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교양 속으로 들어온 범죄

 

최근 범죄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 교양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제 사건들을 가져와 허구로 그려낸 드라마는 물론이고, 범죄를 소재로 하는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의 교양 프로그램이 그렇다. 무엇이 이런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만들고 있을까.

 

지금 드라마는 범죄 스릴러의 시대

바야흐로 범죄 스릴러의 시대라고 할만하다. 최근 드라마 중 범죄스릴러 장르는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하게 됐다. tvN <마우스>, JTBC <괴물>, SBS <모범택시> 같은 작품들은 모두 19금 수위의 범죄스릴러지만,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거머쥐었다. <마우스>가 최고 시청률 6.6%(닐슨 코리아)를 기록했고, <괴물> 역시 5.9%의 높은 시청률로 종영했다. <모범택시>는 무려 16%의 최고시청률을 냈다. 

 

SBS 드라마 '모범택시'

과거 범죄 스릴러가 다소 마니아적인 장르라 여겨졌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최근 드라마의 이런 변화는 놀라울 정도다. 2007년 사극을 쓰던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내놨던 MBC <히트>는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를 가져왔지만 생각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시청률이 월등히 높은 18.5%로 종영했지만 당시에는 히트작가들이 쓴 작품 치고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작품으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초반 범죄 스릴러를 본격적으로 그려나가다 반응이 좋지 않자 중반 이후부터 인물들 간의 멜로가 부각된 건 이 드라마가 가진 한계였다. 2011년 김은희 작가가 쓴 SBS <싸인>이 살벌한 연쇄살인범들을 등장시켜 지상파에서도 범죄스릴러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시켰고, 이후 이 작품으로 주목받는 김은희 작가는 <유령>, <쓰리데이즈> 같은 작품을 거쳐 tvN <시그널> 같은 범죄 스릴러의 명작을 내놨다. tvN과 OCN 같은 케이블 채널은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를 본격화시켜준 토양을 제공했다. 지상파에서는 다루기 힘들었던 잔혹한 수위의 범죄들이 다뤄졌고 점점 시청자들에게 익숙하게 되면서 이 흐름은 지상파로까지 이어졌다. <시그널>에 이어 <갑동이>, <보이스>, <터널>, <나쁜녀석들> 같은 케이블 채널의 범죄스릴러가 수위를 높이면서, MBC <검법남녀>, <나쁜 형사>, SBS <리턴> 같은 지상파 범죄스릴러도 등장하게 된 것. 

 

이러한 흐름 위에서 최근 넷플릭스, 왓챠 같은 플랫폼을 통해 더 강력한 해외의 범죄스릴러들이 소개되면서 이제는 19금을 표방하는 우리네 작품들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보다 과감한 표현들이 가능해지면서 작품들은 단지 자극만이 아니라 깊이나 메시지까지 담게 됐다. <마우스>는 뇌 이식이라는 장치를 활용해 죄의식이 없는 사이코패스 가해자들을 어떻게 처벌하고 단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고, <괴물>은 한 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실종 살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진짜 괴물이 어떤 욕망에서 탄생하는가를 들여다봤다. <모범택시>는 다분히 오락적인 작품이지만,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끌고 와 ‘사적 복수 판타지’를 더해 넣는 방식으로 법이 정의를 제대로 구현해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최근 범죄스릴러의 폭증은 우리네 장르물의 진화와 더불어, 최근 우리 사회가 마주한 정의에 대한 갈증이 만나면서 생겨난 결과다. 

 

교양 속으로 들어온 범죄

범죄는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tvN <알쓸범잡(알아두면 쓸데없는 범죄 잡학사전)>은 대표적이다.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스핀오프로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잡학 중에서도 ‘범죄’를 주 소재로 가져왔다. 이 아이디어는 다분히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그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특집으로 구성해 박지선 교수부터 이수정 교수, 권일용 프로파일러 등이 출연해 다양한 실제 범죄 이야기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기 때문이다. <알쓸범잡>은 여기 출연했던 박지선 교수는 물론이고 정재민 법무심의관과 물리학 박사 김상욱 교수 그리고 윤종신과 장항준 감독으로 출연진이 꾸려졌다. 이 프로그램이 말해주는 건 범죄가 남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이나 유영철처럼 세상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희대의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들은 물론이고, 가습기 살균제나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또한 유관순 열사의 만세운동이나 제주 4.3사건 같은 역사적 사건들 역시 법정기록이나 판결문으로 다시 보는 흥미로운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알쓸범잡>이 이처럼 범죄라는 특정 소재를 가져와 여행과 토크쇼가 더해진 형식으로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라면, 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는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음모론’을 소재로 가져와 다양한 추론들을 더하는 방식으로 범죄를 다루고 있다. 정규 편성되어 첫 방송된 10년 전 벌어진 강남경찰서 강력반 막내 형사의 사망사건의 경우, 단순 음모론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당시 제대로 수사되지 않고 종결처리된 사건에 대한 의혹 제기와 재수사 촉구까지 나간 내용을 담았다. 너무 많은 의혹에도 서둘러 자살 처리한 데 앞장섰던 인물이 2018년 버닝썬 사건에 다시 등장하는 놀라운 사실을 전하면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또 다른 유사사건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 바로 이러한 정당한 의혹을 제기한다는 지점은 <당신이 혹하는 사이>가 단지 음모론을 재생산하는 프로그램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드라마는 물론이고 교양프로그램에서도 범죄가 주요 소재로 자리하게 된 건, 최근 갈수록 잔혹해지는 범죄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그만큼 높아져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정인이 사건’은 물론이고 ‘N번방 사건’, ‘노원구 일가족 살인사건’ 등등 충격적인 범죄들이 매일 같이 사회면을 채우고 있는 현실이 그것이다. 드라마가 이들 사건들로 인해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들에 반해, 후회나 죄책감조차 없이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않는 가해자들을 허구를 통해서나마 단죄하는 카타르시스를 전한다면, 교양 프로그램들은 그 충격적인 사건의 진실에 접근함으로써 이를 예방하거나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를 들여다보려 한다. 안타깝고 씁쓸한 일이지만 그게 어느 쪽이든 우리가 처한 불안한 사회를 TV는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글:시사저널, 사진:SBS)

'알쓸범잡', 어째서 범죄 이야기를 스핀오프로 가져왔을까

 

2018년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3(이하 알쓸신잡)>가 방영된 지 벌써 햇수로 3년이나 지났지만, 이 프로그램은 시즌4로 오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간 이 프로그램의 주축이라 할 수 있었던 유시민이 방송을 하기에는 여러모로 정치적 이슈들이 적지 않아 참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다른 출연자가 그 빈자리를 채워도 되지만 워낙 이 프로그램의 상징성이 큰 인물임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래서 양정우 PD는 이 프로그램의 스핀오프로서 <알쓸범잡>을 갖고 돌아왔다. 굳이 <알쓸범잡>이라 줄인 표현으로 제목을 삼은 건, '알쓸신잡'으로 불리던 본편의 연장선이면서 동시에 차별화가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범죄'를 하나의 심화된 아이템으로 삼았고, '쓸데없는'을 '쓸데 있는'으로 바꾸었다. 물론 <알쓸신잡>도 제목은 '쓸데없는'으로 썼지만 그건 인문학도 재밌게 접근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알쓸범잡>은 대놓고 쓸데 있음을 강조했다.

 

그 이유는 첫 회만 봐도 드러난다. '이것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입니다'라는 캐치 프레이즈처럼 범죄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런 범죄가 생겨나는 이유가 저 멀리 있는 것으로 치부하는 우리의 '무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첫 회 '부산편'을 통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34년 전 벌어졌던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단적인 사례였다. 88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이 사건은 도시 부랑인들을 수용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이 위탁받아 저지른 조직적인 범죄였다. 부랑인들도 그렇게 취급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이 시설에는 무려 70%의 가족이 있는 사람들조차 끌려와 노예 취급을 당했고 폭력과 성폭력을 일상적으로 겪었다. 확인된 사망자만 513명이었다는 것.

 

하지만 이 사건이 알려지고 나서도 형제복지원 원장은 납치와 감금에 있어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단지 횡령죄로 2년 6개월의 선고받았다고 했다. 정재민 법학박사는 당시에 박종철 서울대생 고문치사사건이 대서특필됐던 것과 비교해 무려 513명이 사망한 이 사건이 조명되지 못했던 걸 짚어내며 안타까워했고, 김상욱은 이 사건의 본질이 우리의 '무관심'이라는 걸 강조했다.

 

<범죄와의 전쟁>, <마약왕> 등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1980년대 부산의 마약 밀수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당시 화이트 트라이앵글의 한 축이었던 부산은 일본에 제공되는 마약의 생산기지이기도 했었다고 한다. 김상욱은 마약이 어떻게 아편에서부터 몰핀, 헤로인으로 변화해왔는가와 코카인과 필로폰에 대한 이야기를 과학적 시각으로 소개한 건 물론이고. 이러한 마약의 등장이 20세기 들어 강도가 높아진 '노동'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마약의 이야기가 우리가 지금도 매일 겪고 있는 강도가 높아진 '노동' 같은 '우리 주변 이야기'로 연결되는 것.

 

또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무고한 최인철, 장동익씨가 고문에 의해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다 재심으로 무죄가 입증된 사건 역시 '무관심'과 관련 있었다. 박지선 범죄심리학자는 당시 '얼마나 아무도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는가'를 통탄해 했다. 고문으로 나오게 된 진술과 갑자기 등장한 보강증거에 의해 누군가의 삶이 살인자로 낙인찍혀 감옥까지 가게 된 그 일은 만일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또 벌어질 수도 있는 사안일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범죄'라는 소재는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방송의 한 분야가 되고 있다. 범죄 스릴러들이 시청자들의 호응과 공감을 얻고 있고, <유 퀴즈 온 더 블럭> 같은 경우 범죄를 카테고리로 했던 프로파일러나 형사들의 이야기가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알쓸범잡>은 이러한 범죄에 대한 관심을 스핀오프로 끌어오면서, 그것이 남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는 걸 강조함으로써 재미와 더불어 '쓸모'까지 보여주었다.

 

물론 범죄 한 분야로 카테고리화되어 있어 <알쓸신잡>이 보여주던 다양한 담론들의 묘미에는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 분야에 특히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귀는 물론이고 마음까지 잡아끄는 힘이 있다. 향후 어떤 지역에서 또 어떤 사건들을 통해 그 시사점과 흥미로운 관점들을 더해줄지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tvN)

'카이로스' 사고가 아닌 범죄, 그래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건

 

이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가 그 정체를 드러냈다. 밤 10시 33분 단 1분 간 전화로 연결되는 한 달 전의 한애리(이세영)와 한 달 후의 김서진(신성록). 이 판타지 설정을 통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떻게든 과거로 돌아가 향후 벌어질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함이다.

 

애초 이야기는 아이가 유괴 살해되고 아내 강현채(남규리)마저 이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절망에 빠진 김서진이 한 달 전을 살아가는 한애리를 통해 자신에게 벌어진 비극을 막으려 하는데서 출발했다. 그렇게 과거와 미래가 연결된 김서진과 한애리는 그 1분을 통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서로를 구해내려 한다. 김서진은 한애리에게 미래에 그가 어떤 장소에서 살해된다는 사실을 경고함으로써 그를 구해내고, 한애리의 어머니 곽송자(황정민)가 살해된 걸 발견하고 이를 알려줌으로써 그를 살려낸다.

 

한애리는 김서진에게 닥친 비극을 되돌리기 위해 주변인물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의 진실을 마주한다. 즉 그 비극은 강현채와 믿었던 부하직원 서도균(안보현)이 꾸민 거짓 사건이었고 죽은 줄 알았던 강현채와 그의 딸은 살아있었다. 하지만 김서진이 그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자, 한 달 전을 살아가는 한애리가 아이의 유괴 사건을 애초에 막아버림으로써 이 모든 비극의 씨를 지워버린다.

 

초반의 이 에피소드들은 <카이로스>가 과거와 미래가 연결된 두 사람을 통해 서로를 구해내는 전형적인 타임 판타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후반부로 오면서 <카이로스>는 드디어 진짜 하려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건 19년 전 유중건설이 참여한 태정타운 붕괴사고의 진실이었다. 당시 붕괴사고 최후의 생존자였던 김서진은 그 일에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버지를 잃었고, 한애리 역시 아버지를 잃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중건설 유서일(신구) 회장은 바로 그 사고가 있었던 태정시를 신도시로 개발하겠다는 야심으로 김서진에게 사업을 맡긴다. 유서일은 마치 그 사업이 태정타운 붕괴사고의 유가족들을 위해 새 터전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포장하고, 김서진은 자신 또한 그 사고의 피해자였다는 걸 드러냄으로써 그 개발사업에 반대하는 이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하지만 유서일은 당시에 피해자였던 김서진마저 이용하려 한 것이고, 사실상 과거 태정타운 붕괴사고의 배후였던 인물이다. 그 사고로 유중건설은 업계 선두로 올라섰다.

 

김서진은 태정시 개발사업을 맡게 되면서 유족들을 찾아가 설득하는 과정에 그 진실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건 사고가 아니라 어쩌면 범죄였고, 자신의 아버지는 자살한 게 아니라 그 범죄의 증거를 갖고 있어 타살된 것이며, 그걸 주도한 건 유서일 회장이었고 자신 또한 피해자지만 그의 꼭두각시로 이용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한애리의 엄마 곽송자가 계속 도망 다닌 이유도 밝혀진다. 그건 김서진의 아버지가 그에게 맡긴 증거 때문이었다. 유서일 회장은 김서진의 수행비서인 이택규(조동인)에게 명령해 그 증거를 찾게 했던 것.

 

<카이로스>가 놀라운 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시간을 중첩시킴으로 만들어내는 타임 판타지 스릴러에 머무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에게 벌어졌던 무수히 많은 재난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재난이라는 이름으로 마치 천재지변이나 되는 것처럼 사고로 치부됐던 그 비극이 어째서 계속해서 비슷한 양상으로 터졌는지에 대한 질문이 그것이다.

 

김서진과 한애리가 하루 단 1분 간 연결된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통해 그들은 비극을 막으려 노력하지만 그것은 양상만 달라질 뿐 멈추지 않는다. 결국 김서진도 한애리도 깨닫는다. 보다 근본적인 사건의 진실을 아는 것만이 이 비극을 제대로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무너진 것을 밀어내고 다시 세우는 것으로 비극은 지워지지 않고 멈춰지지도 않는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져야 향후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걸 <카이로스>는 타임 판타지를 통해 담아내고 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참사들을 겪었다. 그 때마다 안타까운 비극에 눈물 흘리고 분노했지만 그 비극들에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것들도 적지 않다. 비교적 최근 벌어진 세월호 참사도 그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카이로스>는 우리가 사고로 치부했던 일들이 어쩌면 범죄일 수 있는 사건이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또 다른 비극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연결하는 비현실적인 일이 가능하다고 해도 말이다.(사진:MBC)

독한 드라마들에 가려진 편안한 ‘추리의 여왕2’의 가치

평범하지만 아줌마 특유의 관찰력으로 사건을 추리해가는 설옥(최강희)과 조직 내에서는 왕따를 당할 정도로 오로지 사건해결에만 뛰어들고 몸 쓰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어 보이는 형사 완승(권상우)의 조합.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2>는 국내에서 흔하지 않은 시즌2가 만들어질 정도로 그 캐릭터 조합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연쇄 방화사건 에피소드도 그 이야기 전개 과정을 보면 <추리의 여왕2> 특유의 색깔이 들어가 있다. 그저 평범하게 동네에서 벌어진 소소한 연쇄 방화사건처럼 등장하다가 아이들이 위험해질 수 있는 방화사건으로 번지고, 거기서 범인이 붙잡히지만 완승의 집에 불이 나고 또 다른 범인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식으로 이야기가 점점 커지고 심각해진다. 결국 인터넷에 올라온 방화 영상을 그대로 따라하는 카피캣이 방화사건의 전말로 드러나고 놀랍게도 약국집 아이가 범인이라는 게 밝혀진다.

이런 점층적으로 확장되는 이야기와 더해져 완승과 설옥이 보여주는 때론 코믹하고 때론 달달한 케미의 재미는 이 살벌할 수 있는 소재를 편안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그래서 여타의 범죄를 다루는 스릴러들과는 사뭇 다른 <추리의 여왕2>만의 관전 포인트가 생겨난다. 그건 조금은 편안하게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추리물’의 재미가 부여되는 것.

그런데 이런 남다른 재미에도 불구하고 <추리의 여왕2>의 시청률은 좀체 오르지 않는다. 드라마의 완성도가 떨어져서 그런 것도 아니다. <추리의 여왕2>는 CG를 활용해 정지화면에서 사건 현장 속에 들어가 완승과 설옥이 사건을 추리하는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해내기도 한다. 그만큼 세련된 연출을 위해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첫 회 5.9%(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생각보다 저조하게 시작한 <추리의 여왕2>는 2회에 6.5%로 반등했지만 3회 만에 4.7%로 뚝 떨어졌다. 물론 많은 변수들이 작용했겠지만 이런 흐름은 경쟁작인 SBS <리턴>의 시청률 흐름과 반비례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인다. <리턴>의 시청률은 <추리의 여왕2>가 시작하던 시점에 16.3%를 찍었지만 다음 회에 13.7%로 추락한 후 다시 16.2%로 회복됐다. 

마침 주인공이 교체되는 파행을 겪었던 터라 <리턴>의 추락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 흐름이 나왔다. 이건 아무래도 드라마가 주는 자극의 강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리턴>은 이른바 ‘악벤져스’로 불리는 4인방의 엽기적인 범죄들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고, 그 후에는 과거 이들 때문에 죽게 된 딸의 복수를 실행하는 최자혜(박진희)의 역시 독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추리의 여왕2>가 갖는 편안한 추리물의 재미는 어떤 면에서 보면 독한 드라마들 앞에서 진짜 소소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의 여왕2>가 갖고 있는 독특한 접근방식과 캐릭터가 주는 재미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피가 흘러넘치고 잔인하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독한 드라마들이 주는 피로감을 느끼는 시청자들이라면 오히려 <추리의 여왕2>가 주는 편안한 추리의 맛이 남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게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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