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반’, 보편적인 소통엔 실패했지만 색다른 시도

 

“반보기라는 말 알아요?” tvN 월화드라마 <반의반>에서 하원(정해인)은 한서우(채수빈)에게 전화해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서우는 “반만 본다는 건가..”하고 자신 없는 추측을 한다. 하원은 “결혼하는 여자가 친정엄마 보고 싶을 때 딱 반 되는 지점에서 잠깐 보는” 것을 반보기라고 한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잠깐 반보기를 하자는 하원의 제안에 중간 지점에서 만난 두 사람. 하원은 대뜸 손을 내민다. 서우가 그 손 위에 손을 포개자 하원이 말한다. “짧고 애틋하게.” 그렇게 잠깐 보더라도 그 마음의 애틋함은 그래서 더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장면은 안타깝지만 12회로 조기종영을 결정한 <반의반>이라는 드라마가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짧지만 그래서 더 애틋한 드라마. <반의반>은 2.4%(닐슨 코리아) 첫 회 시청률로 시작했다. 아무래도 정해인이라는 배우의 멜로드라마라는 기대감이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매회 시청률이 하락하면서 자칫 1%대 미만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제 아무리 시청률이라는 지표가 이제는 온전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말해주지 않는 시대에 들어왔다고 해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수치가 되었다.

 

어째서 <반의반>은 시청자들과의 보편적인 소통에 실패했을까. 그건 애초에 AI라는 소재와 짝사랑을 엮어 풀어내겠다는 그 시도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AI도 낯선 데다 직접 만나기보다는 한 걸음씩 떨어져서 사랑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너무 더디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AI와 짝사랑을 엮어놓은 그 시도 자체가 나쁘다 보긴 어렵다. 둘의 공통점은 이 드라마가 은연 중에 말하고 있는 “없는 데 있는 것”이라서 손에 잘 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을 쥐고 흔들기도 하는 그런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다.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가 되기 어렵다는 건 이미 사라져버린 이를 잊지 못하고 AI를 통해서나마 계속 대화를 이어가려는 하원의 0% 가능성 짝사랑과, 그런 하원을 옆에서 바라보며 빠져든 1% 가능성 짝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데서 나타난다. 이들은 골목길에서 카페에서 육교 위에서 녹음실에서 또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만나지만 그들 사이에 놓인 어떤 장벽들(그것은 과거가 되기도 하고 잊지 못한 짝사랑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떨어져서 바라보는 사랑을 한다.

 

조기종영이 결정된 후 드라마의 빨라진 속도감과 그래서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하원과 서우의 관계에도 이들의 사랑은 반보기를 하듯 여전히 조심스럽다. 떠나보낸 자들의 상실감을 치유해주는 디바이스로 손을 잡아주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솔루션을 개발하려는 하원이 서우에게 손을 인식하게 하고 직접 잡지 않고도 잡은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게 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사랑법을 잘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한 걸음 떨어져서 하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자식을 떠나보내던 날 늦게 도착해 잡지 못한 손 때문에 절망하는 김민정(이정은)은 자신의 예전 밝았던 목소리를 담은 AI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제는 그 밝은 소리를 낼 수 없는 자신을 되새기며 허공에 대고 이제는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아이의 손을 잡고 싶어 절망한다. 그 순간 옆에서 그 광경을 보던 하원이 그 손을 대신 잡아준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서 채워지지 않는 어떤 상실감은 없는 존재에 대한 집착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대신 그걸 공감하는 누군가의 또 다른 손길이 위로를 대신해줄 뿐.

 

늘 한 발 떨어져 있고, AI와 식물, 음악연주 등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심지어 손과 손 사이를 살짝 떨어뜨린 채 잡는 걸 대신하는 <반의반>의 낯선 사랑법은 시청자들과의 보편적인 소통에서 실패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마치 노르웨이로 떠나버린 아내에 절망하며 즉흥적으로 홀에서 쳤던 강인욱(김성규)의 피아노 연주처럼 낯선 미완의 곡이 되었다. 좀 더 선명하고 효과적인 전개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떤 이들에게는 그 작은 풍경 하나, 대사 몇 마디 같은 것들이 단 몇 초 동안이나마 위로를 줬을 거로 생각한다.

 

“없어졌어야할 곡이에요.” 강인욱은 그 곡에 대해 그렇게 말했고, “그런 게 어딨어요?”라고 서우는 말했다. 서우는 “누구한테는 정말 힘들 때 이게 도움이 됐을 수도 있고” 실제로 그 곡이 폭설 속에서 두려움에 떨던 지수(박주현)가 전화로나마 들으며 위로를 받았던 곡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비아냥대듯 “음악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의구심을 자아내는 인욱에게 “네 몇 초간 구원했어요”라고 분명히 말한다. 분명 이 드라마가 그럴 것이다. 몇 초 간이라도. 짧고 애틋하게.(사진:tvN)

‘아무도 모른다’, 선명해진 좋은 어른과 나쁜 어른의 대결구도

 

아무도 모를 것 같던 사건의 진상이 이제 거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차영진(김서형)이 형사의 길을 걷게 만들었던 성흔연쇄살인은 서상원(강신일)과 백상호(박훈)가 함께 저지른 사건이었다. 고은호(안지호)가 밀레니엄 호텔 옥상에서 추락한 일 역시 그 연쇄살인의 증거를 목격하고 백상호의 무리들로부터 도망치다 벌어진 일이었다.

 

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가 오리무중이었던 그 사건의 실타래들을 하나하나 묶어내 그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모든 진실의 실마리는 고은호라는 아이로부터 겨우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길에 쓰러진 장기호(권해효)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구해줬기 때문에, 그래서 장기호가 백상호 무리들의 치부가 담긴 성경책을 고은호에게 줬기 때문에, 그 책을 찾기 위해 백상호 무리들이 사건을 저지르게 되고 끝까지 도망치다 살기 위해 완강기에서 스스로 뛰어내린 고은호의 용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다시 의식을 되찾아 기억을 해낸 고은호 때문에 이 모든 사건의 실마리가 붙잡힐 수 있었다.

 

<아무도 모른다>는 어째서 성흔연쇄살인과 고은호의 추락사건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사건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려 했을까. 그것은 고은호라는 순수한 아이를 마치 리트머스 종이처럼 세워두고 그에 의해 밝혀지는 좋은 어른과 나쁜 어른의 실체를 이 스릴러 속에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고은호를 끝까지 지켜내려 한 차영진과, 처음에는 거리를 두려 했다가 점점 차영진과 함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선우(류덕환) 또 아이를 방치하듯 내버려뒀다가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변화하는 정소연(장영남) 같은 인물들은 착한 어른들이었다. 하지만 고은호나 주동명(윤찬영) 같은 아이들마저 그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이용하려는 백상호와 그 무리들은 나쁜 어른들이었다.

 

이제 선명해진 대결 구도 속에서 과연 차영진이 어떻게 성흔연쇄살인 사건의 공범이자 고은호 추락사건의 주범인 백상호와 그 무리들을 법의 심판대 위에 세우고, 고은호를 지켜낼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결코 만만찮은 백상호의 무리들의 반격은 고은호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으로 이끌어가지 않을까.

 

차영진은 어쩌면 그 위태로운 순간에 고은호와 예전 둘도 없이 친했던 친구 수정이(김시은)를 겹쳐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때 전화를 받지 못해 친구가 살해됐다는 그 자책감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차영진은 고은호를 구하는 일이 이제 자신을 구하는 일이 되었다.

 

드라마는 시작부분에 ‘나도수정초’라는 부생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기생, 부생, 공생에 대한 화두를 던져 놓았다.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부생식물은 대신 동물의 배설물이나 사체 등을 양분 삼아 자라난다. 드라마가 지금껏 그려냈던 건 어쩌면 기생, 부생, 공생이라는 이 세 가지 삷의 방식에 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백상호처럼 누군가의 양분을 빼앗아 먹고 자라는 기생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차영진처럼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삶을 살 것인가. 버려진 것들에서조차 양분을 얻어 꽃을 피워내는 고은호가 그려내는 부생의 삶 앞에서.(사진:SBS)

‘날씨가’, 문정희가 아픔을 딛고 빛을 보길 바란다는 건

 

“윤택아. 난 빛을 잃었어. 이제 아무 것도 없어. 그니까 나한테 뭘 바라지 마.” JTBC 월화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 심명여(문정희)는 북현리까지 내려온 차윤택(황건)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는 빛을 잃었다. 아니 빛을 거부해버렸다.

 

언니 심명주(진희경)에게 상습적인 폭력을 가해온 형부를 겁에 질린 나머지 차로 밀어 죽게 했던 날, 그에게 삶의 빛은 사라져버렸다. 그 살인죄를 온전히 언니가 뒤집어쓰고 감옥에 갔고, 언니는 그 모든 일이 자신 때문이라며 너는 너의 길을 가라고 했지만 이미 벌어진 그 사건은 그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렸다.

 

어쩌면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고 출소한 심명주는 심명여보다는 홀가분해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니가 대신 처벌을 받고 자신은 그만한 벌을 받지 않았다는 자책감은 심명여를 저 스스로 빛이 들어오지 않는 감옥에 갇히게 했을 게다.

 

그래서 심명주가 쓴 선글라스와 심명여가 쓴 선글라스는 그 의미가 다르다. 심명주의 선글라스가 세상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면, 심명여의 선글라스는 세상으로부터 숨어 자신을 벌주고 있는 스스로 만든 창살처럼 보인다. 그 창살 저편에서 그는 낯이고 밤이고 빛을 볼 자격이 없다 자책하며 망가져가는 자신을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으려 애쓴다.

 

형부랑 바람이 나서 언니가 형부를 죽였다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끔찍한 소문들이 진실이 아니라도 그는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한다. “뭐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거지. 뭘 믿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아. 내가 형부랑 바람이 났든 안났든 우리 형부는 죽어버렸고. 우리 언니가 형부를 죽였든 안죽였든 언니는 감옥에 가버렸고. 언니가 감옥에 갔든 안갔든 난 이리 망가졌으니까. 상관없어. 뭘 믿든 그게 진실인거야.”

 

사실이었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으며 자신은 그 사건으로 인해 망가졌으니까. 그는 자신이 “다 시들었다”고 말한다. 그래도 끝까지 심명여를 빛으로 되돌리려 “우리 전부 다 시들었다” 말하는 차윤택에게 심명여는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려 했던 선글라스 저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멀어가는 눈을 드러낸다. 그 눈은 차윤택이 좋아했다는 그 “폭풍우가 치기 전날 밤의 빛깔” 같던 그 눈빛이 아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빛을 거부해버린 심명여는 행복을 거부하는 또 한 사람이다. 임은섭(서강준)이 행복이 깨질까봐 두려워 피했던 인물이라면, 심명여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며 거부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목해원(박민영)이 다가올 때 산 속 외딴 오두막으로 숨어버린 임은섭처럼, 차은택으로부터 심명여는 선글라스 저편으로 숨어버린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저마다의 궂은 날씨 속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임은섭과 심명여도 그렇지만, 목해원 역시 ‘살인자의 딸’이라는 그 폭풍 같던 시간들이 만들어낸 그늘 속에서 살았고, 김보영(임세미) 역시 제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사랑의 아픔 속에서 엇나갔다.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그래서 이제 그 궂은 날씨가 물러나고 햇볕이 이들에게 내려쬐기를 바라게 된다. 그들이 행복의 빛 속으로 들어오기를. 하지만 날씨는 기후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고, 햇볕은 받을 준비가 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인 것처럼, 이들은 행복할 준비가 되어야 비로소 빛 속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 행복할 준비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줄 때 가능한 일일 테니.(사진:JTBC)

‘놀면 뭐하니’, 이 시국에 ‘빨래’의 감동 더 커진 까닭

 

“참 예뻐요. 내 맘 가져간 사람-” 솔롱고가 나영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곡 ‘참 예뻐요’를 부르는 정문성의 목소리는 마치 속삭이듯 듣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뮤지컬 <빨래>하면 이제 누구나 떠올리는 곡, ‘참 예뻐요’. 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요즘, 얼어붙은 공연계와 집콕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마련한 방구석 콘서트에 울려 퍼지는 이 곡은 축축한 우리네 마음을 보송하게 만들어줬다.

 

연출가 추민주, 작곡가 민찬홍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작품으로 2005년 초연 후 국내에서 15년 간 5천 회 이상 공연하고 해외진출까지 했으며 중고등교과서에 대본이 실린 작품. <빨래>는 몽골 출신 이주 노동자 솔롱고와 비정규직 나영을 중심으로 서민들의 팍팍한 인생살이를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기생충>으로 대세가 된 배우 이정은은 2008년부터 5년 간 이 작품에서 주인 할매 역할을 맡았고, 최근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정문성도 8년 간 이 작품에 출연했다고 한다.

 

‘참 예뻐요’라는 곡에서 느껴지듯이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는 서민들이 서로를 보듬어가며 살아갈 힘을 얻는 이야기가 너무나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담겨진 이 뮤지컬은, 그 노래만으로도 지금의 시국에 힘겨움을 겪고 있는 우리네 서민의 마음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작지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히 그렇다.

 

이정은과 허순미가 부른 ‘슬플 땐 빨래를 해’는 직장에서 나가라는 소리를 들은 나영을 위로해주는 주인 할매와 희정 엄마의 노래로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라는 가사로 시작했다. 우리네 쉽지 않은 삶을 축축이 젖은 빨래에 은유하고, 시간이 흐르면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픔도 힘겨움도 마를 거라고 위로하는 곡. 슬플 때 할 수 있는 것이 빨래뿐이었을 서민들이지만 그것으로 다시 힘을 내는 그 마음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깨끗해지고 잘 말라서 기분 좋은 나를 걸치고 하고 싶은 일 하는 거야’라는 가사는 코로나 19로 일상의 소중함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절하게 다가오는 시청자들에게 힘을 내게 하는 작은 희망을 주는 것만 같았다. 이어지는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의 서울살이에 대한 회한을 돌아보며 노래하는 곡 ‘서울살이 몇 핸가요?’는 우리에게 코로나19 이전 우리가 살아왔던 일상들을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 일상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었을까.

 

누군가에게 꽃다발 하나를 안겨주고 사랑한다 하는 그 작은 일들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고 온기를 나누고 함께 웃고 때론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고 했던 그런 일들이 오롯이 떠오르는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방구석 콘서트로 짧게 보여준 것이지만 <빨래>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 시국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바람이 우릴 말려줄 거예요. 당신의 아픈 마음 털털 털어서 널어요. 우리가 말려 줄게요-” 힘겨운 이 시간들을 말려주고 있는 건 어디선가 보이지는 않아도 서로의 바람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빨래>는 노래하고 있었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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