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잃은 <런닝맨>, 게스트 없으니 펄펄 나네

 

간만에 느껴보는 <런닝맨>만의 묘미. 아마도 SBS <런닝맨> 히어로 특집을 접한 시청자라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마치 슈퍼히어로 만화에 들어간 듯한 설정은 <런닝맨>이 반짝반짝 빛나던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런닝맨>이 그저 단순한 게임 버라이어티가 되지 않았던 것은 적극적으로 영화나 드라마 같은 기존 콘텐츠들을 끌어와 게임으로 패러디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런닝맨(사진출처:SBS)'

그 과정에서 <런닝맨>유임스본드같은 캐릭터를 얻을 수 있었고, ‘배신자 클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초능력자 특집에서는 예능 사상 초능력을 아이템으로 사용하는 획기적인 기획을 보여주었고, ‘셜록 홈즈 특집에서는 추리 형식의 스토리텔링을 차용해 흥미진진한 추리극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게 게임이야 아니면 한편의 영화야 하고 묻는 그 지점(물론 패러디의 웃음으로 만들어진)에서 <런닝맨>만의 독특한 재미가 만들어졌다.

 

히어로 특집은 정말 오랜만에 이러한 캐릭터 플레이와 콘텐츠 패러디가 어우러져 스토리도 미션도 흥미로울 수 있었다. 100년 간 냉동상태로 있다가 깨어나 능력을 잃어버린 히어로들이라는 설정 자체가 기발했다. 유퍼맨(슈퍼맨 유재석), 지트맨(배트맨 지석진), 꾹버린(울버린 김종국), 원더우멍(원더우먼 송지효), 하길동(홍길동 하하), 개오공(손오공 개리), 광바타(아바타 광수). 이 능력을 잃어버린 캐릭터는 그래서 슈퍼히어로에 걸맞지 않은 미션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큰 웃음을 만들었다.

 

자판기 밑에 굴러 들어간 기념주화를 꺼내달라는 시민의 요청을 받고 동전을 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광바타나, 마치 주차 게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차들 속에서 신혼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들의 차를 꺼내주는 미션을 수행하는 꾹버린, 지나는 행인의 근육을 풀어주는 유퍼맨, 60층짜리 호텔을 지으려 하는데 밭에 숨겨둔 땅문서를 찾아달라는 미션을 부여받고 삽질을 하는 워더우멍, 어린이집에서 동화 읽어주고 화장실 가고 싶다는 아이 챙겨주는 지트맨, 생크림 케이크 만드는 개오공 등등.

 

슈퍼히어로 설정이지만 현실은 능력 없어 이상한 복장이나 하고 다니는 이들은 마치 벌칙 수행을 하는 듯한 우스운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 미션 상황을 통해 <런닝맨>은 자연스럽게 일반인들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함께 참여한 시민들은 의외로 열심히 이 어딘지 어수룩한 히어로들을 도와주기도 했고, 돌발적인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두 번째 미션인 담력 테스트는 제작진의 영민함이 돋보인 미션이었다. 하늘을 날던 슈퍼히어로들이 눈에 안대를 하고 건물 옥상에 연결된 사다리 하나를 건너지 못해 벌벌 떠는 모습은 반전 웃음을 주었고, 그들이 건넌 사다리가 건물과 건물 사이가 아니라 그냥 옥상에 있는 것이란 사실은 또 한 번의 반전웃음을 만들었다. 게다가 당한 만큼 다른 히어로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듯 속이기 위해 열연을 펼치는 모습은 마치 몰래카메라의 또 다른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어진 버스와 벌인 이어달리기 대결은 이제는 향수로 느껴지는 <무모한 도전>의 한 대목을 보는 듯 했다. 도심을 달리는 이상한 분장의 히어로들은 이름표 떼기라는 늘 해오던 게임이 아니라도 충분히 긴박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무엇보다 게스트 없이 이런 충분한 재미가 가능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출연한 게스트들과의 마치 야외에서 벌이는 <명랑운동회> 같은 단순한 게임으로는 이런 <런닝맨>만의 묘미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

 

이번 히어로 특집은 <런닝맨>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고, 또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도 보여준 한 회였다. <런닝맨>이 그동안 대중들을 열광하게 했던 그 좋은 능력들은 왜 점점 사라지게 되었을까. ‘100년 간의 냉동상태란 그래서 특별한 아이디어 없이 무감하게 기획되어 방영된 그간의 게스트 초청 단순 게임을 해온 <런닝맨>의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대체 왜 이 좋은 웃음의 능력들을 그들은 봉인한 채 보여주지 않았던 걸까.

 

히어로 특집은 그런 점에서 그간 봉인되어 왔던 <런닝맨> 본연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보다 적극적인 스토리텔링과 지금껏 시도하지 않았던 기획. 이것이 아니라면 <런닝맨>은 다시 ‘100년 간의 냉동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간만에 부활한 <런닝맨>이 누워있지 말고 앞으로도 이렇게 달려 나가기를.

 

<닌자 터틀>, 그 유쾌함은 어디서부터 나올까

 

마이클 베이가 제작한 <닌자 터틀>은 우리에게는 닌자 거북이로 이미 알려진 친숙한 캐릭터다. 항간에는 <닌자 터틀>의 거북이 히어로들이 우리가 봤던 닌자 거북이와는 달리 귀여운 면이 사라졌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실제로 그런 면이 있다. <닌자 터틀>의 거북이들은 보는 이들을 섬뜩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클로즈업해서 잡힌 이 거북이들의 얼굴은 심지어 징그럽게까지 느껴진다.

 

'사진출처: 영화 <닌자 터틀>'

하지만 이건 <닌자 터틀>이 만화가 아니라 실사 영화, 그것도 훨씬 무게감을 갖는 히어로 무비로 만들어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만화 같은 귀여운 캐릭터들로 그려졌다면 자칫 영화 자체가 만화처럼 유치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오히려 공포물의 괴물 같은 섬뜩함을 준다면 그 체감이 그들을 실물처럼 느껴지게 할 수 있다. 여주인공인 메간 폭스가 이 닌자 거북이들과 처음 만날 때의 시퀀스가 마치 실사판 미녀와 야수같은 느낌을 주는 건 이 실감을 위한 치밀한 선택처럼 보인다.

 

<닌자 터틀>의 재미는 이 섬뜩함 뒤에 이들 거북이 4인방 레오나르도, 도나텔로, 라파엘, 미켈란젤로의 유쾌함이 곁들여지는 데서 나온다. 이들이 하는 닌자 액션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또 후반부에 가면 나오는 마치 007 시리즈에서나 봤을 법한 설산에서의 추격전은 압권이지만 역시 새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를 위기에 빠뜨리는 악당을 물리친다는 익숙한 스토리에 액션들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건 이들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10대라는 캐릭터 설정이다.

 

실제로 총알 세례를 받고 날카로운 칼날이 허공을 가르는 테러리즘의 현장에서 힙합 춤을 추거나 농담을 던지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또 뉴욕이라는 도시를 살리기 위해 어둠 속에서 헌신하면서도 나 너무 멋지지 않았어?”하고 치기 어린 잘난 체를 하는 영웅의 모습이라는 것도 10대 캐릭터라는 설정이 아니라면 이상하게 여겨졌을 대목이다.

 

<닌자 터틀>10대라는 캐릭터를 가져와 부여한 거북이들의 특징은 아드레날린 과다로 설명된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알 수 없는 이 충동적이면서도 넘쳐나는 힘은 그들이 좁은 엘리베이터 공간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장면에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없이 유쾌한 캐릭터로 재탄생된다.

 

사실 이런 과잉의 설정이 아니라면 <닌자 터틀>은 유치하고 어설픈 말 그대로 만화 같은 이야기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닌자 이야기에 서구식 히어로물을 접목하고, 사람과 거북이의 돌연변이를 주인공을 내세워 수련 받은 거북이들이 뉴욕을 구한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 게다가 이 거북이들의 스승은 스플린터라는 쥐다. 결국 이런 스토리는 만화가 아니라면 기괴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닌자 터틀>의 거북이들이 징그럽게 그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건 만화가 아니라 실사판 영화니까. 그 기괴함이 실감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위에서야 만이 만화가 아닌 영화가 된다. 그래도 만화 속의 귀여운 닌자 거북이들을 떠올리며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이를 모두 상쇄시켜주는 10대 캐릭터의 유쾌함이 있으니 말이다.

 

드라마 시청에 있어서 기분이 차지하는 것들

세상에 저렇게 불쾌한 드라마가 시청률은 왜 저리도 높을까. 어쩜 이렇게 유쾌한데도 왜 시청률은 도무지 오르지 않을까. 물론 불쾌와 유쾌란 기분의 차원이지만, 누구나 드라마를 보며 이런 의문을 품어보지 않은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취향이 대중들의 취향과는 다르다는 조급한 결론에 도달하는 분들도 있다. 도대체 왜 이럴까.

그 이유는 시청률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이 불쾌와 유쾌를 나누는 기분의 차원뿐만 아니라, 그 위에 시청자와의 현실적인 공감대, 그리고 드라마의 완성도 같은 기준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드라마가 유쾌한데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낮다는 것은 다른 측면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또 반대로 불쾌함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다른 측면이 그 부족함을 채워주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유쾌한 드라마, '천하무적 이평강'
‘천하무적 이평강’이나 종영한 ‘미남이시네요’ 같은 드라마는 대표적인 유쾌한 드라마다. 경쟁작에 밀려 시청률은 낮지만, 이들 드라마들은 시종일관 그 유쾌한 시간 속으로 대중들을 인도한다. 이들 드라마들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이들 드라마들이 코미디의 특징을 가져가는 것은 바로 이런 긍정적인 극의 분위기를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가장 잘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자체가 잘 느껴지지 않는 긍정적인 분위기의 드라마는 바로 그 현실 바깥에 서 있는 듯한 위치 때문에 모든 세대의 호응을 가져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즉 중장년층의 시선에서 보면 이 지나친 긍정론은 그들 세대에서 생각해왔던 ‘드라마는 그래도 현실적’이라는 기대치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이 판타지는 만화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젊은 세대들에게는 오히려 열광하는 이유가 된다. 이들 드라마들이 시청률이 낮은 것은 작금의 지상파 TV 리모콘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세대가 중장년층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이 유쾌함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낮은 것은 주시청층과의 현실적 공감대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유쾌함에 풍자가 깃든 '그대 웃어요'와 '히어로'
하지만 ‘그대 웃어요’ 같은 드라마는 상황이 다르다. 이 드라마는 코미디라는 장르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또한 유쾌하고 훈훈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시청률까지 사로잡고 있다. 처음 10% 초반에서 시작한 이 드라마는 현재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사용하는 코미디가 지극히 현실과 맞닿은 풍자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대 웃어요’는 웃음 뒤에 빈부의 문제나 소통의 문제 같은 현 사회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있다. 이 현실까지도 껴안고 있는 판타지는 중장년층에게 편안한 장르인 가족드라마 속에 녹여지면서 더 힘을 발하게 된다.

이러한 양상은 '히어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코미디가 갖는 과장된 상황들이 과장된 캐릭터들을 통해 그려지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현실 풍자가 들어 있다. 정의와 진실이 사라진 세상에서 작지만 그것을 지켜내려는 신념을 가진 자들의 안간힘은 이들 평범한 인물들을 '히어로'라고 부르는 이유가 된다. 물론 현재 이 작품은 '아이리스'라는 대작에 밀려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 웃음 뒤에 남는 통쾌한 현실의 전복은 보다 폭넓은 시청층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유쾌함과 불쾌함을 오가는 '수상한 삼형제'
반면 ‘수상한 삼형제’는 불쾌함과 유쾌함이 왔다 갔다 하는 냉탕온탕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부분은 지극히 희화화되어 있지만, 어떤 부분은 불쾌할 정도로 자극적이다. 민폐형 캐릭터, 김건강(안내상)과 그 가족들이 지지고 볶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한편으로 늘 밝음을 유지하려는 김이상(이준혁)이 그래도 형제라며 함께 모여 우애를 과시하는 장면에서는 훈훈함도 느껴진다. 바로 이 지나치게 극적으로 그려지는 현실의 불쾌함과, 그래도 때론 어떤 긍정을 보여주는 유쾌함의 반복은 이 드라마가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위에서 시청률을 끌어 올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중요한 것은 불쾌함만을 이끌어내면서도 시청률이 높았던 이른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최근 들어서는 차츰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전히 논란의 소지를 갖고 있는 드라마들이 포진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 드라마들의 시청률은 과거에 비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막장의 논란을 야기하면서도 시청률이 나오지 않은 '밥줘'라는 드라마는, 이제 제 아무리 시선을 받아도, 불쾌하기만 한 드라마를 이제는 대중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징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작품성을 위주로 보고, 어떤 이들은 그저 심심풀이로 보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즐겁기 위해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지극히 기능적인 관점, 즉 드라마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지금은 어떤 드라마의 특정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대중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여전히 이것이 시청률과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데 제작자들의 고민이 있다. 일정한 작품성도 가지면서, 현실이 갖는 불쾌함과 판타지가 갖는 유쾌함을 어떻게 잘 엮는가의 문제는, 이제 대중들의 반응이 보이지 않는 제3의 제작자로 떠오르는 시대에 드라마의 성패로 자리하고 있다.

대중은 지금 서민들의 영웅을 원한다

영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선덕여왕'은 대부분의 사극이 그러하듯이 수많은 영웅들의 탄생과 성장을 그려냈다. 그 중 덕만(이요원)과 미실(고현정)은 난무하는 칼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세 치 혀만으로도 충분한 정치적 지도력을 선보이며 여성 영웅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여성성의 시대, 이 여성 영웅들의 리더십은 꿈꾸지 않는 작금의 현실 정치가 희구하는 것으로, 대중들은 그 강력한 판타지 속으로 빠져들었다.

덕만과 미실이 그 시대의 정점에 서서 그 통치를 통해 현실을 개척해나가는 영웅이라면, '아이리스'의 현준(이병헌)은 시대가 꺾어버린 개인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래서 그것이 결국은 시대를 바꿔버리는 그런 영웅이다. 그 시대란 다름 아닌 남북분단의 상황이고, 현준은 그것을 고착화시키려는 아이리스와 홀로 대결하는 영웅이다. 남북이라는 소재 때문에 현준은 구태의연한 냉전시대의 영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리스'가 현준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남북의 대결이 아니라 집단과 개인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히어로'의 도혁(이준기)은 서민들의 영웅이다. 삼류잡지사 기자였다가 잡지가 폐간되자 전직 조폭이었던 용덕(백윤식)과 용덕일보를 창간하는 도혁이 싸우고 있는 것은 대세일보라는 거대 언론이다. 물론 도혁은 장총찬 같은 주먹도 아니고, 그렇다고 필력이 뛰어난 기자도 아니지만 그를 '영웅'이라 부르는 것은 대세일보로 상징되는 정의가 사라져버린 시대에 사라진 영웅을 거꾸로 말해준다. 도혁은 정의 하나를 쥐고 있는 인물로서 이 시대의 영웅이 된다. 현실에 존재하는 많은 대세일보 같은 언론사들의 정치적 행보들은 도혁 같은 맨주먹의 정의로운 행동을 대중들이 희구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대중들의 영웅에 대한 희구는 안방극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고전 속의 영웅을 현대로 불러들인다. 홍길동의 후손들이 살아남아 아직도 홍길동이 하던 '대도의 길'을 걷는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홍길동의 후예'가 그렇고, 설화 속의 인물이 현대에 깨어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전우치'가 그렇다. 이것은 홍길동과 전우치 같은 이야기가 당대 서민들의 억압을 풀어주는 시대의 영웅으로서 탄생한 것과 맥락이 같다. 이들은 현 시대의 억압 속에 답답해하는 대중들의 마음 한 구석에서 탄생한다.

'홍길동의 후예'는 이른바 '좋은 도둑과 나쁜 도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겉으로 보기엔 착한 일을 하는 것 같은 경제인 이정민(김수로)은 사실은 대중들의 피를 빠는 이 시대의 탐관오리 즉 나쁜 도둑이고, 홍길동의 후예인 홍무혁(이범수)은 그의 금고를 털어 사회에 기증하는 좋은 도둑이다. 이 영화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 사이에서 취하고 있는 자세는 흥미롭다. 이정민은 피규어 매니아로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예를 들면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이나 재패니메이션의 로봇들을 수집하는데, 그의 캐릭터는 종종 이 슈퍼히어로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그러니 홍무혁이 이정민과 벌이는 대결은 한편으로 보면 이들 할리우드와 일본의 영웅들과 우리네 서민적인 영웅이 벌이는 대결로도 보여진다.

이러한 영웅의 서민적인 면모는 우리네 영웅상의 한 특징이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이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는 자들이라면, 우리네 서민적인 영웅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들은 지구적인 고민보다는 당장 서민들이 갖고 있는 고민들을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서민이 삭제된 정치이기도 하고(선덕여왕), 집단이 꺾어버린 개인(아이리스)이기도 하며, 정의가 사라진 사회(히어로)이기도 하고, 나쁜 도둑들이 판을 치는 세상(홍길동의 후예)이기도 하다. 이 영웅들의 서민친화적인 모습은 그 권위적인 모습을 던져버리는 것에서부터 아예 코믹한 영웅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진다.

특히 우리네 영웅을 다루는 영화들이 대부분 액션과 함께 코미디를 장르적 특성으로 갖고 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네 영웅은 볼거리라기보다는 시대적 공감에서부터 탄생하고 있다는 징후일 것이다. 이러한 서민적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날라 다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날카롭게 숨겨진 풍자의 칼날이 이 시대의 억압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이야기 속에서 영웅들이 쏟아져 나오는 양상은 이 시대가 가진 억압들을 말해주기도 한다. 대중들은 지금 영웅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서민적인 영웅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