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아름다운’ 슬픈데 웃기고, 천국인데 현생이 떠오르는 역설

천국보다 아름다운

“스릴러로 살다가 갑자기 교육방송이 되니까 이건 적응하기가 참...” JTBC 토일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해숙(김혜자)은 너무나 밝고 학구적인 분위기의 천국지원센터를 보며 그렇게 말한다. 그녀는 죽었다. 그리고 영락없이 지옥에 갈 줄 알았다. 스스로 ‘스릴러로 살았다’고 말했듯, 그녀의 삶은 지독하기 그지 없었고 그래서 시장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오물을 쏟는 일도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험한 일수 일을 해왔고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남의 집에 드러눕는 게 일상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래서 죽으면 지옥에 가는 게 당연하다 여겼는데 웬일로 천국에 가게 됐다. 문제는 천국에서 몇 살로 살거냐는 질문에, 남편 고낙준이 생전 “지금이 가장 예쁘다”고 했던 말만 믿고 “80”이라고 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나이 그대로 팔순의 몸이 되어 천국에 먼저 가 있는 남편을 찾아갔는데, 고낙준(손석구)은 젊은 시절의 나이로 돌아가 있었다. 생전에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됐던 몸도 생생하게 회복되어 이제 달릴 수도 있는 몸으로 바뀌었다. 해숙의 천국행은 순식간에 지옥 같아졌다. “네가 그랬잖아. 네가 이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나자며. 왜 나만 이런데? 이딴 게 무슨 천국이야. 이럴 바엔 차라리 지옥이 나았겠다. 이 나쁜 자식아!”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생전에 절절히 사랑했던 해숙과 낙준이 둘다 차례로 죽어 천국에서 다시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당연히 천국이 등장하는 판타지지만, 여기 나오는 천국은 어딘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비슷하다. 처음 천국에 와서 적응이 안되는 이들을 위한 천국지원센터가 있고 그 곳에는 ‘소울리스좌’처럼 AI 안내를 해주는 직원도 있고 그 곳의 수장인 센터장도 있다. 물론 천국이니 현생과는 다른 판타지도 있다. 생전에 사별했던 이들이 다시 만나 살아가고, 먹고 싶은 건 상상만 하면 먹을 수 있다. 물론 생전에 했던 좋은 일이 손에 통장의 돈처럼 쌓여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천국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지만, 이 드라마에는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현생들이 겹쳐진다. 천국으로 가는 입국심사대 같은 곳에서 한 소방관은 손에 쥔 방독면을 쥐고 놓지 않는다. 그건 화재 현장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끝까지 구하려 했던 소녀에게 씌워진 방독면이다. 자신의 죽음보다 소녀의 안위가 궁금한 이 소방관은 쓰러진 자신에게 방독면을 벗어 씌워준 소녀 역시 그 곳에 오게 됐다는 걸 알고 미안함의 눈물을 쏟아낸다. 

 

돈이 없어서 아이를 보육원에 보낸 걸 평생 후회하며 돈을 모았지만 아이에게 전하지 못한 채 죽어 그 돈을 꼭 아이들에게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엄마, 며느리 병수발을 한 시어머니에게 다음생에는 꼭 자기 아이로 태어나달라고 해서 아이와 엄마로 다시 만난 시어머니와 며느리, 앞못보는 시각장애인을 옆에서 돕다 먼저 무지개 다리를 건넌 반려견... 천국의 이야기에는 현생에 그들이 살아왔던 가슴 먹먹한 삶들이 묻어난다. 

 

해숙의 삶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마치 스릴러 속 빚쟁이처럼 살벌하고 독한 그녀의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그것은 모두 평생을 병수발해온 남편 낙준과의 생계를 위한 것이었다. 정작 마음이 소녀 같은 해숙은 그래서 빚쟁이 집에 갔다가 학대 당하는 아이 영애를 끝내 무시하지 못하고 빚 대신 집으로 데려와 함께 지낸다. 독하게 일수를 받아내는 삶을 살았지만, 약하고 착한 이들 앞에서는 한없이 여린 해숙이었다. 그것이 지옥이 아닌 반전의 천국행을 하게 된 이유다. 

 

이처럼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역설의 드라마다. 천국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현생이 계속 떠오르고,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삶이 떠오른다. 죽음이라는 비극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죽음 이후에 계속 이어지는 삶의 희극이 담겨 있다. 본래 희극과 비극은 원근의 차이일 뿐이라던가.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그래서 슬픈데도 웃기고 웃기다가도 슬픈 기묘한 희비극의 풍경들을 펼쳐 놓는다. 

 

<눈이 부시게>로 노년의 삶을 시간여행의 판타지로 엮어 처음에는 웃기다가 그다음에는 설레고 끝내는 먹먹하게 만든 희비극의 역설을 보여준 이남규 작가와 김석윤 감독은, 이번에도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희비극으로 돌아왔다. 역시 <눈이 부시게>에서 손발을 맞춘 김혜자와 한지민, 이정은이 함께하고 여기에 손석구까지 더해진 드라마는 이제 천국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참이다. 실로 걱정없이 살기 좋은 천국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 곳에 오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더욱 아름다운 그 세계는 현생을 사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궁금하고 기대되는 대목이다. (사진:JTBC)

‘낮과 밤이 다른 그녀’, 독보적인 코믹 연기로 떠오르는 배우 윤병희

낮과 밤이 다른 그녀

보통 검사와 함께 등장하는 수사관 역할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배역이 대부분이다. JTBC 토일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의 주병덕(윤병희) 수사관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계지웅(최진혁) 검사와 사건 수사를 돕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가 이미진(정은지) 앞에서 이렇다할 고백조차 잘 못하는 연애 숙맥이라는 걸 알고는 얼토당토 않은 연애 코칭을 하는 모습으로도 웃음을 준다. 

 

놀라운 건 이 배우의 존재감이다. 주병덕이라는 코믹한 수사관 캐릭터를 완전히 씹어먹은 듯, 그의 연기는 윤병희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자기 색깔을 채워 넣었다. 그래서 계지웅을 보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진과도 또 그가 50대로 변신한 임순(이정은)과도 나아가 임순의 정체를 알고 호감을 표현하는 고원(백서후)과도 기막힌 케미를 선보인다. 

 

구내식당에서 계지웅과 점심을 먹다가 우연히 임순과 고원이 꽁냥꽁냥하는 모습을 보고는 먹던 음식이 목에 걸려 캑캑대는 모습이나, 고원에게 임순과의 관계에 대해 조언이랍시고 하면서 혼자 폭주해 술에 취해 계지웅을 힘들 게 하는 모습에서는 그 코믹한 캐릭터를 200% 자기 색깔로 연기해냄으로써 시청자들을 여지없이 웃게 만드는 그의 공력을 느끼게 한다. 

 

또 임순과 계지웅과 함께 연쇄실종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백철규(정재성) 원장의 병원을 잠입수사하는 과정에서도 윤병희 특유의 과장된 코믹 연기가 보는 맛을 만든다. 자동문 앞에서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나, 막상 들어간 후에는 그 안에 들어온 간호사를 피하고 또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코믹하게 연출되는데 윤병희는 이또한 찰떡 같은 웃음으로 만들어낸다. 

 

평범하고 그다지 표정이 묻어나지 않는 얼굴이지만, 과장 연기를 할 때는 얼굴 전체 근육을 활용하는 듯한 역동적인(?) 표정 연기가 반전을 만들어내는 윤병희의 코믹 연기는 로맨틱 코미디에 범죄스릴러라는 이질적인 장르가 더해져 있는 이 작품에는 웃음을 주는 것 이외에도 중요한 역할이 있다. 그건 이질적인 장르의 기조를 코믹 연기를 통해 적절히 리얼리티를 뭉갬으로써 지나치게 긴장감 속으로 빠져들게 하지 않는 역할이다. 

 

이 작품에는 잔혹한 토막살인이 벌어지는 범죄스릴러가 더해져 있다. 백철규 원장과 연결된 모종의 사건이라고 여겨지는데, 계지웅 검사의 실종된 엄마나 역시 실종된 이미진의 고모인 실제 임순과 그 사건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사건을 수사하며 관계가 만들어진 계지웅과 이미진의 달달한 로맨스가 드라마의 중심축이긴 하지만, 그들이 함께 수사하며 접하게 되는 범죄스릴러 또한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범죄스릴러의 분위기로 흘러가게 되면 로맨스가 약해진다. 설레는 감정보다는 두려운 감정이 더 생겨난다. 그걸 주병덕 같은 그 중간을 이어주는(멜로든 스릴러든) 캐릭터가 균형잡힌 코미디로 풀어내주는 건 그래서 이 작품에서 특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윤병희의 코믹 연기가 도드라지고 또 작품에서도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다. 

 

흥미로운 건 공교롭게도 현재 JTBC 수목드라마 ‘놀아주는 여자’에 등장하는 장현우(권율) 검사와 그와 함께 하는 수사관인 오계장(박철민) 캐릭터와의 관계와 역할이,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의 계지웅검사와 주병덕 수사관의 관계와 평행이론처럼 비슷하다는 점이다. 사실 박철민 역시 이러한 코믹 캐릭터 연기로 정평이 나 있던 배우다. 윤병희가 그 계보를 잇는 독보적인 코믹 연기의 대가로 거듭날지 지켜볼 일이다. (사진:JTBC)

‘낮과 밤이 다른 그녀’, 낮의 이정은과 밤의 정은지 이 조합 기대되네

낮과 밤이 다른 그녀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정은지가 이정은이 됐다? JTBC 토일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이러한 발칙한 상상력으로 시작한다. 20대에서 50대로의 급노화. 그런데 밤이 되면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20대지만 갑자기 낮동안 50대의 몸을 갖게 된 이 인물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모도 못 알아보는 외형의 변화가 불러오는 충격 자체가 시종일관 빵빵 터지는 코미디를 만들어내지만, 20대 이미진(정은지)이 8년째 열심히 공부했지만 공무원 시험에서 연거푸 불합격했다는 사실은 이 코미디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청춘들의 무거운 취업 현실이 드리워져 있다. 동명이인을 딸로 착각해 합격인 줄 착각하는 부모님 앞에서 뭐라 말도 못하고, 심지어 취업 사기까지 당한 이미진은 그 절망 끝에서 갑자기 낮이 되면 50대로 변하는 황당한 상황까지 맞이하게 된다. 

 

희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정작 불행의 연속을 당하는 이미진은 눈물의 연속이지만,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이것을 발랄한 연출로 코믹하게 그려낸다. 20대의 이미진과 50대의 임순(이정은)을 오가는 미치고 달싹하는 상황 속에서도, 시니어 일자리 지원사업에 지원한다. 그런데 면접관이 하는 말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지원자들 중에 제일 젊으세요.” 50대로 급노화한 사실에 절망하던 이미진이지만 시니어들만 모인 자리에 임순이라는 이름으로 나서자 가장 젊은 사람이 된 것. 

 

“중앙청 창살 쇠창살...” 같은 어르신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걸 척척 해내고, 엄청난 유연성에 영어, 중국어 능력까지 겸비한 임순은 면접관들을 사로잡는다. 20대 취준생으로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자존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결국 처음으로 합격 통지서를 받고는 너무나 기뻐한다. 20대에는 하지 못했던 취업을 50대에 하게 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기막힌 현실에 대한 페이소스를 담아내며 웃음을 준다. 

 

20대의 마인드와 능력들을 갖고 있으면서 50대의 몸으로 활동하는 건 이미진에게는 너무나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8년간 취준생으로 살아오며 그 흔한 여행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으니 어찌 억울하지 않을까. 게다가 누군가와의 연애 또한 해봤을 리가 만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상황을 뒤집어 20대의 마인드에 50대의 몸을 가진 상황이 주는 절망만큼 의외로 얻을 수 있는 희망들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나이 들었어도(외모가) 마인드는 20대라 꼰대와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살아가고, 50대의 몸 나이라고 해도 여전한 20대의 열정을 보여주려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표현을 실제로 살아간다고나 할까. 아직 등장하진 않았지만 정반대로 50대를 경험하며 다시 밤이 되면 20대로 돌아가는 이미진이 이 경험을 통해 의외로 얻게 되는 일도 적지 않을게다. 아마도 멜로 상황이 만들어질 계지웅(최진혁) 검사와의 로맨스에도 이미진이 가진 이 비밀(?)은 절절한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이처럼 20대의 이미진과 50대의 임순을 오가게 된 한 인물의 판타지 설정을 통해 서로 다른 세대의 충돌과 화해를 그려낼 작정이다. 발랄한 코미디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주지만 어느 순간 달달해지다 먹먹해질 것 같은 기대감을 주는 작품이다. 20대와 50대를 오가는 인물인만큼, 2인1역을 해내야 하는 정은지와 이정은의 어깨가 무겁지만, 두 배우의 연기 콜라보는 환상적이다. 

 

진짜 코미디 연기는 진지함 속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는데, 정은지도 이정은도 그저 과장된 웃음을 주기 위한 코미디가 아니라 진지한 연기를 통한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다. 그 웃음 뒤에 남는 페이소스는 바로 이러한 진지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낮의 이정은과 밤의 정은지를 오가는 이 인물이 피워낼 달달하면서도 먹먹한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사진:JTBC)

‘운수 오진 날’이 담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의미

운수 오진 날

“저, 고통을 못 느껴요.” 금혁수(유연석)는 사고로 편도체에 문제가 생겨 공포도 고통도 못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금혁수(유연석)는 그걸 ‘신기한 능력’이라며, 운전을 하고 있는 택시기사 오택(이성민)에게 굳이 손바닥을 칼로 긋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며 오택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다. 마치 제 손을 긋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금혁수는 무표정하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운수 오진 날>이 이 살벌한 논스톱 스릴러를 통해 담고 있는 게 무엇인가를 정확히 드러낸다. 그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한 평범한 택시기사가 연쇄살인범을 손님으로 태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스릴러의 근간은 바로 금혁수라는 사이코패스에서 나온다. 별 이유 없이 재미로 무고한 이들을 살해한 이 사이코패스는 이제 해외로 밀항을 하려 하고, 거기에 택시기사가 말려들게 된 것. 

 

금혁수가 살인까지 아무런 감정없이 하게 된 건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저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다. 하지만 그와 달리 오택은 자신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이코패스가 자랑하듯 제 손을 긋는 장면을 보면서도 견디지 못한다. 그러니 금혁수와 오택 사이에는 고통과 공포에 대한 간극이 극명하게 존재한다. 바로 이 간극이 이 작품의 스릴러가 극대화된 이유다.

 

휴게소에서 누군가 시비를 걸어와 분노를 느낀다고 해도 오택은 화가 날 뿐 그 이상의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만일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이 타인에게 미칠 고통을 그가 알고 있고, 또 그 폭력이 자칫 자신에게도 돌아올 상처에 대한 공포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고통도 공포도 없는 금혁수는 다르다. 그는 기분 나쁘게 한 그를 그저 살해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대신 한 것이라는 식의 무용담처럼 오택에게 늘어놓는다. 

 

<운수 오진 날>은 이 차이에서 오는 공포감을 다양한 상황 속에서 스릴러로 꺼내놓는다. 오택이 지나는 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금혁수 모르게 비상등을 켜고 달리고, 무언가 위급한 상황에 놓였다는 걸 알게 된 한 차량의 사내들은 두려우면서도 오택을 도우려 한다. 오택이 처한 고통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혁수는 그들마저 잔혹하게 살해한다. 

 

원작 웹툰에는 없는 캐릭터지만 드라마 리메이크에 새롭게 창조된 황순규(이정은)는 그래서 금혁수와는 정반대에 서 있는 인물이다. 아들을 죽인 금혁수를 추적하는 이 엄마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만큼 오택이 느낄 고통도 공감한다. 금혁수가 오택의 딸마저 납치 감금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복수와 처벌만큼 딸에 대한 오택의 절절한 마음을 이해한다. 금혁수에게 협박받으며 어쩔 수 없이 그를 돕는 오택이 자신마저 따돌리려 해도 그걸 이해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어떤 지를 그 누구보다 절절하게 아는 황순규는 금혁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공격받아 죽어가는 한 사내를 발견한다. 황순규는 죽어가는 사내의 손을 잡고는 하는 말은 그래서 너무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내가 옆에 같이 있어 줄게요. 좋은 것만 생각해.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 떠올려 봐요.” 그건 마치 죽어가는 아들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사내를 빌어 하는 말처럼 들린다. 

 

아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기에 낯선 사내의 고통 또한 절감하며 그 옆을 지켜주려는 황순규의 모습은, 아무런 고통도 공포도 없는 걸 ‘신기한 능력’이라 치부하며 살인행각을 벌이는 금혁수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리고 그 공감은 죽어가는 사내에게도 그대로 전이된다. 황순규의 말을 듣던 사내가 힘겹게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  

 

<운수 오진 날>은 눈을 뗄 수 없는 스릴러의 진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전체 10부작 중 6부작까지 공개했지만 그 6회를 단번에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몰입이 나오는 건 여기 등장하는 금혁수라는 괴물에 의해 끔찍한 고통과 공포를 겪는 오택이나 황순규 그리고 무고한 피해자들을 바라보며 그 고통과 공포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운수 오진 날>은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의 고통만큼 타인의 고통이 어떠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거다. 그리고 이건 굳이 연쇄살인범 같은 살벌한 범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게다. 자신이 하는 어떤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와 고통을 주는 지 모르는 이들을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서 마주하고 있으니.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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