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주인님', 조진국 작가가 보는 인간·공간·시간의 따뜻함

 

'작가님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MBC 수목드라마 <오! 주인님>의 4회 부제는 극중 인물인 오주인(나나)이 한비수 작가(이민기)에게 하는 대사를 가져온 것이다. 어딘지 결벽증에, 자존감 과잉으로 타인을 무시하고, 퉁명스럽기 이를 데 없는 나르시스트처럼 보였던 한비수 작가가 알고 보니 점점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오주인이 느끼게 됐다는 것.

 

물론 이 구도는 멜로에서 늘 등장하는 코드 중 하나다. 까칠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지만 알고 보니 괜찮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마음이 가게 되는 그런 관계의 발전. 하지만 뻔한 코드라고 해도 이걸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느냐 하는 건 시청자들에게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오! 주인님>을 쓴 조진국 작가는 한비수 작가가 치매를 앓는 오주인의 엄마 윤정화(김호정)를 대하는 그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그에 대한 '호감'을 이끌어낸다.

 

한비수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는 오주인이 집 냉장고에 가득 붙여 놓았던 엄마를 위한 메모들을 문구점에서 일일이 코팅을 해 반듯하게 붙여 놓는 장면을 통해 어떤 예감을 준 바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그의 결벽증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문구점 아저씨와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코팅해간 걸 보고 치매환자가 집에 있느냐며 외면하고도 싶고 골치 아프기도 하지 않냐고 말하는 아저씨에게 한비수 작가는 오주인이 들으라는 듯, "가족이 아프면 더 신경 써야지 골치 아프면 어쩌자는 거예요?"하고 따뜻한(?) 비수를 날린다.

 

한비수 작가는 어쩌다 윤정화가 자신을 죽은 남편이라 착각하게 되자, 기꺼이 그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함께 식물원에도 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그렇게 데이트도 해주고 도와준 것에 대해 오주인이 감사함을 표하자, 한비수 작가는 도와줄 생각 같은 거 없었다며 엄마는 환자가 아니라는 의외의 말을 한다. "엄마한텐 보통 사람한텐 없는 능력이 하나 있는 거야. 과거를 지금의 시간으로 불러들이고 그걸 진짜로 만드는 능력. 운 좋게도 그런 능력 있는 엄마를 내가 하루 빌린 거고." 그날의 말과 행동들은 어딘가 퉁명스럽게만 보이던 한비수 작가가 사실은 '좋은 사람'이라는 걸 발견하게 해준다.

 

그런데 여기서 드러나는 건 <오! 주인님>을 쓴 조진국 작가의 면면이다. 그가 말하는 '좋은 사람'을 조진국 작가는 인간, 시간, 공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찾아낸다. 한비수 작가는 퉁명스럽게 말하긴 하지만, 늘 사람에 대한 관심과 주의를 놓지 않는다. 신경 쓰이고 걸리적거린다는 게 그의 표현이지만, 사실은 무관심하지 않게 그 입장을 들여다보려는 따뜻함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치매라는 병증을 '과거를 지금의 시간으로 불러들이고 그걸 진짜로 만드는 능력'이라고 말하는 조진국 작가는 '시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또한 보여준다. 이 드라마에는 지나간 과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관점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오주인이 어린 시절 살았던 한옥집에 깃들어 있는 과거나, 오래된 LP판을 파는 가게, 그 가게를 운영하며 그 LP판처럼 사람 좋은 아저씨로 나이든 김창규(김창완), 그를 오랜만에 찾아와 '오빠'라 부르며 순식간에 과거 청춘의 시절로 시간을 되돌려 놓는 한비수의 어머니 강해진(이휘향), 그 강해진이 오주인의 엄마 윤정화와 다시 만나 이어가는 우정의 이야기까지, 기억과 추억으로 덧칠해진 따뜻한 시간들이 묻어난다.

 

게다가 어려서는 오주인이 한비수가 살던 집을 그의 어머니에게 사서 들어감으로서 두 사람이 얽혀지는 관계는 다름 아닌 그 한옥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려진다.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에 강박적으로 문을 닫으려는 한비수와,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마음을 열 듯 문을 열어두는 오주인이 한 공간에서 서로를 이해해하는 과정도 다름 아닌 공간으로 은유된다. 누군가 살고 있는 공간이 그 살았던 사람의 마음처럼 은유되고, 그 공간을 통해 가까워지는 이야기는 그래서 닫혔던 그 문 속으로 타인이 들어오는 이야기로 표현된다.

 

<오! 주인님>은 전형적인 멜로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자꾸만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이 드라마가 같은 상황을 그려도 그 속에 존재하는 인간, 시간, 공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투영되어서다. 그래서 <오! 주인님>을 보다 보면 나나가 한비수를 보듯, 작품을 쓴 작가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그것만으로도 보는 이들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갖게 될 정도로.(사진:MBC)

김소현을 빼고 '달뜨강'의 성공을 어찌 말할 수 있으랴

 

학교폭력 논란으로 남자주인공이 교체되는 최악의 사태를 맞았지만 KBS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은 금세 안정화 됐다. 나인우가 온달 역할로 재빠르게 교체 투입됐고, 다른 출연자들과 제작진의 배려와 희생이 더해지면서 오히려 응원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달이 뜨는 강>의 빠른 안정화에는 단연 주목되는 인물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평강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김소현의 공이다. 사실 온달 역할의 배우 교체 상황에서도 <달이 뜨는 강>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김소현이 평강 역할로서 굳건히 드라마를 지탱해줬기 때문이다.

 

온달 역할의 나인우가 극에 적응해가는 와중에, <달이 뜨는 강>의 스토리는 평강(김소현)이 풀어나갔다. 태자의 탕약에 독약을 넣는 것처럼 꾸며 이를 지적한 평강을 오히려 궁지로 몰아넣은 고원표(이해영)는 이제 평강을 자신의 아들 고건(이지훈)과 국혼시켜 사실상 볼모로 잡으려는 계략을 꾸민다.

 

평강은 이에 반발하지만, 고원표는 심지어 평원왕(김법래)마저 겁박함으로써 국혼을 반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마침 부마도위 선발에 참석한 온달(나인우)을 본 평강은 그가 자신과 혼인한 낭군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평원왕은 평강의 국혼을 피하게 하기 위해 궁 밖으로 내쫒는다. 그런 속내를 알고 있는 평강은 온달과 귀신골로 돌아와 가짜 같지 않은 가짜 혼인 생활을 시작한다.

 

본래 <달이 뜨는 강>은 전래 설화에 등장하듯이 평강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평강은 거의 모든 문제들을 홀로 떠안고 헤쳐 나가는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 평원왕과 동생 태자를 고원표의 마수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정치적으로도 중신들과 싸우는 인물이고, 온달을 평범한 약초꾼, 사냥꾼에서 장수로 성장시키는 인물이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애모하는 고건을 다독여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줄 알고, 또 만만찮은 신라의 스파이인 해모용(최유화)도 자기편으로 세워 이용하려 하는 인물이다.

 

이토록 모든 일들에 관여하는 평강이라는 역할을 맡은 김소현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상대역인 온달의 배우 교체까지 있었으니 그 부담은 더 크지 않았겠나. 하지만 그래서일까.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도 드라마가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김소현이라는 배우가 가진 저력을 드러낸다. 그는 천주방 자객으로서 액션 연기는 물론이고, 온달과의 달달한 멜로 연기 그리고 평원왕과 고원표 사이에서 정치 대결을 벌이는 연기까지 제대로 소화해내고 있다.

 

다행스러운 건 그래도 새로 교체 투입된 나인우가 그 역할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짜 혼인 생활을 하는 평강과 온달의 꿀 떨어지는 '썸'에서 순수한 온달의 모습이 설렘을 주고 있고, 무엇보다 전면에서 드라마를 이끌어가느라 어깨가 무거운 평강을 어딘지 이 덩치 큰 온달이 잘 지지해주고 있는 모습이 극 중 스토리와도 적절히 어우러지고 있어서다.

 

과연 귀신골로 내쳐진 평강은 어떻게 다시 궁으로 돌아와 고원표와 그 무리들을 대적해나갈까. 평강의 고군분투와 온달의 든든한 지원은 마치 이 드라마가 겪은 위기 상황을 극복해가는 김소현과 나인우의 모습과 중첩되며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고 있다. 달이 바뀌어도 강은 계속 흔들림 없이 흘렀고, 그 강 위로 새로운 달이 떴다.(사진:KBS)

'런 온', 대사 좋고 연기 좋은데 멜로로 귀결되는 건

 

JTBC 수목드라마 <런 온>의 가장 큰 강점은 '대사'가 아닐까. 김은숙 작가의 보조작가로 활약해왔던 박시현 작가가 쓴 게 확실하다 여겨지는 <런 온>의 대사에는 '말 맛'이 있다. 이를 테면 육상부 대표팀에서 상습적인 폭행 사실을 폭로하고 달리기를 그만두겠다 선언한 김우식(이정하)을 만난 오미주(신세경)가 기선겸(임시완)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대목이 그렇다. 

 

"우식씨가 하는 말은 이렇게 다 알아 듣겠는데 도대체 왜일까요? 두 시간짜리 외국어 번역보다 그 사람이 하는 우리 말 한 마디가 훨씬 더 어렵고 해석이 안 될 때가 많아요." 통번역이 일인 오미주는 자신과 기선겸과의 관계를 번역에 빗대 그렇게 표현한다. 어딘지 너무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같아서 소통이 잘 안되는 기선겸이지만, 그래서 그런 어려운 번역을 맡을 때마다 더 소통에 대한 승부욕을 느끼는 오미주의 마음이 그 대사 안에 들어 있다. 

 

역시 은퇴를 선언한 기선겸에게 운동선수들은 은퇴 후 무엇을 할까 궁금해하던 오미주가 그에게 하는 말도 예사롭지 않은 대사로 표현된다. "나는 미련처럼 애틋한 장르를 땔감으로 써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기선겸씨는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빛나던 순간들에 대한 미련. 그 미련을 값지게 쓰는 것." 운동을 했던 그 순간들에 대한 미련들이 앞으로 그가 할 어떤 일에든 자양분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오미주는 그렇게 말한다. 

 

감성적이고 재치 있는 대사도 눈에 띤다. 오미주와 박매이(이봉련)가 함께 사는 집에 잠시 기거하고 있는 기선겸에게 자신들이 일 때문에 며칠 집을 비운다며 자신들이 없는 동안 혼자서 편하게 있어도 된다고 하자 주인도 없는 집에 혼자 어떻게 편하게 있냐고 기선겸이 말하자 오미주는 이렇게 말한다. "어. 뭐야? 나 왜 지금 따끔했지? 방금 말을 좀 뾰족하게 했어요?"

 

어딘지 지독한 현실주의자처럼 보이던 서단아(최수영)가 이영화(강태오)를 찾아와 축구를 하는 이들을 보며 나누는 대화도 흥미롭다. 흘러온 공을 예사롭지 않게 차내자 축구를 좋아하냐고 묻는 이영화에게 서단아는 말한다. "그땐 축구선수가 꿈이었는데. 꿈은 꾸는 거지 이뤄지는 게 아니더라고. 뭐 그 정도에 꺾이는 꿈이었던 거지. 살다가 이렇게 한 번씩 마주치면 좋은 거구. 가끔 마주치려고 좋아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하지만 늘 운동화를 신고 다니던 걸 본 이영화는 그가 여전히 축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걸 서단아와 이야기하고 있는 이영화는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놓여진 어떤 벽 하나가 허물어진 걸 느낀다. 늘 철벽을 치고 현실만을 말하는 서단아가 자신의 진짜 속내를 슬쩍 이야기한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속내도 드러낸다.

 

"제 꿈은 물어보지 마세요. 준비된 꿈이 없거든요. 지금은 눈앞에 보이는 것들 하기에도 바빠요. 아 최근에 하나 생겼다. 대표님이랑 그림 이야기 직접 하는 거? 누구 안통하고? 아니 꿈이 아니고 목표로 바꿀게요. 꿈은 아까 못 이룬다고 했으니까." 꿈이 아니라 목표로 바꾼다는 그 재치 있는 대사 속에는 이영화가 서단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감정이 묻어난다. 

 

이처럼 박시현 작가가 <런 온>에서 쓰고 있는 대사들은 예사롭지 않다. "방금 말을 조금 뾰족하게 했어요?"라는 표현처럼 그는 말을 뾰족하게도, 둥글게도 할 수 있는 작가일 게다. 그래서 사실 그 대사의 말맛을 느껴가며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이런 톡톡 튀는 대사들은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기선겸과 오미주, 서단아와 이영화 같은 인물들의 매력이 느껴지는 건 바로 이 대사들이 꺼내놓는 캐릭터의 감정적 질감이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몰입도나 힘이 대사와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매력적인 캐릭터만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런 온>에서 아쉬운 유일한 지점은 이런 대사가 주는 맛들이 좀 더 굵직한 극적 스토리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달달하고 감성적이며 아픈 멜로만이 아니라, 좀 더 드라마가 하려는 분명한 스토리와 메시지가 더해졌다면 어땠을까. 달리기와 통역이라는 좋은 소재들을 늘 보던 클리셰적 설정들이 아닌 좀 더 색다른 이야기 속에서 풀어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사진:JTBC)

'런 온', 임시완의 달리기와 신세경의 통역에 담긴 뜻은

 

"통역하는 건 뭐 예쁜 말만 잘 골라서 해야 하는 건 기본이니까 잘 알거고, 내 아들의 일거수일투족 보고해주는 정도? 통역사야 계속 붙어 다닐 수 있잖아. 그렇다고 허튼 마음먹으면 안 되겠죠? 수작을 건다거나." JTBC 수목드라마 <런 온>에서 기선겸(임시완)의 아버지 기정도(박영규) 의원은 통역일을 맡게 된 오미주(신세경)에게 그렇게 함부로 말한다. 그에게 통역이란 '예쁜 말만 잘 골라서' 하는 어떤 것이고, 심지어 그건 늘 붙어서 감시하는 일에 최적인 일 정도다.

 

하지만 오미주에게 통역은 그런 게 아니다. 첫 사랑이었지만 그리 좋은 감정으로 헤어지지도 않은 감독이라도 그 작품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고, 그래서 그렇게 통역을 한 작품이 끝난 후 모든 관객이 다 나가도 끝까지 자기 이름이 크레딧에 올라오는 걸 보고 일어설 정도로 그는 통역을 사랑한다. 뮤지컬 영화의 통역이 입을 맞추는 게 어려워 개고생을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작품 자체가 좋으면 어쩔 수 없이(?) 통역을 맡는 그다. 그에게 통역은 그저 언어를 바꿔 전달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그걸 말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기선겸은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모든 걸 다 가진 남 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다. 단거리 육상 국가대표이고 그것도 본래는 창던지기 선수였었지만 달리기로 종목을 바꿔 차근차근 올라와 국가대표의 자리까지 오른 선수다. 아버지는 국회의원이고 어머니는 국민 첫사랑으로 불리는 배우. 게다가 잘 생긴 외모 때문에 모델로도 활동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기선겸 자신은 그런 외부의 시선들과는 달리, 모든 소통이 단절되어 있는 인물이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금수저 취급받지만 아버지는 한 끼 밥을 먹으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으려 하는 기선겸을 '못난 놈'으로 몰아세운다. 어머니 육지우(차화연)는 물론 국민 첫사랑이지만 기선겸에 대한 남다른 애정보다는 자신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 정도로 아들을 생각한다. 쇼윈도 부부가 아니라 쇼윈도 모자 관계랄까.

 

기선겸은 모든 소통이 단절되어 있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후배 김우식(이정하)이 선배들에게 상습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들을 폭행하고 그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려 한다. 자신의 폭행이 단죄된다면, 후배를 폭행한 그들도 단죄될 거라 믿고 한 행동이지만, 이번에도 아버지가 나서 그 모든 걸 덮어버린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진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소통이 단절된 기선겸은 그래서 달린다. 그의 달리기는 그래서 그가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단절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여기게 된 기선겸은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달리는 것을 포기하고는 자신이 후배를 폭행한 사실을 밝힌다.

 

아마도 기자들은 그 폭행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게다. 그 뒤에 담겨진 다양한 의미들과 저간의 사정들을. 하지만 그 기자들 뒤에 서서 그 이야기를 듣는 오미주는 다르다. 그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오미주는 그가 왜 달리는 걸 포기하고 기자들 앞에서 폭행 사실까지 드러내는지 그 마음을 이해한다.

 

달리기를 하는 기선겸과 통역을 하는 오미주. <런 온>은 이들의 멜로를 그리고 있지만, 그 사랑이야기에는 '소통 단절'에 대한 이야기들을 깔려 있다. 가진 것의 차이로, 생각의 차이로, 또는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아예 이해하려 들지 않아서 사람들은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못한다. 기선겸의 진심을 통역해주는 오미주라는 인물은 그래서 이러한 소통 단절의 깨고 들어오는 사회적 의미까지 담고 있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그저 남녀가 만나 툭탁대다 사랑을 하는 평이한 멜로 정도로 여겨졌지만, 보면 볼수록 기선겸과 오미주의 관계에서 남다른 설렘이 느껴지는 건, 이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진정한 소통에 이르러 가는 과정이 담겨 있어서다. 그것은 어쩌면 남녀 간의 사랑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의미로까지 확장되는 소통에 대한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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