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보다 판타지, 드라마 속에서라도

 

JTBC 금토드라마 <욱씨남정기>는 대놓고 을의 판타지를 다룬다. 이 드라마에서 남정기(윤상현)란 인물은 을의 대명사격인 캐릭터. 러블리 코스메틱이라는 하청업체의 과장인 그는 일상이 갑질인 황금화학의 핍박을 받으며 살아간다. 주문을 해놓고는 일방적으로 철회하고 심지어 거래를 한 순간에 끊어버린다. 이유는 관행’. 하청업체 길들이기다.

 


'욱씨남정기(사진출처:JTBC)'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결코 웃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욱씨남정기>의 장르적 기조는 코미디다. 갑질에 한없이 망가지는 남정기 과장의 모습은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깊은 슬픔이 깔려 있지만 드라마는 이를 우스운 캐릭터로 그려낸다. 따지고 보면 미생도 이런 미생이 없지만 <욱씨남정기><미생>이 그렸던 처절하기까지 한 직장 생존기를 눈물보다는 웃음의 방식으로 풍자해낸다.

 

게다가 <욱씨남정기>는 옥다정(이요원)이라는 판타지적인 인물을 통해 갑을 관계를 뒤집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갑의 위치에 있는 황금화학 김환규(손종학) 상무에게 사우나까지 찾아가 오히려 거래를 끊어버리는 그녀다. 이건 결코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판타지에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답답한 고구마 같은 세상에 잠시 동안이지만 느끼는 사이다 같은 통쾌함. 최근 드라마들은 <미생> 같은 처절한 현실을 담기보다는 잠시 동안의 판타지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SBS 수목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역시 그 이야기의 액면만 놓고 보면 기막히게 슬픈 현실 정서가 깔려 있다. 죽어라 일만 하다 죽은 샐러리맨의 이야기다. 그가 죽지 못하고 다른 몸으로 역송하는 까닭은 그 죽음마저 자살로 덮어버리는 현실의 비정함 때문이다. 그는 돌아와 남은 가족들을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알려주려 한다. 이 얼마나 쓰디쓴 현실을 담아낸 비극인가.

 

하지만 <돌아와요 아저씨>는 그 죽었다 살아온다는 그 설정 자체가 희극이다. 다른 몸으로 살아난 인물들은 달라진 몸 때문에 한바탕 희극적인 상황들을 연출한다. 심지어 여자의 몸으로 되살아난 인물이 겪는 성 정체성의 혼돈은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코미디 요소다. 게다가 이렇게 되살아난 아저씨의 몸은 다름 아닌 꽃미남에 조각 몸매에 심지어 회장 아들이다. 그가 남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나, 회사의 직원들을 챙기는 모습은 한 마디로 통쾌한 판타지다.

 

최근의 드라마들은 왜 비극적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이토록 판타지에 더 몰두하는 걸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것은 현실이 이제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다는 반증이다. 적어도 드라마를 보면서까지 그 현실의 무게를 느끼고 싶지 않다는 것. 그래서 비극적 현실을 가져오지만 그것을 희극을 통해 풍자하거나 혹은 통쾌한 판타지로 그려내는 것일 게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태양의 후예>를 보면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태양의 후예>는 전쟁과 재난과 전염병과 테러리즘 같은 심각한 상황들이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그 분량은 극히 적다. 위협적인 현실의 무게감에 매몰되기보다는 금세 문제를 해결해버리고 슈퍼히어로의 판타지와 달달한 멜로로 달려간다.

 

물론 그렇다고 대중들이 현실을 잊고 판타지에 빠져버린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더 처절하게 현실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잠시 동안의 위로나 위안을 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욱씨남정기>의 옥다정이나 <돌아와요 아저씨>의 이해준(정지훈) 같은 사이다 캐릭터에는 그래서 이 현실에 치인 대중들의 다친 마음들이 어른거린다. 잠시만이라도 그 현실을 탈출하고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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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라는 상황극, 우리의 선택은?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배경은 우르크라는 곳이다. 우르크는 지구 어디에도 없는 곳, 가상공간이다. 드라마의 배경이 가상공간이라는 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역시 하나의 상황극이라는 걸 말해준다. 막연히 국제분쟁지구라고 얘기되는 곳이고 그래서 우리나라 군인이 파견된 곳이다. 동시에 한 병원의 팀이 의료봉사로 파견된 곳이기도 하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이러한 상황극은 누구나 어렸을 때 한 번쯤 상상을 통해서라도 했을 법한 것들이다. 만일 이런 곳이 있다면 거기서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꿈꾸는가. 아마도 여성이라면 멜로를 꿈꿀 것이다. 하지만 남성이라면 총알이 날아다니고 때로는 지뢰가 터지고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린 차에서 여자를 구하고 지진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며 창궐한 전염병과 싸우고 나쁜 놈들을 물리치는 블록버스터를 꿈꿀 지도 모른다. 우르크는 이 남성과 여성의 판타지를 모두 그려낼 수 있는 최적의 가상공간이다. 멜로를 꿈꾸지만 블록버스터가 되는 최적지.

 

그런데 이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극에 대해 우리는 많은 현실적인 일들을 떠올린다. 해외파병 문제가 가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심각한 문제들을 얘기하고, 심지어 베트남의 한 기자가 이 드라마의 베트남 방영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공감한다. 지진과 전염병 같은 재난 상황들이 우르크라는 지역에서 연달아 발생하는 장면들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겪은 세월호 참사부터 메르스 공포까지를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심지어 이 드라마는 현실에서 훌쩍 벗어난 우르크라는 공간에서의 가상 스토리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극은 그 상황이 가상이라고 해도 거기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한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 질문을 던지는 면이 있다. 결국 모든 상황극들은 그런 점에서는 현실적이다.

 

<태양의 후예>를 이런 상황극과 거기서의 선택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바라보면 왜 우리가 유시진(송중기)이라는 이상화된 인물에 빠져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군인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그것은 단지 전쟁의 이미지와 상명하복의 계급문화 같은 군인에게서 막연히 피어나는 뉘앙스 때문만은 아니다. 군부독재를 겪어내고 민주화 과정을 통과한 세대라면 군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일 게다.

 

유시진은 이러한 막연한 군인의 이미지와 정반대에 서 있다. 그는 상명하복의 계급문화 속에 있긴 하지만 강모연(송혜교)이라는 여자 앞에서는 무시무시한 상황 속에서조차 유머를 날릴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인물이다. 국가의 명령을 받는 군인이지만 생명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고, 특히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명령도 어기는 인물이다. 강력한 슈퍼히어로지만 약자들에게는 그토록 부드럽고 유머러스하며 자애롭기까지 한 인물.

 

유시진 신드롬이 벌어지고 있는 건 거꾸로 말하면 우리에게 이런 리더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재난이 벌어져도 책임지려는 리더는 없고 심지어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진상을 끝까지 파헤치는 리더십은 더더욱 없다. 전쟁의 위기 상황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무고한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이를 타개하려는 노력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거철만 되면 모두가 국민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말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은 없고 당리당략만이 가득해진다.

 

어떤 면으로 보면 우리나라라는 공간이 참으로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알고 보면 저 드라마 속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상황들은 우리에게도 벌어졌던 일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 때마다 우리는 어떤 선택들을 했나. 물론 유시진 같은 이상화된 리더가 있을 리 없고 그런 이상적인 선택들을 하는 경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몇 번에 하나라도 비슷한 선택들이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이토록 빠져 있는 유시진 신드롬의 이면은 그래서 결코 달달할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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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어느 한 남자의 추락을 바라본다는 건

 

태석(이성민)의 하루는 한 마디로 지옥 같았다. 하루아침에 멀쩡했던 그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뇌가 쪼그라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가방 대신 쓰레기를 들고 나오질 않나 심지어 자기 차를 찾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알츠하이머에 대해 멍청이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재벌3세 의뢰인 영진(이기우)의 말은 이제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다.

 


'기억(사진출처:tvN)'

영진이 가진 병원측을 대신해 태석이 내부고발을 하려는 의사의 사적인 약점을 들춰내고 그것으로 문제를 덮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의사가 덜컥 자살을 해버리고, 백지유서에 그의 명함을 남겨 놓는 일이 발생한다. 의사의 자살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거기 남겨진 태석의 명함 때문에 형사가 찾아와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한 가지가 어그러지기 시작하자 모든 게 뒤틀어지고 나쁜 일은 함께 몰려온다고 태석에게 그간 아무렇지도 않게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던 일상들이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를 돕는 젊은 변호사인 정진(이준호)은 태석의 비도덕적인 행위들을 사사건건 문제 삼고, 같은 로펌의 한정원(송선미) 변호사는 어쩐지 태석과 직장 내에서의 정치 싸움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겉으론 무표정하지만 어려운 일들을 대신 태석에게 밀어내고 거기서 생겨나는 문제를 끄집어내 로펌에서의 입지를 약화시키려 한다.

 

그 와중에 결혼식장에도 보지 못한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한 태석의 아버지(장광)가 나타난다. 태석의 회사를 찾아온 아버지는 자기 친구가 처한 문제에 대해 태석에게 변호를 부탁하지만 그는 자신에겐 아버지가 없다며 그를 내쫓는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는 어쩐지 태석에게는 또 다른 걸림돌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거의 신경쇠약 직전에까지 이른 태석은 자기 스스로 머리에 물을 붓는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다. 1인 아들은 어찌 된 일인지 편의점에서 술을 훔치고 학교도 빠져버린다. 왕따 문제 같은 학교 문제에 연루된 것이 틀림없다. 아직 태석에게까지 이 문제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조만감 이 문제는 그에게 치명타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 밖에서의 문제야 그렇다 치지만 그나마 그것이 모두 가족을 위한 일이었다고 위안하며 살았을 그가 아닌가. 가족의 붕괴는 그를 절벽 끝으로 내모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의사가 자살한 병원의 간호사가 나타나 사실 그 백지유서를 놓은 건 자신이라며 진짜 유서는 자기가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언니가 키운 아이를 생모가 돌려달라고 한다며 이를 막아달라고 태석을 협박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한 의사의 진짜 유서를 공개해버리겠다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라고 소리치는 태석이 먼발치서 엄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가 보낸 이 지옥 같은 하루와 겹쳐지면서 시청자들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토록 힘겹게 버텨내고 심지어 세상과 타협하면서까지 얻게 된 지위와 부 그리고 그로 인한 가족의 평안함이 무너지는데 드는 시간이 고작 단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는 건 실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억>이라는 드라마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에서의 고군분투가 진정한 삶의 가치에서는 얼마나 벗어나 있는 것인가를 확인하는 것. 그래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진짜 중요한 것들을 찾아 해나가는 것. 이것은 <기억>이라는 드라마가 태석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많은 드라마들이 성장과 성공 스토리를 그려낸다. 그 안에는 판타지가 뒤섞인다. 현실에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쟁취하는 인물을 통해 갖는 대리 충족. 하지만 <기억>은 거꾸로 이미 최고의 위치에 오른 한 인물의 추락을 그려낸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그 성공을 위해 저당 잡혀 왔던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는 것. 모두가 성장과 성공으로만 달려가는 시대에 우리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의미 있는 충격요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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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의 소녀들과 <동주>의 청년들

 

영화는 이미 자본의 경제가 된 지 오래다.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는가 하는 점은 그 영화의 성패와 무관하지 않다. 극장에 얼마나 걸어주는가가 흥행의 관건이 되는 상황이다. 그러니 배급사가 투자사인 우리네 상황에서 투자규모가 큰 영화는 그만큼 극장에서 더 오래 많은 관을 내주게 된다. 그러니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설 자리 자체가 없다. 자본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영화 산업에 극명하게 나타나는 건 그래서다.

 


사진출처: 영화 <귀향>

그런데 여기 이런 자본 시스템을 거스른 두 영화가 있다. <귀향><동주>. <귀향>은 국민 75270명이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 12억을 모아 겨우 제작될 수 있었다. 물론 손숙 같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재능기부도 빼놓을 수 없다. 보통 배급사에서 관심을 갖는 제작비 규모가 최소 20억 수준(홍보 마케팅비 포함)이라고 한다. 그러니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개봉관이 50개 정도로 얘기가 됐던 건 그래서다.

 

하지만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개봉일 이 영화는 500여개가 넘는 개봉관을 확보했고 그 후로도 계속 개봉관 수를 늘려나갔다. 지난 7일 현재 267만 관객을 돌파했다. 작은 영화의 반란인 셈이다. 산업적인 논리로서는 도무지 벌어지기 힘든 일이지만 이 영화에 대한 공감대가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냈다. ‘위안부문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그 공감대가 기억하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으로 이어졌던 것.

 

윤동주 시인의 청춘을 다룬 <동주>는 고작 5억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사실 이 정도의 제작비로 이런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기획부터 연출까지 유기적으로 움직여 빈틈없이 제작된 결과다. 5억 원의 규모이니 역시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개봉 당일 개봉관 수는 370개 남짓.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입소문이 나면서 개봉관수도 점점 늘어갔다. 지난 224일에는 467개 스크린으로 확대됐다. 관객 수는 90만 명을 훌쩍 넘어 이제 곧 1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귀향><동주>의 이 같은 선전에는 20대 청춘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과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지금의 청춘들이 일제강점기라는 한참 이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들에 호응한 걸까. 그 키워드는 결국 청춘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귀향>에서 무고하게 지옥으로 끌려간 소녀들과 <동주>에서 부끄러운 세상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산화한 청춘들이 지금의 혹독한 취업 현실 속에서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청춘들을 공감하게 했다는 것이다. <귀향><동주>를 보며 흘리는 청춘들의 눈물에는 그래서 당대의 소녀들과 청춘들의 아픈 역사는 물론이고 지금 현재의 현실에 부대끼는 자신들의 아픔도 들어 있다.

 

너무나 작은 규모라서 설 자리조차 찾기 힘든 <귀향><동주> 같은 작은 영화들은 그래서 지금의 청춘들을 그대로 닮아 있다. 모든 게 태생부터 결정되고 진짜 내용이 아니라 스펙에 의해 모든 미래의 성패까지 달리는 현실. 그것이 지금의 청춘들이 처한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귀향><동주>에 대한 청춘들의 호응은 당연해 보인다. 그 영화가 처한 현실 또한 청춘들이 처한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귀향><동주>의 이례적인 성공은 그래서 반가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기적이라 불리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이 남는다. 왜 이런 일들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지 못할까. 왜 작은 영화들은, 또 청춘들은 거대한 영화들과 기득권자들에 의해 항상 희생되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때로는 이런 현실도 긍정적으로 바꿔낼 수 있다는 희망도 이 두 영화의 사례가 보여주었다. 결국 많은 대중들의 관심과 지지만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소중한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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