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 표정 하나로 스릴러를 끌고 가는 고현정의 저력

사마귀

고현정이 돌아왔다. 그것도 살인자의 섬뜩한 얼굴로. SBS 금토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이하 사마귀)>가 그 작품이다. 물론 최근 들어 고현정이 맡은 역할들은 ‘평범’이나 ‘사랑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반대로 그간 해왔던 이미지를 깨려 안간힘을 쓰는 게 느껴지는 역할들이다. <마스크걸>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사건으로 수감 된 죄수 김모미 역할을 연기했던 고현정을 떠올려 보라. 이번 <사마귀>의 정이신이라는 희대의 살인마 역할과의 연결고리가 느껴진다. 

 

물론 정이신이라는 인물은 훨씬 더 복합적이다. 교미 후 수컷을 뜯어먹는 암컷 사마귀의 생태를 제목으로 삼은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톱으로 목을 썰어 죽일 정도로 잔혹한 연쇄살인마지만 정이신은 그렇다고 아무나 죽이는 그런 인물처럼 보이진 않는다. 아동학대나 아내에 대한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적어도 정이신이라는 연쇄살인마에게 그런 이들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이신은 ‘사적 정의’를 추구하는 그런 인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살인 자체를 즐기는 듯한 말들 속에는 잔혹한 사이코패스의 성향이 엿보인다. 그래서 이 인물이 아들이자 형사인 차수열(장동윤)을 대하는 모습은 그 속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아들을 지키려고 하는 행동인지, 아니면 심지어 아들까지 이용해 철창 안에서도 누군가를 조종해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즐기려는 행동인지 알 수가 없다.

 

정이신과 차수열의 관계는 <사마귀>라는 범죄스릴러가 가진 독특한 지점이다. 정이신은 이미 20년 전 5명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감옥에 들어갔고, 살아남은 그의 아들 차수열은 형사 최중호(조성하)의 보호 아래 성장해 형사가 됐다.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로 차수열은 여전히 그 악몽 속에서 살아가는데 애써 외면하려 했던 그 사건을 똑같이 모방한 사건들이 터지면서 과거의 트라우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정이신은 모방범 서구완(이태구)이 이름까지 바꿔 경찰로 살아가는 차수열의 정체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말하자 그를 죽이려 한다. 그러면서 차수열에게 서구완을 지금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그의 정체가 세상에 드러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정이신의 이 행동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모성애일까, 아니면 그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살인 본능일 뿐일까. 

 

정이신의 등장으로 차수열 또한 혼란에 빠진다. 마약중독자 엄마 때문에 그 아이가 위험에 처하자 그는 아이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총을 쏘는데 그건 어딘가 과잉된 행동처럼 보인다. 스스로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리화하지만 속에는 그 엄마를 죽이고픈 살의가 있었던 건 아닐까 의심한다. 정이신이라는 연쇄살인마의 핏줄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차수열을 뒤흔든다. 

 

2회까지 방영됐지만 2회 모두 엔딩 장면에 담겨진 고현정의 얼굴이 기막힌 잔상으로 남는다. 1회 엔딩의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 짓는 모습은 섬뜩하지만 그 눈빛은 어딘가 처연한 느낌이 있다. 2회 엔딩의 미소 속에는 어린애 같은 장난기가 묻어나지만 여전히 섬뜩하다. 그 표정은 살인 본능을 다시 꺼내놓은 연쇄살인마의 얼굴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어딘가 숨겨 놓은 꿍꿍이가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내는 것처럼도 보인다. 

 

<사마귀>는 그 독특한 생태를 가진 곤충의 은유에서 알 수 있듯이 정이신이라는 살인마의 속내가 너무나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연쇄살인마가 보여주는 모성애인지, 아니면 모성애를 가장한 연쇄살인마의 살인 본능인지가 궁금하다. 그 복잡 미묘한 얼굴을 통해 고현정은 그 궁금증의 멱살을 쥐고 끌고 간다. 고현정이 돌아왔다. 섬뜩하지만 어딘가 숨겨진 무언가가 느껴지는 얼굴로.(사진:SBS)

‘지금 거신 전화는’, 유연석이 보여준 로맨스릴러의 정석

지금 거신 전화는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차가운 눈빛을 날릴 때면 모든 걸 얼려버릴 것 같은 서릿발이 느껴지지만, 그 눈빛이 한없이 풀어지면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물기를 머금을 때 따뜻하고 뜨거운 이 인물의 숨겨졌던 속내가 드러난다. 차가움이 강렬할수록 뜨거움도 강렬해지는 냉온을 오가는 연기. MBC 금토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에서 유연석이 보여주는 이 냉온 연기는 살벌한 스릴러와 달달한 로맨스의 양극단을 오가는 ‘로맨스릴러’를 탄생시켰다. 

 

시작은 스릴러였다. 앵커 출신으로 대통령실 대변인의 자리에 오른 백사언(유연석)과 어린시절 자동차 사고의 충격으로 함묵증에 걸린 채 수어 통역사로 일하는 백사언의 아내 홍희주(채수빈). 이들이 쇼윈도 부부라는 사실은 어느 날 홍희주가 괴한에게 납치되면서 드러난다. 납치범의 협박에도 장난전화인 줄 알고 죽일 테면 죽이라는 백사언의 말에 홍희주는 분노한다. 결국 사고를 내고 납치범의 핸드폰을 습득한 홍희주는 드디어 숨겨진 자신의 비밀과 속내를 드러낸다. 

 

함묵증에 걸려 말을 못하는 척 해왔지만 사실은 말을 할 수 있는 홍희주는 그 핸드폰을 계기로 백사언에게 수시로 전화해 납치범인 척 협박을 하고, 그간 숨겨왔던 분노를 터트린다. 그런데 어딘가 백사언은 이 전화의 주인공이 홍희주라는 걸 조금씩 알아채고, 그래서 이 전화 통화를 통해 그녀의 진심 또한 조금씩 알게 된다. 납치범의 전화가 침묵을 강요받아 왔던 홍희주의 입을 열게 만들고, 또 그 진심을 백사언이 듣게 만들어준 것이다. 이 지점에서 스릴러는 서서히 로맨스로 방향을 튼다. 냉랭하기만 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백사언과 홍희주가 점점 가까워지고 마음을 열게 되는 로맨스의 과정과 동시에 납치범의 테러가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이 테러가 야기하는 불안과 위기는 백사언과 홍희주의 서로에 대한 마음을 점점 깊어지게 만든다. 즉 납치범에 의해 때론 백사언이 또 때론 홍희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들은 서로를 걱정하고 구해내려 온 몸을 던진다. 위협적인 상황 속에서 서로를 지켜주려는 마음이 커지는 것. 바로 이것이 스릴러와 로맨스가 연결되는 지점이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과거 백사언과 납치범 사이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지금 거신 전화는’은 사실 잘 들여다보면 과연 저게 가능할까 싶은 상황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홍희주가 언니 대신 백사언과 결혼하는 설정이나, 그렇게 결혼 후 2년 간이나 말 못하는 것처럼 속여가며 부부생활을 해오는 설정 같은 것들이 그렇다. 또 납치범에게 납치되었다가 그가 쓰던 음성변조 핸드폰을 홍희주가 습득하는 과정도 어딘가 허술한 면이 있다. 마치 홍희주가 그 핸드폰을 갖게 만들기 위해 납치범을 허술하게 만든 작가의 의도가 너무 드러난다고나 할까. 

 

이처럼 개연성은 부족하지만 시청자들은 마치 드라마게임을 보듯 어쨌든 전개된 상황 속에서 두 인물의 감정 변화에 빠져든다. 백사언이 홍희주에게 냉랭하게 대했던 그 감정들이 사실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또 대타로 결혼해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을 거라 여겼던 홍희주가 진짜 속내를 드러내자 백사언의 감정은 더욱 폭발한다. 즉 개연성이 부족해도 계속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두 사람의 감정이 커져가는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빠져든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의 감정에 빨려 들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유연석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감정연기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냉담한 얼굴에서 시작해,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츤데레적으로 드러나고, 그 속내가 완전히 밝혀진 후에는 더할 나위 없는 사랑꾼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위기에 처한 홍희주를 향해 달려나가는 유연선의 절절한 모습은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지금 거신 전화는’은 스릴러가 풀어가는 진실에 대한 궁금증이 드라마의 한 축이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백사언과 홍희주의 사랑이 커져가는 과정이 드라마의 또 한 축이다. 그래서 이 두 바퀴를 동력 삼아 드라마는 쉬지 않고 달린다. 유연석의 냉온을 오가는 연기는 그 바퀴에 추진력을 더해줬다. 그의 이 몰입감 넘치는 감정 연기가 있어 스릴러의 냉탕과 로맨스의 온탕을 오가는 이 독특한 작품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사진:MBC)

‘운수 오진 날’이 담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의미

운수 오진 날

“저, 고통을 못 느껴요.” 금혁수(유연석)는 사고로 편도체에 문제가 생겨 공포도 고통도 못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금혁수(유연석)는 그걸 ‘신기한 능력’이라며, 운전을 하고 있는 택시기사 오택(이성민)에게 굳이 손바닥을 칼로 긋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며 오택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다. 마치 제 손을 긋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금혁수는 무표정하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운수 오진 날>이 이 살벌한 논스톱 스릴러를 통해 담고 있는 게 무엇인가를 정확히 드러낸다. 그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한 평범한 택시기사가 연쇄살인범을 손님으로 태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스릴러의 근간은 바로 금혁수라는 사이코패스에서 나온다. 별 이유 없이 재미로 무고한 이들을 살해한 이 사이코패스는 이제 해외로 밀항을 하려 하고, 거기에 택시기사가 말려들게 된 것. 

 

금혁수가 살인까지 아무런 감정없이 하게 된 건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저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다. 하지만 그와 달리 오택은 자신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이코패스가 자랑하듯 제 손을 긋는 장면을 보면서도 견디지 못한다. 그러니 금혁수와 오택 사이에는 고통과 공포에 대한 간극이 극명하게 존재한다. 바로 이 간극이 이 작품의 스릴러가 극대화된 이유다.

 

휴게소에서 누군가 시비를 걸어와 분노를 느낀다고 해도 오택은 화가 날 뿐 그 이상의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만일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이 타인에게 미칠 고통을 그가 알고 있고, 또 그 폭력이 자칫 자신에게도 돌아올 상처에 대한 공포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고통도 공포도 없는 금혁수는 다르다. 그는 기분 나쁘게 한 그를 그저 살해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대신 한 것이라는 식의 무용담처럼 오택에게 늘어놓는다. 

 

<운수 오진 날>은 이 차이에서 오는 공포감을 다양한 상황 속에서 스릴러로 꺼내놓는다. 오택이 지나는 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금혁수 모르게 비상등을 켜고 달리고, 무언가 위급한 상황에 놓였다는 걸 알게 된 한 차량의 사내들은 두려우면서도 오택을 도우려 한다. 오택이 처한 고통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혁수는 그들마저 잔혹하게 살해한다. 

 

원작 웹툰에는 없는 캐릭터지만 드라마 리메이크에 새롭게 창조된 황순규(이정은)는 그래서 금혁수와는 정반대에 서 있는 인물이다. 아들을 죽인 금혁수를 추적하는 이 엄마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만큼 오택이 느낄 고통도 공감한다. 금혁수가 오택의 딸마저 납치 감금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복수와 처벌만큼 딸에 대한 오택의 절절한 마음을 이해한다. 금혁수에게 협박받으며 어쩔 수 없이 그를 돕는 오택이 자신마저 따돌리려 해도 그걸 이해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어떤 지를 그 누구보다 절절하게 아는 황순규는 금혁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공격받아 죽어가는 한 사내를 발견한다. 황순규는 죽어가는 사내의 손을 잡고는 하는 말은 그래서 너무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내가 옆에 같이 있어 줄게요. 좋은 것만 생각해.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 떠올려 봐요.” 그건 마치 죽어가는 아들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사내를 빌어 하는 말처럼 들린다. 

 

아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기에 낯선 사내의 고통 또한 절감하며 그 옆을 지켜주려는 황순규의 모습은, 아무런 고통도 공포도 없는 걸 ‘신기한 능력’이라 치부하며 살인행각을 벌이는 금혁수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리고 그 공감은 죽어가는 사내에게도 그대로 전이된다. 황순규의 말을 듣던 사내가 힘겹게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  

 

<운수 오진 날>은 눈을 뗄 수 없는 스릴러의 진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전체 10부작 중 6부작까지 공개했지만 그 6회를 단번에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몰입이 나오는 건 여기 등장하는 금혁수라는 괴물에 의해 끔찍한 고통과 공포를 겪는 오택이나 황순규 그리고 무고한 피해자들을 바라보며 그 고통과 공포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운수 오진 날>은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의 고통만큼 타인의 고통이 어떠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거다. 그리고 이건 굳이 연쇄살인범 같은 살벌한 범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게다. 자신이 하는 어떤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와 고통을 주는 지 모르는 이들을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서 마주하고 있으니. (사진:티빙)

‘썸바디’, 이 괴물은 왜 살벌한데 쓸쓸할까

썸바디

“무슨 소리일까요? 이 소리는 여기 직경 20미터 높이 50미터의 사일로 내부의 소리입니다. 여기 사일로 내부에 들어가면 아주 작은 숨소리조차 녹슨 철판에 난반사되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본인의 숨소리까지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이 사일로 내부에 있는 녹슨 철판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버텨왔을까요? 50년입니다. 50년 동안 여러분들의 목소리, 숨소리를 기다리고 있던 겁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썸바디>에서 성윤오(김영광)는 나포시청 도시재생 사업 공모전에서 바닷가 옆에 세워진 오래된 사일로에 대해 그렇게 브리핑한다. 거대한 괴물처럼 서 있는 사일로. 바닷가 옆 흉물처럼 보이지만, 성윤오는 그 내부에 들어가 자신이 내는 숨소리, 목소리를 온 몸으로 듣는다. 그리고 그 사일로가 누군가의 목소리 숨소리를 듣기 위해 무려 50년 동안을 기다려왔다고 말한다. 

 

성윤오는 건축가이지만, 이 장면에서 마치 그 녹슨 채 텅 빈 흉물처럼 서있는 사일로에 자신을 투영시키는 듯 말한다. 흉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아주 작은 내면의 소리가 있다는 것. 물론 그 누구도 그 소리를 들으려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치 저마다의 섬처럼 마주보고 서 있는 두 기의 사일로는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다가가지 못하는 현대인들처럼 보인다. 어딘가 섬뜩하지만 쓸쓸하기도 한. 

 

이 사일로에 대한 느낌은 <썸바디>라는 드라마 속 성윤오라는 연쇄살인마가 주는 감정이다. 그는 잘 생겼고 키도 훤칠하며 말도 부드럽게 한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가장이다. 그 이면에는 연쇄살인마의 잔혹함이 숨겨져 있다. 누군가를 향해 살의를 드러내면 순식간에 잘 생긴 얼굴은 섬뜩해지고, 훤칠한 키는 위압감을 주며 부드러운 말투는 쌍스러운 욕지거리로 채워진다. 그런데 이 섬뜩함 뒤에는 어딘가 쓸쓸함 같은 것도 있다. 

 

그건 <썸바디>라는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데이팅 앱 ‘썸바디’에서 느껴지는 말끔함과 섬뜩함과 쓸쓸함 그대로다. 보여 주고 싶은 것들로만 가득 채워진 앱 속 사진이나 메시지들은 판타지화되어 보일 정도로 말끔하지만, 그건 일종의 가장이다. 그들은 모두 멀쩡해 보이고 심지어 행복해보이지만 실상은 저마다의 결핍 속에서 섬처럼 고립된 채 살아간다. 그래서 썸바디 같은 앱을 찾는다. 그건 진정으로 사람을 이해하게 해주고 연결해주지 못하지만 그럼에도(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연결되고픈 이들을 끌어 모은다. 

 

썸바디를 개발한 김섬(강해림)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인물이다. 제대로 된 감정을 모른다. 어려서 엄마는 그에게 여러 감정들을 읽어내는 걸 가르치려 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엄마는 그를 “톱니 없이 민둥하게 태어났다”고 했다. 관계의 톱니바퀴가 없으니 세상과 맞물리지 않는 삶. 하지만 섬은 “사실 바퀴가 필요 없다”며 감쪽같이 “모든 걸 흉내 내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섬이라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인물로 극대화해서 표현해냈지만, 이 인물의 무감함에서는 온라인으로 연결된 듯 착각하지만 사실은 섬처럼 떨어져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흉내 내는 삶이 느껴진다. 연쇄살인마 성윤오도 천재적인 프로그래머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는 김섬도 톱니 없이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사실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지만, 이들은 스스로가 그렇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썸바디를 통해 처음 연결됐을 때 그들은 각별한 느낌을 갖는다. 마치 톱니 없는 존재가 톱니가 있는 바퀴들과 어울리지 못했지만, 또 다른 톱니 없는 존재를 만나 맨질한 맨살을 마주 대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랄까. 썸바디를 하는 이유로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과 연결되고 싶어서라는 그 답신이 김섬의 텅 빈 사일로 같은 마음에 거대한 울림으로 들어찬다. 

 

그리고 로드킬 당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고양이를 김섬이 죽이고는 “내가 괴물 같아요?”라고 묻자, 성윤오는 “아니요. 전혀”라며 이렇게 말한다. “고양이를 도와주고 싶어했던 거 알아요. 고통스럽지 않도록. 참 잘했어요.” 성윤오는 그 순간 김섬이라면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심지어 누군가를 장난처럼 죽이는 괴물이지만. 

 

<썸바디>는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스릴러지만 그 안에 디지털 세계 속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저마다의 욕망을 숨긴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쓸쓸함을 담았다. 그래서인지 김섬 주변의 인물들은 모두가 평범하지 않다. 김섬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갖고 있고, 그의 절친 영기원(김수연)은 사고로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된 경찰이다. 또 기원과 가까운 임목원(김용지)은 성소수자 무속인이다. 김섬이 마음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영기원은 육체적인 소통(섹스)이 어렵고, 임목원은 신을 섬기는 존재로서 보통 사람들과는 소통이 다르다. 그래서 이 부족한 지점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끌어내고, 성윤오라는 연쇄살인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을 갖게 된다. 

 

<썸바디>는 그래서 이 연쇄살인마의 위협 속에서 그를 잡기 위한 스릴러로서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동시에 소통되지 않고 섬처럼 갈라진 이들 마음속에 자리한 쓸쓸함이나 고독 같은 것들 또한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성윤오와 김섬의 관계는 공포와 섬뜩함이 느껴지는 연쇄살인마와 피해자의 관계이면서 동시에 기묘한 멜로 관계로도 그려진다. 다만 이들의 멜로는 톱니 없는 자들의 쓸쓸함이 빚어내는 관계다. 결국 마지막에 보여주는 김섬의 선택은 그래서 저 로드킬로 죽어가는 고양이를 마주했던 그 상황과 겹쳐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김섬 역할의 강해림은 그가 드라마 속에서 만들었던 챗봇 ‘썸원’을 인간화한 듯한 그 캐릭터를 신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표현해낸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중심 축은 성윤오라는 살벌함과 쓸쓸함이 겹쳐진 연쇄살인마를 연기해낸 김영광이다. 그간 멜로의 달달한 역할들로 이미지화되어 있던 김영광은 말 그대로 광기어린 괴물 같은 연기를 보여준다. 연기자의 가능성은 어떤 캐릭터를 만나 드디어 열린다고 하던가. 그간의 나긋나긋한 연기를 훌쩍 벗어던진 김영광에게서 ‘연기 괴물’의 탄생이 엿보인다. 오랜 시간 그저 녹슨 채 서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 섬세한 소리들을 들려주는 사일로 같은 연기자였다는 걸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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