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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서민들과 공감하려는 방송의 새로운 노력들

 

영상통화로 얼굴을 마주한 원주 칼국숫집 사장님과 백종원은 환한 미소로 반가운 마음을 전했다. 사장님은 “사랑합니다”라고 말했고, 백종원은 “내가 갔어야 했는데 (팥죽 좋아하는) 김성주씨가 간다고 했다”며 직접 오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사장님은 모자를 쓴 채 자꾸만 얼굴을 양 손으로 가리셨다. 그러면서 자꾸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고 말씀하셨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가슴 먹먹한 칼국숫집 사장님의 근황을 전했다. 그간 SNS 등을 통해 자주 가게에 안 나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혹여나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걱정하던 백종원과 김성주 그리고 정인선이었다.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찾아간 김성주와 정인선은 그러나 그 곳에서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암에 걸려 투병 중이시라는 것이다.

 

일주일 간 가게를 쉰다는 공고는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이라 여겼지만, 거기에는 사장님의 건강문제도 들어 있었다. 애써 “괜찮다”는 말은 수차례 반복하시는 사장님 앞에서 결국 정인선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쉬운 마음에 영상통화로 연결된 사장님의 사연을 들은 백종원도 말을 잇지 못했다. “아유 대표님 죄송해요.. 괜찮아요. 건강해요. 대표님 사랑해요 건강해요. 아유 참. 괜찮아요 대표님. 이렇게 웃고 있잖아요.” 연거푸 애써 웃으며 괜찮다는 사장님은 결국 눈물을 터트린 백종원을 보고는 “아유 속상해 죽겠네”리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눈물을 닦으셨다.

 

“전화하고 싶고 막 그런데도 못했어. 진짜 보고 싶고 내가 뭐라고 진짜 막 편지도 쓰고 싶고 그랬는데도 막 못했어. 진짜. 진짜 사랑합니다. 절 너무 행복하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사장님의 그 말을 듣던 백종원은 먹먹한 마음에 울먹이며 “참 진짜 그지 같네”라고 말했다. 그 눈물과 말에 많은 게 들어있었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이 어째서 그런 어려움을 계속 겪게 되는가에 대한 안타까운 소회가 거기에는 들어 있었다.

 

백종원의 눈물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줬다. 물론 때론 분노하고 때론 아픈 조언들을 하곤 했지만, 결국 백종원이 원하는 건 노력하는 그들이 잘 되는 것이었다. 그건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런가. 생각만큼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의외의 일들이 가로막는 경우는 더더욱 많다.

 

최근 방송들은 연예인들의 이야기에서 서민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주 유재석이 눈물을 흘렸던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대목도 바로 그런 방송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비상을 맞은 대구 지역에 선뜻 자원해 달려간 한 간호사분의 너무나 씩씩한 모습에 유재석은 무너져 내렸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고 어려운 환경이지만 연거푸 잘 지내고 있고 괜찮다는 말을 건네는 그 분들의 숭고함 앞에 그 누가 먹먹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유재석의 눈물과 백종원의 눈물은 시청자들을 먹먹하게 했다. 그런데 그 진원지는 유재석과 백종원이 아니라 그들이 만난 위대한 서민들이었다. 지금껏 조명되지 않아서 평범해보였던 사람들은 한 걸음 더 깊숙이 들어가자 그 위대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재석도 백종원도 그것을 본 것이고, 방송은 이제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평범하지만 위대한 서민들과 공감하려는 노력. 지금의 예능 프로그램들에 생겨난 새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또 그것은 지금의 시청자들 역시 공감하고픈 이야기이기도 하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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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가 보여주는 선악, 갑을보다 직업적 성공 찾는 인물들

 

액면으로 보면 이들은 쓰레기 같은 인물을 변호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이 이기기를 바라게 된다. 이건 단순히 이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들이 하는 행동이나 선택에도 그만한 납득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

 

SBS 금토드라마 <하이에나>를 보다 보면 관점에 따라 얼마나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는가를 실감한다. 그간 우리네 드라마에서 꽤 많이 등장했던 검사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들을 볼 때면 검거된 이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은 도덕도 윤리도 없이 돈이면 다 되는 악당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이에나>의 주인공들인 윤희재(주지훈)와 정금자(김혜수)가 변호사로 등장하자 이제는 검사들이 이들을 몰아붙이는 악당들처럼 보인다.

 

그것도 윤희재와 정금자가 변호해야 하는 D&T 손진수(박신우) 대표는 정금자의 표현대로 “쓰레기” 같은 인물이다. 엄청나게 많은 퇴사자들은 모두 손진수가 퇴근도 없이 일을 시키며 직원들을 착취해왔고, 일종의 ‘가스라이팅(상황을 조작해 상대방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판단력을 잃게 하는 정서적 학대행위)’을 해왔다고 증언했다.

 

증인으로 나선 김영준(한준우)의 다이어리에는 손진수의 그런 행위들에 대한 것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고 특히 개인정보 도용을 지시한 내용도 들어있었다. 그대로 법정에 간다면 손진수의 유죄는 거의 확정적이었다. 그만큼 손진수는 선악으로 봐도 악당이었고, 갑을관계에서도 갑질을 하는 오너였다.

 

그런데 윤희재와 정금자는 바로 이런 악당이자 갑질하는 인물을 변호해야 하고, 무죄를 받아낸 후 D&T 상장까지 성사시켜야 하는 미션을 부여받았다. 윤리적인 차원에서 또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보면 처벌받아 마땅한 인물이지만, 드라마는 그런 윤리나 사회정의보다는 윤희재와 정금자가 처한 직업적 상황에 더 집중한다. 그들은 어떻게든 이 미션을 성사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쓰레기라도 해도 변호해야 한다는 것.

 

결국 정금자는 손진수가 쓰레기라는 걸 인정하는 것으로 이 소송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렇게 해온 갑질들 때문에 김영준이 앙심을 품었을 수 있고 그래서 그가 쓴 다이어리도 신빙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정금자는 자살한 직원의 대화 내용을 확보해 틀어줌으로서 김영준이 개인정보 도용을 한 범인이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즉 손진수가 쓰레기이기는 하지만 이 사건에서 개인정보 도용을 한 범인은 따로 있다는 걸 밝혀낸 것.

 

<하이에나>가 손진수 같은 인물을 승소시키는 윤희재와 정금자의 공조를 다루고, 또 그 이야기에 우리가 몰입하게 되는 건 왜일까. 그것은 도덕교과서에 나올 법한 윤리적인 차원의 이야기들이 실제 현실과는 그만큼 거리가 멀다는 걸 드러내주면서, 이 살벌한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직업적 성취나 성공이 개인에게는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말해준다.

 

또한 악연으로 이어져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며 입장 차를 보이던 윤희재와 정금자가 함께 사건을 맡게 되고 그 공동의 목표로 인해 공조하는 이야기 또한 그렇다. 조직에서 함께 성공시켜야 하는 목표는 종종 개인의 입장 차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 하기 싫어도 해야하고 개인적 가치에 어긋난다 해도 조직은 그걸 회피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이에나>가 그리는 현실은 훨씬 더 치열하게 다가온다. 윤희재도 정금자도 섣부른 정의감을 내세우지 않는 프로들이다. 그곳이 일단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금자가 손진수를 찾아가 김영준을 그만 밟으라 으름장을 놓는 건 이런 직업적 선택과 달리 윤리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윤희재와 정금자의 선택과 행동에 공감하고 빠져드는 건 그것이 우리네 현실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막연한 정의감이 주는 판타지가 현실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 개개인의 윤리적 선택이 달라도 일의 세계에서는 때때로 다른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걸 <하이에나>는 윤희재와 정금자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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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억지 사이다보다 현실 공감 택한 검사드라마

 

학교폭력에 자식이 휘말렸다. 그런데 그 부모가 검사다. 과연 그 검사는 자식을 위해 아는 연줄의 힘을 쓸까. 대부분의 검사가 등장하는 드라마에서라면 그 부모는 자식을 위한답시고 할 수 있는 모든 연줄을 다 동원해서라도 그 사건을 무마하려 했을 게다. 하지만 JTBC 월화드라마 <검사내전>은 다르다.

 

이선웅 검사(이선균)는 자식이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된 사건에 자신의 힘을 쓰지 않는다. 조민호 부장(이성재)과 홍종학(김광규) 수석검사가 관할서에 연줄이 있다며 도와주겠다 했지만 그 도움을 받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한 경찰서에서 직업을 묻는 경찰관에게 이선웅은 검사가 아닌 “회사원”이라고 말한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일선에서 학교폭력으로 인해 지울 수 없는 고통을 겪는 피해자들을 봤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쉽게 사죄하고 용서를 이야기하지만 피해자는 결코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이선웅은 보게 된다. 그러니 자식의 잘못을 덮기보다는 그 잘못이 얼마나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됐는지를 아이가 알기를 바란다. 그는 아이에게 경찰서에 들어가기 전 이렇게 말한다. “쉽지 않겠지만 아빤 지훈이가 뭘 잘못한 건지 그리고 그 친구한테 어떻게 해야 했었는지 깨달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꼭 그 친구 입장에서 생각했으면 좋겠고.”

 

<검사내전>은 자식문제나 육아문제 같은 현실문제들에 있어서 검사도 예외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워킹맘 오윤진(이상희)이 육아에 일에 치여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상황은 여성이어서 감당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드러낸다. 점심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던지는 남자들의 농담이 가진 성차별적 인식은 검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그가 맡은 성폭력 사건이 무죄 판결나자 심지어 같은 여성인 차명주(정려원) 또한 차별적인 발언을 한다. “애 키우면서 공판검사 하는 거 힘들면 하기 힘들다고 하세요. 내가 감안하고 볼 테니까.”

 

이선웅이 맡은 사내 성폭력 사건 또한 여성을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을 드러낸다. 우연히 복도에서 부딪칠 때 스킨십이 있었다는 이유로 홍종학(김광규)이 마치 피해자를 ‘꽃뱀’보듯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뒤늦게 취직해 성공하고 싶었고 그래서 남자들의 커뮤니티에 들어가기 위해 담배도 배우고 함께 술도 마셨지만 그러면서 남자들이 조금씩 선을 넘기 시작했다는 것. 피해자의 진술은 우리네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천장을 뚫어야 하는 여성들이 겪는 적나라한 현실을 드러낸다.

 

<검사내전>에는 엄청난 연쇄살인이나 납치사건 같은 사건들이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사건들도 적지 않겠지만 이 드라마가 짚어내는 건 그런 사건들만큼 우리네 일상에 닿아있는 학교폭력이나 성폭력 같은 사건들이 결코 작은 사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건 우리의 일상 속으로 슬며시 들어와 우리네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중대한 일들일 테니 말이다.

 

<검사내전>은 이런 사건들을 검사들이 다루는 저 바깥의 일로 치부하지 않고 그들 역시 겪는 사건으로 그려낸다. 법을 집행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똑같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때론 흔들리면서도 지켜야할 것들을 지키려 애쓴다는 것.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드라마다. 억지 사이다보다는 현실 공감을 택한 검사 드라마라고나 할까. <검사내전>이라는 작품의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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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의 소통 맡은 정인선의 진정한 가치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백종원도 김성주도 아닌 정인선이 눈에 띄었다. 그간 홀 서빙부터 주방 보조, 상담역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았던 정인선이지만, 이번 평택역 뒷골목의 수제 돈가스집을 찾아 손님응대의 문제를 이야기 나누는 대목에서는 그의 남다른 소통 능력이 돋보였다.

 

지난주 방영 후 바빠지게 되면서 손님 응대가 엉망이 됐던 걸 보여줬던 수제 돈가스집.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작진이 관찰카메라를 준비했고, 백종원은 자신보다 효과적일 거라며 정인선을 투입했다. 수제 돈가스집 사장님은 관찰카메라 영상을 보면서 자신도 뜨악했다. 손님들에게 일상적으로 반말을 하고 있는 상황. 자신은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대했다 생각했는데 굉장히 보기에 안 좋더라는 것.

 

정인선은 오히려 그런 사장님의 입장을 이해하는 쪽에서 이야기를 해줬다. “어떻게 보면 친근한 사장님이신 거잖아요.. 근데 사실 많이 단골로 오신 분들은 익숙하니 괜찮을 수 있는데 만약에 처음 오신 분들은...” 사장님은 처음 오신 분들한테는 절대 그렇게 안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정인선이 그 부분을 조심스럽게 콕 짚어내자 “아들 같아서”라고 사장님은 말했다. 보통 이런 변명을 백종원이 들었다면 아마도 버럭 한 마디가 날아갔을 터였다. 하지만 정인선은 달랐다. “예 그래서이신데... 이게...” 끝까지 사장님의 입장을 이해하려 했고 그러면서도 할 말은 빼놓지 않았다.

 

백종원은 상황실에서 그 광경을 보며 사장님의 응대가 왜 문제인가를 얘기했다. “단골손님들에게 습관적으로 편하게 하다 보니까 모르는 손님에게도 무의식 중에 반말을 하게 된다”는 것. 사장님도 그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안 좋아 보이네. 어쩌면 좋을까나..”라고 말하는 사장님에게 정인선은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같이 한숨을 내쉬며 웃어주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손님들이 마치 일행인 것처럼 주문을 해서 헷갈리게 된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고 일행 것만 말씀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그것이 자기 잘못이 아니라 손님들의 잘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이럴 수 있지 않냐”며 정인선의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사장님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면서도 정인선은 할 말을 했다.

 

“요렇게 말씀을 해주실 때 손님의 입장에서 혼이 나는 느낌이 들 수 있어요.” 그러자 사장님도 어느 정도 수긍하며 “좀 쌀쌀맞은 느낌이 있죠 제 말투가!”라고 했고 정인선은 또 사장님 입장을 이해하지만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걸 분명히 했다. “바쁘시고 이럴 땐 아무래도 또 빨리 빨리 체크를 하셔야 되니까 더 그렇게 나오실 수밖에 없다 라는 것도 아는 데도 또 손님 입장에서는...”

 

상황실에서 그 광경을 보던 백종원도 감탄했다. “어우 우리 인선씨가 또 이런 면이 있네요!” 그러면서 자기라면 그렇게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나 같으면.. 뭐라고요? 나는 목소리가 더 커지거든. 인정 안하면. 인선씨 잘 하는데. 선생님 같다.”

 

다음 영상이 지목한 문제는 치즈 돈가스가 시간이 많이 걸려 어떨 땐 되고 또 어떨 땐 안되어 일관성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손님이 평소보다 많아지자 단골손님에게 제발 오늘은 치즈 돈가스 시키지 말아 달라 부탁하고는 새로운 손님이 와 치즈 돈가스를 시키니 된다고 했던 것. 사장님은 그 분이 단골이라 그렇게 했다고 했다. 새로운 분은 처음 온 분이라 시간이 걸린다고 양해를 구했고 괜찮다고 해서 치즈 돈가스를 주문받았다고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변명처럼 들릴 수 있는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정인선은 공감해줬다. “아무래도 그냥 돈가스보다 오래 걸리나 봐요?” 그러나 치즈 돈가스에 대한 고충을 사장님은 꺼내놨다. “걔랑 잘 친해지지가 않아요. 스트레스 받아요.”

 

정인선은 문제를 직접 지적하기보다는 사장님이 스스로 느끼도록 이야기를 유도했다. “영상 네 가지를 보시니까 어떠세요?” 그러자 사장님이 스스로 그 문제를 털어놨다. “글쎄 너무 막 저기네... 나는 이렇게 내가 사람들을 내 편하게 대하는 줄 몰랐어요.” 사장님은 스스로 반성하겠다며 “다시 가출한 초심을 찾아서 정말 처음부터 창업하는 마음으로 배워야겠다 생각할게요.”라고 말했다.

 

정인선은 그 얘기를 듣는 것에서 끝내지 않았다. 그는 사장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진심을 가득 담아 이렇게 말했다. “제가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도와드릴게요.” 그 누가 이런 진심어린 눈빛과 상대방의 입장까지 고려해 꺼내놓은 말 앞에 수긍하고 감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장님이 “아유 너무 예쁘다.. 너무 너무..”라고 말한 건 정인선의 외모를 뜻한 것만은 아니었을 게다. 보는 이들도 그 마음이 너무 예쁘게 보였으니까.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문제가 많은 이른바 ‘빌런’으로까지 불리는 뒷목 잡는 가게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백종원은 그런 가게에서 때때로 분노를 폭발한다. 그건 시청자들도 똑같은 마음이지만 이런 모습만 비춰지게 되면 자칫 이 프로그램의 애초 취지인 상생이 아닌 비난만 쏟아질 수도 있다. 정인선의 가치는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똑같은 문제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이 기분 좋게 설득시킬 수 있다는 걸 그는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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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극 같은 ‘82년생 김지영’, 그 담담함의 의미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평점 테러할 영화인가 하는 것이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개봉 전부터, 캐스팅 당시부터 쏟아져 나왔던 악플들과 비난들에 휩싸였던 작품이다. 이른바 남혐 여혐 갈등을 조장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어디서도 혐오나 갈등 조장의 연출이나 내용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물론 원작 소설도 ‘혐오’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영화는 더더욱 담담해졌다고나 할까. 마치 한 편의 가족극을 보는 듯한 담담함.

 

가족극의 시선으로 보면 <82년생 김지영>은 육아와 가사 그리고 경력단절을 겪는 김지영(정유미)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정신적인 문제를 갖게 되고, 이를 남편은 물론이고 온 가족이 나서서 해결하려 애쓰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잘 다니던 회사를 육아와 가사 때문에 그만두고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이라는 주인공의 상황과, 그가 시댁에서 겪는 혼자만 소외되어 있는 것만 같은 상황은 여러 모로 젠더적 관점이 들어있다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어디 새삼스러운가. 종영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수시로 등장하는 이야기고, KBS 주말드라마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시대는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가부장적 체계 속에서 사회적으로도 또 심지어 가족 시스템에서도 김지영은 스스로도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는다. 그래서 그는 어딘가 자신이 잘못되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그냥 옛날 생각 자꾸 나고, 해 질 무렵에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데,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스스로도 괜찮다 말했던 김지영은 사실 전혀 괜찮지 않다. 어쩌면 그렇게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오히려 그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갑자기 다른 사람에 빙의해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김지영은 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쌓이고 쌓인 문제들을 끄집어내놓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자, 그 억압을 빙의라는 형태로 꺼내놓기 시작한 것.

 

사실 <82년생 김지영>에서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이 빙의사건 정도다. 나머지는 김지영을 걱정하는 남편과 그 누구보다 그를 이해하고 껴안아주는 어머니와의 공감이고, 빙의사건을 계기로 플래시백 되어 보여지는 과거 김지영이 살아왔던 삶 속에 저도 모르게 내재되어 있던 차별들이다.

 

<82년생 김지영>에는 딱히 두드러지는 악역이 없다. 김지영의 시어머니도 또 친아버지도 차별 섞인 말을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악의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모두가 함께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명절에 며느리인 김지영에게 시누이가 귀한 만큼 며느리도 친정에 가게 해주는 배려 없이 “음식 좀 내와라”하는 시어머니는 물론 감정을 건드리는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악의적인 건 아니다. 또 밤늦게 다닌다며 김지영을 나무라면서 “바위가 굴러오면 피해야 한다”는 논리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피하지 못하는 걸 나무라는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착오적이지만 그건 악의라기보다는 살아왔던 사회에서 오래도록 그 가부장적 시스템 속에서 학습된 결과라고 보인다.

 

이건 아내를 사랑하고 이해하려 애쓰며 또 어떻게든 도와주려 하는 남편이지만,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나선 김지영에게 “일 그만두게 한 것도 미안한데 그 딴 아르바이트나 하냐”고 말하는 남편 정대현(공유)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내를 누구보다 걱정하고 사랑하지만 그가 처한 세계와 환경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김지영을 돕기 위해서 필요한 건 자기 관점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입장에 들어가 보는 일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 개봉 전 마치 엄청난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평점 테러까지 이어졌지만, 심지어 가족극처럼 보일 정도로 담담하고 소소하다. 그런데 이것은 이 작품이 소소해서가 아니라 김지영이 겪는 차별의 문제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리네 일상에 내재되어 있는 이른바 ‘먼지 차별’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영화가 더 극적인 상황이나 사건들을 가져왔다면 그건 특정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차별의 문제로 오도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그 담담함과 소소함 속에 이 영화가 가진 진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족이 다 함께 봐도 될 법한 영화다. 우리의 어머니와 우리의 아내 그리고 당대의 아버지들까지 모두 같이 겪었을 힘겨움을 새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한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의 관점으로 보면 당연한 공감대를 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마치 성별 갈등을 조장하기라도 할 듯 오도하는 일이다. 평점 테러? 영화를 보면 그런 일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사진:영화'82년생 김지영')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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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가 체질’,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도전 결코 실패 아닌 건

 

JTBC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한 마디로 미스터리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클리셰를 훌쩍 뛰어넘는 재기발랄하고 의미심장한 대사들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시청률은 급상승한 마지막회조차 1%대에 머물렀다. 심지어 1.0%로 자칫 1% 밑으로 떨어질 뻔한 회도 두 차례나 있다. 올해 영화 <극한직업>으로 1천만 관객을 훌쩍 넘긴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도전. 어째서 시청률은 화답하지 않은 걸까.

 

우선 전제해야할 건 시청률과 완성도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말드라마가 30% 시청률을 낸다고 해도 모두 완성도 높다는 평가를 받지 않듯이 시청률 1%짜리 드라마라고 해도 완성도가 낮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청률은 대중성의 잣대일 뿐 완성도와는 그리 상관이 없을 수 있다.

 

<멜로가 체질>은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스스로가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라고 기치를 내걸었듯이 속사포로 이어지는 대사들이 독특한 맛을 낸다. 인터넷에서 이미 회자되고 있는 <멜로가 체질>의 명대사를 검색해보면 그 말맛의 공력이 얼마나 깊은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 마음이 하루 갈지, 천년 갈지, 그것도 생각하지 마. 마음이 천년 갈 준비가 돼있어도 몸이 못 따라주는 게 인간이야. 시간 아깝다.” 같은 대사나 “사는 게 그런 건가. 좋았던 기억 약간을 가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것.” 같은 대사를 보면 우리가 보통의 드라마에서 접하는 틀에 박힌 대사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아픔을 견디고 다시 재회하며 사랑을 이어가는 그 일상을 담아낸 이 드라마는 그 이야기 소재만을 두고 보면 상투적일 수 있다. 특별히 새로울 게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를 보게 되면 그 상투적인 상황이 전혀 상투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결국 상투성을 깨는 건 한 걸음 더 깊게 들어가는 구체성과 디테일이라고 했던가. <멜로가 체질>은 특정 상투적 상황을 겉치레로 훑고 지나가지 않고 그 안에서 느끼는 인물들의 복합적인 감정들을 파고 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이 오묘한 대사들로 드러난다.

 

상투성을 깬다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고 작품에 있어서 새로움을 더하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대중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중성은 어쩌면 적당한 상투성에 일정 부분의 반전이 더해질 때 더 효과를 보기 마련이다. 특히 영화처럼 완전한 몰입 상태로 보는 콘텐츠와는 조금 다른(물론 최근에는 드라마도 영화적 몰입을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드라마의 경우는 익숙한 상황 속에서도 기묘한 대사들로 그 상투성을 시종일관 뒤트는 것이 대중들을 유입시키는 데는 오히려 장애요소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른바 너무 꽉 짜인 완성도가 작품으로서는 좋지만 대중성에서는 좋지 않은 아이러니가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드라마 도전이 처음인 이병헌 감독에게 <멜로가 체질>의 낮은 시청률은 그래서 더더욱 미스터리로 다가왔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나 틀에 박힌 상투성으로 심지어 30% 이상의 시청률을 내는 드라마들을 너무나 많이 봐온 필자에게 <멜로가 체질>은 구원 같은 작품으로 다가온다.

 

시청률 좀 낮으면 어떤가. 이렇게 하나의 세계를 완성도 높게 밀고 나가는 드라마는 분명 가치 있고 귀한 것이니 말이다. 모쪼록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도전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시청률은 1%대였지만 공감은 100%였으니.(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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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요한’, 단순 사랑 아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사랑

 

SBS 금토드라마 <의사요한>에서 강시영(이세영)은 차요한(지성)에게 “좋아해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강시영은 차요한이 사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질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밤이고 낮이고 그를 걱정한다. 함께 데이트를 나와서도 앞에서 달려오는 사람이 혹여나 차요한에 부딪칠까를 걱정하고, 뜨거운 커피를 쏟을까를 걱정한다.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제 몸이 망가지고 있어도 그걸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차요한은 자신의 집에 대신 몸 상태를 체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매일 퇴근해서는 제 몸을 검사하고 잠을 잘 때도 카메라에 영상으로 그 모습을 일일이 기록해 혹여나 있을 수 있는 수면 중 행동의 위험성 또한 예방하려 한다.

 

그 질환에 걸린 이들이 손가락이 뜯기는 지도 모르고 손을 물어뜯거나, 각막이 손상되는 지도 모르고 눈을 비비는 그런 행동들을 하다 결국은 일찍 사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시영은 눈물을 쏟아낸다. 병원에 바이러스성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가 들어오고 그 병동이 폐쇄 격리되자 강시영은 혹여나 그 곳으로 차요한이 들어오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하지만 강시영이 환자를 돌보다 쓰러지게 되자 차요한 역시 그를 걱정해 폐쇄 병동에 들어와 문제를 해결한다.

 

좋아한다 말하고,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상대방을 걱정하며, 데이트를 하면서도 혹여나 있을 위험을 피하려 하는 강시영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의학드라마 속에서도 보게 되는 멜로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의사 요한>이 강시영을 통해 그려내는 멜로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그건 그가 사랑하는 차요한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강시영과 차요한의 멜로는 스킨십보다는 감정을 공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차요한의 상황을 애써 이해하려는 강시영에게 차요한이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애써 그러지 말라고 하고, 그럼에도 강시영이 그걸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이들이 보여주는 멜로의 방식이다. 그건 남녀 간의 사랑으로 그려져 있지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의사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의 사랑으로도 보인다.

 

차요한이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알 수 없다고 말하자 강시영이 그렇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사랑이야기의 차원을 넘어 보다 깊은 인간애에 대한 통찰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 이해했다 생각하지만 착각인 경우가 많고, 그것이 미디어를 통해서 오해 혹은 오역되기도 하는 문제. 우리는 공감한다 말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공감인가에 대한 질문. 그런 것들이 <의사 요한>에서는 멜로에서조차 담겨진다.

 

강시영의 차요한에 대한 애착은 그래서 함께 산을 오르다 사고를 당해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삶을 이어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겹쳐진다. 그래서 강시영이 차요한을 이해하려 애쓰는 건 마치 자신이 더 이상 아버지의 고통을 없애줄 수 없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차요한은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병을 갖고 있어 환자의 고통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 고통을 경감시키려 노력한다. 통증 그 자체가 아닌 그 사람을 들여다보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무통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자신의 질환을 보여주면서 그래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던진다. 타인의 고통을 우리는 완벽히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겪는 고통이 있어 타인의 그것을 미루어 이해하려 노력한다.

 

자신이 겪는 고통 혹은 우리가 갖게 되는 어떤 결핍이나 상실감. 그것이 있어 우리는 어쩌면 타인의 고통과 결핍, 상실감 같은 걸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통증은 그저 고통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해하게 만드는 신호라고도 볼 수 있다. <의사 요한>은 이처럼 통증이라는 화두를 통해 우리네 인간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그려내는 면이 있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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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의 순간’, 청춘의 미숙함이 풋풋함으로 다가오는 이유

 

미숙한 청춘의 아픔과 풋풋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건 JTBC 월화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이 포착한 이 드라마만의 매력일 게다.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자꾸만 오해를 받는 최준우(옹성우). 이전 학교에서 폭행과 절도로 강제전학을 당했다는 사실은 전학 온 학교에서도 단 하루 만에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쓰게 만든다.

 

실제로는 반장으로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까지 완벽한 신뢰를 얻고 있는 마휘영(신승호)의 짓이라는 사실을 최준우는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한다. 하지만 최준우는 마휘영이 앞에서는 그를 도와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그를 도둑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는 그 앞에 나선다. 그러자 마휘영이 드디어 그 숨겨진 얼굴을 드러낸다. “알면 어쩔건데? 이 쓰레기 새끼야.” 그러자 최준우도 그토록 드러내지 않던 속내를 꺼내놓는다. “쓰레기는 너 아냐?”

 

<열여덟의 순간>의 이 엔딩 장면은 최준우라는 무존재감의 청춘이 자기 존재를 드디어 드러내는 순간이다. 드라마는 마휘영이라는 인물을 그저 악역으로만 세우려 하지 않았다. 그가 겪는 스트레스 또한 보여주었다. 학원에서는 공부 천재 조상훈(김도완)과 비교되고, 집에서는 모든 것에서 잘 난 형과 비교된다. 완벽하고 싶은 마휘영은 그 스트레스 때문에 아토피로 쉴 새 없이 손을 긁어댄다.

 

그런 그가 보복하듯 학원 선생의 시계를 슬쩍 쓰레기봉투에 버린 것이고, 마침 아르바이트생으로 거길 왔다가 그걸 수거해간 최준우가 범인으로 몰렸던 것이다. 마휘영이 최준우에게 “쓰레기 새끼야”라고 말한 건 그래서 어쩌면 스스로에게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완벽하고 싶고 그래서 그런 척하지만 사실은 가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자신에게.

 

<열여덟의 순간> 첫 회는 이렇게 미숙해서 아픈 청춘들을 전면에 끄집어낸다. 최준우는 유수빈(김향기)이 안타까워했던 것처럼 ‘무존재감’으로 살아가는 청춘이다. 그 ‘무존재감’을 잘 표상하는 건 그의 이름표다. 그는 최준우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전학 와 마휘영의 부탁으로 얻게 된 중고 교복의 이태호라는 이름을 달고 다닌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면서 붙은 박영배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이름이 최준우라고 애써 알리려 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런 그에게 유수빈이 다가와 이태호라는 이름표를 떼내 주며 말한다. “전학생. 너 귀신? 무슨 애가 색깔이 없어. 분하지 않아? 존재감 없이 사는 거.” 대신 종이를 붙여 최준우라는 이름을 써준 후 돌아서며 유수빈은 한 마디를 콕 집어낸다. “잘 가라 전학생. 잘 살아. 계속 그렇게 존재감 없이.”

 

한편 마휘영은 최준우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자신을 가장하기도 한다. 아마도 마휘영이 최준우를 “쓰레기”라고 부른 건 그런 가장된 모습을 알아차렸다는 사실 때문일 게다. 둘은 그래서 부딪치고 갈등하며 상처를 줄 것이지만 어쩌면 서로의 부족한 면들을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무존재감으로 어딘가 아픔을 갖고 있는 듯한 최준우라는 인물이 주는 몰입감이 적지 않다. 그 모습은 어딘지 매일 입시와 경쟁 사회 속에서 버텨내고 있는 청춘들의 ‘침묵’을 보는 듯해서다. 소소한 청춘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섬세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열여덟의 순간>에서 젊은 날의 미숙했지만 풋풋했던 시절을 떠올려보게 되는 건 그 무존재감에 대한 안타까움과 공감이 함께 하기 때문일 게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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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탄 이영자, 들어주고 공감해준 게 비결이라는 건

올해 <2018 KBS 연예대상>의 주인공은 이영자가 됐다. 함께 대상 후보로 <해피투게더4>의 유재석, <1박2일>의 김준호, <불후의 명곡>의 신동엽,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이동국 등이 함께 후보에 올랐지만 대상은 <안녕하세요>의 이영자에게 돌아갔다. 후보와 그들이 출연한 프로그램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올해 KBS의 예능프로그램들은 새로운 시도들을 하긴 했지만 그만한 성과를 얻어내진 못했다. 꽤 오래도록 장수한 프로그램들이 그나마 그 자리를 지키며 선전했다는 걸 후보 명단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상의 주인공 이영자가 출연한 <안녕하세요>도 어느 덧 8년이나 된 프로그램이다. 초반에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아 고전하기도 했지만 차츰 자리를 잡아 지금껏 살아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고민을 가진 비연예인 출연자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올라오는 이 프로그램이 지금도 매주 화제가 되고 있는 걸 보면 8년 전의 시도가 꽤 앞선 시도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은 비연예인 출연이 익숙해져가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지만.

이영자가 <2018 KBS 연예대상>의 주인공이 된 것에 대한 가장 큰 의미는 ‘사상 첫 여성 대상 수상자’라는 점이다. 지금껏 연말 <연예대상>을 보면 항상 재연되던 것이 남성 예능인들만의 잔치였다는 걸 떠올려 보면 이영자의 대상은 그 무게감이 실감된다. 여전히 여성 예능인들이 맘껏 활약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고, 기껏 여성 예능인들을 캐스팅하고도 그 특별한 색깔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와중에도 올해 유독 여성 예능인들이 주목받는 건 그간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활약이 신선하게 느껴져서다. 

MBC에서도 <연예대상> 후보로 이영자와 함께 박나래가 거론되고 있는 데 대중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건 그래서다.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의 변화 속도가 느리고 그래서 KBS 같은 경우 대상 후보로 모두 장수프로그램들이 세워지고 있는 와중에, 여성 예능인들만큼은 현재의 변화를 말해주는 신선함이 있다. 남성 예능인 중심으로 많이 만들어져 왔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너무 오래 반복되어 그 자리를 지키다보니 이영자나 박나래 같은 여성 예능인이 활약하는 프로그램이 더 참신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대상을 수상한 이영자는 “웃기고 뭉클하고 감사하다”는 말로 소감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상이 “내가 잘해서만 받은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며 “속 얘기를 다 풀어주신 고민의 주인공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이것은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의 남다른 색깔은 물론이고 거기서 자신이 맡게 된 새로운 역할 또한 설명하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주인공이기보다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게 하는 역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론 공감하고 때론 공분하기도 하며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역할. <안녕하세요>는 연예인들에게 그 새로운 시대에 맞는 역할을 부여한 프로그램이었고, 이영자는 그 역할을 그 누구보다 잘 해낸 주인공이었다. 

사실 올해는 예능계 전체가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한 해였다. 몇몇 프로그램들이 주목을 받았지만, 올해를 대표하는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이렇게 된 건 스타 MC 체제로 움직이던 예능계가 이제는 그 주역을 PD나 보통사람들로 옮겨가는 격변기였기 때문이다. 기존 스타 MC들로 불리던 예능인들은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게 됐다.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일. 올해 이영자만큼 이를 잘 수행해낸 예능인도 드물었다. 다시 시작된 영자의 전성시대가 말하는 의미를 곰곰이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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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작 '붉은 달 푸른 해'의 미로에서 느끼는 끔찍한 현실

보면 볼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미궁은 이상하게도 자꾸만 그 안을 더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이고, 또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MBC 수목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는 오랜만에 보는 문제작이다. 이를 문제작이라고 말하는 건, 기존의 드라마 문법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색다른 길을 찾아감으로써 시청자들을 혼돈에 빠뜨리고, 그 미궁의 늪에서 허우적대게 만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미궁 속으로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드라마의 독특한 힘 때문이다.

드라마는 서로 연관이 없는 듯한 여러 개의 살인사건들을 시작부터 툭툭 던져놓는다.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형을 살고 나온 박지혜(하주희)가 폐놀이공원에 세워진 자동차 안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고, 그를 죽인 범인은 그의 범죄를 혐오하던 의사로 역시 자해 끝에 자살하고 만다. 두 번째 사건은 평소 아내와 아이를 학대해오던 김동숙(김여진)의 남편이 차 안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남편을 죽인 걸로 의심받던 김동숙은 ‘붉은 울음’이라는 인물이 남편 살해 방법을 알려줬다고 증언한다. 세 번째 사건은 주인공인 차우경(김선아)이 일하는 한울 아동센터 창고에서 미라가 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그 미라가 된 여자에게는 호적 신고가 되지 않은 딸이 있다는 게 밝혀진다.

사건들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드라마는 이 사건들이 동일한 키워드들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그 연결고리를 만든다. 그건 죽음과 아이 그리고 시다. 첫 번째 사건의 희생자인 박지혜의 집에서는 서정주의 시 ‘문둥이’의 한 구절인 ‘보리밭에 달 뜨면’이라는 글귀가 발견되었고, 자동차 변사사건에서 죽은 남자가 갖고 있었던 300만원이 말려진 신문에는 ‘짐승스런 울음은 울음같이 달더라’라는 싯구가 발견되며, 또 미라가 된 여인의 뒷벽에는 천상병 시인의 시 ‘썩어서 허물어진 살, 그 죄의 무게’라는 문구가 발견된다.

그래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강지헌(이이경)은 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차우경의 믿지 못할 이야기를 점점 믿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이 관련 없어 보이는 사건들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어찌 보면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차우경이라는 점이다. 차우경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아마도 어린 시절 비슷한 학대를 경험했을 것이라 여겨지는 이 인물은 어느 날 한 낮에 몰고 가던 차에 치어 아이가 죽는 사고를 겪은 후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과거의 트라우마가 눈앞에 환시처럼 등장하기 시작한다.

사실 죽은 건 사내아이였지만 그 아이가 초록원피스를 입은 소녀라고 생각하는 차우경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이 소녀를 보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소녀가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살인사건들의 실마리 속으로 그를 인도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학대받는 아이들을 구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 제각각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어째서 연결되어 있고, 그 배후에 있는 ‘붉은 울음’이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서 동시에 이 사건을 추적하고 있는 차우경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기 시작한다. 도대체 초록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누구일까. 그리고 차우경이 이 소녀의 환시를 계속 볼 정도로 겪게 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드라마는 그래서 이 살인사건들의 연결고리가 되는 배후를 추적하면서 동시에 차우경의 읽어버린 기억 속 초록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누구인가를 추적한다. 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그 역학구조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즉 차우경은 어린 시절 겪은 어떤 일 때문에 학대받는 아이들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고 있고, 바로 그런 집착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을 추적하는 스릴러에서 주인공이 움직이게 되는 동력으로 자신의 트라우마가 작용한다는 건 흥미로운 발상이다.

사건은 아직 제대로 드러난 게 없기 때문에 분명한 전말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차우경이 갖고 있고 그래서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집착이 조금씩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이 생겨나게 된다는 점이다. 시청자들도 미치도록 궁금하고 거기 어디선가 학대를 겪고 있을 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차우경처럼 구해내고 싶어진다. 심지어는 그 냉혹한 어른들을 단죄하고 싶어진다. 이건 아마도 작가는 사건의 전말을 쉽게 알려주지 않고 그 끔찍하지만 앞뒤를 구분하기 힘든 미로 속에 시청자들을 헤매게 만든 이유일 게다. 적어도 우리는 그 미로를 헤매는 동안 어딘가 있을 지도 모르는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떠올리고 경각심을 갖게 될 테니 말이다.

너무 많은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들이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다보니 이제는 점점 둔감해져버린 현실이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벌어지는 믿기 힘든 사건들이나 부모 같지 않은 이들이 저지르는 학대 사건도 그 때는 끔찍했다가 차츰 잊히기 일쑤다. 그러니 이 비정한 어른들의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의 미로 속에 잠시간 빠뜨리는 것으로 이 드라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해님달님’으로 알려진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말하는 호랑이가 등장하는 잔혹동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 드라마는 그래서 진짜 어른이 잡혀 먹히고 아이들마저 잡아먹으려 달려드는 비정한 세상을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통해 보여준다. 한참을 보다보면 차우경이 그러한 것처럼 나라도 나서서 동아줄을 내려주고픈 분노와 죄책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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