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란 ‘무한도전’ VS 배고픈 ‘1박2일’

바야흐로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 소위 말해 캐릭터가 잡히면 프로그램은 뜬다. 이것은 진행형 스토리를 갖춘 리얼리티쇼에서 이제는 드라마나 시트콤만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캐릭터가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중 ‘캐릭터가 잡힌’ 프로그램은 그 캐릭터라이즈드 쇼(Characterized Show)의 선구자인 ‘무한도전’이 될 것이며, 후발주자로서 급속히 ‘캐릭터가 잡혀가고 있는’ 프로그램은 ‘1박2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캐릭터들은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을까.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의 집합, ‘무한도전’
‘무한도전’을 이끄는 수장인 유반장(유재석)은 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대는 캐릭터들을 배려하고 조절하는 캐릭터다. 올 들어 새로 한 반장선거에서 거성 박명수가 반장에 당선됐어도 여전히 유반장의 실질적인 반장 역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 팀에서 유반장이 가진 이 캐릭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유반장이 ‘무한도전’ 외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이른바 리얼리티쇼 시대에 그 균형과 수위를 조절하는 유반장 캐릭터는 어디서든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가되는 유재석만의 장점은 반장 역할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팀원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놀아준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자칫 방관자 혹은 외부자 역할이 될 수 있는 그를 프로그램 속으로 안착시키는 힘이 된다.

그런 유반장이 이끌어가는 팀원들은 전체적으로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이다. 정형돈은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 캐릭터이며, 뚱뚱보 정준하는 식신에서 점점 ‘노브레인 서바이벌’의 바보 캐릭터로 변신해가고 있다. 꼬마 하하는 키가 작은 신체적 결함을 극대화한 캐릭터이며, 퀵 마우스 노홍철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소심한 수다쟁이에 저질댄스로 일관하는 캐릭터이다. 거성 박명수 역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지만 사실상 힘은 없는 아버지 캐릭터이다. 무언가 사회적으로 보면 이들 캐릭터들은 나사 하나씩이 풀려 있거나 비하되는 입장에 서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거성 박명수 캐릭터다. 박명수는 자칫 이 ‘하향평준화된’ 쇼의 팀원들 속에서 자칫 당연한 것으로 매몰될 수 있는 바보스러움이나 마이너리티한 부분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야 그것밖에 못해!”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은 상대방의 마이너리티를 부각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박명수 캐릭터의 효용성은 리얼리티쇼 시대에 유재석이 그러한 것처럼 타 프로그램 속에서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캐릭터가 버럭 댈 때 그 자칫 싸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화시키는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유재석과 박명수 캐릭터가 특유의 콤비를 이루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해피투게더’의 인기에는 이 명콤비의 역할이 그만큼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렇게 ‘무한도전’ 팀의 캐릭터가 구축된 것은 그 프로그램의 성격이 크게 좌우한 것이 사실이다. 때론 과장된 느낌의 도전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웃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자란 캐릭터이다. 따라서 부족한 이들이 무언가에 도전을 하면서 실패하고 때론 이루기도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캐릭터의 성장드라마를 만든다. 초반부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에서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던 캐릭터들은 이제 스포츠댄스나 드라마 단역 같은 제대로 도전이 될 만한 일에 도전을 한다. 초반부 반 막노동 같은 몸 개그에서 시작한 쇼는 이제 점차 몸치에서 유발되는 몸 개그로 바뀌고 있으며, 이제는 구축된 캐릭터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으로 나가고 있다.

배고픈 캐릭터들의 야생, ‘1박2일’
유재석이 쇼의 구성원이면서도 조절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1박2일’의 강호동도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그 역할 수행에 있어서의 성격은 다르다. 유재석은 한껏 몸을 낮춰 구성원과 거의 같은 위치에서 진행을 하는 반면, 강호동은 맏형 같은 캐릭터로 철저하게 쇼를 이끌어간다. 이것은 강호동 특유의 뚝심과 순발력으로 가능한 것이지만 ‘1박2일’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다. 여행이라는 야생의 도전 상황 속에서 수평적인 눈높이보다 때로는 보호해주고 때로는 재미있게 상황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요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복불복 게임 등을 통해 야생버라이어티의 재미를 부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그가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은 리얼리티쇼를 그르친다. 그렇기에 필요한 캐릭터가 아무리 강압적으로 밀어붙여도 안 되는 캐릭터다. 바로 초딩 은지원이다. 그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딩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는 한 그의 어떠한 야생 속에서의 행동도 초딩이란 아이의 정서적 본능으로 인정된다. 여기에 합세한 캐릭터가 야생몽키 MC몽이다. 은지원이 아이의 본능을 앞세워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면 MC몽은 말 그대로 야생의 본능에 충실한 그 자체로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

‘1박2일’의 캐릭터 조합이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쇼의 부품처럼 잘 구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MC몽의 야생이 무적일 것 같지만 그에게 대항하는 자는 도시의 샌님 역할을 하는 허당 이승기다. 그는 야생 속에서도 늘 외모를 관리하고 좀 더 편안한 것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에피소드로 연결된 MC몽과 이승기의 탁구대회와 배드민턴 대회는 대결구도를 통해 두 캐릭터를 순식간에 강화시켰다.

여기에 나머지 두 캐릭터인 김C와 이수근의 역할도 구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김C는 야생을 야생처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는 진짜로 늘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고행을 하는 사람처럼. 여기에 이수근은 정반대다. 그 역시 힘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너무나 야생에 적응을 잘한다. 시골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 일꾼의 캐릭터가 되는 것은 이 여행이라는 컨셉트의 베이스를 형성한다. 이 둘은 상반되면서도 비슷하다. 둘다 야생에서 잘 버틴다는 점이다. 김C는 마치 삶은 고행이라는 것 같은 달관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이수근은 실제 생존능력을 갖춘 것으로.

이렇게 구성된 ‘1박2일’ 팀원들의 전체 캐릭터는 배고프고 고달픈 자의 본능으로 대변된다. ‘만성피로 프로젝트’라 강호동이 스스로 일컫는 것은 이런 본능적 캐릭터들을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야생 속에서의 투쟁(?)이 아귀다툼으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맏형 강호동이나 인생 다 산 것 같은 김C, 무언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해결해줄 것 같은 이수근 같은 캐릭터들이 아이들처럼 노는 다른 캐릭터들 간의 끈끈한 정을 늘 유지해준다는 데 있다.

캐릭터가 중요해진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대에 이제 쇼는 하나의 시트콤이나 드라마처럼 되고 있다. 따라서 캐릭터는 그냥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구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기능으로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시트콤이나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웃음과 유사하다.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점점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고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캐릭터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리얼리티쇼에 웃음만큼 필요한 진정성

흔히들 무정형, 무개념, 무의미로 정의하는 리얼리티쇼 전성시대. 이 정의는 재미만이 오락 프로그램의 지상과제가 된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리얼리티쇼에서 무정형은 이해가 되지만 무개념과 무의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그 자체의 개념과 의미를 갖기 마련이며, 그것을 상실한 재미추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형식의 대부분을 만들어낸 ‘무한도전’이 한 때 인기도가 주춤했던 것은 바로 재미추구에만 몰두하면서 드러난 한없는 무의미, 무개념에 조금씩 지쳐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댄스스포츠 특집’편은 이 무의미와 무개념을 일거에 날려버리면서 다시금 ‘무한도전’의 상승세를 만들었다. 그 이유는 이 특집이 그간 무의미와 무개념으로 보이던 ‘무한도전’ 멤버들의 맨 얼굴을 드러내면서 이면에 숨겨졌던 진정성을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가끔은 마음을 보여주세요
‘무한도전’, 독주 체제에 뛰어든 ‘라인업’과 ‘1박2일’은 처음 기획단계부터 이 부분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라인업’이 주창하는 ‘생계 버라이어티’는 그 자체로 개그맨들의 진정성을 담보한다. 프로그램 안에서의 경쟁은 물론 과장된 부분들이 있지만 실제 개그맨들 사이에서의 경쟁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경민이 보여준 뜻밖의 눈물은 실제상황의 진정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리얼리티쇼의 신뢰성을 부가시킨다.

하지만 ‘라인업’의 생계를 위협하는 장본인은 말 그대로 ‘무한도전’ 자체이기 때문에 ‘라인업’은 초반부, ‘무한도전’에 대한 과도한 경쟁의식을 의도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프로그램은 종잡기가 어려웠다. ‘무한도전 따라하기’라는 비아냥이 나온 것은 그 경쟁의식으로 인해,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인 무거운 생계와 ‘무한도전식’의 가벼운 재미가 겉돌았기 때문이다.

‘라인업’이 ‘태안봉사활동’을 통해 방향성을 재미보다는 진정성에 맞춘 것은 따라서 적절한 것이라 여겨진다. 태안기름유출사고 현장이나, 군인들에게서조차 오지로 인식되는 최전방, 그리고 그 자체로 숭고함을 가진 일터로 달려가 말 그대로의 ‘체험 삶의 현장’을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접목시키려는 노력은 이제 이경규식의 공익적 개그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경규의 개그세계는 ‘양심냉장고’와 함께 빛을 발했던 경험이 있다.

때론 따뜻함을 전해주세요
한편 ‘1박2일’은 여행이라는 컨셉트 자체가 의미를 내포한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요즘, 국내 여행지로 달려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네 산천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이것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성격상 오지로 달려가기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지역에 대한 따뜻한 조명의 의미를 갖게 된다. ‘독도편’에서 그 곳을 지키는 분들에게 자장면을 손수 만들어준다거나, ‘가거도편’에서 오지 학교를 찾아 아이들에게 피자를 만들어주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프로그램에 의미를 부가해준다.

이것은 비단 오지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버리고 시골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그 따뜻함을 전해주는 ‘1박2일’의 멤버들은 때론 거기서 역시 시골에 계실 자신들의 부모님의 자화상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 멤버들과 어르신들의 공감대는 때론 도시와 시골을 연결하고, 계층을 아우르며, 세대를 끌어안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때론 그 힘을 의미 있는 곳에 써주세요
최근 들어 ‘무한도전’이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김태호 PD 역시 한 인터뷰를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게다가 ‘무한도전’은 요즘, 너무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그 인기도를 타 프로그램과 접목시켜 시너지를 얻으려는 것이지만 그것이 실효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무한도전’의 이러한 무한노출이 가져오는 이미지의 과잉소비가 자칫 생명을 단축시키지나 않을까 애청자로서 저어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 ‘무한도전’만이 가지는 무한재미의 추구는 피로도를 더 깊게 만든다. 재미란 점점 더 큰 것을 요구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따라서 조금 떨어지는 재미에 대해 그만큼 가혹한 평가를 받는 상황을 만든다. 그러니 이제는 ‘무한도전’도 웃음과 재미에 대한 강박을 조금 벗어내도 좋을 것이다. ‘라인업’이 ‘체험 삶의 현장’에서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찾아내려 하는 것처럼, ‘무한도전’은 ‘도전 지구탐험대’같은 ‘도전하는 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어쨌든 캐릭터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상황이기에, 이제는 무얼 해도 큰 웃음을 끄집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만큼, 그 힘을 조금은 의미 있는 쪽에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팬덤 문화 논란에 가려지는 실체, 표절 논란

‘MBC 가요대제전’의 오프닝 컨셉트가 스마프의 공연 컨셉트와 같다는 데서 불거져 나온 표절 논란은 MBC측의 “표절이 아닌 패러디였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유야무야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누가 봐도 이해될 수 없는 패러디라는 면죄부는 결국 스스로가 자신에게 준 셈이다.

게다가 연달아 터져 나온 ‘무한도전’의 표절 논란으로 슬그머니 화제에서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표절논란도 금세 방향을 틀어 ‘라인업’ 표절 논란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또한 잘못된 팬덤 문화와 결합하면서 ‘라인업’ 조작방송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치 정치적 사건들이 연달아 터질 때, 점점 본질이 흐려지고 정치적 무관심을 가져오는 것처럼 이 논란도 비슷한 양상을 띄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란 속에서 정작 논란을 제공한 제작진들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느냐는 점이다. ‘가요대제전’의 담당PD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말로 침묵하고 있고, ‘무한도전’의 김태호PD는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며 그 불똥을 경쟁 프로그램인 ‘라인업’으로 날렸다. “‘무한도전’ 컨셉트 자체를 따라하는 국내 프로그램은 ‘무한도전’과 경쟁한다고 하면서, 단지 몇몇 장면이 비슷하다고 ‘무한도전’은 표절이라고 말한다”고 했던 것.

이 인터뷰 내용은 ‘김태호PD 발끈, 무한도전은 표절이고 라인업은 경쟁인가’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되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 기사에 대해 ‘라인업’의 박상혁PD는 자신의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의 어디를 따라했는지를 해명하라고 하면서 “‘무한도전’의 표절 시비에 대한 해명을 하는데 왜 상대 프로그램을 걸고넘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공방의 양상을 보면 해당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모두 표절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왜 표절을 하지 않았다는 이들 프로그램들에 대한 표절 논란이 인터넷을 들쑤시고 있는 것일까. 때지도 않은 굴뚝에 왜 연기가 나느냐는 말이다. 경쟁 프로그램을 무조건 비하하고 욕하는 일부 잘못된 팬덤 문화에서 나온 억울한 누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수긍할만한 이야기다. 현재 지나친 프로그램에 대한 비방이 오가는 이른바 '빠 문화’는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대한 제작진들의 대응은 그다지 시청자들을 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표절이 아닌 우연의 일치라고 할지라도 거기에 대한 분명한 해명을 하는 것이 그저 억울하고 화가 난다는 식의 감정적 대응보다는 납득할만한 것이 아닐까. 실제로 이런 대응은 표절 논란을 뒤로 밀어버리고 문제를 잘못된 팬덤 문화로만 몰고 가는 경향이 있다. 리얼리티쇼 전성시대에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보다 높은 신뢰성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똑 부러지는 명료함이 있어야 비로소 의혹을 벗어내고 리얼리티쇼로서의 신뢰성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오락 프로그램들이 버젓이 해외의 프로그램들을 노골적으로 베껴올 수 있었던 것은 지금 같은 공론과 검증의 장으로서의 인터넷 환경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라진 환경을 너무나 잘 알고, 오히려 그런 환경을 적극 활용하여 프로그램에 반영하는 PD들이 이런 정도의 구설수에 휘말리게 되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그것이 실제 표절이든 아니든 제작진들이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여전히 과거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한편 네티즌들은 수없이 쏟아지는 영상의 홍수 속에서 끝없이 유사한 영상들을 찾아낸다. 그것은 때론 실제 표절의 징후를 포착해내는 훌륭한 장치가 되기도 한다. 물론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훌륭하고 놀라운 능력은 때론 비뚤어진 팬덤 문화와 만나면서 눈에 불을 켜고 경쟁 프로그램의 흠집을 찾아내는데 활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모든 것의 진위가 드러나는 인터넷 환경 속에서 리얼리티쇼 전성시대를 요구했던 네티즌들이 영상의 신뢰성에 극도로 민감한 반면, 표절이 나와도 패러디라 변명하며 덮어버리는 제작진들의 마인드는 상대적으로 둔감해 보인다. 이 간극이 결국 표절과 조작 공방의 밑그림을 제공한 셈이다. 모든 문제가 잘못된 팬덤 문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통해 최고가 된 그들, ‘무한도전’

‘최고는 아닙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한도전’ 댄스 스포츠 특집편에서 3개월 간의 피나는 연습을 통해 대회에 나가게 된 출연진들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반복해서 말했다. 잔뜩 굳은 얼굴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들은 진정으로 왜 이런 도전을 시도했는지조차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급기야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던 정준하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오자, 그 동안의 큰 웃음은 큰 눈물로 변했다. 모든 출연진들은 아쉬움에, 미안함에, 흡족함에, 감사함에 눈물을 흘렸다. 물론 모두들 예선탈락을 했지만 이 특집편이 보여준 큰 웃음과 큰 눈물, 그리고 최선을 통해 최고가 되는 모습은 ‘무한도전’이, 아니 그 출연진들이 최고 자리에 오른 것이 그냥 우연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최고가 아니기에 큰 웃음을 주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무한도전’의 프로그램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그들이 최고라면 도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평범하다. 더욱이 도전과제로 제시되는 패션쇼나 드라마, 댄스 스포츠 같은 것은 오히려 그들을 평범 이하로 만든다. 그들은 잘 생기지도 않았고, 몸매가 잘 빠진 것도 아니며, 운동신경이 남다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을 웃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 어느 것에도 최고가 아닌 상황을 최고로 뒤집어버리는 힘을 제공한다.

그들은 못하는 것으로, 굴욕을 당하는 것으로 큰 웃음을 준다. 그들에게 댄스 스포츠 같은 좀체 시도하기가 어려운 ‘무리하거나 무모한’ 도전과제가 던져지는 의도는 명확하다. 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그들의 모습 자체가 큰 웃음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몸으로서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줘야 하는 댄스 스포츠에 도전해야하지만 몸치인 그들은 엉성하고 뻣뻣하고 뒤죽박죽인 몸의 굴욕을 보여주면서 웃음을 준다. 이것은 말 그대로의 살아있는 몸 개그의 현장이 된다. 여기에 프로페셔널한 파트너들의 현란한 몸 동작은 그들의 ‘뻣뻣한 몸’을 더욱 부각시킨다.

최선을 다했기에 큰 눈물을 주다
하지만 굴욕적인 모습을 감내하면서도 최선을 다한 자의 도전은 그 성패를 떠나 아름답다. 아니 그것은 최고의 조건을 가진 자들이 도전에 성공하는 모습보다 더욱 그러하다. 몸치였던 그들의 몸이 무수한 노력을 통해 리듬을 타기 시작할 때, 몸 개그의 큰 웃음은 아름다운 몸 동작이 주는 감동으로 변한다. 무모해 보이지만 끝없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은 큰 웃음을 주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 볼수록 마음은 점점 도전하는 그들이 성공하기를 기원하게 만든다. 무대에 올라 80일 동안 노력한 결과를 선보이고 돌아오는 길,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보는 이에게도 큰 눈물을 준다. 도전의 시간들 속에서 묵묵히 큰 웃음을 위해 고생을 숨겨온 몸이 슬픈 제 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눈물은 또한 개그맨의 눈물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늘 망가지고 무너지면서도 웃고 있는 그 얼굴과 몸의 이면에는 분명,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흘린 땀과 눈물이 숨어있다. 그러니 우리가 본 큰 웃음과 큰 눈물은 같은 것이다. 큰 눈물이 수반되는 노력을 했기에 비로소 진정한 큰 웃음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단지 ‘무한도전’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이 땅에 큰 웃음을 주고 있는 개그맨들이라면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그들을 최고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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