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서민으로 돌아와 영웅이 된다

이준기는 한때 꽃미남 이미지로 소비됐다. ‘왕의 남자’에서 공길이라는 역할을 하면서 갖게 된 중성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것 때문에 이준기의 중성적 매력은 광고를 통해 확장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준기가 바랐던 것도 아니고 본래 갖고 있던 색깔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상품 광고가 공길이라는 인물을 그저 여장을 한 남자로만 바라보면서 생긴 이미지의 오해였다. 공길은 여장 남자라는 표피를 떼어내고 보면 거기 서 있는 것은 정확히 우리네 민초의 자화상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그러니까 이준기에게 덧씌워진 불편하기 짝이 없는 중성적인 꽃미남의 이미지를 떼어내는 시간이었다. 눈에 핏발이 잡힐 정도로 내면 속에 숨겨진 야수성을 끄집어내는 과정은, 이준기가 스타라는 겉 이미지를 찢어내고 연기자라는 본래의 스펙트럼 속으로 들어오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간 곳은 바로 그 민초들의 세계였다.

‘일지매’에서 본래 양반의 서자에서 서민의 아들로 내쳐진 뒤, 거기서 다시 일지매라는 서민들의 영웅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재미있게도 바로 이준기의 변화과정을 미리 예고한 듯 보인다. 화려하지만 허황된 스타의 세계에서 소박하지만 진실된 연기자의 세계로 넘어온 그는 잰 체 하지 않으면서 늘 서민들의 옆자리에서 너스레를 떠는 서민 영웅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제목 자체가 ‘히어로’다.

현대판 일지매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 때문일까. ‘히어로’는 시작 전부터 ‘서민적인 영웅’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과연 칼 대신 펜을 들고, 대도의 근성 대신 올곧은 기자정신을 갖고 있는 도혁(이준기)은 진짜 일지매와 판박이일까.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일지매는 평범을 가장하지만 그 면모는 실제 영웅인 반면, 도혁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저 평범한 인물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는 실제로 삼류 잡지사의 기자이고, 그가 쓰는 기사는 실제로도 자극적인 그저 그런 기사들이다. 결국 그 잡지사는 문을 닫게 되고 그래서 다시 세우게 된다는 신문사 역시 뭔가 대단한 사회 정의의 뜻을 갖고 세우는 그런 회사가 아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들이다. 그런데 왜 ‘히어로’일까. 도대체 어떤 면이 도혁을 영웅이라 칭하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극한 평범함조차 비범하게 만들어버리는 썩어버린 사회다. 도혁은 그저 정상적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세상이 그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대세일보라는 거대 언론사의 기자라는 강해성(엄기준)은 대세그룹이라는 기업의 뒤를 봐주는 역할을 할 뿐, 그로인해 피해를 보게 되는 서민들에게는 관심조차 없다. 진실? 돈과 권력 앞에 거짓과 자리바꿈하기 일쑤다. 그러니 그 속에서 피해를 겪게 되는 도혁은 그저 정상적으로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일을 할뿐이다.

이 평범한, 아니 심지어는 지질해보이기까지 하는 한 인물이 영웅이 되는 이야기는 거꾸로 평범함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통렬하게 그려낸다. 따라서 '히어로'는 이제 '일지매'를 통해 서민들의 영웅으로 자리한 이준기가 온전히 특별한(?) 서민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작품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서민적인 영웅을 통해 이준기에게서 기대하게 되는 것은 따뜻한 면모다. 어딘지 가볍게도 느껴지고, 때로는 초라하게도 보이지만 그래도 모든 낮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따뜻한 관심. 이것이 영웅을 잃어버린 시대, '히어로'가 말하는 영웅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서민적 이미지로 돌아와 오히려 영웅 그 이상의 매력을 보이게 된 이준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시민들의 영웅 환타지, ‘히어로’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히어로’의 영화판은 드라마의 재연에 가깝다. 특별히 영화로 소재를 가져오면서 과장의 흔적도 없고, 스케일이 커진 것도 그다지 없다. 드라마에서 카메라가 사건 현장과 법정, 도쿄 검찰청을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영화도 줄곧 포커스를 그 곳에 맞춘다. 조금 다른 것은 우리나라의 관객들을 의식해 부산이 잠깐 등장하고 이병헌이 카메오로 출연한다는 정도랄까.

이것은 ‘히어로’라는 우리의 선입견을 자극하는 거창한(?) 제목의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정 그대로다. 도대체 히어로(영웅)는 어디에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그래도 영화인데 좀 거창한 스케일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똑같은 의아함에 사로잡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점이 바로 ‘히어로’라는 컨텐츠가 가진 독특한 개성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영웅, 즉 소시민들 속에 숨겨진 영웅이 이 컨텐츠의 포인트이다.

‘히어로’의 첫 장면은 영웅이 멋지게 나타나 약자를 구원해주는 관습적인 ‘히어로 무비’를 철저히 배반한다. 영화가 제시하는 영웅인 쿠리우 검사(기무라 타쿠야)는 홈쇼핑에 빠져있다. 그것도 거의 중독증 수준. 검사의 제복이랄 수 있는 양복도 걸치지 않는다. 점퍼에 청바지 차림, 게다가 길게 기른 머리는 염색까지 했다. 여기에 하는 행동은 더 가관이다. 출세나 성공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듯한 모습에, 사건 조사를 하는 태도 또한 동네 아줌마에게 길을 묻는 수준이다.

이것은 소시민의 이미지이지 영웅의 면모가 아니다. 즉 ‘히어로’가 제시하는 영웅은 모든 계층을 포괄하는 영웅상이 아니라 소시민들의 영웅상이다. 영화는 따라서 상류층과 소시민의 경계를 정확하게 나눈 상태에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주목할 것은 때론 상류층이 벌이는 거대한 사건이 소시민들의 작은 사건과 연관을 가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시민들의 사건을 조사하던 쿠리우 검사는 거기에 연루된 거대한 상류층들의 스캔들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가 관객들을 놀라게 만드는 부분은 관객 스스로도 거대 권력의 사건을 제쳐두고 소시민의 사건에만 집착하는 쿠리우 검사에게 어떤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후반부에 가서 소시민의 목숨에 걸린 사건이 상류층의 뇌물로비 사건보다 더 중요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소시민들의 영웅으로서 쿠리우 검사라는 존재는 깊이 각인된다.

모든 것이 관료화되어 있고, 성공 지향적으로 움직이는 사회 속에서도 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말하는 쿠리우 검사라는 존재는 아마도 현실에는 발견하기 어려운 인물일 것이다. 오히려 권력과 결탁하여 진실을 묻어둘수록 성공이 빨라지는 사회 속에서 ‘히어로’는 억울하기만 한 소시민들의 영웅 환타지를 자극한다.

따라서 영화는 당연하게도 저 ‘춤추는 대수사선’ 같은 화려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기무라 타쿠야 같은 대스타가 연기하는 쿠리우 검사라는 영웅이 우리나라의 시장통과 달동네 골목길을 거닐고, 사람들이 왁자하게 모여 있는 식당에서 서툰 한국어로 “청국장 주세요”라고 말하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이 이 영화의 주된 볼거리다. 화려한 영웅의 영화를 기대한다면 드라마 같은 영화에 실망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 속 정감 가는 영웅을 찾는다면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영화다. 영화 보는 내내 자신이 선입견으로 갖고 있던 영웅상을 깰 수 있다면 그건 덤이 될 것이다.

‘태왕사신기’의 배용준 vs ‘히어로’의 기무라 타쿠야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의 드라마 팬들은 두 명의 카리스마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태왕사신기’로 컴백한 배용준과,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동명의 드라마를 영화화한 ‘히어로’로 일본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기무라 타쿠야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드라마가 모두 영웅과 카리스마에 대한 이야기란 점이다.

포용하는 카리스마, 담덕
‘겨울연가’의 부드러운 남자, 배용준이 ‘태왕사신기’라는 드라마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우려했던 것은 카리스마 연기가 될까하는 의구심이었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인 대결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태왕사신기’ 속에서 배용준이 연기하는 담덕은 그 어떤 영웅들보다 인상적인 카리스마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포용하는 카리스마다.

‘태왕사신기’는 궁극적으로 이 카리스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리스마라고 하면 우린 흔히 무언가 강압적인 힘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카리스마는 막스 베버가 지배형태의 유형을 설명하면서 종교용어에서 차용한 단어다. 베버는 카리스마가 강압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고 피지배자의 자발적인 인정, 신뢰, 숭배를 통해 생겨난다고 말한다. 즉 ‘태왕사신기’는 막스 베버가 말하는 지배형태 중 카리스마적 지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태왕이 태왕으로 서기 위해 사신(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드라마 설정이 그걸 말해준다. 사신은 인물이면서 동시에 신화적 영물이고 그것은 또한 네 부족을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태왕사신기’는 쥬신의 별이 빛나던 날, 신탁을 받고 태어난 두 명의 인물이 사신을 취하는 장기게임 같은 드라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담덕과 연호개(윤태영)가 구사하는 카리스마가 된다.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은 강한 것까지를 포용한다’는 말은 배용준이 담덕을 통해 보여주는 카리스마의 전모이다. 부드러운 미소 속에 숨겨진 강인한 결단력과 포용력은 장차 태왕이 될 담덕의 카리스마가 사신들을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지를 예견케 하는 대목이다. 주목할 것은 마초적인 과거 카리스마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최민수가 화천회의 대장로 역할을 하면서 담덕과 대결한다는 점이다. 달라진 시대는 달라진 카리스마를 요구한다.

숨겨진 카리스마, 쿠리우 코헤이
반면 ‘히어로’에서 중졸에 검정고시로 검사가 된 쿠리우 코헤이를 연기하는 기무라 타쿠야는 일본인 특유의 숨겨진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도무지 검사 같지 않아 보이는 쿠리우에게 팀원들은 모두 불신을 보이고, 부검사가 되고자 열성을 다해 쿠리우의 사무관이 된 아마미야(마츠 다카코)마저 점점 실망하게 되는 상황. 그러나 쿠리우는 자신이 해결한 일마저 남이 한 것처럼 둘러댈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들은 의식하지 못했던 관료주의에 의해 매몰되고 있던 팀원들이 이 쿠리우 검사에 의해 차츰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에서, 기무라 타쿠야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된 일본사회의 리더 상을 제대로 연기해낸다. 이 드라마가 역대 시청률 1위에 랭크된 것은, 일본 관료주의사회를 대변하는 듯한 도쿄지검에 벌어지는 변화가 강압적이거나 과격한 양상이 아닌 남 모르는 영웅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데서 많은 공감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숨은 손’과 ‘숨은 발’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가는 쿠리우가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집단을 이끌어나가기 보다는 ‘원칙에 맞게 솔선수범 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지배는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발적인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역시 사무라이로 대변되던 일본 전통의 카리스마와는 달라진 카리스마라 할 수 있다.

달라진 시대, 달라진 카리스마
나라가 다르고 작품이 달라도 거기 표현되는 카리스마의 양상은 유사하다. 그것은 강력한 힘 앞에 굴복시키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저 스스로 진심에서 우러나는 충성심을 끌어내는 카리스마다. 이것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조직 속의 팀장과 팀원의 관계를 대변하기도 한다. 상명하복하던 과거의 수직적인 리더십은 이제 구태가 되었다.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카리스마를 가진 팀장의 리더십이란 팀원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장점을 극대화시켜주는 사람이다.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이 희구하는 영웅들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다. 이제 영웅은 더 이상 신화적인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평범 속의 비범을 보이는 자다. 한일 두 드라마 지존이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이러한 현재적 가치를 반영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작금에 방영되고 있는 사극들이 일제히 왕의 모습을 버리고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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