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스테이' 유머에 배려, 성실함까지..이래서 사랑받는 것

 

"당신이 <기생충>에 나온 배우라고요?" tvN 예능 <윤스테이>에서 숙소까지 안내를 해주는 최우식에게 외국인들은 그렇게 물었다. 이 장면은 한국에서 1년 미만을 거주한 외국인들을 손님으로 받아 1박2일 간의 한국문화 체험을 해주겠다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걸 맡은 이들이 윤여정, 정유미, 이서진, 박서준, 최우식 같은 이제는 월드클래스라고 불러도 될 만큼 내로라하는 배우들이라는 사실을 끄집어내 보여준다. 

 

물론 외국인의 놀라는 리액션을 통해 전해지는 진한 '국뽕'의 향기가 묻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윤스테이>는 어쨌든 그 콘셉트 자체가 '한국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체험해주겠다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그러니 한식이나 한옥 그리고 한국의 정이 느껴지는 문화들에 대해 외국인들이 보여주는 리액션은 가장 중요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외국인의 이런 반응들에 유독 민감해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윤스테이>가 한국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상찬만을 담고 있다 보기는 어렵다. 그것보다 <윤스테이>가 보여주고 있는 건, 타인에 대한 배려나,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잊지 않는 유머, 어떤 일을 대할 때의 성실함 같은 '세계 보편적인 가치들'이고 그런 가치들이 나라와 언어와 국적을 뛰어넘어서 소통되고 공감되는 순간이 주는 힐링이기 때문이다. 

 

<윤스테이>는 그래서 최우식을 본 외국인들이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것보다, 그가 그런 유명한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뛰어다니며 강도 높은 노동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아주 작고 사소한 것까지 배려하는 모습에 더 집중한다. <윤스테이>의 새 얼굴로 등장한 그는 정해진 보직(?)이 없어, 짐 나르기, 방 치우기, 그릇 치우기, 낙엽 쓸기, 재료 준비, 전날 재료 손질, 손님 픽업, 가방 들어주기, 다이닝룸 세팅은 물론이고 손님 응대까지 참 많은 일들을 하게 됐다. 

 

이서진이 "얘는 타고 났다"고 말할 정도로 그 많은 일들을 해내면서도 손님들을 응대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왜 월드클래스 배우로 서게 됐는가를 가늠하게 한다. 그것은 연기만 잘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런 유머와 배려와 소통의 자세 같은 것들이 있어 가능했을 것이라는 걸 '윤스테이' 영업 단 하루만으로도 보여주고 있어서다. 

 

<윤스테이>의 얼굴이자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윤여정도 마찬가지다. 이미 영화 <미나리>로 월드클래스 배우로 우뚝 선 인물이지만, 이 '윤스테이'에서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에서는 심지어 '사랑스럽다'고 얘기될 만큼 친근하고 유머 넘치는 그의 진가가 드러난다. 식사 주문에 추가 요금이 있냐고 걱정하는 손님에게 "돈 잃을 일 없으니 걱정 말라" 농담하고, 생소한 오징어 먹물로 만든 부각 요리에 손님이 "저희를 독살하려는 건 아니죠?"하고 농담하자 "오늘은 아니다. 하지만 체크아웃 후에는 장담할 수 없다"고 받아치는 재치라니. 영화 촬영장에서 이런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동료배우들이나 제작진들이 느낄 친근함과 따뜻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꺼번에 몰려오는 손님들의 저녁 식사(그것도 코스 요리를)를 멘붕이 올만한 상황이면서도 애써 침착하게 하나하나 해나가는 정유미나 박서준의 단단한 멘탈과 성실함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윤스테이>를 보며 느끼는 뿌듯함에는 한국문화 체험에 대해 외국인들이 보이는 호감 표현 자체의 '국뽕'만큼, 윤여정부터 최우식까지 '윤스테이' 식구들이 손님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 '대접의 마음'이 따뜻하고, 그런 따뜻한 마음은 국적이 달라도 전해진다는 걸 확인하는데서 오는 것이 크다. 

 

그리고 그것은 이른바 월드클래스 배우로 우뚝 선 이들이 그저 우연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연기라는 것 자체가 타인과의 호흡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기도 한 배우들에게 있어 기술이 아닌 태도나 성실함, 유머 같은 그 마음의 힘이 그 어떤 자질보다 중요하다는 것. 그러고 보면 <윤스테이>에 부제처럼 붙여진 '사장님 마음 담아'라는 문구가 그냥 달린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일에 있어서의 성취나 또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의 행복도 그걸 대하는 이의 마음이 그 무엇보다 중요할 테니.(사진:tvN)

'런 온', 부자와 가난한 자는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미안하게도 다소 뻔한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주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했다. JTBC 수목드라마 <런 온>에 그런 오해를 갖게 된 건, 이 드라마의 겉면이 멜로 장르의 틀을 보여주고 있고 그 멜로에는 사는 환경이(부유층과 서민으로 나뉘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남녀 인물들이 포진해 서 있어서였다. 

 

국회의원과 유명배우의 아들인 기선겸(임시완)은 호텔에서 살며 단거리 육상 국가대표로 뭐든 잘 할 것 같은 '엄친아'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오미주(신세경)는 영화 통번역을 하며 살아가면서도 자존감이 넘치는 캔디형 인물이다. 또한 서명그룹의 적통으로 스포츠 에이전시 대표인 서단아(최수영)와 미술대학생인 이영화(강태오)의 구도도 그렇다. 그 구도만 보면 이들이 엮어가는 이야기가 저 신데렐라 혹은 온달 스토리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런 온>이 그런 드라마가 아니라는 건 보면 볼수록 더 확실해진다. 그건 이 부자인데다 모든 걸 갖춘 인물과 그저 평범한 서민인 인물이 서로 만나 관계를 맺어가는 그 과정이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일방적으로 천거하는 그런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이 드라마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른 존재들이 동등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그 엇나감을 경험하면서도 조금씩 소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영화와 서단아가 그림을 두고 벌이는 대화는 이런 드라마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영화에게 그림을 의뢰했던 서단아는 아직 다 그려지지 않은 작품에 대해 "이거 내 그림이냐"며 "지금 당장 내 놔 내 그림"이라고 말한다. 기분이 상한 이영화가 그림이 무슨 "자판기 커피"냐고 되묻자 서단아는 오히려 "아닐 건 뭐냐"고 몰아세운다. 

 

서단아의 화법은 자신이 살아온 세계의 모습을 당연하게 담아낸다. 그는 모든 걸 거래로 생각한다. 심지어 그림에도. 그래서 그 그림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잘 보지 못한다. 그는 의뢰하면 뭐든 되는 삶을 살았으니까. 그래서 마감을 지키지 않는 이영화에게 그가 쓰고 있는 건 "내 시간"이라고까지 말한다. 결국 이영화는 참지 못하고 물감을 마구 문질러 그림을 망쳐놓는다. 그 행위는 그 그림을 서단아가 마치 자기 것인 양 생각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걸 보여준다. "무슨 짓이야 내 그림에."라고 말하는 서단아에게 "그리는 건 저예요"라고 이영화가 답하고 "그걸 내가 모르냐"는 서단아에 말에 이영화는 딱 잘라 "모르고 있다"고 답한다. 

 

"내거야. 내가 당신 줄 때까진 내 거라고." 이영화의 그 말은 화가로서의 자존심을 드러내면서 서단아와 그가 왜 서로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소통하지 못하는가를 잘 말해준다. 서단아는 늘 의뢰하고 명령하며 되는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되는 삶을 살아왔다. 심지어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그는 기선겸이 소속사에서 나가려 하자 빠르게 그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그는 가진 게 많아 보이지만 그런 삶 속에서 누군가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없게 된다. 그걸 깨고 들어온 이영화의 그 말 한 마디는 그래서 서단아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늘 말하기만 하면 되던 그 삶에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발견하면서 깨닫게 되는 소통 부재의 자신의 실체랄까.

 

이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기선겸과 오미주가 그간 소통 부재 상태에서 조금씩 소통 가능한 상태로 넘어오게 된 그 과정들이 새롭게 보인다. 오미주는 자신도 모르게 기선겸과 함께 서 있을 때 소외감 같은 걸 느끼고, 술에 취해 용기를 내 자신을 좋아해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그러는 자신이 너무 찌질하다고 느낀다. 기선겸의 선의와 진심과는 상관없이 그 스스로 느끼는 그런 감정은 늘 갑질을 당하면서도 애써 버티며 살아왔던 오미주의 삶에서 생겨나는 일들이다. 

 

그런 차이와 그래서 생겨나는 소통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선겸과 오미주는 노력한다. 영화라는 걸 잘 보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기선겸은 오미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가 얘기했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챙겨본다. 그리고 자신이 그 영화를 봤다고 오미주에게 말한다. 물론 재미는 없었다고.

 

그렇게 취향도 생각도 달라 그 영화가 재미없었다는 기선겸이지만 그는 그 영화가 "따뜻했다"며 그 이유가 바로 그 영화를 이야기해준 오미주씨 때문이라고 자신의 진심을 표현한다. 그는 주절주절 영화 속 이야기를 꺼내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만, 오미주는 그런 그에게 "왜 그렇게 두서가 없냐"고 되묻고는 그의 입에 입맞춤으로서 간단히 그 마음을 전한다. 어쩌면 말로는 잘 되지 않는 소통이 있고, 그래서 엇나가기 일쑤지만 좋아하는 감정에 서로가 노력해가면서 조금씩 소통에 도달해가는 과정.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하고 이 드라마는 묻고 있다. 

 

그래서 <런 온>은 그 흔한 신데렐라나 온달이 등장하는 그런 클리셰 설정의 멜로와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을 천거하는 과정이 아니라, 빈부에서도 차이가 나고 사는 방식도 다른 두 사람이 그저 그 차이 때문에 소통할 수 없던 걸 조금씩 넘어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 섣부른 오해를 거둬놓고 다시 보니, '런 온'의 그 좋은 대사도 멜로의 구도도 어쩌면 바로 이 주제의식을 위한 합당한 포석이었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다.(사진:JTBC)

'유퀴즈', 돈도 중요하지만 일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다면

 

"진짜 지쳤을 때 집에 와서 집어 들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좀 따뜻하고 내일 일어날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 소설가로 잘 알려진 정세랑 작가는 자신이 쓰고픈 책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유독 좋아했고, 또 글 쓰는 걸 좋아해 매일 샐러리맨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쓰고 일이 끝나고 나면 타인의 글을 잃거나 작품을 보며 논다는 정세랑 작가. 책 판매부수에 대해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그의 그 말 속에 담겨 있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것.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겨울방학 탐구생활'이라는 부제를 달고 어떤 분야를 탐구함으로써 그것을 직업이 된 이들을 담은 이야기는, 직업이 갖는 진정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실 우리에게 직업이라고 하면 먼저 '밥벌이'에 '생계'를 생각하고 그래서 현실적인 '돈'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 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소명의식 같은 것들은 그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후순위로 밀리거나, 당장의 선택기준이 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새로운 상상력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정세랑 작가는 '어떤 질문이든 답을 알려주는 사전이 있다면 묻고 싶은 질문'이 뭐냐는 물음에,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고 했다. 가장 시급하게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알면 다 같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정세랑 작가는 "지금까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지금 주의를 기울여야할 사회 문제나 약자의 목소리를 담는 일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걸 은연 중에 말하고 있었다.

 

<조선잡사>를 쓴 강문종 교수는 조선시대를 연구하다 가장 궁금했던 게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는가 였다고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직업을 탐구한 그는 <의궤>라는 책에만 160개에서 200개의 직업이 있다고 했고, 가장 큰 돈을 번 직업이 사쾌(부동산 중개업자), 수모(웨딩플래너) 같은 직업도 있었지만, 매품팔이(매를 대신 맞아주는) 대장자 같은 불법이지만 살기 위해 대신 맞는 일까지 했던 직업도 있었다고 했다. 

 

막힘없이 조선시대 직업에 대해 다양한 정보들을 풀어내주는 강문종 교수에게 조세호가 놀랍다고 말하자, 그는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며 '잘난 척 하는 것'이 그 동기라는 소탈한 이야기를 내놨다. 최근 개그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고 방송사에서도 개그맨 공채를 하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유재석이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건 아니냐고 묻자, 강교수는 즐거움을 주는 직업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며 직업에 대한 남다른 가치관을 들려줬다. 

 

그는 이 탐구를 통해 "아주 사소하지만, 아주 지저분하지만 본인의 생계를 위해 또는 본인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며 분뇨를 처리하던 '똥장군'을 연암 박지원이 <예덕선생전>에서 '선생'이라 표현했던 대목을 들려줬다. "좀 더러운 것 또는 뭐 중요하지 않게 생각되는 수많은 직업들이 끊임없이 유지가 되고 거기에 종사하면서 생활했던 사람들은 무슨 힘으로 살아갔을까"하는 스스로 드는 의문에 대해 그는 '자기만의 문법과 자기만의 가치를 만드는 것'이 그 힘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22개국의 참전용사를 찾아가 사진을 찍어 전달하고 그 기록을 남기는 일을 사비를 들여 하고 있는 사진작가 라미는 바로 그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직업인이었다. 2017년부터 개인작업으로 시작한 이 일로 그가 찍은 참전용사의 수만 1400명. "사진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무언가를 기록해서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라고 은사가 말해준 사진의 진정한 가치를 그는 빚을 내서도 하게 된 그 일을 통해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영국의 참전용사였던 크리스토퍼 콜드레이는 불편한 몸에도 군인으로서 서서 찍겠다 말하며 아내의 부축을 받고 사진을 찍었는데, 라미는 그 사진을 전달하러 갔을 때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결국 크리스토퍼 콜드레이는 라미가 말한 사진의 가치 그대로 '기록'을 통한 '기억'으로 남게 됐다. 직업이 단지 생계를 위한 돈의 차원을 넘어 소명의 가치를 갖는다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직업 선택에 있어서 현실적인 '밥벌이'는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요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요즘처럼 취업 자체가 힘겨워진 현실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에 돈만이 가치 기준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유퀴즈>는 에둘러 보여줬다. 최근 출연자 논란으로 질타를 받은 뒤 "제작진의 무지함으로 큰 실망을 안겼다"며 공식 사과문을 내놓은 <유퀴즈>가 프로그램 내용으로 그 사과의 진정성을 드러낸 셈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이야말로 코로나로 인해 '직업의 세계'를 주로 다뤄왔던 <유퀴즈>가 향후 계속 추구해야할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그저 연봉이나 수입 그리고 그 수치로 얘기되는 성공에 경도될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살아도 저마다의 소명의 가치를 드러내는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사진:tvN)

'우이혼'의 호불호는 엇나간 관점에서 생긴다

 

TV조선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는 첫 회를 시작하며 스튜디오에서 이를 관찰하는 MC들인 신동엽과 김원희의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을 먼저 보여준다. '할리우드'에서나 나올 법한 이혼이라는 소재를 우리도 하게 됐다는 사실에 적이 놀라는 신동엽의 반응은 이 프로그램이 가진 관찰의 시선을 어느 정도는 예감하게 만든다.

 

이혼이라는 소재를 과감히 끌어왔다는 사실은 <우리 이혼했어요>가 가진 파격을 드러내지만, 어쩐지 계속 들여다보며 시청자들은 이것이 이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혼 커플이 다시 만나 느끼는 감정(그것이 연애감정이든, 아니면 전 부부였던 관계가 남긴 감정이든)에 대한 이야기이고 나아가 '재결합'을 원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영하와 선우은숙은 어딘지 어색하고 냉랭한 관계가 여전하다. 그래서 함께 뱅쇼를 마시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이다가도 과거 남편이 내 편이 아닌 남의 편처럼 느껴졌던 일들을 꺼내놓으며 다시 관계는 원상태로 돌아간다. 이런 분위기를 풀어주는 건 손녀와 아들, 며느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다. 그런 자리에서 선우은숙은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를 잘했다며 이러한 소통과정을 통해 자신이 치유되는 느낌이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며느리가 시부모의 이혼에 대해 스스럼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모습이다. 며느리의 이런 모습은 이혼에 대해 그다지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영상 속 등장하는 며느리의 쿨한 태도를 스튜디오에서 관찰하는 신동엽이나 김원희는 보여주지 못한다. 이들의 관점은 여전히 이혼을 삶의 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어쩌다 저런 이유로 이혼까지 하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신동엽도 김원희도 그 보수적인 관점 속에서 이영하가 음식을 며느리와 선우은숙에게 나눠주는 장면을 그저 평범한 인간적인 매너로 보지 않는다. 그것이 애정이 담긴 사랑의 마음으로만 보려하고, 그래서 이영하와 선우은숙의 어색한 관계를 풀어주는 손녀의 등장을 '큐피드'에 비유한다. 자꾸만 그 손녀가 '뽀뽀해'를 요구하라 이야기하는 신동엽의 멘트는 그래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여전히 이혼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이들에게는 미소지으며 볼 수 있겠지만 이혼도 하나의 선택이라 보는 관점에서는 그런 관점이 불편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최고기와 유깻잎의 영상물 앞에서 신동엽과 김원희의 보수적인 관점은 더더욱 호불호를 극명하게 만들어낸다. 이들은 너무 일찍 결혼해 아이까지 가졌지만 양가의 갈등이 커지고, 유깻잎이 독박육아를 하며 힘겨워했던 시기에 최고기가 사실상 방임을 했다는 사실에 이혼을 하게 됐다. 아이를 홀로 키우며 전처이자 아이 엄마의 빈자리를 실감하는 최고기는 조금씩 '재결합'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지만 유깻잎은 여전히 최고기에 대한 신뢰가 없다. 그래서 철벽을 치고 선을 긋는다.

 

사실 최고기와 유깻잎의 이혼은 당사자들의 현실 때문에 그들 스스로 선택한 결과다. 그래서 아마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재결합'을 운운하는 일이 생겼을 리가 없을 게다. 당사자들의 문제도 문제지만, 너무나 완강한 가부장적 사고관을 가진 최고기의 아버지나 결코 그것이 바뀌지 않을 거라며 재결합을 반대하는 유깻잎의 어머니 같은 양가의 문제는 쉽게 넘을 수 있는 장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방송에 등장하면서 이들의 '재결합'을 바라는 관점들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물론 재결합을 하던 안하던 그건 제3자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만, 프로그램에서 신동엽과 김원희는 대놓고 이들의 재결합을 간절히 바라는 관점을 드러낸다. 그것은 전혀 이 프로그램이 애초에 기대하게 만들었던 이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아니다.

 

사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이영하, 선우은숙이나 최고기, 유깻잎이 이혼 후에도 다시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하는 모습들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이혼이 모든 관계의 끝을 얘기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혼하고도 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부모로서 보다 쿨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어야 바람직한 관계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이혼 후에도 만나서 서로 간의 애정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그런 과정들을, 스튜디오에서 '재결합' 운운하며 설레발을 치는 건 그들이 선택한 삶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 아닐까. 관찰카메라는 그걸 관찰하는 주체가 어떤 관점을 드러내느냐가 그 프로그램의 시각을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과연 이런 시각으로 봤을 때 신동엽과 김원희의 관점은 <우리 이혼했어요>가 애초 기획하려 했던 이혼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겠다는 취지에 부합한다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이혼했어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관점으로 이 프로그램이 이혼을 다루길 바란다. '하지만 재결합을 원해요'라는 엇나간 관점을 보태기보다는.(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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