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했던 '장르만 코미디', 위기 속 빛나는 가능성들

 

JTBC <장르만 코미디>가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지난주 '긴급진단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질문으로 <장르만 코미디>가 가진 시간은 '자아비판(?)'에 가까운 얘기들이 쏟아져 나온 바 있다. 시청률이 0%대까지 떨어지고, 웃기지 않다는 댓글들이 붙는 이 상황을 <장르만 코미디>는 아예 정면돌파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물론 개그맨들답게 무엇이 원인이고 누구의 책임인가를 가감 없이 쏟아내는 회의에서도 이들은 드립을 치며 빵빵 터트리는 웃음을 줬다. 자신들을 대놓고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몰아가기도 하고 덤터기 씌우기도 하면서 담긴 이야기들은 유머가 담긴 것이면서도 치열한 자기 반성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 회의 테이블의 한 가운데 앉아 있었던 안영미는 <장르만 코미디>를 살리기 위해 총대를 맨 것 같은 투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장르만 코미디>가 너무 순하다며 MBC <놀면 뭐하니?>의 린다 G(이효리)를 자신과 비교했다. "저쪽에 린다G가 있으면 여기는 진짜 G리는 사람이 있는데"라며 너무 심심하게 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세윤이 유튜브에서 하고 있는 콘텐츠가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결국 유세윤은 유세윤스러워야 재밌다는 결론에 공감한 이들은 각자의 주특기를 살리자는 제안을 내놨다. 그건 최근 들어 예능에서 점점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리얼리티를 위해 현명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똑같은 걸 하더라도 대본으로 짠 캐릭터를 연기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연기를 하더라도 진짜 현실 속으로 들어가 그걸 보는 진짜 리액션으로 웃음을 주는 시대가 아닌가.

 

이어진 이번 회에서도 '긴급진단'에 이은 이른바 '개벤져스' 회의가 이어졌다.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가 가장 재밌다는 김준호의 이야기대로, 회의는 그간 이 프로그램이 해왔던 그 어떤 콩트 코미디들보다 재미있었다. 개그맨으로서의 솔직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개그맨들 각각의 진짜 모습과 매력이 그 회의 과정을 통해 보여졌다.

 

그 회의 속에서 흥미로웠던 대목 역시 '찰리의 콘텐츠 거래소'에 대해서 장기영이 거래만 하고 실제 쓰지는 않았다는 걸 지적하자 유세윤이 '가짜'였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왜 방송을 가짜로 하나?"라는 질문에 김준호는 "내가 가짜사나이네"라는 유머로 받아쳤지만, 진짜를 해야 한다는 지적은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담겨 있었다.

 

회의에서 지적된 대로 진짜를 담아야 하고 어떤 걸 하고 있는지 보다 명확해야 하며 새로움을 위해 파격도 실험해야 한다는 것 등등이 모두 옳은 이야기들이었다. 중요한 건 이걸 현실로 옮길 수 있는가 하는 점. 흥미로운 건 <장르만 코미디>가 그 과정을 아예 콘텐츠로 담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19금 개그에 대해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질문하겠다며 나선 김준호, 안영미, 박영진이 JTBC 심의실을 찾아 심의위원들과 나누는 진짜 대화는 그들이 회의 때 이야기했던 바로 그 진짜 리액션과 리얼리티가 담겨 있었다. 재치 있고 과감한 멘트들이 주는 웃음과 카타르시스와 더불어 코미디에 대한 이들의 진지한 고민들이 대화 속에서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지금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리얼리티가 담보된 웃음이 아닐까.

 

사실 <장르만 코미디>에서 그간 해왔던 많은 코너들 중 가장 주목받았던 건 '장르만 연예인'이었다. KBS <개그콘서트> 폐지 이후 갈 곳을 잃은 개그맨들이 JTBC에 적응하는 과정을 때론 리얼리티로 때론 콩트적으로 오가며 소화해내는 이 코너는 그들의 진정성이 담겨 있다는 점 때문에 공감의 깊이가 달랐다. 최근에는 <가짜사나이>로 주목받은 이근 대위를 초빙해 지옥훈련을 하는 이른바 '가짜연예인'을 찍어 화제가 되었다.

 

김준호와 안영미 그리고 박영진이 JTBC 심의실을 찾아가는 이 과정 역시 그런 점에서 보면 '장르만 연예인'이 가진 그 진정성을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억지로 콩트를 짜서 웃음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욕망과 진심을 담아 어떤 현실 상황 속으로 들어가 거기서 웃음을 찾아내는 것. 어쩌면 지금의 대중들은 이런 걸 원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위기 속에서 진짜 가능성들이 찾아진다고 했던가. 실제로 이 진지한 고민을 담은 12화는 시청률이 1.4%(닐슨 코리아)로 지금까지의 방영분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사진:JTBC)

'놀면' 김종민과 정재형, 어째서 환불원정대에 맞춤일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 해주세요."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매니저로 뽑힌 김지섭(김종민)이 그렇게 묻자 이효리는 대놓고 "너 가!"라고 답한다. 소지섭을 기대했는데 김지섭이 나타난 불만을 터트리는 중이다. 그런데 이 다소 센 멘트에도 김지섭은 특유의 웃상으로 이게 무슨 뜻일까 못 알아듣는 얼굴이다. 그리고 그의 입에 아예 붙어버린 듯한 "예?"하는 되물음이 이어진다.

 

그 모습에 깔깔 웃으며 "못 알아 들었다"는 은비(제시)의 말에 천옥(이효리)은 의외로 "좋다"며 만족한다. "못 알아 들으니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는 것. 천옥과 김지섭의 조합은 그 첫 대면(?)만으로도 앞으로의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조금 반응이 느리고 '말 귀를 못 알아듣는' 그 캐릭터는 천옥을 위시한 환불원정대의 다소 센 언니들 매니저로는 너무 잘 맞기 때문이다. 뭐든 거침없이 센 이야기를 쏟아내도 마치 '토크 방탄복'이라도 입은 듯 웃음으로 받아내는 캐릭터. 이 만큼 환불원정대에 딱 어울리는 매니저가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김지섭이 주눅들거나 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는 건 천옥과 반말, 존댓말을 오가는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종민아" 그러면 "어" 그러고 "종민씨" 하면 "얘"라고 한다는 것. 오는 대로 맞춰 돌려주는 김지섭은 당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이 대목에서 보여준다. 천옥이 "동갑내기끼리 반말 쓰는 게 뭐가 어때서 그래?"하고 다소 따지듯이 말해도 김지섭은 웃으며 "맞아"하고 선선히 받아줌으로써 천옥을 오히려 웃게 만들었다.

 

이들의 부캐 놀이가 큰 웃음을 주는 건 아티스트와 매니저라는 낯선 관계로 만나고 있지만 이들은 본래 가까운 인연이 있는 사이기 때문이다. 김종민은 엄정화의 백댄서로 활동했던 시절의 추억이 있었고, 정재형은 이효리와 이상순을 만나게 해준 인물이면서 엄정화와는 절친이었다. 엄정화는 뭐든 챙겨줘야만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 바로 정재형이라고 했다. 하지만 엄정화와 정재형이 아닌 만옥과 정봉원으로 만난 두 사람은 이제 그 관계가 역전되었다. 그간 엄정화가 신경 썼던 것들을 이제 정재형이 해야만 하는 상황. 엄정화가 드러내는 '복수(?)'가 흥미로워지는 상황이다.

 

갑자기 매니저가 뭔지 아냐고 묻는 천옥의 압박질문에 김지섭이 "매니지먼트 회사 사원"이라 당황하며 말하고 하는 일이 "뒷일 봐주는 거"라는 엉뚱한 말에 한국말이 서툰 은비가 그걸 육체적인 의미로 오해하는 장면은 이들의 토크 방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지만 웃음만큼은 확실하게 만들어낸다는 걸 보여준다. 은비와 김지섭이 어딘가 '잘 못 알아듣는' 캐릭터로 닮아있어 의외로 두 사람이 잘 통한다는 점도 향후 이들의 관계가 어떤 웃음을 줄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운전을 못하는 매니저 정봉원은 그러나 천옥이 슬쩍 꺼내놓은 만옥에 대한 그의 진심에 눈물을 보이는 감성을 드러냈다. 만옥이 암 투병을 할 때 정봉원이 막 울었다는 이야기를 천옥이 꺼내놓자 갑자기 그 자리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울컥해진 만옥과 정봉원이 갑자기 흘리는 눈물은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아끼는 친구사이인가를 잘 드러내줬다. 그런데 그 상황이 도대체 뭔가 하며 어떤 리액션을 취해야 할지 알 수 없어하는 은비의 모습은 또 웃음을 줬다.

 

이제 김지섭과 정봉원의 매니저 부캐를 갖게 된 김종민과 정재형이 환불원정대에 맞춤인 건 이들이 본래부터 친분이 있어 편한 관계라는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캐릭터들이 시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센 캐릭터들 앞에서 엉뚱한 리액션으로 그걸 척척 받아내는 김종민과 의외로 감성적이고 그래서 오히려 환불원정대가 챙겨줘야 할 것만 같은 정재형은 그 캐릭터들이 환불원정대 프로젝트의 큰 웃음을 주면서 동시에 이들의 매력을 더욱 끄집어낼 수 있는 요소들을 갖고 있어서다. 아직 본격적인 음악활동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종민과 정재형의 합류는 벌써부터 이 환불원정대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사진:MBC)

'앨리스', SF판타지지만 익숙한 멜로와 가족이 있는 건

 

윤태이(김희선)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중국집 '수사반점'에 나란히 앉아 있는 윤태이와 박진겸(주원)을 태이 부(최정우)와 태이 모(오영실)는 마치 사윗감이라도 되는 양 이것저것 묻는다. 그 장면은 우리네 가족드라마에서 항상 등장하곤 하는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사귀는 건 아니지만, 어딘지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남녀를 우연찮게 부모님이 보게 되고 두 사람 사이를 연인 관계처럼 오인함으로써 실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그런 스토리.

 

SBS 금토드라마 <앨리스>는 미래인과 과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시간여행과 평행세계가 겹쳐진 다소 복잡하게 여겨질 수 있는 세계관을 담고 있다. 그래서 예언서를 두고 벌어지는 사건들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그 시간여행이라는 단서에 다가가는 윤태이와 박진겸을 중심으로 그들을 돕는 이들과 이를 막으려는 모종의 세력 간의 대결이 펼쳐진다.

 

종횡무진 과거의 여러 시간대를 오가는 전개 또한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20대부터 40대까지의 시간대를 마음껏 오가며 다른 모습을 연기해내는 김희선이 중심을 잡아주고 있지만, 아직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지 않은 데다, 미래에서 온 이들이 과거에 어떤 영향을 주어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라는 점은 드라마를 쉽지 않게 만든다.

 

무엇보다 박선영이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살해된 박진겸의 엄마가 미래에서 온 인물이고, 그 시간대에 20대의 윤태이가 공존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윤태이는 바로 드라마 시작에 등장했던 예언서 때문에 살해당한 장동식(장현성)의 딸이었다는 사실 또한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스토리의 뒤틀림을 만든다.

 

즉 장동식의 딸 윤태이가 아버지가 예언서 때문에 사망한 후 보육원에 보내졌다가 지금의 양부모들에 입양되어 자라났고, 괴짜 과학자가 됐다. 그리고 그는 성장해 '앨리스'라는 시간여행 시스템을 만들어낼 인물이다. 그런데 미래에 그 시스템을 만든 윤태이가 예언서를 찾기 위해 과거로 와서 장동식의 딸을 구한 것이다. 그러니 평행세계의 관점으로 보면 미래인 윤태이가 과거인 윤태이를 구한 셈이 되었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세계관이지만 <앨리스>는 영리하게도 시청자들이 익숙한 설정들을 드라마 속에 담아 놓았다. 그 첫 번째는 박선영과 박진겸 사이에 만들어놓은 모자 간의 끈끈한 애정이다. 엄마를 잃은 박진겸이 그 살인자를 찾기 위해 형사가 되는 과정이 이 익숙한 설정을 통해 설명된다.

 

게다가 SF 장르물에서는 좀체 잘 등장하지 않는 가족들을 주인공들 주변에 포진시켰다. 물론 친 부모들은 모두 죽었지만, 박진겸을 돌봐준 형사 고형석(김상호)과 김인숙(배혜선)이 그 부모 역할을 함으로써 가족 같은 관계를 구성하고, 윤태이 역시 죽은 아버지 대신 그를 입양한 부모들을 통해 가족 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여기서는 가족드라마적인 설정들이(부모가 딸 남자친구를 만난다거나 하는)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여기에 윤태이와 박진겸이 이제 미래인들의 위협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함께 동거를 해야 하는 상황 역시 등장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그 많은 멜로드라마 코드에서 봤던 설정이다. 흥미로운 건 그 함께 동거할 집으로 박진겸이 제시한 곳이 과거 박선영과 지냈던 집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미래인 윤태이(박선영)과 모자관계로 지냈던 그 집에서 이제는 과거인 윤태이와 연인관계로 지내게 된다.

 

어찌 보면 <앨리스>의 이야기 중 박진겸과 윤태이의 이 특별한 관계는, 익숙한 가족과 멜로 코드를 SF판타지와 연결시켜 탄생시킨 색다른 구도처럼 보인다. 복잡할 수 있는 세계관을 가져왔지만 익숙한 드라마 코드들을 활용하고, 그럼에도 식상한 전개가 아닌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내는 방식. <앨리스>의 영리한 선택이 가져온 시너지가 아닐까 싶다.(사진:SBS)

"내가 무조건 이기게 돼있어. 네가 나를 경찰에 넘겨도 내가 이기고, 네가 날 죽여도 내가 이겨. 넌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이야."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에서 백희성(김지훈)은 도현수(이준기)에게 그렇게 말한다. 백희성의 도발에 도현수는 이성을 잃어버린다. 도현수가 그토록 사랑하고 지켜내려 했던 아내 차지원(문채원)을 그가 죽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애초 경찰에 신고하려 했던 계획은 이성을 잃어버린 도현수가 백희성에게 살의를 드러내면서 어그러진다. 백희성의 말대로 도현수는 어떻게 해도 그를 이길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물론 백희성이 죽였다 생각한 차지원은 살아있고, 그를 대신해 칼을 맞은 도해수(장희진)는 사경을 헤매다 깨어났다. 하지만 도현수은 그토록 꾹꾹 눌러왔던 살의를 끄집어내게 되었다.

 

사실 <악의 꽃>이라는 스릴러에서 공포감을 주는 건 백희성 같은 연쇄살인범만이 아니다. 그가 그런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걸 인정하지 않고 애써 숨기려 살아왔던 부모 백만우(손종학)나 공미자(남기애)의 진실에 대한 외면이 무섭고, 제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이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꾸며진 함정 때문에 차지원마저 그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무섭다. 게다가 무엇보다 공포감을 주는 건 모두가 괴물이라 의심해왔지만 끝까지 버텨내던 도현수가 백희성이 끄집어낸 살의에 의해 진짜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그런데 이 모든 긴장감과 공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백희성이다. 드라마 초반에는 백만의 집 비밀 공간에 산소호흡기를 한 채 누워만 있던 그는, 그 호흡기를 그의 엄마 공미자가 떼어내는 순간부터 드라마에 스릴러의 기운을 풀어놓는다. 떼어낸 산소호흡기에 죽기보다는 거꾸로 깨어난 백희성은 '죽은 자'가 살아 움직이는 마치 '좀비' 같은 공포감을 만들어낸다.

 

가사도우미가 사실 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일을 그만둔다며 돈을 요구하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백희성이 슥 일어나는 장면은 소름끼치는 공포감을 안겨줬다. 결국 도망치는 가사도우미를 죽이고, 대신 도현수가 그를 죽인 것처럼 꾸미는 백희성의 행위들은 그것이 너무나 철저하게 짜인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결코 만만찮은 인물이라는 걸 드러내준다.

 

<악의 꽃>이 멜로와 스릴러가 오가는 장르적 퓨전을 성공적으로 시도하고 있고, 무엇보다 뒤로 갈수록 스릴러의 색깔을 짙게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백희성이다. 그는 대사에도 나오듯 도현수의 '그림자' 같은 역할을 해낸다. 도현수는 연쇄살인범인 아버지 도민석(최병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쳤고 그래서 백희성이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려 했지만 그 백희성이 또 다른 그의 그림자였다. 백희성은 도민석 때문에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며 도현수 역시 그렇게 하게 만들겠다고 말한다. 자신을 죽이라는 것. 백희성은 그렇게 도현수를 자신의 그림자 안에 가두고 자신처럼 만들려 한다.

 

백희성이라는 이 드라마 속 중대한 비중을 차지한 역할을 이토록 소름 돋게 연기해낸 배우 김지훈이 다시 보인다. 그간 우리에게는 MBC <왔다 장보리>로 '주말드라마의 황태자'로 불리던 김지훈은 <악의 꽃>을 통해 그간 저평가된 배우였다는 걸 증명해내고 있다. 늘 밝은 이미지로만 굳어져왔고 그렇게 소비되던 김지훈의 연기를 깨워낸 건 백희성이라는 희대의 악역이다. 그래서 아마도 김지훈의 이번 놀라운 연기를 염두에 두고 보면 <악의 꽃>이라는 작품의 제목이 다른 의미로 읽힌다. 악역으로 피워낸 연기의 꽃 같은.(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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