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홍도’ 라인보다 강했던 ‘윤복-정향’ 라인, 왜?

‘바람의 화원’이 그 베일을 벗기 전부터 세간의 관심은 남장여자로 등장하는 신윤복(문근영)과 스승이자 연인으로 등장할 김홍도(박신양)의 러브 라인에 쏠렸다. 혹자들은 제2의 ‘커피 프린스 1호점’을 예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뜻밖의 인물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정향(문채원)이라는 기생이었다.

정향과 홍도 사이에 선 윤복, 그 무게중심은?
어떻게 보면 이 사극의 멜로 구도는 남장여자인 신윤복을 가운데 두고 한편에는 김홍도가 다른 한편에는 정향이 서 있는 형국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정향을 사로잡아 두려는 김조년(류승룡)까지 포함시키면 전형적인 사각 구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멜로 구도의 독특한 점은 그 중심에 서 있는 신윤복이 그 어느 쪽을 선택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입장에 서 있다는 점이다.

정향과는 실제 육체적인 동성이고, 김홍도와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성으로서의 동성이다. 이 상황은 신윤복으로 하여금 보통의 남녀 간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사극의 멜로를 그 이상의 것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즉 정향과는 육체적인 사랑이 아닌 미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고, 김홍도와는 단순한 남녀 관계를 넘어선 사제이자 동료로서의 애정까지를 포함하는 사랑으로 다루어진다.

여기서 그림은 그 닿지 않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의 매개체로서 위치를 잡는다. 김홍도와 신윤복이 함께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나, 손에 묻은 먹 자국을 닦아주는 장면은 그 어떤 육체적 접촉보다 더 아련하게 다가왔고, 정향과 신윤복이 나누는 눈빛이나, 가야금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장면 역시 그 어떤 달콤한 대사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전반적인 사극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면 정작 초기에 기대했던 김홍도와 신윤복의 멜로 라인은 그다지 살아나지 않았고, 대신 신윤복과 정향의 멜로 라인이 부각되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멜로 라인의 균형을 깨게 만든 것일까.

왜 윤복과 홍도의 멜로가 살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신윤복 신드롬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면서 남장여자라는 설정이 갖는 극의 부담감 때문이었을 수가 있다. 신윤복과 김홍도의 러브라인을 깊게 파고 들어가면 이 사극의 아킬레스건이자 매력인 동성애 코드가 부각되게 된다. 물론 정향과 신윤복의 관계 역시 동성애적 상황인 건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에서 남-남의 동성애 코드를 보는 시각과 여-여의 동성애 코드를 보는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다. 즉 여-여의 동성애 코드는 과거부터 남성들의 성적 소비 대상으로서 받아들여져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단정은 조금 과도한 듯하다. 이 사극 속에서는 그 멜로의 힘의 균형이 윤복-정향 쪽으로 기울었다 뿐이지, 여전히 윤복-홍도의 멜로가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극은 전체적으로 멜로 구도를 그리면서 육체적인 애정표현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만큼 그림 같은 것을 통해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중간에 윤복과 홍도가 키스하는 장면을 연출하려 했다가 뺀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설득력이 있게 들리는 것은 박신양의 사극 연기 논란과 관련된 것이다. 연전연승을 거듭해온 박신양이 연기하는 김홍도에서 ‘쩐의 전쟁’의 금나라가 자꾸 연상되었다는 점이다. 연기로만 두고 봤을 때, 사실 박신양이 ‘바람의 화원’을 통해 떨어지는 연기력을 보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박신양의 고정된 이미지가 김홍도로 고스란히 이어졌다는 지점에 있다. 이것은 대중들에게 식상하게 다가왔다.

익숙한 배우의 익숙한 캐릭터? 참신한 배우의 참신한 캐릭터!
반면, 아직 새내기로 연기 역시 서투른 문채원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이라는 신선한 캐릭터로 주목받았다. ‘닷냥 커플’로 대변되는 정향과 윤복의 러브라인이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배우와 캐릭터가 조합된 결과로 보여진다. 이미 연기력이 검증된 익숙한 배우의 늘 봐왔던 캐릭터(혹은 연기)보다, 연기력은 아직 떨어지지만 참신한 배우의 참신한 캐릭터가 더 주목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문근영을 빼고 이 사극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배우는 박신양이 아닌 문채원이 되었다.

문근영이 과거 힘겨웠던 것은 국민여동생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장여자 설정의 신윤복으로 그 이미지를 탈피해 이제 한 연기자로 발돋움하게 된 문근영과는 상반되게, 한편으로 점점 고착되어가는 박신양은 이 사극을 통해 숙제 하나를 갖게 된 셈이다. 최고의 연기자라면 늘 같은 이미지에서 뱅뱅 돌기보다는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이미지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림으로 다시 보는 ‘바람의 화원’

‘바람의 화원’은 지금껏 사극들이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우리네 옛 그림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극의 차별점은 단지 소재적 측면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그림을 중심으로 놓고 그 그림 속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와, 그러한 대본을 예술적으로 영상화해낸 독특한 연출력에 있다.

이 사극이 그림에서 시작해서 그림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림으로 갈무리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극의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이야기의 중심 뼈대를 세워준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그림이 바람처럼 귓가에 대고 속삭여주는 ‘바람의 화원’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기다림’- 한 예술가의 탄생
신윤복은 김홍도가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런지요”하고 말한다. 이 대화는 이 사극의 화두이기도 하다. 신윤복을 그림 그리게 하는 것이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면, 그것은 거꾸로 삶에서 그가 갖는 결핍을 말해주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알 듯이 예술가의 결핍은 예술 작품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과정.

드라마적 설정으로서의 남장여자라는 코드는 이러한 예술가의 결핍상황을 미적으로 상징해낸다. 즉 자신이 갖고 있으나 표출할 수 없(게 사회가 강요하)는 아름다움(美)을 정향(문채원)이라는 뮤즈로 해소하거나, 사회 비판적인 그림으로 풀어내는 상황을 남장여자란 코드를 활용해 쉽게 구상화해냈다는 말이다.

신윤복의 ‘기다림’이란 그림이 드라마 초반에 등장하고, 후반에 그 그림을 통해 신윤복이 사실은 여성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는 김홍도의 시퀀스가 등장하는 것은 따라서 여러 모로 의미가 있다. 그것은 김홍도가 신윤복을 한 인간이자 예술가로 이해해 가는 과정을 그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홍도의 이해는 또한 이 사극을 함께 본 시청자들의 이해와 맥을 같이 한다.

‘군선도’- 서민 지향적 세계관
김홍도와 신윤복이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먼저 그 군상들을 본 후, 화포 앞에서 군선도를 그리는 장면은 이 사극이 지향하는 서민 지향적 가치관을 드러낸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그린다.”는 김홍도의 말은 저 서민들의 얼굴 속에서도 신선을 찾아낸다는 말로 해석된다.

사실 고미술에 대해 지금껏 대중들이 가졌던 인식을 생각한다면, 이 고급예술로 치부되는 소재가 드라마라는 대중적인 장르 속으로 들어온 것은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이다. 때아닌 신윤복 신드롬으로 한 고미술관에 이어진 대중들의 발길은 신윤복의 그림이 가진 서민성의 재발견인 동시에, 일정부분 그것을 대중적으로 전파한 이 사극의 기여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단오풍정’- 여성성의 시선
‘단오풍정’을 그리기 위해서 신윤복은 극중에서 단오날 금남의 지역인 계곡으로 들어간다. 그 곳에서 여장을 하고(물론 신윤복은 본래 여자 캐릭터이지만) 여성들의 세계를 둘러보는 신윤복과 김홍도를 그려낸 장면은 상징적이다. 즉 남성의(혹은 강요된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세계를 살피고 그 속에서 여성들이 단 하루지만 느꼈을 자유에의 희구를 그림 속에 담는다는 장면은 이 사극이 주목하는 여성성의 시선을 드러낸다.

‘주사거배’ - 억압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김홍도와 신윤복이 정조(배수빈)에게 동제각화(같은 화제를 갖고 각각 그림을 그리는 것)를 명 받아 그리게 되는 선술집 풍경에는 대화원들이 각각 가진 그림에 대한 철학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주막 앞에서 배경을 두고 벌이는 그림 논쟁을 통해 드러난다. 김홍도는 배경보다는 인물 그 자체만으로도 그 성정이 다 드러난다고 주장하고, 신윤복은 그 사람만 봐서는 그 사람이 뭐를 원하는 지 알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배경이 그 마음을 알게 해준다고 한다.

신윤복은 주막 평상 위에 물로 찍어 새 그림을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새는 이렇게 있으면 그저 새일 뿐입니다. 허나 이렇게 새장을 그려놓으면 그저 새이기만 했던 이 새가 무엇을 원하는 지 그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 대목은 신윤복이 그리고픈 자유로운 그림(새)과 그것을 허하지 않는 상황(새장)을 상징화해낸다. 신윤복이 그린 ‘주사거배’로 정조가 조정대신들의 숙청을 단행하는 시퀀스는 바로 이런 억압된 상황에 대한 비판의식을 에둘러 보여주는 대목이다.

‘월하정인’, ‘월야밀회’, ‘유곽쟁웅’ - 욕망과 인간애의 대립
조정대신들에 의해 도화서에서 쫓겨나 김조년(류승룡)의 사화서에서 일하면서 신윤복이 그리게 되는 일련의 그림들, 즉 ‘월하정인’, ‘월야밀회’, ‘유곽쟁웅’은 남녀 간의 사랑을 담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그림의 이야기를 조금은 다른 식으로 풀어낸다. 그것은 신윤복과 정향, 그리고 김조년 사이의 밀고 당기는 상황으로 그려내는 것. 김조년은 돈과 권력으로 정향을 붙잡아두고 있으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고, 신윤복은 정향의 마음을 얻고는 있으나 자신이 여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그저 그림을 통해 사랑을 표현할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사랑의 차원이 극명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김조년의 사랑은 욕망이지만 신윤복의 사랑은 동성이라는 한계 속에서 인간애에 가깝게 그려진다. ‘월야밀회’를 가지고 김조년과 벌이는 해석에서 드러나는 남성성의 시각과 여성성의 시각의 부딪침은 욕망과 인간애의 대립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서직수 초상’ 같은 초상화들 - 기록으로서의 그림
사극의 중반 이후부터 시작된 정조의 사도세자 초상을 두고 벌어지는 숨가쁜 추리극은 그 바탕에 ‘기록으로서의 그림’이라는 그림의 다른 한 편의 얼굴을 그려낸다. 정조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불러 “너희들은 내 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림이 예술적 차원 이외에 사진 같은 기록적인 차원으로 기능함을 말해준다.

이 사극이 그림을 사진의 기록적 기능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단초들은 여러 차례, 몽타쥬 기법으로 초상을 완성해내는 에피소드를 통해 드러난다. 이것은 풍속화로서 예술적이면서도 기록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신윤복의 그림 이야기가 어떻게 팩션이라는 역사추리에서 주목받게 되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인도’ - 저널리스트의 면모를 가진 예술가
이 사극이 ‘미인도’에서부터 시작해 ‘미인도’로 끝나는 것은 그만큼 이 그림이 갖는 다층적인 의미에 주목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첫 번째는 “‘미인도’는 신윤복의 자화상이었다”는 도발적인 팩션의 상상력이다. 바로 이 상상은 신윤복을 남장여자로 재탄생시켜 그의 그림과 삶을 재조명해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둘째는 이 ‘미인도’에 내포된 신윤복의 미의식의 세계이다. 섬세한 여성적 필치로 그려진 여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신윤복이 가진 여성적 미의식의 세계를 드러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되어야 할 것은 바로 그 ‘미인도’의 주인공이 여성이며, 그것도 기생이라는 사실이다. 정향이라는 기생으로 대변되던 거세된 미의식을 통해 단 한 번 자신을 그녀의 모습으로 화해 그림에 담아 넣은 그 정신 속에는 신윤복이 가진 시대에 대한 저널리스트적인 면모가 숨겨져 있다. 그것은 양반들의 초상이나 임금의 어진과 함께 나란히 기생의 그림을 거의 실물 크기로 그려 넣는 마음 속에 드리워진 비판의식을 말한다. 따라서 ‘미인도’는 신윤복의 예술적 성취와 저널리스트적인 면모를 드러냄과 동시에 이 드라마가 취하려한 팩션의 상상력까지 아우르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바람의 화원’은 교과서나 화첩 속에 박제되어 있던 그림들을 끄집어내 생생한 영상과 상상력을 동원한 스토리를 통해 다시 살아나게 했다. 수백 년을 건너온 그림이라는 매체를 따라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이 경험은 고미술관에서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예술적 경험이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물론 사실과 허구 사이에 놓인 거리가 있지만 이것은 이 사극을 통해 환기된 옛 그림에 대한 지대한 관심만으로도 충분히 상쇄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드라마의 몫이다. 깨워낸 그림들을 통해 진짜 사실을 찾아가고, 또 지속적으로 옛 그림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지난 달 간송미술관 앞은 때아닌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줄은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고적하기로 유명한 그 미술관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유는 단 한 점의 그림 때문이었다. 신윤복의 ‘미인도’. 지금껏 다른 화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된 적이 없는 신윤복, 게다가 조선시대의 춘화(?)로까지 오도될 정도로 흔하게 보여진(그래서 본격적인 미적 가치에 대한 조명은 덜 된) 그의 ‘단오풍정’, ‘과부탐춘’, ‘월야밀회’같은 그림이 아닌 ‘미인도’에 대한 관심은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이 이 신드롬이라고까지 지칭할 수 있는 신윤복에 대한 열기를 만들었던 것일까.
그것은 한 편의 팩션에서부터 비롯됐다. 바로 ‘바람의 화원’이다.

미술관 풍경이 말해주는 신윤복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줄선 사람들은 본래부터 고미술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며 주로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박신양의 연기가 어떻고 문근영이 진짜 소년 같다는 그런 이야기들. 그리고 막상 미술관에 들어서게 된 그들의 발걸음이 먼저 닿는 곳은 오로지 ‘미인도’였다. 간간이 보이는 신윤복과 김홍도의 작품들이 발길을 끌뿐, 웅장한 자태로 서 있는 겸재 정선의 산수화나 추사 김정희의 글씨, 혹은 김명국의 그림은 지나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미인도’나 ‘단오풍정’같은 신윤복의 그림 앞에서는 저마다 한 마디씩 감탄을 하거나 평을 보태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그림을 자세히 뜯어보고는 “신윤복은 완벽주의자였던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대중들의 신윤복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바로 그 지점, 쉽게 단평까지 내릴 수 있는 그 친근함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이것은 물론 우리네 고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흔히들 무언가 선비정신이나 단아함, 혹은 추상적인 세계관 같은 것으로 오인되는 우리네 고미술에 대한 편견. 따라서 그런 그림들 앞에 서게 되면 친근함보다는 어딘지 올려다봐야만 할 것 같은 위압감 같은 것. 하지만 이것은 우리네 겉핥기식 미술교육이 만들어놓은 편견이다. 우리가 익히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을 통해 만난 장승업을 보고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삶은 지극히 서민적(혹은 그 이하였다, 환쟁이라 불릴 정도로)이었다. 장승업과 또 한 명의 조선시대 신필로 불리는 김명국 역시 마찬가지. 그는 주광(酒狂)이라 불릴 정도로 술을 마셨는데, 취해야만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다. 그만큼 당대의 화원들이란 환쟁이로 천시되던 풍토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따라서 신윤복에 유독 대중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마도 드라마나 책을 통해 박제된 천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한 위대한 인간으로 재조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고 신윤복의 그림과 지금 시대의 코드가 맞닿는 지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미인도’를 보면 그 한 올의 터럭까지 잡아내는 그림의 섬세한 필치와 다소곳이 서 있는 여인의 자태가 주는 미적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신윤복 스스로 “그녀의 마음까지 잡아넣었다”고 만족해했을 만큼 그 그림의 여인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금방 살아날 것 같은 생생함을 전해준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일까. 미적인 성취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 놀라운 저널리스트로서의 신윤복의 가치가 드러난다. 바로 그 ‘미인도’의 주인공이 기생이라는 사실. 여인조차도 그림의 한 구석에만 자리해야하는 존재로 여겨지던 시대에 당당한 화제로서 그려진 기생의 초상은 저 양반들의 초상이나, 어진의 그것과의 대결의식을 그 자체로 담고 있다. 즉 신윤복의 그림의 화제는 늘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건져 올려진 것들이다. 서민들이 보기에 속시원했을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그 속에 담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미적인 성취를 이뤄내는 신윤복의 그림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정서와 맞닿는 대목이 있다. 신윤복은 그렇게 수백 년을 지나 지금 시대에 다시 걸어 들어온 것이다.

팩션과 영상 시대가 요구한 천재
유독 신윤복이 팩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이 시대에 재조명된 이유는 무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팩션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흔히들 팩트(사료)+픽션(상상)을 팩션이라 생각해, 여기저기 팩션이란 용어를 남발하고 있지만, ‘바람의 화원’의 원작자인 이정명 작가는 팩션을 역사소설 혹은 소설과 오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소설이란 어느 정도의 팩트(그것이 작가 개인의 것이든)에 상상을 더한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팩트+픽션이 아닌 소설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팩션은 역사적 사실에 추리형식을 곁들여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야기로서, 하나의 새로운 장르라는 것. 이정명 작가는 굳이 표현하지만 팩션은 ‘역사추리’에 가깝다고 했다.

따라서 이미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팩션의 소재가 되지 못한다. 차라리 역사적 사료가 누락된 부분에서 팩션은 탄생한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화하면서 생겨난 욕구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푸코가 주장하는 권력으로서의, 지배자들의 전유물로서의 역사가 가진 한계를 상상력을 동원해 뒤집어보는 것으로서 팩션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

신윤복은 그런 면에서 이 팩션의 시대가 요구한 천재이다. 동시대의 화원으로서 김홍도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있는 반면, 신윤복은 그렇지 못하다. 도화서 화원이었다가 술과 여자, 혹은 난잡한 그림(?) 때문에 쫓겨났다는 식의 단편적인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사료뿐만 아니라 신윤복은 그 흔한 일화조차 남아있질 않다. 사료에 기록이 선연히 남아있는 김홍도나 기록이 별로 없어도 수많은 일화로 그 면면을 짐작하게 해주는 연담 김명국 같은 다른 화원들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바람의 화원’ 원작의 이정명 작가는 바로 이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점이 오히려 더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오로지 남아있는 그림들을 통해 신윤복을 상상해야 하는 그 지점에서 작가는 그 그림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신윤복이 화원이라는 사실, 즉 그림이 소재가 된다는 점은 영상 시대에 걸맞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읽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더 익숙해진 요즘, ‘바람의 화원’이라는 팩션은 영상화하기에 최적의 컨텐츠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드라마가 원작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이정명 작가는, 세세한 일상까지를 잡아내는 리얼리티의 힘을 영상 컨텐츠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지 영상화하기 좋은 미적인 소재라는 점에서 신윤복의 그림이 주목되었을까.

여기에는 한 가지 더 부가되는 점이 있다. 이것은 이미 전술했듯 신윤복의 그림 속에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시선이 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보면 ‘그리움’이라는 제목의 그림 속에는 여염집 아낙네가 고개를 돌리고 서 있는 모습이 어떤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내게 만드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아낙네가 들고 있는 모자가 송락이라 불리는 것으로 스님들이 쓰는 것이다. 그 하나의 오브제만으로 이 그림은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갖게 된다. 바로 이런 점은 역사 속에 숨겨진 그 어떤 것을 상상력을 통해 추리해가는 팩션의 장르와 잘 맞아떨어진다. 거기서 발전된 형태가 ‘미인도’에 대한 ‘바람의 화원’의 해석이다. ‘미인도’를 통해 신윤복의 자화상을 떠올리는 것은 마치 ‘다빈치 코드’에서 모나리자의 그림을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을 연결시키는 것과 갖은 맥락이다.

드라마가 살려낸 박제되었던 천재
그렇다면 이런 팩션을 드라마는 어떻게 시각화했을까. 드라마는 팩션이 구상했던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것은 그 중심에 그림을 세워두고 그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는 식이다. 먼저 신윤복의 ‘기다림’이라는 그림은 드라마 속에 들어오면 외유사생(생도들이 하루 바깥에 나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것)을 통해 신윤복(문근영 분)이 담아온 그림으로 표현된다. 소설에서는 그 그림의 음란성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드라마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거기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이 사실은 정순왕후였다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극적으로 설정되자 정순왕후는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 그림을 그린 생도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는 조금은 과장된 스토리. 하지만 이것은 드라마 초반부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한 방편의 설정일 뿐, 진짜 그림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은 이후에 등장하는 ‘군선도’에서 보여진다.

‘군선도’편에서 신윤복과 김홍도(박신양 분)는 먼저 함께 저잣거리를 활보하며 거기서 장사치들과 서민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들을 보게된다. 그 하릴없이 지나치는 듯한 하루의 일과는 그러나 빈 화폭 앞에 서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김홍도는 군선도(群仙圖), 즉 신선들의 무리를 그리는 그림 속에 그 저잣거리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을 잡아넣는다. 그러면서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그린다”는 말로 화법의 기본을 신윤복에게 설명한다. 즉 화원의 눈이란 저잣거리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신선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오랜 세월이 지나온 그림 한 장 속에 잠들어있는 이야기를 깨어내기 위해 ‘바람의 화원’은 초현실적인 연출을 활용한다. 그림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며 실사로 변하거나, 실사가 화원의 붓끝에 의해 그림으로 변하는 식이다. 신윤복의 ‘기다림’이라는 그림은 정순왕후가 나무 곁에 서서 잠깐 동안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크로키처럼 빠르게 신윤복이 그리는 장면으로 연출된다. 여기서 실사는 그대로 붓끝의 질감으로 서서히 변하면서 그림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김홍도의 ‘군선도’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신윤복의 그림, ‘단오풍정’은 단오에 계곡에 모여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타는 여인네들을 드라마 속 에피소드로 풀어냄으로서 정지된 그림 속의 이야기를 눈앞에 생생히 보여주었다. 기생 정향(문채원 분)과 신윤복이 함께 그네를 뛰면서 그 부서지는 풍광들 속에 계곡의 여인네들이 하나하나 그림의 부분으로 바뀌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가진 연출미학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화원들의 철학까지 담아낸 팩션 드라마
이러한 연출은 그저 볼거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스토리와 함께 당대 화원들의 화풍과 철학까지도 담아낸다. 그 대표적인 것이 김홍도와 신윤복이 같은 소재로 다르게 그려낸 주막 그림 에피소드이다. 그들은 정조에게서 동제각화(同題各畵 : 같은 화제로 각자 그림을 그리는 것)를 명 받고는 뭘 그릴까 고민하다가 선술집을 보며 때아닌 그림 논쟁을 벌인다. “저 주모 얼굴을 좀 봐라 밤낮으로 술을 팔아서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었지 않느냐? 술장사가 잘 안 되나보다. 아이고 저 양반 놈 보게. 대낮부터 불콰하게 취해 가지고 헤롱헤롱 아이고 꼴 좋다. 야 저 얼굴 저 표정 저 몸짓에 모든 게 다 들어있지 않느냐?” 하지만 여기에 대해 신윤복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어디에 있는 지를 화폭에 담아야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간단한 대사 속에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관이 들어있다. 즉 김홍도는 배경보다는 인물 그 자체만으로도 그 성정이 다 드러난다고 주장하고, 신윤복은 그 사람만 봐서는 그 사람이 뭐를 원하는 지 알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배경이 그 마음을 알게 해준다고 한다. 김홍도의 반박에 신윤복은 주막 평상 위에 물로 찍어 새 그림을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새는 이렇게 있으면 그저 새일 뿐입니다. 무엇을 원하는 지 이 그림만 봐서는 알 수가 없죠. 허나 이렇게 새장을 그려놓으면 그저 새이기만 했던 이 새가 무엇을 원하는 지 그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배경 그림 없이 인물에 더 집중했던 김홍도와 달리 배경을 통해 그 안에 갇힌 대상의 마음을 잡아내려 했던 신윤복은 그만큼 조선이란 사회가 가진 틀과 억압에 민감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는 저 스스로도 조선에 갇힌 새였으며, 그림을 통해 그 새장을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그리움은 바로 이 떠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의 족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신윤복이 그린 ‘주사거배’와 ‘무녀신무’는 드라마 속으로 들어와 그림이 현실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단초를 제시한다. 즉 대낮에 일은 하지 않고 선술집에서 불콰한 모습을 취해있는 이들과 혹세무민하는 무당들이 담겨진 그림을 보고 정조는 그 풍경이 말하는 고발정신을 읽어낸다. 이 저널리스트의 눈을 가진 신윤복의 면모를 드러내주는 에피소드는 정조가 신윤복과 김홍도를 불러 “너희들은 내 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그림이 마치 지금의 사진처럼 그 이미지 이상의 의미를 전달해준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역사왜곡과 재해석 사이
하지만 팩션이 아무리 없는 사료 속에서 상상력으로 그 빈곳을 채운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신윤복을 왜 남장여자로까지 그렸어야 했을까. 이것은 지금 학계에서 ‘지나친 역사왜곡’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빌미가 되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사극의 역사왜곡 논란이 ‘바람의 화원’을 통해 또다시 고개를 쳐든 것. 문화재 위원장인 안휘준 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백 번 양보해도 남자를 여자로 그리는 건 과하다”고 지적하면서 “국민에게 역사를 알게 하려면 그 작업을 제대로 해야지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안휘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문화재 위원장으로서 어쩌면 타당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가 한 가지 사실로만 받아들여졌던 시대에는 온당하지만, 지금처럼 한 가지 사실에 대한 한 가지 기록으로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는 그다지 효율적인 태도가 아니다. 역사왜곡과 재해석의 차이는 그렇게 이미 가까워져 있다. 안휘준 위원장의 발언은 학자의 절대적인 텍스트가 되어야 하는 역사를 뒤흔드는 팩션이나 드라마에 대한 당연한 입장일 것이다. 그 말은 거꾸로 보면 ‘사극이 국민들에게 역사공부를 시켜줄 정도의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있다. 영상매체로서의 사극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자인해주는 셈.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신윤복 신드롬으로 드러난 바 있다.

정통사극이 이미 사라져버린 요즘, 사극을 두고 역사왜곡을 말하는 것은 이제 좀 식상한 논쟁이 되어버렸다. 퓨전 사극이 대세로 자리잡은 요즘의 사극트렌드에서 사극은 역사 그 자체보다 오히려 상상력을 더 중요시 여기게 되었다. 사극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도 그만큼 달라졌다. 사극이 역사 그 자체라면 그것은 재연 다큐멘터리이지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사극은 더 이상 역사공부가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바로 그 역사를 버림으로 해서 사극이 얻은 것이 있다. 그것은 진위를 떠나 역사 자체에 대한 관심을 제고한다는 점이다. 어떤 특정 역사에 대한 주의 환기로서만 사극은 그 효용성을 가진다.

‘바람의 화원’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신윤복이나 김홍도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끌기 위해 학계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왔던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극이 이처럼 역사공부를 시켜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질 동안, 학계에서는 대중들을 방치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달라진 대중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할 때 이제는 하나의 사극을 역사왜곡이라 일축하는 식이 아니라, 좀더 사극의 상상력 또한 가슴에 품어주는 넓은 도량으로서의 접근이어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사극 혹은 팩션을 통해 환기된 역사와 함께, 동시에 정확한 역사로 바로잡아주는 학계의 노력이 공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윤복의 그림에 대한 관심으로 촉발된 간송미술관의 성황 속에서 안타까웠던 점은 바로 이 점이다. 대중들은 신윤복을 통해 우리네 고미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미술관에서는 정작 그림 감상을 돕는 어떤 설명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갑작스런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만일 거기 있는 다른 미술작품들에 대한 설명 같은 것까지 준비되어 있었다면 신윤복 신드롬이 신윤복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고미술에 대한 것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한국민족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런 현상에 대해 “드라마의 영향으로 전시의 가치나 내용을 잘 모르고 오는 손님들도 꽤 있지만, 어떻든 우리 문화재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은 일(한국일보 10월15일자)”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왜 꼭 남장여자여야 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휘준 위원장의 표현처럼 “백 번을 양보해도” 왜 꼭 남장여자였을까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이것의 효용성은 아마도 작품 속에서 이 남장여자가 기능하는 바를 찾아내야 드러날 것이다. 즉 작품 내적인 문제라는 말이다. 만일 그것이 단지 안휘준 위원장의 말대로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하지만 작품이 신윤복을 남장여자로 설정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의 예술적 상상력으로서 포용되어야 한다.

이정명 작가는 여기에 대한 하나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성냥갑에 그려진 신윤복의 섬세한 필치와 분명한 색조가 드러나는 ‘단오풍정’을 통해 작가 자신은 신윤복을 여성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교과서를 통해 신윤복이 남자라는 것을 알게되고는 오히려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즉 이정명 작가가 본 것은 그 여성성이 묻어나는 신윤복의 그림이다.

신윤복의 그림에는 남자와 여자가 확연히 대비된다. 즉 남자, 양반들은 그 위선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여자 기생들은 자유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파격을 보여준다. ‘미인도’가 그저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것이라 생각한다면 아무런 감흥이 없을 것이나, 그 그림의 주인공이 기생이라면 깊은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기생을 그림의 소재로 세우지 않던 시대에 신윤복은 그 기생을 그림으로써 아름다움이란 신분이나 지위와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것은 또한 신분, 지위 같은 남성성을 강요하는 사회에 아름다움과 생산성, 창조성을 내포한 여성성을 그리워한 신윤복의 마음이 담겨진 그림이기도 하다.

신윤복이 이 시대의 컨텐츠 속에서 남장여자로 되살아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남장여자는 단지 사료부족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든가, 그림의 필치가 여성적이라는 데서 착상한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여성이지만 남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남장여자는 분명 여성성을 희구하지만 남성성의 사회 속에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과의 공감이 바탕에 깔려있다. 즉 여성성의 삶,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희구하지만 현실은 남성성의 삶, 경쟁적인 삶 속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공감 말이다. 이것은 또한 당대 신윤복이 가졌던 배경(사회환경의 현실)과 그 배경을 화폭 속에 비틀어 그려내면서 그 구속을 벗어나려 했던 욕구와 같을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구분이 역할 구분과 맞닿아있었던 과거 농경사회 속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엄격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성별과 상관없이 각각의 능력으로 인정되는 정보화 사회 속에서는 그 생물학적 구분은 문화 컨텐츠 속에서 그렇게 엄격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남성과 여성의 시대가 아니라 남성성과 여성성의 시대다. 신윤복이 팩션과 드라마 속에 들어와 남장여자로 설정됨으로써 본질은 여성이지만, 여성으로 살 수 없는 상황을 극대화하고, 따라서 자신 스스로에 내재된 여성을 표현할 수 없는 그 마음을 그림 속에 더 절실하게 구현한다는 것은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다. 이것은 또한 남성성의 사회 속에서 여성성의 사회로 변화해 가는 지금, “왜 신윤복인가”하는 질문에도 충분한 답변을 제공하는 대목이다.
(이 글은 월간중앙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적어도 대중문화에 있어서 동성애는 이제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물론 동성애 코드와 동성애 컨텐츠는 다르다. 동성애 코드는 남장여자 같은 캐릭터가 등장해 동성애 같은 상황을 연출하지만 분명히 이성애를 다룬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미인도’같은 것이 그 부류다. 반면 동성애 컨텐츠는 게이들의 문제를 천착한 ‘후회하지 않아’나 최근 개봉한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같은 것들로 이들 컨텐츠들은 진짜 동성애자들이 캐릭터로 등장한다.

동성애 코드나 동성애 컨텐츠나 불문하고 바라보면 지금 대중문화 속에서 동성애라는 소재 자체는 과거처럼 음지에 숨겨진 그 무엇이 아니다. 특히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 이르면 동성애는 마치 공기처럼 일상적인 것으로 표현된다. 이 꽃미남 게이를 조연으로 세운 영화는 대중들에게 “넌 여자를 좋아해? 난 남자를 좋아해! 그게 어때서?”하고 묻는 것만 같다. 과거 무언가 진중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연상케 했던 동성애라는 소재에 익숙한 대중들은 이 명랑발랄한 동성애 영화에 오히려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지금, 동성애가 대중문화 속에서 공기처럼 퍼져나가고 있을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이성애, 즉 이성 간에 벌어지는 멜로가 어느덧 식상한 어떤 것이라는 암묵적인 인식이 깔려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드라마에서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삼각 사각의 멜로나 신파조의 설정들은 이런 인식의 밑바탕을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 한편 영화로서는 늘 연말이 되면 쏟아져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가 그 역할을 했을 터이다.

이런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 멜로가 아닌 인간애를 다루려고 하는 영상 컨텐츠는 때론 남녀의 출연을 꺼리기도 한다. 동성애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본래는 남녀 주인공을 세우려했다가 결국 두 남자를 주인공으로 세운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준익 감독은 이미 전작 ‘왕의 남자’에서도 두 남자의 동성애를 끌어들여 예술혼과 인간애로 컨텐츠가 가진 주제를 확장시킨 전례가 있다.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는 두 번째 이유는 남녀로 구분되던 성별구분이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사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의 가부장적인 사회구조 속에서는 남녀의 역할구분이 명확히 나눠져 있었다. 그것은 육체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던 농경사회에서의 성별 역할의 차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육체적인 노동력이 아닌 정신적인 노동력을 사용하는 정보사회에서는 남녀의 역할구분이 사라진다. 오히려 여성들의 노동력이 섬세한 정보사회의 업무에 더 적합해진다.

남녀 구분은 이제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으로 바뀌게 된다. 남자라도 여성성이 많은 사람이 있고, 여자라도 남성성이 많은 사람이 지금 시대에 남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다. 동성애는 바로 이 시선 속에 자연스러움을 얻게 된다. 남성이지만 강한 여성성이 실제 생물학적 성까지도 변모시킨 존재로서 동성애자는 외계인이 아닌 우리들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지 실제 사회의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특히 금기시되었던 남자와 남자 간의 동성애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문화구매자들로서의 여성이라는 존재의 위상이 그만큼 커진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등장하는 남성들이 모두 꽃미남들인 점은 과거 여성들의 성 상품화가 이제는 남성들까지 포함시키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대중문화를 장악한 동성애는 그저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점점 중성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를 보여주는 지표인지도 모른다.
(이 글은 스포츠칸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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