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인생 리셋, ‘착한 여자 부세미’ 반응 예사롭지 않다

착한여자 부세미

장윤주는 자신의 이미지를 작품에 따라 어떻게 연출해야 하는지 아는 것 같다. ENA 월화드라마 <착한 여자 부세미>에서 그녀가 맡은 가선영이라는 인물은 악역이다. 그것도 피도 눈물도 없는 소시오패스 악역. 그래서였을까. 장윤주는 딱 붙여놓은 머리에 마치 곤충의 더듬이 같은 모양으로 머리카락 한 가닥을 늘어뜨린 모습으로 등장했다. 마치 사마귀의 형상 같은 그 모습은 등장만으로도 섬뜩한 인상을 준다. 

 

<착한 여자 부세미>는 제목에 이 주인공의 ‘착함’을 내세웠다. 정반대로 말하면 이 부세미(전여빈)라는 이름으로 3개월을 생존해내야 하는 김영란의 반대편에는 ‘악함’이 있다는 뜻이다. 장윤주가 등장부터 섬뜩한 인상으로 구현해낸 가선영이라는 인물이 그 악의 중심이다. 그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재혼으로 부녀 관계가 된 아버지 가성호(문성근) 회장의 모든 재산이 본래 자신의 것이었다며 어떤 짓을 해서라도 빼앗으려 한다. 

 

가선영은 가성호 회장이 자신의 엄마와 결혼해 이 모든 재산들을 빼앗아 갔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상 가성그룹은 가성호 회장이 맡아서 국민 라면 신화를 만들어내 성장한 회사다. 그러니 가선영의 이 비뚤어진 욕망은 파괴적인 집착에 가깝다. 집사를 이용해서 가성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먹는 음식에 독을 타는 일도 서슴없이 할 인물이다. 빼앗겼다 믿는 재산을 되찾기 위해서는. 

 

반면 가성호 회장이 경호원으로 뽑은 김영란은 가선영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아버지의 상습적인 가정폭력 속에서 자랐고, 엄마는 가끔 나타나 돈이나 뜯어가는 존재다. 생리대 살 돈 만 원이 없어서 이를 훔치다 실형으로 6개월을 살다 나오기도 했다. 엄마 때문에 빚더미에 앉아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간다. 가성호 회장의 말대로 그녀는 “약점이 많은 사람”이다. 

 

가성호 회장의 마음이 그 약점 많은 사람에게 기우는 것처럼, 시청자들의 마음도 김영란의 처지에 연민을 느낀다. 그녀가 인생 리셋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그리고 동아줄로서 가성호 회장이 손을 내민다. “나랑 결혼하자.” 황당한 제안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가성호 회장이 살해당한 자신의 친딸에 대한 복수를 위한 거라는 점과 자신 또한 이 지긋지긋한 삶의 출구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김영란은 결국 가성호 회장의 손을 잡는다. 

 

만 원이 없어 실형을 살 정도로 궁핍하고 엄마의 빚을 갚기 위해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재벌가의 상속녀가 된다? 신데렐라류의 멜로를 통한 신분상승이라면 별 흥미가 가지 않는 이야기였을 게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멜로 대신 복수라는 카드를 내세운다. 게다가 상속을 받게 한 장본인인 남편(?) 가성호 회장은 말기암 판정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내 인생에 로맨스는 없다”고 말하는 김영란처럼, 멜로 같은 건 애초부터 싹을 잘라버린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멜로가 아닌 3개월 생존하기를 통해 김영란이 스스로 인생리셋에 성공하기를 기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소시오패스로 갖가지 독하고 악한 짓을 골라 하는 가선영과 그 잔당들과 대결하고, 저들을 무너뜨리기를 바란다. 개인의 인생리셋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걸 가지려 사람 목숨 따위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자들에게 한 방을 날리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가 시작부터 그 빠른 전개에 시청자들을 동승하게 만든 저력이다. 등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윤주와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얼굴로 갈아 끼운 전여빈의 연기가 만들어내는 팽팽한 힘도 빼놓을 수 없다. 

 

같은 재벌 회장이지만 가성호 회장은 저 가선영 같은 인물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존재다. 독이 들었을 지도 모르는 산해진미보다 봉지에 적힌 레시피 대로 정직하게 끓여낸 라면을 원하는 이 사람은 가진 것 없어도 착하고 올바른 김영란의 가치를 알아보고 “합격”을 외친 사람이다. 과연 그가 가치를 알아본 김영란은 상속녀로서 부세미라는 이름으로 무창에 숨어 들어가 3개월을 생존해낼 수 있을까. 시시각각 좁혀오는 가선영의 위협을 물리칠 수 있을까. 거기서 만난 딸기농사짓는 바른 청년 전동민(진영)과는 어떤 관계가 만들어질까.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 색다른 인생리셋 드라마가 과연 많은 이들의 인생드라마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사진:ENA)

'우리영화', 끝이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삶, 작품

 

우리 영화

 

SBS 금토드라마 '우리영화'는 '하얀사랑'이라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다. 

'하얀사랑'은 시한부 규원과 현상의 사랑과 이별을 담았고, 그 규원 역할을 실제 시한부인 이다음(전여빈)이 맡았다.

그 작품을 찍는 감독 이제하(남궁민)는 영화를 찍으며 이다음을 사랑하게 되고, 그 작품 속 시한부 규원의 마음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영화'의 엔딩신은 이제하와 이다음에 의해 원작과는 달라진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찍은 엔딩신에서

규원 역할을 빌어 이다음이 극중 남주인공인 현상에게 건네는 말은

이제하에게 그대로 와 닿는다. 

 

"현상씨 들려요? 끝도 없이 부서지는 소리."

"응. 들려."

우리 영화

"이제하는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꼭 알려주고 싶었어요."

"어, 알아. 나는 행복해질 수 있어. 다음씨가 알려줬잖아."

우리 영화

"제하씨는 제하씨의 시간을 살아줘. 아주 행복하고 충실하게. 나는 여기에 머물러 있을게. 제하씨 마음에 그리고 이 바다에도."

우리 영화

"응. 다음씨는 여기 있는 거야." 

"응. 나는 이렇게 부서지고 다시 생기고 부서지고 다시 생길 거니까."

 

부서지지만 다시 생겨나는 포말처럼

이다음은 계속 그 곳에 있을 거라고 한다. 

그건 이제하의 기억 속에, 그가 이다음과 함께 찍은 '하얀사랑'이라는 영화 속에 있겠다는 거다.

 

앞으로 이제하는 이다음 없는 세상에 남겨지겠지만

어느 파도 앞에서

또 언제든 다시 틀어 볼 수 있는 영화 속에서

이다음이 다시 생겨나고 부서지고 또 생겨나는 걸 볼 것이다. 

 

계절이 그렇고, 그 계절 맞아 피었다 금세 떨어지는 꽃잎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지는 꽃잎을 애써 주머니에 한웅큼 집어 넣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떨어진 꽃잎도

계절이 오면 다시 피어나고 또 떨어진다.

 

우리 삶이 그렇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작품을 애써 만들려는 마음도 그 삶을 애써 반복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우리 영화. 우리 삶.

사라져도 영원히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반복될...

 

우리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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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치’, 넷플릭스 ‘인간수업’ 작가가 펼쳐놓은 또 하나의 상상력

글리치

과연 외계인은 존재하는가. 본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렵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부정하기도 애매한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 외계인이니 UFO니 이야기할 때 우리는 과연 그런 존재가 있는가를 먼저 질문한다. 하지만 실제로 보기 어렵고 증명하기 어려운 존재에 대한 접근은 그것이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존재를 믿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닐까. 마치 우리게 종교에 있어 신의 존재를 그렇게 대하듯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글리치>는 바로 그 UFO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지효(전여빈)가 학창시절 겪은 사건이 그것이다. 어느 들판에서 마주하게 된 거대한 빛. 전부터 UFO와 외계인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관련 기사들을 꼼꼼히 챙겨 읽으며 자신도 그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저 미지의 세계에 신호를 보내곤 했던 지효였다. 우연히 만나 친하게 된 보라를 들판 한 편에 있는 버려진 봉고차에 꾸며진 자신의 아지트로 데려가 UFO와 외계인의 이야기를 늘어놓던 지효는 그러나 그 빛을 마주한 후 들판에 버려진 채 발견되고, 자신을 버리고 갔다고 믿는 보라와 결별한다. 

 

성장한 지효는 적당한 직장에 다니며 무감정한 섹스를 나누는 남자친구가 동거를 제안하고 부모들도 함께 살아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까지 듣는 어찌 보면 평이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건 현대 유니콘스 모자를 쓴 외계인이 자꾸만 눈에 보인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 존재가 점점 거대해져 거인처럼 지효 앞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급기야 남자친구마저 실종되어 버리자 그는 이것이 외계인의 소행이라 의심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신이 이상하다 생각해 상담을 받으면서도 UFO를 추적하는 모임을 기웃거린다. 그리고 거기서 예전에 결별했던 친구 보라(나나)를 만난다. 

 

외계인을 보지만 그것이 자신의 환상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지효와, 과거 지효가 알려준 내용들을 바탕으로 여전히 외계인이 존재할 거라고 믿으며 이를 추적하는 보라. 이들은 실종된 남자친구를 찾아 나서고 동시에 이 실종과 하늘빛드림교회라는 종교집단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하늘빛드림교회는 다름 아닌 외계인(하늘빛)의 도래를 믿는 사이비 단체다. 지효와 보라는 이 휴거를 꿈꾸는 사이비 종교 단체를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그 빛을 봤다고 여기는 지효는 저들에게 호산나(구원자)로 지목되어 받들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지효의 선택에 의해 그를 호산나로 믿는 신도들이 모두 구원이라고 믿는 집단자살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 지효는 자신의 믿음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이들은 사이비 종교단체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외계인과 UFO를 봤다는 그 믿음조차 자신의 환상일 뿐이었다는 걸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은 특별한 경험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미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글리치>는 과연 지효가 본 게 진짜 UFO와 외계인이 맞는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끝까지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엔딩은 속 시원히 그 결론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그 질문을 갖고 그 끝까지 함께 달려가며 지효와 보라가 겪는 일련의 과정들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변화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앞에 덩그라니 놓여 있는 것이 우리의 실존일 때, 믿음의 문제는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보다 누가 그걸 공유하고 공감해주느냐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아 자신 혼자만 보는 세계를 애써 타인에게 숨겨가며 살아왔던 지효가, 그걸 직접 보진 않았지만(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믿어주는 보라와 함께 그 세계를 공유하는 과정은 그래서 단순한 ‘워맨스’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이 미지의 세계에 저마다 홀로 외롭게 던져져 있어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바로 그 ‘믿음의 공유’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리치>를 쓴 진한새 작가는 전작이자 첫 작품이었던 <인간수업>에서처럼 이번에도 자신의 상상을 어떤 정제된 틀에 가두기보다는 하나하나 끄집어내 끝까지 밀어붙이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야기가 처음에는 UFO로 시작해 외계인으로 이어지고 실종사건과 사이비 종교단체로까지 펼쳐져 나가더니 급기야는 믿음과 인간 실존의 문제로까지 확장시킨다. 

 

물론 <글리치>는 깔끔하게 정제되어있는 작품이라 보긴 어렵다. 하지만 다소 거칠게 밀어붙이는 상상력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말끔한 기성작가의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거칠지만 일단 어디로든 달려 나감으로써 거기서 어떤 의외의 결과를 만나기도 하는 그런 패기가 이 작품에는 있다. 진한새 작가의 이런 작품의 경향은 마치 <글리치>의 주인공들인 지효와 보라를 닮았다. 어떤 하나의 궁금증과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어 길을 나서고 그 과정에서 별의 별 사건들을 만나면서 끝내 무엇 때문에 그 길을 나섰는가를 드디어 마주하게 되는 이들의 여정 같은.(사진:넷플릭스)

'낙원의 밤', 박훈정 감독이 느와르로 풀어낸 사랑과 삶의 은유

 

우리에게 낙원은 어디에 있을까. 지옥 같은 현실을 매일 같이 버텨내면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낙원은 삶 속에 존재한다기보다는 삶 저편에 있다고 여겨질 법 하다. 흔히들 말하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의 농담 섞인 한숨 속에 담겨지는 쓸쓸한 현실 인식처럼. 박훈정 감독의 영화 <낙원의 밤>은 감독 특유의 유혈이 낭자한 느와르 장르지만, 그 안에 사랑과 삶에 대한 은유를 통해 묻는다. 우리에게 낙원은 어디에 있느냐고.

 

여기 지옥 속에 살아가는 남녀가 있다. 태구(엄태구)는 유일한 피붙이인 누나와 조카가 살해당하자 상대 조직의 보스에게 치명상을 입힌 채 제주도로 피신한다. 그런데 태구를 보호해줘야할 조직의 보스가 제 목숨을 상대 조직에게 구걸하며 태구를 배신한다. 결국 태구는 자기 조직 보스와 상대 조직 모두의 타깃이 되어버린다.

 

재연(전여빈)은 태구가 내려간 제주도에서 인연을 맺게 되는 여자다. 그는 과거 조직에 몸담았다 나와 총기 밀매를 하며 살아가는 삼촌과 함께 살아가지만, 고통 속에 죽어가는 시한부인생이다. 태구와 재연은 그렇게 지옥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이지만, 제주도에서의 그 짧은 시간 동안 낙원을 경험한다. 물론 그 낙원은 멜로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런 달달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처절한 삶 속에서 그저 물회를 같이 먹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것 같은 순간의 한숨 같은 낙원이다.

 

이야기 구조만 보면 <낙원의 밤>은 우리에게 익숙한 박훈정표 느와르라는 걸 알 수 있다. 조직이 등장하고, 그 알력다툼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복수극이 액면이다. 하지만 <낙원의 밤>의 매력은 이런 액면의 익숙한 느와르 이야기에 있지 않다. 그것보다는 느와르 사이사이를 채우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 안에서 마치 지옥을 살아가는 남녀가 잠시 서로를 쳐다보는 그 잠깐 동안의 정서적 훈훈함이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이다.

 

"괜찮아?" "내가 괜찮아 보여? 난 딱 봐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괜찮냐고 묻는 게 싫더라." 영화 속 남녀가 농담처럼 주고받는 이 대화는 <낙원의 밤>이 보여주는 역설 속에서 그저 웃고 넘길 수 없는 여운을 만든다. 이들은 결코 괜찮지 않은 삶을 마주하고 있고, 그걸 서로 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괜찮냐고 묻는다. 그렇게 물어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지는 게 사랑이고 삶이기도 하다는 것처럼.

 

박훈정 감독은 <낙원의 밤>이라는 제목에 대해 "낙원은 우리가 생각할 때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인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담는다"는 그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어 붙였다고 말한 바 있다. 태구와 재연이 제주도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잠깐이지만 강렬하게 마주한 낙원과 그 파국을 담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건 거꾸로 이야기하면 삶 자체가 지옥이지만, 그 안에서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아주 사소한 일상들이 낙원일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느와르라는 장르를 통해 사랑과 삶에 대한 은유를 담으려 한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엄태구는 작중 이름이 태구인 것처럼 마치 제 옷에 딱 맞는 옷을 입은 양 '태구를 했다'. 전여빈은 tvN 드라마 <빈센조>에서 보던 그 과장되고 유머러스한 모습이나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봤던 사랑스러운 모습과는 전혀 다른 무표정한 얼굴에서 나오는 강렬한 액션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그 흔한 키스신 하나 없이도 그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절절하고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보여줬다는 건 엄태구와 전여빈 두 배우의 공이 아닐 수 없다.

 

뻔한 느와르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느와르의 핏빛 장면들 사이사이에 채워지는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경들과 그 위에 서 있는 남녀 주인공의 감정 속을 들여다보길 바란다. 거기에 낙원이 존재할 테니. 비록 현실은 지옥일지라도.(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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