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T, 드라마와 음악의 완벽한 시너지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 이미 끝난 지 꽤 된 드라마인데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곡에 드라마에 푹 빠졌던 추억이 떠오른다. 노래로 기억된 영상들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온다. 손예진이 감우성과 함께 도넛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던 장면도 떠오르고, 이하나와 공형진, 이 엉뚱한 커플의 로맨스도 슬쩍슬쩍 머리에 스쳐지나간다.

드라마와 음악의 완벽한 시너지, OST
OST는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 감정이 시청자에게 전달되게 해주는데 이만큼 효과적인 장치도 없다. 인상적인 드라마를 보고 나면 기억을 자극하는 영상과 그 속에서 울고 웃는 캐릭터들 그리고 그 영상을 영원히 감금해놓고 언제든 우리네 감성 속에서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OST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이것은 어렵다는 음반시장에 있어서는 훌륭한 기회로서 작용한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가수들이 방송에서 노래할 공간이 좁아지는 상황에 매회 적어도 1,2회씩 반복되어 흘러나오는 매체(?)의 제공은 가뭄에 내리는 단비 같다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OST는 드라마와 음악이 확실한 시너지를 이루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 시너지는 다름 아닌 문화 소비자들의 머리와 가슴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감성에 목마른 현대인에게도 단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 곡을 들으면 주인공이 떠오른다
▶ ‘연애시대’와 스윗소로우가 만난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국내 명풍드라마의 탄생을 알린 ‘연애시대’. 멜로를 다루었으되 질척거리지 않고, 코믹한 터치로 드라마를 만들었으되 가볍지 않은 ‘연애시대’는 그 분위기에 딱 맞게 스윗소로우라는 뽀송뽀송한 목소리의 소유자들의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을 선보였다. 같은 소절이 계속 반복되는 이 곡은 드라마 속에서 계속 갈등하는 은호(손예진)와 동진(감우성)의 감성을 잘 잡아내고 있다. 진호가 부른 ‘만약에 우리’ 역시 헤어진 후 더 절실해지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했다.

▶ ‘봄의 왈츠’와 러브홀릭이 만난 ‘One love’
윤석호 PD의 사계 시리즈 마지막편인 ‘봄의 왈츠’는 마치 드라마 같은 가사와 멜로디를 줄곧 선보여온 러브홀릭을 만나 ‘One love’란 감미로운 곡을 만들어낸다. 어쿠스틱한 분위기에서 마치 꽃이 확 피어나는 듯 점점 고조되는 멜로디는 러브홀릭의 보컬 지선의 몽환적인 목소리와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윤석호 PD는 드라마에 한국적 풍경과 함께 음악을 적절히 잘 배합하는 능력이 탁월한 연출자이다. 윤석호 PD의 작품치고 드라마는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에 걸맞게 OST는 명반으로 남았다.

▶‘하얀거탑’과 바비킴이 만난 ‘소나무’
국내 전문직 드라마의 새 장을 연 ‘하얀거탑’. 김명민이란 배우의 카리스마가 돋보인 이 드라마에 삽입된 ‘소나무’는 바비킴의 읊조리는 듯한 음색이 차츰 절정을 향하며 호소력 짙게 감성을 흔드는 곡이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이란 가사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욕망과 그 좌절을 그린 드라마 내용과 잘 어우러진다. 마치 뽕짝처럼 우리네 정서를 깊은 뿌리서부터 느끼게 하는 바비킴의 창법은 세련되면서도 토착적인 음색을 ‘소나무’에 심어놓았다.

▶ ‘마왕’과 박학기가 만난 ‘빛의 향기’
‘향기로운 추억’으로 발라드라는 장르에 그만의 굵직한 획을 그었던 박학기는 ‘마왕’이란 드라마를 만나면서 부활하는 듯 하다. ‘마왕’의 OST는 바비킴의 ‘뒷걸음’이나 JK김동욱과 드라마 주인공인 엄태웅이 직접 부르기도 한 ‘사랑하지 말아줘’, 그리고 박학기가 부르는 ‘빛의 향기’, ‘널 사랑하나봐’ 모두 드라마의 내용과 분위기에 잘 맞는 곡들이다. 특히 ‘빛의 향기’는 드라마 속 이승하(주지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았고, ‘사랑하지 말아줘’는 강오수(엄태웅)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 ‘히트’와 거미가 만난 ‘통증’
‘히트’의 장르가 수사물이란 점은 그 OST의 색깔 역시 스릴러와 액션에 가깝다는 걸 짐작케 한다. 실제로 이 드라마의 OST는 긴장감을 높여주는 효과적 배경음악으로 가득하다. 물론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테마곡들은 청자의 귀를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거미가 부른 ‘통증’은 드라마 상의 차수경(고현정)이 가진 내적 상처를 잘 표현한 곡이다. 이밖에도 JM이 부른 ‘그 사람’은 극중 캐릭터들의 멜로 라인이 애절하게 느껴지는 곡이며, 메인테마곡인 슈퍼주니어의 ‘히트’도 경쾌하게 전체 드라마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곡이다.

▶ ‘내 남자의 여자’의 상처를 담은 더 원의 ‘사랑아’
불륜드라마로 시작했지만 점점 여성심리극으로 가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 남편과 친구를 동시에 잃고 그 상처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지수(배종옥)의 심경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더 원의 ‘사랑아’도 화제가 되고 있는 곡이다. 절규하는 듯, 울먹이는 듯한 더 원의 음색이 듣는 이의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기분에 빠지게 만든다.

▶ 고마운 드라마, ‘고맙습니다’가 만든 김태훈의 ‘고맙습니다’
훈훈한 감동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고맙습니다’는 김태훈이 부른 동명의 곡이 잔잔한 톤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아마도 드라마가 아니었으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을 이 곡은 그러나 드라마와 만나자 엄청난 반응을 일으킨다. ‘당신은 바보네요-’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내용은 고스란히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주인공 영신(공효진)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드라마와 만나 명곡이 된 노래들은 부지기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내세우는 메인 테마는 어김없이 명곡이 되기 일쑤다. 특히 극중 캐릭터가 메인 테마와 만났을 때, 그 호소력은 더 짙어진다. 곡을 들으며 단지 멜로디와 가사만을 듣는다는 것 그 이상이 되게 만드는 영상과의 만남, 이것이 OST를 특별하게 하는 요소다. 이것은 또한 뮤직비디오가 점점 길어지고 스토리를 담으며, 캐릭터를 창출하고, 심지어 뮤직드라마로 진화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드라마 종반에 와서야 왜 궁의 황태자가 마왕으로 캐스팅 되었는지를 알 것 같다. ‘궁’에서 보여주었던 겉으론 차갑지만 정이 많은 황태자의 모습은 ‘마왕’에 와서 좀더 완성되는 느낌이다. 이 드라마에서도 주지훈은 초반 시종일관 차가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그 차가운 얼굴 속에서 따뜻함이나 아픔 같은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야누스적인 면모는 ‘마왕’이란 드라마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면서 또한 주지훈만의 독특한 아우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마왕’과 주지훈은 서로의 주인을 제대로 찾은 격이다. ‘마왕, 오승하’가 아닌 ‘마왕, 주지훈’이라 일컫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마왕, 오승하
오승하(주지훈)란 캐릭터를 연기하는 주지훈의 얼굴은 좀체 변화가 없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포커페이스다. 이것은 ‘마왕’이란 드라마가 처음 시청자들에게 내민 얼굴과 같다.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지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 얼굴, 그것은 ‘마왕’이란 퍼즐조각 맞추기 게임에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된다.

변호사란 직업을 가진 오승하란 캐릭터는 그 설정 자체가 이 드라마의 질문이 된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란 철학적 질문은 변호사라는 직업이 갖는 이중성과 맞물린다. 그것은 변호사가 ‘약자를 위한 변호’를 하기도 하지만 또한 ‘강자를 위한 변호’를 하기도 한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오승하가 변호사가 된 것은 자신의 형이 ‘강자(강오수네 집안)를 위한 변호’에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하려는 것은 형사인 강오수(엄태웅)가 잡으려는 범인을 변호해 과거의 자신이 약자로서 겪었던 상황을 강오수가 똑같이 겪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변호사의 캐릭터를 가진 오승하의 얼굴은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다. 직업적인 얼굴과 표정과 말이 나올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승하가 갖는 묘한 카리스마와 탈속한 듯한 느낌,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악마적인 이미지는 어디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눈과 입이다. 그의 감정은 반쯤 감겨진 눈빛을 통해 무표정한 얼굴 속에서 더욱 강하게 전달된다. 그것은 포기한 눈이며, 슬퍼하는 눈이고, 분노하고 있는 눈이며, 그런 자신을 증오하기도 하는 그런 눈이다. 그런데 좀체 표정을 보이지 않던 입이 실룩거리기 시작하면 위악적인 얼굴이 연출된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언뜻 보이는 살짝 말아 올려진 입 꼬리가 주는 섬뜩함은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악동을 만들어낸다. 오승하는 바로 이 악동의 얼굴을 차마 숨기려는 듯 애써 무표정한 주지훈의 절제된 연기에 의해 탄생했다.

마왕, 정태성
무표정과 절제된 얼굴이 주는 힘은 지대하다. 그것은 시종일관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얼굴이 특정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을 지었을 때 보다 특별한 강렬함으로 다가온다. 이 미로 같은 드라마에 오승하는 작은 실타래를 던져주는 캐릭터이기에 그 얼굴의 변화에 시청자들은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얼굴은 좀체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감정이 수면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얼굴에 표정으로 드러난다. 그 때 나타난 얼굴은 바로 오승하란 얼굴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 정태성의 얼굴이다.

해인(신민아)의 집에 초대되어 잡채를 먹다가 어린 시절 형과의 추억이 떠올라 차마 삼키지 못하는 장면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뒤쫓아 나온 해인이 본 것은 늘상 무표정한 얼굴로 감정이라고는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오승하의 얼굴이 아니다. 어린 시절, 그녀에게 우산을 건네주고는 자신은 괜찮다며 빗속으로 달려간 정태성의 얼굴이다. 사고로 죽은 오승하 행세를 한 자신을 알아차린 오승하의 누나 앞에서 미안하다며 오열하는 이는 바로 정태성이다.

정태성이란 얼굴이 늘 울고 있는 것은 그 복잡한 상황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얼굴 오승하가 지금 하고 있는 복수는 자신이 당한 것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또 다른 정태성이란 피해자를 만드는 일이다. 권현태(이도련) 변호사를 죽인 조동섭(유연수)을 변호해 결국 무죄로 만든 오승하에게 권 변호사의 아들은 “사람이 죽었는데 무죄라는 게 말이 되냐”고 말한다. 그 말에 오승하 속의 정태성이란 얼굴이 꿈틀댄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12년 전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만든 시나리오 속에서 복수의 희생양이 되는 대리살인자들에 대한 죄책감 역시 그를 짓누른다. 복수를 하면 할수록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온다는 것. 그것이 채워질 수 없는 갈증으로 정태성의 얼굴이 울고 있는 이유다.

마왕, 주지훈
그를 캐스팅한 박찬홍 PD는 주지훈이란 연기자에 대해 ‘따뜻함과 악마 같은 차가움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라 평한 바 있다. 이처럼 주지훈이 정태성과 오승하의 양면성을 모두 지닌 마왕이 된 것은 그의 얼굴 이미지가 갖는 양면성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하지만 거기에는 주지훈 자신의 얼굴에서 마왕의 면모를 뽑아내려는 당사자의 노력이 전제되었을 때 얘기다. 무표정으로 날카로움과 차가움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짧은 웃음과 울음을 극대화시킨 주지훈의 전략은 주효했다.

여기에 주지훈을 마왕으로 탄생시킨 공로에 있어서 반드시 덧붙여져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탁월한 화면연출과 조명이다. 드라마 중간마다 마치 간주곡처럼 삽입되는 주지훈의 모습은 그의 무표정한 얼굴 너머의 감정을 영상을 통해 전달하는 효과를 주었다. 빛이 쏟아지는 창을 바라보며 등을 보이고 똑바로 앉아 있는 주지훈의 모습은 오승하의 악마적인 면모와 정태성의 쓸쓸한 면모를 동시에 전달한다. 가끔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나무들 사이에 처연한 얼굴로 선 주지훈에게서는 마왕의 전지전능함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긴 터널을 걸어가다 문득 돌아보는 얼굴에서는 쓸쓸함과 동시에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영상들 속에 여지없이 끼어 드는 것은 바로 조명이 만들어내는 색감이다. 때론 파란색으로 때론 오렌지색으로, 때론 어둠 속에 실루엣으로 주지훈의 얼굴에 음영을 만들어내는 조명은 그 얼굴에서 여러 가지 모습의 감정들을 전달해준다. 파란색 속에서 악마적인 이미지를 끄집어냈다면, 오렌지색에서는 쓸쓸한 감정을 잡아낸다. 조서실의 어둠 속에 나타난 실루엣은 이 인물이 가진 야누스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마왕, 주지훈의 탄생은 김지우라는 작가가 탄생시킨 놀라운 이중적 캐릭터에 박찬홍 PD의 계산된 연출과 정길용 조명감독의 색감이 주지훈이란 연기자의 얼굴에 집중된 결과이다.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가란 질문 앞에서 고뇌하는 ‘마왕’이란 캐릭터의 창출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의 목적인 바, ‘마왕’은 주지훈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너무 잘 짜여진 ‘마왕’ vs. 너무 흐트러진 ‘히트’

‘하얀거탑’을 통해 미드와 같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한 시청자들이 그 연장선 상에서 기대했던 드라마는 ‘마왕’과 ‘히트’였다. 하지만 이 두 유망주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다. ‘마왕’은 그 뛰어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연일 최저시청률을 경신하고 있고, ‘히트’는 수사물로서의 맥을 잡지 못하면서 시청률 추락을 맞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잘 짜여진 드라마, ‘마왕’
‘마왕’을 보고 있으면 이 드라마가 김지우라는 작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구성력에 있어서 이 정도면 거의 퍼즐 맞추기에 가까운데, 그 속에 인물들을 살려놓고 양파 껍질 벗기듯 조금씩 속살을 감질나게 보여주는 전개방식은 이것이 과연 드라마에서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게 만든다. 물론 미드를 한 편이라도 본 경험이 있다면 ‘마왕’의 전개방식이 그다지 낯설다고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작품에 수십 명의 작가들이 달라붙어 만들어내는 미드와 ‘마왕’은 그 대본의 제작환경이 백 프로 다르다.

미드의 경우, 에피소드 하나를 만드는 데 투여되는 인원은 최소 10명에서 1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메인 작가는 한 명이지만 공동 집필을 하는 경우 공동작가(co-writer)가 있고, 여기에 그들을 돕는 여러 보조작가(staff writer)들이 붙는다. 작가들의 분야도 각자 달라서 아이디어만을 내는 작가(creator)가 있고 스토리를 구성하는 스토리 구성작가(story editor)들, 그리고 대본만을 집필하는 작가(teleplay)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어찌 보면 이 정도 작가군이 투입되는 드라마가 치밀한 완성도로 미드 폐인들의 혼을 쏙 빼는 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왕’의 작가는 김지우 혼자다. 그는 12년 전의 한 사건(혹은 사고)에서부터 비롯된 처절한 복수극을 혼자 생각해냈고, 수많은 인물들의 캐릭터와 캐릭터들이 가진 스토리를 혼자 만들어냈으며,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사건들에 혼자 질서를 부여했고, 그 복수극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주제의식도 스스로 세웠다. 실로 놀랍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 역량을 통해 김지우 작가는 초라한 우리네 드라마 작가 시스템에 저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은 ‘마왕’을 좀더 많은 대중들이 즐기기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마왕’의 도전의식은 가치 있고 이 변화의 기로에 선 우리 드라마에서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사명이지만, ‘마왕’은 그 지점을 넘어서 너무 멀리 앞서가고 있다. ‘마왕’은 지금 미드에서도 좀체 시도하지 않는 20부 연작 추리극을 시도하고 있다. 미드가 그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도 맥을 놓치지 않는 것은 그 한 회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는 에피소드 형식을 안전망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왕’ 역시 그 형식을 취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왕’의 이야기는 어느 한 편, 아니 어느 한 신, 심지어는 그저 휙 지나가 버린 소품 하나까지 기억해두지 않으면 이야기 전체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짜여져’있다.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매니아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지만 중간에서라도 보고 싶은 시청자는 처음부터 챙겨보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것이다. ‘마왕’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잘 짜여져 있어’ 시청자들을 허락하지 않는 드라마가 되었다.

너무 흐트러져 있는 드라마, ‘히트’
반면 ‘히트’는 너무 허술한 구성과 스토리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배반한 드라마가 되었다. ‘히트’의 문제는 그것이 ‘멜로가 있어서’ 라든가, ‘리얼하지 않은 연기’라는 식의 단선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성과 스토리, 캐릭터 등이 맞물려 생긴 총체적인 문제이다. ‘마왕’이 너무 에피소드별로 드라마를 자르지 않아 시청자들의 진입장벽을 높였던 것에 반해, ‘히트’는 너무 에피소드별로 잘라내면서 맨숭맨숭한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미드가 가진 에피소드들이 시즌 드라마로서 힘을 받는 이유는 그 잘려진 에피소드들이 다음 에피소드와 맞물려 차츰 드라마의 긴장도를 높여간다는데 있다. 그러나 ‘히트’의 에피소드들 간에는 차츰 발전되어 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 접착력조차 약하게 느껴진다.

‘히트’가 이렇게 된 데는 드라마 진행에 있어서 캐릭터에 너무 천착한 결과이다. ‘히트’는 스토리와 구성 등에 많은 허점을 드러내지만 보기 드문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갖고 있는 ‘이상한’ 드라마이다. 보통의 경우 스토리란 캐릭터(의 문제)에서 비롯되고 그것이 차츰 미궁에 빠지기도 하고 해결을 향해 나가기도 하면서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마련인데, ‘히트’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극적인 긴장감을 일으킬만한 스토리가 부족하다.

강력 사건의 발생이 히트 팀 캐릭터들과 함께 벌어진다(장형사와 홍콩마약밀매 사건, 조과장과 최반장이 얽힌 증거물 도난 사건 등등)는 구조 역시 별로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사건에 캐릭터들을 포진시켜 좀더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려 했던 시도는 캐릭터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했을 지는 몰라도,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좀더 디테일한 사건 전개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홍콩 사건을 예로 들면, 어느 순간 사건은 사라지고 장형사(최일화)와 그 딸의 애틋한 정으로 흘러가면서 급작스럽게 맥이 풀려버리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형사물로서 사건이 우선이 되고 그 사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캐릭터들이 부각되어야 하는 기본이 지켜지지 않은 탓이다. 좀더 치밀한 스토리와 에피소드 간의 강력한 접착력 그리고 그것이 중첩되면서 좀더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면 ‘히트’가 가진 캐릭터들은 좀더 사건 속에서 부각되었을 것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현재 드라마의 에피소드로 진행되고 있는 14년 전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는 이전 에피소드와는 다르게 치밀한 면모가 있다. 초반에 있었던 사족 같은 에피소드들 대신 바로 이 메인 에피소드에 천착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마왕’은 너무 잘 짜여져 있어서, ‘히트’는 너무 흐트러져 있어서 결과적으로 시청률의 추락을 만들었다. 하지만 과거의 드라마와 앞으로 변화될 미래의 드라마 사이, 과도기에 걸쳐 있는 이들 드라마들의 시도는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이든 의미가 있다. 시행착오들이 좀더 탄탄한 성공의 길을 알려준다는 면에서 어쩌면 그것은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 주는 드라마들이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호연을 펼치고 있는 연기자들이 유난히도 돋보인 한 주였습니다.

역시 배종옥, 변신 김정민
SBS의 월화드라마,‘내 남자의 여자’는 극의 흐름을 김희애의 독한 연기가 끌어왔는데 이번 주에는 반격에 나선 배종옥의 연기가 돋보였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겪는 상처와 분노, 하지만 “그래도 용서해주세요”하는 아이의 애원에 흔들리는 엄마라는 복합적인 내면연기를 ‘역시 배종옥!’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소화해냈습니다. 배종옥은 과장되지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가라앉지도 않는 역할에 딱 맞는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MBC의 ‘히트’는 전문성에 대한 비판여론 탓인지 분위기를 멜로에서 전문직쪽으로 바꾸려는 시도로 소강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새롭게 전면에 나선 김영두 역의 김정민이 가수답지 않은(?)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거칠고 강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는 멜로로 말랑말랑해진 ‘히트’에 조금은 강력계다운 강한 면모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성숙 공효진, 소름 주지훈
수목드라마에서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맙습니다’는 달라진 공효진, 장혁의 물오른 연기가 시청자들을 감동에 젖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전 드라마에서 조금은 되바라진 캐릭터를 보였던 공효진은 이 드라마에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한 모성애 강한 미혼모역을 실감나게 소화해내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장혁의 깊어진 연기와 서신애의 아이답지 않은 연기력, 그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신구, 강부자의 연기력들이 맞물려 따뜻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데 강한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시청률은 낮아도 여전히 화제에 중심에 있는 ‘마왕’은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캐릭터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를 보이다가, 순간 순간 씩 웃을 때 입꼬리가 올라가며 보이는 악마적인 느낌은 시청자들을 전율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아픔을 떠올릴 때면 그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내면연기 역시 돋보이면서 이제 막 시작한 신인배우라고는 믿기기 어려운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캐릭터와 연기력이 드라마를 살린다
TV 프로그램의 성패가 된 리얼리티는 이제 드라마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리얼하냐는 것이 공감의 바로미터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캐릭터가 극의 중심으로 오면서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과거 스토리 중심의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적당한(?) 연기력을 가진 외모출중한 배우들이 포진했던 반면, 최근에는 외모가 아닌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야말로 드라마를 살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착한 척하는 배우, 예쁜 척 하는 배우보다는 자신은 망가지더라도 극중 캐릭터를 100%로 살릴 수 있는 연기를 보이는 배우가 아름다운 시대입니다.
월화수목 드라마들이 중반을 치닫고 있는 지금이, 이제 제 궤도에 오른 연기자들의 명연기를 보는 맛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 최고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 ‘고맙습니다’ 뒤에는 연기자들의 호연이 빛나기 마련! 그러나 시청률과 상관없이 취향에 따라 그 다양한 맛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요.

재미로 보는 기대감 수치
▶ ‘내 남자의 여자’(기대감 80%) : 새로운 남자, 이종원이 등장하면서 배종옥의 갈등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배종옥과 김희애의 대결구도는 여전히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 ‘고맙습니다’(기대감 80%) : 연기로 보자면 이 드라마 만큼 기대감을 높이는 드라마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연기자들이 연기 9단의 모습을 보이는 드라마입니다. 공효진과 그 가족을 사이에 둔 장 혁과 신성록 간의 대결구도도 관전포인트입니다.
▶ ‘히트’(기대감 50%) : 아직까지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긴박감이 살아나지 않는 반면, 김정민의 역할이 얼마나 그걸 해줄지 기대가 되는 드라마입니다.
▶ ‘마왕’(기대감 50%) :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강오수’와 ‘형사로서의 강오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엄태웅의 연기도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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