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월화드라마 ‘너는 나의 봄’, 멜로와 스릴러의 교차점

너는 나의 봄

tvN <너는 나의 봄>의 포스터에는 주영도(김동욱)와 강다정(서현진)이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하늘을 향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들의 배경에는 초록빛 풀들이 가득 채워져 있고 눈 감은 두 사람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다. 누가 봐도 봄날의 설레는 멜로의 한 광경을 기대하게 만드는 포스터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그런 달달한 멜로를 풀어내지 않는다. 대신 차 위로 떨어져 죽은 채준(윤박)으로 인해 흘러내리는 붉은 피와 강다정의 일곱 살 때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이 드리워진 불행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동화 <인어공주>를 공주가 “잘 알지는 못하는 놈한테 미쳐서 형제 부모 다 버리고 딴 세상 가서 몸 버리고 마음 버리고 고생만 드럽게 하다가 인생 종쳤다”는 얘기라고 말해주는 엄마 문미란(오현경)과 그 끔찍한 곳에서 동생과 함께 탈출해 나오던 기억이다. 당시 문미란은 남편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말라고 말하곤 아이들과 도망친다. 

 

그리고 그 일곱 살의 기억에서 도망쳤다 생각한 서른넷의 강다정은 다시 그 기억 앞에 서게 된다.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의문의 남자 채준이 자신이 연쇄살인범이라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하고, 사실은 본명이 최정민이었으며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만난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그리고 놀랍게도 최정민과 똑같이 생긴 쌍둥이 이안 체이스(윤박)가 등장한다. 혼란스런 사건들이 벌어지는 와중에 강다정과 주영도는 점점 가까워진다. 강다정이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겪는 정신적 고통을 주영도는 정신과 의사로서 또 한 남성으로서 들어주고 바라봐주고 기대게 해준다. <너는 나의 봄>은 그래서 장르적으로 멜러와 스릴러가 교차된다. 강다정을 중심으로 이안 체이스와 연결되어 있는 사건들은 스릴러지만, 주영도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휴먼 멜로다. 

 

물론 <너는 나의 봄>의 장르적 결합은 자연스럽지 않고 특히 스릴러는 너무 충격요법으로만 활용되는 한계를 보인다. 그래서 이종 장르의 결합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생겨나는 호불호가 만들어진다. 즉 멜로에 집중하는 이들은 스릴러가 영 생뚱맞게 느껴지고, 스릴러가 궁금한 이들은 멜로로 채워지는 부분들이 너무 극을 늘어뜨린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점은 시청률 지표로 드러난다. 이제 몇 회 남지 않은 드라마는 1-2% 사이의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종 장르의 접합점이 자연스럽지 않은 한계가 아쉽긴 하지만, <너는 나의 봄>이 그리려는 세계와 메시지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 드라마는 어떤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걸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일곱 살에 감당하기 힘들었을 정신적 상처를 입은 강다정이 서른넷에 다정하고 배려 깊으며 밝고 자신감 있는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알고 보면 그의 주변에 존재하던 봄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였다. 퉁명스러워 보여도 그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는 엄마가 있었고, 그 어린 시절의 아픔을 같이 겪어내며 누나를 걱정해준 동생이 있었다. 또 가족만큼 그를 챙겨주는 박은하(김예원) 같은 친구도 있었다. 주영도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차가운 날씨에도 꽃을 피우는 나무를 “미쳤다”고 말하지 않고 그 나무가 건물에서 나오는 따뜻한 온기에 봄을 느껴서 라고 말해주는 사람. 하지만 이안 체이스는 따뜻했어야 할 가족에서조차 차가운 겨울을 느껴야 했던 인물이다. 어려서 쌍둥이로 이름조차 없이 버려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자라난 이안 체이스에게는 냉정함이 묻어난다. 살인사건이 주변에서 벌어져도 그다지 놀라지 않을 정도로.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지만 그래도 <너는 나의 봄>이 던지는 질문은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면이 있다. 안도현 시인이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물었듯, “너는 누군가에게 봄인가 겨울인가”를 묻는 듯해서다. 혹은 멜로인가 스릴러인가를.(글:PD저널, 사진:tvN)

주인공을 ‘멸망’이란 추상으로 바꿔 놓으니

 

tvN 월화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이하 멸망)>는 벌써 제목부터 특이하다. 드라마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만 보면, ‘멸망’이라는 의인화된 표현은 이 집 주인이 맞이한 비극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멸망’이 들어온 집 주인 탁동경(박보영)은 시쳇말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다. 사귀던 남자친구가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고, 머릿속에는 100일 후 터져버릴 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선고를 받는다. 이 정도면 술에 취해 누구나 한 번쯤 이렇게 외쳐볼만 하다. “세상 다 망해라! 멸망해버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바로 이 지점부터 멜로를 시작한다. 그것도 탁동경이 외쳤던 그 ‘멸망(서인국)’이 잘생긴 남자 캐릭터로 새벽에 그 집 문 앞에 나타나는 것으로. 

어느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설정은 흥미롭다. ‘멸망’이라는 추상명사를 초현실적 존재로 캐릭터화 했고, 마치 신처럼 그 존재의 역할까지 부여했으니 말이다. 이 멸망은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이유’라는 존재의 역할이 부여됐다. 그래서 그가 지나는 곳에서는 씽크홀이 생기고, 달리던 버스의 타이어가 펑크 난다. 물론 사람도 죽는다. 그러니 이 멸망이라는 초현실적 존재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뭐든 가까이 하면 사라지거나 불행해지는데 어찌 행복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존재가 되면 차라리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나아가 인간들과 거리를 두는 게 인지상정일 게다. 

 

그런데 이 멸망이라는 초현실적 존재는 탁동경과 계약을 맺는다. 죽기 직전에 세상을 멸망시켜 달라고 하는 조건으로 계약한 100일 간은 아프지 않게 해주고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만 계약을 어기면 그 순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물론 ‘멸망’이라는 초현실적 존재가 등장하지만 <멸망>이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장르적 틀은 멜로다. 그래서 멸망과 탁동경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공식을 거의 따라간다. 어쩌다 ‘동거’를 하게 되고, 물론 ‘동거 계약서’도 쓴다.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지는 밀고 당기는 관계 역시 빠지지 않는다. 멸망은 탁동경을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는 탁동경의 손을 잡고 함께 건너 주기도 하고, 초현실적 존재로서 탁동경이 그토록 원하는 판타지(이를 테면 과거로 잠깐 시간을 되돌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그 시절을 경험하게 해주거나, 온 가족이 함께 놀이공원에 갔던 그 시간 속으로 옮겨놓는 식의)를 이뤄주기도 한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 비정함과 그와는 정반대로 탁동경을 달달하게 만드는 판타지가 오가며 멜로의 밀당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미 모든 시청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만 같던 멸망이 탁동경에게 연민을 느끼다 사랑하게 된다. 

 

너무나 전형적인 멜로의 틀은 시청자들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멸망’이라는 초현실적 존재라는 사실은 이 익숙한 틀을 낯설게 만든다. 무엇보다 그래서 멸망과 사랑에 빠지는 이 탁동경의 판타지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가 궁금해진다. 판타지는 현실의 결핍이나 부재를 채워주는 방식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희망도 아니고 절망도 아닌 멸망과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는 현실의 어떤 결핍을 채워주기 위함일까 궁금해질밖에.

 

바로 이 부분은 그래서 이 전형적인 멜로가 ‘철학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어느 날 도무지 이길 수 없는 멸망이 당신을 찾아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망하게 생겼으니 세상도 망해야 한다고 저주를 퍼부을 것인가, 아니면 그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멸망을 힘겹지만 끌어안을 것인가. 탁동경은 세상의 멸망을 요구하는 저주 대신 멸망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후자를 선택한다. 그러자 이제 멸망이 고민에 빠진다. 그 역시 탁동경을 사랑하게 되지만 저 계약 조건에 따라 자신은 죽게 됐으니 말이다. 이 상황은 ‘운명은 거스르려 하면 결코 바뀌지 않지만, 받아들이려 할 때 그제서야 변화하게 된다’는 다소 철학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런 해석은 해석일 뿐이다. 그저 밀고 당기는 전형적인 멜로로 보일 수 있고 그것 역시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히 미덕이 있다, 그건 적어도 멸망이라는 초현실적 존재가 그 흔한 멜로의 현대판 왕자들보다는 낫다는 점이다.(글:PD저널,사진:tvN)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멸망’과 ‘간동거’의 평행이론

 

로맨틱 코미디의 남녀 주인공은 당대의 대중들이 가진 욕망을 대변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와 <간 떨어지는 동거>는 유사한 지점이 있다. 초현실적 존재와의 로맨틱 코미디를 그리고 있어서다.

어느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이젠 ‘멸망’과 밀당하는 판타지 멜로의 시대

사귀던 남자가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고, 뇌종양까지 발견되어 100일 시한부 판정을 받은 탁동경(박보영)은 절망적인 마음으로 외친다. “세상 다 망해라! 다 멸망해버려!” 그런데 그 날 새벽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어보니 웬 잘 생긴 남자가 서있다. 그는 불러서 왔다며 자신을 ‘멸망’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tvN 월화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이하 멸망)>는 멸망(서인국)과 탁동경의 밀당 판타지 멜로가 시작된다. 

 

사실 초현실적인 존재와의 사랑이야기는 완전히 색다른 건 아니다. 이미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를 통해 우리는 도깨비 김신(공유)은 물론이고 저승사자(이동욱)의 매력에 푹 빠져본 경험이 있다. <멸망>은 이 작품을 쓴 김은숙 작가의 보조작가였던 임메아리 작가가 쓴 작품이라는 점에서 어딘가 <도깨비>를 닮았다. 잘 생긴 초현실적인 존재의 갑작스런 등장과 그와 얽히는 판타지 멜로 그리고 과거사의 비극까지, <멸망>의 세계관은 유사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그건 ‘도깨비’가 초현실적인 존재이긴 해도 최소한 설화 속에 등장하는 어떤 형상이 있는 반면, ‘멸망’은 말 그대로 추상이기 때문이다. 그 추상적 관념을 그려낸 실재 인물과 만나고 사랑하고 아파하며 아마도 헤어질 그 과정들은, 그래서 탁동경이라는 절망에 빠진 인물이 그 절망(아마도 멸망 같은)을 어떻게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극복하는가의 과정처럼 그려지는 면이 있다. 예컨대 이 드라마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멸망이 당신의 문을 두드리고 찾아온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탁동경은 그 멸망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걸 선택한다.

 

바로 이런 ‘추상’과의 판타지 멜로가 만들어내는 철학적인 세계관은 그래서 이 평이한 로맨틱 코미디를 차별적으로 보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사실 이러한 세계관을 빼놓고 보면 <멸망>은 지극히 평범한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다. 함께 동거를 하고 계약서를 쓰고 밀고 당기는 관계를 보이다가 사랑하게 되는 드라마. 하지만 탁동경이 사랑하게 되는 존재가 다름 아닌 ‘모든 사라지는 것들의 이유’인 멸망이라는 사실은 이 평이한 로맨틱 코미디에 무게감을 만들고 나아가 운명적인 비극의 향기까지 드리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즉 그 추상적 존재와의 관계를 다양한 의미로 해석하려는 시청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흥미를 주지만, 그것이 너무 복잡하거나 낯설게 느껴지는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뻔하고 틀에 박힌 멜로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한 가지 지평만은 넓힌 공적이 있다. 그건 이제 멜로가 ‘멸망’ 같은 추상적 존재와의 밀당 정도는 다뤄야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간 떨어지는 동거

‘멸망’과 다른 듯 닮은 ‘간동거’의 판타지 멜로

tvN 수목드라마 <간 떨어지는 동거>는 그 이야기의 소재를 구미호 설화에서 가져왔다. <전설의 고향>에서부터 최근 <구미호뎐>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재해석과 진화를 거듭해온 설화의 주인공이다. <간 떨어지는 동거>가 특이한 건 신우여(장기용)라는 구미호가 무려 999살을 산 존재라는 점이다. 고려 현종 때 태어난 이 인물은 그래서 조선시대를 거쳐 구한말을 지나 현재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어딘가 <별에서 온 그대>의 외계인 도민준(김수현)을 닮았다.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골동품들이 가득 채워진 집의 풍경이 그렇고, 남다른 능력(도술)을 가진 존재라는 점이 그렇다. <간 떨어지는 동거>의 구미호 신우여는 그 긴 세월을 살며 인간에게는 정을 주지 못하는 ‘어르신’이지만, 어쩌다 우연히 그의 구슬을 삼키게 된 이담(혜리)을 그는 조금씩 마음에 담기 시작한다. 구슬을 빼내는 건 간단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담의 기억이 모두 지워지고 그렇다고 그대로 놔두면 구슬에 정기를 빼앗겨 이담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신우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멸망>과 <간 떨어지는 동거>는 언뜻 보기에는 확연히 다른 작품처럼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비슷한 요소들이 적지 않다. 즉 멸망이나 구미호 같은 초현실적 존재가 등장하고, 그와의 밀당 로맨틱 코미디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며, 이들은 결국 동거를 하게 되고 함께 사는 동안의 계약서를 쓴다는 점도 유사하다. 또한 이 멜로가 순간순간을 웃음으로 채워 넣는 코미디라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과, 쉽게 이뤄질 수 없는 비극을 담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인간과 초현실적인 존재 간의 사랑이니 어찌 쉽게 이뤄질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 유사한 지점들이 많은 건, 이 두 드라마가 전형적인 ‘청춘 로맨틱 코미디’의 법칙들을 따라가고 있어서다. 즉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그대로 두 작품이 모두 쓰고 있지만, 거기에 ‘멸망’이나 ‘구미호’ 같은 초현실적 존재를 더함으로서 색다른 관전 포인트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멜로라는 장르의 안간힘이 느껴지는 이유

우리네 드라마에서 한때 멜로는 중심적인 장르였다. 그것은 최근 등장한 장르 드라마들보다 훨씬 더 ‘맨 파워’에 의해 힘을 발휘하는 장르가 바로 멜로이기 때문이다. 액션이나 화려한 CG 혹은 판타지적 세계를 세트나 의상 등을 통해 구현해내곤 해야 하는 장르드라마들은 더 큰 제작규모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담는 멜로드라마들은 잘 만든 대본과 연기자들의 감정 연기 등으로 가성비 높은 몰입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남녀 간의 사랑을 담는 멜로만큼 본능적인 소재도 없다. 그래서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기까지 트렌디 멜로 드라마들은 우리네 드라마를 대표하는 장르였다. 2002년 만들어졌던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첫 한류의 불씨를 지폈던 것도 그 동력은 바로 멜로였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그 후 20년 간 급격히 변화했다. 너무 많이 나온 멜로드라마들은 이제 시청자들이 그 공식을 꿰고 있을 만큼 익숙한 문법이 되어버렸고, 2010년대까지도 그토록 쏟아져 나온 신데렐라 판타지의 멜로드라마들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대중들의 ‘성인지 감수성’ 때문에 변화를 요구했다. 김은숙 작가가 2000년대 초반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연인> 3부작으로 멜로 장인에 등극하게 된 건 다름 아닌 신데렐라 스토리 덕분이었지만, 이 작가는 2016년부터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그리고 <미스터 션샤인>의 대작 3부작을 통해 변신했다. 장르와 더해진 멜로의 퓨전을 성공적으로 실험한 것. 

 

<멸망>이나 <간 떨어지는 동거> 같은 초현실적 존재를 등장시켜 만들어가는 판타지 멜로는 그래서 이 흐름 안에서 보면 너무 익숙해져 위기에 빠진 멜로의 안간힘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그 문법은 익숙하지만 무언가 다른 관점을 통해 새로움을 시도하려는 안간힘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 안간힘을 성공했을까. 두 작품은 모두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가 아닐까 싶다. 새로운 소재와 장르를 더해 새롭게 만들려 한 시도는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지만, 그 껍질을 벗기고 나면 여전히 같은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어쨌든 멜로는 남녀 인물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에서는 필수적인 요소일 수밖에 없다. 다만 시대적 변주와 창조적 변화가 요구될 뿐.(글:매일신문, 사진: tvN)

자극적인 19금 전성시대, 따뜻한 드라마들이 설 자리는 없나

 

지금은 19금 드라마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처럼 사이코패스 잡는 사이코패스라는 자극적인 소재의 드라마 앞에서 MBC '오! 주인님' 같은 다소 전형적이지만 따뜻한 멜로 휴먼드라마는 그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펜트하우스'로 19금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져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한 SBS는 또 다른 19금 설정의 '모범택시'로 시청률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 자극적인 장르물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 과거 우리네 드라마의 주력 장르이기도 했던 멜로나 휴먼드라마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에 쏟아지는 호평과 상반되는 낮은 시청률에는 시청자들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이어진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칠순의 덕출(박인환)이 보여주는 발레 도전에 담긴 감동적인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할비레라'라는 표현까지 나오게 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화제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과거 JTBC '눈이 부시게' 같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휴먼드라마지만, 19금 드라마 전성시대의 자극 앞에 2%대 시청률에 머물며 훨훨 날지는 못하고 있다.

 

'오! 주인님'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외양을 가져왔지만,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들여다보는 삶과 관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휴먼드라마다. 한비수(이민기) 작가와 톱배우 오주인(나나)이 함께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물론 둘 사이의 멜로를 그려내지만, 이들이 만드는 드라마가 치매를 앓는 오주인의 엄마와 그의 절친으로 역시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한비수의 엄마를 위한 작품이 되어가는 과정은 휴먼드라마의 따뜻함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등장하고 있는 19금 드라마들이 그저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만 치닫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마우스'는 다소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장면과 설정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던지는 질문은 진중하다. 가해자들이 별 죄책감도 없이 지내는 것과 상반되게 평생 상처를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을 이 질문이 새삼 들여다보게 해줘서다.

 

'모범택시'도 마찬가지다.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사적 복수'라는 자극적인 설정을 담은 드라마지만, 카타르시스와 더불어 법 현실을 폭로하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모범'이라 타이틀을 걸었지만 실체는 범법 행위를 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법을 세우고 있는 현실이 과연 '모범적으로' 정의를 구현하고 있는가를 되묻는 이야기. 즉 최근의 19금 드라마들은 자극적이긴 하지만, 나름의 완성도와 주제의식도 갖춰가고 있어 향후에도 이 전성시대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최근 멜로나 휴먼드라마 같은 따뜻한 드라마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안타까운 현실을 들어 19금 드라마들을 비판하긴 어렵다. 그건 다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지향점이 다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19금 드라마들의 자극과 수위가 따뜻한 드라마들에 대한 시선과 관심을 빼앗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한때는 우리네 드라마의 주력 장르이기도 했던 멜로와 휴먼드라마는 과연 이 강력한 19금의 자극 속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19금과 더불어 이들 따뜻한 드라마들이 공존할 수 있는 다양성이 낮은 시청률로 재단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극의 피로감 속에서 어떤 편안함과 위로를 줄 수 있는 따뜻한 드라마들이 설 자리는 또 분명히 필요한 법이니까.(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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