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장 기안장’, 기안84의 상상을 현실화한 진의 실행, 지예은의 찐공감

대환장 기안장

“나도 울릉도 구경가고 싶다.” 넷플릭스 예능 <대환장 기안장>에서 기안84는 창밖으로 펼쳐진 울릉도의 풍광을 보며 말한다. 화창한 날씨에 더더욱 빛나는 울릉도의 풍광이다. 그러자 옆에 앉은 지예은이 신세한탄하듯이 말을 덧붙인다. “나도, 울릉도 왔는데...” 그러자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기안84의 마음이 흔들린다. “우리 한 번만 어디 갔다 오면 안될까?” 기안84의 말에 지예은은 발까지 동동거리며 “한번만 가자”고 애원한다.

 

그런데 기안84가 그렇게 말하며 눈치를 보는 건 다름 아닌 진이다. 사장이 기안84이고 진은 사원(?)이지만, 오히려 기안84가 진의 눈치를 보는 건 요령이나 타협 따위는 없이 원칙을 고집하는 그의 고집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사장님 놀러왔어?” 그 말에 지예은이 “그럼 우리는 구경도 못해?”라고 묻자 진의 단호한 한 마디가 이어진다. “못하지. 우리는 일하러 온 거고 이분들이 구경하러 온 건데. 우리는 놀러온 게 아니야.”

 

결국 기안84는 꼬리를 내린다. “그래, 놀러온 게 아니지.” 그리고 반성한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네가 잡아줘서 너무 고맙다. 야, 진짜 너 아니었으면 이 봉도 없어지고 1층에 문도 뚫고 지금 다 했을 텐데.. 세탁기 하나 장만하고... 근데 그건 기안장이 아니야.” 단호한 진에 굴복하며 사죄하는 기안84의 모습에 손님들은 빵 터진다. 혹여나 울릉도 구경이라도 갈 줄 알았던 지예은의 짜증 가득한 투덜거림에 또 한번 웃음이 터진다. 

 

이 장면은 <대환장 기안장>의 완벽한 케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 기안84조차 자신이 웹툰처럼 상상한 기안장이 실제로는 어떨지 전혀 감이 없었다. 그래서 막상 처음 기안장에 왔을 때만 해도 자신조차 황당하고 불편한 그 곳에서 자꾸만 타협하고픈 마음을 먹게 됐다. 자신 혼자 불편하다면 상관없는데, 자신의 상상으로 손님들이 불편해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약해진 것. 

 

마침 목수인 손님이 오자 벽을 뚫어 2층과 1층을 봉으로 오르락 내리락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면 어떨까 기안84가 고민했지만, 그 때 진이 나서 결사반대했다. 그건 기안장의 정체성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실로 기안장에 투숙하겠다며 지원한 손님들이라면, 저마다 기안84식의 하룻밤을 기대했을 터였다. <효리네 민박> 제작진이 만들었지만 기안84가 출연하니 <효리네 민박> 지옥편이 될 거라고 지원자들이 예상했던 건 그래서였다. 

 

실제로 “너무 쉽게 집에 들어가는 게 꼴보기 싫었다”며 2층으로 난 문을 설계했던 식으로 기안장에는 기안84가 키득거리며 내놓은 상상들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르내리는게 불편해서 내려올 때 쓰는 슬라이드로 올라가는 걸 손님들에게 허용할까도 고민했던 기안84였다. 그 때마다 그걸 막은 것도 진이었다. 진은 문지기를 자청해 슬라이드로 오르려는 이들에게 다시 내려가서 제대로 클라이밍을 해 문으로 들어오라고 지적하곤 했다. 

 

상상은 기안84가 했지만 그걸 원칙 그대로 굴러가게 만든 건 그래서 진의 역할이 지대했다. 기안84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그는 사장이 흔들릴 때마다 멘탈을 잡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다치거나 일정 때문에 사장이 부재할 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든든한 역할을 했다. 매끼 손님들이 요구하는 음식을 맛나게 요리해주고, 기안84가 부재할 때 손님들과 광란의 밤(?)을 즐기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의 원칙을 지키는 모습은 그가 왜 월드클래스인가를 입증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애초 기안84와 함께 그가 사는 방식을 함께 살아보고 싶다며 이 프로그램에 자원한 진은 그 선택 그대로 요령 없이 기안84의 삶 그대로를 체험한 셈이었다. 힘들고 불편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있어, 이 힘겨움과 불편은 낭만이 될 수 있었다. 

 

여기에 지예은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찐 공감’ 역시 세 사람의 케미에 균형을 맞춰줬다. 기안84와 진이 ‘낭만’ 운운하며 힘든 상황들을 감당하려 할 때, 지예은은 MZ대세 다운 솔직한 투덜거림으로 이 상황이 얼마나 힘든가를 공감하게 했다. 과도한 낭만으로만 기울어졌다면 감흥이 덜했을 이 체험에 현실적인 찐 공감으로 균형감을 줬다고나 할까. 

 

<대환장 기안장>은 기안84의 웹툰적 상상력과, 진의 원칙을 지키는 실행력 그리고 낭만으로 붕붕 떠오르는 기안장에 지예은이 현실감을 부여하는 찐 공감이 더해져 완성됐다. 9편으로 마무리된 시즌1은 사실상 이 실험적인 도전의 적응기에 가까웠다. 적응할만 하니까 끝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시즌2로 돌아온다면 적응기에서 한 발 더 나간 기안장의 이야기를 보고싶다. 물론 기안84와 진, 지예은이 만들어낸 완벽한 앙상블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사진:넷플릭스)

‘눈물의 여왕’, 김지원은 ‘행복한 왕자’ 같은 변화를 보여줄까

눈물의 여왕

“내가 어렸을 때 <행복한 왕자> 보고 느낀 건 딱 하나였어. ‘하여튼,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아니, 왕자 입장에서도 이런 데 살 때가 좋았겠지. 괜히 밖에 나갔다가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어? 보석이며 눈알이며 다 남 퍼주고 에휴, 쯧쯧쯧.”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해인(김지원)은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동화 <행복한 왕자>에 대해 현우(김수현)에게 그렇게 말한다. 

 

3년 전 너무나 사이가 좋았던 두 사람이 독일 포츠담 상수시 궁전을 찾았을 때의 모습이다. 그 궁전이 바로 그 행복한 왕자가 살던 곳이었다는 현우의 이야기에 해인이 보인 반응이었다. 알다시피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는 생전 부유하게 살 때는 몰랐지만 마을 광장 높은 탑 위에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채 서있는 동상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의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이 많다는 걸 알고는 눈물을 흘리던 왕자의 이야기다. 그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제비에게 사파이어로 된 제 눈까지 떼서 나누어주는 이야기. 

 

<눈물의 여왕>이 갑자기 에필로그를 빌어 꺼내놓은 동화 <행복한 왕자> 이야기는, 해인이 현재 마주한 상황과 그로 인해 그가 겪을 변화를 예감하게 만든다. 퀸즈백화점 사장으로 도도하게 세상 위에 군림하며 살아왔던 해인은 갑작스런 희귀병으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변화를 겪는다. 먼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걸맞게 남편 현우에 대한 감정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부정맥도 아닌데 남편 보고 심장이 떨리고, 어떤 날엔 남편 눈망울을 보면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가도 어떤 날엔 남편의 넓은 가슴에 안기고 싶어진단다. 

 

물론 이 도도한 여왕이 그런 자신의 감정을 애써 부인하려하고 비서에게 마치 남이야기처럼 하는 장면은 어딘가 설레면서도 빵빵 터지는 코미디로 그려진다. 너무 섹시해보여서 세상에 내놔도 괜찮을까 싶어진다며 마치 남 이야기하듯 하는 해인의 이야기가 설레면서도, “진짜 꼭 병원 가 보라 그러세요. 아픈 거야 그건.”이라는 나비서(윤보미)의 자못 진지한 리액션은 여지없이 그 설렘을 깨고 들어와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하지만 이 코미디는 어딘가 진짜 해인에게서 벌어지는 심경의 변화에 대한 예고다. 주치의를 찾은 해인은 자신이 이상하다며 그 증상을 이렇게 말한다. “불쌍한 걸 보면 동정심이 생겨요.” 스스로 “피가 차가운 여자”였다며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는 해인은 자꾸만 “공감이 된다”는 ‘증상(?)’을 이야기한다. 사무실에 든 잡상인 남자에 화를 내다가 그의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있다는 이야기에 짐짓 나비서에게 화를 내는 척 그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있을 때까지만 봐줄 거라며 그 남자를 도와준다. 

 

아픈 엄마가 수술을 해야 하는데 시집 갈 때 쓸 돈이라며 수술을 하지 않으려 한다며 우는 직원의 이야기를 화장실에서 몰래 듣고는 “아픈 거야 고치면 되지 왜 울고 난리”라고 툴툴 대면서도 그 이야기에 공감되어 눈물을 보인다. “제가 원래 안 그랬거든요. 누가 아프거나 말거나 울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도 없었는데 왜 자꾸 공감이 돼죠? 남편 보고 설레질 않나? 아무래도 제 뇌가 정상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거든요?” 주치의에게 해인이 털어놓는 이 말은 그에게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잘 보여준다. 

 

게다가 해인은 이제 “안하던 짓”을 해보겠다고 공언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겠다고 남들 다 하는 거 안하고 살았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억울하단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거 이제 하면서 살겠단다. 그건 과연 ‘행복한 왕자’의 삶을 살겠다는 것일까. 경제성이니 효율이니 하면서 1조클럽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싶은 것들도 안하고 감정 또한 드러내지 않으며 ‘피가 차가운 여자’로 살아왔던 것 대신,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단다. 

 

<눈물의 여왕>은 이제 이 드라마의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꺼내놓고 있다. 그 눈물은 아마도 저 ‘행복한 왕자’가 비로소 동상이 되어 마을을 들여다보고는 알게 됐던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향해 흘리는 것일 테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고, 눈물 따위는 결코 흘릴 것 같지 않았던 해인의 눈물은 그래서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해인의 이런 변화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윤은성(박성훈)이 돈이면 누군가의 은인이자 가족이나 다름 없는 반려견을 죽여도 상관없다 생각하는 감정 없고 공감도 못하는 사이코 패스라는 점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해준다. 약자들을 향해 눈물을 흘리고 가진 것들을 다 내어주면서 드디어 진짜 행복을 찾아가는 해인과, 더 많은 걸 갖기 위해 감정 없는 사이코 패스처럼 살아가는 윤은성으로 대변되는 자본화된 비정한 세상에 대한 대결구도가 그것이다. 

 

해인은 사랑에 대해 윤은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행복한 걸 함께하면서 달콤한 말을 해주는 게 아니라 싫어서 죽을 것 같은 걸 함께 견뎌주는 거야. 어디에 도망가지 않고 옆에 있는 거.” 달콤함이 아니라 쓴 걸 함께 견뎌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그걸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일 수 있다고 해인은 말하고 있다. 그는 불치병에 걸렸고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았지만 그래서 어떤 의미로 보면 그건 병이 아니라 어쩌면 고쳐지는 중인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눈물의 여왕>은 그래서 이 해인이라는 인물의 감정 변화를 기분좋게 꺼내놓는 과정이 작품의 메시지나 다름 없는 관건인 드라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역할을 맡은 김지원이라는 배우의 연기는 대체불가라는 생각이 든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만 같은 도도한 모습에서 마치 그 얼음이 녹아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그 변화를 이토록 설득력 있게 연기해내고 있으니. 그가 앞으로 할 ‘안하던 짓’을 계속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사진:tvN)

오랜만에 느끼는 ‘유퀴즈’의 맛, 가슴이 따듯해졌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밤 10시에 한번 분만이 있어서 교수님께 전화를 드리고 애기 받고 집에 가셨는데, 한 1시쯤 또 분만이 있어서 또 전화를 드렸어요. 다시 집에 가셨는데 새벽 4시에 불러야 되는 상황이 온 거예요. 저는 그 때 너무 피곤하실 것 같고 너무 힘 드실 것 같았는데 그 때 분만장에 들어오시면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오시는 거예요. 그런 면이 되게 멋있고 환자를 진짜 엄청 사랑하시는 분이세요.”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이 ‘명의’편에서 소개한 산부인과 전종관 교수님에 대해 제자이자 지난 ‘슬기로운 의사생활’편에 출연하기도 했던 남궁혜륜 교수는 그렇게 말했다. 애초 ‘명의’라는 부제를 대놓고 달고 나왔을 때 약간의 선입견이 생겼던 게 사실이다. 그건 최근 워낙 여러 매체와 프로그램들을 통해 의사들이 등장하고(이른바 쇼닥터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그들에게 ‘명의’라는 칭호를 함부로 붙여 생긴 선입견이다. 

 

하지만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첫 출연자로 소개한 전종관 교수를 보자 그런 선입견은 눈녹듯 사라졌다. 오히려 이 프로그램은 진정한 ‘명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 질문에 대해 전종관 교수가 보여준 건 한없는 환자에 대한 애정이다. 새벽에 계속 불러내도 콧노래를 부르며 기꺼이 분만실을 찾아갈 정도의 마음을 가진 의사. 

 

기억에 남는 환자를 묻는 질문에도 그의 답은 남달랐다. 그는 산모를 잃고 절망했던 사연을 들려줬다. 그런 일은 겪어보지 않으면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고 했고 그것 때문에 심지어 분만을 접는 의사도 많다고 했다. 전종관 교수는 “빚을 갚자는 생각”으로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으면 살려야 되겠다”며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그 산모가 결코 잊혀지지 않고 죽을 때까지 기억을 안고 가겠다며. 

 

산모에 대한 전종관 교수의 따뜻한 마음이 가장 크게 느껴진 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속설로 얘기되곤 하는 산모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거나, 혹은 태교를 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강하게 거부하는 모습에서였다. 전종관 교수는 실제로 임신 12주까지 아기가 잘못 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것이 안정을 취하지 않아서가 결코 아니라고 했고, 또 태교 역시 근거가 없는 일이라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에 담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일하는 여성들이나 태교를 할 시간이 없는 여성들이 이 때문에 죄책감을 갖고 또 아이가 이상이 생겼을 때 태교를 하지 않아서 그런 일을 겪는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어서라고 했다. 전종관 교수는 그런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고 “엄마는 자기 일을 잘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남다른 의술을 갖고 있어서보다는 남다른 환자에 대한 마음을 갖는 일. 그것이 명의라는 걸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전종관 교수처럼 두 번째 출연자인 간담췌외과 강창무 교수 역시 “가족처럼 진료”하는 걸 자신의 모토로 삼고 있는 의사였다. 그런데 거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의과대 2년차 시절 어머니가 직장암 수술이 재발되어 마지막 한 달 간을 고생하다 돌아가신 경험을 한 것이었다. 

 

만일 “신의 손”이 있다면 무얼 하고 싶냐는 질문에 “정말 엄마를 살려주고 싶어요”라며 아이 같이 울먹이는 강창무 교수는 말기암 환자의 가족이었던 그 경험 때문에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다. 어머니가 책에 없는 가르침을 주고 떠나셨다고 생각하며 그 아픔을 이겨냈다는 그는 암이 생명을 끊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처럼 두려운 존재가 아니게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환자의 마음에 대한 남다른 공감. 어쩌면 이것이 진짜 명의라는 걸 생식 내분비학 의사인 김미란 교수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본인이 유방암 투병을 했다는 그는 투병 와중에도 찾아오는 환자들을 봤다고 했다. 한 환자가 남긴 글에는 그가 얼마나 환자들의 마음을 생각하는지가 묻어난다. ‘내가 울먹이며 “잘 부탁드려요” 하니 웃으시며 발치에 있는 로봇기계를 가리키며 “저게 35억이야. 우리 00씨는 그것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야.“하며 긴장을 풀어주셨다.’ 그는 이것이 자신이 환자로서 경험을 하면서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출연한 산간마을 슈바이처 양창모 선생님은 소양강댐 수몰지 주민을 위한 지원서비스의 일환으로 왕진을 해온 의사로 ‘의사로서의 일’이 단지 병을 고쳐드리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들려줬다. 일일이 집집을 찾아다니며 진료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난간을 만들기도 하며 때론 반찬 서비스도 해드리는 ‘돌봄’이 그가 해온 일들이었다. 관절염인데 좌식생활을 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회관에 입식 테이블을 놔드리고, 미끄러워 자칫 넘어질 수 있는 화장실 바닥에 미끄럼 방지 패드를 붙여주는 일까지가 그가 하는 의사로서의 일이었다. “일어나볼 게요” 할 때 그제서야 커피를 내놓을 정도로 외로움을 느끼시는 산간마을의 어르신들을 이야기하며, 그는 명의가 “환자의 삶 가까이 있는 의사”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이번 ‘명의’ 편이 마치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애초부터 추구했고 또 앞으로도 가야할 길에 대한 초심을 담아낸 면이 있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말미에 방송을 정리하며 “명의란?”이란 자막을 넣은 <유퀴즈 온 더 블럭>은 그 답으로 ‘경이로운 탄생의 순간마다 언제든 준비가 돼 있는 의사(전종관)’, ‘의사이기 전에 환자의 보호자로 겪었던 애환 그 경험을 통해 마음을 어루만지는 의사(강창무)’, ‘타인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 내 아픔을 누르고 진료에 나선 의사(김미란)’, ‘환자를 직접 찾아다니며 삶의 맥락 속에 고통을 짚어주는 의사(양창모)’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환자들에게 제 이름을 널리 알리기보다 환자들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하려는 사람. 증상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그것을 둘러싼 삶을 보는 사람. 명예를 좇기보다는 공감을 좇는 사람. 그럼으로 수많은 환자의 환부에 새살을 돋우는 사람. 굳이 저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타인의 삶에 따듯한 기억으로 남는 그 위대함의 또 다른 단어가 명의가 아닐까.’라는 답을 적어 넣었다. 

 

이 답은 <유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위대한 서민들을 담아온 특별한 프로그램에게도 남다른 의미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대단한 성공을 거둬 유명한 사람들보다는 제 자리에서 남다른 따듯한 마음으로 주변사람들에게 결코 작지 않은 희망을 전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조명하는 것. 그래서 시청률 같은 수치가 아니라도 시청자들에게 따듯한 기억을 남는 그런 프로그램이 되는 것. 적어도 ‘명의’편이 보여준 그 위대한 초심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다.(사진:tvN)

'너를 만났다2', VR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게 할 수 있을까

 

"사실 오늘 촬영하기 전에는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화가 났었거든요. 오늘 체험하고 나니까.. 김용균씨의 갤러리랑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냥 저희랑 똑같은 그냥 청년인거예요. 그래서 그걸 보고 다른 마음보다는 좀..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하고 싶었던 게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든 것 같아요."

 

MBC VR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2>가 '용균이를 만났다'라는 소제목으로 다룬 VR은 2018년 12월10일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고 김용균의 당시 실제 작업환경과 그의 소소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실제 그 상황을 체험해보는 건 확실히 다를 수 있었다. 대학졸업 예정자인 권용태씨는 그 체험을 통해 김용균씨 역시 자신과 똑같은 청년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러면서 그 작업환경이 얼마나 무서웠을까를 공감했다.

 

취업준비생이라는 신지영씨 역시 비슷한 공감을 이야기했다. VR로 다시 볼 수 있게 된 김용균씨의 핸드폰에서 취업 관련 자료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그건 자신의 핸드폰 속 내용들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것. 그저 "취업 잘해서 부모님한테 효도하고 싶은" 순수한 친구 같이 보인 김용균씨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냐고 묻자 신지영씨는 딱 한 마디를 건넸다. "그냥 그만두라고 하고 싶었어요."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이종려 대학강사는 VR 체험이 사뭇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되게 안아주고 싶더라고요. 혼자서 그렇게 밤늦게.." 그리고 기성세대의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가를 실감했다고 했다. "그건 조금 기성세대의 무관심에 무감각에서 일어난 사고가 아닌가... 그렇게 경험 없는 아이를 혼자서 그렇게..."

 

그러면서 무관심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의 마음을 전했다. "제가 그런 사회 기사가 났는데도 무관심했던 거에 대해서 굉장히 지금 마음이... 그냥 처음에 기사만 볼 때는 외면을 했었는데 제가 실제로 VR을 보면서 이게 몸으로 와 닿으니까 더 무섭네요. 이 무감각이, 기성세대의 무감각이 굉장히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VR 기술은 과연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아마도 VR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게임 같은 감각과 쾌감이 아닐까. 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돌아온 <너를 만났다>는 VR이 어떻게 '휴먼'을 지향할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로망스'편에서는 먼저 떠난 아내를 만난 남편의 절절한 사랑을 담아냈고, '용균이를 만났다'는 보다 사회적 의미를 갖는 VR의 활용 방식으로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장을 열어 보였다.

 

우리가 신문 사회면에서 한번 읽고 넘어가곤 했던 고 김용균씨의 아픈 이야기를 VR로 재연해 체험해보는 시간은 그 막연함을 실체적으로 접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같은 또래의 젊은 청년들에게는 자신들과 별 다를 바 없는 김용균씨의 모습을 통해, 그런 일들이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자신들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공감하게 했고, 기성세대들에게는 어른들의 무관심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실감하게 했다.

 

사실 VR이나 AI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어떤 미래를 가져오게 될 지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막연한 장밋빛 환상이나 정반대의 우려가 공존하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활용되는가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너를 만났다>는 하나의 해답을 던져준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 수 없었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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