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가족애, 집착인가, 보편적 정서인가

"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너희들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 맘이나 니들 맘이나 다 같을 테니까. 근데 저 산을 넘어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너희들도 알잖아. 여기서 목숨이나 부지하면서 벌벌 떨고 있어야 보고 싶은 가족, 만나고 싶은 사람 못 만난다는 거. 난 만나고 싶다. 보고 싶다. 그래서 가는 거다." '로드 넘버 원'에서 이장우(소지섭)가 고지 점령을 위한 자원 특공대를 조직하는 이유는 적을 섬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 곳으로 돌아가야 보고 싶은 가족,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60년 전 한국전쟁이라는 소재가 2010년 시청자를 만나는 지점이다. 거기에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가족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드라마의 귀결이 가족애(인간애)라는 점은 분명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은 반전의 또 다른 표현이니까. 하지만 우리네 드라마들의 가족에 대한 집착이 유독 강하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7,80년대의 강남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암투와 복수를 다루고 있는 '자이언트'도 그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은 다름 아닌 가족애다. 조필연(정보석)에 의해 뿔뿔이 흩어진 강모(이범수)의 가족들이 성장해서도 서로를 찾기 위해 애를 태우는 장면은 이 시대극 속에 담겨진 복마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암투와 성공에 대한 욕망에 어떤 근거를 세워준다. 여동생 미주(황정음)를 만난 강모는 자신이 성공하려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난 서울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지을 거다. 그리고 그 꼭대기층에서 우리 가족이 다 모여서 살게 할 거다." 어찌 보면 비뚤어진 욕망일 수도 있는 과도한 성공에 대한 집착은 이 '가족'이라는 목적 앞에서 눈 녹듯 녹아버린다.

'제빵왕 김탁구'는 김탁구(윤시윤)라는 제빵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의 성공스토리를 그리고 있지만, 역시 여기서도 발견되는 것은 끈끈한 가족애다. 김탁구가 꿋꿋이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어머니다. 이미 죽었을 지도 모르는 어머니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 마음은, 그가 어머니를 찾기 위해 했던 그 어떤 행동도 정당화시킨다. 70년대의 폭력적인 분위기가 드라마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 속에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김탁구의 절절한 사랑을 집어넣는 것으로 보편적인 정서로 회귀시킨다.

가족애에 대한 집착은 심지어 '구미호 여우누이뎐' 같은 공포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 작품에서 구미호(한은정)는 자신의 딸 연이(김유정)를 구하기 위해서는 뭐든 하는 강력한 모성애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한편 연이를 노리는 윤두수(장현성)의 비정함 역시 죽을 운명에 빠진 자신의 딸 초옥(서신애)을 구하기 위한 부성애로 그려진다. 즉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서로 자신들의 딸을 구해내기 위한 모성애와 부성애의 대결이 핵심이다.

우리 드라마에 있어서 가족의 힘은 이처럼 막강하다. 전쟁 드라마 속에서도 가족은 피어나 어떤 공감을 전해주고, 비뚤어진 욕망의 질주 속에서도, 폭력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심지어 공포물에서도 가족애는 보는 이를 보편적인 정서 속에 안정시킨다. 무엇보다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강력한 힘으로서 '가족'은 시간의 장벽을 훌쩍 넘게 해준다. 물론 가족애는 자칫 욕망을 정당화시키는 핏줄의식으로 변질될 위험성도 있다. 하지만 이 보편적인 정서가 우리는 물론이고 해외에까지 어떤 감흥을 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가족애가 가진 이 거대한 힘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느냐는 여전히 남은 숙제다.

가족으로 모든 걸 투영해 내는 김수현 드라마

"당신 오늘부터 앉아서 싸." 김민재(김해숙)의 딸 양지혜(우희진)가 남편인 수일(이민우)에게 하는 이 말은 작금의 달라진 남녀 관계를 압축해서 설명한다. 수일은 과거라면 데릴사위로 있는 처지에, 차에서 내리는 딸의 문까지 열어줘야 할 정도로 아내인 지혜를 여왕 대접해준다. 물론 투덜대지만 늘 자신의 처지보다는 아내와 아내의 가족을 먼저 돌보는 그 마음에는 어느 정도의 진심도 엿보인다. 덜컥 갖게 된 둘째 아이에 기뻐하는 그지만, 그 아이를 지우려는 아내와, 그걸 반대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그는 아내 편임을 공공연히 드러낼 정도로 애처가다. 그에게서 과거 마초적이고 권위적인 남편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 사위에 그 장인이라고, 수일의 장인 양병태(김영철)는 딸이 사위에게 앉아서 일을 보라고 했다는 말에 허허 웃는다. 오히려 장모인 김민재는 그런 사위를 안쓰러워 하지만, 양병태는 반 농담을 섞어서 "잔뜩 긴장하며 보기 때문에 (자신은)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준다. 한편 그런 수일을 "네가 남자냐?"고 비아냥대는 병태의 동생 양병걸(윤다훈)은 언뜻 남자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 같지만, 그가 사실은 가족드라마에 늘 있게 마련인 감초 같은 수다쟁이 역할을(주로 여성이 맡게 마련인) 맡고 있다는 점은 역시 이 달라진 남녀 관계를 잘 드러내준다. 무엇보다 이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할아버지(최정훈)가 돌아온 탕자(?)가 되어 아내(김용임)의 눈치를 보고, 집에 도둑고양이처럼 숨어 있다가 오줌까지 지리는 장면은 가부장주의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인 양병태가 패밀리 비즈니스로서 펜션을 운영하고, 그 아들인 호섭(이상윤)이 그 일을 돕는 모습은 취업이 어려워진 두 세대(고령세대와 젊은 세대)의 새로운 대안처럼 그려진다. 집 밖으로 치열해진 취업 전쟁에서 이제 남자들은 집 안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할 일을 찾아낸 것 같은 뉘앙스가 거기서 느껴진다. 이 집에서 가장 잘 나가는 병태의 동생 양병준(김상중)은 리조트 상무로 지내지만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 상태고, 병태의 아들 양태섭(송창의)은 내과의사지만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는 동성애자다. 물론 동성애는 파격적으로 보이지만 이 남성성이 사라져가고 있는 가족을 염두에 두면, 이 동성애 또한 그다지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김수현 작가가 그려내는 남자들은 작금의 변화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의 남자들의 모습을 저마다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성 소수자까지도.

한편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의 모습 또한 달라졌다. 젊은 시절 온갖 마음고생을 다해온 할머니는 이제 이 집안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로 우뚝 서 있고, 며느리 김민재는 여전히 부엌을 꿰차고 있지만, 그 부엌은 가사 일만의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녀가 요리방송을 하는 모습은 부엌이라는 공간을 사회적으로 확장시킨 결과로 보인다. 그녀는 가족에게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지위를 가진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녀의 딸인 양지혜는 자신의 삶을 위해, 생긴 아이를 지울 것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자기주장이 강하며, 막내딸인 양초롱(남규리)은 "어장에 물 반 고기 반"이라고 말하며 남자들을 저울질 할 줄 아는 대학생이다.

이처럼 김수현 가족드라마의 가족들은 저마다 변해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대변한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안식년을 주장하는 엄마가 등장하고, 로맨스 그레이를 즐기는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것처럼, '인생은 아름다워'에 동성애자가 등장하고, 그를 사랑하는 재일교포 채영(유민)이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다양해진 사회 구성원의 모습을 담아낸다. 이것은 김수현 가족드라마가 현실의 변화에 민감하면서도 오래도록 고정적인 팬층을 이어가게 해주는 가장 큰 힘이다. 즉 현재 변화된 사회의 모습을 그 가족 구성원들 속으로 담아냄으로써, 그 파격을 보편적인 가족애로 전해주기 때문이다.

도무지 해결될 수 없을 것만 같은 파격적인 갈등도 그 가족애 속에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보인다. 평생을 다른 여자와 살아온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또 금지옥엽 키워낸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은 사회적인 잣대로 보면 해결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틀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족애로 대변되는 인간애. 그 굳건한 믿음 앞에 김수현 드라마의 가족은 사회 문제를 풀어내는 마력적인 힘을 발휘한다. 이것은 김수현 가족드라마가 왜 그토록 인기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일단의 답을 제공한다. 우리는 '김수현의 가족'에서 우리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 가족의 갈등과 해결을 통해 큰 위안을 얻게 된다. 우리는 매번 김수현의 드라마가 구성하는 가족을 통해 공감의 틀로 묶여지는 일체감을 경험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넓은 범주의 가족의 경험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수상한 삼형제'의 가족, '그대 웃어요'의 가족

저런 집구석에서라면 하루도 못살겠다. '수상한 삼형제'가 그리는 가족의 모습이 주는 인상이다. 직업조차 없고 이혼까지 한 장남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며 '인생 한 방'을 외치고, 그래도 장남이라고 챙기는 어머니 때문에 그 집 둘째 며느리는 거의 하녀처럼 구박당하며 죽어라 일만 한다. 그걸 아는 둘째 마음이 좋을 리가 없다. 그래도 어머니 보약이라도 하라며 돈을 챙겨주지만, 그 돈이 전부 장남에게 들어가는 게 둘째는 영 마음이 좋지 않다. 셋째는 건실하고 유쾌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새로 만난 여자가 나쁜 놈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꼴을 보게 된다. '수상한 삼형제'가 그리는 가족은 늘 이처럼 지지고 볶는다. 보는 이의 혀를 차게 만드는 그 진상에 그러나 시청자는 좀체 눈을 뗄 수가 없다.

저런 집이라면 정말 살고 싶다. 반면 '그대 웃어요'가 그리는 가족의 모습이 주는 인상은 정반대다. 물론 이 가족에 진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업을 실패하고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서정길(강석우), 고이 공주처럼만 살아와 여전히 아무 일도 못하는 아내 공주희(허윤정), 유학이라고 보냈더니 도박으로 돈만 다 날리고 돌아온 장남 서성준(이천희), 능력 있는 의사지만 어쩌다 애 딸린 이혼남에 빠져버린 장녀 서정경(최정윤), 결혼식 당일 소박을 맞은 막내 서정인(이민정). 이 가족은 진상 아닌 인물이 없다. 하지만 이 진상을 거둬서 함께 살아가는 강만복(최불암)과 그 가족이 있어 이 드라마의 가족은 살 맛이 난다.

두 가족 모두 늘 사건이 끊이지 않지만, 그 양상은 사뭇 다르다. '수상한 삼형제'의 가족은 희망을 좀체 발견하기가 힘든 반면, '그대 웃어요'의 가족은 늘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어떤 희망을 발견한다. 그 희망의 진원지는 바로 가족이다. '수상한 삼형제'의 가족은 그 부딪침이 파탄지경으로 극화되지만, '그대 웃어요'의 가족은 엇나가도 본래는 착하며, 그래서 결국에는 제 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것은 두 드라마 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멜로의 양상에서도 드러난다. '수상한 삼형제'의 막내 김이상(이준혁)과 주어영(오지은)의 멜로는 왕재수(고세원)라는 파렴치한 인물로 인해 고난을 맞는다. 왕재수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약속했으면서도 무슨 이유인지 주어영을 말 그대로 가지고 논다. 그 양상은 혼인빙자간음 같은 범죄 수준이다. 그러니 이 관계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마음은 흐뭇함이 아니라 분개에 가깝다. 김이상이라는 이상적인 인물과 주어영 같은 착한 여성 사이에 끼어든 범죄적 인물 왕재수에 대한 분노의 힘은 이 드라마의 멜로가 시청자들을 애태우게 하는 이유다.

한편 '그대 웃어요'의 강현수(정경호)와 서정인(이민정)의 멜로는 보는 이들을 풋풋하게 만든다. 정인의 언니인 정경(최정윤)을 짝사랑해오다 정리하게 된 강현수는 서정인을 동생처럼 생각하지만, 차츰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그녀에 당혹스러워 한다.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의도적인 장애물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부족함 때문이다. 완전하지 않은 그들이기에 사랑이 자꾸만 엇갈리게 되는 것이다.

가족과 멜로를 통해 볼 수 있듯이 두 드라마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약간 다르다. '수상한 삼형제'에는 물론 희망적인 인물이 있지만 '아무리 해도 역시 안되는' 인물이 존재하고, 그 인물들로 인해 가족은 어려움을 겪는다. 작가는 가족이 늘 그렇게 지지고 볶으면서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존재라고 말한다. 반면 '그대 웃어요'에는 아무리 인간 말종이라도 어느 부분에서는 그 허약함이 드러나고, 그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은 포기되지 않는다. 작가는 가족의 어려움은 그 인간 말종의 변화 불가능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 부족함이 채워질 때, 변화는 여전히 가능하다.

따라서 드라마의 해법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수상한 삼형제'의 해법은 그 변화 불가능한 가족의 고민거리들이 대결구도에서 지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 드라마는 선악구도가 분명하다. 반면 '그대 웃어요'의 해법은 그 부정적 인물들이 긍정적인 인물로 개과천선하는 과정에 있다. 주말드라마의 이 두 가족은 어려움을 맞이해 우리가 가족을 생각하는 그 두 가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벽에 서 있는 듯한 절망적 인물과 그래도 그들과 함께 살아내는 긍정적 인물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가족이고, 다른 하나는 절망적 인물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속에서 발견하는 변화가능성과 희망이다. 당신은 어느 가족이 더 궁금한가.

'찬란한 유산', 우리 사회의 핏줄의식을 건드리다

"돈 안준다고 사랑하지 않는 건 아냐." 진성식품 대표이사이자 환(이승기)의 조모인 장숙자(반효정) 여사가 며느리와 손녀딸을 앞에 앉혀놓고 하는 이 말은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핵심적인 키워드다. 이 말은 '유산'이라는 말과 어울려 오히려 "사랑하려면 돈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만큼 '찬란한 유산'이 다루는 이야기는 고전적이다. 그것은 저 찰스 디킨즈의 '위대한 유산'에서부터 시대를 거듭해 전해져 온 그 고전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 메시지는 '진정한 유산이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전혀 새롭지 않은 메시지가 가진 고전적인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과거나 지금이나 태생, 핏줄로 이어져온 부와 가난의 세습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유산'을 염두에 두고 얘기한다면 가난을 유산 받은 이는 가난하고, 부를 유산 받은 이는 부유하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흘러온 대체적인 정서다. 그러니 이를 뒤집어 버리는 드라마가 어찌 통쾌하지 않을까. '찬란한 유산'은 그 부와 가난의 태생적인 고리를 끊어버리는 인생유전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찬란한 유산'은 이처럼 그 고전적인 소재 선택에서 이미 반 이상의 성공을 일구었다고 할 수 있는 드라마다. 하지만 고전적인 스토리는 잘못된 해석과 진행을 만나면 식상한 얘기가 되고 만다. 따라서 '찬란한 유산'이 8회 만에 이미 30%에 육박하는 괴력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진짜 이유는 바로 이 소재 이외의 요소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첫 번째는 이 드라마가 '위대한 유산'이 가진 고전적 스토리를 우리 식 버전으로 잘 녹여낸 것이다. 이 재벌집의 근간이 설렁탕집이라는 설정은 흥미롭다. 흔히들 욕쟁이 할머니가 고집스레 음식 맛을 고수하며 일궈낸 우리 식의 성공신화가 그 밑바탕에는 깔려 있다. 설렁탕집의 풍경은 여타의 재벌가를 다루는 드라마가 그렇듯이 펜대만 굴리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거기에는 여전히 육체적인 노동이 주는 땀과 눈물이 배어있다.

설렁탕집은 장숙자라는 할머니의 인생관 자체가 스며있는 공간으로서, 그것을 싫어하면서도 거기서 벌어들이는 돈만을 바라는 가족들과 대조를 이룬다. 하루아침에 모든 지원을 끊어버린 장숙자 여사에 의해 일을 해야만 하는 가족들이 설렁탕집에서 무를 썰고 서빙을 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육체노동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구석이 있다. 게다가 이 설렁탕집으로 대변되며 부딪치는 할머니와 자식들의 인생관에는 한때 가업을 이루었지만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는 어른들의 정서 또한 스며있다.

하지만 고전적 이야기가 우리 식 버전으로 토착화된 이 드라마의 진짜 성공 이유는 그 진행의 묘미에 있다. 이 드라마는 드라마로서 가질 수 있는 대부분의 감정들을 거의 모두 껴안고 있다. 이 드라마가 웃기다가도 울리고 한편으로는 자극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먹먹함을 줄 수 있는 것은 다채로운 캐릭터들을 스토리 진행 위에 잘 세워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부모가 자기 친 핏줄이 아니라고 자식을 내치는 이 비정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는 그 모든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밝게 살아가는 따뜻한 이야기와 균형을 이룬다. 이로써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잔잔하고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주는 울림이 가능해진다.

모든 유산을 빼앗겼지만 '착한 심성'이라는 빼앗길 수 없는 유산을 가졌기에 성공하는 은성(한효주)의 인생유전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깔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현실과 보편적 정서 사이의 이 거리감(긴장감)은 이 드라마가 가진 공감의 힘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유산의 문제는 그만큼 가족(핏줄)에 집착적인 우리네 사회가 가진 딜레마이자 아킬레스건에 해당한다. '찬란한 유산'은 그 아킬레스건을 판타지로 부여잡고 고전과 현실을 연결시킨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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