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의 의리, 후배들의 신뢰, 웃음 뒤의 눈물

 

때로는 상을 받은 사람들보다 더 시상식에서 빛나는 인물이 있다. 올해는 KBS 연예대상에서 무관에 그친 김준호가 그렇다. 그는 대상을 받지 못했지만 무수한 동료, 후배 개그맨들로부터 대상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KBS연예대상(사진출처:KBS)'

이렇게 된 것은 최근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코코엔터인먼트의 위기 때문이었다. 공동대표인 김모씨가 회삿돈을 횡령해 도주함으로써 회사에 대한 흉흉한 루머들이 나돌았던 것. 특히 소속 개그맨들의 이탈로 분열 조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들은 김준호는 물론이고 소속 개그맨들에게도 뼈아픈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마치 비온 뒤에 땅이 굳듯, 그런 루머와 추측성 기사들을 일축하며 시상 무대에 오른 개그맨들은 일제히 김준호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KBS 연예대상에서는 김준현의 감동적인 존경발언이 김준호를 울렸고, 이어서 김대희, 조윤호, 김지민 등이 그에 대한 감사와 신뢰의 뜻을 전했다.

 

그에 대한 언급은 그가 전혀 출연하고 있지 않은 SBS 연예대상에서도 흘러나왔다. 그의 소속사 개그맨들은 KBS <개그콘서트> 뿐만 아니라 SBS <웃찾사>tvN <코미디 빅리그>에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S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우수상과 최우수상 수상자인 김현정과 홍윤화는 김준호에 대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이국주는 가장 힘든 분은 김준호 선배 아닌가 생각한다. 그 소속사에 있다. 배신 때리지 않고 똘똘 뭉쳐서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코코엔터 사랑한다.”고 말해 그에 대한 여전한 신뢰와 믿음을 드러냈다. 사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된 인물이 이국주였다. 최근 대세 개그우먼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소속사의 이번 사태의 충격도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국주는 변함없는 마음을 전했다.

 

개그맨들이 이처럼 일제히 김준호에 대한 지지를 하고 나선 데는 이들의 특별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S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홍윤화가 거론한 김준호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그 특별한 관계가 묻어난다. 그녀는 제가 가장 힘들 때 제 편이 된 사람이 김준호 선배였다. 선배가 힘들 때 저도 편이 돼 드리겠다. 힘내라. 날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국주와 김준호의 관계 역시 방송가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국주가 어렵던 시절부터 꾸준히 김준호가 그녀를 지지해줬기 때문에 지금의 이국주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코코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는 깨질 위기에 처했을지 몰라도, 김준호와 개그맨들 사이의 끈끈한 관계는 오히려 더 돈독해진 셈이다.

 

김준호가 든든히 지지해온 후배 개그맨들이 시상대에 올라 상을 받는 모습을 보며 그는 얼마나 흐뭇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대상을 받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어려운 시기에 그들의 여전한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지상파 3사의 올해 연예대상을 보면 공로상의 성격이 짙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KBS가 유재석에게 또 SBS가 이경규에게 대상을 준 것은 올해의 성과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간의 공로를 치하하는 성격이 강했다. MBC는 물론 <무한도전>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성과를 만든 프로그램이지만 유재석의 대상 역시 그간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를 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딘지 늘 봐 오던 대상 수상의 풍경들 속에서 오히려 김준호와 개그맨들의 변함없는 의리가 더 눈에 띈다. 또한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12><개그콘서트>에서 온몸을 던져 웃음을 주는 그 모습에서는 무대에 서서 웃음을 전하는 광대의 눈물마저 엿보게 된다. 실로 올해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무관의 김준호가 아니었을까 싶다.

 

박명수에게서 광대의 기질을 느낄 때

 

마치 찰리 채플린이 <독재자>라는 영화를 통해 세상의 독재자들을 희화화했듯이 <무한도전> 선거특집의 박명수는 선거에 즈음해 벌어지는 온갖 정치인들의 행태들을 풍자하는 듯 보였다. 선거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유재석 저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네거티브 선거 운동에 대한 뾰족한 풍자를 보여주었고, 수박 한 통을 사면서도 가격을 깎는 모습이나 그걸 들고 선배 한무를 찾아 선거운동 청탁을 하는 장면도 예사롭지 않았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흥미로운 건 박명수가 자신을 ‘MBC의 성골로 캐릭터화 했다는 점이다. MBC의 순수혈통, MBC의 가족, MBC의 상징으로 자신을 내세운 박명수는 후배들을 챙기는 모습을 캠페인 영상으로 내보냈지만, 공개된 메이킹 필름 속에서는 후배들에게 명령하고 호통 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인들의 거짓 이미지를 에둘러 비판했다.

 

자신의 지지율이 별로 없어 당선 가능성이 사라지자 노홍철과 유재석을 오가며 자신의 이득만을 챙기는 철새 정치인의 모습을 연출해 보여주었고, TV 토론회에서는 갑자기 유재석 지지를 선언했다가 이를 철회하고 시민 논객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난데없이 스튜디오에서 전화연결을 해 토론회에 참여하다 진행자인 정관용과 대립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기도 한 그는 갑자기 정관용의 팬을 자처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 특집을 통해 보여준 박명수의 모습은 한 마디로 망가짐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인들의 거드름을 희화화시키기도 했고 성골을 자처하며 관계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의 유착을 풍자하기도 했으며, 거짓 이미지 정치와 철새 정치인들을 비판하다가 나중에는 시민논객으로 변신하는 등 끊임없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정치 풍자의 폭은 입체적으로 다양해질 수 있었다.

 

이것은 유재석이 기본에 충실하자고 외치고 노홍철이 투명성을 강조하며 또 정형돈이 소탈한 서민적 이미지를 계속 보여주고 하하의 의리를 내세우는 그 일관된 모습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박명수는 당선에 대한 의지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정치인의 희화화된 모습으로 한없이 망가뜨려 풍자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박명수가 지금껏 일관되게 해왔던 캐릭터 때문이다. 그는 1인자를 꿈꾸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지만 결코 1인자가 된 적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유재석처럼 늘 긍정적이고 바른 이미지를 보여준 적도 없다. 호통치고 때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구사하면서 욕을 먹으며 웃음을 주는 캐릭터가 바로 박명수라는 것.

 

바로 이 웃음을 주기 위해 기꺼이 욕먹는 캐릭터라는 지점은 박명수가 풍자와 패러디를 소재로 했을 때 그 누구보다 더 빛을 발하는 이유가 된다. 박명수의 의도적인 부정적 이미지는 정치인 풍자 같은 경우에 있어서 더 자연스럽고 강력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박명수의 진짜 모습인지 아니면 정치인 풍자인지가 애매해질 정도로 자연스러워질 때 풍자의 강도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박명수가 선거 후보자에서 시민의 대표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순간적으로 정치인과 보통 사람들 사이의 경계가 해체된다. 정치인이라고 특별할까. 박명수의 지극히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은 그래서 선거 후보자 같은 캐릭터 설정의 이면으로 드러날 때 일종의 폭로의 쾌감을 선사한다. 박명수는 그 희화화를 통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잘난 사람들이라고 다를 바 없고, 오히려 못한 경우가 더 많다고.

 

본래 예전부터 광대가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는 기제는 그 낮은 자세였다. 대중들보다 더 낮은 위치를 보여줌으로써(이를 테면 바보 같은) 보는 이들에게 우월감을 심어주는 것. 하지만 여기서 광대가 상황을 뒤집는 경우도 있다. 때때로 임금 흉내를 내며 희화화할 때다. 대중들은 그 순간 임금을 다른 존재로 여겨지게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무너지며 광대와 동질화되는 쾌감을 느낀다. 박명수가 때로는 유재석보다 더 멋지게 느껴질 때가 바로 그 때다. 그가 광대의 기질을 드러낼 때.

<인간의 조건>이 보여준 박성호의 맨 얼굴

 

“괜히 마음이 불안하곤 했죠. 그런데 안 불안한 상황이 있더라구요. 분장할 때.” 개그맨 박성호는 얼굴에 분장을 하지 않으면 울렁증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모습에 이입돼서 하는 게 가장 편하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인간의 조건>이란 프로그램은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분장 속에 감춰졌던 자신의 맨 얼굴을 가감 없이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우리가 <인간의 조건>에 출연한 박성호를 보면서 어딘지 낯선 느낌을 받았다면 그가 늘 어떤 캐릭터로서 우리에게 자리했었기 때문일 게다. <개그콘서트>의 서수민 PD는 이렇게 말했다. “박성호는 일상적인 연기를 안 해요. 예를 들어 ‘미필적 고의’ 같은 거 절대 못하죠. 원래 센 캐릭터라...” 박성호 스스로도 그런 캐릭터는 “한 세 번 환생해야 가능할 것 같다”고 농담 섞어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을 통해서 박성호는 분장을 지우고도 조금씩 편안해진 얼굴을 보이고 있다.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미션을 수행하다 벌칙으로 재활용 센터를 찾게 된 박성호는 직접 분리수거를 해보기도 했고, 스키장 행사를 가서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쓰레기를 줄이자”는 간이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갸루상 분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심지어 집까지 그러고 돌아왔지만, 거기에는 갸루상 캐릭터가 아닌 박성호의 진심이 묻어났다.

 

맨 얼굴을 드러내면서 진통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인간의 조건> 첫 번째 파일럿에서 박성호와 김준호가 불편한 관계(?)를 드러냈을 때가 그랬다. 김준호는 그 때 방송이 나가고 자신이 너무 미안했던 마음을 전했다. “<인간의 조건> 처음 나가고 성호 형한테 악성 댓글이 너무 많이 붙었어요. 정말 미안하더라구요. 형수님도 볼 텐데...” 그런 마음은 서수민 PD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저도 미안하더라구요. 근데 와이프가 쓴 편지를 보여줬는데 대단하시더라구요. 그랬구나 우리 남편 힘들었구나. 불편했구나.. 그렇게 썼는데 참 찡 하더라구요.”

 

실제로 박성호는 말없이 후배를 챙기는 선배로 잘 알려져 있다. 많은 개그맨들은 박성호를 그래서 ‘선배 같지 않은 편안한 선배’라고 부르곤 한다. 허경환이 전한 CF 뒷얘기에는 박성호의 속 깊은 마음이 느껴졌다. “‘거지의 품격’이 뜨면서 CF를 많이 찍었는데요, 그 때마다 마지막 최종 클라이언트에게 올라갔던 게 거지와 갸루상이었어요. 결국 거지가 뽑히곤 했죠. 박성호 선배 너무 고마운 게 거기에 대해서 내색도 하지 않더라구요. 좀 미안하기도 했어요.”

 

박성호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하나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지금껏 캐릭터에 가려져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은 때론 자신도 낯설다고 했다. “방송 하면서 몰래카메라 설치해서 자신을 보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저를 보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제 개인적인 세계를 구축하려면 또 해야 될 것들이 있지만 그래도 대인관계도 챙겨야 할 게 있더라구요. 그걸 알게 됐죠.”

 

하지만 그것은 박성호가 생각하는 개그맨의 모습과 거기에 몰두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늘 캐릭터에만 집중하다 보니 조금 소원했던 적도 있었다는 것. 박성호는 이 프로그램이 자신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호, 김대희와 함께 이른바 <개콘> 원로(?) 술자리를 처음 가지게 된 것도 이 프로그램 덕분이라고. 그간 한 번도 같이 술자리를 한 적이 없었던 그들이었다.

 

<인간의 조건>을 하면서 박성호는 실제 생활에서도 변화를 느낀다고 한다. “체험 주제에 대한 부담 같은 게 있죠. 공인 같은 느낌을 갖는 것 같아요. 운전을 하면서도 조심하게 되고 쓰레기 줄이기를 미션으로 하고 있으니 음식 남기는 것도 눈치가 보이죠(웃음).” 이것은 <인간의 조건>에 출연하는 모든 개그맨들이 겪고 있는 부담감이다. 심지어 뷔페에 가서도 음식 남기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자신들을 발견한다고 하니 말이다.

 

캐릭터 분장을 해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박성호는 천상 개그맨이었다. <인간의 조건>을 통해 편안하고 유쾌한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개그맨 분장이 더 어울리는. 박성호는 <인간의 조건>의 마지막 미션으로 실제로 머리 깎고 ‘스님 되기’를 하면 어떻겠냐며 허허 웃었다. 속으로는 울어도 겉으로는 늘 웃음으로써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이가 바로 박성호다. 그래서 그의 “사람이 아니무니다”라는 유행어는 빵 터지면서도 마음 한 구석을 짠하게 만든다.

광대는 어떻게 대중들을 대변했나

 

이병헌 주연의 영화 <광해>는 자꾸만 ‘광대’로 읽힌다. 그 영화 속 주인공이 다름 아닌 기방에서 왕 흉내 내며 웃음을 주는 대가로 살아가는 광대다. 그 광대가 광해를 대신한다. 처음엔 연기였는데 하다 보니 점점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해나가기 시작한다. 광대가 광해가 되어 광해보다 더 민초들을 생각하는 정치를 하게 되는 이야기. 1천만 관객 돌파에 스크린 독점과 지나친 마케팅이 일조한 것이 사실이지만 <광해>의 흥행에는 바로 이 ‘광대’라는 위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강남스타일'과 '광해'(사진출처:YG엔테테인먼트, 영화 광해)

지금으로 치면 연예인에 해당할 것이다. 대중들에게 값싼 대중문화를 통해 심지어 희망까지 주는 존재. 청소년들 세 명 중 한 명이 희망하는 직업. 물론 그만큼 치러야할 대가도 만만치 않지만 대중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그런 사람들. 영화 <광해> 속 하선(이병헌)은 분명 작금의 연예인을 빼닮았다.

 

요즘 연예인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고 그런 발언이 대중들의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니 영화 속 하선이 던지는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명분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라는 대사는 SNS 시대에 때론 소셜테이너들이 던지기도 하는 속 시원한 한 줄 촌철살인 그대로다. <광해>는 여러모로 광대로 읽힌다.

 

또 한 명의 광대가 있다. 이 시대를 온통 말춤으로 들썩거리게 만든. 바로 싸이다. 광대나 딴따라라는 표현은 어딘지 비하적인 뉘앙스가 있어 많은 연예인들이 피해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싸이는 아예 자신이 광대임을 드러냈다. “내 직업은 광대, 떴다고 모범적으로 살지 않겠다.” 싸이의 이 발언은 아예 광대의 본분과 철학을 담고 있다.

 

월드스타니 한류스타, 혹은 국민가수(?) 같은 호칭을 거부하고 국제가수라는 애매한 명칭을 스스로 부여한 것에도 광대의 철학이 묻어난다. 국제가수라는 명칭에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뉘앙스가 없다. 그저 해외에도 활동하는 가수라는 의미만 있을 뿐. 광대는 국가나 민족의 부름에 구획되어 모범적으로 억지로 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저 하선이 저잣거리에서 왕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웃음거리로 만들며 살아가듯이. 저 하던 대로 그대로.

 

사실 ‘강남스타일’이 미국에서 빵 터지기 전까지 국내에서 싸이에 대한 관심은 그냥 그랬다. 국가가 관심을 가졌던 적도 없다. ‘라잇나우’ 같은 곡에 19금 딱지를 붙이는 것이 국가가 가진 관심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비롯되어 전 세계로 싸이에 대한 관심이 번져나가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시청 앞 광장이 월드컵을 재연하고, ‘라잇나우’는 19금 딱지를 떼었으며 심지어 국가는 싸이에게 훈장을 부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해외에 그만큼 우리나라를 알렸으니 훈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이 시대의 광대들을 위해 해주는 것이 고작 결과를 만들어낸 자들을 공치사 하는 일 밖에 없는가 하는 의구심은 있다. 이것은 싸이의 공을 치하하는 것인가 아니면 싸이에게 훈장을 줌으로써 정부도 한 일이 있다는 식의 또 다른 숟가락 얹기인가.

 

사실 정치인들보다 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이 시대의 광대, 연예인들이다. 하지만 지금껏 연예인들은 정치적인 상황에 이용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문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거다. 정치가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연예인들을 딴따라 취급하며 저 발톱의 때처럼 바라보던 시대가 가고, 이제는 대중문화가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올해 대선에서 3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가 모두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제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면 대중문화라는 말 등 위에 올라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저마다 말 춤을 추며 광대 싸이를 코스프레 하고 있다. 이것이 대중의 시대의 새로운 정치 스타일이다.

 

<광해>가 광대로 읽히고, 싸이가 스스로를 광대로 내세우게 된 건 대중문화가 이제 우리네 정치적 입장까지를 대변해주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니 제발 대중문화나 광대를 우습게 보지 말라. 선거 때 반짝 광대 흉내 내고는 막상 정치권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 싶게 저 <광해>의 신하들처럼 저들 이익에만 휘둘리면서, 대중문화의 토대와 저변을 마련해주기 보다는 뜬 대중문화에 서둘러 숟가락이나 얹는 그런 짓은 하지 말라. 저 왕을 연기한 광대가 대중들의 입을 빌려 한 그 준엄한 꾸짖음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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