만큼 강한 설득력을 얻는다. 이 영화는 수천 명의 군대가 궁이라는 밀폐된 공간 속에서(평원이나 성이 아니다) 황제와 황후의 명령 하나로 전쟁을 벌이는 영화다. 그만큼 비현실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스케일이 풍자와 비판의 선을 넘어선다. 사실 의도가 그 허위 고발에 있었다면 조금은 관객들이 그 거대한 장면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생각하게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현실을 꼬집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었어야 했다. 그렇지만 엄청난 스케일의 화려함 속에서 비판의 칼날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쿠데타군과 진압군이 궁 안에서 벌이는 전투신에 가서는 색채와 색채의 부딪침 같은 영상미학이 느껴질 정도이다. 아름다운 피 바람이 화면 가득 채워지는 순간, 영화는 블록버스터를 향해 달려간다. 중국 내에서 민감하기 이를 데 없는 권위적인 가장이 만들어내는 비극적인 가족 코드를 가지고 관객들을 끌어 모은 영화는 블록버스터의 거대함 속에 비판의식을 매몰시킨다. 그리고 놀랍게도 결국 황제의 권위에 의해 모든 것이 진압되는 상황을 연출하며, 영화를 통해 현실의 모반을 꿈꾸던 관객들에게 오히려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다.

영화가 갑자기 과잉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 애초의 목적이 흐려지는 이 마지막 순간에서이다. 그러자 인해전술의 목적은 메시지의 전달을 위한 것이 아닌 좀더 상업적인 목적에 가까워진다. 즉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 모으기 위한(극장에서 봐야 진짜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스케일) ‘헐리우드 블록버스트를 의식한 중국식 블록버스트’라는 마케팅적인 접근이 보이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집단 매스게임을 보는 듯한 스펙터클 속에서 2008 베이징올림픽 총감독직을 맡은 장예모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까.

그러나 역시 거장은 거장이다. 본인 스스로 “외국영화에 잠식되는 중국시장을 위해서라도 상업적인 목적으로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래서 거기에 딱 걸맞는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를 만들어냈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색채 미학, 영상 미학을 담아 넣는 건 거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단순한 치정극의 틀을 저 만다라의 무늬를 연상케 하는 테이블에 앉힘으로서 무한한 의미의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면모 역시 대단하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장예모의 스케일 작은 영화들이 보여준 커다란 영화(?)세계가 아쉬운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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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드라마는 리메이크 아니면 표절(?)

작년 완성도 높은 ‘웰 메이드 드라마’를 꼽으라면 누구나 ‘연애시대’를 얘기하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올 들어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하얀거탑’은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웰 메이드 드라마’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모두 그 원작을 일본에서 들여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연애시대’는 노자와 히사시의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하얀거탑’역시 야마자키 도 요코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일본에서 ‘하얀거탑(원제 白い巨塔)’은 이 소설로 1978년에 드라마화 되었고 2003년 다시 리메이크되었다. 게다가 다시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되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30여 년에 걸쳐 3번이나 드라마화된 셈이다. 원작의 힘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반증이며, 동시에 ‘좋은 원작은 시공을 뛰어넘어 사랑 받는다’는 보편적인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시장은 점점 글로벌화되고 리메이크는 하나의 세계적 조류가 된 상황에서 원작이 갖는 부가가치는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마 재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한류’는 어디에나 있었고 뭐든 한국인이 만들면 세계가 좋아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모든 걸 낙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드라마의 수출은 뚝 끊긴지 오래고 국내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성공을 일궈낸 영화들은 거의 모두 해외에서 고배를 마셨다. 여기에 최근 국내 드라마들의 경향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어둡게만 보인다.

작금의 사극 붐은 그 자체의 재미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지만, 또한 사극 이외의 현대물들이 전혀 새로운 재미를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반사이익도 크다. 퓨전사극이라는 새로운 재미가 시도되는 동안, 현대물들은 여전히 과거 멜로와 스타를 적절히 버무리는 ‘한류의 공식’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치열한 창작의 소산물이라기보다는 기획물에 가까웠다. 당연히 문화소비자들은 외면했다. 최근의 일본 원작들이 대거 국내에서 리메이크 붐을 타고 있는 것은 이제 적당한 기획물로는 어렵다는 자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리메이크는 물론 베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창작이다. 제대로 된 해석과 토착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리메이크는 성공할 수 없다. 일본 원작을 영화화했으나 실패한  ‘사랑따윈 필요없어’와 성공한 ‘미녀는 괴로워’는 그 적절한 사례가 될 것이다. 리메이크는 이제 세계적인 조류이다. 좋은 리메이크는 오히려 그 원작을 수입해온 나라로 역수출도 가능해진다. 다만 그것이 탐탁잖게 보이는 것은 어려운 원작 생산보다 성공이 쉬워 보이는 리메이크에 올인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로또식으로 너도나도 뛰어들어 만들어내는 리메이크는 자칫 문화계의 지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여기에 국내 순수 창작물로 만들어진 작품들에 대해 계속되는 표절 시비는 상황을 더 어둡게 보게 만든다. ‘외과의사 봉달희’의 ‘그레이 아나토미’에 대한 표절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달자의 봄’ 역시 일본 드라마 ‘아네고’에 대한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인물 설정은 물론이고 드라마 소재까지 따왔다는 것. 이 정도 되면 뭔가 새롭고 재밌는 드라마는 ‘리메이크 아니면 표절’이란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리메이크 붐과 일련의 표절시비는 드라마 제작자들이 앞선 문화소비자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문화소비자들은 인터넷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 이제 일본드라마, 미국시즌드라마를 이미 섭렵하고 있다. 그러니 과거처럼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은 통하지 않는다. 또한 이런 상황이니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에 익숙해진 그들이 어딘가 엉성해 보이는 우리네 드라마가 시시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리메이크된 작품을 놓고 원작과 비교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건 그만큼 외국드라마의 저변이 넓다는 말도 된다.

이제 ‘국경 없는 컨텐츠 제작’이 하나의 조류로 자리 잡아가는 시대다. 일련의 합작영화들이 나오는 상황에 합작 드라마 역시 하나의 가능성으로 자리한다. 하지만 여기서 명심해야할 것은 ‘국경이 없다’는 말이 단지 ‘자유로운 제작 풍토’같은 장밋빛 뉘앙스의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신 그것은 그만큼 ‘전장의 구분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 저기 얽히고 설키면서 앞으로는 더더욱 그 국경이 희미해질 상황이기에 원작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상품의 기반이 되어줄 소설이나 연극, 만화 같은 기초분야에 대한 발굴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작년 우리 원작의 가능성을 보여준 연극 ‘이(爾)’ 원작의 ‘왕의 남자’, 허영만 만화 원작 ‘타짜’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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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초부터 의학드라마의 새 장을 열고 있는 ‘하얀거탑’. 그 참신함의 진원지는 ‘멜로 없는 전문직 드라마’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멜로가 있는’ ‘외과의사 봉달희’에 대한 시선은 방영 전부터 곱지 못했다. 또다시 의사에는 관심 없고 사랑타령에만 관심있는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첫 선을 보인 ‘외과의사 봉달희’에서만큼은 그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많은 기사들은 두 의학드라마를 비교하면서, 그 초점을 ‘멜로의 존재여부’에 두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과거 소위 ‘전문직 드라마’라는 포장을 한 드라마들이 영 시원찮았다는 반증이지만, 그렇다고 과연 ‘멜로가 있고 없는’ 것으로 진짜 전문직 드라마와 그렇지 않은 걸 예단할 수 있을까. 무조건 멜로가 있다고 해서 ‘전문직 드라마’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전문직 드라마’라 칭할 수 있을까. 요는 그 멜로의 비중이 어떻게 되느냐의 문제이다. 전혀 초점이 다른 이 드라마들을 멜로를 기준으로 단순비교하는 것은 괜한 오해만 낳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려했던 ‘외과의사 봉달희’의 포장이 벗겨지자, ‘하얀거탑’이 과연 의학드라마였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직까지 한번도 제대로 된 ‘의학드라마’를 본 적이 없으니, 남녀구도 없이 욕망을 향해 무한질주하는 이 매력적인 ‘하얀거탑’에 우리는 너무 쉽게 ‘의학드라마’란 호칭을 주었던 건 아닐까. 이제사 생각해보면 ‘하얀거탑’은 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의사가 나오지만 ‘의학드라마’라는 호칭보다는 ‘정치드라마’가 더 적절한 것 같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얀거탑’에 ‘의학드라마’라는 호칭을 부여하면서 ‘외과의사 봉달희’가 상대적으로 폄하되고 있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의사가 등장하는 드라마로서 ‘하얀거탑’만큼 시청자들의 숨을 턱턱 막게 한 드라마는 별로 없다. 그만큼 리얼리티가 살아있고 구성과 연출도 탄탄하며 연기자들의 연기 또한 흠잡을 데 없는 드라마다. 하지만 그 본질을 ‘의학드라마’로 보기엔 모자란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병원 사람들의 이야기’다. 환자는 병에 고통받는 사람이고 의사는 그 사람을 치유하는 사람이며 이들이 함께 울고 웃는 곳이 병원이다. 즉 ‘의학드라마’라면 기본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이야기 속에 담겨 있어야 한다. 아무리 검증된 수술 장면이 리얼하고 의사들 사이의 힘 대결이 볼만해도 ‘하얀거탑’에는 바로 이 ‘사람 살리는 의사’이야기가 부족하다. 극중 캐릭터에서 최도영(이선균 분)이 그런 이야기를 분명 하는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드라마의 거의 90% 이상의 힘은 정치에 쏠려 있다. 장준혁(김명민 분)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생명을 구한다’는 의미보다는 ‘정치적인 입지’를 갖느냐 마느냐의 의미가 강하다. 마치 최도영이란 캐릭터는 ‘이 드라마가 의학드라마’라는 호칭을 붙이기 위한 마지막 양심처럼 보인다.

‘하얀거탑’엔 없고 ‘외과의사 봉달희’엔 있는 것은 바로 환자다. 병에 고통받는 환자의 이야기들이 그걸 고치려는 의사 이야기와 맞물렸을 때, 비로소 ‘의학드라마’라 칭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겨우 4회가 지난 ‘하얀거탑’과 첫 회를 끝낸 ‘외과의사 봉달희’를 두고 이처럼 단정하는 것은 무리한 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하얀거탑’에서 최도영이란 캐릭터가 ‘의학드라마’의 가능성으로 존재하기 때문이고, ‘외과의사 봉달희’에 형성되는 멜로 라인이 ‘무늬만 의학드라마’의 불안감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 두 드라마는 언제 어떻게 변신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이 전혀 다른 성질의 두 드라마에 대한 단순 비교들로 인해 정작 볼 것을 못 보는 상황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모처럼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는 두 드라마들이 제각기 가진 서로 다른 재미들을 편견 없이 만끽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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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드라마를 보면 연기자가 보인다

최근 홀연히 나타나 주말 드라마의 판도를 바꿔놓은 연기자가 있다. 바로 사극의 제왕, 유동근. 그는 갖은 비판과 혹 허우적대던 ‘연개소문’을 단박에 기대감으로 채웠다. 그의 출연과 함께 ‘연개소문’이란 사극은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심지어는 지금까지의 ‘연개소문’이 걸어온 길은 그저 사족에 지나지 않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렇게도 어려웠던 시청률 25%를 손쉽게 넘기면서 수위를 지켜오던 경쟁사극 ‘대조영’을 제쳐버렸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단지 유동근이라는 대배우만의 힘이었을까. 여기에는 물고 물리면서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하는 연기자들의 부침이 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불리한 시간대를 지킨 ‘대조영’의 연기자들
주말드라마 삼파전에서 가장 불리한 시간대를 갖고 있는 것이 ‘대조영’이다. 9시부터 시작하는 ‘연개소문’과 10시부터 시작하는 MBC 주말극 사이인 9시30분대에 끼어있어, 양 드라마의 공격을 받는 형국이 되기 때문. 만일 ‘연개소문’의 청년시절이 좀더 존재감 있게 흘러왔다면 ‘대조영’은 맥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시절의 ‘연개소문’은 존재감이 없었다. 그나마 그 드라마의 힘을 이어준 것은 김갑수라는 괴물 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특유의 광기 어린 연기로 수양제역을 소화함으로써 연개소문의 공백을 채워 넣었다.

‘연개소문’과 함께 한창 ‘환상의 커플’이 상종가를 치며 앞뒤로 압박해왔을 때 ‘대조영’을 지켜낸 인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조영’의 연개소문 역을 한 김진태였다. 호랑이 같은 눈빛을 부라리며 안면근육을 떨며 호통을 치는 모습에 빨려들지 않을 시청자가 없었다. 때론 자상한 아버지처럼, 때론 광기 어린 제왕처럼 변신의 변신을 보여주는 김진태 앞에 양만춘 역할의 임동진이 가세하자 그 힘은 하늘을 찔렀다. 심지어 연개소문이 죽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이 두 카리스마의 충돌이 빚어내는 숨막히는 연기대결이 펼쳐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드라마는 제목이 ‘연개소문’이나 ‘양만춘’이 아닌 ‘대조영’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인공 대조영이 차츰 앞으로 나오고 그들은 역사 속에 사라져야할 인물들이었다. 연개소문이 죽으면서 김진태가 사라진 자리를 양만춘 역의 임동진이 채워 넣었으나 그마저 사부구(정호근 분)가 제거해버리자 ‘대조영’의 드라마적인 힘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 빈 자리를 온전히 대조영 역할의 최수종이 채워놓기도 전에 유동근이 출연한 것이다.

진짜 ‘연개소문’을 만드는 연기자들
결과적으로 ‘대조영’에서 만들어놓은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기대감은 새로운 ‘연개소문’을 도와준 격이 되었다. ‘연개소문’이 새롭게 주말드라마의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유동근 이외에도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선 굵은 카리스마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개소문의 책사 역할로 돌아온 우리의 영원한 시라소니 조상구, ‘야인시대’의 나미코 역할은 물론이고 ‘대장금’에서 장금과 열띤 경쟁을 벌였던 이세은, ‘태조 왕건’에서 견훤 역할을 했던 서인석 등이 가세하자 유동근의 절대 카리스마와 조화를 이루면서 기대감을 만들었던 것. 여기에 ‘대조영’에서 익숙해진 ‘검모잠(안승훈 분)’같은 인물의 출연은 재미를 더해주었다.

따라서 이것은 지금까지의 ‘연개소문’과는 다른 카리스마 넘치는 드라마가 연출될 공산이 크다. 적어도 연기자들만큼은 확실한 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걱정되는 것은 마치 역사를 가르치는 듯한, 설명조의 지지부진한 전개로 비판을 받아온 이환경 작가가 얼마나 속도감 있게 이들 연기자들의 맥을 살리면서 긴박한 드라마를 엮어나갈 것인가이다. 아무리 훌륭한 연기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캐릭터의 설정이나 스토리 진행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지금 ‘연개소문’은 그 연기자만으로 충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얀거탑’의 노련한 연기자들
이 경쟁에 가세하는 것이 바로 ‘하얀거탑’의 노련한 연기자들이다. 상황으로 보면 ‘대조영’을 진퇴양난의 입장에 빠뜨린 것은 바로 이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존재감이 팍팍 느껴지는 외과과장 이주완 역할의 이정길.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상황에 따라 굴욕적인 면모 역시 거침없이 보여주는 호연에 힘입어 네티즌들에게 ‘인쇄정길’, ‘굴욕정길’로 불릴 정도다. 의국실로 프린트되는 외과과장후보 이력서를 가로채기 위해 달리는 모습과 노민국의 호텔방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으로 이런 호칭이 붙여졌다.

이정길과 손을 잡았다가 또 뒤통수를 때리는 부원장 우용길 역할의 김창완은 특유의 능구렁이 연기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의 연기는 뒤통수를 치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 그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그 놀라운 연기변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물론 주인공 장준혁 역할의 김명민은 특유의 야누스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악마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정이 느껴지는 쉽지 않은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저 영화 ‘괴물’에서 주목받은 변희봉(오경환 역), ‘영웅시대’에서 천태산의 차남 역할로 나왔던 정한용(민충식 역), ‘제5공화국’에서 허문도 역할로 열연했으며 각종 사극에서 감초 역할을 확실히 해준 이희도(유필상 역) 역시 이 드라마의 힘을 만들어주는 연기자들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이들 얼굴
요즘 주말드라마는 유독 클로즈샷이 많다. 그것도 극단적인 클로즈샷이다. 미세하게 떨리는 근육까지 보일 정도로 화면의 거의 2/3를 채우는 이들 연기자들의 얼굴. 이러한 장면들은 드라마의 성패에 얼마나 연기자들의 존재감이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드라마 속에 확실한 존재감을 주는 연기자가 있다면 그 드라마는 그 힘을 기반으로 어떻게든 흘러간다. 중요한 것은 이들 존재감을 주는 연기자가 주연이 아닐 경우, 이들 연기자들 사이에서 그 힘에 눌린다면 드라마의 중심 축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동근이라는 확실한 중심축이 선 ‘연개소문’은 일단 기선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얀거탑’ 역시 차츰 주인공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미 고정층을 확보한 ‘연개소문’의 아성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조영’. 사실 지금의 주말드라마 판도를 가장 도와준 격이 되었지만, 가장 곤란한 시간대에 자리잡아 양측에 공격을 받는데다 아직까지 대조영으로서의 최수종이 확실히 자리매김을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힘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분명한 것은 그 힘을 만들어 드라마를 성공으로 웃게도 하고 실패로 울게도 만드는 이들이 연기자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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