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 무엇이 이렇게 신비한 느낌을 줄까

‘알아두면 쓸데없는’ 이야기 같다. 경주로 간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 거대한 능들이 밀집되어 있는 대릉원에서 화려한 금관을 보며 그 많은 금들이 어디서 왔을까를 상상하다, 당시 실크로드의 종착지가 경주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역을 통해 들어온 금이라는 것. 그러더니 불쑥 박물관의 우물 관련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유물들 속에서 소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말의 흔적만 있더라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이야기가 나오고 박물관 유물들은 지배계급의 것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흐르더니 천마총의 천마장식은 지금으로 치면 페라리의 엠블렘 같은 것이 아니었겠냐는 의미심장한 농담이 덧붙여진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경주가 고향인 유시민은 예전에는 그 유적들에서 뛰어 놀았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제한된 수의 사람들을 감당할 수 있었던 유적들이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서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너무 많이 늘어난 ‘호모 사피엔스’의 문제로 귀결된다.

유적에서도 느껴지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격차나, 너무 인구가 늘면서 이제는 뛰어 놀 수 없고 멀리서 바라 봐야만 하는 유적들의 이야기는 묘한 쓸쓸함을 만들어낸다. 경주에도 새롭게 생겨 커져 가고 있는 황리단길에서 원주민들이 오히려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아이러니가 거론되고, 그걸 막으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아무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유시민의 말에, 그러나 그것이 슬럼화된 도시를 다시 깨어나게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점에서 단순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고 김영하가 덧붙인다. 

천년 전의 신라인들과 지금 우리들이 생물학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지만 생각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는 걸 유시민이 지적하자 정재승은 그것이 뇌의 놀라운 능력이라고 말한다. 뇌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을 한다는 것. 그래서 만일 지금 신라인이 여기로 와서 우리와 이야기를 해도 금세 말이 통할 것이라고. 

이런 걷잡을 수 없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희열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그 사실에 “속상하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런 유희열에게 김영하는 한 가지 희망 섞인 이야기를 덧붙인다. 마침 녹화가 있던 날이 6월 10일. 6.10항쟁 30주년이라는 걸 상기시킨 후, 30년 전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짧은 30년 사이에 나아진 것들이 분명히 있으니 희망을 가져도 된다고.

<알쓸신잡>의 지식 수다가 ‘알아두면 쓸데없는’ 것처럼 마구 쏟아져 나오다가 어느 순간 ‘신비한’ 느낌을 갖게 되는 건 이래서다. 그 많은 수다들이 그저 맥락 없이 마구 나온 것 같지만 많은 것들이 이어져 있고, 지금 그 작은 공간에서 몇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 속에는 지금도 흘러가는 수천 년 인류 역사의 흐름이 담겨져 있다. 

그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 광경 자체가 신비롭게 다가온다는 것. 정재승 교수가 말했듯 어찌 보면 이 우주에서 먼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우리들이 그 우주를 이야기한다는 데서 오는 신비함이 그것일 게다. 유시민 작가는 농담을 더해 이를 ‘먼부심(먼지의 자부심)’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알 수 없는 신비함은 바로 이 먼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천년 전 달을 보며 살았을 신라인들의 삶과, 천년 후 같은 달을 보며 나누는 이야기가 묘하게 겹쳐지는 신비한 느낌.

‘알쓸신잡’에 화자 아닌 청자 유희열이 필요했던 까닭

사실 누군가가 가르치는 이야기를 듣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때로는 그런 가르침의 분위기는 ‘꼰대’의 이미지로 연결될 수 있고, 때로는 권위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최근 인문학이 예능의 새로운 소재로 트렌드화되면서도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바로 이런 이미지와 느낌을 어떻게 상쇄시킬까 하는 점이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나영석 사단의 새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역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느껴진다. 즉 작가 유시민,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그리고 물리학자 정재승 같은 쟁쟁한 전문가들을 섭외하고 그 안에 유희열이라는 ‘재담꾼’을 투입한 건 그래서다. 

<알쓸신잡>은 첫 회가 방영되고 대체로 반응이 괜찮았다. 나영석 PD표 예능에 대한 여전한 지지가 있었고, 유시민 작가처럼 최근 대중들의 호감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 주는 유쾌함이 있었다. 여기에 유시민과 각을 세우는 황교익 그리고 간간이 한 마디씩 던지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김영하와 말 그대로 ‘쓸데없어 보이는’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의외의 예능감을 보여주는 정재승의 합이 썩 괜찮았다. 

물론 통영이라는 지역이 가능케 하는 역사적 담론들(이순신 관련)이나, 문학 이야기(난중일기, 박경리 선생의 토지)와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어서 식사시간마다 자연스럽게 깔리는 먹방의 분위기 그리고 동피랑, 서피랑 마을을 갖고 있는 곳의 볼거리 등이 어우러진 것도 인문학적인 이야기가 갖는 지나친 무게감을 떨쳐낼 수 있는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쓸신잡> 역시 인문학 소재가 갖는 ‘먹물’의 느낌이나 ‘지식의 나열’에서 비롯되는 부담감 같은 건 피하기 어려웠다. 끊임없이 지식을 쏟아내는 유시민 작가의 달변은 먹거리에서부터 역사, 문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들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것이었지만 그런 달변이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와 부딪치는 지점에서는 고집 같은 것도 느껴졌다. 물론 이런 고집은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음식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나이대가 유시민과 황교익 그리고 김영하와 정재승 이렇게 두 세대로 나눠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유시민과 황교익이 끌고 가는 분위기도 감지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이들보다 더 주목되는 건 간간히 한 마디씩 터트리는 김영하와 정재승이었다. 김영하가 슬쩍 던진 “햇살이 바삭바삭하다”는 말 한마디가 이들의 여행의 공기를 전해주고, 정재승의 그 황당한 ‘이순신의 숨결’ 이야기가 <알쓸신잡>의 독특한 지적 유머코드를 담아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건 유시민과 황교익이 쏟아내는 전문지식들 속에서 예능으로서의 어떤 균형점을 잡아준 건 다름 아닌 유희열이었다. 유희열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간간히 한 마디씩 덧붙임으로써 가르치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즉 유희열이 던진 “이 분들 옆에 있으니까 바보가 된 기분”이라는 말은 시청자들이 느낄 그 기분이 당연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런 지식을 털어놓는 그들이 보통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물론 <알쓸신잡>은 그 주인공이 ‘말하는 이들’이다. 이들을 특정 여행지에 합류시킨 건 보통 사람들의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 각자 전문분야를 가진 이들의 생각들을 그 공간을 통해 풀어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하는 예능’에서 더 중요해지는 건 유희열 같은 ‘들어주는 인물’이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춰주고 이야기가 과할 때는 그 사실을 얘기해 공감대를 형성해주고, 놀라운 상상력에는 같이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때론 그들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과 똑같다는 사실을 드러내주기도 하는 인물. <알쓸신잡>에서 유희열이 없었다면 자칫 지루해졌을 수도 있는 일이다.

더 라스트 찬스를 선택한 <K팝스타6>의 속내

 

사실 <K팝스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시들해질 즈음 다시금 불을 붙여 놓았던 프로그램이다. <슈퍼스타K>가 시즌2에 정점을 찍고 시즌3에서부터 조금씩 하향세를 보이던 시점에 <K팝스타>가 시작됐고 국내의 3대 기획사가 직접 참여한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오디션을 부활시켰다.

 


'K팝스타(사진출처:SBS)'

그리고 어언 5년이 흘렀다. 5년 동안 예능 환경도 또 가요계의 환경도 변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너무 많은 음악 예능들 속에서 대중들에게 피로감을 주었다. 그나마 <K팝스타>가 신선하게 다가왔던 건 심사위원들의 멘트 하나하나가 화제가 될 정도로 힘이 있었고, 참가자들이 기획사에 최적화되면서 연령대가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신선함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했다.

 

시즌5는 괜찮은 시청률을 냈지만 화제성은 예전만 하지 못했다. 시즌6의 제작발표회에서 심사위원들이 했던 말처럼 심사도 어떤 패턴화가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나이 어린 친구들의 참가는 장점만이 아니라 아마추어리즘이 드러나는 단점으로도 작용하기 시작했고, 시즌 초반에 팝 가수들만큼 잘 소화해내 불리던 팝송들은(심지어 이것 때문에 국내 차트에 팝송이 진입할 정도였다) K팝스타를 뽑는 프로그램에 적합한가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심사위원들의 진정성과 <K팝스타>가 배출하는 가수들의 특성이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주었다. 인디 가수들 같은 숨은 진주를 발굴하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형 기획사들의 수장들로부터 이뤄지는 풍경은 어딘지 낯설게 다가온다.

 

<K팝스타>가 시즌5를 거쳐 오는 동안 또한 바뀐 건 가요계의 가수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최근 Mnet<프로듀스101>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이미 데뷔를 했거나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있는 가수 지망생들도 참여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실력 있는 일반인과 이미 데뷔했지만 빛을 보지 못한 가수, 혹은 기획사 연습생들은 그리 큰 차별점을 느끼지 못하게 된 상황이 됐다.

 

<K팝스타6>더 라스트 찬스라는 부제를 달아 마지막을 선포한 건 이런 여러 가지 그간의 변화들을 읽어내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함이다. 사실 우여곡절은 많았고 구설도 많았지만 <K팝스타>가 가요계에 미친 좋은 영향도 적지 않았다. 악동뮤지션이나 이하이, 백아연 등등 다양한 가수들을 배출하기도 했고, 이진아 같은 인디 뮤지션을 재발견시키기도 했다. 무엇보다 시스템이 갖춰진 기획사들의 제작과정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잘 나가는 프로그램이 라스트를 결단하게 된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선택이 상당히 시의 적절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6에 대한 기대감을 확실히 높여놓았다. 소속사가 있는 지망생들에게도 문을 열어 놓음으로써 다양한 출연자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가수 지망생들의 가창력과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기획사들의 프로듀싱 능력을 경쟁적인 틀 안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움도 생겨났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꼭꼭 짜서 <K팝스타>가 시즌1부터 보여 왔던 그 음악의 즐거움을 시즌6에서도 되살려줄 수 있다면 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기억은 그만큼 남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을 선택한 <K팝스타6>. 마지막이라는 수식어의 크기는 그만큼 크게 다가온다

<슈가맨>, 파일럿 프로그램의 진화란 이런 것

 

사실 JTBC <슈가맨>이 파일럿으로 방영됐을 때만 해도 실망감이 컸었다. 무엇보다 유재석이 처음 비지상파에서 선보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파일럿에서 <슈가맨>은 저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의 또 다른 버전처럼 여겨졌고, 너무 많은 의욕으로 슈가맨을 찾아가는 VCR<TV는 사랑을 싣고>의 한 대목 같다는 평가마저 받았다.

 


'슈가맨(사진출처:JTBC)'

하지만 정규로 돌아온 <슈가맨>은 이런 VCR 도입 부분을 과감히 없앴고 온전히 스튜디오 버라이어티에 집중시킴으로써 웃음과 공감의 폭을 넓혔다. 가장 눈에 띄고 효과적으로 보이는 변화는 방청객과 방청석이다. 방청객을 20대부터 50대까지 나누어 방청객에게 각각 이른바 공감의 등을 세워 놓은 건 노래는 물론이고 이야기의 공감을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장치가 되었다.

 

슈가맨이 누구인가를 맞춰가는 초반 도입부도 이렇게 세대별로 구분된 방청석과 불빛이 세워지자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시각적으로 어느 세대가 더 많이 그 노래를 기억하는가가 드러났고, 이런 방청객들과의 공감대를 유재석과 유희열은 번갈아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슈가맨>의 가장 큰 맹점으로 지적됐던 몰라도 너무 모르는 노래가 가진 한계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직시함으로써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유재석이 선선히 많은 분들이 모를 수 있다는 걸 전제한 후 작은 공감을 큰 공감으로 만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한 건 그래서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몰랐다가 차츰 노래를 들으며 기억이 소환되고 그것을 지금에 맞게 리메이크해 요즘 세대에도 어필하게 하는 과정은 유재석의 이 말을 실행해가는 과정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역시 방청객이다. 파일럿에서는 이러한 방청객들과의 교감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소소한 마니아들만 아는 노래와 가수를 소환해 저들끼리 웃고 떠들고 좋아하는 느낌이 짙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방청객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음악을 통한 소통의 노력을 한 결과 심지어 몰랐던 노래에 대해서조차 관심을 갖게 되는 좋은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던 것.

 

이제 새로운 프로그램의 런칭 이전에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관행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1,2회의 파일럿 프로그램만으로 정규가 되느냐 마느냐에 대한 결정을 내리다 보니 어떤 아이템은 아쉽게도 버려지기도 한다.

 

사실 좋은 프로그램은 기획 아이템 자체보다 메이킹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제 아무리 기획이 좋아도 잘 만들어낸 것이 아니면 그 기획이 빛을 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슈가맨>은 이러한 파일럿에 지적되었던 문제들을 적절하게 해결하면서 진화시킨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프로그램 제작 결정권자들도 당장 반응이 영 시원찮다고 그저 버릴 것이 아니라, 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또 메이킹을 제대로 해서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200% 만들어낼 수는 없는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규로 돌아온 <슈가맨>은 그 지적들을 겸허히 수용하고 한 땀 한 땀 재미의 포인트들을 찾아나가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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