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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시청률 아쉬웠어도 더할 나위 없는 수작인 이유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가 종영했다. 물론 시청률은 만족스러울만한 수치가 아니다. <시카고 타자기>는 한때 1%대 시청률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평균적으로 2% 시청률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단순히 시청률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작품의 완성도를 두고 볼 때 <시카고 타자기>는 최근 방영된 어떤 작품보다 높은 수준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타자기에 깃든 유령 유진오(고경표), 그리고 그 유령이 작가 한세주(유아인)와 함께 써나가는 소설, ‘시카고 타자기’. 그리고 그들 사이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지와 사랑으로서 운명처럼 들어와 있는 전설(임수정). 일제강점기라는 전생의 이야기가 2017년 현생의 이야기와 교차되며 어떻게 역사와 기억이 조응하는가를 ‘소설’이라는 틀로 보여준 진수완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 게다가 더할 나위 없는 연기로 이 상상의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한 유아인, 임수정, 고경표라는 배우들의 아우라까지. <시카고 타자기>는 한 마디로 더할 나위 없는 수작이었다. 

<시카고 타자기>는 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소설 집필기로 시작하지만 그 이야기의 끝을 보면 놀랍게도 일제강점기에 조국 해방을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한 청춘들에 보내는 헌사를 담고 있다. 그 소설이 사실은 전생에 독립투사들이었던 자신들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던 것. 당시 조국을 위해 싸우다 비극적인 끝을 맞이했던 그들은 통일된 조국의 후생을 기약했고, 그렇게 환생한 이들이 잊혀져 가는 당시 청춘들을 기억해나간다는 설정은 지금 현재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시카고 타자기>는 그래서 일제강점기라는 역사를 현재의 관점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역사적 시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들의 아프고 찬란했던 사랑 이야기까지 담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판타지 설정의 이야기들은 많았지만, 이처럼 재미적 요소만큼 의미 또한 남달랐던 작품도 드물 것이다. 

무엇보다 <시카고 타자기>의 완성도가 높다고 여겨진 건, 이 판타지가 그저 재미를 위한 인위적 설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아가 문학적 상징으로까지 이해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작품은 그 안에 전생을 기억해나가고, 유령과 대화하고 교감하는 판타지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소설’을 쓰는 작가의 상상력을 상징화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었다. 즉 이 작품 전체가 한세주라는 작가가 일제강점기의 청춘들을 상상하며 받은 영감으로 쓴 소설이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 타자기’라는 소설을 끝내고 그 소설 속에 유진오를 영원히 봉인시킨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롭다. 소설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 인물을 마치 실제 인물처럼 몰입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영감을 주는 인물이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소설가 같은 창작자들에게는 마치 신비 체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품은 전생과 현생을 넘나들었던 것처럼, 새드엔딩과 해피엔딩을 동시에 묶어냈다. 즉 전생의 삶들은 결국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이었지만, 그 비극은 현생의 삶으로 이어지며 궁극적인 해피엔딩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카고 타자기>의 종영은 그 느낌이 독특하다. 새드엔딩과 해피엔딩이 겹쳐져 어딘지 쓸쓸하면서도 위로를 받는 듯한 행복감 또한 그 안에 담겨진다.

되돌아보면 현생과 전생을 넘나드는 청춘 멜로에 소설과 현실을 뛰어넘고, 판타지와 실제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내면서 하나의 굵직한 주제의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 <시카고 타자기>라는 드라마의 탄생은 실로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전생과 현생의 인물들을 넘나들며 사실상 1인2역을 해낸 연기자들의 공적 역시 박수 받을 만하다. 시청률은 아쉬웠지만 그것만으로 평가받는 건 더욱 아쉬운 작품이 바로 <시카고 타자기>였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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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6.05 15:52 신고 BlogIcon 하기하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청률로만 모든걸 판단하는건 안 좋은건데(방송사입장에서는 좀 다르지만..) 기사에서는 뭐 시청률이 안 좋다니 좋은 캐스팅으로도 성적이 별로라니 이 따위 기사들 나오는데 보기 거북함.. 모든지 성과로만 판단하는 대한민국이 싫음. 정말 좋은글임. 드라마도 정말 좋은 시도를 한 것 같고.. 맨날 사랑타령하는 드라마보다 이런 드라마가 더 값지다고 생각하고 좋은성적 내지 않아도 좋으니 다양한 시도를 하는 드라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음.

‘터널’이 연쇄살인범 잡기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

“범인 잡았으니까 이제 다 끝났네요.” “아직 안 끝났다. 우리가 범인을 왜 잡았는데. 우리가 결국 사람은 못 구했지만 이미 죽은 사람 살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얘기는 해줘야지. 범인 잡았다고. 우리가 안 잊고 있었다고 말해줘야지.”

'터널(사진출처:OCN)'

OCN <터널>의 마지막 회에서 범인 목진우(김민상)가 검거되고 범행 사실을 자백했지만 박광호(최진혁)는 아직 자신들이 할 일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린다. 그것은 피해자들의 가족을 찾아 범인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일일이 형사들이 찾아가 그 소식을 전해주자 피해자 가족들은 저마다 무너져 내렸다. 거기에는 아픔과 회한이 뒤섞여진 감정 같은 것들이 엿보였다. 형사는 30년이 지나서야 겨우 범인을 잡았다는 것에 죄송하다고 말했고, 피해자 가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눈물 속에는 고마움 또한 담겨져 있었다. 그것은 잊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고맙습니다. 우리 누나 잊지 않아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마도 <터널>이 여타의 범죄 스릴러 장르물과 확연히 달랐던 지점이 바로 이런 부분일 것이다. 보통의 스릴러 장르물들이라면 잔인한 연쇄살인범의 살해 장면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포획하고 그 범인을 잡으려는 형사들의 추격전이 이어지다 결국 범인을 잡는 그 장면에서 이야기가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터널>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진짜 목적은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30년의 세월 동안 범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쓸 정도로 안타깝게 세상을 등지게 됐던 분들을 잊지 않고 노력해왔다는 그것이었다. 

스릴러 장르의 명가라고 불리는 OCN이 <터널>을 통해 그 정점을 찍었다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터널>은 스릴러가 그저 단순히 범인 잡는 형사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인간’을 담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자극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담을 수 있는 스릴러 장르라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타임슬립이라는 장치가 여타의 드라마들과 달리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타임슬립이란 메시지를 담기 위한 도구일 뿐, 재미만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는 걸 <터널>은 보여줬다. 어째서 터널을 통해 3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것이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시도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감정적, 정서적 개연성을 이 드라마는 충분히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것은 시간을 뛰어넘는다는 놀라움이 아니라, 그 정도로 간절한 마음을 담는 상징이다. 피해자 가족이라면 30년 세월 또한 어제 일처럼 잊을 수 없는 짧은 시간일 수 있으니.

또한 <터널>이 높은 완성도에 대중적인 열광까지 얻어낼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메시지가 건드리는 우리네 대중들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갖가지 사건사고들을 통해 무수한 피해자와 가족들이 여전히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가해자를 잡거나 그들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우리는 별로 본 적이 없고 심지어 그 기억조차 흐릿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터널>은 우리 안의 그 기억들을 되새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의 눈물을 잊지 않고 있다고 이 드라마는 말해주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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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타자기’, 전생과 현생으로 그려낸 역사의 기억, 기록

과연 일제강점기 경성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이야기의 관심은 온통 이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독립운동을 하는 청년단체의 수장 휘영(유아인)과 그의 절친 신율(고경표) 그리고 그 신율에 의해 저격수로 키워진 수현(임수정)은 알 수 없는 인연의 고리로 묶여져 있다. 함께 독립운동을 했고, 수현은 휘영을 그리고 신율은 수현을 사랑했지만 무슨 일인지 수현이 휘영과 신율 중 누군가에 총을 쏘았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이 전생의 인연은 현생으로 이어져 수현은 전설(임수정)이 되어 베스트셀러 작가 세주(유아인)와 다시 사랑으로 얽히고 갑자기 유령이 되어 나타난 신율(현생에서는 유진오, 고경표)은 세주와 함께 그 전생의 기억들을 소설로 써나간다. 한세주와 유진오가 소설로 과거를 기억하고 기록한다면, 전설은 그 소설을 읽으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다. 

사실 전생과 현생을 잇는 사랑이야기를 할 것이었다면 <시카고 타자기>가 굳이 일제강점기까지 시간을 되돌려 그 때를 전생의 시점으로 삼을 이유는 별로 없었을 게다. 그리고 그들이 독립운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비극적인 어떤 사건을 겪었다는 것을 드라마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을 이유도 없지 않았을까. 어떤 식으로든 <시카고 타자기>의 이야기가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시점과 당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시간의 장벽 같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간헐적으로 전생의 부분들이 떠오르지만 그 전부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유령인 유진오 역시 그들 인연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걸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 시간과 기억이 만들어내는 장벽. 그래서 이들은 그 기억을 되찾아가는 여행을 소설이라는 방법의 틀을 통해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시카고 타자기>의 초반 이야기들은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를 중심으로 그가 겪는 창작의 고통과 가족인 줄 알았던 백태민(곽시양) 가족으로부터의 배신 같은 개인사 그리고 무엇보다 유령이 깃든 시카고 타자기와 그가 얽히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전생과 연관된 현생의 이야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전개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것이 이 본격적인 전생과 현생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시카고 타자기>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전생과 현생, 그것도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지점을 끌어온 것일까. 이런 질문을 통해 떠오르는 건, 이 드라마가 역사라는 것이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되는가를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전생처럼 지워져버린 일제강점기의 기억들. 그래서 사료들이 남아 있다고 해도 교과서에 박제된 것이거나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들로 채워져 있는 기록들. <시카고 타자기>는 그것을 소설 혹은 드라마라는 틀을 통해 생생한 살아있는 역사로 담아내려는 노력 자체를 이야기의 모티브로 쓰고 있다. 

그것은 한세주와 전설 그리고 유진오가 얽혀진 개인적인 사랑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우리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기억을 유예시킨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역사적인 시간들이었으면 전생처럼 지워버린 기억으로나 남게 되었을까. 게다가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당대의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이들이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다는 아픈 현실은 당대의 역사가 우리 손으로 왜곡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전설처럼 전생을 기억하는 그녀의 어머니는 20년 만에 그녀 앞에 나타나 세주와 엮여 전생의 비극을 반복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자 전설은 자신은 “어머니처럼 전생이 두려워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것을 직시하고 극복하겠다는 뜻이다. 세주와 유진오가 기억을 되새겨 다시 쓰는 일제강점기의 기록과 그것을 읽으며 전생의 잊혀진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전설의 이야기.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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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이 뭐길래...이준호·김재욱·엄기준, 주인공만큼 빛나는 존재감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에서 펄펄 나는 건 주인공 남궁민만이 아니다. 악역으로 등장해 이제는 남궁민과 짝패가 된 이준호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제대로 얻었다. 그는 서율 이사라는 캐릭터를 통해 나이 많은 부하직원들에게 안하무인격으로 반말을 하고 필요하면 폭력까지 일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윤하경(남상미) 대리 앞에서는 부드러운 면면을 드러낸다. 김과장과 대립하다가도 그가 죽을 위기에 몰리자 그를 구해주는 의외의 인간적인 면을 갖고 있어,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다. 

'김과장(사진출처:KBS)'

물론 이준호는 드라마 <기억>이나 영화 <스물> 등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연기력을 갖춘 아이돌로 평가받은 바 있다. 하지만 <김과장>의 서율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하게 그에게 연기자로서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것은 악역이 주는 힘일 것이다. 드라마에 긴장감과 갈등을 부여하는 역할로서 악역은 제대로만 연기해내면 주인공만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지금껏 풋풋한 청년의 이미지가 강했던 이준호가 서율이라는 안하무인 악역 캐릭터로 만든 반전 이미지는 그에게는 연기자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처럼 악역은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연기자의 새로운 결을 드러내게 해준다. 종영한 OCN <보이스>에서 중반 이후부터 등장해 마지막회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해준 김재욱 역시 악역을 통해 새로운 면을 보여줬다. 등장만 해도 살벌한 느낌을 주는 모태구라는 악역은 조각 미남 김재욱의 이미지를 뒤집어 놓았다. 심지어 여성적인 느낌마저 주는 그 미남의 이미지가 거꾸로 살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재욱은 꽤 많은 작품들을 해왔다. 하지만 잘 생긴 외모는 오히려 연기자로서는 어떤 장애요소로 작용한 면이 더 크다. 다양한 연기를 해내기에는 그 외모가 주는 선입견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재욱 역시 모태구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이러한 선입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고 볼 수 있다. 

역시 종영한 드라마 <피고인>에서의 엄기준 역시 차민호라는 악역을 통해 새삼 주목받았다. 사실상 <피고인>은 주인공인 지성과 악역인 엄기준이 서로 치고 받는 그 힘에 의해 끝까지 탄력을 잃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다소 과한 설정들과 개연성이 부족한 면들이 있었지만 그나마 끝까지 힘을 유지한 것도 지성과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도면밀하고 뻔뻔하기까지 한 살인자 재벌2세라는 캐릭터는 지금의 대중정서가 공분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갖고 있었다. 그 요소들을 통해 엄기준은 냉철하고 냉혹한 악역을 만들어냈다. 어딘지 선해 보이는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그래서 더 잔혹해지는 행동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더 강렬해질 수 있었다. 

악역은 그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연기자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깨는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기자로서의 존재감을 만든 배우들을 보면 저마다 확실한 악역의 필모그라피가 있다. 남궁민이 주목을 받았던 것도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보여준 악역의 힘이 있었고, 유아인 역시 영화 <베테랑>에서의 악역이 있었다. 이준호, 김재욱, 엄기준 역시 이제 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악역이 부여한 연기자로서의 면면을 드러내며.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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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기억의 문제가 유독 중요하게 다가오는 까닭

고구마다. 사이다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에 대한 의견들은 눈을 뗄 수 없다는 호평에서부터 마치 시청자 본인이 감옥에 갇혀 있는 듯 답답하다는 볼멘소리까지 다양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살인죄 누명을 쓰고 심지어 기억까지 잃은 채 감옥에 갇히고 마침내 탈옥에 성공한 박정우(지성)가 조금씩 기억을 찾아가고 또 닥친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피고인(사진출처:SBS)'

하지만 그 과정이 한 회에 단서 하나로 매듭 하나를 풀고, 그렇게 풀어진 매듭도 다시금 진짜 살인자인 차민호(엄기준)에 의해 다시 꼬이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니 시청자들은 사이다를 기다리다 연거푸 목구멍으로 밀어 넣어지는 고구마에 턱턱 숨이 막힐 지경이다. 도저히 16회만으로는 스토리를 마무리 지을 수 없다며 2회 연장을 선언한 것에 대해 그럴 거면 더 빠른 전개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그런데 이러한 호평과 비판이 엇갈리는 가운데, <피고인>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아두고 있는 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어떤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우리에게는 하나의 트라우마이자 넘어야할 산으로 다가오고 있는 ‘기억의 문제’다. 왜 하필 박정우는 기억과 망각을 거듭하는 걸까. 감옥에서 그를 봐주는 정신과 의사는 그에게 말한다. 너무나 고통스런 기억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느 한계를 넘으면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망각이라는 기제를 꺼내든다는 것. 결국 박정우는 차민호와 대결하고 있는 것이지만, 내적으로는 스스로와도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바로 기억과 망각의 대결이다. 

왜 기억과 망각의 이 대결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걸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무수한 사건사고들이 바로 이 기억과 망각의 대결로도 읽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이 연달아 벌어졌을 때마다 우리는 ‘안전 불감증’에 걸린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지목하곤 했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일들은 멈추지 않았을까. 그리고 급기야 세월호 참사 같은 참담한 일들까지 벌어졌을까. 결국 당시에는 잊지 말자고 했던 그 다짐들이 금세 망각으로 지워져버리고 원점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런 기억과 망각의 문제는 비단 사고에만 머물지 않는다. 갖가지 정관계 비리들이나 법조계 비리들, 정경유착, 더 시원을 따라 올라가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친일파 청산 문제,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사과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위안부 문제 등등. 사안들이 터질 때마다 기억하자고 우리는 얘기했지만 어느 순간 마치 최면이라도 거린 듯 다시금 망각의 바다 속으로 빠져버렸다. 그건 책임자 처벌과 같은 제대로 된 사후처리가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가중된 고통 속에서 우리 스스로 그 아픔을 지워내려 했던 탓은 아니었을까.

박정우가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 그 고통을 제대로 마주해야 비로소 그 고통스런 ‘기억의 감옥’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끝까지 마주 봐야 한다. 망각의 유혹이 고개를 들어도 그걸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결국은 진실을 밝혀내고 진범을 처벌 받게 해야 비로소 ‘기억의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다. 만일 그렇게 확실한 결말을 내지 못한다면 그는 끝없이 반복되는 기억의 고통과 망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사건과 사고로 고통스런 삶을 계속 살게 되었듯이.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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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 남궁민만큼 주목되는 준호의 악역 연기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을 이처럼 유쾌 상쾌 통쾌하게 만든 장본인은 모두가 인정하듯 연기자 남궁민이다. 심지어 그가 ‘갓궁민’이라고까지 불리게 된 데는 <김과장>이라는 블랙코미디 장르의 드라마에서 적절히 과장된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짐 캐리가 보여주곤 했던 과장 연기를 통한 확실한 캐릭터 구축을 김과장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성공시키고 있는 듯하다. 폼 잡지 않고 지극히 소시민적인 인물이지만 ‘어쩌다 보니’ 의인이 되어가는 그 상황을 통해 때론 웃기고 때론 속 시원하게 만드는 김과장이라는 인물은 실로 남궁민이라는 연기자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보인다. 

'김과장(사진출처:KBS)'

그런데 <김과장>에는 남궁민만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주목되는 연기를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과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갑질 상사 서율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준호다. 우리에게 2PM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드라마보다는 간간히 출연하곤 했던 예능 프로그램으로 더 이미지가 알려진 그지만 <김과장>에서는 서율이라는 강렬한 안하무인격 악역을 통해 그런 이미지들을 완전히 지워내고 있다. 도대체 <김과장>의 무엇이 준호의 이런 숨겨진 연기를 깨운 걸까. 

물론 <김과장> 이전에 우리는 tvN 드라마 <기억>에서 주인공을 돕는 어소시엣 변호사 정진을 연기하던 준호를 기억한다. 거기서도 준호는 꽤 괜찮은 새내기 변호사의 면면을 보여준 바 있지만 연기 도전이 일천한 신인으로서 인상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준호 하면 본래 떠오르던 바른 청년의 이미지 그것을 연기로 반복해 보여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던 것. 

하지만 <김과장>에서는 처음 그의 등장 자체가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악역을 그려내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배역에 딱 걸맞는 캐스팅의 성공처럼 보인다. 즉 <김과장>에서 그의 악역으로서의 존재감이 처음부터 살아난 건 어린 나이에도 ‘반말’하는 상사라는 그 캐릭터와 준호라는 인물이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서율이 김과장에게 혹은 회사 내 라이벌인 조민영 상무(서정연)에게 반말을 넘어 욕지거리까지를 하는 장면은 실제로도 한참 나이가 어린 준호가 남궁민이나 서정연 같은 연기 대선배에게 안하무인격으로 대하는 것 같은 불편함을 만들어냈다. 자연스럽게 준호의 악역 연기는 이 반말 하나만으로도 힘이 실리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게 배역과 캐스팅의 기막힌 조화만으로 가능했다 말하긴 어렵다. 그걸 연기해내는 준호라는 신인이 기꺼이 자신의 이미지를 망가뜨려 재수 없는 악역으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처음에는 그 준호라는 실제 인물과 배역이 만들어내는 안하무인의 행동이 악역으로서의 기묘한 시너지를 만들어냈지만, 그 후로는 준호 역시 그 서율이라는 악역에 제대로 빙의된 듯 폭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악역만큼 연기자로서의 새로운 면을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준호에게 이번 <김과장>의 서율이라는 역할은 그래서 그가 앞으로 걸어갈 연기자의 길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PM의 준호가 아니라, 또 예능프로그램에서 봐왔던 바른 청년 이미지를 가진 준호가 아니라 연기자 준호의 모습을 깨워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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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고구마 전개에도 시청률 유지하는 까닭

이번에는 박정우(지성)가 묻어놨다는 캐리어다. 박정우가 기억해냈다는 캐리어를 묻은 장소를 처남인 윤태수(강성민)가 결국 찾아냈다. 윤태수는 그 캐리어 안에 박정우 딸 시신이 들어 있는 것으로 믿고 있지만 과연 실제로도 그럴까.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의 5회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 캐리어를 열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오열하는 윤태수의 모습이 그려졌다. 

'피고인(사진출처:SBS)'

이런 엔딩은 결국 다음 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 것인가가 향후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결정적인 흐름의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해 기억을 잃어버린 박정우가 기억을 찾아나가는 과정과도 동일하다. 박정우는 징벌방 바닥에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 새겨 둔 단서를 혼자 읽고는 지워버린 신철식(조재윤)에게 그 글자를 알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신철식은 한 가지씩 요구를 들어줄 때마다 하나의 글귀를 알려줄 뿐이다. 

그렇게 알게 된 단어가 젊은 시절 애칭으로 아내에게 불리던 ‘박봉구’라는 이름과 ‘벨소리’ 그리고 ‘16K’다. 거의 한 회에 한 단어씩만 가르쳐주고 있어 답답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던져진 단어 하나는 여러 추측들을 가능하게 한다. 그 ‘16K’라는 단어는 마침 등장한 하연이의 몸무게 17kg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박정우의 친구이지만 ‘벨소리’의 주인공이었던 강준혁(오창석)이 인멸한 16번째 증거인 ‘녹음되는 인형’일 수도 있다.

한 회에 하나씩의 떡밥을 던지고 다음 회에 그 떡밥이 무엇을 물고 있는가를 알려준 후 또 다른 떡밥 하나를 던진다. 이건 현재 <피고인>이 드라마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전개가 답답하긴 하지만 한 번 보면 다음 회를 안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고구마 전개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피고인>은 시청률이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지난 회에도 ‘벨소리’라는 단서가 주어지고 아내와 딸이 살해되던 날 새벽 찾아온 강준혁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은 그가 모종의 음모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은 뉘앙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 회에 그가 자신이 용의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날 새벽 찾아간 박정우의 집에서 목소리를 녹음하게 됐던 그 인형을 은폐하는 장면이 나갔다. 그는 진짜 박정우를 함정에 빠뜨린 인물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이 용의자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일까. 

<피고인>은 현재 박정우의 기억이 그러한 것처럼 거대한 어둠 속에서 손을 내뻗어 가까이 있는 하나씩을 직접 만져가며 단서 하나씩 모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이 단서들이 나중에 모여 커다란 퍼즐이 완성될 때 드디어 박정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청자들 역시 계속 되는 떡밥과 고구마 전개에서 조금은 숨통을 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마치 <피고인>은 드라마와 시청자가 일종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가 어떤 문제를 내면 시청자는 그걸 유추하고 다음 회에 그 답과 새로운 문제가 제시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언제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문제가 계속 제시될수록 그 긴장감은 오히려 흩어질 수도 있고, 진실에 접근해가는 그 본질을 흐리는 문제가 나오기라도 하면 시청자들은 자칫 더 이상 고구마를 먹지 않으려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언제까지 하나씩 던져주는 떡밥을 시청자들이 버텨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되고 있다. 물론 그 결과는 박정우가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드라마를 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과가 아닌 과정이 더 중요해진다. 고구마와 떡밥이 납득할만한 논리적 과정을 통해 전해지지 않는다면 <피고인>은 의외로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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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전개 ‘피고인’, 답답함 이겨내기 쉽지 않다

지성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제아무리 명연기자라도 힘겨울 상황들을 온몸으로 빨아들여 연기로 보여주고 있으니.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은 하루아침에 아내와 딸을 살해 유기한 죄로 사형수가 되어 감옥에서 깨어난 주인공 박정우(지성)가 당시 기억을 잃어버린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러니 힘겨울 수밖에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데 모든 증언들이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와 딸을 살해했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 지성의 연기 몰입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되어준다. 

'피고인(사진출처:SBS)'

하지만 지성이 힘겨운 연기를 계속 하는 동안, 그를 통해 박정우라는 캐릭터에 몰입하는 시청자도 똑같은 힘겨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어느 정도라면 반전의 사이다를 위한 고구마 상황으로 기다리게 되지만 그 끝이 좀체 보이지 않고, 어쩐지 새로운 사건이 나타나지 않은 채 반복되기만 한다면 시청자들도 지칠 수밖에 없다. 이제 3회가 지난 것뿐이지만 왜 이렇게 전개가 느리냐는 볼멘소리가 시청자들에게서 나오는 건 그래서다. 

1,2회만 해도 사건은 거의 폭풍전개 하듯이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박정우가 처한 상황은 물론이고, 그를 그런 상황에 몰아넣었을 것으로 보이는 쌍둥이 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차민호(엄기준)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또 그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가는 박정우가 그가 차민호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증거가 없어 잡지 못하는 안타까움 같은 것들은 시청자들에게조차 간절한 마음을 만들었다. 

하지만 3회의 이야기를 보면 1,2회에 비해 너무 느린 전개를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3회에 담겨진 이야기는 박정우가 과거 차민호를 잡으려 했으나 그가 심지어 지문까지 지워가며 빠져나갔다는 사실과, 어딘지 수상한 박정우의 친구 검사 강준혁(오창석)이 현장검증에 대역까지 썼다는 사실을 국선변호인 서은혜(권유리)가 알아차렸다는 이야기, 그리고 박정우의 처남이 그가 갇혀 있는 감옥의 교도관이며 징벌방 바닥에 박정우가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적어 뒀다는 이야기 정도다. 

물론 이것도 꽤 많은 드라마의 정보일 수 있지만 시청자들이 답답함을 느끼는 건 주인공 박정우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그것이 좀체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졸지에 사형수가 된 박정우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변화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달리, 그는 여전히 기억상실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다. 

사실 감옥이라는 상황 하나만 갖고도 폐쇄된 공간이 주는 답답함을 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피고인> 역시 박정우가 감옥에 들어오기 전 차민호와 있었던 일들을 중간 중간에 집어넣고는 있지만 그래도 답답함은 그리 상쇄되지 않는다. 여기에 아내와 딸이 살해됐다는 그 시점의 기억이 뭉텅 날아가 버린 상황은 그 답답함을 더 깊게 만든다. 

장르적 성격상 이 답답함은 물론 뒤에 전개될 속 시원한 반전을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게 눌러주는 것도 어느 정도의 숨통을 틔워줘야 시청자들도 계속 견뎌낼 수 있기 마련이다. 답답함을 깨치기 위해 감옥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좀 더 다채롭게 구성할 필요가 있고 기억의 단초들도 조금씩 풀어내줄 필요가 있다. 

현실의 답답함에 짓눌린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계속 그 답답함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답답한 현실을 그려내기 위해 밑그림을 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참는 일이 힘겨워진 현재의 대중들의 정서를 좀 더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자칫 잔뜩 기대하고 바라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떠날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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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 멜로와 현실은 어떻게 공명했을까

잊지 말아야 될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허준재(이민호)의 기억을 지우고 바다로 돌아간 인어 심청(전지현)이 다시 돌아와 사랑을 이어가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그렸다. 허준재는 청이 자신의 기억을 지웠지만 자신의 심장에 새겨진 사랑은 지울 수 없었다며 그녀를 기억하고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그런데 여기서 허준재가 지웠졌던 기억을 다시 복원하는 그 방식이 흥미롭다. 그는 훨씬 이전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예감이라도 한 듯, 청이와의 일들을 일기로 기록해놨다고 했다. 결국 청이가 그의 기억을 지웠어도 그는 다시금 그 일기를 통해 그녀와의 추억들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이건 전형적인 멜로물의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그간 기억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왔던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조금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엔딩이다. 물론 멜로물로서 바다와 육지로 각각 태어난 서로 다른 존재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지만 다시금 돌아와 둘 사이에 생명을 잉태하고 그 존재가 바다와 육지 사이의 소통자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는 로맨스 판타지물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완결성이 있는 엔딩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작금의 우리네 현실과 마주하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바다와 기억으로 환기되는 세월호 참사의 이미지들은 이 엔딩이 ‘진실을 담은 아픈 기억’에 대한 메시지로 다가오게 하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조난당했다 살아 돌아온 이들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그것이 인어 심청의 도움이라고 생각하며 바다를 찾았던 허준재의 그 마음은 어쩌면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들의 가족들이나 그들을 위해 기도해온 많은 대중들의 바람과 똑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희미해지는 기억을 아파도 애써 기억해내려는 허준재의 사랑 또한 남다르게 느껴지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절대 잊지 않으려는 노력은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기억의 기록’이 갖는 무게감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사랑의 기억 같은 진실을 잊지 않고 보존한다면 그 애끓는 사랑은 영원할 수 있다고 마치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 기록으로 영원히 남을 기억은 차츰 그 아픈 상처들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사랑이라는 걸 말해준다. 드라마 속 지나가는 듯한 에피소드의 대사로 등장했던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기억하겠다던 한 엄마의 절규처럼, 아픔은 사랑의 증명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영원한 벌로서의 기억 또한 존재한다. 계모 강서희(황신혜)의 기억에 잊혀지지 않을 아들의 자살이 그것이다. 강서희의 기억은 사랑이 아니라 죄의 기억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다르다. 우리에게 기록으로 남는 기억이란 이처럼 어떤 것은 바람직한 사랑으로, 어떤 것은 또 다시 벌어져서는 안될 반면교사로서의 죄로 남겨진다.

허준재는 전생에서 바닷가 마을에 지방관으로 부임했던 담령으로 인어를 만났던 그 때의 기억 그대로 이생에서의 심청과의 미래를 준비한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검사가 되어 지방검찰청에서 일하며 심청과 ‘소소한 삶’을 꿈꾼다. 사실 우리네 삶이 꿈꾸는 것들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소박하고 소소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런 기억들을 많이 남기는 것일 테니.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은 그래서 더더욱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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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자책감·억울함, 지성이 끌고 가는 ‘피고인’의 힘

도대체 저런 연기를 어떻게 소화해낼 수 있을까. MBC 드라마 <킬미힐미>에서 지성이 다중인격을 연기할 때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그 생각은 다시금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을 통해 재연되고 있다. 단 2회만을 두고 봐도 이 드라마 속 주인공 박정우(지성)가 가진 감정들은 너무나 복합적이다. 

'피고인(사진출처:SBS)'

검사로서 잘나가던 모습의 당당했던 모습이 있다면, 형을 죽인 동생 차민호(엄기준)가 형 행세를 하려는 걸 알아차리고 그 진실에 접근해가며 분노하는 모습이 있고, 갑자기 4개월의 기억이 뭉텅 잘려나간 채 감방에서 깨어나 아내와 딸을 살해한 혐의에 황망해하는 모습이 있다. 그 감정은 그럴 리가 없다는 부정은 물론이고, 그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어쨌든 살해됐다는 아내와 딸에 대한 깊은 자책감,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는 억울함, 그럼에도 아무런 기억도 할 수 없다는 답답함 같은 것들이 교차되는 것이다. 

연기라는 것은 그저 흉내가 아니고 그 캐릭터가 처한 상황과 감정들을 자신의 그것으로 끌어들여 표현해내는 것이란 점을 두고 보면 지성이라는 연기자가 이 역할을 하며 겪었을 심적 고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아내와 딸에 대한 살해 혐의를 모두가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자신조차 기억을 하지 못해 그걸 확신할 수 없는 감정은 얼마나 무너질 것인가. 

지성에게는 극심한 심적 고통의 연기지만, <피고인>이라는 드라마는 사실상 바로 이 고통스런 박정우의 상황을 통해 극의 힘이 생겨난다. 드라마는 단란했던 박정우와 가족 간의 상황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4개월을 뛰어넘어 감옥에 수감된 그를 보여준다. 이 중간에 남겨진 기억의 공백은 박정우의 상황이 180도로 변해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그가 가진 극심한 심적 고통들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감정 또한 움직인다. 그가 범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게 만들지만, 슬쩍 CCTV를 통해 무언가 커다란 트렁크를 차에 싣는 모습은 설마 그가 진범인가를 또 의심하게 만든다. 물론 주인공인 그가 진범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어쨌든 이 뭉텅 잘려진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모여져 완전한 그림을 그려 보여줄 때까지 시청자들의 시선은 고정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지성이 연기해내는 박정우라는 인물의 감정이 얹어지는 일은 중요하다. 그가 가진 답답함과 억울함과 자책감 같은 것들은 어쩌면 우리네 현실이 대중들에게 부여하는 감정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 잘못된 세상, 그리고 그것이 무엇 때문에 잘못됐다는 심증이 점점 드러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확증되지는 않은 상황,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에 어쨌든 동조한 점도 있다는 자책감과 그럼에도 자신은 그런 세상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억울함 등등이 그 감정이다. <피고인>은 박정우라는 특정 개인의 상황과 감정을 담고 있지만 드라마는 그걸 수용하는 시청자에 의해 온갖 현실적 상황과 감정들이 환기되기 마련이다. 

지성의 연기에 탄복할 수밖에 없는 건 그 복합적인 감정 상태를 박정우라는 인물을 통해 그 인물 자체인 것처럼 연기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연기를 통해 그려지는 박정우라는 인물은 그래서 현재의 대중들이 느끼는 이른바 ‘피고인’ 감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거 <추격자>라는 드라마가 진범을 추격하는 주인공을 통해 시대의 진범을 추격하는 당대 대중들의 마음을 담아냈었다면, 이번 <피고인>은 어쩌다 피고인이 된 주인공을 통해 시대의 피고인의 감정을 갖게 된 대중들의 억울함, 답답함 등을 풀어내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성이라는 놀라운 연기자의 몰입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시대감정을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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